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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⑧
    1. 사극 영화(드라마) 속의 왕의 모습 최근 영화 <사도>에 이르기까지 사극 드라마, 혹은 영화가 인기가 있다. 사극의 형태를 빌려 현실정치의 코드를 풀어내는 영화와 드라마는 늘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사극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는 영화 내용에 당대 대중의 욕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극 작품 속에서는 현실 정치의 사례를 풍자하고 그것을 간접적인 코드로 녹여낸 사례가 많다. 따라서 사극에는 시대별로 늘 큰 흐름이 있다(이하, 이털남 198회 문화평론가 하재근, <영화·사극 속의 정치코드 분석> 참조). 1980년대까지는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와 치정이 사극의 주된 내용이었다. 힘센 자가 권력을 잡고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죽게 되는 구조를 그려, 당시 군부 권력의 쿠데타 등을 정당화 하였다. 이후에는 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유행했던 <용의 눈물>(1996~1998)이라는 사극은 그 당시 난립하던 수많은 대권을 잡으려는 잠룡을 빗댄 작품이었으며 2000년대에는 권위주의가 어느 정도 타파되면서 사극을 통해서 국민의 정치적 열망이 드러나게 되었다. <왕건>(2000~2002)이라는 드라마는 김대중 정부 시절 지역감정 회복이라는 주제를, 노무현 정부 때는 정조 왕과 이순신 장군이 박정희 시대(그때 전국 초등학교에 이순신 장군이 세워졌다. 장군의 이미지와 자신을 결합하려는 의도였다)와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부각되었다. 가령, <불멸의 이순신>(2004~2005)이라는 작품은 여소야대로 정책 추진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고, 강력한 개혁 군주 정조의 이야기를 담은 <이산>(2007~2008)이라는 작품은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국민이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연약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개혁 군주였던 정조의 모습은 그의 비극적인 운명과 함께 노무현과 오버랩 되었고, 대중은 강력한 CEO대통령을 갈구했다. 따라서 직선제 도입 이후 사상 최대 득표차로 당선된, 강력한 실용주의적 지도자 이미지의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사극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비록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을지언정 강력한 지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고통을 씻어주겠거니 했는데, 대중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편협한 인사, 일방적인 정책운영에 실망하게 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세종대왕이 강력하게 조명됐다. 백성의 삶을 억압하지 않고 잘 어루만져 주는 온건한 관리자의 상이 화제가 된 것이다. 이것은 웰빙(wellbeing)이 아니라, 힐링(healing)으로 시대적인 화두가 바뀐 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 당시에는 <대왕 세종>(2008), <뿌리 깊은 나무>(2011) 등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인기를 끌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사극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토론’이라는 코드이다. 가령 <선덕여왕>(2009)의 미실과 덕만도, <뿌리 깊은 나무>의 밀본의 수장과 세종도 꼭 토론을 하는데, 이처럼 소통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 지도자 상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불통이미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사극들에 나타나는 지도자들은 자신을 세일즈 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신의>(2012)라는 작품을 보면 최영 장군과 신진 사대부들조차 공민왕에게 “내가 왜 당신 신하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왕과의 대화를 통해 설득당하여 왕의 편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작품 안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다. 또한 <대풍수>(2012)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우스꽝스럽고 즉흥적이고 가벼운 성격으로 묘사하지만, 호탕하고 의리가 있어, 자신을 지지하는 현자들의 말을 듣고, 지도자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는 이로 그리려 하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사극은 영웅들 이야기이고, 국가를 다스리는 이야기이니 리더십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극을 통해서 국민들이 원하는 리더십의 방향, 지도자의 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사극 분석은 다음 호에) 2. ‘신-왕’ 예수 그렇다면 성서는 어떤가?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공동체는 당시 로마제국의 ‘신-왕 일치’ 사상에 ‘신-왕 예수’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하였다. 즉, 요한공동체는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인 예수를 신이며 왕으로 고백하였다. 로마 제국의 신-왕 일치 사상이 제국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식민 통치 이념의 일환이었다면, 요한공동체의 신-왕 일치 사상은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영생은 제국 로마가 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허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공동체가 전하는 예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에 잘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을 로마라는 세상 제국을 배제하고 읽는다면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를 상실한다. 요한공동체는 세상(로마제국)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가령, 요한복음에서 현저하게 사용되고 있는 ‘영광’이나 ‘은혜’, ‘진리’, ‘길’, ‘이름’, ‘자유(롭게 하다)’, ‘생명’과 같은 단어들은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로마 황제를 표상하는 언어였다. 그러나 요한공동체는 이러한 용어들을 비교급이나 최상급으로 사용하여(‘은혜와 진리가 충만’, 1:14, ‘은혜 위의 은혜’, 1:16, ‘참으로 자유롭게 하다’, 8:36 등) 황제보다 비교 우위로 표현함으로 로마에 대한 저항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거짓된 세상 제국과의 대결, 거짓된 종교를 벗어나 참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진정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이미지는 요한 18:36절에 두 번이나 반복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언급으로 인하여 정치적 함의를 갖지 않은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당시 아우구스투스의 연설문과 비교하여 “너희는 세상 왕국(kingdom on earth)의 백성이다”와 비교하여 읽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의 말에서 ‘내 나라’는 초월적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인 로마에 대한 소속을 거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거부는 이적 사건에도 나타난다. 