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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편지는 1998년 창단된 남성보컬선교찬양팀입니다. 이 팀의 멤버인 문지희, 박인규 집사는 노래하는순례자 찬양팀으로도 활동을 하다가 새로운 형태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찬양팀을 재창단해 보다 전문적인 남성보컬팀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문지희 집사는 1981년부터 노래하는순례자팀의 창단멤버이자 단장으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 <그리스도의 편지>팀까지 36년을 한결같이 복음에 대한 열정과 주님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찬양사역을 이어왔기에 후배들의 모범이 되는 사역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팀은 바뀌었지만 <노래하는 순례자>의 사역정신을 그대로 이어가서, 개척교회, 군부대, 농어촌 집회 등 힘들고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찬양과 간증으로 기쁨을 전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후진양성에도 늘 노력하는 팀으로서, 주요 집회 때마다 <Gospel Love>라는 이름으로 신인 사역자들을 동참시켜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며, 각종 기독교방송 프로그램에의 진행을 맡아 전파선교사의 역할도 담당하는 부산, 경남지역의 문화선교에 많은 일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한편 <소나무 선교회>라는 선교팀을 조직하고, 홍보대사를 맡아 해외선교의 귀한 일을 담당하는데 주로 태국에 개척교회 설립, 학교후원, 현지인교회 후원을 하고 있으며 매년 태국을 찾아가서 찬양으로도 돕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2003년부터 매년 이어온<사랑의 쌀 나누기>행사를 올해에는 1월 21일 극동방송 아트홀에서 개최하며 많은 사역자들에게 무대의 기회를 주고, 또 후원과 팀이 모아온 재정을 합쳐 쌀300~350포대를 지역사회에 나누어 주는 의미 있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평범한 성도이지만 그 사역하는 모습과 열정은 어느 목회자보다 더 뛰어나며, 화려한 무대나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고 귀한 복음에 대한 사명감으로 한결같이 사역을 담당하는 귀한 사명자들입니다. (집회문의 :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부산기독문화사역자 일정>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2월5일(주일) 오후1시30분 : 한사랑교회 2월12일(주일) 오후3시 : 은성교회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2월5일(주일) 오전11시30분 : 초광교회 2월12일(주일) 오전11시 : 누리교회 2월12일(주일) 오후2시 : 이진용맘병원 3. 김인희 찬양사역자(010-2843-3872) 2월12일(주일) 오후3시 : 신흥교회 4. 이창주 찬양사역자(010-8516-2594) 2월12일(주일) 오후2시 : 사랑과은혜의교회 <김인희 1집 음반 '기쁨 안에' 발매 소식> 김인희는 클래식 보컬리스트임과 동시에 CCM 보컬로 새롭게 활동영역을 넓혀 전문 찬양사역자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이번 음반을 통해 특유의 따뜻하고 풍성한 울림의 목소리로 지친 영혼을 위로하며 기쁨안에 모든 것 담아내신 주님을 노래하고 있다. 민호기 목사의 프로듀싱 아래 국내 최정상의 뮤지션 강수호, 이태윤, 임선호 등의 연주와 민호기, 이권희, 이윤경, 손상민 등 여러 명의 작곡가가 함께 참여하여 다양한 색채를 드러내며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컨템포러리한 워십뮤직의 홍수 속에서 단비같이 촉촉하게 우리의 마음을 적셔 줄 위로의 메세지와 그녀만의 목소리로 가슴 따뜻한 찬양의 향연이 펼쳐진다.
    • 문화
    2017-02-0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3 : 닭
    “2016년 KBS 연기대상에 베스트커플 상을 받은 뒤 연예인 차인표씨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50년을 살면서 깨달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저는 여기에 넷째를 하나 더하고자 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결코 교회와 교인을 이길 수 없다.’” (최병학 목사) “2017년도 트렌드 키워드 슬로건은 ‘CHICKEN RUN’” (김난도 외, 『트렌드코리아 2017』) 1. 정유년, 군주민수에서 사필귀정으로 지난해 연말 <교수신문>은 2016년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4년간 선정된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그리고 그 당시 정치권을 강타한 사건들을 곁들여 보면 이렇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공약철회, 국정원 댓글 사건,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거짓이 진실을 가린다)-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파동,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어지럽고 무도하다)-메르스 대응 무능, 배신의 정치 찍어내기, 2016년 군주민수-촛불집회, 탄핵 등.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며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누구나 흔히 아는 사자성어인 ‘사필귀정(事必歸正) 곧, “모든 일이 반드시 옳은 길로 돌아가는”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2. 정유년 각자 도생의 시대, ‘CHICKEN RUN’ 해마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한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매년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2017년에는 어떤 트렌드가 한국 사회를 주도할 것인가? 『트렌드 코리아 2017』 (미래의 창)은 2017년의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를 ‘CHICKEN RUN’으로 선정하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비상의 날개를 펴고 극적으로 울타리를 탈출한 애니메이션 영화 <치킨런>(2000)의 주인공들처럼 철조망 울타리에 갇힌 것같이 정체와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2017년에는 새롭게 비상하길 기원한 것이다. ¹ 1) C’mon, YOLO! 지금 이 순간, ‘욜로 라이프’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는 의미이다. 카르페 디엄(carpe Diem)이 삶의 태도라면 욜로는 태도이다. 자기지향적이고 현재지향적인 삶의 스타일로 후회없이 즐기고 사랑하고 배우라는 삶의 철학이자 이상향을 향한 실천을 중시하는 태도이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미래를 향한 기대를 접은 젊은이들이 부르짖는 절망의 외침인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희망의 외침이기도 하다. 2) Heading to ‘B+ Premium’ 새로운 ‘B+ 프리미엄’ 가격 대비 성능이 구매의 핵심 고려요인이 된 가성비의 시대의 상징으로 단순히 가격을 낮춰 가성비를 확보하기보다는 좀 더 프리미엄한 가치를 제공하고 제 각격을 받는 방향으로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도 불황의 벽을 넘는 사다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3) I Am the ‘Pick-me’ Generation 나는 ‘픽미세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지만 순위대로 피라미드의 자리가 주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선택(pick-me)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고단한 세대를 잘 말해주고 있다. 4) ‘Calm-Tech’, Felt but not Seen 보이지 않는 배려 기술, ‘캄테크’ 공기가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함께 공존하듯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지원하는 기기들을 통해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조용한 기술을 말한다. 캄테크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사람 사이에 인터랙션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고 조용한 만큼 그 가능성과 파급력 또한 가늠하기 힘든 이 신기술은 얼마나 인간지향적인 형태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5) Key to Success: Sales 영업의 시대가 온다 인정과 막무가내식 설득에 호소하는 주먹구구식 관계의 영업을 넘어 다양한 매체, 접점, 채널의 과학적 분석을 통한 영업의 과학화가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다가오고 있다. 6) Era of ‘Aloners’ 내멋대로 ‘1코노미’ 철저히 혼자만을 위하면서도 때로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이들로, 1인과 이코노미(economy)의 조합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혼자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얼로너(aloners)’라고 한다.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혼자 밥을 먹고 있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SNS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7) No Give Up, No Live Up 버려야 산다, 바이바이 센세이션 장기불황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일본에서는 ‘사토리족’의 버리는 삶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소유보다는 향유, 공유의 가치를 전파한다. 한국의 젊은 유목민적 물질주의자들이 이 버리는 삶에 동참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자기 집에 비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나 대여를 통해 그때그때 꺼내쓰는 ‘삶의 클라우드’현상을 만들고 있다. 8) Rebuilding Consumertopia 소비자가 만드는 수요중심시장 소비자가 시장의 권력으로 이동하여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한 제품과 서비스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타났다. 9) User Experience Matters 경험 is 뭔들 포켓몬GO 게임을 위해 미국인들이 걸어 다닌 총량이 1,440억 걸음(지구와 달 사이를 143회 왕복하는 길이)으로 집계됐다.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든 비결은 바로 경험과 재미이다. 물건을 파는 것에서 이제 경험을 파는 것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 체험하거나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10) No One Backs You Up 각자도생의 시대 전에 없던 심각한 자연재해와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은 깊어 가는데, 정부의 문제해결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국민들은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혼자 모색하고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말 그대로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도모해야한다.”는 뜻이다. “나는 억울하다”는 승복부재의 감정과 “나는 네가 싫다”는 타자혐오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는 ‘욜로 라이프’와 ‘각자도생’이다. 어쩌면 이 두 키워드는 동일한 현실 자각을 기반으로 한 트렌드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을 건 나밖에 없는 세상, 국가도 사회도 가족도 나를 보호해줄 수 없고,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절박한 심정이 지극히 현재지향적인 소비의 모습으로 ‘욜로 라이프’로 나타난 것이다. 3. 