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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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31]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바로 오늘, 우리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분량에 비해 내용의 알참에 감탄한다. ‘교양으로 읽는…’이라는 제목과 책 부피를 보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방대한 이야기보따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먼저 종교개혁의 의미를 거론한 후, 루터 이전의 종교개혁자들의 족보(?)를 죽 나열하며 그들의 투쟁을 이야기한다.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에서부터 그냥 귀동냥했던 이름까지 등장한다. 12세기에 이미 가톨릭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에 대해 항의했던 이탈리아 브레스치아 수도원장이었던 아놀드에 이어, 프랑스의 피터 왈도, 파리의 존, 이탈리아의 마르실리오와 영국의 윌리엄 옥캄, 그리고 존 위클리프, 프라하의 얀 후스와 제롬까지.뿐만 아니다. 독일의 루터에서 시작한 개혁 이야기는 스위스의 츠빙글리, 칼빈을 거쳐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프랑스로 건너가 르페브르를 비롯해 고난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의 인생역정까지 이야기한다. 영국 국교회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더하여 당시 권력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재세례파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마치 중세 유럽사를 공부하는 것 같다.책을 다 읽고 나면, 종교개혁이 500년 전 유럽에서 벌어졌던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 || 저자 이상규는 호주 장로교신학대학에서 교회사를 연구하고 호주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부산지방 기독교전래사》 《해방 전후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등이 있다. 영음사, 2017. 11,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루터의 재발견》 / 최주훈 / 복있는사람 / 2017. 9.《교회개혁》 / 장 칼뱅 / 새물결플러스 / 2017. 9.《종교개혁》 / 폴커 렙핀 / 한국신학연구소 / 2017. 9.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도 그 의미를 되새겨야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특별손님: 이상규 고신대 신학과 교수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가 이렇게도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우리 교회를 향해 또 한 번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회자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저자 이상규 고신대 교수를 모시고 종교개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상시보다 한 시간 이상 더 늦게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1300년대 초부터 움터김길구 바쁘신 가운데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이상규 교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평신도들도 읽기 쉽게 정리한 종교개혁 개론서입니다. 마르틴 루터로 촉발된 종교개혁은 책을 덮으면서 ‘종교개혁들(The reformations)’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제로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이상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7년, 유럽에는 종교개혁 400주년을 맞아 상당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루터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이제 500주년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루터 당시의 서적을 번역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이런 가운데 주위에서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으면 좋겠다는 권고가 있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김수성 책 마지막에 ‘종교개혁 연표’를 넣으셨더군요. 그런데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훨씬 이전인 1302년부터 시작해 1678년 존 버니언이 《천로역정》을 출판한 것까지 정리하셨습니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이상규 정리하느라 조금 애를 먹고 시간도 제법 걸렸습니다만, 일부러 연표를 정리해 넣었습니다. 1302년부터 시작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최소 200여 년 전부터 그런 움직임이 있었고, 그 영향으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에 따른 직접적이든 간접적인 영향 또한 15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김현호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으로 본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이상규 연표에 있는 것처럼, 늦어도 14세기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교황을 비롯한 고위직 사제들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교회의 부패는 교리의 변질로 나타났고, 성직자들의 부패는 성적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라틴어로 이런 말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성직자의 바른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 #교회의 권력지향, 성직자 양산이 문제김길구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를 드러낸 것 같습니다.이상규 종교개혁 때 제기된 문제는 교황 그레고리1세 때부터 계속되어 온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권력지향적인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권모술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돈도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교리를 마음대로 뜯어고쳤고, 면죄부를 판매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직자의 양산입니다. 독일의 어떤 지역에는 주민 30명당 사제가 1명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성직자들이 마구 배출됩니다. 한마디로 제도적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타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김현호 당시 교회의 재산도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부정한 돈을 모으기 위해 없는 연옥까지 만들었습니다.이상규 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교회의 재산이 그 지역의 3분의 1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각종 헌금을 강요하고 여기에 더하여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농민을 착취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농민전쟁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도 사제가 너무 많아, 그로 인해 농민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수성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교회의 부패 외에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상규 맞습니다. 당시 유럽사회에는 르네상스의 분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르네상스란 한마디로 인문 사상의 부흥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의해 억압되기는 했지만 자연과학이 발전하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세속 군주들의 교회 권력에 대한 불만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입니다.김길구 종교개혁의 결과, 유럽을 한 가족처럼 묶었던 기독교가 민족국가종교 형태로 분화되면서 교회개혁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제사장’은 단순히 교회에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이상규 만인제사장이란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듯 중보자로서의 교회 또는 사제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와는 달리, 사제를 거치지 않고 누구든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죄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개신교의 두드러진 교리 중의 하나로 부각됩니다. 이 만인제사장 교리는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사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2세기 때부터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김현호 종교개혁 내용 중에는 성만찬과 관련해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가톨릭에서는 화체설을 이야기하면서 신자들에게는 빵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도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상규 당시 가톨릭교회는 성만찬에 참가하여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화체설’이라 합니다. 이것은 성만찬의 효과를 과장하여 교리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신자들에게는 빵만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화체설은 잘못된 교리라고 주장하였고, 현재 우리 개신교회가 인정하고 있는 ‘상징설’ 혹은 ‘기념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김길구 초대교회 당시는 일반적인 식탁에서 함께 둘러앉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며 온몸으로 만나는 성찬의식이 있었는데…. 개혁자들이 성례전 문제를 중요시한 까닭은 무엇이죠?이상규 교회사를 공부해보면, 2세기쯤부터 성찬식의 본래적인 모습이 서서히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직제도가 생기고, 성찬식이 의례화하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기 시작했고, 은혜 교리가 교회를 매개로 행위 구원 교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톨릭이 로마제국으로부터 공인받는 4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왜곡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결국 성경의 가르침에서 크게 이탈하였고, 개혁자들은 바른 성찬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김수성 초대교회의 직분이란 궁극적으로 ‘섬김’을 바탕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직 제도화되면서 계급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이상규 성경에는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라는 직분이 나오는데, 우리는 동의어로 봅니다. 그런데 3세기 이후 점차 이를 구분하여 감독은 장로보다 상위의 직분으로 보아 직분을 계층화하였습니다. 이것이 결국 중세 기독교에서 보는 바처럼 직분을 계급화한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목사와 장로를 계급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본래 칼빈의 직분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는 집례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였고, 장로는 신자들이 가르침받은 것을 제대로 시행하는가를 감독하는 역할로 보아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했습니다. 즉, 목사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자였고, 장로는 심방 등을 통해 신자들을 성화에 이르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김현호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주의 현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이상규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구조나 교회관 자체에 오해의 소지가 있고, 다른 하나는 유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목사와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을 유교적 신분 개념으로 받아들인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신분이나 계급이 다른 것으로 잘못 인식한 것이죠. #종교개혁으로 가정의 소중함 깨닫기도김길구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직자의 독신주의를 깬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초대교회에서는 결혼을 금하는 규정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이상규 가톨릭에서 독신주의는 금욕주의의 대두와 함께 2세기 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겠죠. 그러다가 1073년 그레고리 7세에 의해 독신주의가 다시 강조되고 법제화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 사제들의 도덕적 문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루터는 독신주의의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보아 이를 타파하고 수녀 출신의 부인을 맞아 결혼합니다. 독신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죄에 노출되는 현실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없애버리려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오히려 가족으로 인해 목회자들이 금전적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납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독신이 더 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이상규 가족 부양 문제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루터는 결혼 후 여섯 자녀를 두었는데, 여기에 더하여 여섯 명의 어린이를 입양하여 키웠습니다. 당시 전염병 등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물론 루터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정의 소중함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수성 ‘가정’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16세기 이후 교회로부터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종교개혁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김길구 최근 종교인 과세와 관련하여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은 어떠했습니까?이상규 마르틴 루터도 세금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국가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가톨릭교회는 별도의 바틴칸 시국이 있어 별도의 세금 제도를 운영하였습니다. 한 예로 ‘초세수입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부가 되면 첫 1년간의 봉급을 교황에게 바쳐야 한다는 법입니다. 한편, 유럽에 서서히 민족국가가 성립되면서 교회로 들어오는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가 면죄부 등으로 수익을 올리려 했던 것입니다. #개혁자들, 성경의 자국어 번역에 앞장서김현호 당시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 재세례파에 대한 재해석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이상규 재세례파는 스위스의 츠빙글리와 종교개혁에 동참했던 그레벨과 만츠 등이 ‘신자의 세례’를 제창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성인이 신앙고백을 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재세례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급진적이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거부하고, 전쟁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징집에 불응하는 등으로 국가, 가톨릭교회, 개신교 모두에게서 탄압을 받았습니다.김수성 종교개혁의 역사를 보면 종교개혁의 성공 여부를 좌우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나 시의회 등 정치세력이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이상규 그렇습니다. 국가나 관료의 지원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메지스터리얼 리폼’이라고도 합니다. 루터가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의 도움을 받은 것이나, 개혁운동이 취리히나 제네바 의회의 결의에 따른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개혁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 할 수 있고, 시기적으로 볼 때 인쇄술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김현호 그래서 종교개혁을 ‘미디어 사건’이라고도 하는군요. 책에도 나와 있듯이 루터의 작품들은 “판매되었다기보다는 빼앗겼다”고 할 만큼 인기가 있었고, 이런 점에서 프랑소와 랑베르는 “인쇄술은 하나님의 준비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대부분은 라틴어 성경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했습니다.이상규 중세교회 때 이미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피터 왈도가 있습니다. 이어서 영국의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이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국어로 번역한 성경은 인쇄되어 대중들에게 보급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바로 인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김길구 종교개혁의 핵심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세 가지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교계에는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가 만연함으로써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규 오늘 우리의 개신교회가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교회를 닮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목회자의 양산과 일부 목회자들의 도덕적 탈선이 문제입니다. 교회 혹은 성직구조의 권력화, 돈, 권력, 명예에 대한 탐심이 문제이지요. 그동안 개신교회는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눈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유럽 역사와 함께 통사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정리하였고, 숨겨진 이야기까지 빠뜨리지 않은 역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이상규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우종학 교수가 쓴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창조과학’과 관련하여 읽어봐야 할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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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10-16
  • [기독교 교양 읽기 30] 과연 초대교회로의 회귀는 가능한가?
