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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7] 교회는 모두 비슷한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에 서로 위로하고 곁길로 빠지지 않게 도와줘야
    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닮았다 120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다. 책 크기도 작다. 그런데 알차다. 내용도 옹골지고 필력도 뛰어나다.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교회 이야기를 하며 교회와 교인들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어렸을 때는 “교회는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세상에서 나를 싣고 가는 구명보트”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우리는 은혜를 말하면서 율법으로 살았고, 사랑을 말하면서 미움을 흘렸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전에 나는 비판적인 소비자 정신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공연으로 보았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관객”이시므로, “예배를 마치고 떠날 때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순례 여정에서 나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이어서 ‘라살 스트리트 교회’에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겸손과 절대 정직, 절대 의존의 필요성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다지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줄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같고, 통일성과 다양성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며, 사역자가 현장에서 사역하는 중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모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유지해야 함도 강조한다.◈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 필립 얀시는 영미권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다. 저서로 《그들이 나를 살렸네》 등이 있다. 원제 Church: Why bother?(1998). IVP, 2010. 8,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저자 필립 얀시는 ‘나의 교회 방랑기’로 글을 시작한다. 순례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자기와 교회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냈다. 첫째는 위선이었다고 고백한다. ‘교인이 다 나 같다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 읽고서 ‘참 아름다운 책’이라는 느낌 김길구 : 이 책을 열면 첫머리에 의미심장한 저자의 인사말이 나옵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와 역동성을 자랑하는 한국교회에도 … 교회에 대한 회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굳이 교회라는 조직에 소속될 필요가 있을까?’ ‘종교 없이도 영적인 삶은 살 수 있는 거 아닌가?’…”김현호 :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1월에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해에 읽었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실망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저자의 솔직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교회를 다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김수성 : 저는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 책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자의 필력도 대단하지만, 그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좀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김길구 : “기독교는 삶이 수반되는 종교이며, 그 삶은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공동체의 삶이 먼저 이루어지면 갈등 해결이나 평화가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스캇 펫의 말도 같은 의미이죠.김수성 : 저자가 언급했듯이, 전에는 비판적인 소비자 의식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하나의 공연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불편하고 부족한 점만 눈에 띌 수밖에 없었죠.김현호 : 사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통제된 환경과 경직된 문화, 정죄만 가득한 것으로 비쳐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는 숨이 콱 막힐 정도죠. 어디서도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결국 ‘가나안 신자’로 교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관객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할 예배를 드렸는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초대교회가 국적, 인종, 계급, 나이, 성별을 초월해서 모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교회 공동체는 가족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 감당해야김현호 : 저자가 소개한 러셀 스트리트 교회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물론이고 노숙자들,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사람들과도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 성찬식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를 향해 럭비공을 던진 남자도 안고 가는 그런 교회입니다.김길구 : 헨리 나우헨이 공동체를 가리켜 ‘가장 함께 살기 싫은 사람들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이라고 정의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공동체 정신으로 서로를 섬기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교회는 거름과 같다는 비유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거름은 쌓아두면 온 동네에 악취를 풍기지만, 골고루 잘 뿌려주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원봉사라고 강조합니다.김수성 : 그 부분에서 문득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첫날 둘째 이야기가 생각납디다. 한 유대인이 로마 교황청에 가서 그들의 부정부패를 보고서 오히려 기독교로 개종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부패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더 불어나고, 성령이 더 찬연히 빛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유진 피터슨의 말처럼 교회에는 신비로움과 함께 어수선함도 대등하게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어수선함이 더 교회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다 같은 죄인들이 모였기에 서로서로 위로하고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김현호 : 교회 공동체의 참모습은 교우들이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상처입고 무리로부터 배척당하는 영혼들을 감싸 안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도 그러한 상처를 가지고 왔지만 서로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가운데 스스로도 치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을 가나안 신자들이나 교회와 자꾸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선교훈련 못지않게 공동체훈련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사실 교회 구성원 상당수가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 그리고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어른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부딪치며 살다보니 어른이 된 것이지요. 당연히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합니다. 자칫 상처를 받으면 교회를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가나안 신자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역자들에게 충전할 기회 제공해야김길구 :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치명상을 입지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이야기도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남의 아픔에 헌신하다가 오히려 자기가 축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현호 : ‘구세주 콤플렉스’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사람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 사람의 고통을 다 떠맡으려는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 고통을 치유하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현상이지요. 김수성 : 존 던이 했던 말인데, 책 가운데 아주 명쾌한 말이 나옵디다.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는 내 십자가가 아니다.”김길구 : 사역자들도 가끔은 값비싼 외식이나 음악회 등 ‘호강’을 누려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계속되는 고생과 외적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을 얻는 기회를 마련해야만 다시 일선에서 일할 수 있다는 주장이지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러한 것을 잘못된 것으로만 치부하는 교인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이제 교회도 병원과 같이 영혼이 병들고 아픈 환자들이 득실대는 곳이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서로 위로하고 위안을 받으면서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봐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 결론 부분에, 교회가 실패하고 과오를 범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미달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감행하신 모험이라는 말이 강하게 와 닿더군요.김길구 오늘은 상당히 책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다른 분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게리 토마스의 《쾌락, 하나님이 주신 순전한 즐거움》(CUP, 2012)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교회 공동체는 하나의 기관이라기보다는 가족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서로를 감싸주고 안아주는 곳이어야 한다. [Church-Self-Portrait. 출처: annaflowers.org]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 / 엘리자베스 오코너 / IVP 《교회를 꿈꾼다》 / 김형국 / 포이에마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7-06-12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드럼도 치고, 만화로 복음을 전하는 강신영 목사
