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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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5일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전주의 한 거리에서 간암에 걸린 엄마를 대신해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오빠를 곁에서 보살피면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중학교 여학생 이야기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시민들의 온정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SNS에 올린 글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확인 결과 붕어빵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연은 좀 달랐습니다. 간염이나 우울증 증세 등으로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부모를 둔 네 가정의 아이들을 교회가 돌보면서 자활할 수 있도록 붕어빵 포장마차를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아동 학대’를 이유로 당국에 민원을 내는 사람들이 생겼고 결국 단속요원들이 철거 계고장까지 발부했다가 또 다른 시민들의 항의로 일단 철거는 보류되었다고 합니다.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이자 세계적인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그의 책 『다른 자본주의(Confronting Capitalism)』(더난, 2015)에서 자본주의가 직면한 14가지 문제를 적시했습니다. 첫 번째부터 순서대로 쓰면, ‘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소득불평등, 파괴의 씨앗’, ‘수렁에 빠진 노동자들’, ‘자동화에 일자리를 빼앗기다’, ‘이익은 기업이 비용은 사회가!’ 등입니다. 서두에 소개한 붕어빵 아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왜 이 아이들과 그 가정들은 그토록 가난해야 합니까?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답 하나는, 가난이 이 아이들의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 자체에 모순이나 결함이 있는 걸까요? 코틀러 교수는 바로 이러한 모색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는 가능하며’, ‘우리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를 꿈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인용하는 일종의 대안들이 바로 ‘온정적(Compassionate) 자본주의’, ‘포용적(Inclusive) 자본주의’, ‘인도적(Humane) 자본주의’, ‘건강한(Healthy) 자본주의’, 그리고 ‘깨어 있는(Conscious) 자본주의’ 들입니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이 주제에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2016)의 저자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그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2015)라는 책에서 오늘날 인류가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를 향하고 있다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헬라나 호지(Helena Norberg Hodge)의 말을 인용하면서, 울창한 삼림에 널려있는 나무 조각을 이용해 펠릿(pellet)이라는 연료를 개발하거나 친환경 스토브를 만들고, 나아가 CLT(cross laminated timber)라 불리는 고강도 목재를 개량해서 고층 빌딩을 건설하며, 농가의 버려진 집들이나 자가소비하고 남은 작물을 재활용하고 공유하는 일본 산촌(山村)의 현장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산(里山) 자본주의’라고 부르면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때와 같이 자본주의가 그 기능을 상실할 경우 보완해 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동화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가야 한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전주의 붕어빵 아이들을 돌봐준 것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식의 온정적 자본주의도 아니요,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 식의 ‘이산(里山) 자본주의’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기업 무를 자를 두며,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교회가 불쌍한 아이들을 품었습니다.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오히려 세상은 교회의 아동 학대를 말하고 교회의 착취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언제 어디서나 교회는 항상 세상의 피난처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을 감당하는 교회의 모습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교회가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상이 그만큼 썩어버렸기 때문일까요? 붕어빵 속에 진짜 붕어 없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진짜 그리스도가 없다고들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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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붕어빵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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