    1세기 교회의 예배 모습은? 정말 얇은 책이다. 크기도 조그마한데다, 앞에 나오는 서문과 곳곳에 삽입된 그림을 제외하면 본문은 60쪽 분량도 안 된다. 그런데 행간을 읽으면 저자는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이 책의 번역자가 후기에다 그 내용을 죽 나열하였다. 그대로 옮긴다.“이 책은 얼마 안 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담아야 할 매우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종과 주인, 여자와 남자, 가난한자와 부자, 아이와 어른과 노인, 가족과 독신, 해방과 자유, 세상과 교회, 직업 소명과 신분, 성만찬과 세례, 논쟁과 조정, 상황과 말씀, 식사와 성찬, 일상과 초월, 공간과 시간, 의외성과 규칙성, 참여와 권위, 본질과 형식, 치료와 치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덩치만 크지 단조롭기 그지없는 오늘날의 어떤 대형 교회보다도 열아홉 명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공동체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교회의 본질과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1세기 가정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단편적인 내용으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가정교회의 예배 등은 스스로 밝히듯이 저자가 재구성한 것이다. 즉, 나름대로 역사적 자료에 기초했다고 하지만, 당연히 픽션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 저자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약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울의 공동체 사상》 《일상생활 속의 그리스도》 등이 있다. Ivp, 2017. 6,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마케도니아 빌립보 출신의 로마군인 푸블리우스가 잠시 로마에 머물면서 오랜 친구들을 따라 외곽 뒷골목에 있는 기독교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당시의 분위기와 느낌 등을 회고한다. 식사를 하면서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예배였다. #초대교회의 또 다른 모습 보여주는 책김길구 저자는 이 책에서 AD 60년경의 한 가정교회 예배 모습을 통해 당시 기독교인들의 사상과 삶의 모습 등 다양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바울의 공동체 사상》 등을 바탕으로 했기에, 이들 책을 먼저 봐야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김현호 이 책은 약 30년 전에 번역 출판되었는데,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마구 떨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초대교회 모습이 이 책으로 인해 상당히 구체화되었습니다.김길구 여기에 등장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를 한동안 목숨을 내놓고 섬겼던 충실한 사역자였습니다. 저자가 이들 가정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당시 가장 모범적인 가정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합니다.김수성 그동안 우리는 ‘초대교회’ 하면 종말론과 관련해서만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뜨겁게 타올랐던 신앙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이 책은 우리에게 초대교회의 다른 모습을 구체적이고도 심도 있게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김현호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강조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만을 이야기하고는 끝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이 교회의 시작은 될지언정 초대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죠.김길구 초대교회의 본래적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관계와 예배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의 상호 관계는 어떠했으며, 그들이 드린 예배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주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을 좀 더 촘촘하게 파악해야 초대교회의 뭉뚱그린 모습이라도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1세기 당시의 예배 모습을 살펴봅시다.김현호 먼저 평신도 중심의 교회라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어느 누구도 직분을 가진 자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조직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루터가 강조했던 ‘만인제사장’이 구체화됐던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역예배, 초대교회 모습과 가장 닮아김수성 저는 코이노니아가 상당히 강조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런 코이노니아를 찾기 어렵죠. 식탁에서 함께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드리는 예배에서 진정한 친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교회에서도 음식을 나누기는 하지만 이런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죠.김길구 이들이 나눈 대화가 실제 삶과 전혀 분리되지 않은 부분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즉,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면 우선 사변적이거나 교리적인 논의에 앞서, 신자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김현호 성만찬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만찬은 신자들에게 형식적인 모습으로 비춰져 피동적으로 성례전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고난이 피상적으로만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김길구 교회가 가정교회에서 교회 건물로 바뀐데 이어 실제 식사에서 성만찬이란 상징적인 식사로 바뀐 것이 이채롭네요. 당시 공동체적인 식사는 종교적이기도 하고 사교적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교회, 또 하나의 가족》에서 그 대안으로 가정교회를 제시합니다.김현호 우리가 초대교회의 본래적인 모습, 즉 예배나 모임의 진정성을 얼마나 회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다시 부각된 셀(cell)교회도 초대교회를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회가 교역자 중심이라면 셀교회는 평신도 중심, 가정예배 중심입니다. 한편, 구역예배가 소극적인 모임이 아닌 하나의 ‘작은 교회’로서 이웃을 향한 열린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은 목회의 일부를 위임하고 재원을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구역 공과나 큐티 나눔 정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합니다.김수성 초대교회 당시와 지금은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사회환경적으로 상당히 변했죠. 단적으로 현대에 사는 우리는 자본주의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삶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가족공동체의 모습도 바뀌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초대교회를 꿈꾸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구태여 이런 환경에서 적용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면, 얼마 전에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언급했던 ‘라살 스트리트 교회’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의 신분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모두가 한데 어울릴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죠. #누구든 진정으로 ‘환대’하는 모습 보여야김길구 초대교회의 가장 큰 강점은 남녀, 신분, 빈천, 지위를 막론하고 한데 어울렸던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주인과 노예가 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신분사회라는 당시 상황에서 보면 이는 가히 혁명적인 마인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를 닮아야 한다고 외치는 오늘날 교회에는 아직도 이러한 다양한 차별 인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없애는 것도 초대교회를 닮아가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김현호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생각할 것은 ‘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진정으로 이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찌릿한 느낌을 받았습니다.김길구 상당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익명성이라는 현대인들의 어두운 이면에 숨어 형식적인 환영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김수성 교회가 커지면서 환대가 점점 사라진 것 아닐까요? 아직도 조그마한 교회에서는 누구든 한 사람이 오면 상당히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환대를 받지요.김현호 환대 역시 교회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예들을 귀히 여기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19명에 불과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가 본받아야 할 대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길구 사학자들에 따르면, 3~4세기경에 벌써 교회의 모습이 집합적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4세기 이후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거의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책의 출판이 우리에게 초대교회의 모습을 조금씩이라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다음에는 고신대 이상규 교수의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위르겐 몰트만 등에 따르면, 우리는 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나 조직적 이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류의 함께하는 삶을 형성해 나가는 공동체적 이해로 옮겨가야 한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공동체적 이해를 중심으로 모인 것으로 보인다. [Judith Clingan 그림]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교회, 또 하나의 가족》 / 로버트 뱅크스 외 / Ivp 《바울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사상》 / 로버트 뱅크스 / 여수룬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9-11
  • [기독교 교양 읽기 29] “일터사역이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사회적·제도적 차원으로 확산돼야”
