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5-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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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동성애를 향한 기독교 해법을 담은 영화
    기독교 영화도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 기독교 영화 사역을 하는 ‘필름 포럼’이 배급상영권을 가진 두 편의 수입 영화를 스트리밍 서비스로 내놓았다. 하나는 신림동 주사랑교회 이종락 목사의 베이비 박스 사역을 다룬 <드롭 박스>(Drop Box, 2014)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동성애로부터 회복된 찬양 가수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의 고백을 담은 영화 <싱 오버 미>(Sing Over Me, 2014)다.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상영 당시 기독교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교회 성도들에게 제대로 홍보되지 못한 채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특히 한국 교회가 동성애 반대 운동에 보인 관심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를 향한 하나님의 치유와 사랑의 손길을 보여주는 <싱 오버 미> 같은 화제작을 놓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동안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에서 ‘필름 포럼’에 요청하여 교우들이 함께 보는 출장 상영밖에 없었다. 이 경우 교회 안에서의 단체 관람은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깊이 감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네이버 영화관이나 케이블 TV의 VOD 서비스를 통해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동성애에 대해 기독교 교리적인 접근이나 설교식의 가르침에 부담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싱 오버 미>는 동성애는 선천적이며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성애에 대한 탁월한 기독교 관점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관객 수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통계로는 불과 1,808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그것도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찾기보다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그리고 케이블TV로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에 맞게 기독교 영화도 스트리밍 서비스나 VOD 서비스로 상영 플랫폼을 바꿨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든 기독교 영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까닭에 앞으로는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극장 상영이 이루어지는 변화가 기독교 영화계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에서 외면한 탈동성애 기독교 영화 영화 <싱 오버 미>는 교회 안에서 동성애자로 살아왔던 데니스 저니건의 신앙적 갈등과 예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치 무용담처럼 어두운 과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다가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빛나는 행복을 이뤘다는 간증형식의 여느 다큐멘터리 영화와는 다르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비판을 쏟아붓기보다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진솔한 고백과 눈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은 기독교인이라면 동성애로부터 돌이킬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미처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숨어서 신앙생활하는 동성애 기독교인이거나 혹은 동성애에 대해 세상적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도 감동받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은 상처와 혼돈 속에서도 그것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유명 찬양사역자의 다큐멘터리답게 그가 부른 찬양을 배경음악 삼아 그의 과거를 비추며 현재의 고백을 담았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배경으로 진행하는 부모님과의 인터뷰와 그의 절친 척(Chuck King)이 말하는 저니건에 대한 언급 사이사이로 부모와 친구가 몰랐던 저니건의 동성애에 대한 고백이 이어진다. 다섯 살 나이에 공중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고 나타난 성인 남자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청소년 시절 여자아이 같다는 놀림을 피하려고 여자 친구에게 키스했지만 전혀 이성의 느낌을 받지 못한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동성애자들의 과거와 비슷하다. 그러나 저니건은 하나님이 자신을 동성애자로 만드셨으니 난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식의 동성애에 대한 자기합리화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변화를 모색해왔다는 점에서 동성애를 숙명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독한 갈등의 상황 가운데서 기독교의 신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동성애가 유전적 혹은 선천적인 까닭에 동성애에 대한 책임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돌리려는 동성애 숙명론자들의 의견이 틀렸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 가지는 왜곡된 이해 가운데 하나는 동성애 숙명론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는 후천적이며 사회적 학습에 따른 경향이 강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왜냐하면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모든 유전자가 동일하기 때문에 만일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면 일란성 동성애자 쌍둥이는 함께 동성애자여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싱 오버 미>는 데니스 저니건을 통해 동성애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왜곡된 성적 경험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최대의 장로교 교단에서조차 동성애 목사 안수를 인정할 만큼 동성애 문화에 대해 자유로운 미국사회에서 <싱 오버 미>는 극장에서 개봉조차 하지 못한 채 DVD로만 출시되었다. 영화에 대한 각종 통계와 정보를 보여주는 IMDb(Internet Movie Database) 조차 극장 개봉 및 수입에 대한 통계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DVD를 통해 이 영화를 본 미국 기독교인들의 의견은 완전히 극과 극이었다. 10점 만점에 10점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0점을 쓴 사람도 있었다. 신앙은 물론 성적 취향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동성애 지지자들이 얼마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탈동성애자를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다. 세속적이고 동성애 문화가 만연한 미국사회는 이 영화를 외면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자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은 동성애 문화에 지배받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진리를 실현시킬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싱 오버 미>를 보는데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기독교인은 아직 없지 않은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 변증영화 <싱 오버 미>는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성적취향으로 인정하려는 현대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싱 오버 미>가 기독교 동성애자들을 향한 멋진 기독교 변증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대의 세속적이며 상대주의적인 문화 속에서 프란시스 쉐퍼는 기독교 문화의 변증학적 성격을 강조한 바 있다. ‘변증학(Apologetics)’이란 일종의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쉐퍼는 ‘변증학’의 목적을 방어(defense)와 전달(communication)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여기서 방어는 비기독교 혹은 반기독교적 메세지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논증적 방어를 뜻한다. 그러나 쉐퍼는 그의 다양한 저술과 강연, 그의 아들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프랭키 쉐퍼를 통한 영화 제작 활동이 의미하듯이 방어보다 전달에 관심이 많았다. 즉 그는 어떤 특정한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기독교를 전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 때 영화 <싱 오버 미>야 말로 오늘날 영화세대에게 기독교가 동성애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음을 전달하는 훌륭한 문화변증의 실천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싱 오버 미>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독교 동성애자들은 교회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고 산다는 점이다. 저니건 역시 성인이 된 이후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죄의식에 휩싸이는 한편으로 동성을 갈구하는 육체의 정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았음을 고백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는 성경말씀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찾아간 교회의 도움은 없었고 오히려 교회 목회자는 자신을 탐하는 또 다른 동성애자였음을 알고 기겁할 수밖에 없는 과거 상황묘사에 관객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동성애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교회는 딱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동성애에 대한 신랄한 비판만으로 가득 차 있거나 아니면 그와 동성애를 나누기 원하는 목회자가 있었던 교회였다. 이때 크리스천 동성애자들이 취할 수 있는 자세란 교회에서는 이성애자인 척하며 입을 다물고 밖에서는 육체의 탐욕에 스스로를 맡겨버리는 일이다. 교회는 고민 끝에 예배당을 찾는 동성애자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둘째, 예수님이야말로 동성애에 대한 갈등과 상처를 회복시키고 치유하시는 답이 된다는 사실을 영화는 보여준다. 어쩌면 이 영화 가운데 가장 명언이라 할 수 있는 대사가 저니건의 절친 척으로부터 나온다. 동성애로 살아온 친구의 고백을 들은 후 척은 매우 감동적인 말을 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답은 안다. 답은 예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해줄게.”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답이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롬5:8)이라면 가능하다. 어쩌면 당연하고 기독교의 평범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해답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을 데니스 저니건은 자신의 삶과 그가 만든 찬양곡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우리의 귀에 익숙한 찬양곡 ‘약할 때 강함 되시네’는 언제 들어도 기독교인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말한(요1:36) 세례 요한의 고백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옴을 느낄 수 있다. 만일 <싱 오버 미>를 보고 난 후라면 이 찬양이 주는 감동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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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6