촛불의 미학 시인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철학자이며, 철학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마지막 저서 『촛불의 미학』(문예출판사, 2001)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꽃은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생성을 향해 긴장되어 있는 세계이다. 몽상가는 거기에서 그 자신의 존재와 그 자신의 생성을 보는 것이다. 불꽃 속에서 공간은 움직이며, 시간은 출렁거린다. 빛이 떨면 모든 것이 떤다. 불의 생성은 모든 생성 가운데 가장 극적이며 가장 생생한 것이 아닐까? 불에서 그것을 상상한다면 세계의 걸음은 빠르다. 그리하여 철학자가 촛불 앞에서 세계에 대해 꿈꿀 때는 모든 것을-폭력이나 평화까지도-꿈꿀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의 결합을 시로 메꾸고 시의 결함을 과학으로 메꾸려는 바슐라르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불꽃은 우리들에게 상상할 것을 강요한다. 불꽃 앞에서 꿈꿀 때, 사람이 상상한 것에 견주어 본다면 사람이 인지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불꽃은 그 은유와 이마쥬의 가치를 매우 다양한 명상의 영역 안에 두고 있다. 어느 것이라도 삶을 나타내는 동사의 주어로서 불꽃을 취해보라. 촛불은 그 동사에 한층 생기를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은 다른 것과 융합하려고 하는데 반해 촛불은 결코 합치려고 하지 않는다. 혼자 타면서 혼자 꿈꾸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 그 자체이다. 사실 18세기 말엽 어떤 불꽃의 물리학자가 두 개의 촛불의 불꽃을 합치시키려고 헛되이 시도한적이 있었다. 그는 심지에 심지를 맞대고 촛불을 켰던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고독한 불꽃은 다만 더 커지고 상승하는 일에만 취하여 합일되는 것 따위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고 각각 그 뾰족함의 미묘함을 그 꼭대기에 지키면서 수직성의 에네르기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 물리학자의 실험 속에서 볼 수 있는 서로 힘을 합쳐 불태우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두 개의 정열적인 마음은 얼마나 불행한 상징인가! 적어도 불꽃은 몽상가에 있어서 스스로의 생성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존재의 상징인 것이다! 불꽃은 생성으로서의 존재, 존재로서의 생성이다. 바슐라르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는 급속도로 진보하고, 시대의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희미한 빛이나 타다 남은 촛불의 시대는 지났다. 쓰이게 되지 않게 된 사물에 집착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꿈일 뿐이다. (……) 전등은, 기름으로 빛을 내는 저 살아있는 램프의 몽상을 우리들에게 결코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은 관리를 받는 빛의 시대에 들어왔다. 우리들의 유일한 역할은 전등의 스위치를 돌리는 일뿐이다. 우리들은 기계적인 동작의 기계적인 주체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정당한 긍지를 가지고 점화한다는 동사의 주어가 되기 위하여 그 행위를 이롭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바슐라르여, 걱정 마시라. 대한민국에 다시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생성으로서의 존재가 존재로서의 생성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촛불 앞에서 세계에 대해 꿈을 꿀 것이고, 그 촛불은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될 것이다. 4.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러시아가 낳은 최대의 영상 시인이자 현대 러시아의 가장 역량 있는 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비어 있는 세계의 지붕 밑에 고독하게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로 연결된 수많은 끈으로 이어진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어떤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세계와 인류의 운명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촛불의 상징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타르코프스키는 “전쟁과 사회적 궁핍, 갖가지 잔인한 고통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며 서로를 발견하는 일은 인간의 성스러운 의무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광화문과 서면 광장에서 촛불을 통해 만난 서로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론』에서 칼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의 본질은 여가시간이다. 자본주의적 야만은 이 여가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바꾼 것(잉여가치)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야만을 문명의 길로 돌리는 첫걸음은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헬조선, 피로사회, 경제적 절망, 양극화 모두는 여가시간의 부족에서 나왔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경제적 절망도 깊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790시간이며 독일은 1,371시간(2015년 기준)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으로 2,100시간이라고 한다. 반기문 전유엔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등이 되어라, 이등은 패배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돌진 때 젊은 시절을 보낸 한국의 노인들이 자식, 순주한테 흔히 하는 조언과 닮았다. ‘앞만 보고 뛰어라’와 ‘여가가 있는 삶’은 늘 항상 대립된다. 그러나 지금 대한한국에 필요한 건 야간 노동과 밤잠을 줄이는 학습인가? 혹은 법이 정한 노동과 적절한 휴식, 짧지만 경쟁적이지 않고 협동을 기르는 창의적 학습 분위기인가? 탄핵 이후의 국면은 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것이다. 촛불의 명예혁명이 문명으로 나갈지 야만으로 다시 뒷걸음질 칠지는 시대의식을 올바로 읽는 후보를 국민들이 제대로 뽑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마르크스 다음의 말은 의미있는 말이다. “이론이 민중에게서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오로지 이들 민중이 자신들의 필요를 실현시키는 정도에 달려 있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80인 켄 로치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렇다. 이명박근혜 시대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정유년, 붉은 닭들이여, CHICKEN RUN! 각주1)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악독한 트위디 아줌마가 운영하는 영국의 어느 양계장. 여기 사는 닭들은 언제 트위디의 밥상에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다. 이중 가장 영리한 암탉 진저는 호시탐탐 동료들을 이끌고 탈출할 기회를 엿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고초를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달걀 판 돈으로는 성에 차지 않던 트위디는 거대한 치킨 파이 기계를 들여놓고 닭들을 대량 학살할 음모를 꾸민다. 치킨 파이 기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진저는 탈출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수탉 록키와 함께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탈주 계획을 세운다는 이야기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7-01-19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기독교 문화 공간 - 프라미스랜드
    1998년 시작된 프라미스랜드는 2017년 19주년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 많은 이들의 약속과 추억을 간직한 프라미스랜드는 동광교회 김승학·최정희 두 분에 의해 시작되었고 많은 섬김과 후원, 헌신으로 19년간 지켜오게 되었습니다. 남포동 유흥 밀집 지역에서 청년과 청소년의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시작된 ‘약속의 땅’이 이제는 공간사역이라는 새로운 사역의 한 분야로 2017년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10개의 개척교회가 프라미스랜드에서 시작되어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아갔고 선교단체나 모임, 행사, 콘서트, 파티 등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프라미스랜드는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30-11 용두산공원 입구, 중앙성당 맞은편 위치해 있으며, 대관을 하려면 www,promiseland.co.kr로 대관신청을 하면 됩니다. 테이블 7개, 프라스틱 의자 20개와 나무의자 20개, 음향 및 영상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50여명 수용 가능의 공간, 주방, 작은 방,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간은 미술전시, 사진전시, 콘서트, 모임이 가능한 위 공간과 작은 모임,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아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018년,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모아두었던 50여권의 방명록을 책으로 출판할 예정으로, 그동안 프라미스랜드와 함께한 많은 분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2년에 한번 씩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진행해온 P.A.F(Promiseland Art Festival)를 2017년 올해에도 잘 준비해서 많은 이들의 문화의 소통공간이 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월드프라미스랜드로 나아갈 첫발걸음으로 태국 프라미스랜드 출범식을 가지고 그와 함께 월드프라미스랜드 오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간이 아닌 문화로 정착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106-21-0689-274 프라미스랜드 박후진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월21일~30일)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1월21일(토) 오후3시 : 부산극동방송공개홀, 사랑의쌀 나누기 콘서트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월13일(금)~24일(화) : 필리핀 단기 선교 3.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월22일(주일) 오전11시 : 용인동일교회 1월22일(주일) 오후2시 : 동탄 친구들교회 1월25일(수) 오전11시 : 광주부림교회 학생연합수련회 1월29일(주일) 오전11시 : 김해해원학교 4.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월21일(토) 오후5시 : 기장교회, 기장군다음세대를 위한 연합찬양집회 5. 2017년 예배와 찬양학교일시 : 2017년 1월2일 개강 3주간 월,화,목 PM 6:30 (1월/23,24,26일)장소 : 아름다운교회당 / 가야교회교육관(전.부전교회당)강사 : 김상건 목사(YIM대표, 아름다운교회 담임, Youth KOSTA 강사)대상 : 각 교회 예배인도자, 찬양팀, 예배와찬양 관심자문의 : YIM 사무실 (051-626-4862), 권진덕 간사 (010-3480-7894)
    • 문화
    2017-01-19