    기독경영 실천하는 치과의사 이야기 참 별난 치과의사다. 일터를 사역지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것을 목회처럼 하려고 한다.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가는 의료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신학대학원에 가서 종말론적 윤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그의 신앙고백이다. “주신 은혜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면서부터 의료 현장에서 관행처럼 해왔던 일들이 죄로 보이기 시작했다. 직원과 환자를 대하던 태도, 거래처를 다루던 거친 매너,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습관적인 변명과 과장 등 내 삶의 모든 부분이 내가 받은 은혜와는 접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직원들에게 그동안 군림했던 자세를 진정으로 사과하고, 함께 진료실을 청소하는 것으로부터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진료실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투명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환자에 대해서도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하였다.그는 부활 신앙을 핵심으로 하여, 현재의 삶도 입으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기독 경영’이라고 한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가치와 원리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을 그날처럼》 || 저자 이철규는 개업한 치과의사로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성경신학을 전공했다. 치과의 선교사로 중국에서 사역하기도 했고, 현재 치과의료선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물결플러스, 2017. 15,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그릇의 앞면이 믿음이라면 그릇의 뒷면은 행동과 생활이라 할 수 있다. 앞면이 나를 쓰시고자 하는 주님과의 관계라면 뒷면은 내가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다. 그릇을 앞뒤로 나눌 수 없듯이 믿음과 생활은 하나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일상생활에서 신학적 성찰 동반해야김길구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온전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저자는 개인생활은 물론이고 직장 등 모든 면에서 ‘온전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김현호 비슷한 말이지만 저는 ‘신실함’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내용으로 보면, 그는 철저히 복음주의적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복음주의적 신실함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김수성 저자 스스로 ‘인테그리티(integrity)’를 이야기한 부분이 있죠. 서양 교육의 핵심 가치 중 하나라며,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애매한데 자기는 ‘진정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합니다. 온전함, 신실함, 진정성, 어느 것을 사용하든 같은 맥락의 용어인 것 같습니다.김길구 이 책은 일터 사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먼저 ‘일터신학’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터를 바라보는 시각이 몇 개 있는데, 일터신학은 기본적으로 일터와 선교현장을 별개로 보지 않습니다. 즉, 일터가 곧 선교현장이 된다는 입장입니다.김현호 폴 스티븐스 목사의 ‘노동신학’과도 연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망치를 든 목사’라는 말에 어울리게 일터와 목회에 구분을 두지 않고,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신학적 성찰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김길구 일터신학은 개신교의 구원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회나 사제를 거치지 않고 개개인 누구나 예수님을 통해 직접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곧 교회가 되고, 그가 일하는 현장이 사역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김현호 저자가 어려울 때마다 그를 버티게 해준 성경구절도 사변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점차 구체적이고 능동적인 성경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그가 끊임없이 큐티와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김길구 한편으로 저자의 변화과정을 보면 단계적인 성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과 신앙을 일치시키는 단계를 보면 ▷일을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단계, ▷일터에서 영성을 유지하는 단계, ▷도덕적이고 제도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단계, ▷신학적 자기정체성 확립 단계로 나아갑니다. 저자 역시 이러한 변화 과정을 밟은 것으로 보입니다. ▲ 일터신학은 일터도 하나의 사역 공간임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함, 신실함,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출처: knsfinancial.com] #교회가 ‘깨끗한 富’에 관심을 가져야김수성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이나 하나의 일터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이고 제도적 변화로 널리 확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길구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공직자가 한 명 있죠. 최근 새로 선임된 공정거래위원장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소위 ‘갑질’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시민들에게 바람직하게 비쳐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시민들을 분노케 했던 ‘땅콩 회항’을 비롯해 프렌차이즈 본부의 횡포 등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김수성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당했던 가맹점들의 요구사항이 표면화되는 등 소위 생활민주주의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죠.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기득권층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김현호 사회의 갑질 못지않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교회에서의 갑질입니다. 직분을 가진 분들이나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이 알게 모르게 갑질 행세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분이나 새로 교회에 출석한 분들이 상처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김길구 교회의 기본적인 시각도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열심히 출석하는 교인, 헌금을 잘 내는 교인을 ‘좋은 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터에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도덕적 불감증, 갑질과 같이 일터에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습니다. 또한 가끔 강단에서 예로 드는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부호들에 대해서도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김수성 록펠러나 카네기는 당시 ‘황제’로 불렸죠. 소규모 기업은 물론, 사업을 확장하는데 방해가 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흡수합병했습니다. 소속 근로자 착취와 노동조합 방해도 다반사였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낸 헌금을 거절한 선교단체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김현호 저자가 원장으로서의 권한을 내려놓은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직원들에게 권위적이었던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함께 진료실을 청소하고, 신입직원 선정에 직원들을 참여시켜 민주적으로 선발하는 등, 갑으로서의 권한을 모두 직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김길구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야기했던 ‘청부(淸富)’에 대해 우리 기독교회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개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기독교가 이에 앞장서야 합니다. #‘기독 경영’은 지속가능한 운동이다김수성 한편,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유수한 대학 출신인데다, 직업도 안정적인 치과 원장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결단만 내리면 충분히 일터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월급쟁이 직원들에게 일터사역을 하라고 한다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양심껏’ 처리할 수 있을까요?김길구 일터사역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교회가 크리스천 CEO들이 먼저 올바로 설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김현호 저자도 자기 병원에서의 일터사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치과의사회 등 단체를 통해 사역을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이라고 하기보다는 모든 치과의사들에게 이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압력(?)을 넣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저자가 하고 있는 사역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윤의 극대화에서 적정이윤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변화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해 이런 긍정적인 흐름이 급격하게 퇴색하고, 자본주의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되기는 했지만….김현호 경영학적 흐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기독 경영’을 한다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운동이 될 것입니다. 생활에서부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일터의 생활이 곧 예배의 차원으로까지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김길구 당장 우리 사회에 커다란 화두로 던져진 최저임금 1만원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초대교회의 집회 모습을 재구성한 로버트 뱅크스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IVP, 2017)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일의 신학》 / 폴 스티븐스 / CUP 《월요일의 그리스도인》 / 최영수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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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8-07
  • [기독교 교양 읽기 28]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워할 때 더 크게 기뻐하는 분이시다!”