    노래하는순례자찬양단이 집회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악기를 나르던 키 작은 대머리 아저씨가 드럼에 가서 앉습니다. 신선한 충격입니까? 집회 중간에 율동시간에 나와서 율동을 인도합니다. 유아교육 전공자라서 잘 합니다. 충격이 크지요? 그런데 찬양단원이 이 분을 부를 때 ‘교수님’이라고 부릅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웹툰 작가랍니다.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캐릭터가 강신영 목사입니다. 목사님은 만화작가입니다. 처음에는 근육맨들이 나와서 치고받고 총 쏘고 부수는 만화를 그렸는데 나중에 자녀에게 보여주기도 꺼려지는 그림들이라 생각하니 더 이상 필요가 없어 그렸던 그림들을 다 모아 한 뼘 정도 되는 두께의 뭉치를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침 고교SFC알돌지에서 연재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저학년용 어린이매일성경에도 만화를 올렸었습니다. 갓피플닷컴에는 2000년부터 바이블카툰 코너를 연재중입니다. 작년부터 업데이트가 조금 뜸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에 대한 책임감만 커지고 마음만 분주하여 잘 못 올리고 있지만 독자들께 죄송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으니 조만간 그림으로 보답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목사님은 드러머이기도 합니다. 노래하는 순례자 음악선교단 활동은 이동석 집사의 권유로 십여 년 했습니다. 열정과 기쁨으로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집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하나 결신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기에 기뻐서 축하를 해주려고 보니 축하할 곡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6:3-4, 14의 말씀으로 세례축가를 썼습니다. 노래하는 순례자 음악선교단 2집 음반 ‘주님의 자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목회를 하느라 찬양집회를 하러 같이 다니지는 못합니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서 기장에 있는 내리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미혹 많은 시대에 성경 잘 가르치고, 교리 바르게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했기에 대학에서 강의도 한동안 했었고, 유아 멀티미디어 교육, 교수매체, 교수방법에 관심이 많아 지금도 교육관련 강의나 상담은 가끔씩 하고 있습니다. 교육 관련 삽화도 종종 그렸고, 지금은 고신대학교 유아교육과에서 발행하는 아이사랑 지에 칼럼과 삽화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여러 모양으로 쓰임 받아서 앞으로도 좋은 열매 많이 맺기를 바랍니다. <강신영 목사 작품>
    • 문화
    2017-06-12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7 - 노인
    일찍이 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는 역사를 세 종류로 정리한 바 있다. 과거에 매달리는 ‘골동품적인 역사’, 미래의 비전을 정치적으로 고취시키는 ‘기념비적인 역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명을 사랑(Amor Fati)’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삶을 끌어안으려는 ‘비판적인 역사’이다. 여기서 니체는 골동품적 역사를 비판하는데, 그것은 과거의 회상에만 매달려 지금 살아 있는 삶, 뛰는 심장과 흐르는 피, 대지와 자연에 맞서는, 거친 살결 속에 있는 주름의 의미를 가진, 현재 우리 인간의 주체적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 디멘티아(치매), 마음이 없는 상태 모든 사람은 늙는다. 이처럼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거쳐야 하는 자연스러운 퇴화 과정인 노망(老妄)은 노망(老忘)이다. 곧 늙어가면서 ‘잊는 것’이다. 사실 노인성 치매(dementia)의 라틴어 어원은 ‘마음이 없는 상태, de(without)+mens(mind)이다. 나이들어 늙으면 아기가 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기억의 망각과 신체 기능의 퇴화를 필연적 현상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치매는 질병의 하나로 생각되었다. 곧, 노망은 ‘과정과 현상’에 대한 표현이나, 치매는 ‘비정상과 치료’의 대상으로,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변했다. 한국 사회가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족 해체의 시대에 노망든 노인을 더 이상 가족이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기에 이제 ‘자연스러운 노망의 단계(기억의 망각 현상과 퇴화 현상)’를 ‘치료의 과정인 치매(공포를 동반하는 질병 현상)’로 호명하여,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은 그 말년이 상품화, 물화 되어버렸다. 노망과 망령든 노인은, 가족에게 귀찮고 돌보기 힘든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병리적 존재인 환자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 잊는 것을 잊어버린 이들이 있다. 2.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 19대 대선의 투표 결과로도 알 수 있지만 대한민국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곧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확연하게 나뉘어져 있다. 이것은 정치적 분립을 넘어서는 문화적, 철학적, 나아가 신학적(신앙적) 대립을 내포한다. 삶에 임하는 자세,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견해, 그리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인식, 신과 종교의 의미 등 모든 면에서 두 진영은 서로 다르다.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14, 55년의 기록』 (돌베개, 2014)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으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데, 사실 이 두 진영은 지금 역사 전쟁을 벌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바로 그 최전선이다. 5·16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화 세력은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상층부를 장악한 채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다. 거대 재벌, 대기업 경영자와 임원들, 저마다 종편방송을 거느린 거대신문 사주와 고위 간부들, 법원과 검찰, 군대와 경찰 등 합법적 국가폭력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권력기관의 고위인사들, 그 신문과 방송에 출연하면서 부와 명성을 얻는 지식인들, 그리고 그 모두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새누리당이다(지금은 자유한국당). 그들은 자신들을 ‘근대화세력’, ‘산업화세력’, ‘보수세력’, ‘애국세력’으로 자처하지만 정치적 반대 진영에서는 ‘유신잔당’, ‘5공 잔재세력’, ‘특권세력’, ‘냉전세력’, 또는 ‘수구꼴통’이라고 부른다. 종교적으로는 강남기독교, 영남불교, 혹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행사해왔다. 반면, 4·19와 5·18, 6월 항쟁을 잇는 이들을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민주화세력’, ‘양심세력’, ‘진보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빨갱이’, ‘좌경용공’, ‘종북좌파’라고 불려지는 이 세력은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낮은 곳에 흩어져 있다. 인권과 사회정의, 한반도 평화와 환경보호를 실현하려고 애쓰는 수많은 시민단체들, 노동조합, 협동조합, 언론운동단체를 포함하는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다. 그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소통하며 가끔 오프라인에서도 대규모로 결집해 대형 이벤트를 만들어낸다. 그들 중에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없다. 지속적으로 연대하거나 물질적 이익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기네들끼리 심하게 다툰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화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딱 10년 동안 정치권력 하나만을 장악한 적이 있다.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이다. 그러나 경제권력과 언론권력 등 사회의 다른 모든 권력은 언제나 산업화 세력의 수중에 있었다. 아무튼 한국 현대사는 이 두 세력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이다. 