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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41]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앞으로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해갈까?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그동안 우리는 미래에 대한 논의를 주로 기술 환경 변화에 국한시켜왔다. 그 결과 어떤 기계가 새로 발명되고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할지에 대해서면 논의해왔을 뿐, 기술과 환경의 변화가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상상은 활발하지 않았다.” “…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에, 이 변화 앞에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이런 질문들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다.”그러면서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의 새로운 모습, 넘쳐나는 정보와 표현으로 인한 갈등 양상, 기술과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오히려 심화되는 인간 소외 현상, 치유의 상업화와 융합종교의 탄생,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와 개개인에게까지 미칠 변화의 모습을 그려 보인다. 물론 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개인이나 사회에 미칠 부정적인 모습이 주를 이룸으로써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책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기존 종교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묻는다.◈ 《다음 인간》 || 저자 이나미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후, 뉴욕 융연구원에서 분석심리학 과정을 공부하고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을 공부했다. 저서로는 《융, 호랑이를 탄 한국인과 놀다》 《성경으로 배우는 심리학》 등이 있다. 시공사, 2014. 13,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묻다》 / 박일준 / 동연《한국에서 심리학자로 살아보니》 / 이나미 / 유노북스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더, 호세아, 요엘, 아모스, 요나, 미가, 나훔, 스바냐, 스가랴, 말라기 등의 예언서로 가득한 구약성경에서 요한의 예언서로 끝나는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핵심 정신은 하느님의 성스러운 계획이 어떻게 미래 세계에 실현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언서는 결국 미래를 위해 어떻게 현실을 준비할 것이냐에 대한 가르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에필로그’ 239쪽에서] ‘잉여 인간’으로 자조하는 젊은 세대김길구 올해 초에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을 읽고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세상의 변화, 사회적인 흐름을 언급했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책은 이러한 변화가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전망한 것입니다. 특히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하여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부정적인 면이 많이 나타날 것이란 것입니다.김현호 첫 부분에서부터 젊은 층은 무감동, 무기력, 무관심에 젖어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정말 우울한 전망이죠. 몇 년 전에 한 취업사이트에서 20대들에게 ‘자신이 사회에 불필요한 사람이 되고 있다고 느낀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응답자 1744명의 67.1%, 특히 대학졸업생의 경우 70% 가까이가 “그렇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잉여 인간’으로 자조하고 있는 거죠.김수성 이들이 이렇게 의욕을 상실한 가운데 생활하게 되면 자칫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이들(프리터족)이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구석방 폐인(히키코모리)’ 문제도 심각합니다.김길구 한마디로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갈수록 그런 일자리를 구하기는 더욱 힘들 것입니다. 한때 ‘고슴도치 신드롬’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최근 젊은 층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고슴도치 신드롬’이 심화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에서는 오감 만족을 추구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맛집’에 집중하거나, 최고급 디저트를 추구하는 경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듯이 SNS에 부지런히 올리죠. 내적 충실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치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 과학기술의 발달이 사회의 변화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개개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그 전망이 부정적이라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진은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휴먼스〉 시즌2 광고화면] ‘가짜 가족’, R세대 등장과 양극화 현상김수성 또 하나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자발적 독신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미혼이 아니라 ‘비혼(非婚)’이란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할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혼(半婚) 커플’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같이 살아보고 혼인신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출산은 더욱 심각한 상태죠.김길구 한마디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책임질 일은 하지 않고, 혼자서 ‘속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흐름이라 할 수 있겠죠. 이로 인해 기존의 가족 시스템이 붕괴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책에서 언급했듯 돈을 지급하고 계약을 맺는 ‘가짜 가족’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김현호 제가 나가는 교회에서 독신자 셀을 맡고 있는데 갈수록 인원수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얼핏 살펴보면,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취미나 공동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관계는 가족공동체와는 달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연결고리라는 것입니다, 대신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김수성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감정로봇도 서서히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든 노인을 대상으로 이야기도 나누고 간단한 심부름도 할 수 있는 로봇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농어촌 노인들을 대상으로 시험가동을 한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김길구 앞으로 ‘R세대’가 등장할 것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로봇에 의존하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2015년부터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하고 있는 〈휴먼스(Humans)〉라는 드라마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식사를 준비하는가 하면, 가벼운 말상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김현호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공적으로 만들어 부착한 팔이나 다리를 사람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현실화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두 팔을 모두 잃은 사람에게 부착한 인공 팔을 뇌에서 생각만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하는 인공 다리도 마찬가지입니다.