    ‘거룩한 쾌락’ 누리시길… 그동안 교회에서 부정적으로, 심지어는 죄악시했던 ‘쾌락’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꿔준다. 저자가 언급했던 내용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그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거룩한 쾌락’을 누리기를 강조한다.■의무와 훈련만 말하는 복음은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앗아간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즐거워할 때 기뻐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즐거움은 그분이 상상을 초월하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사주신 것이다.■우리는 쾌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거룩함이야말로 쾌락의 가장 진정한 친구이다. ■복 자체도 은혜지만 그 복을 누리는 능력도 그분의 은혜라 할 수 있다.■당신에게 즐거운 일이라면 그 자체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다들 긴 한 주간을 보내고 모인 교회에 건강한 웃음이 있다면 그 또한 큰 유익이 될 것이다.■우리는 쾌락에도 위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맨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밖에 다른 쾌락들에도 다 질서가 있다. 이 위계가 깨지거나 뒤틀리면 덜 중요한 쾌락들이 가장 중요한 쾌락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쾌락은 그리스도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쾌락》 || 게리 토마스(Gary I. Thomas)는 ‘복음주의영성센터’ 설립자 및 대표로서 작가이자 사역자이다. 저서로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등이 있다. 원제 Pure Pleasure(2009). 윤종석 역. CUP, 2012. 15,000원. ▲ 여유 있게 즐기는 한 끼의 맛있는 식사가 쾌락이 될 수도 있다. 기쁨은 없고 훈련만 있으면 결국 우리의 마음이 냉혹해지고 교만해져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게 된다. [Dinner. 출처: primer.com]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쾌락을 경멸하는 태도는 고차원의 영성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한 죄이다. 쾌락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인식하게 하고, 그분께 더 깊이 감사하게 하고, 내세의 더 풍요로운 쾌락에 소망을 두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신 것이다.” - 제임스 패커. #당신의 ‘쾌락 필요지수’는 얼마인가?김길구 : 이 책의 저자 게리 토마스는 영성과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쾌락을 누리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러면서 29쪽에 ‘쾌락 필요지수 진단지’를 만들어놓고는 스스로 한 번 테스트해보라고 권합니다.김현호 : 우리 모임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외향적으로 살아가는 분은 지수가 높게 나오는 반면, 내성적인 분들은 낮게 나옵디다. 여기에 더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들은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김수성 : 저는 이런 테스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수준이 나온 분들은 주로 어떤 일에 종사하는 분인가요?김현호 : 교회에서 목회를 하거나 사역을 하는 분들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이 분들은 가끔 쾌락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역을 하는 분들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개인은 물론, 가정과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김길구 : 저는 좀 낮게 나옵디다. 대체로 본인의 성격과 관계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사역을 하는 분들에게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중세 이후 교회가 쾌락보다는 절제를 강조한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수도원에서는 경건성을 강조하기 위해 내적 기쁨까지도 절제하고 자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러한 흐름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는 것 같습니다.김수성 :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제목이 선정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쾌락’이라고 하면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원제는 ‘순수한 즐거움’ 또는 ‘순결한 즐거움’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김현호 :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데올로기 등으로 인해 잃어버린 좋은 말이 많습니다. ‘동무’라는 말이 공산주의와 맞물리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 것과 같이, 쾌락이란 말도 ‘종교적 거룩’에 반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을 많이 사용해서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김길구 : 저자가 인용한 성경 구절을 보면 시편이나 아가서 등이 많은데, 전도서 8장 15절에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는 구절에서 사용한 ‘희락’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김수성 : 그게 상당히 적합한 단어일 것 같네요.김현호 : 히브리어 ‘마카리오스’라는 말에는 ‘쾌락이 넘쳐흐르는 삶을 누려라’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쾌락이라는 말을 우리도 자주 사용하면 익숙해지리라 봅니다. #교회가 이제는 ‘쾌락’을 처방했으면김길구 : 이 책 첫머리에 양치식물 비유가 나옵니다. 양치식물은 고사리 같은 식물인데, 주로 경사진 곳에 많이 서식한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식물이 무성해서 위험을 느낄 수 없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럴 때 ‘주의하라’고 강조합니다. 즉, 밑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김현호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놓치지 쉬운 소소한 즐거움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했듯이 중세적 경건함이 개신교에는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이어져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생활 속의 쾌락마저도 억압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김수성 : 지난달에 읽었던 필립 얀시의 책에서도 이런 것이 강조되었죠. 특히 사역자들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가끔 ‘달콤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이 책에서는 커피를 예로 듭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는 나라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커피 한 잔에 3달러를 쓴단 말인가?”라며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달콤한 휴식이라고.김길구 : ‘종교적 중독자’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의무만을 생각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죠. 저는 ‘누리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참 좋은 낱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끔은 맛있는 음식의 즐거움을 누리고, 또한 자유를 누려야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무에만 매몰되면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죠.김현호 : 저자는 ‘쾌락의 비용은 낭비가 아니다’고 강조합니다. 교회가 이제는 ‘쾌락’을 처방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역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동참해야겠죠.김수성 : 저는 한국 교회의 예배가 너무 경건을 강조함으로써 교인의 즐거움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어야 하고, 예배가 축제의 장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예배 순서 등을 적절하게 조절했으면 좋겠습니다.김길구 : 교회는 개인의 기쁨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기쁨이 되도록 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이 책에서 좋은 예가 하나 나옵니다. 목사 청빙위원회 일원으로 참석했을 때, 계속해서 인간의 죄성(罪性)과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만 하는 분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강단에 선 목회자는 희망과 쾌락도 충분히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의 절기에 따른 설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기에 따라 회개와 기쁨, 의무와 희망 등 균형 잡힌 메시지를 골고루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 나라 확장이 궁극적인 즐거움김길구 : 저자는 일상의 쾌락을 이야기하면서도 쾌락에도 위계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즉, 맨 위에 계신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쾌락이 중요하기는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쾌락을 우리가 통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쾌락이 우리를 통제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김수성 : 우리가 누려야 할 쾌락을 ‘거룩한 쾌락’이라고 이름붙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쾌락 자체가 우상이 된다는 것이지요.김현호 : 균형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일과 쉼, 놀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쾌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쾌락을 책임감 있게 수용하라는 말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쾌락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세속적으로 이야기하는 쾌락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위르겐 몰트만은 “우리는 자신이 얻은 구원을 신나게 놀이로 수용해야 한다”면서도 “해방된 사람들 안에는 부활절의 웃음과 십자가의 슬픔이 둘 다 살아있다”라는 말로 균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균형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일터신앙을 이야기한 치과의사 이철규의 《오늘을 그날처럼》(새물결플러스, 2017)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7일간의 기쁨 회복》 / 김창현 / 이레서원 《하나님을 기뻐하라》 / 존 파이퍼 / 생명의말씀사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7-10
  • [기독교 교양 읽기 27] 교회는 모두 비슷한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에 서로 위로하고 곁길로 빠지지 않게 도와줘야
    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닮았다 120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다. 책 크기도 작다. 그런데 알차다. 내용도 옹골지고 필력도 뛰어나다.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교회 이야기를 하며 교회와 교인들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어렸을 때는 “교회는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세상에서 나를 싣고 가는 구명보트”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우리는 은혜를 말하면서 율법으로 살았고, 사랑을 말하면서 미움을 흘렸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전에 나는 비판적인 소비자 정신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공연으로 보았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관객”이시므로, “예배를 마치고 떠날 때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순례 여정에서 나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이어서 ‘라살 스트리트 교회’에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겸손과 절대 정직, 절대 의존의 필요성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다지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줄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같고, 통일성과 다양성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며, 사역자가 현장에서 사역하는 중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모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유지해야 함도 강조한다.◈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 필립 얀시는 영미권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다. 저서로 《그들이 나를 살렸네》 등이 있다. 원제 Church: Why bother?(1998). IVP, 2010. 8,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저자 필립 얀시는 ‘나의 교회 방랑기’로 글을 시작한다. 순례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자기와 교회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냈다. 첫째는 위선이었다고 고백한다. ‘교인이 다 나 같다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 읽고서 ‘참 아름다운 책’이라는 느낌 김길구 : 이 책을 열면 첫머리에 의미심장한 저자의 인사말이 나옵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와 역동성을 자랑하는 한국교회에도 … 교회에 대한 회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굳이 교회라는 조직에 소속될 필요가 있을까?’ ‘종교 없이도 영적인 삶은 살 수 있는 거 아닌가?’…”김현호 :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1월에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해에 읽었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실망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저자의 솔직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교회를 다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김수성 : 저는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 책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자의 필력도 대단하지만, 그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좀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김길구 : “기독교는 삶이 수반되는 종교이며, 그 삶은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공동체의 삶이 먼저 이루어지면 갈등 해결이나 평화가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스캇 펫의 말도 같은 의미이죠.김수성 : 저자가 언급했듯이, 전에는 비판적인 소비자 의식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하나의 공연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불편하고 부족한 점만 눈에 띌 수밖에 없었죠.김현호 : 사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통제된 환경과 경직된 문화, 정죄만 가득한 것으로 비쳐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는 숨이 콱 막힐 정도죠. 