때로는 피가 강물처럼 흘렀던 싸움이 있었고, 이번 대선으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직 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종결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둘 모두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 적대적인 두 세력과 그들이 대표하는 두 시대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유시민 작가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는 모두 우리의 과거다.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둘 중 하나만을 긍정한다면 역사와 현실의 절반을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한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일 수는 없다. 색깔과 모양이 크게 다른 두 시대는 국민들의 내면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사실 우리의 현대사가 ‘영광과 승리의 역사’라는 보수의 주장과 ‘불의와 오욕의 역사’라는 진보의 주장은 둘 다 옳다. 하지만 절반만 옳을 뿐이다. 교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분열된 것 자체가 가슴 아프지만, 이것도 교회의 역사이고, 때로는 하나 되기 위해 힘썼는데, 이것도 교회의 역사이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흉하면서 아름다운 나라’, ‘부끄러움과 분노, 긍지와 설렘’처럼 상충하는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역사도 마찬가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둘 모두를 가진 존재이기에,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칭찬해야할 할 빛이 있고, 그 빛으로 인해 차츰 사라져갈 어둠이 있기에, 민족의 역사도 우리들의 인생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아벨과 가인을 모두 가진 모습,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 19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루터의 고백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모순된 존재에 대한 인식과 사랑, 그리고 모순된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불완전한 사회와 세상을 정말 고민하며 읽어내고 대화와 소통으로 펼쳐나가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받는 그런 세상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시지푸스가 다시 무의미한 바위를 굴려 올리기 위해 저 언덕 아래로 내려가며 신발끈을 조여 매듯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인내일 것이다. 3. 노인+애국자=태극기 부대? 마크 트웨인은 ‘애국자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 역시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18세기의 문필가인 사무엘 존슨은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하며 미국의 문필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에드워드 애비는 “애국자는 정부에 맞서 자신의 나라를 지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지난 몇 달 간, 국민이 정부로부터 나라를 걱정하며 지켜야했던 이 대한민국에서 애국심과 애국자라는 기표가 태극기를 타고,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유령의 실체는 노인들, 곧 어르신들이었다. ▲ 3월 1일 종로 도심을 메웠던 태극기집회 모습 태극기 부대의 어르신들, 그들에게 박정희 시대야말로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 공장 미싱 앞에서, 그리고 뜨거운 아랍의 사막에서, 독일의 탄광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다 보냈지만, 적어도 그때는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있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청춘을, 나아가 자신들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성서에서 가장 비열하고 권력욕에 찬 인물이 다윗일진대(물론 그의 아들 솔로몬도 아버지 다윗 못지않게 탐욕과 정치적 술수에 능한 인물이었지만), 그런데 왜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도 그리워하는가? 하다못해 메시야도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나와야 하는가? 이런 뜻은 아닐까? 적어도 다윗, 솔로몬 시대에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 좀 썼다”, “너희들 까불지 마라.” 이런 뜻? 따라서 태극기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인 팩트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신을 ‘산업역군’으로 불러준 지도자와 함께,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시대를 이끌었다는 자부심, 혹은 환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어르신들은 지금 세대의 새로운 생각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네가 뭘 아냐? 까불지 마라”라는 것이다. 10·26을 생각하면 우는 어르신들이 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슬퍼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 정말 고생 많았다.”라는 것이다. 자신과 박정희 대통령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에 가장 고생한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을 못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당연 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한 과거의 기억에만 매달리는 골동품적인 역사의 산증거가 바로 태극기 어른신들이다. 따라서 기억에만 매달리면 인간은 인간이기를 멈추는 것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그 유명한 선언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곧, ‘기억의 뿌리’, 혹은 ‘회상의 원인’이 되는 저 초월적인 모든 것(가령, 이데아적인 것)의 죽음이 바로 신은 죽었다는 명제로 표현되는 것이다.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신자들에게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은 ‘박정희는 죽었다. 박근혜는 탄핵되었다’라는 말과 의미에 있어서 같은 것은 아닐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신앙이, 일생이 모두 부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는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곧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미래에만 매달리는 몽유적인 인간을 ‘역사적 인간’이라 부르고, 이러한 역사적 인간들이야말로 이 대지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4. 탈진실과 탈사실의 시대, 아모르 파티! ‘노인은 꿈을 꾸고 젊은이는 비전을 볼 것(요엘 3:28)’이라는 구약성서의 예언은 경제적으로 넉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과 젊은이가 기댈 수 있는 나라, 인생의 경륜자로서 노인의 꿈이 존중받고 새 세상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비전이 펼쳐지는 세상을 뜻한다. 지금 세계는 끝없는 이기적 욕망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¹. 이러한 욕망을 뒷받침하기 위해 진실과 사실은 폄하되고, 거짓과 사이비가 그 욕망의 헛된 전망을 정당화시킨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독일언어학회도 ‘탈사실(postfaktisch)’을 2016년의 독일어로 뽑았다. 바야흐로 세계는 탈진실의 사회와 동시에 ‘거짓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의 ‘윤리 상대주의(Ethical Relativism)’와 ‘다원주의(Pluralism)’가 여기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토대였던 진리를 해체하였고 개인의 개체화와 익명화는 거짓에 대한 민감성을 둔화시켰으며 인터넷 기술이 열어놓은 매체환경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대안 사실을 믿는 분할된 ‘마이크로 공론장’을 만들어냈다. 중요한 것은 거짓을 사실로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을 하나의 의견으로 강등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실의 신뢰성을 잠식하고 공론장을 왜곡하는 것은 결국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자신들만의 마이크로 공론장을 형성한 태극기 부대의 어르신들, 따라서 만일 어르신들이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망각한다는 것은 이미 없는 과거와 아직 없는 미래를 뜻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삶이다. 예수께서도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6).”로 말씀하셨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도 “까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노인들이여, 마음은 없어도 사랑은 넘쳐나기를! (각주) 1 : 프랑스에서는 인종주의와 우파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국민전선(the National Front)이, 독일은 유로존 해체와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며 유럽 통합의 진행을 반대하는 대안독일당(the Alternatives of Germany)의 위세가, 이탈리아에서는 유럽회의주의 성향을 보여 온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이, 스페인에서는 반긴축 정책을 선도하며 온라인 직접 민주주의를 주창해온 포데모스(Podemos)가, 네덜란드에서는 우익 대중주의, 반지구화, 반이슬람주의를 기치로 내건 자유당이, 노르웨이에서는 이민자 축소와 이슬람교 반대 등을 공약한 진보당이 힘을 얻고 있으며, 핀란드에서는 국수주의(nationalism)와 유럽회의주의를 주창하는 핀란드당이 세를 확장하고, 덴마크에서는 반이민 정책과 노인복지 확충을 내건 덴마크국민당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욕망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7-05-29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김태군 목사