가령, 예수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임으로써 황제의 급식을 능가한다(요6:1-15). 북한에서도 김일성이나 김정일 생일 때, ‘이밥과 고기국’을 인민들에게 베푸는 것처럼 로마는 새로 황제가 즉위하면 백성들에게 급식을 나눠준다. 그러나 예수의 급식은 황제보다 양이 많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다. 이러한 비교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도 나타난다. 요한공동체는 로마 황제의 대관식 장면과 예수의 죽음을 빗대어 묘사하는 것으로 예수의 정치와 로마 황제로 대표되는 세상 권력의 정치를 대조한다. 로마 황제가 ‘로마의 머리 언덕’(카리톨리노)에서 세상 제국의 황제 자리에 등극했듯, 예수도 ‘예루살렘의 머리언덕’(골고다)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 우주의 황제 자리에 등극하였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자. 여기서 예수가 빌라도 심문 당시 입었던 ‘자색 옷’과 가시‘관’은 황제의 복장과 금관의 상징으로, 당시 도미티안(Domitian A.D 81-96년) 황제가 대중들 앞에 나갈 때 자신을 쥬피터(Jupiter, 그리스의 Zeus) 신으로 드러내기 위해 입었던 의상이다. 따라서 권력의 상징인 자색을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입을 경우는 처벌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금관은 로마 황제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신적 표상을 담고 있다. 마가도 ‘자색 옷’이라 하고 있으나(막15:20), 마태는 ‘주홍색 옷(홍포)’으로 기록하여 왕적 표상을 손상시키고 있으며(마27:28, 31), 누가는 이러한 보도를 아예 생략하여 예수의 왕적 표상을 드러내는데 소극적이다. 이러한 상이한 관점은 각각의 복음서를 산출한 공동체들이 당면하였던 다양한 정황과 그들 나름대로의 정체성 추구와 관련이 있다. 곧 공동체는 자신들의 삶과 신앙의 핵심이었던 예수에 대한 고백 안에 자신들이 처한 정황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투사함으로 그들만의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였고, 자신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추구해 나간 것이다. 3. 예수의 정치, 교회의 정치 로마 황제로 대표되는 세상의 정치는 한 사람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모든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짓밟고 제거하는 식의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예수의 정치는 모든 이의 유익과 복지를 위해 자신의 존재 전체를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예수의 정치, 곧 예수를 머리로 고백하는 교회의 정치란 타자의 유익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부인하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정치라 할 수 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담임,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문화
    2015-10-07
  • [기독교 교양 읽기 ⑦] “순례는 영원한 삶을 위한 큰 투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 《여행》이란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하면 후회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이나 관광에 관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신학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여행을 이야기한다.저자는 여행은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것을 비롯해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전통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래서 서두에 ‘기독교 신앙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며, 기독교는 ‘길 위의 신학’임을 강조한다.저자가 이야기하는 여행의 범주는 관광에서부터 피난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상당히 넓다. 여행, 관광, 이주, 순례, 방랑, 선교여행, 단기 집중여행 등 다양한 형식의 여행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은 분명하다. 단순히 관광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권력관계까지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한다.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제국주의의 연성(軟性) 권력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신학적, 정치적 저항 행위가 되어야 제대로 된 여행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순수한 신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신학자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그러나 일반인들이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힘겹다. 그렇기에 여행을 떠나되, 지금부터라도 좀 더 보람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저자인 요르그 리거(Joerg Rieger)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남감리교 대학교 퍼킨스 신학대학의 구성신학 교수이다. 독일 태생으로 신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했다. 원제 Traveling. 포이에마, 2015. 9,8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여행!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낱말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이후 해외여행이 봇물 터지듯 급상승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삶에서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이색적인 것을 접할 때 느끼는 신선함이 우리를 떠나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 읽었던 책, 《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역설한다. #여행은 구약-기독교 전통과 연결돼김길구 : 이 책을 열자마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위대한 여행의 모험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 세상은 거대한 책이라 했고 여행자만큼 이 책을 많이 공부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꼼짝 않고 자기 집에만 박혀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한 페이지만 읽은 것이다.” 상당히 인상적인 말입니다.김현호 : 저자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 여행이란 구약-기독교 전통과 깊이 잇대어 있으며 신앙을 실천하는 현장은 바로 길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례로서의 여행은 ‘길 위의 신학’이라고 정의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신학과 관련지어 표현한 것 같습니다.김길구 :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것에서부터 광야 생활, 바벨론 포로 생활, 예수의 사역과 바울의 전도 여행 등 모두가 정적인 신앙이 아니라 끊임없는 길 위의 신앙입니다. 그렇기에 여행은 ‘나를 따르라’는 초대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합니다.