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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우미나
    2015년 5월 <나의고백>이라는 싱글앨범을 통해서 찬양사역을 시작한 우미나 씨는 보컬트레이너, 방송진행자, 솔리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역자입니다. 처음에는 사역에 대한 마음이 사실 전혀 없던 평범한 성도였지만, 사역을 하면서 ‘주님과 더 가까워지며 그 마음을 배우기 때문에 찬양사역자로 삼으셨구나’라는 확신이 들어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개척교회를 섬겼습니다. 우 씨는 “개척교회에서 부흥을 꿈꾸기보다는 먼저 십자가의 용사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야겠다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으로 인해 주님은 그 곳을 부흥시켜주셨는데, 이런 간증을 통해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힘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작은 개척교회 위주로 사역을 하고 있으며, 청년들이 모이는 곳에서 간증을 나눕니다. 자주 부르는 찬양은 한웅재 목사님의 <그 나무 아래로>라는 곡을 편곡을 했는데, 그 곡을 부른 영상이 화제가 돼 그 영상을 보고 연락이 많이 오고 있어, 어딜 가든 청중들은 그 곡을 부르는 우미나 씨를 많이 좋아하십니다. 서울에서 사역을 위해 부산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합니다. “왜 내려가느냐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곳이자 하나님이 보내신 이 지역을 섬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사역을 하면서 곳곳에서 만나는 선배사역자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중심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참 좋습니다”. 우미나 씨는 하나님이 사용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찬양을 통해서 잘못된 길을 걷는 자들이 하나님 품으로 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일깨웠으면 영혼을 살렸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사역하고 있습니다. 현재 극동방송에서 ‘우미나의 <소울터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야시간 방송으로, 청취자들이 사연과 듣고 싶은 찬양도 보내주시면 힘이 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찬양사역을 하기 전부터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현재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서 보컬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 외의 곳에서 ‘Self. Vocal. Training’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컬레슨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 디아코노스 연기 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 기간 : 2017년 3월 25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2시 (약8주) - 장소 : 극단 디아코노스 연습실 - 모집인원 : 6명 - 수강료 : 180,000원 - 문의 : 석지철 간사 (010-3229-0889) 2. 크리스챤 리더쉽 아카데미 - 모집대상 : 기독청년이면 누구나 - 기간 : 2017년 3월 16일 ~ 6월 1일, 매주 목요일 오후7시30분 - 접수기간 : 2017년 3월 15일 마감 - 접수방법 : CLA 홈페이지에서 접수 http://cla.modoo.at - 위치 : 서면드림스퀘어 - 수강료 : 100,000원 - 문의전화 : 070-8860-1464, 010-2388-1464)
    • 문화
    2017-03-0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4 : 레짐
    “천국에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숙지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1. 앙시앵 레짐: 적의 계보학과 꼰대의 등장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 Lacan)의 상징계(the Symbolic)처럼 우리는 태어나면서 언어와 사회 질서, 혹은 체제(regime)에 속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인 것이다. 불교 문화권에 태어난 사람은 불교 문화를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유교 문화를 상징계로 접한 사람은 유교의 이상을 자연스럽게 그의 가치관이나 사상에 반영할 것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팔레스틴 땅, 식민지 이스라엘과 주변 강대국의 문화와 영향은 예수의 말씀에 녹녹히 녹아있다. 예수의 비유가 그러하며 그의 날선 생명의 말씀이 그러하다. 이토록 레짐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본질적 상황이다. 그리고 이 레짐은 완결되지 않았고 완전하지도 않다. 보수는 기존 체제를 지키려 하고 진보는 그 체제를 변화시키려 한다. 여기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적의 개념을 상정하고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과 ‘누보 레짐(nouveau regime, 혁명 이후의 신체제)’이 체제수호와 변화의 변증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 앙시앵 레짐을 풍자한 그림 가상의 복제물이 실체를 가리고 대신한다고 말하는 장 보드리야르(J. Baudrillard)는 ‘적의 계보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敵)은 최초 단계에서 ‘늑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다음 단계에는 ‘쥐’(제발, 특정인을 연상하지 마시라!)의 형태, 그리고 ‘기생충’의 모습으로 다가오다가 마지막에는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난다.” 늑대는 울타리 밖에 선명한 적으로 존재하니, 비록 그 공포와 폭력의 서슬은 시퍼렇되, 전선이 분명한 만큼 대적하기도 단순하고 쉽다고 한다. 그러나 쥐는 야음을 틈타 은밀히 우리를 갉아먹는다. 지하벙커 같은 음습한 어둠을 좋아하며, 울타리를 아무리 견고하게 둘러쳐도 끈질기게 집안 깊숙이 들어온다. 따라서 우리들의 허술하고 지저분한 비위생성이야말로 쥐에겐 좋은 서식처가 된다. 쥐의 단계를 넘어선 적은 이제 기생충의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부지불식간에 내 몸 안에 들어와 기생과 숙주의 관계로 진화한다. 숙주로 하여금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게 하거나,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긴다. 따라서 내 몸속의 적은 나의 탐욕을 조장하여 나 자신을 살찌운다. 숙주인 나는 날로 허허로워 치열하게 탐욕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생충만 살찌울 뿐이다. 그러나 이 단계까지 적은 나와 구별되는 타자성을 극복하지 못한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대적하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 적이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없어진다. 적이 나인지, 내가 적인지 헷갈린다. 적의 낯선 타자성이 사라지고 어느덧 내 안에 내재화된다. 심지어 적은 나로 하여금 나를 타자화하여 주체를 전복시킨다. 소외와 일탈이라는 비정상성이 일상화되어 정상성으로 둔갑한다. 일종의 착란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실 2017년 2월의 대한민국은 지금 체제와 사람 모두 착란상태에 빠져있다. 상징계의 이러한 착란상태에 항상 라캉의 상상계(The Imaginary, 타자를 자신으로 오인하는 허구적인 주체의 단계)로 퇴보하며 상징계를 뒤덮는 꼰대가 등장한다. 꼰대는 기성세대나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로도 쓰였던 말인데, 프랑스 단어 ‘콩테(comte, 백작)’에서 유래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백작, 공작, 후작 등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 스스로를 콩테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이를 비웃던 백성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고 불렀던 것이다. 꼰대는 심리학적으로 ‘자기만 옳다고 느끼는 경향(sense of self rightness)’, ‘스스로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경향(sense of self entitlement)’을 말한다. 기본적인 상식과 통념을 부정하면서 전문가의 권위만을 내세운다. 자기만 옳고 똑똑하며, 돈과 명예까지 가졌으니 대접받아야 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 이러한 꼰대는 널려있다. 나이, 성별과 무관하게 계급장을 내세우고, 대접받고 싶어 한다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가장 대표적인 꼰대인 굉꼰(굉장한 꼰대), 젊꼰(젊은 꼰대). 여꼰(여자 꼰대) 등. 따라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대화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고 여기면 꼰대가 되어간다는 위험신호라고 할 수 있다.¹ 그러나 문제는 이 꼰대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로, 곧 레짐으로 확장될 때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분열증적 자본주의의 폭력 사회 체제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힐링(마음 치유)’을 넘어 ‘권력의 미시적 짜임’을 날카롭게 들춰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분열증 자본주의와 디스토피아 들뢰즈/가타리(G. Deleuze/F. Gautari)는 『천 개의 고원』 (새물결, 2003)에서 “초점은 장군이 아니라 하급 장교들, 하사관들, 내 안에 있는 병사, 심술궂은 자이며, 이들 각각은 나름대로 성향들, 극들, 갈등들, 힘의 관계를 갖고 있다 … 억압당하는 자가 억압의 체계 속에서 항상 능동적인 자리를 취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마조히즘이 아니라 바로 이 미시적 짜임이다.