    지난5월18일부터 21일까지 밀양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밀양아리랑>이라는 큰 축제가 열렸습니다. 특히 이 행사의 메인 이벤트인 “밀양 오딧세이”라는 지역주민 3,000명이 출연하는 퍼포먼스가 있는데 이 무대에서 합창을 연출하고 지휘하는 분이 이번에 소개하는 김태군 목사님입니다. 이처럼 지역의 여러 문화적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김태군 목사님은 밀양 깊숙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조그만 <별빛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시골교회라서 성도수도 적고 초등학생들과 노인 몇몇이 전부인 작은 교회이지만 이 교회에서는 많은 음악회와 찬양집회, 문화행사들이 열려 주일외 평일에는 늘 북적북적한 교회입니다. 목사님 본인도 노래를 엄청 잘하여서, 평소에 혼자 예배당에서 찬양하며 묵상하기를 즐기기도 하며, 얼마전 전국노래자랑 밀양편에 나가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실력자입니다. 목회자이지만 이 대회에 나간 이유는 이 대회를 통해 별빛교회를 알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출전을 결심하게 되었고, 대상을 받은 기념으로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교회마당에서 잔치를 열어 지역주민들을 더욱 교회로 쉽게 발걸음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의 유명 연주자들을 초청하여 별빛교회에서 음악회를 개최하였는데, 많은 주민들이 오셔서 “이 시골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좋은 시간이었다”며 무척 즐거워하였습니다. 이처럼 지역주민들에게 친근함을 무기로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김태군 목사님은, 밀양지역에 인지도를 넓히며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적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건전한 기독교 문화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문화사역자이며, 간혹 다른 사역자들과 함께 찬양집회에 가서 찬양인도와 특송 등으로 섬기기도 하며, 개인적으로도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귀한 찬양사역자입니다. 지금은 시골의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그 활동과 사역이 더욱 많은 곳에 쓰여지기를 기대합니다. <부산,경남 기독문화 일정> 1.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 5월28일(주일) 오전11시 : (김해) 전원교회 새신자초청축제 5월28일(주일) 오후2시 : (부산) 섬기는 교회 6월4일(주일) 오전10시 : (부산) 온병원 환우예배 2. 모인 김인희 (찬양사역자) 5월26일(금) 오후9시 : (대구) 시티교회 아트홀 개관기념 기획 공연 3. 디아코노스 (연극팀) 5월28일(주일) 오후2시 : (부산) 문현제일교회 6월4일(주일) 오전11시20분 : (경주) 안강열린교회 4. 우미나 (찬양사역자) 5월26일(금) 오후7시 : YIM 가야교회당 6월13일(화) 오후7시 : 대동교회, 기독문화연대 세미나 오프닝 공연 5. 기독문화연대 주최 기독문화강연 6월12일(월)~13일(화) 저녁7시~9시30분 대동교회(대연동 농협 뒤편) 강사 : 김종회 교수, 강진구 교수 특별찬양 : 김후란, 우미나
    • 문화
    2017-05-29
  • [기독교 교양 읽기 26]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대해서는 복종의무 사라져
    복종을 넘어 저항으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이렇게 시작되는 로마서 13장 1절에서 7절까지의 성경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설서이다.얼마 전 박근혜 정권 퇴진과 관련하여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이 와중에 일단의 목사와 기독교인들은 이 성경구절을 내세우며 ‘불법적인’ 정치권력이라 할지라도, 이 권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이에 대해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편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그러므로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의 이 이야기는 특별한 상황에서 언급된 것이므로, 이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또한 그 권세는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이 전제를 만족하지 못할 경우, 그 권세는 불의한 권력이 되고, 그럴 경우 그 권력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므로 복종의 의무는 당연히 사라진다.요한계시록 등에 따르면 그런 권력에 대해서는 불복종으로 넘어 오히려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의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권에 친화적인 목회자들의 정교유착이라고 본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도 역시 저항해야 함을 가르친다.◈ 《로마서 13장 다시 읽기》 || 저자 권연경은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육과 교수이다. 저서로 《행위 없는 구원?: 새롭게 읽는 바울의 복음》 《로마서 산책》 등이 있다. 뉴스앤조이, 2017. 9,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지난 5월 9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어 다음날부터 바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그동안 탄핵정국을 둘러싸고 광화문광장과 대한문 앞에서 벌어졌던 ‘촛불’과 ‘태극기’의 공방도 일단락되었다. 이 시점에서 일부 교계 지도자들의 극단적인 행태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로마서 13장 다시읽기》를 통하여 올바른 기독교와 권력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태극기 집회에 등장한 십자가 ‘충격’김길구 이 책 앞부분에도 나와 있지만, 오늘날 로마서 13장 1절에서 7절까지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바울의 이야기는 한국 교회에 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성경구절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계속된 탄핵정국과 관련해서도 교계에 등장하였습니다. 즉, 정권에 복종하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요.김현호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도 그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반복된 일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에 기독교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 이 구절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정부에 순응하기를 권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번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서도 나타난 것입니다.김수성 나는 태극기 집회에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동원하고, 대형 십자가를 지고 앞장서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나 입을 가운까지 입고, 교인들 중에도 역시 성가대 가운을 입고 뒤따라 행진하였습니다.김현호 일부 목회자들이 그들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교인들을 잘못 인도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목회자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순종’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들이 앞장서 ‘십자가를 진다(?)’는 데 따르지 않으면 불순종이 됩니다.김길구 일부 교회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전체적인 맥락은 생각하지 않고 문자주의에 따라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권세도 몇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권세를 어떤 권세로 보느냐에 따라 그 입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김수성 한 종교학자는 이런 것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아직 유교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뽑지만, 대통령은 왕으로, 정부는 절대권력이라는 인식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길용,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 참조] ‘공평과 정의가 권력의 근거’ 깨달아야김길구 권력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무엘을 통해 왕을 세운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한 권력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세운 권력도 불의를 행할 때는 그 권력을 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말년의 사울왕의 권력을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스스로가 세운 권력입니다. 로마서 13장에서 이야기하는 권력은 바로 첫 번째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결국 권력이란,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공평과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집요한 관심을 깨닫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통치 권력을 세우지만, 그 권력이 공평과 정의를 저버리면 그 권력은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즉, 권력이란 하나님께서 의를 세우기 위해 대리자에게 위임한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다면 대리자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그 권력에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즉, 복종의무가 사라지는 것이죠.김길구 저자는 로마서 13장이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서 나온 내용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즉, 권력이 올바로 섰을 때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법정에 서겠다고 한 것도 로마의 권세가 정당하게 행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네로의 치세였지만, 폭군 네로도 처음에는 정치를 잘해서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부분을 해석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습니다.