김수성 : 그런데 이 책에서는 ‘여행’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이나 관광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단순한 관광보다는 순례, 방랑, 이주, 피난 등 자의적 여행은 물론 어쩔 수 없이 정주지를 떠나 이국땅에 머무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김길구 : 저자는 ‘길 위의 신학’과 ‘사유화(思惟化) 신학’을 대립시켜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궁극적으로 여행은 ‘좁은 길로 들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정주하는 신학은 자칫 안정을 유지하는 ‘넓은 길’이 될 수도 있음을 언급합니다.김현호 : 교회가 일정 지역에 자리를 잡더라도 안주할 것이 아니라, 안디옥교회와 같이 끊임없이 인근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지원하는 동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최근 교계에서는 선교사를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대폭 줄어 걱정입니다. 헌신보다는 안주를 원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여행은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임을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의 안락함을 버리고 길에서 만남 사람들과 함께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 여행은 구약-기독교 전통과 깊이 잇대어 있다. 신앙을 실천하는 현장은 바로 길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순례로서의 여행은 ‘길 위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Rene Magritte의 ‘The pilgrim’(1966)〉 # 길에서 자기를 찾고 하나님 만나야김수성 : 사실 저자가 강조하는 여행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여행과 많은 차이가 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패키지관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여행 스타일입니다.김길구 : 우리나라도 조금씩 변하고 있죠. 여태까지 구경꾼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직접 체험하는 순례나 트레킹으로 변하고 있고, 특히 젊은 층에서는 벌써부터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 붐이 불고 있습니다.김현호 : 문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근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사람이 연간 2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성지 순례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순히 관광에 치우친 면이 많다는 것이죠.김수성 : 조지 리처의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 보면, ‘맥도날드화된 관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행사는 관광지의 사람, 문화, 제도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자유시간은 거의 없도록 빡빡하게 일정을 짠다는 것이죠.김길구 : 그렇더라도 주위에서 성지 순례를 다녀와 달라졌다는 분이 많은 것을 보면,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달라져야 할 부분도 많지만, 현재의 흐름을 보면 머지않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순례는 ‘영원한 삶을 위한 큰 투자’라는 말이 실감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김현호 :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만 지불하면 되는 관광은 편리함과 돈에 따른 대가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순례 정신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은 조그마한 것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김수성 :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의 말을 들으면, 엄청난 고생을 하였지만 기회만 된다면 또 가고 싶다고 합니다. 길 위에서 자기를 찾고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요.김현호 : 저는 가끔 제주도 올레길을 걷습니다. 이 길을 만든 서명숙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독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레길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지가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갈맷길, 초량 산복도로 길이라도 순례의 정신이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 최근 부산에서도 기독교 순례 길을 개척하는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부산장신대에서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 가이드북을 만들어 순례길을 안내하는가 하면, 부산기독교총연합회에서는 몇 년째 부산의 선교 역사를 돌아보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광복로 입구에 초기 선교사 첫 기착지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신앙 성지 순례길 만들어야김현호 : 저는 몇 해 전부터 타 지역 기독인들과 부산의 청소년들에게 부산의 기독교역사를 간직한 초량교회, 장기려기념관, 부산진교회, 일신여학교기념관과 일신병원, 수정동성결교회, 삼일교회 등을 연결하는 지역 순례길을 몇 차례 안내해 왔습니다. 누군가가 나서 이런 순례를 정례화하고 좀 더 전문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김길구 : 김현호 대표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교회가 이런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초기 부산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선교여행이나 순례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우리 길을 성지로 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김현호 : 필요하다면 도시 교회가 기독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의 농촌이나 어촌 교회와 연계하여 순례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 한 권 들고 떠나는 신앙의 유적 탐사도 좋은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김수성 : 저는 교회의 여름학교가 이런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내에서 벗어나 길 위에서 하나님을 찾는 순례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개 교회에 부담이 된다면 지역 교회가 공동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 어떤 분은 일본의 저력을 소위 ‘오타쿠’ 문화에서 찾기도 합니다. 개개의 민간인들이 하나의 주제나 관심사에 대해 평생 파고들어 전문가보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문화이죠. 북유럽의 힘도 이와 비슷한 민간인들의 평생공부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열풍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다음 달에는 피터 스카지로가 쓴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흔들리며 걷는 길》 / 김기석 / 포이에마《信行여행, 한국기독교유적지 137》 / 이성필 / 세줄《부엔 카미노! 산티아고를 걷다》 / 구철헌 / 예영커뮤니케이션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5-09-24