  • [기독교 교양 읽기 22] 방탕한 동생을 찾아 집을 나서는 형이 되길!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는 하나님! 저자는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 비유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의 말을 충실하게 잘 들으며 집을 지킨 맏아들의 문제까지를 포함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즉,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교만과 우월감을 빠진 자들을 책망하는 비유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15장 1절과 2절을 제시한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 중 하나라는 것이다.세리와 죄인이 작은아들이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맏아들이다. 저자는 오늘날 맏아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의미가 없다. 그들 스스로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작은아들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지만, 맏아들은 자신이 그동안 했던 것을 내세우며 잔치에 참석하는 것마저 거부한다.이 책의 ‘탕부(蕩父)’라는 뜻은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내주시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즉, 작은아들이건 맏아들이건 집 앞으로 나와서 아무 조건 없이 베푼 잔치에 모두가 참석하길 권하는 분이시다.◈ 《탕부 하나님》 || 저자인 팀 켈러(Timothy Keller)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리디머교회 담임목사로서, 모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저서로는 《센터처치》 《기도》 등이 있다. 원제 The Prodigal God(2008). 두란노, 2016.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을 펼치면 제목 다음 장에 바로 ‘프러디걸(Prodigal)’이라는 단어 해석이 나온다. ‘탕자’의 ‘탕(蕩)’에 해당하는 단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무모할 정도로 헤프게 베푸는, 2) 남김없이 다 써 버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탕하다, 낭비하다’는 뜻과 함께 ‘아낌없이 베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탕자보다 맏아들의 문제에 초점 맞춰김길구 :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탕부(蕩父) 하나님’은 ‘아낌없이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탕자(蕩子)’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탕’이 사용되었습니다.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눈에 확 뜨인 부분은,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가 작은아들보다 맏아들에 관한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즉, 이 비유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가 예수님께로 돌아온 작은아들 같은 세리나 죄인보다는, 나름 충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왔다고 자신하는 맏아들과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겨냥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2절). ‘서사비평’으로 탕자의 비유를 읽은 것이죠.김현호 : 이 책을 읽을 때가 성탄절 즈음이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를 읽으면서, 성육신하여 십자가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우리를 천국잔치에 초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탕자든 맏아들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기뻐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탕부 하나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가 탕자의 귀환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함으로써, 정말 중요한 형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문제가 비율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였다고 하면, 형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주의를 비난하였고,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와 싸운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김현호 : 저자는 탕자보다는 형의 모습을 분석하는데 책의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는 형의 영혼을 예의주시하다가 그에게 마음을 돌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 중에 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진단합니다.김수성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실감했습니다.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을 때, 뭔가 높다란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던 분들만의 교회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법 긴 시간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고, 그들과 같이 어우러지기보다는 겉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탕자의 귀향’(1699년경)이다. 젊었을 때 큰 성공을 거뒀으나 허랑방탕한 생활로 비참한 말년을 맞이했던 렘브란트는 스스로에게서 탕자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한편, 화가 난 듯 서있는 형의 모습에서 우리 또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형의 문제점은 오히려 ‘의로움’ 때문김길구 : 한편, 이 비유는 우리 교인들의 인식 중에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닐까요. 즉, 세상 사람들의 비윤리적이고 허랑방탕한 생활과 교인들의 율법주의적 삶을 구분하여, 전자는 탕자요 후자는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둘 다 영적으로 잃어버린 존재라 규정했습니다.김현호 : 팀 켈러는 여기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형을 아버지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오히려 착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도덕적 이력에 대한 교만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그가 잔치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악(惡)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의(義)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김수성 : 극단적으로 말하면 탕자의 귀환을 거부하는 교회의 모습, ‘자기들만의 교회’에 자족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기독교인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을 겁니다.김길구 :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딜레마는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의 공동체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배타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갈수록 교회와 멀어지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김현호 : 한국 교회에 위기의식이 널리 퍼지게 된 것도 바로 형의 시선으로 교회공동체를 규정해 왔고, 이 사회를 배척해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종교적 도덕주의자’가 사실은 또 하나의 탕자의 범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오히려 감추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김수성 : 그런 경향이 결국 교회 스스로 사회와는 별개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고, 사회는 그런 교회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즉, ‘차이’를 포용해야 하는데, 이를 배척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죠. #종교개혁 초심으로 잔치에 동참해야김길구 : 탕자의 비유를 종교가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기득권자들과 일반 국민들과의 괴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의 회개 없이는 진정한 공동체가 이뤄질 수 없듯이, 우리 사회도 그러한 형국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김현호 :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공무원, 정치인과 청와대에 근무하는 이들 중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이들이 윗사람에게 의무적인 순종이나 맹종을 함으로써 나라가 도탄에 빠졌습니다. 순종이 결과적으로는 악에 봉사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불순종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김수성 : 최근 부의 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말이 나오듯,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 구조, 즉 사회 시스템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득권자들은 개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치부합니다. 탕자이기 때문에 잔치에 동참하면 안 된다는 형의 논리와 비슷합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는 제대로 된 형의 모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던지는 뼈아픈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동생이 자기의 재산을 갖고 집을 나가 방탕한 길로 나갔을 때, 형은 단호히 그 동생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 동생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형의 사명이라는 것이죠.김현호 : 참 형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성도들 모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새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형의 모습을 한 성도든, 탕자였던 사람들이든, 모두가 종교개혁 당시의 마음을 품고 귀향의 행렬을 이뤄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는 소위 ‘잘 믿는 형’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집 나간 동생을 탕자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나서 동생을 찾아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형의 모습이 더욱 많아지는 새해가 되길 빕니다. 다음에는 김동춘 권연경 조석민 유정훈 공저인 《성전과 예배당》(대장간,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탕자의 귀향》 / 헨리 나우헨 / 포이에마《팀 켈러의 센터처치》 / 팀 켈러 / 두란노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7-01-05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 선교단