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들은 제3세계에 대한 착취, 독재자들의 무장, 대기 오염에 능동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리좀-나무, 탈영토화-재영토화, 무리-군중, 사본-지도, 분자-그램분자, 소수-다수, 유목성-정주성, 전쟁 기계-국가 장치, 매끈한 판-홈이 팬 판’과 같은 무수한 이항 대립의 쌍을 변주하며, 사유의 방식, 기능, 양태들에 대해 설명하는(여기에는 무수한 자의적 개념이 춤추고 있다. 가령 리좀, 동물-되기, 소수-되기, 영토화와 탈영토화, 포획, 탈주선, 지층과 지층화, 기관 없는 신체, 얼굴성, 추상기계, 배치, 매끈한 공간과 홈이 팬 공간, 공리계의 접합접속 등등) 들뢰즈&가타리는 ‘차이의 철학’, 혹은 ‘욕망의 미시정치학’에 대해 말하기 위해 생물학과 언어학과 음악학과 경제학과 정치학을 가로지르며 다양체가 의식과 무의식, 자연과 역사,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어떻게 뛰어 넘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에서 분열증 자체이다. 주기적으로 위기는 돌아오고 증식하고 소멸하며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환투기와 주식 투매의 미친 바람이 불고, 자본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순간 휘몰아쳤다가 자양분을 빨아먹고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자본의 유동적 흐름은 포식자처럼 취약한 외환시장과 주식 거래를 삼켜버린 뒤 소화할 수 없는 뼈들만 뱉어낸다. 전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라는 정글에 방목된 사자들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운용되는 토끼들을 사냥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의 사자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두에 인용했듯이 ‘지옥에 가는 길을 숙지’하면 되는 것인가? 들뢰즈/가타리는 이렇게 말한다. “점유하고, 거주하며, 보존하는 영토에서 끊임없이 달아나라!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늑대 무리로 달아나라! 무리로 달아나야만 하나의 도주로가 아니라 천 개의 도주로를 만들 수 있다. 하나는 붙잡히지만 천 개는 붙잡히지 않는다. 경로를 따르지 말고 그것을 자주 이탈하라! 내가 어디로 움직일지 그들이 알 수 없게 하라! 정주민들이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라!” 머리둘 곳 없는 방랑자 예수와 그와 함께한 세리와 죄인들의 모습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따라서 『천 개의 고원』은 화폐와 노동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기계’의 포획에서 도망가도록 부추긴다. 국가-기계는 수많은 금기의 거미줄을 만든다. 제도들과 정책, 법과 치안의 그물로 국민을 포획하고 국가라는 지층에 편입시킨다. 따라서 조세와 병역 의무를 지우는 국가의 다양한 포획 장치로부터, 자본주의의 기계들(이를테면 정부, 한국은행, 군대, 나아가 학교, 종교단체 등)로부터 도망가라. 그때 구원의 문이 열릴 것이다. 아마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한(마태 2:3)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말이다.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므로, 디스토피아는 ‘어두운 미래 또는 현실’이 된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취업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 해법이 보이지 않는 교육·부동산 문제 등을 배경으로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와 담론에서 디스토피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어려웠지만 앞날에 대해선 낙관적이었던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역동감 있는 문화 콘텐츠와 상반되는 문화적 흐름이었는데, 이는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에 더 급진적 디스토피아로 전락했다. 디스토피아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체제 디스토피아, 인간 디스토피아, 문명디스토피아’가 그것이다. 체제 디스토피아는 ‘개선이 거의 불가능한 억압적인 체제’와 관련된다. 국가와 거대자본은 물론이고, 실생활에서 고통을 느끼는 모든 분야가 그 대상이 된다. 인간 디스토피아는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과 환멸로 인한 디스토피아이다. 미시적이나, 사회 발전과 문명의 주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문명 디스토피아는 현대 문명의 비관적인 전망과 연관되어 있다.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 새 전염병, 외계인의 습격 등이 단골 소재가 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개신교는 물론 대한민국은 지금 ‘체제 디스토피아’의 최전성기가 무너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과 이후 해경·청와대·경찰·검찰·정치권 등 각 체제가 보여준 모습은 ‘체제 디스토피아의 완결판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김기춘-황교안-우병우 라인은 그 마지막 보루이다. 또한 ‘인간 디스토피아’는 그 정점을 찍었다. 청문회에 등장한 기득권층 인사와 고위 관료 등의 일그러진 모습을 통해 더 이상의 사회 발전과 문명의 주체를 긍정 할 수 있는 인간 유토피아를 상실했다. 다만, ‘문명 디스토피아’를 통해 다중들이 조용히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과 시의 세상을 누보 레짐으로 열 것이다. 3. 누보 레짐: 음악과 시의 시대로 음악은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음악의 음들에 관해 고대 영지주의자들은 “음악의 음들은 저마다 우주, 혹은 천문학적 공간 속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어떤 것과 상응한다.”라고 말한다. 가령 레는 ‘레지나 아스트리스(별들의 여왕인 달)’, 미는 ‘믹스투스 오르비스(선과 악이 섞여 있는 장소인 지구)’, 파는 ‘파툼(운명)’, 솔은 ‘솔라리스(태앙)’, 라는 ‘락테우스 오르비스(은하수)’, 시는 ‘시데루에스 오르비스(별이 총총한 하늘)’, 도는 ‘도미누스(신)’. 따라서 ‘달-지구-운명-태양-은하수-하늘-신’의 단계로 상승하는 음계를 통해 영적 지식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달과 지구에 국한된 인간의 운명은 태양과 은하수, 하늘에 속한 신의 레짐으로 귀속될 때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그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시 해설집 『홀림 떨림 울림』 (나남, 2013)에서 이영광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시는 먼저 읽는 이에게서 생각이란 걸 빼앗아 갔다가는, 천천히 되돌려주는 것 같다. 그 찌릿찌릿한 수용과정은 ‘홀림-떨림-울림’으로 진행된다.” 시도 그렇지만, 2017년은 타자의 아픔에 홀려 가슴이 떨리고, 몸 전체에 큰 울림으로 남아 울림이 홀림이 되어 더 큰 떨림이 되기를 바란다. 이영광 시인도 “지상의 영화를 찬양하는 종교가 없듯이 현세의 복락을 지지하는 시도 근본적으로는 없고, … 어떤 종교는 고통 그것도 허망이라고 가르치지만, 모든 시는 허망을 고통이라 느끼는 곳에서부터 말을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예수의 십자가는 결국 타자의 아픔에 홀려, 자신을 그 고통 가운데 내어주었고, 그 숭고한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큰 떨림을 주었고, 이제 시대를 넘어 큰 울림으로 변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홀림은 계이름 ‘레’로부터 시작하여 ‘도’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 목하, 음악과 시의 시대가 이 앙시앵 레짐의 시대, 곧 적의 계보학과 꼰대들의 시대에 새 희망을 주는 것이다. ------------------------------------------------------------------------------------------------------------- (각주) 1)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 5가지에 관해 북키닷컴 개발자인 이준행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나이를 먼저 묻지 마라. 한국 사회에서 버젓이 나이를 묻는 것은 상대방과 위아래를 겨루자는 의미이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음을 상대에게 주지시키고,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음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둘째, 함부로 호구조사를 하거나 삶에 참견하지 마라. 차라리 좋아하는 음식이나 동물을 물어보라. 셋째, 자랑을 늘어놓지 마라. 당신의 인생 자랑은 ‘노잼’이다. 당신이 살아온 시절에 대한 자랑은 당신에게만 유효하다. 당신의 인맥 자랑은 당신에게 잘 보이라는 알량한 호소임을 상대방은 너무나도 잘 알아챈다. 어느 것으로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 넷째, ‘딸 같아서 조언하는데’ 같은 수사는 붙이지 마라.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는 이야기도 먼저 꺼내지 마라. 당신이 걸어온 길이 매력적이라면 상대가 알아서 물어올 것이다. 다섯째, 나이나 지위로 대우받으려 하지 마라. 나이나 지위가 없어도 타인에게 대우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이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섯째, 스스로가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라. 나이로 서열을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꼰대성이란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쉽게 꺼내는 내 안의 괴물과도 같다. 그 괴물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꼰대 탈출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상대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괴물을 늘 경계하라. 그러면 당신은 꼰대가 아닌 어른에 가까워질 것이다.” 최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7-02-16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유랑창작극단 디아코노스