  • [기독교인문학] 공동체의 정의는 하나님의 선을 통해서 온전해 진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선, 정의, 법》 - 정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 소년범의 대부로 호통판사의 애칭이 더 어울리는 저자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위기의 때에 《선, 정의, 법》이란 책으로 찾아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작년에 출판한 이래 1년이 안 돼 6쇄를 넘어섰다. 각주만 봐도 12장에 달하는 공들인 책이다. 저자가 윤리학, 정치철학, 법철학은 물론 신학도 넘나들며 법문제에 천작했다. 우리의 생활과 떨래야 뗄 수 없는 법, 가깝고도 먼 법 이야기를 통하여 기독교적 시각에서 친절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풀어놓았다. 법의 목적인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하여 정의로운 공동체를 넘어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그의 결론은 ‘도덕성의 회복은 선의 회복이며, 선의 회복은 정의로운 신의 귀환’이라는 것. ◇ 저자소개 천 종 호∥ 부산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를 마쳤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7년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24년간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고, 현재는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가정의 문제로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대안가정인 ‘청소년지원센터’를 제공하여 재비행을 줄이는데 기여한 공로로 2020년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이 아이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등이 있다. 두란노 간 / 2020.5. /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덕의 상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 문예출판사 /1997 《정의론》 존 롤스 / 서광사 / 2010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 김영사 / 2010 《회복적 정의는 무엇인가》 하워드 제어 / KAP / 2015 사랑은 정의의 최대화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의 공동체’에 발붙이고,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정의의 공동체를 무시한 채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할 수 없다. 정의는 사랑의 최소화이고, 사랑은 정의의 최대화이다.” 김길구 오늘은 ‘호통판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 정의, 법》의 저자 천종호 판사님을 모셨습니다. 작년에 펴낸 책이 이 불황 속에서도 6쇄를 거듭했어요. 내용이 쉬운 책도 아닌데… 박영규 대중적 인기도 한몫했을 거예요. 요즘처럼 도덕적으로 교계가 비난받던 때도 없었잖아요?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이 책에서도 언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당시 영미권에서는 10만부밖에 안 팔렸는데 우리나라에선 200만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법조인으로서 마이클 샌델의 견해에 어떤 입장이신가요? 우리 국민들은 왜 이 ‘정의’ 문제에 그토록 예민할까요? 천종호 우리 사회는 선이 없는 정의론인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크게 치우쳐 있어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마이클 샌델이 인기가 많다는 것이 저에겐 의외였어요. 우리 사회가 공정과 공평을 다루는 ‘정의’ 문제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현호 ‘사회가 불공정합니까?’란 물음에 미국인들은 30%, 한국인들은 70%가 그렇다고 답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조국 딸 입시 특혜, 인천공항 비정규직 전환, 의대생 국시 재응시 문제, LH 사태 등에서 보여준 공정성에 불신이 지지율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천종호 공정성 여부는 객관적 데이터보다 국민의 정서와 관련이 깊겠죠. 우리 사회 정의의 수준이 국민의 정서를 어루만져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죠. 언급한 사례들은 이런 감정을 증폭시킨 예라고 봅니다. ’같은 것은 같게‘라는 공평과 ’다른 것을 다르게‘라는 공정이 우리 사회에 빨리 뿌리 내려야겠습니다. 정의와 공의 김현호 정의의 문제에 성서의 예를 드셨어요? 천종호 사회나 학계에서는 정의라는 단어 하나만 쓰는데 비해 성경에서는 공의(체다카)와 정의(미쉬파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의와 정의를 묶어 ‘정의’라는 한 단어를 활용하여 정의의 개념을 말해보죠. 정의는 동태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근로를 제공하여 급여를 받았습니다. 이를 ‘분배적 정의’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휴대폰을 사서 자녀에게 준다고 해도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향유적 정의’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 자녀가 휴대폰을 이른바 일진에게 빼앗겼다면, 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고 돌려받아야겠지요. 이를 ‘시정적 정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빼앗은 아이에게는 형사법상의 조치(형벌 또는 소년보호처분)가 이루어집니다. 이것도 시정적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 아이의 딱한 사정이 밝혀졌는데, 주위에 아무도 휴대폰을 사 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이런 경우 그 아이로 하여금 재범을 방지하려면 그 아이에게 휴대폰을 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재분배적 정의’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 정의를 다시 두 가지로 압축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배분적 정의(분배와 재분배)’와 ‘시정적 정의(향유와 시정)’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배분적 정의를 이루려면 사회제도가 구축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개인이라도 선의(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국가나 사회가 하지 않는 일을 개인이 선의를 다해 정의를 이루는 것을 성경에서는 ‘공의(체다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정의(미쉬파트)는 주로 법정에서 어긋난 정의를 시정하는 것을 의미하죠. 김길구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예언서에는 정의와 공의라는 단어를 쌍으로 같이 쓰고 있다는 거예요. 이를 두고 어떤 분은 ‘정의의 무자비함과 정의 없는 사랑의 무력함을 극복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공감이 가더군요.. 박영규 판사님도 비행청소년들의 아버지로 명성이 높으신데 1900년 캐나다에서 비행청소년들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교정복지 프로그램으로 ‘회복적 정의운동’을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시는 사역과 비교해 보면? 천종호 회복적 정의는 크게 세 가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 재비행을 막기 위한 공동체(가정)의 회복, 전과자라는 낙인효과 방지를 위한 사회와의 회복입니다. 제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바는 두 번째로, 가정의 문제로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대안가정인 ‘청소년회복센터’를 제공한 다음 재비행을 막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회복적 정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세 번째의 것은 저 혼자만으로는 벅차요.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지요. 기독교공동체는 성품의 공동체 김현호 순서가 바꿨습니다만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한데 ‘선’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어요? 천종호 줄여 얘기 드리면 기독교에서 선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선이고, 본래적 선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선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저는 로마서 8장 28-30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선을 이루느니라’는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으니,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다’와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되기까지의 단계{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중생) (회심) 칭의, (성화) (견인) 영화}를 보여줍니다. 그 중 ‘미리 아심에서 칭의’까지의 단계는 잃었던 생명을 회복하는 구속(속량)의 성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성화에서 영화에까지 이르는 단계는 성품과 인격의 완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을 이룬다는 것은,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선은 구속의 확신을 나날이 더해 가는 것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기독교 공동체를 ‘성품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품의 공동체가 이루어 내는 선을 ‘공동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이 없는 정의론’에서는 ‘공동선’이라는 개념보다는 ‘공익’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정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정의로운 성품이 필요합니다. 김길구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판사님의 매력에 폭 빠진 시간이었습니다. 격무로 알려진 판사직을 수행하시면서 그 바쁜 와중에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다방면의 독서와 그 해박한 식견, 그리고 무엇보다 뜨거운 열정이 돋보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호에는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코로나19를 보면서 일상으로의 회귀를 생각해 보는 CLC에서 펴낸 박동식 저 《코로나 일상 속 신앙, 교회, 삶》을 주제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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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21-04-26
  • [영화] 유배 속에서도 빛나는 인생을 만드는 세계관
