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김철봉목사.jpg
 ①욕망 ②의심 ③불평 ④교만 ⑤두려움
 
 감사의 반대가 불평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말이 그 무엇보다 많이 나타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겠다고 까지 말씀하신다(시50:23). 감사하면 내 자신이 행복하고 건강해진다. 그렇다면 감사의 반댓말은 <불평>이다.
 그러므로 불평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 불평하면 하나님과의 교제(소통)가 막힌다. 불평하면 마음속에 평강이 스며들 수 없다. 불평은 평강이 찾아드는 것을 가로막는다. 오히려 작으나마 있던 평강까지 쫓아내버린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평을 하면 자신만 손해보고 불행하게 된다. 계속 불평하다보면 자신의 심성이 악해진다. 황폐해진다.
 알고 보면 불평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병이다. 암보다 무섭다. 감사하면 암이 점점 나을 수 있지만 불평하면 암이 발생할 수 있고, 계속 불평하면 암이 심하게 악화되어 회복불능 상태로 발전한다. 그러므로 불평이 암보다 더 무서운 우리 안에 숨어드는 적이다.
성경에서 불평의 절정 사례(事例)는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고라>라는 인물이다. 고라는 무엇을 불평하는가? 모세의 지도자 직분을 불평한다. 모세는 자기가 원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한사코 사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한사코(?) 모세를 밀어 붙이셨다. 이 과정을 온 이스라엘이 다 알고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모세의 지도자 직무에 대하여 이의(異議)를 달거나 도전하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모세를 큰 권위와 능력과 영적권위로써 감싸 보이셨다. 그러므로 고라는 모세를 불평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고라는 모세의 지도력에 계속 이의를 제기하고 불평을 쏟아 내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죄성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불평은 무서운 적(敵)이다. 불평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불평한 결과로서 상황이 바뀌어진다면 그 바뀌어진 상황은 결코 축복이나 행복이 되어지지 않는다.
 성경에서 불평의 사촌은 <원망>이다. 고라의 불평 때문에 순식간에 250명이 죽었다(민16:35). 그리고 이 후유증이 <원망>으로 발전돼 무려 14,700명이 죽는다(민16:49). 불평은 참 나쁜 병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평/교만/우상숭배> 이 세 가지를 가장 싫어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불평의 열매는 4가지이다.
 첫째, 불평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는데 불평은 맹렬한 불길과 같이 순식간에 여러 사람에게로 퍼져나간다. 고라 한 사람의 불평이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를 사정없이 흔들어버렸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공동체는 <집단불평 유행병>에 빠져들고 말았다.
 둘째, 불평하면 그 속마음은 불안해진다. 그리고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걸린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며 신뢰하는 자>에게 단잠을 주신다. 그러나 불평하면 자기 스스로 불안의 감방에 갇혀버리고 만다(시편127:2, 렘31:26, 삼상16:14).
 셋째, 불평하면 자기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간다. 그리고 사람이 오지 않는다. <소문만복래 - 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자족하면서 감사함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에는 대문으로 만복이 들어온다. 그러나 불평하면 있던 복도 떠나고 곁에 있던 사람도 떠나간다.
 넷째, 불평하면 무엇보다 <성령님의 임재>가 사라진다. 사람이 내 곁에서 떠나가는 것도 손실이고 비극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령님이 떠나가 버리시면 살 수가 없다. 살 맛이 없다. 살 의욕이 없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主)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51:11)라고 눈물로 간구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불평할 자격이 없다. 불평할 권리도 없다. “주님, 나는 오직 <감사할 의무>만 있는 사람이로소이다”라고 믿고 고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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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우리 안에 숨어있는 5가지 적(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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