어디서도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결국 ‘가나안 신자’로 교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관객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할 예배를 드렸는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초대교회가 국적, 인종, 계급, 나이, 성별을 초월해서 모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교회 공동체는 가족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 감당해야김현호 : 저자가 소개한 러셀 스트리트 교회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물론이고 노숙자들,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사람들과도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 성찬식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를 향해 럭비공을 던진 남자도 안고 가는 그런 교회입니다.김길구 : 헨리 나우헨이 공동체를 가리켜 ‘가장 함께 살기 싫은 사람들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이라고 정의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공동체 정신으로 서로를 섬기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교회는 거름과 같다는 비유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거름은 쌓아두면 온 동네에 악취를 풍기지만, 골고루 잘 뿌려주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원봉사라고 강조합니다.김수성 : 그 부분에서 문득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첫날 둘째 이야기가 생각납디다. 한 유대인이 로마 교황청에 가서 그들의 부정부패를 보고서 오히려 기독교로 개종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부패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더 불어나고, 성령이 더 찬연히 빛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유진 피터슨의 말처럼 교회에는 신비로움과 함께 어수선함도 대등하게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어수선함이 더 교회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다 같은 죄인들이 모였기에 서로서로 위로하고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김현호 : 교회 공동체의 참모습은 교우들이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상처입고 무리로부터 배척당하는 영혼들을 감싸 안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도 그러한 상처를 가지고 왔지만 서로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가운데 스스로도 치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을 가나안 신자들이나 교회와 자꾸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선교훈련 못지않게 공동체훈련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사실 교회 구성원 상당수가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 그리고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어른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부딪치며 살다보니 어른이 된 것이지요. 당연히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합니다. 자칫 상처를 받으면 교회를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가나안 신자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역자들에게 충전할 기회 제공해야김길구 :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치명상을 입지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이야기도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남의 아픔에 헌신하다가 오히려 자기가 축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현호 : ‘구세주 콤플렉스’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사람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 사람의 고통을 다 떠맡으려는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 고통을 치유하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현상이지요. 김수성 : 존 던이 했던 말인데, 책 가운데 아주 명쾌한 말이 나옵디다.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는 내 십자가가 아니다.”김길구 : 사역자들도 가끔은 값비싼 외식이나 음악회 등 ‘호강’을 누려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계속되는 고생과 외적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을 얻는 기회를 마련해야만 다시 일선에서 일할 수 있다는 주장이지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러한 것을 잘못된 것으로만 치부하는 교인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이제 교회도 병원과 같이 영혼이 병들고 아픈 환자들이 득실대는 곳이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서로 위로하고 위안을 받으면서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봐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 결론 부분에, 교회가 실패하고 과오를 범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미달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감행하신 모험이라는 말이 강하게 와 닿더군요.김길구 오늘은 상당히 책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다른 분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게리 토마스의 《쾌락, 하나님이 주신 순전한 즐거움》(CUP, 2012)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교회 공동체는 하나의 기관이라기보다는 가족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서로를 감싸주고 안아주는 곳이어야 한다. [Church-Self-Portrait. 출처: annaflowers.org]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 / 엘리자베스 오코너 / IVP 《교회를 꿈꾼다》 / 김형국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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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6-12
  • [기독교 교양 읽기 26]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대해서는 복종의무 사라져
    복종을 넘어 저항으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이렇게 시작되는 로마서 13장 1절에서 7절까지의 성경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설서이다.얼마 전 박근혜 정권 퇴진과 관련하여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이 와중에 일단의 목사와 기독교인들은 이 성경구절을 내세우며 ‘불법적인’ 정치권력이라 할지라도, 이 권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이에 대해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편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그러므로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의 이 이야기는 특별한 상황에서 언급된 것이므로, 이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또한 그 권세는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이 전제를 만족하지 못할 경우, 그 권세는 불의한 권력이 되고, 그럴 경우 그 권력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므로 복종의 의무는 당연히 사라진다.요한계시록 등에 따르면 그런 권력에 대해서는 불복종으로 넘어 오히려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의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권에 친화적인 목회자들의 정교유착이라고 본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도 역시 저항해야 함을 가르친다.◈ 《로마서 13장 다시 읽기》 || 저자 권연경은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육과 교수이다. 저서로 《행위 없는 구원?: 새롭게 읽는 바울의 복음》 《로마서 산책》 등이 있다. 뉴스앤조이, 2017. 9,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지난 5월 9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어 다음날부터 바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그동안 탄핵정국을 둘러싸고 광화문광장과 대한문 앞에서 벌어졌던 ‘촛불’과 ‘태극기’의 공방도 일단락되었다. 이 시점에서 일부 교계 지도자들의 극단적인 행태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로마서 13장 다시읽기》를 통하여 올바른 기독교와 권력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태극기 집회에 등장한 십자가 ‘충격’김길구 이 책 앞부분에도 나와 있지만, 오늘날 로마서 13장 1절에서 7절까지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바울의 이야기는 한국 교회에 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성경구절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계속된 탄핵정국과 관련해서도 교계에 등장하였습니다. 즉, 정권에 복종하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요.김현호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도 그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반복된 일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에 기독교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 이 구절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정부에 순응하기를 권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번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서도 나타난 것입니다.김수성 나는 태극기 집회에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동원하고, 대형 십자가를 지고 앞장서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나 입을 가운까지 입고, 교인들 중에도 역시 성가대 가운을 입고 뒤따라 행진하였습니다.김현호 일부 목회자들이 그들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교인들을 잘못 인도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목회자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순종’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들이 앞장서 ‘십자가를 진다(?)’는 데 따르지 않으면 불순종이 됩니다.김길구 일부 교회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전체적인 맥락은 생각하지 않고 문자주의에 따라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권세도 몇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권세를 어떤 권세로 보느냐에 따라 그 입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김수성 한 종교학자는 이런 것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아직 유교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뽑지만, 대통령은 왕으로, 정부는 절대권력이라는 인식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길용,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 참조] ‘공평과 정의가 권력의 근거’ 깨달아야김길구 권력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무엘을 통해 왕을 세운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한 권력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세운 권력도 불의를 행할 때는 그 권력을 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말년의 사울왕의 권력을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스스로가 세운 권력입니다. 로마서 13장에서 이야기하는 권력은 바로 첫 번째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결국 권력이란,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공평과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집요한 관심을 깨닫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통치 권력을 세우지만, 그 권력이 공평과 정의를 저버리면 그 권력은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즉, 권력이란 하나님께서 의를 세우기 위해 대리자에게 위임한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다면 대리자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그 권력에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즉, 복종의무가 사라지는 것이죠.김길구 저자는 로마서 13장이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서 나온 내용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즉, 권력이 올바로 섰을 때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법정에 서겠다고 한 것도 로마의 권세가 정당하게 행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네로의 치세였지만, 폭군 네로도 처음에는 정치를 잘해서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부분을 해석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습니다.김현호 만약 부패한 권력이라면 단순히 복종할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의 행동이 창조 세계를 회복하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일치하느냐 아니냐’라는 척도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독재정권이나 부패정권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바로잡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요.김수성 절대권력 시대에 살았던 맹자조차도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비록 지금의 민중혁명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왕이 패악을 일삼으며 백성을 돌보지 않고 억압할 경우 그 왕조를 패하고 올바른 다른 왕조가 들어서야 함의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평화와 질서 아래서 훌륭한 시민 돼야김길구 본회퍼의 히틀러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미친 사람이 대로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목사로서의 나는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자동차에 뛰어올라 그 미친 사람의 손에서 핸들을 빼앗아버려야 하지 않겠는가?”김현호 미가서 3장 9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을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악한 통치에 복종하고 그 악에 협조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김수성 로마서 13장을 해석할 때 더 중요한 것은 시대가 바뀌었음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왕정이나 제국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적합한 성경읽기가 필요할 것입니다.김길구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권력자는 국민에게서 그 권력을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합니다. 그러므로 그 권력은 반드시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들의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김현호 유진 피터슨이 쓴 《메시지 신약》에는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훌륭한 시민이 되십시오. 모든 정부는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평화와 질서가 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성 있는 시민으로 사십시오.” 국민으로서의 책임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의 질서가 우선입니다.김길구 저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기독교인들의 인터뷰에서, 역사적 맥락이나 깊은 신학적 통찰 없이 거리로 나선 이들 어르신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회와 권력의 균형 잡힌 시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다음에는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 2010)을 읽고, 교회 출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조그마한 책이지만, 필력이 뛰어난 저자의 글이 독자에게 많은 감동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로마서 13장은 문자 그대로 읽을 경우 현실과는 동떨어진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서 해석해야 한다. [사진은 태극기 집회에 등장한 십자가 행진]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더불어 사는 다문화 함께하는 한국교회》 / 조성돈 외 / 예영 《마지널리티: 다문화 시대의 신학》 / 이정용 신재식 / 포이에마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5-15