  • 교회개척의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개척의 새로운 패러다임 최영기 지음 / 요단출판사 / 2015.08.01. / 10,000원 2009년에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에서 출판한 가정교회를 개척하여 잘 정착시킨 목사님들의「개척교회 사례집」을 증보 수정한 책이다. 교회를 개척해야 할 사명이 있는 목사님들을 위해 좀 더 오늘날의 개척 상황에 맞는 사례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가정교회 개척 사례이지만 일반 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최영기 목사는 휴스턴 서울교회 원로목사이다. 한국 전쟁 시 순교한 최석모 목사의 손자로서 독실한 기독교가정에서 성장했다. 목회자로서 그의 꿈은 '신약적인 가정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 문화
    • 도서
    2015-08-27
  •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중세교회사 1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중세교회사 1 정수영 지음 / 쿰란출판사 / 2015.08.25. / 23,000원 저자는 중세교회사 1, 2권을 통해 1000년 동안 유럽 세계를 암흑으로 이끌어 간 타락과 부패의 역사를 밝히는데, 기존의 중세교회사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았다. 1부 교황의 역사, 2부 유럽교회의 역사, 3부 주류교회와 다른 소수 교회 역사를 신약교회 사관에 의해 알아보고 교황들이 과연 신앙에 부합한 무리들이었는지 살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 260여 명의 교황 중 그리스도의 종다운 교황은 10명 안팎이었다. 교황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중세교회사가 한눈에 읽혀지고, 교회와 우리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 문화
    • 도서
    2015-08-27
  •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김승욱 지음/ 규장출판사 / 2015.08.17. / 15,000원 할렐루야교회 김승욱 목사의 깊고 풍성한 사도신경 강해를 담은 『나는 믿습니다』. 성경적이고, 힘이 있는 김승욱 목사의 강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 외우는 것을 그저 예배 순서 중 하나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얼른 외구고 끝내버린다.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 자체가 예배이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입으로만 외우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신앙고백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 문화
    • 도서
    2015-08-27
  •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 리 스트로벨 지음 / 두란노서원 / 2015.08.18. / 14,000원 은혜는 종교 언어에 불과한가? 은혜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 은혜가 진정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리 스트로벨 목사가 하나님 은혜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자신의 신앙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구체적인 은혜 사건들을 통해 은혜의 개념을 정의해 간다. 리 스트로벨은 우리 시대 실재하는 은혜의 현장을 인터뷰하며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만났다. 내 인생에 이미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 준다.
    • 문화
    • 도서
    2015-08-27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⑦
    1. 셰프 전성시대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야훼의 마지막 날 잔치모든 종교는 의식(예배 혹은 제사)과 먹는 것(밥)이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에게 바치는 제물은 곡식, 떡, 양, 염소, 소, 비둘기 등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번제와 희생제, 감사제와 요제를 드리게 된다. 그리고 제사 이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제사 음식을 먹는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출18:12).”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고 나서도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이스라엘의 축제일인 유월절, 무교절, 추수절, 초막절 역시 모두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애굽의 종살이에게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일로 제물고기와 누룩 없는 떡을 먹었으며 추수절과 초막절은 밭 곡식과 포도의 추수에 관련된 축일로 가난한 이들(노비,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까지도 함께 즐겨야 했다(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신16:14).이사야가 선포하는 야훼의 마지막 날의 모습도 먹고 마시는 잔치이다. 시온 산에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고 모든 민족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25:6)”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먹는 잔치로 묘사된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초대 교회 공동체는 어떤가?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생활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준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행2:44-47).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는 이러한 밥상 공동체가 깨어졌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고전11:20-21)”고 전한다. 곧 부자들은 취하도록 배불리 먹고 가난한 자들은 굶주린 상태에서 에배와 성찬에 참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해결책으로 공동식사인 애찬과 성찬을 분리시켰고 결국은 성찬만 남게 되었다(“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고전11:34a). 사실 사회적 신분(주인과 노예)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예수의 밥상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은 아닌 것이다. 이후 요한복음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예수의 삶으로 이끌고자 종교적 의식 행위에서 오늘의 현실 속에 예수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6:56).”이를 구현한 이가 교회사에 등장한다. 지난 2015년 7월 6일은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의 화형 6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후스는 성찬식을 개혁했는데, 성찬식은 실제로 굶주린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밥상공동체 운동이다. 이러한 후스의 개혁운동을 더욱 확산시켰던 후스파 운동은 ‘이종성찬(빵과 잔 둘 다 허용)’을 진행했는데, 이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당시 성찬 집례시 잔은 사제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러나 후스파는 평신도들에게까지 잔을 베풂으로 평등 공동체를 구현했다. 성찬을 통해 사제계급의 특권을 파괴한 것이며 성찬을 공동식사(애찬)로 바꾸어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잔치가 되었다. 3. ‘멋, 맛, 못’의 말씀 요리사인 설교자설교자는 말씀의 셰프이다. 최현석 셰프와 같이 요리하는데 멋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기에 대행자로서 멋이 있어야 한다. 개그맨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 맛이 있어야 한다. 