    절망 속에서 낭비하지 않은 인생을 말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항상 유머를 동반한 교육적 가치가 빛난다. 피교육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흥미진진한 교육방법을 추구하는 교육자라면 그리고 목회자라면 그의 영화만큼 좋은 시청각 교육자료는 없다. 영화 <사도>에서는 영조의 강압적인 교육열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를 보며 가정교육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백제(전라도)와 신라(경상도)의 결전을 보여준 <황산벌>에서는 사투리를 해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백제를 공격하지 못하는 신라군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지켜보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라디오 스타>(2006)와 <즐거운 인생>(2007)에서 <변산>(2018)에 이르는 현대물 또한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르는 인물을 통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준익 감독은 유머 감각을 곁들이며 관객을 감동적인 교육의 현장으로 인도했다. 이 감독의 영화를 통한 의미의 전달 양식은 1959년생인 그의 나이가 말해주듯 자칫 ‘꼰대 이야기’로 들릴 듯하지만, 현대인이 잃어버린 혹은 필요로 하는 시대상의 가치와 맞물려 매우 품격있는 영화로 인식되곤 한다. 그의 최신작 <자산어보> 또한 마찬가지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에서 16년간 귀양을 살면서 쓴 <자산어보>가 기록된 배경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당시 국가적 지탄의 대상이었던 사학죄인의 남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절망과 고독의 순간에도 빛날 수 있는 세계관의 결과이기도 하다. 절망적일 것 같은 흑산도의 유배 생활에서 정약전(설경구)은 사람과 바다를 발견한다. 영화에서 그는 주변을 돌아보고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절망과 고독을 이기는 비결임을 깨닫는다. 정약전은 서자출신의 젊은 어부인 창대(변요한)와 깊은 교류를 나누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뿐만 아니라 상것들이나 관심을 보일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다. 아무리 죄인이라고는 하지만 유교 사회에서 중앙관직에 올랐던 양반이 비린내 나는 생선을 주무르고 갯벌을 헤집고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괴상한 행동에 의문을 품은 창대를 향해 약전은 이렇게 말한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약전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유교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즉 바다와 물고기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을 기록하려는 자세는 서학과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세계관의 결과이다. <자산어보>는 일종의 어류도감이다. 유교가 중심인 당시 상황에서 생물학자도 아닌 그가 나름대로의 분류법을 만들어 어류도감을 쓰는 이유는 서학으로부터 실용적인 지식의 가치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세계에 대해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장약전과 동생 정약용은 가톨릭 신앙을 가졌었지만 후에 가톨릭과 결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약전 연구가들은 그가 가톨릭 신앙을 떠난 이후에도 예수의 십자가구속과 같은 핵심 교리를 믿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인격적이며 만물을 주재자인 하나님으로서의 천(天) 개념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천(天)이 만물을 짓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평등적 인간성(仁)을 부여하였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서 이를 유배 생활 가운데서도 적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일까? 정약전의 동생 정약용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견될 만큼 조선 후기에 다양한 분야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철학에서부터 유학과 법학, 의학, 건축 등 조선 후기에 살았던 실학자로서 일반적인 학자가 관심을 가졌을 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영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탁월한 저서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남긴 500 여권의 저서들은 워낙 분야가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서 아예 정약용을 학문의 중심에 놓고 그의 사상을 연구하는 다산학(茶山學)이 탄생할 정도다. 그렇다면 정약전(丁若銓)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어떨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정약용의 형이며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자라는 정도는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정약용에 비하면 생소하기만 하다. 특히 정약용의 유배지인 강진에 비하면 정약전이 16년간 유배 시절을 보낸 흑산도는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대중들에게는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993) 시리즈의 첫권인 ‘남도답사 일번지’에서 첫 번째로 꼽은 장소가 전남 강진이었고, 강진의 문화와 역사의 중심에는 정약용과 다산초당이 있었다. 그런데 흑산도는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도 2시간을 가야 하는 섬이고, 강진만큼 인기 관광지도 아니며 흑산도 홍어가 생각날 뿐 그 누구도 정약전을 흑산도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중적이며 의미있는 역사 영화를 잘 만들기로 소문난 이준익 감독은 강진의 정약용이 아니라 흑상도의 정약전을 택했다. 당연히 할 얘기도 많고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익히 잘 알고 있어서 정약용을 다루는 영화를 만든다면 흥행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는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을 취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민초 중심의 역사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전에 만든 역사 영화의 면모를 훑어보면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다. <왕의 남자>(2005)로 시작하여 <황산벌>(2003)과 <평양성>(2011), <사도>(2015), 그리고 <동주>(2016)와 <박열>(2017) 등의 역사물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의 정약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역사를 보는 시각 가운데 하나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역사를 통해 현시대를 잘 들여다 돌아보는 일이다. 이준익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과거 역사와 현재와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역사는, 현재를 투영하거나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를 반영하지 않을 거면 사극을 왜 찍어야 하나?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와 맞닿는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록된 역사와 흥미진진한 왕과 권력 중심부에 있었던 인물을 통한 역사 외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혹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의미를 전해주는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이준익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맞춘다. 그로 인해 관객은 천편일률적인 역사가 아닌 새로운 역사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역사를 창출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 극복의 비결, 젊은 벗을 두었는가?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정약전의 명대사로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를 들었다. 이것은 약전이 창대의 스승 역할을 하면서 벗으로 살아갔던 유배 생활의 묘미를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외울 줄밖에 모르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다”라고 생각하는 약전과 어떻게든 유교 경전을 공부해서 출세를 원하는 창대는 가치관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거기다 양반과 서얼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물로 나이도 확연히 구분된다. 평생을 공부만 하던 선비와 물고기만을 잡아 온 어부 사이에서 공통점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벗이 되었으며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로 변했을까? 영화는 서로를 인정하며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상대를 발견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약전은 바다와 물고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창대를 인정하며 자신이 가진 실학 정신을 구현해간다. 창대는 약전이 비록 나라의 벌을 받는 사학죄인이지만 그의 학문의 깊이를 인정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글공부를 도와줄 사람임을 알게 된다. 사대부는 어부와 함께 하지 않고 왕을 따르는 백성은 사학죄인을 가까이 해서는 안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공부를 돕는 관계로 나아가면서 서로의 인생의 발전을 꾀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통해 교육자료를 얻게 되었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교회를 성장시키데 <자산어보>는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와 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세대 간의 갈등이다. MZ세대(밀리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는 기성세대를 불신하고 기성세대는 이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세대라며 혀끝을 차고 있을 뿐이다. 교회는 특히 최첨단 기술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MZ세대를 수용하는데 그 어려움이 더욱 심하다. 해결방안은 <자산어보>가 보여주었다. 세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인생의 발전을 이루어가는가를 말이다. 영화에 초반부에 등장하는 약전과 창대 사이의 관계는 전혀 화합할 수 없는 갈등 덩어리였지만, 어느새 서로에게 벗과 스승의 관계로 새롭게 변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입신양명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창대가 약전이 쓴 <자산어보>를 붙잡고 우는 장면에서 결국 그들은 하나의 가치관으로 통일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 내 안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면 진리 안에서 새로운 세대와 하나 되는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가 다르고 외계인처럼 사는 것 같지만 MZ세대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교회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약전이 유배 생활 중의 시선을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했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도 않았고 <자산어보> 같은 위대한 자연과학서는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흑산도에서 그의 눈길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둘러싼 어부들과 바다를 향해 돌렸고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이제 돌아보자. 벗을 삼고 스승을 삼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호기심을 가득 머금은 눈길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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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기독교인문학] 예수의 영성은 예언자의 영성