    노래하는순례자는 1981년 창단해 36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약 2,900여회 찬양집회를 인도한 부산의 대표적인 찬양팀입니다. 또한 <이제 내가 살아도>를 처음 만든 작곡자(최배송 단원)가 창단 때부터 활동한 팀이기도 합니다. 이 팀의 단원들은 음악전공자나 전문사역자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음악적인 실력이 부족한 부분도 많이 있지만 오직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명으로 오랜 시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저력이 있는 팀입니다.그리고 이 팀의 가장 큰 저력은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눈높이를 맞추는 찬양집회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진솔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성도들이 꼭 부르고 싶은 찬양들을 함께 할 때, 듣기만 하는 찬양이 아니라 입을 열어 함께 부르는 경배의 시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어린아이부터 80, 90대의 노인들까지 모두가 하나 되어 찬양드리는 것이 이 팀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순례자는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갑니다. 강원도 고성까지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골교회 연합집회에서 30명의 성도들과 감격의 찬양을 드리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새벽 4시경 도착해, 다음날 바로 출근하는 등 힘든 여정 속에도 찬양을 통한 감격과 기쁨으로 이 사명들을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집회에는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여 찬양, 율동, 간증, 색소폰 독주 등 복음을 전하는 모든 도구로 찬양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새신자전도집회에서 인형극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역지도 일반교회 뿐 아니라 군부대, 어린이전도주일, 청소년수련회, 장애인단체, 요양원 등에서 찬양으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매년1월에 필리핀에서 현지어로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호평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이 부산 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사용되어 지길 기도합니다. (집회 문의 : 이동석 집사 010-3880-6355, 홈페이지 http://suleja.or.kr)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월7일~20일)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1월17일(화) 오후7시 : 동래중앙교회, 동노회교사연합회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월8일(주일) 오후1시30분 : (서울)성일교회 1월8일(주일) 오후7시 : (시흥)양문교회 1월13일(금)~24일(화) : 필리핀 단기 선교 3.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월9일(월) 오후1시 : 순교자 수련회 4.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월8일(주일) 오전11시, 오후2시 : 진해맑은교회 1월10일(화) 오후3시 : 창녕여전도회관, 학생연합수련회 1월13일(금) 오후9시 : 순복음안락교회 1월15일(주일) 오전11시 : 00군부대 1월20일(금) 오후1시 : 울주세광병원 5.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월12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6. 2017년 예배와 찬양학교일시 : 2017년 1월2일 개강 3주간 월,화,목 PM 6:30 (1월 2,3,5/9,10,12/23,24,26일)장소 : 아름다운교회당 / 가야교회교육관(전.부전교회당)강사 : 김상건 목사(YIM대표, 아름다운교회 담임, Youth KOSTA 강사)대상 : 각 교회 예배인도자, 찬양팀, 예배와찬양 관심자문의 : YIM 사무실 (051-626-4862), 권진덕 간사 (010-3480-7894)
    • 문화
    2017-01-05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2 : 게임
    ‘바츠해방전쟁’ 10주년을 기념하는 고객 행사를 지난 2014년 5월 20일 NCSOFT 판교R&D 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바츠해방전쟁’에 직접 참여한 유저들과 미디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특히 ‘바츠해방전쟁’ DK혈맹 총군주인 ‘아키러스’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1. 신화와 반복 신화(Myth)를 뜻하는 그리스어 ‘미토스(mythos)’는 이야기를 뜻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mythology(신화학)’를 만들었을 때 그 의미는 ‘가공의 인물을 다룬 이야기’를 뜻했다. 이 말은 신화가 진실을 표현할지라도 정교한 픽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하여 신화가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비난했으며 『국가』(Republic)에서 이상적인 폴리스는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추방한다고 했던 것이다. 반면 플라톤은 비유(allegory, 어떤 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는 가르침의 도구로 생각했다. 그의 이상향인 ‘아틀란티스 이야기’나 ‘동굴의 비유’는 알레고리로 보편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가르침에 있어서 유용한 방식으로 본 것이다.플라톤의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두꺼비를 보면서 항아 이야기를, 까치를 보면서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호랑이를 보면서 곶감 이야기 등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잘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신화는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에 나타난 무수한 상상력이 암호처럼 현대 문화와 사상에 녹아들어 있다. 아니 우리 삶의 곳곳에 신화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사실 서양 언어권에서 요일과 달의 이름은, 곧 달력에서부터 태양계 행성 이름(지구를 제외한 모든 행성은 로마의 신 이름에서 가져왔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리스나 로마, 북유럽 신화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프로이트(S. Freud)가 신화를 인간 무의식의 일부로, 곧 인간 내부에 깊이 뿌리박힌 심리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공유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나, 융(C. G. Jung)처럼 신화를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는 것 역시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그저 한 순간의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화학자 조셉 캠벨(J. Campbell)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종교와 철학, 예술,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에 존재한 인류의 사회 형태, 과학과 기술의 주요 발견, 잠에서 생겨나는 바로 그 꿈들은 신화라고 하는 원형적인 마술 반지에서 끓어오른다.”라는 말은 신화의 반복, 그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2. 신화와 게임; 서사학에서 게임학으로 오늘날에는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온라인 게임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적인 서사학(narratology)이 게임 자체의 게임학(ludology)으로 패러다임 전환한 것이다. 또한 매체 중의 매체라고 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삶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면서 ‘인터랙티브 인간’(interactivity human)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로 표시되던 종래의 ‘지혜로운 인간’에서 ‘상호작용성’을 통한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컴퓨터 게임이 그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게임은 언제나 현실을 모방해왔고, 현실을 비틀고 재창조하면서 스스로의 영역을 확대해왔다. 현실과 가장 관련이 먼 것처럼 보이는 SF 소재의 게임이나 중세 판타지 풍의 MMORPG(Massive Multi-us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놀이 게임, RPG는 각 유저가 역할을 분담해 게임을 하는 방식이다. RPG 중에서도 MMORPG는 온라인 상에서 여러 명이 RPG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게임이다.)도 현실을 은유적인 형태로 재해석해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게임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게임 속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순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리니지2>에서 발생한 바츠해방 전쟁은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가상공간에서 얼마나 강렬한 형태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3. 바츠해방 전쟁 바츠해방 전쟁은 2004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약 4년간 <리니지2>의 바츠 서버에서 발생한 인터넷 전쟁을 말한다. (독재자로 유비되는)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 일명 DK) 혈맹의 철권통치로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급 민중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의 민중들은 ‘바츠 연합군’을 형성하여 DK 혈맹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 동맹군의 화살받이가 되어 무수히 죽어가면서 유일한 대응 방법인 인해전술로 싸웠다. 이 전쟁에 참여한 사용자는 연인원 20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마치 『일리아드』나 『삼국지』, 혹은 성경 「여호수아」와 「사사기」를 보는 듯, 바츠해방 전쟁 안에는 현실세계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 신분 차별과 권력의 횡포, 혁명과 좌절, 전쟁과 독재, 사랑과 죽음, 기만과 배신, 전술과 희생, 정의와 자유, 영웅의 탄생과 죽음, 숭고한 희생과 가치, 그리고 동지애와 감격의 눈물 등 수많은 참여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한 편의 웅대한 서사시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2>의 내복단(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 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 혁명의 상퀼로드, 즉 ‘긴바지를 입는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부른다.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틀 정도 육성한 레벨 10 전후의 캐릭터이다. 이들의 공격력은 5-10 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데미지-이다.)으로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화된 공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음을 깨달은 다음의 내복단의 글은 감동스럽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바츠 연합군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 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혈맹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겸댕이대왕, ‘호소문-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리니지2> 게임 자유게시판 2004년 6월 16일.)