    현실과 꿈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꿈을 가져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무대에서 보여주길 기도하는 이들, 바로 극단 <디아코노스>의 사람들이다. 현재 10명의 전임간사들과 다수의 인턴단원으로 구성된 극단은 1996년 창단이후 1000회가 넘는 뮤지컬, 연극, 교육극 등 수많은 공연을 해왔다. 타극단과 그들의 다른점은 무엇보다 ‘공연장소’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극단이라고 하면 시설이 갖춰진 공연장에 티켓을 들고 가야 만날 수 있지만, 디아코노스는 극장뿐 아니라 학교, 교회, 어린이집까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 무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덕에 ‘연기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하는 간사들. 새벽에 공연장소로 이동해 장비를 옮기고, 음향과 조명으로 무대를 만들어 공연 한 뒤 철거 작업까지 마치면 1일 1회 공연도 바쁘다. 배우가 스탭이 되는 순간이다. 또한 그들은 제작자가 된다. 창작극을 만들기 위해 극작, 작곡, 안무까지 가내수공업처럼 간사들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행사를 도와주는 조명과 음향 렌탈, 일반인을 대상으로 8주간 기초연기와 공연을 올려주는 디코 드라마스쿨을 기획하는 등 24시간이 바쁘기만 하다. 쉽지 않은 길을 걷는 그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걸까? “디아코노스가 헬라어로 집사, 봉사자잖아요. 열심히 일해야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상업주의 대신 진실한 꿈과 행복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말이죠.” ‘Again 1907’ 해운대 백사장에서 복음으로의 뜨거운 회귀를 외치며(2007년), 부산크리스마스문화축제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오심을 축하하고(2010년), 부산국제연극제 ‘GO! 아비뇽 OFF' 에서는 상처입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풀어주며(2013년), 국민행복캠페인 ‘문화 나를 춤추게 하라’에서는 대상을 수상해(2016년) 공연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극단 디아코노스. 극단 디아코노스의 힘찬 걸음을 2017년도 응원해본다. 사역문의:010-2840-4834(윤은대실장)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2월19일(주일) 오후2시 : 모례교회 2월26일(주일) 오후2시 : 통영교회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2월16일(목)~19일(월) : 제주도 순회 공연 3 이창주 (찬양사역자 : 010-8516-2594) 2월20일(월) 오후7시 : YIM 개학부흥회 2월21일(화) 오후7시 : 호산나교회(부산극동방송 드림스테이션 공개방송) 4.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2월17일(금) 오후1시 : 세광병원 2월19일(주일) 오전11시, 오후2시 : 진해맑은교회 2월22일(수) : 부산 CMBC 2월26일(주일): 00 부대 5.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2월16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2월23일(목) 오후8시 : 기장제일교회 6. 우미나(찬양사역자 : 010-6608-6203) 2월18일(토) : 예수정교회 2월19일(주일) 오후2시 : 모레교회
    • 문화
    2017-02-16
  • [기독교 교양 읽기 23] “교회건물은 관계와 소통이 이뤄지는 곳!”
    “교회건물의 우상화를 비판한다” 한때 우리나라에 유행했던, 인근 교회 교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메가처치의 문제점을 비판한 책이다. 구약 시대의 ‘성전’과 예수님 이후의 ‘예배당’은 신학적으로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는 예배당을 지을 때면 으레 ‘성전 봉헌’을 강조한다. 목회자들이 교회 건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교회성장론과 관련이 있다.교회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는 예배, 하나님 말씀과 복음의 증언으로서 증거, 성도들의 거룩한 교통으로서 친교, 세상을 향한 섬김의 실천으로서 봉사의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다.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며, 이 세상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 참 교회의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물리적 공간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문제점 또한 지적한다. 예배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먼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이미 신명기에 기록되었다. 신명기는 희생 제사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언급한다. 예배 행위가 있지만 그 공동체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때 그 예배는 하나님이 더 이상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끝으로 서울 강남의 ‘사랑의교회’ 건축 예를 들면서 현실적인 법질서와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회당은 하나의 건축물이므로 현행 법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과 예배당》 || 공동저자인 김동춘은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권연경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조석민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유정훈은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이다. 대장간, 2016. 7,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특별손님: 강대화 장로(‘건축사사무소 토탈’ 대표) ▲ ‘건축사사무소 토탈’ 대표인 강대화 장로를 특별손님으로 초대, 교회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반인들은 생각지 못하는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해주었다. 왼쪽에서부터 김수성, 김현호, 강대화 장로, 김길구. # 대형교회도 필요하나 고급화가 문제김길구 : 최근 부산에도 대형교회당이 건축됨으로써 교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었고, 이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책은 교회의 본질에 대해 신학적으로 언급하였으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실천적인 관점에서 교회건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신선한 시각으로 교회건축을 해온 건축사인 강대화 장로를 초대했습니다(박수).김현호 : 우리 사회의 현상 중 하나로 ‘과잉’ 아니면 ‘결핍’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교회도 과잉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 붉은 색 십자가가 우리나라 도시의 밤을 온통 장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가고 싶은 교회는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김수성 : 결국 한국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겠죠. 최근 대형교회에 대한 문제점이 언론에 자주 언급되었습니다.강대화 : 저는 개인적으로 대형교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의 역할도 있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 있다면, 사람들이 건물의 대형화로 인해 화려하고 사치스럽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대형화하면서 필연적이기도 하지만 첨단 설비, 최고의 마감으로 건축되게 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비가 소요되는 것이지요. 막대한 비용 확보는 자칫 물질이 우선시됨으로써 교회가 물질주의 또는 세속화로 흐르게 되고, 교회에서도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반(反)교회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김길구 : 제사장 중심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성전과, 회중이 함께하면서 말씀과 성만찬 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약 교회는 기능과 행위 주체의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공간적 의미의 성전이 공동체 중심의 교회당으로 바뀐 것이죠. 그런데 한국 교회는 교회건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강대화 : 건물 설계를 하다보면 ‘호텔’처럼 해달라는 요구를 종종 듣습니다. 사업장의 영업적 차원이기도 하고 최고의 서비스 수요를 공급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풍족해진 우리 사회의 소비 수요현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근거도 없는 과한 마감 장식으로 건물을 화려하게만 치장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를 소비하는 현상을 드러냅니다.김수성 :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만인이 현금을 통해 귀족이 되는 세상, 귀족의 환상을 파는 것이 백화점이요, 호텔이다.”