    차준희교수의 《열두 예언자의 영성》 -정의, 긍휼, 신실에 대한 치유 메시지- 구약학자인 차준희 한세대학교 교수의 역작이다. 「목회와 신학」에 12회에 걸쳐 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 12명의 소예언자들에 관한 글을 모아 2014년에 출간했다. 서로 다른 배경과 메시지의 다영성이 현재 6쇄를 거듭하며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결이다. 저자는 출간한 그 해에 일어난 세월호 사태를 빗대 한국교회의 침몰을 논하며, 정의와 긍휼, 신실의 회복을 통하여 치유의 해법을 찾고 있다. 교인들의 외면으로 오래전에 우리의 강대상에서 쫓겨난 예언자들의 거친 숨소리를 저자는 현대의 감성에 맞게 되살렸다. ‘상식이 예배보다 우선이다’(호세아), ‘성령을 받으면 목소리가 아니라 지갑이 열린다’(요엘), ‘무능이 전능을 이긴다.’(스가랴) 등 제목부터 이채로워 눈길을 끈다. ◇ 저자소개 차 준 희∥ 서울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독일 본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에는 한국구약학연구소를 설립해 한국교회 강단을 섬기며, 목회자들의 구약설교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새물결플러스 간 / 2019. 2. / 13,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예언자들》 아브라함 J 해셀 / 삼인 / 2004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그만 / 복 있는 사람 / 2015 (개정판) 《소예언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김근주 / 한국성서유니온 / 2015. 《키워드로 읽는 예언서》 성기문 / 세움북스 / 2015 예언자 영성=예수의 영성 “예수는 구약의 핵심으로 예언자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의 영성은 다름 아닌 예언자의 영성이다. 한국교회는 예수의 영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김길구 오늘은 차춘희 교수의 《열두예언자의 영성》 입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LH공사 직원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투기가 여권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집권 내내 부동산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여권으로서는 큰 위기를 맞아 철옹성 같던 콘크리트 지지가 흔들릴 지경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박영규 우리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불평등의 문제로 야단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작년에 발표한 2019년도 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수퍼리치 2,153명 46억명보다 더 부유하다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더욱 부의 쏠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지요. 김현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일상화된 요즘도 대형교회들은 그동안 의 교회성장론을 바탕으로 더욱 대형화되고 작은교회들은 유지가 어려워 문을 닫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잖아요. 김길구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계에서 이러한 사회부정의의 문제를 얘기하는 분들이 별로 없어요. 오늘 열두예언자의 영성은 구약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회정의의 문제와 약자의 돌봄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박영규 예언자들의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이 변방 중동의 종교를 세계의 종교로 발돋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를 구약 예언자 정신의 실종에서 찾고 있어요. 김현호 히브리 예언자의 사회정의는 서양문명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의 이성과 철학, 로마의 법과 질서와 함께 3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독교적 정의의 정신이 우리사회 저변까지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사회정의가 서구의 3대 주류 이뤄 김길구 원래 이 책의 편집이 월간지의 연재 형식이어서 서론 없이 열두 명의 독립된 얘기들로 구성되었어요. 다행히 유튜브에 서론격인 강의도 있어 참조하시면 좋겠네요. 그럼 예언자는 누구죠? 김현호 히브리의 예언자는 단순히 미래만을 점치는 점장이나 마술사와는 다르죠. 미래의 예언도 하지만 하나님께 받은 지금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자의 ‘예’자가 과거 한자로 미리 예(豫)를 썼는데, 요즘은 ‘미리’라는 의미도 포함된 ‘맡길’ 예(預)를 쓰고 있더군요. 역할에 있어서도 제사장은 토라 즉 말씀을 가르치고 제사를 집례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의 일은 제사장이 아닌 예언자의 몫입니다. 물론 사회비판은 기본이고요. 박영규 책을 흥미롭게 봤는데요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단지 확성기로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각기 다른 기질과 성격과 개성들도 함께 사용하신 것 같아요. 같은 듯 조금씩 결이 다른 그들만의 색깔이 성서를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예수, 히브리 예언자 전통따라 김길구 저자의 주장은 예수의 영성은 예언자의 영성이니 그를 따르는 우리도 예수처럼 예언자의 삶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박영규 그 논리의 출발점은 대표적인 성구인 마 23:23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말씀에 언급된 정의, 긍휼, 믿음이 구약 예언자들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김현호 아시다시피 이러한 예언자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것 곳이 ‘정의’는 아모스, ‘긍휼’은 호세아, ‘믿음’은 이사야서들인데, 예수도 이러한 구약신앙의 핵심 사상인 예언자들의 전통을 따라 압축한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나타난다고 봐요. 현재 위기의 한국교회를 구하는 길은 예수처럼 예언자 정신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김길구 그러면 지면관계상 다할 수 는 없겠고 12인 12색 중 세 분의 본문 속으로 들어가 책의 매력에 빠져봅시다. 박영규 순서대로 호세아는 문서예언자 중에 유일한 분단시대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 예언자입니다. BC 8세기 대제국 앗시리아의 부상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시기에 활동했어요. 신실하지 못한 믿음과 하나님과 바알신을 겸하여 섬긴 혼합주의를 부부관계의 불륜인 간음행위로 질타합니다. 김현호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 는 것이 핵심 메시지입니다. 소제목이 ‘상식이 예배보다 우선이다’로 단 것은 교인들은 이중생활, 예배 당 밖의 일상에서 인간도리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행동과 처신으로 신뢰를 회복하라는 이 메시지는 요즘 신뢰를 잃어 교계에 싸늘한 시민들의 시선 앞에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말씀입니다.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박영규 아모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국제적 문제로 떠오른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과거 광주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경찰의 차단벽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수녀의 사진이 전 세계인에게 큰 울림을 주었죠. 부정의 앞에 저항하지 않고 그 이익을 누린 자들을 비판한 아모스의 소제목이 “공동체 의식이 없는 자들의 예배는 하나님과 무관하다”였는데, 우리가 분개하는 LH사태나 부동산 폭등 사태 등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나?를 자문하게 됩니다. 김현호 아모스가 활약한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잘 나가던 때였어요.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곪아가고 있었지요. 양극화가 심화 되고 약자들의 삶은 사회적 불의와 도덕적 타락으로 피폐해가기만 했어요. 게다가 예배도 변질되어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을 섬기는 예배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은 이런 제사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그 유명한 말씀 ’오직 정의(미쉬파트)를 물같이, 공의(체다카)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혹은 공공의식 없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나요? 김길구 하나님의 영이 특별한 이들에게만 독점되지 않고 중재자 없이 이스라엘 백성 모든 사람에게 물처럼 부어질 날을 노래한 요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하나님 영의 민주화‘라고 했어요. 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근대를 연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을 너머 이미 오래전에 ‘만인예언자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성령공동체 안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소외도 없다는 선언은 교회 안에서 직분이 계급이 된 지 이미 오래고, 그 어느 곳보다도 돈이 위세를 떨치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과 너무 다르죠. 문제는 이것이 교회 안에서는 안 보여요. 이미 체질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언자의 영성으로 거듭나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음 호에는 하나님의 선은 어떻게 인간 공동체에 구현되는가를 생각해 보는 두란노 刊 《선, 정의, 법》의 저자 천종호 판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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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21-03-26
  • 최현범,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라]
    최현범 지음 / 도서출판 대장간 펴냄 부산중앙교회 최현범 목사가 연구한 것들을 상아탑 안에서만 논하기보다, 목회현장에서 접목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십자가 복음이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이 그 복음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가를 설교와 교육 그리고 목회전반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그러한 것들은 어떤 신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인 최현범 목사는 서울대학교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중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도르트문트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겼고, 보쿰대학교에서 조직신학과 기독윤리로 신학박사(Th.D.)학위를 취득한 뒤, 故 옥한흠 목사의 추천으로 부산중앙교회에 부임하여 현재까지 목양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라], [믿음으로 세상을 도전하라], [믿음의 터를 견고히 하라]가 있다.
    • 문화
    • 도서
    2021-03-12
  • [기독교인문학] 코로나 시대, 집에서도 나는 신자인가요?