  • [기독교 교양 읽기 25] 한국교회, ‘이주민’에 더욱 관심 기울이길
    이주민과 ‘함께’! 20년 전 어느 날 성남의 한 양말공장에서 일하다가 부당한 처우와 상습적인 성추행 등을 피해 도망쳐온 이주노동자 8명이 저자가 담임하던 교회로 피신해 왔다. 여성이 7명이었다. 그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민중목회를 하던 부부 목사가 당시 던졌던 물음은 이러했다.“오늘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때 그들이 들은 대답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소리였다. 이들은 이 소리에 바로 응답하였다. 외국인 노동자센터를 설립하고는 이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특히 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전용쉼터를 한국 최초로 마련하였다.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여성들이 대폭 늘어남으로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도 설립하였다. 그리고서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구조적인 문제, 나아가 한국인의 인식 문제 등에 대해 하나씩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그동안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이주민들이 고통받은 구체적인 사례도 많이 제시해 놓았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저질렀던 악행이다. 우리 먼저 부끄러워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주민인권운동의 원칙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주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르게, 평등하게》 || 최정의팔, 한국염 목사는 둘 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면서 부부이다. 20여년 외국인노동자와 국제결혼 이주여성 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이주민 운동을 해왔다. 동연, 2016. 15,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저자인 한국염과 최정의팔 부부 목사의 말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컴퓨터로 ‘인권’을 치다가 받침 ‘ㄴ’을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이권’이 된다. ‘함께’를 놓치면 인권이 이권이 되기 쉽다. 인권운동을 하는 모든 이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도 이주민이었음을 기억해야김길구 최근 우리나라에 닥친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이주 외국인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들을 보는 우리의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히브리민족도 이주민 또는 떠돌이인 에일리언(alien)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끊임없이 이들에게 ‘나그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힘없는 자는 물론,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김현호 신약에도 ‘나그네 같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 길이요, 나그네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신자들은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시민으로서 국내에 들어와 함께 사는 이주 외국인들에 대한 의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할 시점이라 봅니다.김길구 그렇죠. 신약시대에 베드로가 전도하였던 대상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디아스포라, 즉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김수성 얼마 전 한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기피하고 싶은, ‘미개하고’ ‘무식하고’ ‘게으르’면서도 ‘돈을 밝히는’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빼앗는 집단’ ‘잠재적 테러리스트’ ‘아이를 낳으러 팔려온 불쌍한 사람’이란 편견에 시달려야 합니다.김현호 이러한 것은 결국 한국 사람들의 선민의식 때문 아닐까요? 단군의 자손이라는 신화,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왜곡된 선민의식 말입니다. 이러한 선민의식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성 또는 혐오증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더하여 피부 색깔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어떻게 보면 사대주의적 무의식도 잠재된 것 같습니다. 동화정책을 넘어 통합·조화로 나가야김길구 여기에 더하여 법이나 정부의 정책도 대체로 외국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이들의 취업에 관한 법을 보면 몇 차례 개정을 통해 2008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전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때문이죠.김현호 결혼 이주민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들 역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특히 소개소를 통해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중에 학교와 사회에서 편견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김수성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정책 중 가장 큰 문제는 ‘동화(同化)정책’ 일변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떤 형태로든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가 2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아직도 이주민에 대해 동화정책만을 고집한다면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이 책에서도 지적하다시피 ‘동화’가 아니라 ‘통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입니다. 이 역시 ‘불통’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저는 이주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통합에 더하여 ‘조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기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소통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오늘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이주민들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톺아보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사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는 이 책에 구체적으로 제시된 많은 사례를 보면 알 것입니다. 김현호 저는 교회의 선교사업에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나가 선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 이주민을 우리의 이웃으로 삼는 것 역시 중요한 선교사업입니다.김수성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입장에서 볼 때 이주민에 대한 선교는 선교정책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합체에서 현지 언어 예배 추진하길김길구 이주민에 대한 교회의 선교정책은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약자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보살핌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의 미래를 위한 선교정책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미래 한국의 성장 지렛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이를 위해서 지역별로 교회들이 협의하여 현지 언어별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A교회에서는 중국어 예배를, B교회에서는 베트남어 예배를, C교회에서는 필리핀어 예배를 하는 식이죠. 그러면 자연적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이들의 공동체가 형성될 것입니다. 부기총 등 교회연합체에서 이를 추진하면 좋겠습니다.김수성 우리도 마더 데레사의 말을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씩만….” 주위에 있는 이주민 한 사람씩만 사랑하다보면 모두가 이웃이 될 것입니다.김길구 신학교에서도 이와 관련한 강좌 개설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주자 선교나 이주자 복지와 관련한 학과 개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신학교가 나갈 방향 중의 하나로 설정한다면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우리 아이의 경험에서 착안한 것인데, 교회의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면 노인들만 사는 가정에 유학생 등을 위한 홈스테이 주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원하는 이를 선교사로 양성하여 본국으로 파송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북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방법이죠.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YMCA 등에서 제3세계 청년들을 초청하여 공부하도록 주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공부를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이상을 내다본 투자입니다.김길구 미래를 위한 교회의 선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우리 교회가 이슬람 공포에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들을 향한 선교의 손을 내밀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을 개종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이들을 우호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다음에는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 2010)을 읽고, 교회 출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여성가족부의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다문화가구수는 27만 8,036가구이고, 결혼이민자·귀화자는 30만 4,516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2년 조사 때에 비해 만 9~24세 자녀 수가 8만 2,476명으로 24%나 증가했다. [위의 표 자료는 통계청의 ‘2015년 다문화인구 동태 통계’에서 발췌한 것임.]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더불어 사는 다문화 함께하는 한국교회》 / 조성돈 외 / 예영 《마지널리티: 다문화 시대의 신학》 / 이정용 신재식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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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4-10
  • [기독교 교양 읽기 24] “사회는 포용성과 시민상식 가진 목사 원해”
    “목회는 삶의 현장에서!” 모두 4부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목회도 패러다임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패러다임은 본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한 것 같다. 삶의 현장에 적합한 목회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패러다임이라기보다 ‘상대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노인들과 소외받은 아이들이 대부분인 산골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목사가 지역주민들의 노동 현장에 뛰어들고, 당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이들과 생활하면서 목회자로서 깨달은 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3부와 4부에서는 신앙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1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1부는 어느 정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면, 3부와 4부는 내용 자체가 가볍지 않다. 사용한 단어도 까다롭고 사변적이어서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 어렵다. 다 읽고 나니 목회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조금 더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의 제목인 ‘목사 사용설명서’가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지고, 몇몇 미디어에서 이를 취재하여 기사화하면서 저자와 시무하는 교회가 많이 알려졌다. ‘사용설명서’ 중 마지막에 제시한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가 언론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교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가려는 목회자의 심경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 《목사 사용설명서》 || 김선주 목사는 충청북도 영동의 물한계곡교회에 시무하고 있다. 그는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어 마을공동체와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목회자이다. 대장간, 2016.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아, 잡꿀. 세상 모든 꽃들이 제 향기를 섞어 하나로 만든 꿀. 나는 퍼뜩 ‘잡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하나의 전문성을 가진 순혈적 인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할줄 알고, 다 소통하는 인간. 만능 엔터테이너.나도 잡놈이 되고 싶어졌다. 