백주부(백종원 셰프)의 솜씨와 같이 지식인이든 어린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할 것 없이 맛있게 먹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감칠 나게 요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자의 설교에는 못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손맛과 같은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 찔림이 있어야 한다. 본향에 대한 그리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첫사랑에 대한 찔림, 미래의 희망에 대한 저 내면 깊숙한 곳에서의 외침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거든 요리를 배워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함께 더불어 먹기라도 해야 한다. 부활한 예수도 이념이나 정신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말씀 요리와 밥을 나눠 먹는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 것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24:28-35).”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담임,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문화
    2015-08-27
  • [기독교 교양 읽기 ⑥] 광복 70주년, 교회공동체가 화해 사역에 앞장서야
    “화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저자는 이 책 《화해의 제자도》 머리말에서 “화해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며,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누구나 화해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화해가 전문가 영역이 아니라는 말은, 화해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분쟁이나 분열의 현장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에 그친다.진정한 화해는 새로운 창조라는 하나님의 선물에 토대를 둔, 기독교적 비전에서 출발하는 긴 여정이다. 일상적인 모임에서, 일상의 공동체에서, 가장 분열이 심한 바로 그곳에서, 보통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이다. 그렇기에 화해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가 먼저 변화된 백성이 되어야 한다.히브리서 11장에 믿음으로 살았던 많은 이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의 비전을 믿고 오늘 비합리적인 삶을 살았다. 성경은 이런 믿음의 증인들을 통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의 소망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그렇기에 심각하게 깨어진 세상에서 교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즉 탄식의 기도이다. 그래야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현실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우리 삶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방인과 적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저자인 에마뉘엘 카통골레는 우간다 출신 사제로서 듀크대 신학대학원의 연구교수, 크리스 라이스는 〈어반 패밀리〉 편집자면서 ‘화해자협회’ 공동 설립자이다. IVP, 2013.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 끝 부분에 ‘하나님의 선교로 화해를 회복하기 위한 10가지’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을 10가지로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첫 번째는 이렇다. ‘화해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시는 선물이다. 세상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행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새로운 창조라는 그분의 선물에서 시작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갈등김길구 :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이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최대 240조원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종교 분쟁으로 인한 터키를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김현호 :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생각했습니다. 교회, 사회, 그리고 남북관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고,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김길구 : 사회 갈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아도 세대간, 지역간, 빈부간 갈등을 들 수 있죠. 여기에 더하여 최근 들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과 핵발전소, 세월호 문제 등 정부정책 등과 관련한 갈등이 심각하게 표면화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기독교적 해결방안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바는 ‘화해는 전문가 또는 운동가의 영역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사역이다’라는 전제입니다. 전문가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화해 노력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죠.김길구 : 화해의 여정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일상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화해에 관한 기독교적인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먼저 화해가 ‘하나님의 선물’ 또는 ‘하나님의 비전’이라는데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회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그 해결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편향적이었고, 어떤 때는 극단적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드러냈습니다.김수성 : 지난번에 이 자리에서 논의했던 ‘슬로처치’가 생각납니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고, 새로운 창조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해의 여정은 회개로부터 시작해야김길구 : 이 책의 강점은 사회적 고통을 외면하는 도피처로 전락한 일부 교회뿐 아니라 다른 사회단체나 NGO 활동이 기독교적 화해와 무엇이 다른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화해의 사역에 나서야 합니다. 이 책에서 사례로 제시했듯이 르완다에서 인종 학살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근무하는 호텔에 피신한 투치 족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 호텔의 매니저인 폴 루세사바기나가 목숨을 걸고 민병대와 협상하는 모습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은 근본적으로 인종갈등과 그에 따른 빈부갈등을 기본으로 하여, 화해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각종 이데올로기에 따른 갈등, 정부 정책과 관련한 갈등이 유독 심각합니다. 교회 내에서조차 입장을 정리할 수 없는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그럴지라도 교회가 방관할 수는 없겠죠. 독일 통일의 씨앗이 되었던 것은 서독 교회연합회의 동독 교회 지원과 그에 따른 청소년 교류 등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화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겠죠.