    C. S. 루이스 《신자의 자리로》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세기 교회를 움직인 100권의 책에 3권이나 선정된 저명한 작가 C. S. 루이스의 작품 중 믿음의 실천과 관련된 글들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편저자는 하퍼원 출판사 편집장인 마이클 G. 모들린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 책 《신자의 자리로》는 루이스의 책과 에세이와 편지와 강연 등 폭넓은 저작에서, 어떻게 믿을 것인가만 아니라 어떻게 믿음을 잘 실천한 것인가와 관계되는 부분을 엄선하여 모은 것이다” 인용한 작품은 《순전한 기독교》, 《영광의 무게》, 《피고석의 하나님》, 《세상의 마지막 밤》, 《기독교적 숙고》 등이다. 그리스도인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그의 해박한 지식과 번쩍이는 재치로 풀어준다. 그가 왜 20C 최고의 변증가인지를 엿볼 수 있는 실용지침서. ◇ 저자소개 C. S. 루이스∥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중세문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며 소설, 평론, 동화 등을 썼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등이 있으며, 전세계 1억 부 이상을 판매한 판타지 소설의 바이블 《나니아 연대기》 등이 있다. 두란노 간 / 2020. 11.18. / 11,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기도의 자리로》 / C. S, 루이스 / 두란노 《루이스의 서재》 제임스 스튜어트벨 / 홍성사 / 코로나 시대, 집에서도 나는 신자인가요? 기독교란? “기독교는 그저 자연적 삶을 새로운 삶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소재를 초자연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새로운 질서다.” 김길구 그동안 수고하셨던 경주의 김형기 목사님이 개인사정으로 그만 두시고, 산정현교회 장로인 박영규 모라복지관 관장께서 함께합니다. 대학 졸업 후 장기려 박사님의 부름을 받고 청십자병원의 근무를 시작으로 현재 사회복지법인 청십자 이사장을 겸임하고 계신 청십자맨 입니다. 부산대 대학원(기술사업정책학 박사)을 졸업했습니다. 박영규 평소 이 코너의 팬이었는데,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좋은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현호 부산광역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으로 사회복지운동에 헌신하셨는데 이 코너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옥스퍼드의 명사, 루이스에 대하여 김길구 김대표께서 루이스의 광팬이신 모양인지 얼마 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이어 또 추천을 하셨어요? 루이스의 매력이 어디에 있나요? 김현호 케임브리지 교수이자. 옥스퍼드의 명사인 루이스는 두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앙의 탁월한 길벗이자 위기의 시대에 저희들에게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주죠. 빛나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인문학의 지평을 한껏 넓힐 수 있어 제가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박영규 C. S. 루이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나니아연대기》를 떠올리실 겁니다. 판타지 소설 J.R.톨킨의 《반지의 제왕》, 《호빗》과 더불어 판타지 동화 나니아연대기는 우리 안방 TV에서 자주 재방영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상상력과 유머,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간결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문장은 동화작가와 종교사상가로서의 그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는 평입니다. 20C 교회를 움직인 명저 100선에 《순전한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같이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길구 작년에 우리나라에도 《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문학클럽》이란 책이 번역돼서 나왔어요. 영국판타지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두 거인이 포함된 「잉클리스클럽」의 얘기인데, 멤버들이 쟁쟁해요. 작가들인 이들은 서로의 글쓰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문학클럽이었는데, 루이스는 이 모임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합니다. 일종의 관계전도라고 할까요? 여담이지만 거장은 거장을 알아본다고 할까? 여기에 큰 영향을 준 이가 가톨릭 신자인 《반지의 제왕》 톨킨인데 소통이 너무 나갔나요? 나중에 나니아연대기가 출간되자 톨킨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루이스가 표절했다며 둘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해요. 박영규 재미있는 것은 톨킨의 판타지는 은유가 많아 나니아연대기 처럼 기독교적 메시지를 들어내지 않는데 비해 루이스는 노골적으로 들어내죠. 이 점을 톨킨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아마 나니아연대기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서 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전한 기독교〉〈영광의 무게〉〈피고석의 하나님〉 김현호 너무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그럼 본분으로 들어가 볼까요? 책의 성격이 그의 명저 중 엑기스만 뽑아 놓은 북 다이제스트 형식이라 작가 특유의 재치와 유머을 곁들인 모든 글들이 좋기는 한데, 주제도 광범위해 요약해서 정리하기가 어려웠어요. 김길구 책 선정을 한 뒤 저도 후회를 했어요. 글들은 다 좋은데 어떻게 마무리할까?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발췌한 글 중에 복수로 인용된 글이 〈순전한 기독교〉 3편, 〈영광의 무게〉 4편, 〈피고석의 하나님〉 4편이더군요. 우선 이 세 권을 한 분이 한 작품씩 간략히 소개해 주시고, 발췌본 중 은혜로웠던 대목들을 추려보면 어떨까요? 비 표준어 입니다만, 엑기스 중에 엑기스라고 해야 하나요? 김현호 루이스를 20C 가장 영향력 있는 변증가로 만든 작품이라면 단연 《순전한 기독교》라고 해야겠지요.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BBC 라디오에서 전한 메시지 시리즈물을 1952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당시 미국과 영국 기독교의 주된 적은 ‘현대성의 결여’ 였는데 옥스퍼드의 학감으로 설득력 있게 기독교가 더 합리적임을 주장함으로써 많은 지성인들을 돌아오게 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입니다. 박영규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류되어 수감된 닉슨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 책으로 알려졌지요. 《영광의 무게》는 조사해 보니 1941년 6월 8일에 세인트메리 교회에서 행한 설교로 교부들의 글에 비견된다는 찬사를 받은 설교의 백미로 이 설교문 외에 8편의 설교와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김길구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피고석의 하나님》 이 책은 신학적, 윤리적 주제 48편의 에세이 중의 한편을 책 제목으로 했는데. 고대의 피고인이 재판을 받으려면 우리가 재판장에게 가듯 하나님이나 신께 갔는데 지금은 거꾸로 인간이 재판장이 되어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혀버린 현대인들을 향한 ‘지적 공략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잠언들 김길구 엮은이가 인용한 루이스의 고백처럼 들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기나긴 여정이며, 나와 가장 가깝기에 내 부족한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입을 사람들이 곧 정화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로 쓰실 교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김현호 이 책 첫 꼭지에서 신자들이 천국에 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 혹은 선행 때문일까?에 대해 루이스는 이 질문은 가위의 어느 쪽 날이 더 요긴하냐 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어서 그분을 믿으면 선행은 반드시 따른다고 말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빌립보서 말씀으로 양쪽을 묶어 매조집니다. 박영규 C.S.루이스는 하나님의 통치안에 있는 모든 질서를 성속으로 구분짓는 것을 무척 경계합니다. 영어단어 스피리추얼 (Spiritual)을 독일어 단어 가이스트리히(geistlich)처럼 좁은 의미의 “영적”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독교의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베토벤 같은 작곡가의 일도 파출부의 일도 정확히 똑같은 조건에서만 영적이라는 것이지요. 주께 하듯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재미있는 표현도 사용하는데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두더지는 땅을 파고 수탉은 울어야 한다.’ 소명에 분업은 있지만 더 영적인가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길구 용서에 대하여, ‘우리가 믿거니와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그 용서에는 남이 우리에게 지은 죄를 우리도 용서한다는 전제가 달려있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 까먹고 싶어하는 것. 김현호 제2차 세계대전에 출전했던 경험을 가진 루이스는 종교와 전쟁은 유사점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늘 긴장 속의 현장이지만 그곳에서도 인생살이가 존재하는 일상이므로 24시간 군사연습만 할 수 없듯이 24시간 종교적인 일에만 몰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은 목숨을 버릴만한 의무는 되지만 삶의 목적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며 사람이 조국을 위해 죽을 수는 있으나 배타적 의미로 조국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국가나 정당이나 이념을 위해 한시적으로 헌신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소유인 자신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영규 ‘진정한 용서란 모든 정상이 참작되고도 변명의 여지없이 남아있는 죄를 그 속의 모든 섬뜩함과 더러움과 비열함과 악의까지 똑바로 응시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온전히 화해한다는 뜻’ 김현호 재밌는 주제가 있어요. ‘아직 사랑하지 않는데도 사랑하듯 행동하면 위선인가? 자연스런 호감이나 정이 있으면 상대를 사랑하기가 더 쉬워지지요. 그래서 평소에 정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지만 호감 자체가 사랑은 아니지요. 루이스는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신경쓰느라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하듯 행동하라. 마치 사랑하듯 행동하면 금새 사랑하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싫어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 사람이 더 싫어 지지만 친절하게 대하면 어느새 그가 덜 싫어진다는 일반적 법칙을 따라 선과 악은 둘 다 복리로 불어나는 법이니 선과 악 둘 다 날마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조언해 주네요.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호에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 위기는 예언자 영성이 없어서라며, 이를 회복하려면 예언자의 영성을 수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약학자 차준희 교수의 뜨거운 외침, 《열두 예언자의 영성》 새물결플러스 刊 입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21-03-05
  • [영화]한국계 미국 이주민의 삶에서 묻어나는 가족애와 기독교 신앙
    재미교포 감독이 딸에게 들려주는 자전적 이야기 당신은 사랑하는 딸에게 지나간 가족의 이야기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알렉스 헤일리의 원작 소설 <뿌리>(Roots)처럼 연대기적 서술방식으로 아프리카 땅에 거주하던 먼 조상에서 시작해서 노예 시절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가족사를 소상히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며 영화로 제작한다면 시리즈물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출연 인원이 필요하고 시대극에 따르는 분장과 세트 등 준비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도 제작비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소설이건 영화건 긴 호흡이 필요한 콘텐츠 대하기를 버거워하는 Z세대인 딸아이가 긴 시간 동안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재미교포인 정이삭 감독은 영리했다. 자신이 살아온 미국 이민자로서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그는 한 시대로 시간을 압축하는 대신에 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물들을 집어넣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깊이 있는 이야기가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이야기를 하든 미국 이민자로서 가족을 향한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짜임새를 갖췄다. 따라서 115분의 상영시간은 물 흐르듯 어느새 흘러가고 딸 아이의 가슴 속에는 한국인 이민역사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듣고 보았을 법한 이야기가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영화는 1980년대 미국의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아칸소로 이주해 온 재미교포 가정의 이사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트레일러에 이삿짐을 가득 싣고 도착한 새로운 보금자리는 평원 위에 세워진 멋진 저택이 아니라 언제든 트럭이 끌고 갈 수 있는 이동주택, 즉 바퀴 달린 집이었다. 