목사라는 제사장적 순혈주의, 그 위선적인 거룩함과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벗고 잡놈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참 잡스럽게 사셨다. 목수, 의사, 선생, 혁명가, 설교자, 상담가……. 아,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꿀맛이었구나.” [34쪽]글쓴이는 꿀을 뜨면서 잡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스스로도 ‘잡놈’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그는 의도적으로(?) 거친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속물이다’로부터 ‘영성, 싸구려 유행상품’ ‘집단강간체제와 목사의 이력’ ‘도끼날처럼 시퍼런 가을하늘’ 등. #말로만이 아닌 ‘당장의 축복’이 중요김길구 : 옆에 있던 분이 《목사 사용설명서》라는 이 책 제목을 보더니 당장 “이건 너무했다”고 합디다. 목사가 물건도 아닌데 ‘사용설명서’라니, 이런 반응이었죠. 김현호 : 심정을 이해할만합니다. 그러나 저자인 김선주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의 경우, 대부분 교인이 노인인데다 이들은 목사를 ‘특별한 분’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죠. 이에 비해 저자는 현장에서 이들을 돕고 함께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터로 뛰어들죠. 교인들이 자꾸 부담스러워 하자,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제목인데, 언론에 보도되면서 ‘목사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지게 된 것 같습니다.김수성 : 제목 자체로만 본다면 상당히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보니 다른 분들이 쓴 것인데, ‘○○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을 붙인 책이 몇 권 있습디다. 한마디로 유행어처럼 퍼진 것이죠.김길구 저자는 교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 따라 목회자는 현장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스로 이야기하듯 ‘목사는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김현호 : 김 목사의 목회철학인 것 같습니다. 목사는 교회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이 땅에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독려하고 그들과 삶을 공유하는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목회는 지역적이지만 세계사적 인식과 사유를 통해 지역을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김수성 : 그는 ‘축복’도 관념의 언어로 끝나서는 안 되고 ‘당장의 축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추운 겨울날 한밤중에 홀로 사는 할머니 교인집의 고장난 연탄보일러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택의 연탄불을 빼내 겨우 마무리하자 날이 밝았다는 이야기는 ‘당장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김현호 : 그의 목회철학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일손이 필요할 때 일꾼이 되고, 추위에 떠는 교인의 보일러를 고쳐주는 등 지금 목마른 사람에게 당장 물 한 모금을 주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게 함으로써 현실의 목마름을 이겨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축복을 가장한 위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물한계곡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배포하여 화제가 된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 내용. 목사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연세 높은 교인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이다. 목회란 보편적이면서도 상대적임을 보여준다. #시골교회-도시교회 이분화는 잘못김길구 :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 교회의 지역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할 당위성은 몇 차례 거론했습니다만, 도시교회에도 이런 인식이 더욱 시급한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그 문제점을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교회의 지역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운대구에 있는 교회와 강서구에 있는 교회가 동일할 수 없듯이, 전국의 5만 3,000여개의 개교회가 각각 고유한 교회공동체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즉, 목사가 교회성장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지역에서 복음의 보편성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때 존중받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김수성 : 그런데 문맥을 살펴보면, 시골교회와 도시교회로 이분화하는 데 대한 반발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는 성공한 사람, 시골교회 목사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의미이죠. 목사 청빙을 할 때 세속적인 기준에 우선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김길구 : 시골교회 또는 작은 교회 목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에 대해 일침을 놓은 것 같습니다. 복음은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골사람에게나 도시사람에게나 복음의 중요성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는 이를 구분하고, 그러한 잘못은 교회에서도 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부터 이러한 잘못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오늘날의 목사직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근 들어 언론에 목사직에 대한 불편한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목사를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 기준에 빗대보면, 목사직이 올바른 자질을 갖춘 목회자로 바로설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목사직의 위치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금방 답을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영성 훈련도 인터넷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소비만능사회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좀 더 내실을 기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목사직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야김길구 : 목사직을 수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사회는 물론 교인들이 목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직 역시 주어진 상황, 지역성이라는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보편성에 더하여 지역성이 가미되어야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김현호 : 오늘날 목사직은 선포 중심에서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는 수행(遂行) 중심의 목회자가 요구된다고 봅니다. 가끔 배타적 특권의식을 가진 성직자를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사회와 교회는 포용성과 시민 상식을 발휘하는 공공성의 목사직을 바라고 있습니다. 각 교단에서도 이에 유념하여 기독교의 질을 한 단계 높여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김길구 : 이 책은 열 번째로 제시한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라는 항목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목사 사용설명서’로 붙였습니다만,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저자가 생각하는 교회와 신앙, 그리고 사회에 관한 에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독자 스스로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다음에는 최정의팔, 학국염 목사가 함께 쓴 《다르게, 평등하게》(동연, 2016)를 읽고, 다문화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목사의 길》 / 윌리엄 스틸 / 복있는사람 《목사란 무엇인가》 / 조석민 외 / 대장간 《목회 영성의 흐름, 주일과 주일 사이》 / 유진 피터슨 / 좋은씨앗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3-03
  • [기독교 교양 읽기 23] “교회건물은 관계와 소통이 이뤄지는 곳!”
    “교회건물의 우상화를 비판한다” 한때 우리나라에 유행했던, 인근 교회 교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메가처치의 문제점을 비판한 책이다. 구약 시대의 ‘성전’과 예수님 이후의 ‘예배당’은 신학적으로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는 예배당을 지을 때면 으레 ‘성전 봉헌’을 강조한다. 목회자들이 교회 건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교회성장론과 관련이 있다.교회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는 예배, 하나님 말씀과 복음의 증언으로서 증거, 성도들의 거룩한 교통으로서 친교, 세상을 향한 섬김의 실천으로서 봉사의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다.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며, 이 세상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 참 교회의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물리적 공간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문제점 또한 지적한다. 예배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먼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이미 신명기에 기록되었다. 신명기는 희생 제사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언급한다. 예배 행위가 있지만 그 공동체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때 그 예배는 하나님이 더 이상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끝으로 서울 강남의 ‘사랑의교회’ 건축 예를 들면서 현실적인 법질서와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회당은 하나의 건축물이므로 현행 법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과 예배당》 || 공동저자인 김동춘은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권연경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조석민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유정훈은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이다. 대장간, 2016. 7,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특별손님: 강대화 장로(‘건축사사무소 토탈’ 대표) ▲ ‘건축사사무소 토탈’ 대표인 강대화 장로를 특별손님으로 초대, 교회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반인들은 생각지 못하는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해주었다. 왼쪽에서부터 김수성, 김현호, 강대화 장로, 김길구. # 대형교회도 필요하나 고급화가 문제김길구 : 최근 부산에도 대형교회당이 건축됨으로써 교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었고, 이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책은 교회의 본질에 대해 신학적으로 언급하였으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실천적인 관점에서 교회건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신선한 시각으로 교회건축을 해온 건축사인 강대화 장로를 초대했습니다(박수).김현호 : 우리 사회의 현상 중 하나로 ‘과잉’ 아니면 ‘결핍’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교회도 과잉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 붉은 색 십자가가 우리나라 도시의 밤을 온통 장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가고 싶은 교회는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김수성 : 결국 한국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겠죠. 최근 대형교회에 대한 문제점이 언론에 자주 언급되었습니다.강대화 : 저는 개인적으로 대형교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의 역할도 있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 있다면, 사람들이 건물의 대형화로 인해 화려하고 사치스럽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대형화하면서 필연적이기도 하지만 첨단 설비, 최고의 마감으로 건축되게 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비가 소요되는 것이지요. 막대한 비용 확보는 자칫 물질이 우선시됨으로써 교회가 물질주의 또는 세속화로 흐르게 되고, 교회에서도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반(反)교회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김길구 : 제사장 중심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성전과, 회중이 함께하면서 말씀과 성만찬 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약 교회는 기능과 행위 주체의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공간적 의미의 성전이 공동체 중심의 교회당으로 바뀐 것이죠. 그런데 한국 교회는 교회건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강대화 : 건물 설계를 하다보면 ‘호텔’처럼 해달라는 요구를 종종 듣습니다. 사업장의 영업적 차원이기도 하고 최고의 서비스 수요를 공급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풍족해진 우리 사회의 소비 수요현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근거도 없는 과한 마감 장식으로 건물을 화려하게만 치장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를 소비하는 현상을 드러냅니다.김수성 :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만인이 현금을 통해 귀족이 되는 세상, 귀족의 환상을 파는 것이 백화점이요, 호텔이다.”[강심호,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 48쪽] #영상시스템이 오히려 ‘빛’을 차단해김현호 : 독서캠프를 하면서 몇몇 교회당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당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도시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강대화 : 한정된 대지 안에서 도시 속의 교회가 자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택이나 상가, 술집, 다세대주택 같은 다가구주택 등이 인접해 있고, 주차장 같이 번잡한 도로에서 교회로 바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 등 주위환경에서 경건성을 기대하기란 무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건축은 타 건물건축보다 규제가 더욱 까다로워, 환경과 법적인 조건들을 만족하기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는 작업이기도 합니다.김길구 : 요즘 교회 건축이 ‘예배의 이벤트화’ 또는 ‘예배의 엔터테인먼트화’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닌가요?강대화 :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장소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여유 공간입니다. 그러데 비싼 지가로 인해 여유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다보니 고밀도로 건축을 하게 되고 기능에만 충실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유 없는 공간구조가 목회자와 교인들의 의식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예배의 이벤트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봅니다.