김현호 : 기독교 선교의 잘못된 비전 중 하나가 과거를 배제한 화해, 값싼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화해를 위해서는 모두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는 표지이자 누룩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화해의 여정이 시작될 것입니다.김수성 : 우리나라에서 갈등이 심화되는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로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 성향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빈부격차가 커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물질적·심적 여유가 점차 사라짐으로써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기도 합니다. ▲ 화해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앞장서 나갈 때, 평화는 새로운 창조로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림은 John A. Swanson의 ‘Celebration’〉 #교회는 진정한 평화, ‘샬롬’ 추구해야김길구 : 기독교적인 입장에서의 화해, 여기서 언급하는 평화는 상대적 평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 평화, 샬롬(Shalom)을 의미합니다. 전쟁이 잠시 멈춘다고 평화라고 할 수 없고, 억압된 분위기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평화롭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김현호 : 요즘 교회에서는 ‘평화’보다는 ‘평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단순한 뉘앙스 차이가 아닌 근본적인 차이로 볼 수도 있습니다. 평안은 상대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 만족적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의 ‘평안’이란 단어는 대부분 ‘평화’로 번역해야 할 단어입니다.김수성 : 저널리즘에서는 시민을 속이는 완곡한 표현에 유의하라고 강조합니다. 즉, ‘가격 인상’을 ‘가격 현실화’로, ‘경찰병력 투입’을 ‘공권력 투입’으로 말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기름 저장탱크를 ‘오일농장’이라는 말로 미화했던 기업도 있었습니다.김현호 : 평화의 반대는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등도 물리적·언어적 폭력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했다는 사실을 신앙고백하는 사람들인 만큼,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부터 화해를 일궈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에 앞장섰던 송강호 박사가 생각나더군요. 밀양과 마찬가지로, 같은 마을주민들이 서로 반목하면서 원수 대하듯 하는 현실이 두렵기만 합니다.김현호 : 송강호 박사는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기를 수차례 반복하였는데, 지금은 마을주민들의 화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화해의 제자도는 자신을 이처럼 화해의 제물로 드릴 때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크리스천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의 피스메이커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는 화해를 위해 교회 공동체가 나서야 함을 강조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일본에 대한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갑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사례를 본받아, 한국 교회도 일본 교회를 적극 지원하면서 양국 국민이 화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다음 달에는 요르그 리거가 쓴 《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강에 더욱 유의하기 바랍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 / 박충구 / 홍성사《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 / 홍정길 외 공저 / 홍성사《크리스천의 화해와 일치》 / 오야마 레이지 / 쿰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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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⑥
    1. 사실의 사진: 교리 주입 사진-신학(Photheology)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매력적이다. 사진에도 신학이 있을까? 그렇다면 사진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사진에 신학과 신앙이 없다면 그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진에 신앙과 신학이 있다는 것은 사진 한장에 한 사람의 숨결이나 한 세대의 생명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신학적 의미를 부여받고, 신앙적 생명을 얻고,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의 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백승균 교수는『사진 철학을 만나다』(북길드, 2014)에서 사진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인간 의식과 사진의 관계에 관해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으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26-37). ▲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 여기 사진이 있다.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연작 사진이다. 사랑하는 딸의 패션쇼를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사진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는 패션쇼를 가능하도록 만든(옷을 입혀준) 언니 희주가 있고, 또 이 모습을 찍은 아빠가 있을 것이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언니와 아빠 모두가 이 사진의 완성자가 될 것이다. 이처럼 사진은 사실의 기능을 한다. 사진-신학의 지평도 마찬가지다. 사실의 사진은 사실의 신학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를 주입하는 신앙에 다름 아니다. 교리에 그 교리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 그리고 그 교리를 완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 하에서. 따라서 사람들의 이해 지평(곧, 의미)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사실의 사진은 의미의 사진으로 넘어가고, 사실의 신학은 의미의 신학으로 진행해야 될 것이다. 2. 의미의 사진: 해석학적 신학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해석의 지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희진이의 패션쇼는 아빠의 사랑이, 언니의 정성이, 그리고 주인공 희진이의 애교가 의미놓여져 있다. 이것은 배고파도,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의미의 차원이다.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창설한 프뢰벨(F.W.A. Fr?bel, 1782~1852)은 아동의 내적인 신성이 자연물과의 친근함을 통해 발현된다고 말한다. 가령,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목각기차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으로 달려간다면, 프로벨은 그 기차를 그저 장남감으로만 여기지 말고 실제 기차로 간주할 것을 주장했다(백승균, 32). 그렇다. 