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들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받은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이 된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의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에서 작은 혈의 군주로 있다 사소한 문제로 거대혈의 공격을 받게 되어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정식 혈전을 요청한 후 처절하게 전사한 경험이 있는 한 내복단은 이렇게 말한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중략)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 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제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결국 바츠 연합군이 <리니지2>의 중추인 DK혈맹의 아덴성을 집단 지성과 공성전을 통하여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바츠해방 전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혁명 성공 후 바츠 연합군이 이익을 가지고 서로 분열하면서 결국은 DK혈맹이 한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벌이게 되고, 그 틈을 타 DK혈맹이 다시 세력을 잡게 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간 아쉬운 전쟁이었다. 4. 게임, 기만인가? 혹은 해방의 도구인가? 이 시대는 발터 벤야민(W. Benjamin, 1892~1940)과 테오도르 아도르노(T. Adorno, 1903~1969)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이다. 암울했던 20세기 초 대중문화와 상업주의가 결합한 문화산업의 근원을 추적하고, 통렬한 비판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던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대중문화가 자유를 향한 출구인가, 억압과 기만의 도구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대중매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처럼 동일한 것이 무한 반복되는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는 현대 인물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술적 복제로 현대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 대중예술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온 이 시대 예술의 희망인가, 대중을 기만하는 수단인가?’를 묻고 있다. 대중문화를 기만적이며 억압적이라 보는 아도르노와 대중문화의 발달된 기술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보는 베냐민의 관점은 각을 세운다.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라디오와 영화, 재즈 등에 대해 분석하며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문화산업은 위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허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지배의 도구가 되었다. … 대중문화가 주는 즐거움이란 결국은 도피에 불과하며 즐김이 주는 도피는 사실상 현실의 억압과 모순에 대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대한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영화 ‘몽타주 효과’를 통해 대중에게 충격과 각성을 선사하는 해방의 가능성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아도르노가 지나치게 비관적이었다면, 베냐민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이다. 곧, 벤야민에게서는 ‘해방’인 대중문화가 아도르노에게서는 ‘기만’이 되어버렸다. 동일한 맥락에서 게임은 해방일까?, 기만일까? <리니지2>처럼 온라인 상에서 혁명은 불가능했다. 왜일까? 그것은 인간의 원죄(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는) 때문이 아닐까? 성서는 그것을 정확히 지적한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세기 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 ‘바츠’(로 은유되는 이 대한민국)가 해방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메시야인 평화의 왕,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믿음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6-12-22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Friends of God(주의 친구)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다음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뚜렷한 방향도 실행도 옮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기껏 1년에 한 번 정도의 연합집회가 그 대안인 경우가 많고, 부산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부산에서도 기장지역에서는 기독문화 및 청소년, 청년 예배가 더욱 열악하고, 소외된 곳이기도 합니다.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 신앙성장을 해왔던 최정일 목사는 이에 대한 고민으로 서울에서의 사역을 접고, 고향인 기장으로 돌아와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청년,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정기모임을 연결해주고자 하는 여건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그런 모임을 찾기도 힘들었고 지역의 거리특성상 찾아가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에게, 우리에게 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는 마음을 주셨고, 시골교회를 섬기고 있는 젊은 김용현 집사와 함께 매주 목요일 찬양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어느덧 시골의 작은 서너 교회와 사역자들이 청소년, 청년, 젊은 직장인들과 정기적임 모임을 가지면서 예배와 교제하는 부산목요찬양모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시골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예배를 사모하는 젊은이들이 매주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다보니, 하나님은 이 모임을 통해서 더 큰 비전도 주셨습니다. 작은 교회나 시골교회 혹은 개척교회의 예배지원 및 찬양인도 등의 찾아가는 협력사역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016년 ‘Friends of God’(주의 친구)이라는 worship Band 팀을 결성하게 됐습니다. 매주 목요모임과 주일 저녁에 부산기장순복음교회에서 모여 위와 같은 사역들을 위해 준비하고, 녹음도 하고 있습니다. ‘Friends fo God’ worship band팀은 복음의 사각지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곳이야 말로 우리를 가라고 명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여기며 어디든 그분의 기뻐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고자 합니다. ‘Friends of God’ worship Band는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부산기장순복음교회에서 기장지역 연합 청소년, 청년, 직장인들을 위한 목요찬양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기장지역 연합청소년 찬양집회 RUN’(1월 21일/토. 오후5시, 기장교회) 예배지원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사역문의. 최정일 목사(010-4814-3690)팀 참여문의. 안효상 집사(010-9053-2572) ◇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2월24일~1월7일) 1.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2월24일(토) 오후7시 : 배산역로비. 성탄축하음악회 12월25일(주일) 오전11시 : (청도) 별빛교회 성탄찬양예배 2.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2월24일(토) 오전11시, 오후2시 : 부산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 어린이들을 위한 성탄공연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동서남북교회 2017년 1월4일(수) 오후3시30분 :오륜정보산업고등학교 1월5일(목) 오후2시 : 진주지방 SFC 겨울수련회 3. 우미나(찬양사역자 : 010-6608-6203) 12월25일(주일) 오후 2시30분 : 울산 신복교회 크리스마스 콘서트 4.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2월25일(주일) 오전11시 : 언양평리교회 12월27일(화) 오전11시30분 : 천안교도소 2017년 1월1일(주일) 오전11시 : (부산)왕성한교회 1월6일(금) 오후1시 : 울주세광병원 5. 제2회 사상크리스마스 아트 페스티벌 (장소 : 사상 인디스테인션) 12월24일(토) 오후2시 : 사상 창작캐롤송대회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외국인과 함께하는 국제 성탄축하 6.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2월29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 문화
    2016-12-22
  • [기독교 교양 읽기 21] 이제는 정교유착의 고리 끊어야…
    “모두 사람의 탐욕 때문에 일어난 일” 유가족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는 내내 부끄러워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이들이 하는 말에 우리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흥분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했던 우리가 아닌가.“피 흘리고 싸워주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손만 잡아주면 될 것을, 손을 뻗지도 않으면서 자식 잃은 사람 앞에서 입바른 말로 기도만 하고 있어요.” 우리의 폐부를 그대로 파고드는 지적이다. 어설픈 위로에 몇 푼의 돈으로 이들을 위로하려는 교회, 이제는 그만 잊고 용서하라는 등 구두선만 남발하는 교회에 실망을 넘어 비참함을 느껴야 했던 유가족들의 말에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실상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다.이유는 간단하다. 목숨보다 경제적 발전을 더 중하게 여기는 정치 지도자, 이에 적극 호응하여 돈벌기에만 몰두하는 경제계,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득바득 애쓰는 국민에 더하여, 교회마저도 ‘번영 신앙’을 추구함으로써, 이 땅 어디에서도 목숨의 소중함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희망을 묻다》 ||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뉴스앤조이〉가 유가족 6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 김형국 나들목교회 목사, 오세택 두레교회 목사, 강호숙 총신대 교수, 박득훈 새맘교회 목사가 인터뷰한 유가족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을 모은 책이다. 뉴스앤조이, 2015. 8,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가 다시 대두되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자성의 소리도 높아간다. 우리의 치부를 한번 드러내보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어설픈 말과 기도로만 위로하는 교회김길구 : 현 시국과 관련하여 이번에 읽을 책을 《세월호, 희망을 묻다》로 바꾸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고였습니다. 아니 ‘사고’라기보다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참사는 우리 사회에 신앙적으로도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독교계도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관련되어 있고, 교회가 함부로 내뱉은 말이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했기 때문입니다.김현호 :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만 나열해도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여객선이 전복되었음에도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적극적인 구조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실종자 수습과정에서 상당수 교회지도자들이 보여준 물질주의도 비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에 발길을 끊은 유가족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김수성 : 유가족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났듯이, 많은 교회는 이 참사를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보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고 빨리 수습했으면 하는 말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교회 지도자들이 앞서서 이에 호응하였습니다.