[강심호,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 48쪽] #영상시스템이 오히려 ‘빛’을 차단해김현호 : 독서캠프를 하면서 몇몇 교회당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당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도시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강대화 : 한정된 대지 안에서 도시 속의 교회가 자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택이나 상가, 술집, 다세대주택 같은 다가구주택 등이 인접해 있고, 주차장 같이 번잡한 도로에서 교회로 바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 등 주위환경에서 경건성을 기대하기란 무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건축은 타 건물건축보다 규제가 더욱 까다로워, 환경과 법적인 조건들을 만족하기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는 작업이기도 합니다.김길구 : 요즘 교회 건축이 ‘예배의 이벤트화’ 또는 ‘예배의 엔터테인먼트화’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닌가요?강대화 :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장소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여유 공간입니다. 그러데 비싼 지가로 인해 여유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다보니 고밀도로 건축을 하게 되고 기능에만 충실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유 없는 공간구조가 목회자와 교인들의 의식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예배의 이벤트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봅니다.김현호 : 교회란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당은 말씀이 아닌 ‘설교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영성을 담을 수 있는 공간,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강대화 : 교회를 새로 지을 때 대부분 외형이 눈에 띄길 원합니다. 높은 종탑으로 돋보이기도 하지만 주변가로에서는 위압적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적인 영성은 교회건물의 다소곳한 표정, 환영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길에서 교회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부터 매개의 공간으로, 과정의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실내에서의 가장 큰 문제로는 빔 프로젝터 스크린과 같은 영상시스템을 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예배당에 빛이 들어올 개구부(창문)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즉, 예배공간이 폐쇄된 공간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성과도 연관됩니다. 기독교에서 빛은 진리를 의미하고, 은총의 통로라는 느낌을 주는 신비감, 체험감의 접촉점이기도 합니다. 영상시스템을 중시하다보니 오히려 이 빛을 모두 막아버렸습니다. 김수성 : 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편리성은 선함과 전혀 관계가 없죠. 그런데도 현대사회는 너무 편리함을 추구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는데, 교회의 영성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김길구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도 130년이 넘었는데, 이제 교회 건축물도 우리 것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요?강대화 : 건축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으로 인해 타의에 의해 근대를 맞이하였고 현대로 넘어왔습니다. 한국 전통건축은 독특한 공간배치와 함께 자연환경 속에 스며드는 뛰어난 건축술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것으로 용해하고 재해석하며 진화하여야 하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랜드스케이프 고려하는 건축하여야김현호 : 신앙의 유산 차원에서 교회건축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회를 건축함에 있어 종교개혁 정신이 투영돼,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공간,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서로의 신앙이 깊어질 수 있는 장소로서의 예배당이기를 바랍니다.김길구 : 교회는 예배의 요소가 잘 어우러지는 성스러운 공간이기도 해야 하는데, 마무리로 바람직한 교회건축을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강대화 : 교회건물은 관계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공간, 즉 매개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 사치, 과시가 아니라 예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상징적이든 형태적이든 의미적이든 투명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접근성과 친밀성이고요, 그와 더불어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공공성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건축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건축분야에서 말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 개념도 적극 고려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김길구 : 오늘 강대화 장로님을 모신 덕분에 전문적인 교회 건축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오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김선주 목사의 《목사 사용설명서》(대장간, 2016)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한국교회 건축과 공공성》 / 곽호철 외 / 동연출판사 《교회건축과 예배 공간》 / 제임스 화이트 외 / 새물결플러스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7-02-03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편지는 1998년 창단된 남성보컬선교찬양팀입니다. 이 팀의 멤버인 문지희, 박인규 집사는 노래하는순례자 찬양팀으로도 활동을 하다가 새로운 형태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찬양팀을 재창단해 보다 전문적인 남성보컬팀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문지희 집사는 1981년부터 노래하는순례자팀의 창단멤버이자 단장으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 <그리스도의 편지>팀까지 36년을 한결같이 복음에 대한 열정과 주님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찬양사역을 이어왔기에 후배들의 모범이 되는 사역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팀은 바뀌었지만 <노래하는 순례자>의 사역정신을 그대로 이어가서, 개척교회, 군부대, 농어촌 집회 등 힘들고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찬양과 간증으로 기쁨을 전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후진양성에도 늘 노력하는 팀으로서, 주요 집회 때마다 <Gospel Love>라는 이름으로 신인 사역자들을 동참시켜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며, 각종 기독교방송 프로그램에의 진행을 맡아 전파선교사의 역할도 담당하는 부산, 경남지역의 문화선교에 많은 일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한편 <소나무 선교회>라는 선교팀을 조직하고, 홍보대사를 맡아 해외선교의 귀한 일을 담당하는데 주로 태국에 개척교회 설립, 학교후원, 현지인교회 후원을 하고 있으며 매년 태국을 찾아가서 찬양으로도 돕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2003년부터 매년 이어온<사랑의 쌀 나누기>행사를 올해에는 1월 21일 극동방송 아트홀에서 개최하며 많은 사역자들에게 무대의 기회를 주고, 또 후원과 팀이 모아온 재정을 합쳐 쌀300~350포대를 지역사회에 나누어 주는 의미 있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평범한 성도이지만 그 사역하는 모습과 열정은 어느 목회자보다 더 뛰어나며, 화려한 무대나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고 귀한 복음에 대한 사명감으로 한결같이 사역을 담당하는 귀한 사명자들입니다. (집회문의 :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부산기독문화사역자 일정>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2월5일(주일) 오후1시30분 : 한사랑교회 2월12일(주일) 오후3시 : 은성교회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2월5일(주일) 오전11시30분 : 초광교회 2월12일(주일) 오전11시 : 누리교회 2월12일(주일) 오후2시 : 이진용맘병원 3. 김인희 찬양사역자(010-2843-3872) 2월12일(주일) 오후3시 : 신흥교회 4. 이창주 찬양사역자(010-8516-2594) 2월12일(주일) 오후2시 : 사랑과은혜의교회 <김인희 1집 음반 '기쁨 안에' 발매 소식> 김인희는 클래식 보컬리스트임과 동시에 CCM 보컬로 새롭게 활동영역을 넓혀 전문 찬양사역자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이번 음반을 통해 특유의 따뜻하고 풍성한 울림의 목소리로 지친 영혼을 위로하며 기쁨안에 모든 것 담아내신 주님을 노래하고 있다. 민호기 목사의 프로듀싱 아래 국내 최정상의 뮤지션 강수호, 이태윤, 임선호 등의 연주와 민호기, 이권희, 이윤경, 손상민 등 여러 명의 작곡가가 함께 참여하여 다양한 색채를 드러내며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컨템포러리한 워십뮤직의 홍수 속에서 단비같이 촉촉하게 우리의 마음을 적셔 줄 위로의 메세지와 그녀만의 목소리로 가슴 따뜻한 찬양의 향연이 펼쳐진다.
