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을 풍미했던 큰 인물임은 틀림없다. 故 김영삼 장로는 정치적 인물이지만, 장성만 목사는 때로는 정치인으로, 때로는 교육자로, 때로는 문필가로, 때로는 목회자로 이름을 날린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입지적 인물이고 큰 바위 얼굴 같은 다정다감한 친구같은 친근한 이미지의 인물이었다.
장 목사와의 인연
2010년 4월 어느 날, 동서대 안의 민석(民石, 장 목사의 아호)도서관 개관 커팅을 하는 날이었다. 행사가 있기 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서관 개관식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취재하러 오라고 하는 줄 알아서 그 때 갔더니만, 민석도서관 개관 커팅하기 전 교목이 기도한 후 장 목사님이 필자와 강판녕 장로를 즉석에서 앞으로 불러, 나갔더니 하는 말씀이 “여기 신 사장은 처음으로 부산실업전문학교로 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1974년 교회연합신보 기자가 찾아와 취재하며 학교를 소개해 준 기억이 있다”고. 그래서 뜻 깊은 날에 불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판녕 장로는 이 허언 벌판 산중턱 언덕 아래로 도로를 내고 길을 넓히는데 북구청장 재직시 구청 예산으로 이 길을 넓혀 주는 큰 도움을 받아 이렇게 초청 했다고 설명했다. 이 두 분에게 기념선물과 커팅을 함께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은 적 있다. 전혀 생각도 못한 이벤트에 초청 된 상황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장성만 목사와의 첫 만남은 그보다 5년 전이었다. 필자가 처음 장성만 목사를 만난 것은 1969년 8월 여름 지인의 소개로 장 목사를 찾아가 서울 대한일보 기자 채용시에 추천장을 받은 것이 처음의 인연이었다.
물론 대한일보 발행인이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 장로로 그가 발행한 신문이 일간지 대한일보와 주간지 교회연합신보였다. 한달간의 수습기자로 있을 때 소위 수방사령관 윤필용 사건이 터졌다. 그때 김연준 장로도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고 대한일보가 폐간되었다. 직원들도 뿔뿔이 헤어지는 마당에 나는 주간지 교계신문 교회연합신보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인연으로 오늘날까지 교계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첫 만남이 글을 쓰는데서 출발된 장성만 목사, 그가 민주신보(국제신문의 전신) 시절 문화면에 글도 썼던 계기로 수필가로 알려졌다. 그리고 부산기독문화 월간지 단행본을 발행한 적도 있었다.
장성만 목사의 칼럼은 독자에게 어필
본보 발행 20년 동안 한국기독신문에 칼럼을 써왔다. <장성만 목사 칼럼>은 A4 1장 내용의 글이 지면을 장식하여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워낙 유명한 집필과 명성이 있는 관계로 그의 글은 독자와 한국교회에 심금을 울려주기엔 충분한 감동적인 메시지였다. 이런 글들이 모아져 ‘피리는 불어도’라는 소책자가 출간되기도 했다.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을 잊을 수 없어
장 목사가 소천하기 7일전 11월 29일 주일 오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신이건 장로 폰입니까? 여긴 장성만 목사님 집인데, 장 목사님 바꿔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장 목사를 바꾸어 준 전화에 “신 장로, 이번 21세기포럼 기독문화대상을 받게 되어 축하합니다. 진작부터 주고 싶었는데 늦게 주게 되어 한편 미안하고 내가 몸이 아파 시상식에 못 갈 것 같아 미안합니다. 꼭 나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전화로 인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필자와 마지막 통화였다. 전화를 바꿔 준 분이 장 목사의 사모 박동순 이사장이었다. 이 육성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생과 사, 이생과 저생 이런 갈림길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
장 목사는 황무지와 같은 사과밭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땅을 일궜고 기적의 땅,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만든 신앙의 선구자인 어른이었다. 목회자로,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때론 문필가로 25권의 저서를 남긴 그의 주옥같은 명언과 메시지가 우리의 가슴에 찾아들곤 했다.
장 목사가 간 하늘나라는 천국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가득하고 예수님의 보좌 곁에 계실 장 목사의 빛나는 영광의 환희가 선하게 비쳐지길 원하고 있는 것은 나만의 기대와 환상은 아닐 것이다.
평안히 잠드십시오. 평소 가난한 자의 편에서 아껴 주시고, 도움을 주신 장 목사님, 편하게 아프지도 않고 찬양소리에 영광 돌릴 천국의 자리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 한국기독신문 & kcnp.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