김현호 : 사실 대부분의 교회가 했던 것을 보면, 참사에 대해 처음에는 절절이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모금 등을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기도하고는 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하는 상투적인 말에 더해 ‘이제는 생활로 돌아가라’는 어설픈 위로의 말로 유가족의 상처를 더 헤집어놓기도 했습니다.김길구 : 정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조차 하지 않고 문제를 덮으려고만 한 것에 대해, 교회가 분연히 일어나 잘못을 지적하지도 않았습니다. 졸지에 자식을 잃어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가족들을 진정으로 안아주지도 못하면서, 정부의 무마 작업에 슬며시 동참한 것이죠.김수성 :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없었던 것처럼’ 묻어버리려 합니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느니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느니 하는 구실을 내세우고서. 문제는 이런 일에 많은 교회가 오히려 앞장서는 것입니다. ▲ 2014년 8월 23일 진도 팽목항의 모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넉 달이 지나자 찾는 발걸음이 대폭 줄었다. 그러나 팽목항에는 무거운 침묵 가운데 절규하는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김수성 사진] #기독교인 관료와 정치인의 문제점은?김길구 : 세월호와 같은 노후 선박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였습니다. 돈 앞에 생명을 내 준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교계는 정교분리란 이름 아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회피하면서, 오히려 기득권과 유착하는 이중성을 보여주진 않았는지 반문해 봐야합니다. 이 참사 앞에 사회적 위로도, 제도적 개선 의지도 보여 주지 못했어요.김현호 : 이 역시 물질주의에 물든 현실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요? 상당수 교회가 아직도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이나 순수성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합니다. 이런 교회에서 성장하거나 교육받은 이들이 정권이나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니, 경제적 성장만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죠.김수성 : 최근 몇몇 철학자들이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모든 시스템이 생산성 위주로 바뀌고 있습니다. ‘생산성’을 앞세우면 그 앞에서 견뎌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마저도 한낱 도구에 불과해지고 맙니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우리 교회마저도 생산성을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번영 신학’에 매몰된 것이죠.김길구 : 이 책에서 강호숙 교수가 했던 지적은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냅니다. 첫째, 한국 교회가 교인들에게 믿음의 삶이 아니라 교회생활만 가르쳐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복음이 힘 있는 자들인, 소위 ‘갑(甲)’의 복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만 잘하면 되고, 어떻게 하든 물질적 부만 축적하면 복을 받은 것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죠.김현호 : 대림절 기간입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때죠. 이 땅의 낮고 약하고 아프고 핍박받는 자를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갑이 아니라 을(乙)이나 병(丙)을 위해서 오신 메시아입니다. 대림절을 맞아 한국 교회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합니다.김수성 : 세월호 유가족이 했던 말입니다. “기도가 최선이라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땐 직접 행동으로 나서야 할 부분이 있어요. 불의와 맞닥뜨렸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은 아직도 ‘봉건적 자본주의’ 국가김길구 :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보수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그러한 정권을 위해 기도하고 빌붙는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최태민의 구국십자군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종교가 정치의 시녀로 역할하고서,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형태입니다.김현호 :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모습에서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저지른 대통령을 오히려 옹호하고, 심지어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을 가룟 유다에 비유하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보다는 정치적 득실만을 따지는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김수성 : 저는 백소영 교수가 이야기한 ‘봉건적 자본주의’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우리나라는 천민자본주의에 더하여 통치시스템은 아직도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조선시대의 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국민 스스로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한국 교회도 일조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김길구 :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이번에야말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정교유착’의 고리도 끊어야 합니다. 교회가 정치에 빌붙어 시녀 노릇하는 잘못을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김현호 : 주말마다 촛불 집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이 깨어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이제 부화뇌동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소리쳐야 합니다. 만약 이에 대해 계속 침묵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다른 것으로라도 소리치게 할 것입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 한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는 악의 세력이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깊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우리 교회도 성경의 토대 위에 실천적 모습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두란노,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세월호와 역사의 고통에 신학이 답하다》 / 조석민 외 / 대장간《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 / 차정식 /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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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08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가스펠 보컬그룹 “MOIN"(모인)
    2015년 창단된 신생찬양팀 <MOIN(모인)>의 뜻은 독일어에서 따온 것으로 가까운 사이에서 인사하는 말이며,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다양한 찬양 문화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여러 목적을 지닌 예배와 무대가 생겨나면서 곳곳에서 찬양 사역자를 필요로 하고 있어서, MOIN과 같이 보컬로만 구성된 사역팀이 다양한 찬양 문화의 일부분을 채우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기도 합니다.그리고 지방에서 사역하고 있는 실력 있는 음악 사역자들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 사역의 지경이 넓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런 실력 있는 사역자들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더욱 지역의 예배에 활기를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스펠 보컬 그룹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개인 사역자들이 한데 모여 결성한 MOIN은 최근 연산동 소재의 작은 교회를 방문하고 그 교회 담임목사님의 정성과 열정과 간절함에 많은 감동을 받고, 한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힘써 나아가야 하는지, 또 이번 음악회를 통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달려 나가야 할지 깨닫는 귀한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MOIN은 현재, 찬미워십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홍식 찬양사역자, 2017년 1월 중 정규1집 발매 및 싱글 출시를 앞두고 창원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인희 찬양사역자, 부산 남성교회를 섬기는 김효익 전도사, 트롬본 연주자이며 대구중앙교회를 섬기는 장재진 형제가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팀이 결성된 지 1년 만에 팀원들이 솔로 앨범을 준비해서 발매를 앞두고 있으며, 개인적인 음악 활동이 더욱 많아져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모인<MOIN>이라는 이름처럼 가는 곳마다 찬양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안의 인사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고, 소망과 위로의 도구로 쓰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역문의 : 박홍식 사역자 (010-4414-7658), 김인희 사역자(010-2843-3872) ◇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2월13일~ 31일) 1.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2월13일(화) 오후6시30분 : (부산)산성교회, 밀알송년의 밤 찬양인도 12월24일(토) 오후7시 : 배산역로비. 성탄축하음악회 12월25일(주일) 오전11시 : (청도) 별빛교회 성탄찬양예배 2.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2월15일(목) 오후1시30분 :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 <Are you happy?>공연 12월17일(토) 오전11시 : 부산시 동구도서관, <초록구슬>공연 12월18일(주일) 오전11시 : 부산제일교회, 십대들 행복하십쇼. 공연 12월22일(목) 오후2시 : 양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심心풀이>공연 12월23일(금) 저녁7시 : 김해중앙교회 12월24일(토) 오전11시, 오후2시 : 부산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 어린이들을 위한 성탄공연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동서남북교회 3. 약속의 땅 찬양 팀(이창주 집사 : 010-8516-2594) 12월17일(토) 오후5시 : 진주차없는거리 크리스마스축제 12월18일(주일) 오후5시 : 사랑의쌀나누기 크리스마스콘서트 4. J-piE(찬양팀, 이은호전도사 010-8033-0062) 12월15일(목), 22일(목) 저녁7시30분 : 삼남연회 본부 감리교회관. 목요찬양예배 5. 우미나(찬양사역자 : 010-6608-6203) 12월17일(토) 오후7시 : 프라미스랜드, 기타치는 로로 노래부르는 우미나 콘서트 12월25일(주일) 오후 2시30분 : 울산 신복교회 크리스마스 콘서트 6.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2월15일(목) 한국국제대학교 12월15일(목) 진주 트리축제 12월18일(주일) (부산)기쁨찬교회 12월25일(주일) 언양평리교회 7. 프라미스랜드(기독교문화공간운영, 박후진 : 010-2828-6836) 12월17일(토) 오후4시 : 부산크리스마스 트리문화축제 성탄가족영화 상영 12월23일(금) 오후7시 : 프라미스랜드 콘서트(김재운, 김훈희 출연) 8. 제2회 사상크리스마스 아트 페스티벌 (장소 : 사상 인디스테인션) 12월20일(화) 오후7시 : 개막실 12월21일(수) 오후7시30분 : 연합축제 12월24일(토) 오후2시 : 사상 창작캐롤송대회 12월25일(주일) 오후3시 : 외국인과 함께하는 국제 성탄축하 9. 기장연합목요찬양모임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2월15일(목), 22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 문화