    • 문화
    2017-02-0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3 : 닭
    “2016년 KBS 연기대상에 베스트커플 상을 받은 뒤 연예인 차인표씨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50년을 살면서 깨달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저는 여기에 넷째를 하나 더하고자 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결코 교회와 교인을 이길 수 없다.’” (최병학 목사) “2017년도 트렌드 키워드 슬로건은 ‘CHICKEN RUN’” (김난도 외, 『트렌드코리아 2017』) 1. 정유년, 군주민수에서 사필귀정으로 지난해 연말 <교수신문>은 2016년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4년간 선정된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그리고 그 당시 정치권을 강타한 사건들을 곁들여 보면 이렇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공약철회, 국정원 댓글 사건,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거짓이 진실을 가린다)-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파동,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어지럽고 무도하다)-메르스 대응 무능, 배신의 정치 찍어내기, 2016년 군주민수-촛불집회, 탄핵 등.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며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누구나 흔히 아는 사자성어인 ‘사필귀정(事必歸正) 곧, “모든 일이 반드시 옳은 길로 돌아가는”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2. 정유년 각자 도생의 시대, ‘CHICKEN RUN’ 해마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한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매년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2017년에는 어떤 트렌드가 한국 사회를 주도할 것인가? 『트렌드 코리아 2017』 (미래의 창)은 2017년의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를 ‘CHICKEN RUN’으로 선정하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비상의 날개를 펴고 극적으로 울타리를 탈출한 애니메이션 영화 <치킨런>(2000)의 주인공들처럼 철조망 울타리에 갇힌 것같이 정체와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2017년에는 새롭게 비상하길 기원한 것이다. ¹ 1) C’mon, YOLO! 지금 이 순간, ‘욜로 라이프’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는 의미이다. 카르페 디엄(carpe Diem)이 삶의 태도라면 욜로는 태도이다. 자기지향적이고 현재지향적인 삶의 스타일로 후회없이 즐기고 사랑하고 배우라는 삶의 철학이자 이상향을 향한 실천을 중시하는 태도이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미래를 향한 기대를 접은 젊은이들이 부르짖는 절망의 외침인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희망의 외침이기도 하다. 2) Heading to ‘B+ Premium’ 새로운 ‘B+ 프리미엄’ 가격 대비 성능이 구매의 핵심 고려요인이 된 가성비의 시대의 상징으로 단순히 가격을 낮춰 가성비를 확보하기보다는 좀 더 프리미엄한 가치를 제공하고 제 각격을 받는 방향으로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도 불황의 벽을 넘는 사다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3) I Am the ‘Pick-me’ Generation 나는 ‘픽미세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지만 순위대로 피라미드의 자리가 주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선택(pick-me)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고단한 세대를 잘 말해주고 있다. 4) ‘Calm-Tech’, Felt but not Seen 보이지 않는 배려 기술, ‘캄테크’ 공기가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함께 공존하듯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지원하는 기기들을 통해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조용한 기술을 말한다. 캄테크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사람 사이에 인터랙션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고 조용한 만큼 그 가능성과 파급력 또한 가늠하기 힘든 이 신기술은 얼마나 인간지향적인 형태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5) Key to Success: Sales 영업의 시대가 온다 인정과 막무가내식 설득에 호소하는 주먹구구식 관계의 영업을 넘어 다양한 매체, 접점, 채널의 과학적 분석을 통한 영업의 과학화가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다가오고 있다. 6) Era of ‘Aloners’ 내멋대로 ‘1코노미’ 철저히 혼자만을 위하면서도 때로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이들로, 1인과 이코노미(economy)의 조합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혼자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얼로너(aloners)’라고 한다.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혼자 밥을 먹고 있지만 다른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SNS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7) No Give Up, No Live Up 버려야 산다, 바이바이 센세이션 장기불황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일본에서는 ‘사토리족’의 버리는 삶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소유보다는 향유, 공유의 가치를 전파한다. 한국의 젊은 유목민적 물질주의자들이 이 버리는 삶에 동참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자기 집에 비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나 대여를 통해 그때그때 꺼내쓰는 ‘삶의 클라우드’현상을 만들고 있다. 8) Rebuilding Consumertopia 소비자가 만드는 수요중심시장 소비자가 시장의 권력으로 이동하여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한 제품과 서비스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타났다. 9) User Experience Matters 경험 is 뭔들 포켓몬GO 게임을 위해 미국인들이 걸어 다닌 총량이 1,440억 걸음(지구와 달 사이를 143회 왕복하는 길이)으로 집계됐다.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든 비결은 바로 경험과 재미이다. 물건을 파는 것에서 이제 경험을 파는 것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 체험하거나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10) No One Backs You Up 각자도생의 시대 전에 없던 심각한 자연재해와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은 깊어 가는데, 정부의 문제해결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국민들은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혼자 모색하고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말 그대로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도모해야한다.”는 뜻이다. “나는 억울하다”는 승복부재의 감정과 “나는 네가 싫다”는 타자혐오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는 ‘욜로 라이프’와 ‘각자도생’이다. 어쩌면 이 두 키워드는 동일한 현실 자각을 기반으로 한 트렌드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을 건 나밖에 없는 세상, 국가도 사회도 가족도 나를 보호해줄 수 없고,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절박한 심정이 지극히 현재지향적인 소비의 모습으로 ‘욜로 라이프’로 나타난 것이다. 3. 촛불의 미학 시인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철학자이며, 철학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마지막 저서 『촛불의 미학』(문예출판사, 2001)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꽃은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생성을 향해 긴장되어 있는 세계이다. 몽상가는 거기에서 그 자신의 존재와 그 자신의 생성을 보는 것이다. 불꽃 속에서 공간은 움직이며, 시간은 출렁거린다. 빛이 떨면 모든 것이 떤다. 불의 생성은 모든 생성 가운데 가장 극적이며 가장 생생한 것이 아닐까? 불에서 그것을 상상한다면 세계의 걸음은 빠르다. 그리하여 철학자가 촛불 앞에서 세계에 대해 꿈꿀 때는 모든 것을-폭력이나 평화까지도-꿈꿀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의 결합을 시로 메꾸고 시의 결함을 과학으로 메꾸려는 바슐라르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불꽃은 우리들에게 상상할 것을 강요한다. 불꽃 앞에서 꿈꿀 때, 사람이 상상한 것에 견주어 본다면 사람이 인지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불꽃은 그 은유와 이마쥬의 가치를 매우 다양한 명상의 영역 안에 두고 있다. 어느 것이라도 삶을 나타내는 동사의 주어로서 불꽃을 취해보라. 촛불은 그 동사에 한층 생기를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은 다른 것과 융합하려고 하는데 반해 촛불은 결코 합치려고 하지 않는다. 혼자 타면서 혼자 꿈꾸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 그 자체이다. 사실 18세기 말엽 어떤 불꽃의 물리학자가 두 개의 촛불의 불꽃을 합치시키려고 헛되이 시도한적이 있었다. 그는 심지에 심지를 맞대고 촛불을 켰던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고독한 불꽃은 다만 더 커지고 상승하는 일에만 취하여 합일되는 것 따위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고 각각 그 뾰족함의 미묘함을 그 꼭대기에 지키면서 수직성의 에네르기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 물리학자의 실험 속에서 볼 수 있는 서로 힘을 합쳐 불태우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두 개의 정열적인 마음은 얼마나 불행한 상징인가! 적어도 불꽃은 몽상가에 있어서 스스로의 생성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존재의 상징인 것이다! 불꽃은 생성으로서의 존재, 존재로서의 생성이다. 바슐라르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는 급속도로 진보하고, 시대의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희미한 빛이나 타다 남은 촛불의 시대는 지났다. 쓰이게 되지 않게 된 사물에 집착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꿈일 뿐이다. (……) 전등은, 기름으로 빛을 내는 저 살아있는 램프의 몽상을 우리들에게 결코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은 관리를 받는 빛의 시대에 들어왔다. 우리들의 유일한 역할은 전등의 스위치를 돌리는 일뿐이다. 우리들은 기계적인 동작의 기계적인 주체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정당한 긍지를 가지고 점화한다는 동사의 주어가 되기 위하여 그 행위를 이롭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바슐라르여, 걱정 마시라. 대한민국에 다시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생성으로서의 존재가 존재로서의 생성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촛불 앞에서 세계에 대해 꿈을 꿀 것이고, 그 촛불은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될 것이다. 4.