김현호 : 교회란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당은 말씀이 아닌 ‘설교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영성을 담을 수 있는 공간,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강대화 : 교회를 새로 지을 때 대부분 외형이 눈에 띄길 원합니다. 높은 종탑으로 돋보이기도 하지만 주변가로에서는 위압적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적인 영성은 교회건물의 다소곳한 표정, 환영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길에서 교회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부터 매개의 공간으로, 과정의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실내에서의 가장 큰 문제로는 빔 프로젝터 스크린과 같은 영상시스템을 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예배당에 빛이 들어올 개구부(창문)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즉, 예배공간이 폐쇄된 공간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성과도 연관됩니다. 기독교에서 빛은 진리를 의미하고, 은총의 통로라는 느낌을 주는 신비감, 체험감의 접촉점이기도 합니다. 영상시스템을 중시하다보니 오히려 이 빛을 모두 막아버렸습니다. 김수성 : 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편리성은 선함과 전혀 관계가 없죠. 그런데도 현대사회는 너무 편리함을 추구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는데, 교회의 영성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김길구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도 130년이 넘었는데, 이제 교회 건축물도 우리 것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요?강대화 : 건축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으로 인해 타의에 의해 근대를 맞이하였고 현대로 넘어왔습니다. 한국 전통건축은 독특한 공간배치와 함께 자연환경 속에 스며드는 뛰어난 건축술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것으로 용해하고 재해석하며 진화하여야 하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랜드스케이프 고려하는 건축하여야김현호 : 신앙의 유산 차원에서 교회건축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회를 건축함에 있어 종교개혁 정신이 투영돼,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공간,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서로의 신앙이 깊어질 수 있는 장소로서의 예배당이기를 바랍니다.김길구 : 교회는 예배의 요소가 잘 어우러지는 성스러운 공간이기도 해야 하는데, 마무리로 바람직한 교회건축을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강대화 : 교회건물은 관계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공간, 즉 매개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 사치, 과시가 아니라 예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상징적이든 형태적이든 의미적이든 투명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접근성과 친밀성이고요, 그와 더불어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공공성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건축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건축분야에서 말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 개념도 적극 고려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김길구 : 오늘 강대화 장로님을 모신 덕분에 전문적인 교회 건축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오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김선주 목사의 《목사 사용설명서》(대장간, 2016)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한국교회 건축과 공공성》 / 곽호철 외 / 동연출판사 《교회건축과 예배 공간》 / 제임스 화이트 외 / 새물결플러스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2-03
  • [기독교 교양 읽기 22] 방탕한 동생을 찾아 집을 나서는 형이 되길!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는 하나님! 저자는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 비유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의 말을 충실하게 잘 들으며 집을 지킨 맏아들의 문제까지를 포함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즉,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교만과 우월감을 빠진 자들을 책망하는 비유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15장 1절과 2절을 제시한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 중 하나라는 것이다.세리와 죄인이 작은아들이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맏아들이다. 저자는 오늘날 맏아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의미가 없다. 그들 스스로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작은아들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지만, 맏아들은 자신이 그동안 했던 것을 내세우며 잔치에 참석하는 것마저 거부한다.이 책의 ‘탕부(蕩父)’라는 뜻은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내주시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즉, 작은아들이건 맏아들이건 집 앞으로 나와서 아무 조건 없이 베푼 잔치에 모두가 참석하길 권하는 분이시다.◈ 《탕부 하나님》 || 저자인 팀 켈러(Timothy Keller)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리디머교회 담임목사로서, 모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저서로는 《센터처치》 《기도》 등이 있다. 원제 The Prodigal God(2008). 두란노, 2016.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을 펼치면 제목 다음 장에 바로 ‘프러디걸(Prodigal)’이라는 단어 해석이 나온다. ‘탕자’의 ‘탕(蕩)’에 해당하는 단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무모할 정도로 헤프게 베푸는, 2) 남김없이 다 써 버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탕하다, 낭비하다’는 뜻과 함께 ‘아낌없이 베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탕자보다 맏아들의 문제에 초점 맞춰김길구 :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탕부(蕩父) 하나님’은 ‘아낌없이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탕자(蕩子)’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탕’이 사용되었습니다.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눈에 확 뜨인 부분은,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가 작은아들보다 맏아들에 관한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즉, 이 비유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가 예수님께로 돌아온 작은아들 같은 세리나 죄인보다는, 나름 충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왔다고 자신하는 맏아들과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겨냥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2절). ‘서사비평’으로 탕자의 비유를 읽은 것이죠.김현호 : 이 책을 읽을 때가 성탄절 즈음이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를 읽으면서, 성육신하여 십자가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우리를 천국잔치에 초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탕자든 맏아들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기뻐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탕부 하나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가 탕자의 귀환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함으로써, 정말 중요한 형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문제가 비율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였다고 하면, 형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주의를 비난하였고,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와 싸운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김현호 : 저자는 탕자보다는 형의 모습을 분석하는데 책의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는 형의 영혼을 예의주시하다가 그에게 마음을 돌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 중에 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진단합니다.김수성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실감했습니다.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을 때, 뭔가 높다란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던 분들만의 교회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법 긴 시간 동안 나는 이방인이었고, 그들과 같이 어우러지기보다는 겉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탕자의 귀향’(1699년경)이다. 젊었을 때 큰 성공을 거뒀으나 허랑방탕한 생활로 비참한 말년을 맞이했던 렘브란트는 스스로에게서 탕자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한편, 화가 난 듯 서있는 형의 모습에서 우리 또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형의 문제점은 오히려 ‘의로움’ 때문김길구 : 한편, 이 비유는 우리 교인들의 인식 중에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닐까요. 즉, 세상 사람들의 비윤리적이고 허랑방탕한 생활과 교인들의 율법주의적 삶을 구분하여, 전자는 탕자요 후자는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둘 다 영적으로 잃어버린 존재라 규정했습니다.김현호 : 팀 켈러는 여기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형을 아버지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오히려 착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도덕적 이력에 대한 교만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그가 잔치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악(惡)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의(義)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김수성 : 극단적으로 말하면 탕자의 귀환을 거부하는 교회의 모습, ‘자기들만의 교회’에 자족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기독교인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을 겁니다.김길구 :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딜레마는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의 공동체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배타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갈수록 교회와 멀어지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김현호 : 한국 교회에 위기의식이 널리 퍼지게 된 것도 바로 형의 시선으로 교회공동체를 규정해 왔고, 이 사회를 배척해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종교적 도덕주의자’가 사실은 또 하나의 탕자의 범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오히려 감추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김수성 : 그런 경향이 결국 교회 스스로 사회와는 별개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고, 사회는 그런 교회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즉, ‘차이’를 포용해야 하는데, 이를 배척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죠. #종교개혁 초심으로 잔치에 동참해야김길구 : 탕자의 비유를 종교가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기득권자들과 일반 국민들과의 괴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의 회개 없이는 진정한 공동체가 이뤄질 수 없듯이, 우리 사회도 그러한 형국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김현호 :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공무원, 정치인과 청와대에 근무하는 이들 중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이들이 윗사람에게 의무적인 순종이나 맹종을 함으로써 나라가 도탄에 빠졌습니다. 순종이 결과적으로는 악에 봉사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불순종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김수성 : 최근 부의 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말이 나오듯,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 구조, 즉 사회 시스템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득권자들은 개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치부합니다. 탕자이기 때문에 잔치에 동참하면 안 된다는 형의 논리와 비슷합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는 제대로 된 형의 모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던지는 뼈아픈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동생이 자기의 재산을 갖고 집을 나가 방탕한 길로 나갔을 때, 형은 단호히 그 동생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 동생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형의 사명이라는 것이죠.김현호 : 참 형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성도들 모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새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형의 모습을 한 성도든, 탕자였던 사람들이든, 모두가 종교개혁 당시의 마음을 품고 귀향의 행렬을 이뤄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김길구 : 그동안 우리 교회는 소위 ‘잘 믿는 형’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집 나간 동생을 탕자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나서 동생을 찾아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형의 모습이 더욱 많아지는 새해가 되길 빕니다. 다음에는 김동춘 권연경 조석민 유정훈 공저인 《성전과 예배당》(대장간,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탕자의 귀향》 / 헨리 나우헨 / 포이에마《팀 켈러의 센터처치》 / 팀 켈러 /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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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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