    2016-12-08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1 : 종교와 국가
    “16~17세기, 국제 문제에 대한 대처법으로 무엇보다 먼저 종교와 전쟁이 이용되었다. 잉글랜드와 그 후의 영국연방, 그리고 미국의 내셔널리즘 성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6세기에 프로테스탄티즘이 생겨난 이후,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사람들은 다른 서양의 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자기 나라가 ‘신의 나라’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 영국인은 새로운 ‘선택된 민족’이었다. 그리고 18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은, 보스턴의 설교자에서 버지니아의 담배 농장주에 이르기까지 자신감에 넘쳐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들의 ‘새로운 이스라엘’은 미시시피 강까지, 그리고 그 너머 태평양까지 넓혀질 것이라고.” (케빈 필립스, 『사촌들의 전쟁』에서) 1. 어거스틴의 두 도성론과 루터의 두 왕국론 일찍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은 필연적인 것(반드시 일어날 일)을 말하고, 역사는 현실적인 것(이미 일어난 것)을 기록하고, 극시(劇詩)는 개연적인 것(일어날 법한 일)을 모방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 ‘어순실한’ 정황 속에서 철학은 난무하지만, 역사는 지워지고, 극시가 코미디로 판을 깔고 있다. 이는 정치의 문제로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국가와의 관계, 종교와 국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지닐 네 가지 기본적인 관계에 관해 말한 이후(하나님-자기 자신-서로-원수), 13장에서는 ‘국가-율법-시대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특히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공동번역 로마서 13:1-2).” 정말 그럴까?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은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이 로마를 침략하자 이방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자는 뜻으로 『신의 도성(De civitas Dei)』을 저술한다. 여기에서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과 세상도성(civitas terrena)은 인간 역사상 언제나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불신자는 인간들의 방법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며 살도록 예정되었으며 이 두 세력이 두 도성으로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세상 왕국의 할 일은 땅의 평화(Pax terrena)를 실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자들은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행동양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도성(나라)은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세상에 대한 사랑, 자기를 경멸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영을 사랑하는 것’, 즉 두 도성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전자는 의로운 자의 나라요, 후자는 악한 자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따라서 인간들 가운데 확립된 이 두 도성은 마지막 심판 때에는 서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하나는 선한 천사들과 연합하여 그 왕과 함께 영생을 향유하고, 다른 하나는 악한 천사들과 함께 연합하여 그 왕과 함께 영벌에 던져질 것이다. 두 도성론은 그 본질상 신비적이며 초자연적인데, 전자는 ‘진리-선-질서-평화의 나라’이며 참된 사회이고, 후자는 전자를 거부하는 사회로 ‘오류-악-무질서-혼란’의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영향 하에 영적 왕국과 세속적 왕국을 구별하며(분리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 권력(1522년)’이라는 설교에서 ‘세상 왕국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에 관해 마르틴 루터는 (선별하고 축약하여 정리해 본다면)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이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통치방법(세상적, 영적)을 쓰시는데, 세상권력은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들의 몫이다. 둘째, 세상통치권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을 징벌하고 경건한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즉 검을 지닌다는 말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타인을 지키고 섬기는데 만 검을 사용한다. 셋째,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세상 통치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롬13장).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그 권세를 통하여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군주는 또한 신실한 보좌관을 선택해야 하며, 악인과 선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백성의 실수를 눈감아 줄줄 모르는 군주는 다스릴 자격이 없다.” 이러한 생각에 근거하여 루터(M. Luther)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한 나라-하늘의 나라-영적 정부’이며 세상의 왕국은 ‘시간의 나라-잠정적인 나라-지상의 정부’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복음과 말씀, 사랑으로 내면적인 영역을 다스린다면, 세상 왕국은 율법과 강제력으로 외면적 영역을 통치한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은 구원을 목표로 하고, 세상 왕국은 유지와 보존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왕국론을 이해하는 근간이 되는 ‘세상권세에 대하여, 세상 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하는가?(1523년)’라는 글을 통해 마르틴 루터는 “첫째, 세상 인간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자와 세상 왕국에 속한 자로 구별할 수 있는데, 만약 모든 세상 사람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만 있으면 검이나 권력 따위는 필요치 않다. 따라서 의로운 자들을 다스리려고 법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듯이 율법 아래에서는 죄가 드러날 뿐이다. 따라서 세상 권세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세워졌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속 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루터는 “세속 권력이 다스리는 영역은 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영역의 문제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통제만 받는다. 따라서 비록 로마서 13장에서 세상 권세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외적 질서에 해당되는 말씀이지 이것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신앙 문제에까지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군주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시에 군주로서의 책임을 완수해야하는가? 루터는 “하나님을 향하여는 올바른 신뢰와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고 백성들에게는 사랑과 그리스도적인 다스림으로 대해야 하며 신하에게는 이성적으로 맹신하지 않는 이해심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불의에 대하여는 날카로운 엄격함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세속 왕국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검을 사용하여 악을 벌하고 경건한 이들을 보호하며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룩해야할 목표를 지니지만, 하나님의 영적 왕국은 말씀으로 통치하여 경건한 자들을 종말적인 구원을 향하여 이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세속 왕국은 성경에 언급된 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지만(롬13:1, 벧전2:13), 결코 영적인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터는 “세속 왕국과 영적인 왕국, 이 두 가지의 통치영역은 절대로 혼합되어서도 안되고 완전히 따로 떼어서도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통치영역의 지배를 받는 시민이다. 그들이 군주든 소시민이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권력이 있다 해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내와 고난당함으로 대처해야 한다. 세상 권력은 오직 이웃의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이웃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임을 가르치려했던 루터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2. 국가와 교회의 4가지 모델 두 왕국론의 시작은 이러했으나, 그 결과는 근대국가의 군주적 통치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오용된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념의 순수성이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서 잘못 왜곡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근대 들어 종교개혁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선한 복음적 의도를 넘어 선 강력한 군주들의 교회 개입에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가령 예를 들면, 루터의 서한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서한」(1520)에서 교권분립의 대전제가 유사시에는 유보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비상주교(Notbischof)’론이 선포되었다.)는 그들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현실적 고려였다. 