도시에서 쓴맛을 본 미국 이민자의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미국적이며 또한 고단한 한국인 이민자의 삶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 한 채 농장을 일구며 성공을 꿈꾸는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내 모니카(한예리)와 병아리감별사로 일을 하며 어린 남매를 키우고 있다. 병아리 똥구멍을 통해 암수를 구별하는 병아리감별사는 전문기술이 없는 한국인들이 미국이나 호주로 이민을 떠날 때 선택하는 인기직종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인의 눈썰미가 병아리 감별에 특화되어 있다는 소문은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은 분명 우리의 이민역사에 기록된 일이었다. <미나리>는 주인공 가족이 일구는 땅 이야기와 어린 남매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 온 할머니 순자(윤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 가족이 겪는 갈등과 사랑을 말하고 있다. 즉 땅과 할머니는 영화적 재미의 요소이면서 동시에 장황해질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압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국 땅에서 자라나는 한국의 미나리 넓은 땅은 한국인이 미국에 대해서 갖는 첫인상이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고 말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너른 땅에 마음껏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려는 제이콥에게 닥친 시련은 물(농업용수)을 구하는 문제였다. 그는 미국 농부들이 흔히 하는 수맥 찾기(Dowsing) 방법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쓰는 한국인’답게 직접 우물을 파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만다. 물이 마른 땅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마련이다. 영화의 미학적 표현에서 물(水)은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까닭에 불(火)과 더불어 갈등의 원인인 동시에 해결의 원초적이 방법이기 하다. 성경은 요한복음 4장에서 물질적인 물이 어떻게 영생의 의미로 치환되어 성경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깊이 박히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영화예술 속에서도 거듭 반복되는 미학적 표현이다. 한국에서 온 할머니 순자는 뇌졸중으로 인해 불편한 몸을 거두지 못하는 바람에 창고에 불을 내고 만다. 제이콥의 야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가족을 위해서 미국의 촌에까지 와서 농장을 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도시에서 살 때 같은 동포인 한인에게 받았던 상처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면과 자신의 욕심 때문에 아내 모니카(한예리)와의 갈등이 내재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렵게 농사짓고 한인 상점에 판로를 개척하는 등의 노력이 잿더미가 되고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화의 미학에서 불은 잘못된 것을 태우며 새롭게 만드는 정화(淨化)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성경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6:6-7) 제이콥의 욕심은 불로 인해 사라지고 이제 가족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이 망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진정 가족을 위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뜻하는 일이다. 미나리는 원더풀! “미나리는 얼마나 좋은 건데. 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미나리는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국에도 넣어 먹고. 미나리는 아플 때는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할머니 순자가 딸의 가족을 위해 갖고 온 것은 고춧가루와 멸치만은 아니었다.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미나리 씨앗을 가져와 개울가에 심었다. 순자는 미나리가 자라나는 것을 보고 어린 손자 데이빗(엘런 김)에게 미나리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당연히 미나리는 미국의 이민자로 살아가는 한인 주인공 가족을 상징한다. 더 나아가서는 미국 사회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한국의 이민자들을 뜻할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본 미국 교포들이 웃고 울며 동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장에 물이 마르고 창고가 불타버리는 바람에 수확한 농산물이 못쓰게 되어도 물가에 심은 미나리는 쑥쑥 자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콥은 미나리가 풍성히 자라난 광경을 바라보며 아들의 손에 쥐어준다. “혼자서도 잘 자라네. 데이빗, 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찾으셨어. 맛있겠다!” 미나리를 통한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사랑과 한국인의 기질이 손자에게 전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창고가 불타고 농사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서 할머니가 남긴 미나리를 팔아 주인공 가족이 이민 생활에서 성공했다는 얘기로 결말을 짓기를 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화가 왜 왜 78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하여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미나리를 팔아 부자가 되는 일은 한국의 한 특정인에게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보편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미나리에 담긴 가족(할머니)의 사랑과 민족적 특이성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일은 이민자들의 사회인 미국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모름지기 상을 받으려는 영화는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가 내재 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민자의 신앙은 어디로 가는가? <미나리>는 기독교인 감독이 만들고 기독교인이 등장하는 보편적 정서를 가진 일반영화다. 해석에 따라서는 기독교의 가치가 은연중 표현된 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선교를 목적을 두고 만든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러 모양의 기독교인들이 등장하지만 신앙의 감동을 주는 인물이나, 불신앙자가 신앙인이 되는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는 일반적인 기독교 영화와는 다른 까닭이다. 아내 모니카는 집에서 찬송가를 들으며 생활하고 아들이 잠들기 전 기도를 가르치는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등장한다. 남편 제이콥은 그다지 신앙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지만 가족을 따라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정도의 성의를 보인다. 이 영화가 기독교적인 평가를 내릴 때 흥미있게 작용하는 인물은 영화의 앞부분으로부터 끝날 때까지 제이콥의 농사일을 도와주는 미국인 폴이다. 그는 제이콥과 그의 땅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고, 방언을 하며, 할머니가 뇌졸중을 쓰러진 이후에는 제이콥의 집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주일이면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걸어가는 바람에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의 조롱을 받는 장면도 있다. 기독교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해석의 초점은 이민자들이 겪는 신앙생활의 현실을 이해하고 불안한 마음을 신앙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에 맞추는 일이다. 병아리 감별을 하면서 모니카는 먼저 온 한인으로부터 여기에 온 사람들은 한인교회가 없는 작은 동네로 온 것이라고 이야기를 듣는다. 교회로부터 상처를 받은 한국 이민자들의 현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가 심장병을 앓고 있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앞에 두고 미지의 땅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갈 때 신앙은 폴과 같은 신비적인 신앙의 면모를 가진 사람을 거절하기 어렵다. 2005년도 조사에 따르면 재미 한국인의 70%는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원래 한국에서부터 기독교인이었던 사람들이 이민을 간 경우도 많지만, 미국의 한인교회의 사회적 역할 때문에 적지 않은 이민자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기도 한다. 이것조차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일 수 있다. 한국에서 건너 간 미국 이민자들의 낯설고 고단한 삶과 신앙 사이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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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5
  • [영화] 그리스도인 가정의 폭력과 내밀한 상처의 공개
    보고싶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이승원 감독의 독립영화 <세자매>를 보면 대한민국이 영화를 잘 만드는 나라란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세 자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개성있는 여성 연기자들을 보유하고 있고, 저예산의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6일 만에 5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찾을 만큼 다양한 영화를 소비하는 훌륭한 관객들도 있다. 코로나의 어려움 가운데서 일군 성과라서 그 가치는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대형상업영화가 아닌 소소한 일상생활을 세밀히 묘사하며 삶의 성찰에 이르게 하는 작은 영화들을 제작할 수 있고 상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점은 높이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영화가 오락적 가치만을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일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세자매>는 가족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폭력 아래서 성장한 성인이 겪어야 하는 트라우마가 일상생활 가운데 묘사되는 영화라서 끝까지 앉아서 보는 일 자체가 감독이나 배우의 뛰어난 역량 없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즉 고통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지 않는다면 관객은 보고 싶지 않은 장면으로 가득 찬 영화를 보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수고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 <세 자매>는 어른으로 성장하여 각각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세 여성에 대한 개별적 이야기의 조합으로 보이지만, 결말에 가서 문제의 근원이 된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공통된 과거의 기억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관객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영리한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관객들이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은 세 자매가 각각 겪는 현실을 통해 나타난다. 첫째 희숙(김선영)은 고스족 차림의 기괴한 스타일에 몰입한 채 자신을 무시하고 반항적인 태도를 지닌 딸아이와 살고 있다. 남편은 가끔씩 나타나 돈만 뜯어 가는 채권자 같은 존재로서 영화에는 단 한 장면에만 등장할 뿐이다. 암진단을 받았지만 자기의 잘못인 것 같아서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채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갈 뿐이다. 