• 최종편집 2024-06-21(금)
 
지득용 장로.jpg▲ 故 지득용 장로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지득용 장로가 지난 6일 향년 94세 일기로 소천했다. 왜 그가 ‘고아들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듣는지 궁금했다. 장남 지홍식 장로(제5영도교회)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버지께서는 그 흔한 자서전 하나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당신의 이름이 하나님을 가릴 수 있다고 걱정하신 분입니다. 가족과 상의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뒤 가족회의를 마친 지홍식 장로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하는데)조건이 있습니다. 아버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시면 안됩니다”였다. 조건을 수락하고 지난 13일(토)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덕도 소양보육원을 찾았다. 마침 가족예배를 하고 있었다.
 
지득용 장로-가족예배.jpg▲ 지난 13일 고 지득용 장로의 가족들이 모여 가족예배를 드리고 있다.
 
ㆍ고아들을 친 자식처럼
 예배가 마친 후 소양보육원을 돌아보며 지득용 장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지득용 장로의 7남매가 자신들이 친아들, 딸인지 모르고 자랐던 이야기였다. 지홍식 장로는 “(웃으며)저는 똑똑하다는 이유로 호적에 아들로 올려주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친 아들, 딸이라는 특혜는 상상도 못했습니다”라며 친자식이라 해도 고아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자랐다고 말했다.
 지 장로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 당시 학교 선생님들의 모든 관심사는 초등학교 졸업 후 제가 부산에 있는 중학교로 갈지, 아니면 여기 덕문중학교(가덕도 소재 중학교)에 진학할지였습니다. 당시 여기 사시는 분들 중 생활능력이 되는 분들의 자제들은 모두 부산 소재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공부를 잘 했던 제가 부산으로 갈 것이라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버지께서는 저를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덕문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후 교장 선생님이 저를 불러 ‘지득용 장로님을 정말 존경한다. 잘 가르치겠으니, 열심히 공부해라’고 격려한 말이 기억납니다”라며 당시 고아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똑같은 혜택을 받고 자랐다고 말했다.
 또 지홍식 장로가 결혼 후 첫 자식을 데리고 소양보육원에 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지득용 장로가 손자를 안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께서 “손자가 다르긴 다르나보네. 7남매는 한 번도 안아 주시지 않더니, 손자는 저렇게 안고 좋아하시니...”라는 말이다. 지홍식 장로는 어릴때 아버지에게 안겨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금년 설립 70주년을 맞은 소양보육원에는 오랜 전통이 하나 있다. 보육원에 간판과 대문이 없다는 것이다. 간판이 없는 이유는 ‘보육원’이라는 단어에 아이들이 위축되거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항상 보육원을 개방해서 아이들이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시설의 아이들이 아닌, 이웃의 아이들로 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과거부터 보육원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해 왔다. 전국 보육원 중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기 때문에 가덕도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놀고 시간을 보낼 정도였다. 현 소양보육원 원장이며 차남인 지형식 장로의 부인 임정옥 사모도 가덕도 출신이며, 어릴때부터 보육원을 왕래하면서 지형식 장로와 친분을 쌓아 왔다고 말했다. 그만큼 지득용 장로는 아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7남매 스스로가 말한 '친자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말 속에는 '(보육원 아이들이)차별받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받아 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ㆍ신앙인의 삶을 스스로 실천
 소양보육원이 배출한 목회자 수만 10여명에 이른다. 그만큼 지득용 장로의 신앙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홍식 장로는 “어릴때부터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체 부흥회도 많았고, 제가 청소년 시절에는 기도바람이 불어, 보육원 주변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형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고 말했다. 예배와 기도는 보육원의 일상생활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지득용 장로는 평소 자비로운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우했지만,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엄격했다. 지홍식 장로는 “아버지께서는 거짓말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인들은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철학이 있으셨던 분입니다”고 말했다. 보육원의 가훈 또한 ‘훌륭하기 전에 진실하자’이다. 신앙인이라면 진실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중심을 갖고 있었다.
 6.25 전쟁이후 보육원을 이끌어 온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지득용 장로도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그 과정을 극복해 왔다. 지홍식 장로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계셨습니다. 항상 힘든 일이 찾아오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예수님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조금 부족해도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그런 그의 모습들이 아이들의 신앙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왔음을 알 수 있다.
지득용 장로 묘.jpg▲소양보육원 내 고 지득용 장로의 묘. 전날 하관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한창 정리 중에 있었다.
 
 
ㆍ한 알의 밀알로...
 어느 날 지홍식 장로가 지득용 장로에게 자서전을 쓰시라고 권유한 적 있다고 한다. 그때 지득용 장로는 “아니라고 해도 내 자랑이 들어간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 있다. 그리고 나 스스로는 말씀대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생각해도, 아이 중에는 나에게 상처 받은 아이도 있다고 본다. 그걸(자서전) 본다면 더 상처받지 않겠느냐”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돈과 명예보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지득용 장로의 호는 ‘일맥’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요한복음 12장 24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속에서 자신의 호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 그는 한 알의 밀알이 됐다. 그의 삶과 신앙이 소양보육원을 거쳐간 900여명의 원생들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확신한다.
 
소양보육원 도서관.jpg▲ 소양보육원 내 아이들의 도서관. 소양보육원은 전국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2010년부터 보건복지부 아동시설 평가 A 등급을 받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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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들의 아버지’ 故 지득용 장로의 신앙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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