김현호 만약 부패한 권력이라면 단순히 복종할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의 행동이 창조 세계를 회복하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일치하느냐 아니냐’라는 척도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독재정권이나 부패정권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바로잡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요.김수성 절대권력 시대에 살았던 맹자조차도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비록 지금의 민중혁명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왕이 패악을 일삼으며 백성을 돌보지 않고 억압할 경우 그 왕조를 패하고 올바른 다른 왕조가 들어서야 함의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평화와 질서 아래서 훌륭한 시민 돼야김길구 본회퍼의 히틀러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미친 사람이 대로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목사로서의 나는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자동차에 뛰어올라 그 미친 사람의 손에서 핸들을 빼앗아버려야 하지 않겠는가?”김현호 미가서 3장 9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을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악한 통치에 복종하고 그 악에 협조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김수성 로마서 13장을 해석할 때 더 중요한 것은 시대가 바뀌었음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왕정이나 제국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적합한 성경읽기가 필요할 것입니다.김길구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권력자는 국민에게서 그 권력을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합니다. 그러므로 그 권력은 반드시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들의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김현호 유진 피터슨이 쓴 《메시지 신약》에는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훌륭한 시민이 되십시오. 모든 정부는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평화와 질서가 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성 있는 시민으로 사십시오.” 국민으로서의 책임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의 질서가 우선입니다.김길구 저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기독교인들의 인터뷰에서, 역사적 맥락이나 깊은 신학적 통찰 없이 거리로 나선 이들 어르신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회와 권력의 균형 잡힌 시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다음에는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 2010)을 읽고, 교회 출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조그마한 책이지만, 필력이 뛰어난 저자의 글이 독자에게 많은 감동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로마서 13장은 문자 그대로 읽을 경우 현실과는 동떨어진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서 해석해야 한다. [사진은 태극기 집회에 등장한 십자가 행진]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더불어 사는 다문화 함께하는 한국교회》 / 조성돈 외 / 예영 《마지널리티: 다문화 시대의 신학》 / 이정용 신재식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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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17-05-15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동서대학교 찬양팀 – VIC : Voice in Christ
    VIC은 동서대학교 채플을 섬기는 찬양팀입니다. 기독교재단인 동서대학교는 매주 전체학생들이 채플에 참여합니다. 이 시간에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도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1999년에 기타 두 개를 메고 찬양으로 섬기게 된 것을 시작으로 찬양팀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19년째를 맞이하게 되면서 악기도 많이 갖추게 되었고, 찬양멤버도 30명 정도로 늘어나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섬기게 됐고 개강채플, 종강채플에서 주로 찬양으로 섬기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 추수감사절에는 인근 고등학교에서 찬양으로 섬기고, 여름방학에는 성우보육원에가서 찬양과 모든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며 젊음의 열정으로 봉사하는 찬양팀입니다. 한편, 채플시간에 앉아있는 학생들 대부분이 비기독교인 학생들이고 학점 때문에 억지로 참여한 학생들이 많아, 찬양에 대한 반응이 너무 없어서 찬양팀으로는 어려운 분위기에서 찬양시간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그 중에 열심히 박수치고 찬양하는 한명의 학생으로 인해 열심히 찬양하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왜 요즘은 노래 안하냐”며 말을 건네줄 때 찬양팀으로서 큰 힘을 얻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마다 한 영혼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채플시간에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찬양팀으로 섬길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고, 친구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다른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모여 찬양연습을 하면서 하나님 안에 한 공동체가 되어서 나아가는 순간들이 은혜가 되기도 합니다. 학생들끼리 모인 팀이고 공식 동아리가 아니다 보니 재정적으로 자립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은 학생들이어서 실수도 하고 단원들 사이에 조그만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며 우여곡절이 많지만 이 찬양팀이 19년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기 때문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이 세대에 찬양으로 희망을 전하는 귀한 찬양팀으로 계속 사용되어지길 기도합니다. <부산, 경남 기독문화 일정> 1. 노래하는순례자 찬양팀 5월13일(토) 오전11시 : (전북고창) 열린동산교회 설립예배 찬양인도 5월14일(주일) 오후2시 : (부산) 기쁨의교회 5월16일(화) 오후6시20분 : (부산) 밀알화요모임 찬양인도 5월21일(주일) 오후2시 : 기장소명교회 2. 우미나 (찬양사역자) 5월14일(주일) 오전11시 : 이음교회 3. 디아코노스 (연극팀) 5월13일(토) 오후7시 : 부산대청교회, <붕어빵 아줌마의 첫차랑>연극 5월13일(토) 오후2시15분 : 영도효성교회, <초록구슬>연극 5월14일(주일) 오전11시30분 : 사직동교회. 연극 5월21일(주일) 오후2시15분 : 열린하늘문교회. 연극 4. 민들레(인형극단) 5월14일(주일) : 브니엘교회 5월17일(수) : 예선아동지역아동센터 5월21일 (주일) : 거성교회 5월24일(수) : 낙동종합사회복지관 5월25일(목) : 봉래초등학교
    • 문화
    2017-05-15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6 - 부활
    1. 그렇다면 나는 그런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 ▲ 화형당하는 아투에이 추장 500여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 하나. 지금의 도미니카공화국인 에스파뇰라 섬의 타이노(Taino) 부족의 아투에이(Hatuey) 추장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섬에 쳐들어오자 부족 사람들을 결집시켜 용맹스러운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잘 훈련된 스페인 군인들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의 부족은 전멸했고 아투에이는 수백 명의 남은 타이노 부족 사람들과 함께 쿠바로 피신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스페인 정복자들과 전쟁을 벌이게 되고 1512년 2월 2일 결국 그는 사로잡혀 화형을 당하게 된다. 이투에이 추장은 부족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내 손의 금은보화, 이것이 스페인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그들의 신입니다. 이것들을 위해 그들은 전쟁을 벌이고 우리를 죽입니다. 이것들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물리치고 바다에 처넣어야 합니다. 멀리서 온 이 야만족들은 자신들이 평화와 평등의 신을 믿는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땅을 강제로 빼앗습니다. 우리를 그들의 노예로 삼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영혼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신의 상급과 징벌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소유물을 강탈하고 훔쳐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내와 딸을 강간하고 죽입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월등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의 무기로써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강철로 만든 갑옷으로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아투에이 추장의 사형이 집행되기 바로 직전 스페인 가톨릭의 종군 신부는 이렇게 물었다.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천국으로 갈 것이냐?” 그러자 아투에이 추장이 물었다. “여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람들,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는 나의 가족을 겁탈하고 그리고 나의 온 재산을 빼앗고 가축들을 탈취해 간 이 군인들도 천국을 가는가?” 