사람은 사실만으로 살지 않고(그리고 이 사실은 경제와 정치, 현실의 모든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로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잘 알았고, 마귀의 시험을 지혜롭게 대처하셨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1-4절) 따라서 의미의 신학은 해석학적 신학의 지평을 열어준다. 사실의 신학이 단순한 교리 주입이라면, 의미의 신학은 성서 말씀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사실을 넘어 해석학적 의미의 지평 융합을 이룬 것처럼. 3. 의식의 사진과 신학의 사명: 김아타를 중심으로 사진은 불가능한 순간(가령 1/125초~1/15초의 순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기술이며, 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영원으로 잇게 하는 예술이다. 사진의 특별한 기법에는(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해당되지만) ‘연장노출(extended exposures)’과 ‘다중노출(multiple layering)’이 있다. 연장노출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두고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들의 형체를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 반면 다중노출은 이미지를 수십 번 중첩하는 것으로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다. 따라서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처음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 뉴욕을 촬영한 1만컷 이미지를 단 하나로 중첩시킨 작품 앞에 선 김아타 <뉴욕 타임스>가 “철학적 사고가 지극히 참신한 작가”라 극찬한 박박 민 머리, 동그란 안경, 검정 인민복의 사진작가 김아타는 연장노출과 다중노출 기법을 통해 작품을 창작했는데, 뉴욕의 모습을 찍은 1만장의 사진을 겹쳐 한 장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약간의 채도 차이가 있을 뿐 희뿌연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자『도덕경』5290자,『논어』1만5817자,『반야심경』260자를 한자한자 촬영해 각각 한 장으로 포개는 작업도 했는데(성경은 분량이 많으니 ‘요한복음’이나 ‘창세기’만을 한 글자 한글자 찍어서 촬영하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작업 가운데 김아타는 “자신을 구속하던 경전이 솜사탕이 되더라”고 말한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고, 없애버림으로써 있음을 드러내는 구도자의 깨달음이다. 예수께서도 깨달은 바 천하 만국의 영광이 결국 사라짐을, 아쉽지만 지금 사랑하는 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 속에 사라져 감을 깨닫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셨고,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는 답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의미를 넘어 의식의 변화가 새로운 존재를 창출하는 것이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4-8절) ▲ (2004) 사진에서 의식의 변화를 이룬 김아타의 ‘아이스 모놀로그(Ice Monologue, 얼음 이야기)’인 ‘ON-AIR Project’ 시리즈는 영원함을 상징하면서 역사적 의미도 지닌 파르테논 신전, 부처, 마오쩌둥, 피라미드 등의 조형물들을 얼음조각으로 만들고, 그 조각이 점점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 3개월 동안 실제 크기의 15분의 1로 얼음조각을 만든 뒤 녹아 없어지는 1개월의 과정을 사진에 담아냈다. “모든 존재는 생멸하고 이 우주에 생멸하는 법을 거스를 존재는 없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가령, 스틸 사진 3장으로 표현한 <마오의 초상>은 권력의 무상함을 떠올린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 문화
    2015-07-23
  • [기독교 교양 읽기 ⑤] 가나안 성도 줄이려면 교회가 건강성 회복해야
    “가나안 신앙은 길 위의 신앙이다”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은 교회를 ‘안 나가’는 성도들에 관한 책이다. 1부 ‘가나안의 현상학’에서는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분석한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회는 2013년 1월에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사람들 가운데 100만 명 정도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일찍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 운동’ 미국의 ‘이머징 교회’ 등이 나타났다. 2부 ‘가나안의 사회학’에서는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로 교회에서의 숨 막힘, 위선, 그리고 분쟁을 든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의 문제점과 함께 대안을 모색한다. 특히 지속적으로 시행되는 많은 제자교육이 성도들을 계속 어린아이로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성인용 기독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3부 ‘가나안의 신학’에서는 ‘교회론’을 다룬다.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의 맥락을 설명하고, 신약에서 교회로 번역했던 에클레시아(ekklesia)를 살핀다. 에클레시아는 그 자체가 영속적 가치나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에클레시아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들과 관련된다. 그렇기에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가나안 신앙은 ‘길 위의 신앙’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미지의 신앙이다. 그리고 ‘타자지향성’을 배우는 신앙이라고 정의한다. 저자인 양희송은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로서, 영국신학교 등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복음과 상황〉 편집장을 역임했다. 포이에마, 2014. 11,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에서 ‘가나안’은 ‘(교회에) 안 나가’를 거꾸로 쓴 것이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최소한 100만 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제도 밖으로 나가 ‘길 위의 신앙’을 유지한다. 가끔 신앙을 포기하기도 하고 다른 ‘영성’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갈수록 40, 50대 중장년층도 늘어나김길구 : 먼저 가나안 성도의 현상부터 살펴보도록 합시다.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고, 이것이 한국 교회에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김현호 : 이 책에서는 주로 20, 30대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을 다루고 있지만, 이 같은 생각을 가진 40, 50대 중장년들도 기독교서점에서 상당수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려 하는 성도, 가족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나간다는 사람도 의외로 많습니다.김수성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2013년 1월에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교회를 떠나기 전 평균 14.2년 정도 교회를 다녔고, 최소한 6개월 이상 고민했다고 합니다. 즉, 교회의 중심부에서 일하던 핵심층들이 많다는 것입니다.김길구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한국 교회가 이제는 이런 문제를 쉬쉬하지 말고 공론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교회의 변화 없이는 가나안의 귀환도 없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동안 ‘불편한 진실’로 취급하여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자는 것이죠.