가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세속군주들에게 맞서 개혁운동을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은 개혁교회를 지지하는 정치권과의 결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교권 장악을 통해 자신들의 통치권을 강화하려는 군주들의 욕구를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파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가 채택한 으뜸 원리는 ‘한 지역의 종교는 그 지역의 통치자가 결정(cuius regio, eius religio)’한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가들에 따르면 군주의 직위와 권한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늘이 제정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군주에 대한 복종은 민중의 당연한 의무라는 ‘왕권신수설’에 대한 당연한 보증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결과적으로 국가의 교회장악을 가속시키는 기제로 작동하였고 통치자에 대한 민중의 순응을 강조함으로써 곧이어 유럽사회에 등장하게 되는 절대주의 체제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엥겔스(F. Engels)의 “루터는 절대군주정의 대단한 아첨꾼”이나, 휘기스(J. N. Figgis)의 “만일 루터파가 없었다면 루이 14세도 없었을 것”, 혹은 윌리엄 맥거번(W. McGovern)의 말처럼, “나치의 뿌리가 루터의 정치사상에 있다.”는 말에 쉽게 동조하기는 어렵더라도 일면 역사적으로 타당한 면이 있다. 루터가 폭군에 대해 민중이 취할 수 있는 대항은 고난을 감수하고 탄압을 인내하는 소극적 저항뿐이며, 불의한 군주는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인내의 대상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그의 시대적 한계(혹은 어거스틴을 이어 이후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에 이르는 서구신학의 실존적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아무튼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존 스토트(John Stott)에 의하면 4가지 모델로 정리할 수 있다. 곧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국가 만능론’, 교회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신정’, 국가가 교회에게 호의를 베풀고 교회는 그 호의를 계속 받기 위해 국가의 편의를 도모해 주는 타협안인 ‘콘스탄틴 주의’, 그리고 교회와 국가가 건설적인 협력 정신으로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독특한 책임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동반자 관계’가 그것이다. 존 스토트는 로마서 13장 주석을 통해 “우리는 국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유발하기 전까지만 굴복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명하거나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금하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명백한 의무는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것, 곧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국가에 불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율법과 반대되어 제정될 때마다 ‘시민 불복종’은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 바로가 히브리인 산파들에게 갓난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을 때 순종하기를 거부하고(출 1:17), 느부갓네살 왕이 모든 신하에게 금신상에 엎드려 절하라는 포고를 내렸을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순종하기를 거부했으며(단 3장), 다리오 왕이 삼십 일 동안 아무도 자기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을 내렸을 때, 다니엘도 순종하기를 거부했다(단 장6).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핍박하는 국가(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으로 묘사된)는 자신의 권세를 마귀(붉은 용으로 묘사된)에게 준 사탄의 동맹군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존 스토트는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국가의 권위에 굴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 권위는 특별한 목적 그리고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 ‘복음은 폭군과 무정부주의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대적이다.’” 사무엘서는 왕을 세움으로 백성들이 입게 되는 여러 가지 불이익을 열거한다.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에게 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낱낱이 일러주었다. 사무엘은 이렇게 일러주었다.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 그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대나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을 시키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거나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보병의 무기와 기병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다. 또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게도 하고 요리나 과자를 굽는 일도 시킬 것이다.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좋은 것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곡식과 포도에서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 자기의 내시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의 남종 여종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좋은 소와 나귀를 끌어다가 부려먹고 양떼에서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갈 것이며 너희들마저 종으로 삼으리라. 때에 가서야 너희는 너희들이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그 날에 야훼께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공동번역 사무엘상 8:10-18)” 오늘날, 고대의 왕과 민주정의 대통령(president)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대통령은 라틴어 ‘주재하다(praesider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그의 지위가 ‘법 위’인지, ‘법 아래’인지를 통해 왕인지, 대통령인지를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10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 시국을 바라보며 우리는 아직 왕정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게 된다. 120여년 전 1894년 동학혁명 당시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되면 못 가리”라는 민요가 유행했었다. 갑오년(1894년)에 제대로 개혁을 하지 못하면, 을미년(1895년)에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병신년(1896년)이 되면 결국 나라와 백성이 큰일을 당한다는 뜻이다. 2014년 개혁의 실패로 2015년 을미적 거렸고, 2016년은 120년 전 병신년과 같이 역사는 반복되었다. 한문 왕(王)자에 관해 중국 전한 시대의 유학자 동중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개의 가로획은 하늘, 땅, 사람을 뜻하며,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다.” 애초에 왕은 지도자가 아닌 지배자였다. 너무 무서워서 신성한 존재였다. 무력의 독점과 잘 조직된 감시기구, 역모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왕권에 대한 도전의 싹을 자른다. 중세시대는 교황권이 황제의 권력보다 더 거대했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에게 카노사의 굴욕을 안겼던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황은 성령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바 있다. 이른바 ‘교황 무오류설’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 역시 중국 왕조시대에 황제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것은, 황제는 하늘이 내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대 왕들의 ‘무오류에 대한 자기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오늘 세계를, 아니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한비자』는 역린(逆鱗)에 관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용은 사람이 길들여 능히 올라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를 죽인다.” 용이 ‘이명박근혜라는 권력’인지? ‘대한민국 국민’인지? 2016년이 다 가기 전에 결정될 것이다. 3. 인터레그넘 시대의 교회의 역할 현재를 가리켜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 Bauman)은 “지금 세계화 시대는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라고 한다. 로마법에서 사용된 용어로 일종의 권력 이양기로 ‘지금까지 통치하던 왕이 사망했는데 아직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이전의 기간’을 의미한다. 사실 세계화는 영토, 국민, 주권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중심의 질서를 해체했다. 따라서 세계시장과 자본권력이 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와 국민의 주권적 힘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인터레그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다. 따라서 바우만은 “권력을 잃은 국가의 대안으로 도시를 제안”한다. 국가는 애초에 영토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성립된 단위이므로 국가보다 빠르고 쉽게 대처할 수 있는 작은 정치단위인 도시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럽은 도시를 기반으로 한 사회 운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가능하나, 오랫동안 국가 중심의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가령, 축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국가대항 경기에 관심이 많은 반면, 유럽은 도시 단위의 클럽 경기에 열광한다. 어쨌든 국가의 신용이 무너진 이때, 지역이나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살리려는 노력들이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시국에 대한 촛불집회가 수도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되었지만, 지역별 촛불로 분화되어 지역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그 지역 마을 공동체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을을 살리는 일에 헌신할 때,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교회가 제 기능을 할 것이며, 인터레그넘 시대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V. Woolf)는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라고 말한바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K. Marx)와 엥겔스도 “프롤레타리아에게 조국은 없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은 있을까?’라는 국가와 종교에 관한 4차 방정식에 지역 공동체가 ‘정답 아닌 대답’이라고 말해도 될는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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