신부는 “당연히 이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 천국에 간다.” 그러자 아투에이가 즉시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이들이 없는 지옥이 바로 천국이다.”라고 하며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후 이 지역을 향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본격적인 정복전쟁은 1500~1650년 까지 150년에 걸쳐 완료됐다. 이 기간 동안 중남미 대륙의 토착민은 6,500만 명이었으며 정복전쟁 이후는 500만 명 이었다. 약 6,000만 명이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랑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2. 고난과 부활 ‘하나님의 이름을 정의’로 규정하는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오늘날 우리의 문명은 능력의 원칙과 향유의 원칙하에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고통과 죽음을 개인화시키고 공공의 사회로부터 추방시켜 버렸다.”라고 한다. 이 말을 이 땅 대한민국의 지난 9년에 적용시켜보면, 국가와 사회적 차원에서 자행되는 온갖 구조적 불의에 대한 종교적 발언과 비판은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 공적 차원에 반영되지 못한 채(지난 3년간 세월호에 대한 함구를 보라), 국가권력의 구조적 폭력은 합법성과 정당성으로 합리화 되었으며(세월호에 관한 언론과 정치의 행태를 보라), 이에 대한 저항과 항거는 불법적이고 위법적인 차별과 함께 반정부적이고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행동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따라서 지금 불의한 정치에 합법성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이들과 신앙을 개인화 하는 사제들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십자가에 달리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자본과 권력의 ‘능력의 원칙’과 ‘향유의 원칙’에서 배제된 이름 없는 하나님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은 모두 죽음, 혹은 죽임에 관계가 된다. 정신분석학의 명제에 의하면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한다. 한번은 생명체로서 죽고, 또 한 번은 상징적으로 죽는다. 한 사람의 죽음이 사회적 상징체계 안에서 적합한 자리에 안착하는 것을 상징적 죽음이라고 하는데, 따라서 충분한 애도와 장례의 절차를 통해 죽은 자에 대한 타당한 의미 부여를 한 이후에, 산 자들은 죽은 자를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적 생명체가 먼저 죽고 상징적인 죽음이 뒤따른다. 한 사람이 죽은 후 그 장례 절차를 통해 우리는 육신적인 죽음과 상징적인 죽음의 순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징적인 죽음이 먼저 있고 생명체가 나중에 죽는 죽음도 있다(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우리 사회에 ‘박정희 체제’가 해체되는 상징적인 죽음이 그러하다). 반면 생명체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으나, 상징적으로 죽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부활의 경우를 통해 지속성을 획득한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부활사상은 바벨론 포로기 말기에 이르러 생성이 되었다. 물론 페르시아나 바벨론, 그리스 등의 주변 종교들의 영혼불멸이나 윤회 같은 영향이 있었겠지만, 유대교는 부활을 ‘메시아적 기대’라는 틀로 ‘기억 투쟁’과 연결시킨다. 전 감신대 교수였던 이정배 교수에 의하면 ‘자신들의 역사를 빼앗겨 잊혀진 존재들을 새롭게 역사의 주체로 불러내는 것, 메시아를 통한 정치적 사건, 이것이 유대교의 부활 이해’이다. 힘들고 어려운, 또한 고통스러운 바벨론 포로기를 살면서 정치적 독립과 종교의 자유, 해방을 위해 힘껏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선한 보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부활 사상으로 확장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 속을 살면서 세상 밖을 꿈꿨기에 고난당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런 체제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거듭 이야기하는 것이 유대교의 부활의 의미이다. 3. 영혼 불멸과 몸의 부활 그러나 기독교, 혹은 개신교로 오게 되면 팔레스틴 유대교의 지평이 헬레니즘 철학의 지평과 만나 조금 더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이 된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교수는 인간 존재의 종극적 운명(혹은 사후의 운명)에 관해 ‘영혼 불멸’과 ‘몸의 부활’이라는 두 가지 상징이 있다고 말하며 “전자는 그리스적인 상징이고, 후자는 히브리적인 상징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 두 가지를 아울러 가졌다. 영혼 불멸의 상징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그때그때 단독적으로 불멸의 영으로 되지만, 몸의 부활의 상징에 의하면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부활한다.”라고 말한다(이하 서남동, 「우리의 부활과 4월 혁명」 참조). 인간 개인의 운명에 대한 개인적 상징과 인간존재의 사회적 운명에 관한 사회적 상징의 대조이다. 서남동 교수는 사후의 ‘불멸의 영혼’은 영원한, 말하자면 신국에 개인적으로 입장하게 되는데, ‘부활’의 경우에는 역사적인 미래에 도래할 메시아 왕국에 단체로 입장하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연결되는 부활이라고 한다. 유대교의 부활의 맥락에 공동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사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타계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의 미래에 지금 억눌린 자들이 상속 받고 그 주인공이 될 약속의 새 시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적 풍토에 들어가 순수이념(이데아)의 초월계와 비실재적인 그림자의 현실계라는 이층구조 속에 편입되었으며 로마 콘스탄틴의 왕권 종교가 되면서 기독교의 신국은 타계적인 피안이 되었다. 따라서 시간적 미래와 역사적 지평을 자신의 삶의 자리로 삼고 있는 히브리적 전통을 상실하고 말았다. 서남동 교수는 “역사적 기독교는 두 가지 상징(그리스적이고 히브리적인 상징)을 아울러 물려받았다. 개인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신앙, 곧 개인 영혼의 절대적 가치가 보장되는 상징과 이 사회가 낡아지면서 새 사회가 와야 한다는 사회 갱신에 대한 보장이 병립공존(竝立共存)되어서 상호 견제되는 것이 불가피하기도 하고 바람직하다. 신국 상징이 메시아 왕국 상징에 의해 삼켜진다면, 사회개혁을 위해서 개인 영혼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과 결말이 나올 것이고, 메시아 왕국 상징이 신국 상징에 의해서 삼켜져 버린다면, 지상 역사의 미래와는 상관이 없는 타계적 신앙이 되고 말 것이다. 양자택일이 얼마나 잘못된 길이라는 것, 그리고 기독교도 아니라는 것에 관해서는 다시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독교의 경우 메시아 왕국 상징이 신국 상징 속에 먹혀버렸다. 사실, 지배자와 가진 자들은 천년왕국,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원하지 않고 도리어 무서워한다. 그것은 자기네들의 소유와 지위에 대한 위협과 그 전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눌린 자, 가난한 자들에게는 메시아 왕국의 도래가 절실한 갈망이다. 따라서 강자와 부자들은 메시아 왕국을 이단시하고 불법화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기독교의 발자취가 아닌가? 한국 개신교의 행태를 보면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부활을 ‘메시아 왕국의 도래’요, 메시아 왕국의 도래는 곧 ‘민중의 역사적 주체성의 획득’이라고 말하는 서남동 교수는 “몸의 부활은 메시아 왕국에 결부된 역사적, 사회적 신앙의 상징이다. 몸의 부활은 천국으로 왕생한다는 약속이 아니라 이 세계의 불의와 억압에 항거하여 역사의 새 시대에 다시 부활 하생한다는 민중의 의지이며 그 갈망이다. 영혼 불멸과 신국이 지배자의 유혹으로 쓰여지는데 대해서, 도래할 메시아 왕국에서의 몸의 부활은 눌린 자의 갈망을 그대로 말하는 신앙이라는 말이다. 부활은 민중의 역사적, 사회적 갈망이다.”라고 말한다. 구약성서학자 폰 라트(G. von Rad)도 말한바, ‘출애굽 사건은 창조신앙에 선행’한다. 사실, 이스라엘의 하나님 표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시킨 역사적 해방 행위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처럼 존재 철학적 관점이 아니었다. 애굽에서 억울하게 종살이를 하던 보잘 것 없던 백성 합비루(habiru)들이 하나님의 해방 행위를 통해 그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역시 그들의 하나님이 된 것이다. 따라서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뿌리 경험’이며 억눌린 모든 집단을 위한 정의의 모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가 성경에 가장 먼저 나와 있기에 ‘신의 천지창조’를 신앙에 강요하지 말고, 그 다음 나오는 출애굽기의 ‘출애굽 정신’을 따를 것인지를 묻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난과 부활의 참의미는 창조신앙에서 출애굽 정신으로 변화될 때 가능할 것이다. 4. 부활절의 참의미 도대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의 참의미는 무엇인가?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는 한국의 종교가 죽음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 유교는 ‘주검’에 관심이 있고, 불교는 ‘죽음’에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교는 ‘죽임’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사형틀이다. 안병문 박사가 보기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임사건은 철저히 집단적이다. 예수 한 개인이 아닌, 인류에게 일어난 집단적 사건이다. 그 집단적 죽임사건은 예수 개인이 죽었으나, 그것으로 묶어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긴긴 인류역사 속에서 계속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연속되었는데 예수의 죽임만이 이토록 우리들에게 지속적으로 환기되는 것은 죽임을 죽임으로 맞서지 않고 죽임을 증거 하는 것으로 맞선 성서의 민중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예수 당시 젤롯당처럼 죽임을 죽임으로 맞서는 방법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운동방식인 죽임을 증거 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증거 하는 일, 그것이 죽임의 세력을 어떻게 끝장낼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우리들의 두 눈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세월호의 죽임과 그 죽임을 증거한 기억저장소, 그리고 마침내 비폭력적인 집회와 민주적 절차에 따른 거대 권력의 탄핵! 