둘째 미연(문소리)은 교수 남편을 두고 있고 본인은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며 겉으로는 가장 번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교회 생활에 열심이지만 남편이 같은 교회, 그것도 본인이 지휘하는 성가대 솔리스트인 여대생과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뒤로는 더욱 자신의 속마음과 감정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단속하느라 심한 내적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셋째, 미옥(장윤주)은 대학로 연극 작가로 활동하며 재혼인 남성과 결혼하여 살고 있지만 집필 작업이나 가정일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술에 찌들어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 걸핏하면 시비가 붙고 아내나 엄마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는 삶을 술에 의지해서 살아갈 뿐이다. 이 세 자매가 보여주는 일상은 관객 누구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물과 사건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을 따라가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짜 해서도 안 되고 당해서도 안 되는 부정적 경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지켜보는 절묘한 타이밍 영화 <세자매>와 정인이 사건이 교차하게 된 시점은 참으로 절묘하다.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가혹하게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을 관객들은 기억하면서 영화를 봐야 했으니 말이다. 특히 정인이의 양부모가 모두 기독교인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개신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노골화되고 있는 가운데 관객들은 영화관 밖의 현실과 영화 속 장면들이 허구가 아닌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정인이의 양부모는 유명 기독교 대학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양부의 직업 또한 기독교방송국 직원인데다 정인이의 조부와 외조부 모두가 교회 목사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독교인이 일으킨 반사회적 행동에 세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인이 남도 아닌 자식에게 어찌 그럴 수 있느냐라는 사회적 분노가 공감대를 형성할 만큼 확산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세 자매는 아버지의 생일잔치를 위해 자신들이 성장한 고향마을에 들어선다.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옛 건물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고통받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어머니를 때리고 밖에서 바람피워 데려온 큰 언니와 막내 남동생에 대한 매질이 유난히 심했던 아버지는 지금 교회의 장로가 되어 있었다. 영화는 과거의 전형적인 가부장주의적인 문화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기독교인 가정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점은 영화에서 교회와 기독교 신앙생활의 적지 않은 부분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 또한 부조리함을 나타냄으로써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음을 확인시켜준다. 어린 시절 둘째와 셋째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내복 바람으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동네 가게로 피신하고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에게 경찰에 신고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술 마시던 남자 손님으로부터 ‘아저씨가 쭈주바 사줄테니 그거 먹고 아버지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빌라’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학대가 용인되고 상처 입은 아이들의 미래는 눈곱만치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부터 상처받은 인간이 성장 후에도 고통의 흔적을 갖고 살아가는 현실을 세밀히 묘사한 점과 그것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사과와 용서 없이는 치유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은연중 드러낸 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도록 나타나지 않던 막내아들은 끝 장면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키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아버지의 생일잔치 때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의 곪은 상처가 결국 터지고 마는 것이다. 목사님이 초청되고 좋은 음식이 배열된 잔치 자리에서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앉아 있는 식탁 위로 오줌을 싸는 바람에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쯤 되면 장로인 아버지는 문제의 심각성도 깨닫고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법도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목사를 초청한 자리에서 자식에게 망신당하고 체면이 구겼다는 당황한 표정만이 역력할 뿐이다. 이제 이 영화의 명대사이자 성경적 관점에서 이 영화를 평가할 만한 가장 중요한 장면이 이어진다. 첫째 희숙의 골칫거리 딸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 “왜 어른들은 사과할 줄 모르는 거에요! 사과하세요!” <세자매>는 기독교 영화가 될 뻔했다 어떤 영화들은 순간의 묘사만 잘했더라면 기독교 명작으로 남을 뻔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세자매>가 그렇다. 마지막 결정적 장면에서 성경적 관점이 드러난다면 이전의 모든 장면들은 새롭게 해석되는 가운데 기독교 영화라는 위치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쉽다. <세자매>에서 장로인 아버지는 사과하라는 외손녀의 말을 듣고 세 딸과 막내아들 앞에서 그동안 저지른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배움이 적고 신앙이 모자라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인 자식들을 때린 것에 대해 눈물로 회개했다면 이 영화의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담임목사가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생일잔치가 난장판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체면이 구겼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너무 교화적이란 평가를 받았을까? 어차피 <세자매>를 끌고 가는 힘의 중심에는 둘째 미연(문소리)이 있으며 영화는 미연의 신앙생활을 세밀히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서의 사회적인 생활에서부터 가정 일상사에서도 신앙의 권위를 결코 잃지 않는 모습은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다. 식사 기도를 하지 못하는 자녀에게 훈계하는 모습은 신앙의 권위를 내세운 폭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밥상머리에서 신앙교육을 시키는 가정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꼭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십일조 봉투를 챙기며 남편이 받은 특강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꼭 남편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여자로 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남편과 바람 핀 성가대원과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우기보다는 조용히 압박을 주어 일을 해결하려는 모습은 냉정한 태도일 뿐 위선적이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철야 기도회 자리에서 남편과 바람 핀 성가대원을 이불을 씌우고 발로 지긋이 밟는 행위는 부드러운 언행과 불일치를 이루며 이중적이란 평가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인의 이중적 행태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영향이라는 전제가 깔린다면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자매>는 둘째 미연의 집들이 예배 상황과 아버지의 생일축하연을 영화의 앞과 뒤에 배치함으로써 기독교인이지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둘째 딸에게서도 학습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생일파티에서 참고 참았던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쏟아내던 둘째 미연에게 셋째 미옥은 “언니 눈에서 아버지가 보인다”고 말한 것은 가부장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신앙인의 이중적인 태도가 자식에게까지 되물림 되어 나타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남편의 내연녀를 대하는 미연의 모습은 개인의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보았을 때 결국 이 영화의 주제가 성경적 가치를 품고 있는 가의 여부가 이 영화의 성경적 가치를 판단하는데 핵심이 될 수 있다. 장로인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용서를 비는 대신 유리창에 자신의 머리를 박고 피를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것은 용서를 구하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에 가까운 행동일 수 있다. <세자매>는 단편적이나마 신앙인의 가정과 교회의 모습을 조명한다. 기독교 신앙인과 교회의 허물을 보여주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사실이 또한 그러하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방법은 달라야 한다. 단지 세 자매의 연대와 끈끈한 가족애가 문제해결 방법이 될수는 없다. 그것은 전형적인 휴머니즘 가족 드라마의 결말일 뿐이다. 기독교 영화의 상징적 특징은 완벽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죄와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사랑 안에서 회개와 용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아버지가 세 자매에게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는 가운데 가족의 연합을 도모했다면 우리는 훌륭한 기독교 영화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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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8
  • [기독교인문학] 인체로 본 유기체로서의 교회