김현호 : 가나안 또는 잠재적인 가나안 성도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왜 교회 밖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며 그런 것을 철저하게 찾아내야 합니다.김길구 :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 앞서 미국 등지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나와 있듯 이머징 교회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미국에서는 뚜렷한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김수성 : 책에도 나오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실험교회’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적지 않다. ‘가나안 성도 현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하는 신학적·실천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림은 Nakedpastor David Hayward의 Leaving the Church. 2014〉 #“잘못했습니다” 시인하는 자세 필요김길구 : 그렇다면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김현호 : 기본적으로 한국 교회가 우리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글로벌화와 다원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맹목적인 ‘신앙’만 이야기하고, ‘기도’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김수성 :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원인을 들고 있죠. 첫째는 ‘숨 막힘’으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분위기나 관행입니다. 둘째는 ‘위선’을 듭니다. 특히 지도자들의 위선을 목격하고 나면 쉽게 이탈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교회의 분쟁입니다. 이 세 가지는 쉽게 들을 수 있는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김현호 : 교회 지도자들이 건강한 교회나 공동체에서 다양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평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70, 80년대에는 대학부나 청년부가 거의 자치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선배들을 통해 교육을 받았죠. 그런데 교회가 효율화를 위해 간사제를 도입하면서 이런 자치 능력이 상실된 건 아닐까요?김길구 : 잘 믿기 위하여 교회를 떠난다는 가나안 성도들의 증가는 성장론에 가려진 교회론과 구원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김현호 : 한국 교회가 성도들을 우민화한 결과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탁월하다고 여겼던 한국 교회의 설교나 교육 시스템이 성도들을 진리에 이르게 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김길구 : 저자가 ‘성인용 기독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이유일 것입니다. 성도들에 대한 교육과 양육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죠. 성도들의 의식은 높아가는 데, 지도자들은 기존의 인식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갭(gap)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김수성 : 지금은 누구든지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최근 메르스 정보 공개 여부로 논란이 있었듯이, 교회와 관련한 사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불리한 것은 숨기려 하거나 덮어두려고만 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정보가 공개되는 시대에는 오히려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시인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김길구 : 어렵기는 하지만,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자는 신학적으로 접근했으나 우리는 실천적으로 접근하도록 합시다. 역사적 경험으로 본다면, 교회가 사회의 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회에서도 아노미(anomie)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현실적으로 가나안 성도를 적극적으로 두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교회를 떠났다면,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그 책임의 일부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소외받지 않도록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야 합니다.김수성 :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뿐만 아니라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모두가 불안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3포’니 ‘5포’니 하는 말로 대표되듯이 젊은이들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중장년층은 앞으로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할 날들이 너무 길어 불안합니다. 이런 심리상태에서는 교회 문제가 더 크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김길구 :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성도들을 더욱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줘야 합니다.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불만도 줄어들겠죠.김현호 : 가나안 성도들에게도 한마디하고 싶습니다. 바깥에서 너무 오래 방황하지 말고 참다운 교회를 찾는 순례의 길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 부탁합니다. 진심으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섬김의 현장에 동참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할 때, 한국 교회의 문제도 하나씩 풀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 이단이 득세하는 이유 중 하나도 교회를 등지는 성도들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선택에 어려움을 겪다보면 나중에 포기하게 됩니다. 교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김길구 : ‘추수꾼’ 등은 그런 약점을 파고드는 데는 뛰어나죠. 책에서도 언급했듯 교회 바깥으로 나온 성도들이 오히려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자유로부터의 도피처’로 이단을 택해, 피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 교회가 건강한 지역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다음 달에는 에마뉘엘 카통골레와 크리스 라이스 공저 《화해의 제자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청년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 / 데이비드 키네먼 / 이선숙 역 / 국제제자훈련원《이슈&미래》 / 미래목회포럼 편 / 예영커뮤니케이션 도/서/제/공 기쁨의 집 기독교서점초량 일본영사관 맞은편 051-464-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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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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