따라서 세월호 3주기가 부활절과 같은 날(2017.4.16.)인 것은 너무나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마르크스의 말이기는 하지만, 오늘 이 땅에 역사는 수십번 비극으로 반복이 되었다. 결코 희극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다. 『한국말년사』 (덕흥서림, 1945)에서 저자 장도빈은 “1884년 갑신 이후로 1894년 갑오에 이르는 10년 사이는 그 악정이 날로 심하여 그야말로 큰 고기는 중간 고기를 먹고, 중간 고기는 작은 고기를 먹어 2000만 민중이 어육이 되고 말았다. 관부의 악정과 귀족의 학대에 울고 있는 민중이 이제는 참으로 그 생활을 보존할 수 없게 됐다. 삶이 위태한 민중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의 추세였다.”라고 한다. 지금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시 부활할 것이다. 2000년 전 갈릴리 예수의 정신과 눈물로, 동학의 정신으로, 그리고 4월과 5월, 6월의 함성(419, 518, 6월 항쟁)으로, 마침내 그것은 이제 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 촛불의 힘으로, 새 봄의 역사로, 소중한 한 표의 힘으로!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7-04-28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화가 최영이 권사
    수영로교회 최영이 권사는 초등학교시절 미술선생님이셨던 친구 아버지의 영향과 난초 그림을 잘 그렸던 언니의 영향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방문 앞 언니가 걸어둔 액자에 그려진 흰 수염에 인자하신 모습의 하나님, 그 주위에 발가벗은 아기천사들이 둘러싼 그림이 지금도 생각난다고 합니다. 그림을 시작할 때 동양화를 배우면 자연히 불교미술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양화를 포기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바로 서양화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국내·외를 다니며 전시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으로 전도지를 만들어 전도용으로 사용하기도하고, 미술선교를 하는 최영이 권사에게 주위에서 미술선교사로 불러줘 행복하다고 합니다. 기독교 관련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1977년 3월23일 구덕운동장에서 큰 집회가 있었고, 기도 가운데 갑자기 “너는 그림을 그리지 않니?”라며 그림으로 나를 전하라는 음성을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그림으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품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길 원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길 기대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믿는 자들에게는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최근 부전교회 새 성전에서 2017청년 연합말씀사경회 겸 종교개혁500주년기념전에 100호 2점을 비롯해 크고 작은 13작품을 전시했는데, 청년들이 사진을 찍으며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통일을 기원하는 작품도 있었고 다양한 성화 그림들이라 감상하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유물전시회에서도 8점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예수님의 온화하심과 아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으로 이스라엘유물전에 더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고 합니다. 최영이 권사는 교회마다 작품을 전시 할 수 있는 갤러리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하면서 “목사님들께서 강단에서 설교하실 때 ‘탕자의 비유’ 돌아 온 탕자를 그린 렘브란트 그림과 작가를 소개 등 그림을 활용하면서 성도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이라도 그림으로는 얼마든지 복음을 전 할 수 있기에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그림으로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많아지길 소원합니다. <부산,경남 기독문화 일정> 1.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 4월30일(주일) 오후2시30분 : 해맑은교회 2. 선한사마리아인의 밤 (경남중·고 기독동문회 주최) 4월27일(목) 19시 : 협성뷔페. 3. 성경서예작품초대전 : 초대작가 병암 여운부 장로 * 주최 : CBS 부산방송 이사회 * 전시기간 : 17년 4월25일 ~5월 3일 (관람시간 10:00~18:00) * 전시장소 : CBS부산방송 5층전시실 * 전시작품 100점 4. 비저너리 한주희 집사(가야금) 초청 연주회 4월30일(주일) 오전11시, 오후2시 : 믿음찬교회 5. 우미나 (찬양사역자) 4월27일(목) 오후7시 : 수영로교회 4월30일(주일) 오후1시30분 : (서울) 주님의교회 5월14일(주일) 오전11시 : 이음교회 6. 디아코노스 (연극팀) 4월29일(토) 오후3시 : 장전제일교회, <초록구슬>연극 5월11일(목) 오전10시20분 : 덕천초등학교, <초록구슬>연극 5월11일(목) 오후6시50분 : 경북대학교EF, <카페살인사건>연극 5월13일(토) 오후7시 : 부산대청교회, <붕어빵 아줌마의 첫차랑>연극 5월13일(토) 오후2시15분 : 영도효성교회, <초록구슬>연극 5월14일(주일) 오전11시30분 : 사직동교회. <Are you happy?>연극 7. 민들레(인형극단) 5월1일(월) 푸른교회 5월2일(화) 부산진교회 5월4일(목) 샘물어린이집 5월7일(주일) 시온영광교회 5월11일(목) 평화노인요양원 5월14일(주일) 브니엘교회
    • 문화
    2017-04-27
  • [기독교 교양 읽기 25] 한국교회, ‘이주민’에 더욱 관심 기울이길
    이주민과 ‘함께’! 20년 전 어느 날 성남의 한 양말공장에서 일하다가 부당한 처우와 상습적인 성추행 등을 피해 도망쳐온 이주노동자 8명이 저자가 담임하던 교회로 피신해 왔다. 여성이 7명이었다. 그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민중목회를 하던 부부 목사가 당시 던졌던 물음은 이러했다.“오늘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때 그들이 들은 대답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소리였다. 이들은 이 소리에 바로 응답하였다. 외국인 노동자센터를 설립하고는 이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특히 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전용쉼터를 한국 최초로 마련하였다.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여성들이 대폭 늘어남으로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도 설립하였다. 그리고서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구조적인 문제, 나아가 한국인의 인식 문제 등에 대해 하나씩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그동안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이주민들이 고통받은 구체적인 사례도 많이 제시해 놓았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저질렀던 악행이다. 우리 먼저 부끄러워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주민인권운동의 원칙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주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르게, 평등하게》 || 최정의팔, 한국염 목사는 둘 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면서 부부이다. 20여년 외국인노동자와 국제결혼 이주여성 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이주민 운동을 해왔다. 동연, 2016. 15,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저자인 한국염과 최정의팔 부부 목사의 말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컴퓨터로 ‘인권’을 치다가 받침 ‘ㄴ’을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이권’이 된다. ‘함께’를 놓치면 인권이 이권이 되기 쉽다. 인권운동을 하는 모든 이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도 이주민이었음을 기억해야김길구 최근 우리나라에 닥친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이주 외국인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들을 보는 우리의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히브리민족도 이주민 또는 떠돌이인 에일리언(alien)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끊임없이 이들에게 ‘나그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힘없는 자는 물론,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김현호 신약에도 ‘나그네 같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 길이요, 나그네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신자들은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시민으로서 국내에 들어와 함께 사는 이주 외국인들에 대한 의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할 시점이라 봅니다.김길구 그렇죠. 신약시대에 베드로가 전도하였던 대상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디아스포라, 즉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김수성 얼마 전 한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기피하고 싶은, ‘미개하고’ ‘무식하고’ ‘게으르’면서도 ‘돈을 밝히는’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빼앗는 집단’ ‘잠재적 테러리스트’ ‘아이를 낳으러 팔려온 불쌍한 사람’이란 편견에 시달려야 합니다.김현호 이러한 것은 결국 한국 사람들의 선민의식 때문 아닐까요? 단군의 자손이라는 신화,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왜곡된 선민의식 말입니다. 이러한 선민의식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성 또는 혐오증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더하여 피부 색깔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어떻게 보면 사대주의적 무의식도 잠재된 것 같습니다. 