    폴 브랜드, 필립얀시 《몸이라는 선물》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의와 한몸의 의미-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사랑받았던 저명한 의사 폴 브랜드와 필립얀시가 쓴 Fearfully and Wounderfully Made(심히 기묘하게 지음받은)와 속편 In His Image(그의 형상을 따라) 두 권의 내용을 압축 합본하고, 그동안 발전한 의학과 과학의 정보를 반영하여 ‘몸이라는 선물’ 제목으로 재 단장한 책이다. 2003년에 타계한 폴 브랜드 박사의 생전의 육성 녹음분을 토대로 함께 만들었다. 시편 139편 13~14절의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는 말씀과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라는 관점에서 우리 몸의 영적 의미를 찾고 있다. 저자와 함께 인체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다 보면 창조주의 놀라운 섭리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는 일상의 경의로움에 압도하게 된다. ◇저자소개 폴 브랜드∥1914~2003년 인도에서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영국에서 의학을 전공한 뒤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했다. 특히 혁신적인 한센병 치료술로 수 많은 환자들에게 새 삶을 열어주고, 재활로 사회로의 복귀를 도왔다. 《Clinical Mechanics of the Hand》(손의 임상역학)이라는 책은 지금도 손수술 분야의 고전으로 불린다. 이책 외에 필립 얀 시와 함깨 한 작품으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 《하나님의 영원한 잔치》 등이 있다. 필립 얀시∥ 1949~ 휘튼칼리지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영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제에 천착해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셨습니까?》,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등 우리에게는 친숙한 저명한 작가이다. 두란노 간 / 2020. 12.16. / 23,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 폴 브랜드 / 비아토르 《그들이 나를 살렸네》 필립얀시 / 포이에마 기독교인문학 〈18〉 인체로 본 유기체로서의 교회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그릇 “내 환자들은 단지 힘줄과 근육과 모낭과 신경세포와 피부세포의 총합이 아니다. 아무리 외형이 일그러지고 몸에 상처를 입었어도 저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그릇이다. 신앙에 말을, 말에 신앙을 입히다 김길구 읽는다고 수고하셨습니다. 두권을 합권한 책이라서 그런지 430여쪽의 두꺼운 책인데 다행히 글이 커서 시원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팀 켈러의 《죽음에 관하여》로 번역상을 받은 바 있는 전문 번역가 윤종석씨의 작품입니다. 그럼 이 책의 특징에 대해서 말해볼까요? 저자가 둘인데‥ 김현호 우선 나이 35살이나 차이가 나요. 그리고 이 책은 한센병의 권위자인 폴 브랜드 박사 사후에 출간되었어요. 의학인과 작가의 만남, 그렇게 보면 특이한 조합이네요. 김형기 그리고 한번 출간되었던 두 권의 책을 합본 형식으로 묶고, 그동안의 의학적 발전을 반영하여 내용의 일부를 수정 · 보완하고 책의 제목도 바꾸어 출간했으니 흔한 일은 아니네요. 저명한 언론인 필립 얀시가 이 책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김길구 책도 그렇지만 필립 얀시가 느끼는 폴 브랜브 박사에 대한 존경심도 대단한 것 같아요. 서문에 적힌 그의 표현이 이래요. 하나님께서 ‘너는 최악의 교회들을 여럿 보았으니 이제 내가 최선의 모습을 하나 보여주마’라고 ‘떠미신 것 같았다’는 표현과 둘의 작업을 빗대 필립 얀시가 폴 브랜드 박사의 ‘신앙에 말을 입혀 준 대신, 폴 브랜드는 필립 얀시의 말에 신앙을 입혀’주었다는 표현을 보면 요즘 말로 하면 둘의 ‘캐미’가 솔솔해요. 사람들로 인해 실망으로 믿음에 회의가 들때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난거예요. 김현호 인도선교사의 아들로 정형욋과 박사인 폴 브랜드는 한센병 전문가였고 감각을 잃은 신경세포로 인해 몸의 통각을 잃은 이들을 위해 선구적인 연구로 한센병뿐 아니라 당뇨병 환자들의 다리 절단을 막은 탁월한 치료법 개발로 해마다 수만 명의 환자들을 구한 명의이지요. 이 공로로 영국의 훈장도 받았습니다. 김형기 이 책의 구성도 이러한 폴 박사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이로움과 한 몸의 의미를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라는 관점에서 얘기하고 있어요. 인체에 대한 신비로운 ‘깨알지식’과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신앙적 단상이 어우러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를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한 예로 손바닥으로 귀를 댔을 때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인지 모를 때와 이 책을 통해 우리 머릿속 모세혈관에서 혈구가 흐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난 뒤의 우리 몸에 대한 이해와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요? 「콰시모도」 콤플렉스 김길구 본문에 콰시모도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는데 달라진 얼굴로 달라진 삶이랄까? 1967년 영국 두 의사가 살인, 매매춘, 강간 등 중죄를 지은 재소자 11,000명을 상대로 한 연구결과를 인용했는데 몸의 기형이 정서적 고통을 낳아 범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김형기 콰시모도는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 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으로 재소자 중 얼굴이 기형인 사람과 그렇치 않은 사람을 비교해 봤더니 기형인 사람이 60%를 차지하여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는 통계입니다. 이를 근거로 두 연구자는 재소자들의 성형을 제안하기도 했지요. 김현호 우리나라가 외모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은데,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우리가 외모의 아름다움을 선으로, 외모의 추함을 곧 악과 동일시하지는 않는지 성찰해 봐야겠네요. 이 책은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신체적 자아상에 가려 있지 않은지를 묻고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데도 이 땅에 사셨는데, 그 경험 덕분에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공감하지 않을까요? 한 몸이라는 선물 김길구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무수한 혈관과 신경세포를 통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인체가 어떻게 하나의 유기체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김현호 몸이 전체를 위해 어떻게 수많은 세포를 연합시키는지를 의학계에서는 ‘생체의 향상성’으로 설명하는데. 월터 캐논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몸이란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태를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세포는 끊임없이 요구사항을 알리고 몸은 일일이 반응해서 건강한 내부환경을 유지한다는 것이죠. 김형기 인체의 소속감도 이중으로 이루어지죠. 각 세포는 뇌의 지시를 따를 뿐 아니라 체내에 있는 다른 모든 세포와도 결속되어 있듯이 영적인 몸도 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몸에 소속되어 있을뿐 아니라 그 몸이 우리를 다른 다양한 세포와 결속시키듯이 “범사에 그에게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로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16). 김길구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저자들의 ‘작은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한센병이 무서운 것은 병균이 신체 부위를 파먹는 세균처럼 퍼져서가 아니라 딱 한 종류의 신경세포만을 공격하여 통증을 못느끼게 해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김현호 저자는 시종일관 인간의 몸에는 매혹적인 신비가 있다는 것, 피부의 복원력, 뼈의 힘과 구조, 근육의 역학적 귲형을 볼 때 몸의 각 기능이 저마다 쓰임새에 맞게 신비하게 빚어졌다는 생명에 대한 환희와 감탄입니다. 김형기 우리 몸에서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다양한 세포 가운데 전체 몸을 닮은 것은 하나도 없어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몸인 교회도 실망스럽게 그럴 듯 하지 않은 인체의 세포만큼이나 잡다한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공동체든 연합의 기초는 유사성이 아닌 다양성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하나로 묶는 것은 역시 사랑이지요. 다름에서 오는 깊음과 풍성함을 이루는 것은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 곧 사랑입니다. ‘통증’이라는 선물 김길구 지면 관계상 다 다룰 수는 없고 후반부로 들어가죠. 제5부 고통이 들려주는 고마운 신호들의 부제가 –통증이라는 선물인데요? 아픔을 느끼는 것이 선물이라? 무슨 사연일까요. 김형기 폴 브랜드 일화 중에 하나인데요. 영국에 출장을 가서 여러 지방을 돌며 업무를 본 뒤 런던에 도착하여 숙소인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벗는데 갑자기 발뒤꿈치에 감각이 없더랍니다. 직업이 한센병 환우들과 함께하는 일인지라 혹시나 하고 감염여부를 확인하러 핀으로 복숭아뼈 아래를 찔러 보았더니 아무런 감각이 없어 더 깊이 찔러보니 피는 나는데 감각이 없더랍니다. 감염된 것이 확신한 그는 잠 한숨 못자고 뜬눈으로 날을 지새우며 절망하다 아침에 핀으로 확인하니 통증으로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답니다. 통증은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헌신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는 감각인 셈이죠. 김현호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갈라지고 찟기고 상한 이 시대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몸의 지체들이라면 고난과 빈곤으로 한센병 환우들처럼 연약하고 이들을 품고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그 모델은 나사렛 출신 예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빛과 소금으로서 폴 브랜드 박사처럼 시대의 치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신비로운 인체여행을 통해 우리 몸의 영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호는 C.S루이스의 전작 중에서 엄선한 《신자의 자리로》를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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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21-01-20
  • 이광천 장로 '대표기도 이렇게 해봅시다' 출간
    CBS의 <1분 묵상>의 저자, 이광천 장로가 오랜만에 내놓은 『대표기도 이렇게 해봅시다』는 한국교회 대표기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대표기도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거쳐 총회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CBS 기독교방송 PD로 활동하면서 기도집 『함께 드리는 기도』, 『새벽의 기도』 등을 펴낸 이광천 장로는 “교회의 강단에서 주일마다 올려지는 기도가 과감히 교회의 담장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대표기도문을 집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1부 <기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에서는 성경에 나와 있는 대표기도에 대한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대표기도를 잘할 수 있을까’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부와 3부에서는 <교회 절기 및 특별예배> 그리고 <52주 주일예배>에서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모범적인 대표기도문을 실었다. 또한 4부에서는 여러교회 장로님과 권사님들의 실제 대표기도문을 수록하여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모두가 아는 대로 기도란 어려운 일이기에 예수님의 제자듵도 예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었다. 특히 시무장로가 주일예배 때 대표기도를 하는 일은 신앙생활 중에서 매우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저자 이광천 장로는 1970년 5월 CBS 방송 PD로 입사, 이후 CBS 제작부장, 편성부국장, CBS 청주방송 본부장, 중앙국 심의실장, CBS 부산방송 본부장, CBS 중앙국 비전21세기 국장을 역임하고 정년 퇴임했다. 학력은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외과, 동아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총회신학교를 수학했다. 문단 활동은 1983년 ≪월간문학≫에 수필 「너의 이름은 풀꽃」으로 등단하여 수필집 『바람에 날아간 소리』, 중편소설 『새들은 울기 시작했다』, 수필집 『여기 한 길이 있다』, 산문집 『내 삶을 빛내는 지혜의 샘』, 『이광천의 교회사 집필 이야기』, 기도집 『함께 드리는 기도』, 방송 에세이 『나의 인생 나의 노래 라디오 PD 이야기』 등을 출간하였다. 교회사는 『CBS 50년사』 『서울 온무리교회 100년사』 『서울 남현교회 50년사』 『큰은혜교회 50년사』 『부산 은성교회 50년사』 『봉화 제일교회 100년사』 『울산 대흥교회 50년사』 등 17개 교회의 교회사를 집필하였다. 최근에는 창과현에서 전자책 『내 삶을 빛내는 행복잠언 3000』(1권~7권), 『매일 드리는 기도 365일』(1~2)권을 발행하였다. 서울 경천교회 장로(예장통합), 수필문학회 이사, 장로문인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 문화
    • 도서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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