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러시아가 낳은 최대의 영상 시인이자 현대 러시아의 가장 역량 있는 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비어 있는 세계의 지붕 밑에 고독하게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로 연결된 수많은 끈으로 이어진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어떤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세계와 인류의 운명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촛불의 상징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타르코프스키는 “전쟁과 사회적 궁핍, 갖가지 잔인한 고통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며 서로를 발견하는 일은 인간의 성스러운 의무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광화문과 서면 광장에서 촛불을 통해 만난 서로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론』에서 칼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의 본질은 여가시간이다. 자본주의적 야만은 이 여가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바꾼 것(잉여가치)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야만을 문명의 길로 돌리는 첫걸음은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헬조선, 피로사회, 경제적 절망, 양극화 모두는 여가시간의 부족에서 나왔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경제적 절망도 깊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790시간이며 독일은 1,371시간(2015년 기준)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으로 2,100시간이라고 한다. 반기문 전유엔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등이 되어라, 이등은 패배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돌진 때 젊은 시절을 보낸 한국의 노인들이 자식, 순주한테 흔히 하는 조언과 닮았다. ‘앞만 보고 뛰어라’와 ‘여가가 있는 삶’은 늘 항상 대립된다. 그러나 지금 대한한국에 필요한 건 야간 노동과 밤잠을 줄이는 학습인가? 혹은 법이 정한 노동과 적절한 휴식, 짧지만 경쟁적이지 않고 협동을 기르는 창의적 학습 분위기인가? 탄핵 이후의 국면은 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것이다. 촛불의 명예혁명이 문명으로 나갈지 야만으로 다시 뒷걸음질 칠지는 시대의식을 올바로 읽는 후보를 국민들이 제대로 뽑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마르크스 다음의 말은 의미있는 말이다. “이론이 민중에게서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오로지 이들 민중이 자신들의 필요를 실현시키는 정도에 달려 있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80인 켄 로치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렇다. 이명박근혜 시대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정유년, 붉은 닭들이여, CHICKEN RUN! 각주1)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악독한 트위디 아줌마가 운영하는 영국의 어느 양계장. 여기 사는 닭들은 언제 트위디의 밥상에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다. 이중 가장 영리한 암탉 진저는 호시탐탐 동료들을 이끌고 탈출할 기회를 엿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고초를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달걀 판 돈으로는 성에 차지 않던 트위디는 거대한 치킨 파이 기계를 들여놓고 닭들을 대량 학살할 음모를 꾸민다. 치킨 파이 기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진저는 탈출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수탉 록키와 함께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탈주 계획을 세운다는 이야기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7-01-19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기독교 문화 공간 - 프라미스랜드
    1998년 시작된 프라미스랜드는 2017년 19주년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 많은 이들의 약속과 추억을 간직한 프라미스랜드는 동광교회 김승학·최정희 두 분에 의해 시작되었고 많은 섬김과 후원, 헌신으로 19년간 지켜오게 되었습니다. 남포동 유흥 밀집 지역에서 청년과 청소년의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시작된 ‘약속의 땅’이 이제는 공간사역이라는 새로운 사역의 한 분야로 2017년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10개의 개척교회가 프라미스랜드에서 시작되어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아갔고 선교단체나 모임, 행사, 콘서트, 파티 등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프라미스랜드는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30-11 용두산공원 입구, 중앙성당 맞은편 위치해 있으며, 대관을 하려면 www,promiseland.co.kr로 대관신청을 하면 됩니다. 테이블 7개, 프라스틱 의자 20개와 나무의자 20개, 음향 및 영상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50여명 수용 가능의 공간, 주방, 작은 방,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간은 미술전시, 사진전시, 콘서트, 모임이 가능한 위 공간과 작은 모임,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아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018년,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모아두었던 50여권의 방명록을 책으로 출판할 예정으로, 그동안 프라미스랜드와 함께한 많은 분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2년에 한번 씩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진행해온 P.A.F(Promiseland Art Festival)를 2017년 올해에도 잘 준비해서 많은 이들의 문화의 소통공간이 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월드프라미스랜드로 나아갈 첫발걸음으로 태국 프라미스랜드 출범식을 가지고 그와 함께 월드프라미스랜드 오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간이 아닌 문화로 정착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106-21-0689-274 프라미스랜드 박후진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월21일~30일)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1월21일(토) 오후3시 : 부산극동방송공개홀, 사랑의쌀 나누기 콘서트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월13일(금)~24일(화) : 필리핀 단기 선교 3.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월22일(주일) 오전11시 : 용인동일교회 1월22일(주일) 오후2시 : 동탄 친구들교회 1월25일(수) 오전11시 : 광주부림교회 학생연합수련회 1월29일(주일) 오전11시 : 김해해원학교 4.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월21일(토) 오후5시 : 기장교회, 기장군다음세대를 위한 연합찬양집회 5. 2017년 예배와 찬양학교일시 : 2017년 1월2일 개강 3주간 월,화,목 PM 6:30 (1월/23,24,26일)장소 : 아름다운교회당 / 가야교회교육관(전.부전교회당)강사 : 김상건 목사(YIM대표, 아름다운교회 담임, Youth KOSTA 강사)대상 : 각 교회 예배인도자, 찬양팀, 예배와찬양 관심자문의 : YIM 사무실 (051-626-4862), 권진덕 간사 (010-3480-7894)
    • 문화
    2017-01-19
  • [기독교 교양 읽기 22] 방탕한 동생을 찾아 집을 나서는 형이 되길!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는 하나님! 저자는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 비유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의 말을 충실하게 잘 들으며 집을 지킨 맏아들의 문제까지를 포함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즉,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교만과 우월감을 빠진 자들을 책망하는 비유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15장 1절과 2절을 제시한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 중 하나라는 것이다.세리와 죄인이 작은아들이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맏아들이다. 저자는 오늘날 맏아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의미가 없다. 그들 스스로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작은아들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지만, 맏아들은 자신이 그동안 했던 것을 내세우며 잔치에 참석하는 것마저 거부한다.이 책의 ‘탕부(蕩父)’라는 뜻은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내주시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즉, 작은아들이건 맏아들이건 집 앞으로 나와서 아무 조건 없이 베푼 잔치에 모두가 참석하길 권하는 분이시다.◈ 《탕부 하나님》 || 저자인 팀 켈러(Timothy Keller)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리디머교회 담임목사로서, 모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저서로는 《센터처치》 《기도》 등이 있다. 원제 The Prodigal God(2008). 두란노, 2016.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을 펼치면 제목 다음 장에 바로 ‘프러디걸(Prodigal)’이라는 단어 해석이 나온다. ‘탕자’의 ‘탕(蕩)’에 해당하는 단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무모할 정도로 헤프게 베푸는, 2) 남김없이 다 써 버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탕하다, 낭비하다’는 뜻과 함께 ‘아낌없이 베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탕자보다 맏아들의 문제에 초점 맞춰김길구 :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탕부(蕩父) 하나님’은 ‘아낌없이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탕자(蕩子)’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탕’이 사용되었습니다.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눈에 확 뜨인 부분은,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가 작은아들보다 맏아들에 관한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즉, 이 비유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가 예수님께로 돌아온 작은아들 같은 세리나 죄인보다는, 나름 충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왔다고 자신하는 맏아들과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겨냥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2절). ‘서사비평’으로 탕자의 비유를 읽은 것이죠.김현호 : 이 책을 읽을 때가 성탄절 즈음이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를 읽으면서, 성육신하여 십자가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우리를 천국잔치에 초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탕자든 맏아들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기뻐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탕부 하나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가 탕자의 귀환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함으로써, 정말 중요한 형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문제가 비율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였다고 하면, 형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주의를 비난하였고,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와 싸운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김현호 : 저자는 탕자보다는 형의 모습을 분석하는데 책의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는 형의 영혼을 예의주시하다가 그에게 마음을 돌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 중에 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진단합니다.