동화정책을 넘어 통합·조화로 나가야김길구 여기에 더하여 법이나 정부의 정책도 대체로 외국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이들의 취업에 관한 법을 보면 몇 차례 개정을 통해 2008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전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때문이죠.김현호 결혼 이주민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들 역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특히 소개소를 통해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중에 학교와 사회에서 편견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김수성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정책 중 가장 큰 문제는 ‘동화(同化)정책’ 일변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떤 형태로든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가 2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아직도 이주민에 대해 동화정책만을 고집한다면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이 책에서도 지적하다시피 ‘동화’가 아니라 ‘통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입니다. 이 역시 ‘불통’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저는 이주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통합에 더하여 ‘조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기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소통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오늘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이주민들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톺아보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사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는 이 책에 구체적으로 제시된 많은 사례를 보면 알 것입니다. 김현호 저는 교회의 선교사업에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나가 선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 이주민을 우리의 이웃으로 삼는 것 역시 중요한 선교사업입니다.김수성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입장에서 볼 때 이주민에 대한 선교는 선교정책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합체에서 현지 언어 예배 추진하길김길구 이주민에 대한 교회의 선교정책은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약자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보살핌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의 미래를 위한 선교정책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미래 한국의 성장 지렛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이를 위해서 지역별로 교회들이 협의하여 현지 언어별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A교회에서는 중국어 예배를, B교회에서는 베트남어 예배를, C교회에서는 필리핀어 예배를 하는 식이죠. 그러면 자연적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이들의 공동체가 형성될 것입니다. 부기총 등 교회연합체에서 이를 추진하면 좋겠습니다.김수성 우리도 마더 데레사의 말을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씩만….” 주위에 있는 이주민 한 사람씩만 사랑하다보면 모두가 이웃이 될 것입니다.김길구 신학교에서도 이와 관련한 강좌 개설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주자 선교나 이주자 복지와 관련한 학과 개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신학교가 나갈 방향 중의 하나로 설정한다면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우리 아이의 경험에서 착안한 것인데, 교회의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면 노인들만 사는 가정에 유학생 등을 위한 홈스테이 주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원하는 이를 선교사로 양성하여 본국으로 파송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북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방법이죠.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YMCA 등에서 제3세계 청년들을 초청하여 공부하도록 주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공부를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이상을 내다본 투자입니다.김길구 미래를 위한 교회의 선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우리 교회가 이슬람 공포에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들을 향한 선교의 손을 내밀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을 개종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이들을 우호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다음에는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 2010)을 읽고, 교회 출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여성가족부의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다문화가구수는 27만 8,036가구이고, 결혼이민자·귀화자는 30만 4,516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2년 조사 때에 비해 만 9~24세 자녀 수가 8만 2,476명으로 24%나 증가했다. [위의 표 자료는 통계청의 ‘2015년 다문화인구 동태 통계’에서 발췌한 것임.]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더불어 사는 다문화 함께하는 한국교회》 / 조성돈 외 / 예영 《마지널리티: 다문화 시대의 신학》 / 이정용 신재식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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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10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새노래 찬양단 - 부산대학교 SFC 찬양팀
    부산대학교 안에 기독교 동아리인 SFC가 있는데, 이 단체 안에서 생긴 찬양팀인 새노래찬양팀은 역사가 무려 30년이 된 전통 있는 찬양팀입니다. 1987년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창단된 이 팀은 초창기에 기타2대를 메고, 학교 정문에서 등하교길에 찬양을 하며 복음의 메아리를 대학 캠퍼스에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라 학교정문에서는 온갖 시위와 최루탄가스로 인해 등하교 때마다 몸살을 앓고 있던 형편이었는데, 찬양으로 이 지역을 정화해가며 복음을 전하던 이 운동은 많은 반향과 기독교문화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교내에서 1달에 한번 찬양집회를 가지기 시작하여, 많은 기독대학생들이 모여 같이 찬양하며 기도하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가는 학원복음화의 핵심적인 역활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2년에 대운동장에서 열린 찬양큰모임은 당시 세상적인 축제문화에 맞서 기독교적인 축제문화를 당당히 캠퍼스에 선포한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찬양모임은 더욱 확대되어 다른 대학에서도 찬양팀을 조직하여 부산지역 캠퍼스의 복음화를 이루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지현 학생을 비롯한 6명의 단원이 이 팀을 이끌어가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마다 SFC의 큰모임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이라 음향 장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상태에서 섬기다보니 처음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부분도 있고, 선배들이 졸업하면 후배들이 또 이어받아 가야하는 대학교팀의 특성상 새로운 멤버를 구성하고 교육시키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찬양의 가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알아가고,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격하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찬양팀은 청중의 은혜를 돕는 은혜의 다리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가는 이 젊은 학생들의 찬양이 캠퍼스에서 귀한 역할을 잘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부산, 경남 문화사역자 일정> 1. 늘소리 (국악찬양팀) -4월23일(주일) 저녁7시 : 천안중부교회 부활주일 찬양집회 2. 그리스도의 편지 (찬양팀) -4월9일(주일) 오후2시30분 : 효성교회 -4월16일(주일) 오후2시 : 교리제일교회 3. 약속의 땅 (찬양팀) -4월16일(주일) 오후2시30분 : 창남교회, 거창부활절 연합집회 4.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 -4월9일(주일) 오후2시 : 동신교회 찬양집회 -4월11일(화) 오후6시30분 : 부산밀알화요모임 찬양인도 -4월16일(주일) 오전11시 : (청도) 별빛교회 찬양예배 5.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및 기독교부산방송 후원을 위한 ᆞ성경서예작품초대전ᆞ * 초대작가 : 병암 여운부 장로 * 초대일시 : 4월 25일 오후2시 * 전시기간 : 4월25일 ~5월 3일 * 전시장소 : 기독교부산방송5층전시실 * 문의 : 전화 051-636-0050, 작가 010-7712-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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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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