김수성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실감했습니다.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을 때, 뭔가 높다란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던 분들만의 교회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법 긴 시간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고, 그들과 같이 어우러지기보다는 겉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탕자의 귀향’(1699년경)이다. 젊었을 때 큰 성공을 거뒀으나 허랑방탕한 생활로 비참한 말년을 맞이했던 렘브란트는 스스로에게서 탕자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한편, 화가 난 듯 서있는 형의 모습에서 우리 또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형의 문제점은 오히려 ‘의로움’ 때문김길구 : 한편, 이 비유는 우리 교인들의 인식 중에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닐까요. 즉, 세상 사람들의 비윤리적이고 허랑방탕한 생활과 교인들의 율법주의적 삶을 구분하여, 전자는 탕자요 후자는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둘 다 영적으로 잃어버린 존재라 규정했습니다.김현호 : 팀 켈러는 여기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형을 아버지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오히려 착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도덕적 이력에 대한 교만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그가 잔치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악(惡)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의(義)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김수성 : 극단적으로 말하면 탕자의 귀환을 거부하는 교회의 모습, ‘자기들만의 교회’에 자족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기독교인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을 겁니다.김길구 :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딜레마는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의 공동체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배타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갈수록 교회와 멀어지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김현호 : 한국 교회에 위기의식이 널리 퍼지게 된 것도 바로 형의 시선으로 교회공동체를 규정해 왔고, 이 사회를 배척해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종교적 도덕주의자’가 사실은 또 하나의 탕자의 범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오히려 감추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김수성 : 그런 경향이 결국 교회 스스로 사회와는 별개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고, 사회는 그런 교회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즉, ‘차이’를 포용해야 하는데, 이를 배척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죠. #종교개혁 초심으로 잔치에 동참해야김길구 : 탕자의 비유를 종교가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기득권자들과 일반 국민들과의 괴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의 회개 없이는 진정한 공동체가 이뤄질 수 없듯이, 우리 사회도 그러한 형국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김현호 :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공무원, 정치인과 청와대에 근무하는 이들 중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이들이 윗사람에게 의무적인 순종이나 맹종을 함으로써 나라가 도탄에 빠졌습니다. 순종이 결과적으로는 악에 봉사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불순종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김수성 : 최근 부의 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말이 나오듯,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 구조, 즉 사회 시스템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득권자들은 개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치부합니다. 탕자이기 때문에 잔치에 동참하면 안 된다는 형의 논리와 비슷합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는 제대로 된 형의 모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던지는 뼈아픈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동생이 자기의 재산을 갖고 집을 나가 방탕한 길로 나갔을 때, 형은 단호히 그 동생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 동생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형의 사명이라는 것이죠.김현호 : 참 형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성도들 모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새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형의 모습을 한 성도든, 탕자였던 사람들이든, 모두가 종교개혁 당시의 마음을 품고 귀향의 행렬을 이뤄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는 소위 ‘잘 믿는 형’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집 나간 동생을 탕자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나서 동생을 찾아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형의 모습이 더욱 많아지는 새해가 되길 빕니다. 다음에는 김동춘 권연경 조석민 유정훈 공저인 《성전과 예배당》(대장간,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탕자의 귀향》 / 헨리 나우헨 / 포이에마《팀 켈러의 센터처치》 / 팀 켈러 / 두란노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17-01-05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 선교단
    노래하는순례자는 1981년 창단해 36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약 2,900여회 찬양집회를 인도한 부산의 대표적인 찬양팀입니다. 또한 <이제 내가 살아도>를 처음 만든 작곡자(최배송 단원)가 창단 때부터 활동한 팀이기도 합니다. 이 팀의 단원들은 음악전공자나 전문사역자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음악적인 실력이 부족한 부분도 많이 있지만 오직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명으로 오랜 시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저력이 있는 팀입니다.그리고 이 팀의 가장 큰 저력은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눈높이를 맞추는 찬양집회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진솔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성도들이 꼭 부르고 싶은 찬양들을 함께 할 때, 듣기만 하는 찬양이 아니라 입을 열어 함께 부르는 경배의 시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어린아이부터 80, 90대의 노인들까지 모두가 하나 되어 찬양드리는 것이 이 팀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순례자는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갑니다. 강원도 고성까지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골교회 연합집회에서 30명의 성도들과 감격의 찬양을 드리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새벽 4시경 도착해, 다음날 바로 출근하는 등 힘든 여정 속에도 찬양을 통한 감격과 기쁨으로 이 사명들을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집회에는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여 찬양, 율동, 간증, 색소폰 독주 등 복음을 전하는 모든 도구로 찬양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새신자전도집회에서 인형극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역지도 일반교회 뿐 아니라 군부대, 어린이전도주일, 청소년수련회, 장애인단체, 요양원 등에서 찬양으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매년1월에 필리핀에서 현지어로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호평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이 부산 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사용되어 지길 기도합니다. (집회 문의 : 이동석 집사 010-3880-6355, 홈페이지 http://suleja.or.kr)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월7일~20일)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1월17일(화) 오후7시 : 동래중앙교회, 동노회교사연합회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월8일(주일) 오후1시30분 : (서울)성일교회 1월8일(주일) 오후7시 : (시흥)양문교회 1월13일(금)~24일(화) : 필리핀 단기 선교 3.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월9일(월) 오후1시 : 순교자 수련회 4.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1월8일(주일) 오전11시, 오후2시 : 진해맑은교회 1월10일(화) 오후3시 : 창녕여전도회관, 학생연합수련회 1월13일(금) 오후9시 : 순복음안락교회 1월15일(주일) 오전11시 : 00군부대 1월20일(금) 오후1시 : 울주세광병원 5.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1월12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6. 2017년 예배와 찬양학교일시 : 2017년 1월2일 개강 3주간 월,화,목 PM 6:30 (1월 2,3,5/9,10,12/23,24,26일)장소 : 아름다운교회당 / 가야교회교육관(전.부전교회당)강사 : 김상건 목사(YIM대표, 아름다운교회 담임, Youth KOSTA 강사)대상 : 각 교회 예배인도자, 찬양팀, 예배와찬양 관심자문의 : YIM 사무실 (051-626-4862), 권진덕 간사 (010-3480-7894)
    • 문화
    2017-01-05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2 : 게임
    ‘바츠해방전쟁’ 10주년을 기념하는 고객 행사를 지난 2014년 5월 20일 NCSOFT 판교R&D 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바츠해방전쟁’에 직접 참여한 유저들과 미디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특히 ‘바츠해방전쟁’ DK혈맹 총군주인 ‘아키러스’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1. 신화와 반복 신화(Myth)를 뜻하는 그리스어 ‘미토스(mythos)’는 이야기를 뜻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mythology(신화학)’를 만들었을 때 그 의미는 ‘가공의 인물을 다룬 이야기’를 뜻했다. 이 말은 신화가 진실을 표현할지라도 정교한 픽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하여 신화가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비난했으며 『국가』(Republic)에서 이상적인 폴리스는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추방한다고 했던 것이다. 반면 플라톤은 비유(allegory, 어떤 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는 가르침의 도구로 생각했다. 그의 이상향인 ‘아틀란티스 이야기’나 ‘동굴의 비유’는 알레고리로 보편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가르침에 있어서 유용한 방식으로 본 것이다.플라톤의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두꺼비를 보면서 항아 이야기를, 까치를 보면서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호랑이를 보면서 곶감 이야기 등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잘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신화는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에 나타난 무수한 상상력이 암호처럼 현대 문화와 사상에 녹아들어 있다. 아니 우리 삶의 곳곳에 신화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사실 서양 언어권에서 요일과 달의 이름은, 곧 달력에서부터 태양계 행성 이름(지구를 제외한 모든 행성은 로마의 신 이름에서 가져왔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리스나 로마, 북유럽 신화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프로이트(S. Freud)가 신화를 인간 무의식의 일부로, 곧 인간 내부에 깊이 뿌리박힌 심리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공유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나, 융(C. G. Jung)처럼 신화를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는 것 역시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그저 한 순간의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화학자 조셉 캠벨(J. Campbell)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종교와 철학, 예술,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에 존재한 인류의 사회 형태, 과학과 기술의 주요 발견, 잠에서 생겨나는 바로 그 꿈들은 신화라고 하는 원형적인 마술 반지에서 끓어오른다.”라는 말은 신화의 반복, 그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2. 신화와 게임; 서사학에서 게임학으로 오늘날에는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온라인 게임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적인 서사학(narratology)이 게임 자체의 게임학(ludology)으로 패러다임 전환한 것이다. 또한 매체 중의 매체라고 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삶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면서 ‘인터랙티브 인간’(interactivity human)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로 표시되던 종래의 ‘지혜로운 인간’에서 ‘상호작용성’을 통한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컴퓨터 게임이 그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게임은 언제나 현실을 모방해왔고, 현실을 비틀고 재창조하면서 스스로의 영역을 확대해왔다. 현실과 가장 관련이 먼 것처럼 보이는 SF 소재의 게임이나 중세 판타지 풍의 MMORPG(Massive Multi-us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놀이 게임, RPG는 각 유저가 역할을 분담해 게임을 하는 방식이다. RPG 중에서도 MMORPG는 온라인 상에서 여러 명이 RPG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게임이다.)도 현실을 은유적인 형태로 재해석해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게임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게임 속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순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리니지2>에서 발생한 바츠해방 전쟁은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가상공간에서 얼마나 강렬한 형태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3. 바츠해방 전쟁 바츠해방 전쟁은 2004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약 4년간 <리니지2>의 바츠 서버에서 발생한 인터넷 전쟁을 말한다. (독재자로 유비되는)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 일명 DK) 혈맹의 철권통치로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급 민중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의 민중들은 ‘바츠 연합군’을 형성하여 DK 혈맹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 동맹군의 화살받이가 되어 무수히 죽어가면서 유일한 대응 방법인 인해전술로 싸웠다. 이 전쟁에 참여한 사용자는 연인원 20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마치 『일리아드』나 『삼국지』, 혹은 성경 「여호수아」와 「사사기」를 보는 듯, 바츠해방 전쟁 안에는 현실세계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 신분 차별과 권력의 횡포, 혁명과 좌절, 전쟁과 독재, 사랑과 죽음, 기만과 배신, 전술과 희생, 정의와 자유, 영웅의 탄생과 죽음, 숭고한 희생과 가치, 그리고 동지애와 감격의 눈물 등 수많은 참여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한 편의 웅대한 서사시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2>의 내복단(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 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 혁명의 상퀼로드, 즉 ‘긴바지를 입는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부른다.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틀 정도 육성한 레벨 10 전후의 캐릭터이다. 이들의 공격력은 5-10 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데미지-이다.)으로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화된 공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음을 깨달은 다음의 내복단의 글은 감동스럽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바츠 연합군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 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혈맹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겸댕이대왕, ‘호소문-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리니지2> 게임 자유게시판 2004년 6월 16일.)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들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받은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이 된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의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에서 작은 혈의 군주로 있다 사소한 문제로 거대혈의 공격을 받게 되어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정식 혈전을 요청한 후 처절하게 전사한 경험이 있는 한 내복단은 이렇게 말한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중략)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 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제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결국 바츠 연합군이 <리니지2>의 중추인 DK혈맹의 아덴성을 집단 지성과 공성전을 통하여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바츠해방 전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혁명 성공 후 바츠 연합군이 이익을 가지고 서로 분열하면서 결국은 DK혈맹이 한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벌이게 되고, 그 틈을 타 DK혈맹이 다시 세력을 잡게 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간 아쉬운 전쟁이었다. 4. 게임, 기만인가? 혹은 해방의 도구인가? 이 시대는 발터 벤야민(W. Benjamin, 1892~1940)과 테오도르 아도르노(T. Adorno, 1903~1969)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이다. 암울했던 20세기 초 대중문화와 상업주의가 결합한 문화산업의 근원을 추적하고, 통렬한 비판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던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대중문화가 자유를 향한 출구인가, 억압과 기만의 도구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대중매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처럼 동일한 것이 무한 반복되는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는 현대 인물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술적 복제로 현대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 대중예술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온 이 시대 예술의 희망인가, 대중을 기만하는 수단인가?’를 묻고 있다. 대중문화를 기만적이며 억압적이라 보는 아도르노와 대중문화의 발달된 기술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보는 베냐민의 관점은 각을 세운다.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라디오와 영화, 재즈 등에 대해 분석하며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문화산업은 위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허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지배의 도구가 되었다. … 대중문화가 주는 즐거움이란 결국은 도피에 불과하며 즐김이 주는 도피는 사실상 현실의 억압과 모순에 대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대한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영화 ‘몽타주 효과’를 통해 대중에게 충격과 각성을 선사하는 해방의 가능성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아도르노가 지나치게 비관적이었다면, 베냐민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이다. 곧, 벤야민에게서는 ‘해방’인 대중문화가 아도르노에게서는 ‘기만’이 되어버렸다. 동일한 맥락에서 게임은 해방일까?, 기만일까? <리니지2>처럼 온라인 상에서 혁명은 불가능했다. 왜일까? 그것은 인간의 원죄(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는) 때문이 아닐까? 성서는 그것을 정확히 지적한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세기 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 ‘바츠’(로 은유되는 이 대한민국)가 해방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메시야인 평화의 왕,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믿음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문화
    20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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