김수성 문제는 이러한 모든 것이 돈에 좌우된다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기계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림의 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 서비스에도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줄기세포 치료법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예언자적 메시지를 선포할 때김길구 어떤 학자는 앞으로 탈종교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 책에서는 융합종교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같은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교리나 도덕성 등은 무시한 채 오로지 영성만을 추구하는 종교현상이 유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서구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성을 힐링 방법의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죠.김현호 디모데후서 3장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김수성 죽음에 관한 전망도 우리 교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수명이 갈수록 길어짐으로써 나타날 존엄사 부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자살클럽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할 일을 잃고 자칫 잉여 인간, 무욕 인간으로 전락한다면, 삶이 덧없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럴수록 교회가 이들에게 희망과 함께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과학이 점점 신의 영역에까지 침범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가깝게는 우리 자녀들, 좀 더 멀리는 우리 손주들이 살아갈 세상이 이러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신구약 성경의 예언서가 단순히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미래가 오지 않도록 현실을 준비하라는 경고의 의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변화를 주의 깊게 보고 우리부터 그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한창 젊었을 때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는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부산장신대학교 탁지일 교수(교회사)가 쓴 《다르게 다가서는 역사》(예영커뮤니케이션, 2018)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이 책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회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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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21
  • [기독교 교양 읽기 40] 《신》이 기독교 인문학 발전의 계기되길
    하나님을 증명한다! 이 책은 우선 방대하다. 900쪽이 넘는데다 고대 철학에서 현대 신학까지 가로지르며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이야기한다. 즉, 서양문명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신학적으로 이를 어떻게 증명했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주제를 증명하기 위해 세부적인 명제까지도 가능하면 상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예를 들면, 3부 ‘하나님은 창조주다’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창조론이 왜 《고백론》 안에 있나’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소주제로 내세워 하나씩 설명한다. 또한 이들 소주제를 설명하는 내용도 만만찮다. ‘태초는 언제인가’부터 시작해서 ‘영원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천지란 무엇인가’ ‘창조의 여섯 날이 문자 그대로 6일인가’ ‘다윈의 진화론과 그 영향’ ‘창조론은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나’ 등 별도로 신학적/철학적 곁가지를 끄집어내 일일이 설명한다.이를 위해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던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교부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요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 칼 바르트와 파울 틸리히 등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까지 연결시켜 하나님을 증명한다. 책이 방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나름대로 전문용어를 피하고 쉬운 낱말과 대화체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이 좀 더 친근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 《신》 || 저자 김용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위르겐 몰트만과 에버하르트 융엘의 강의를 들었다. 저서로는 《데칼로그》 《생각의 시대》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등이 있다. Ivp, 2018. 42,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데칼로그》 / 김용규 / 포이에마《하나님을 말하다》 / 팀 켈러 / 두란노 《신》이 기독교 인문학 발전의 계기되길 그럴 때 교회부흥도 담보할 수 있을 것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 유발 N. 하라리는 이제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용규는 기독교 인문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신앙과 이성의 균형을 유지할 것을 권면한다.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아담의 창조〉] “하나님은 모든 존재물이 존재하는 바탕입니다. 즉,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 안에서 존재를 부여받아 존재하지요. ‘하나님은 존재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주마저 자기 안에 포괄하며, 무소부재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할 뿐 하나님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자다’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존재는 또한 자신의 내적 법칙인 ‘말씀’으로 모든 존재물을 자기 안에 창조하지요. ‘하나님은 창조주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의 피조물들과 관계하며 그들을 오직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가지요. ‘하나님은 인격적이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본문 56~57쪽에서] 인문학을 망라하여 신을 이야기하다 김길구 오늘로 ‘기독교 교양 읽기’가 마흔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는 900쪽이 넘는 아주 두꺼운 책을 택했습니다. 저자가 2010년에 펴냈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의 개정증보판이라 할 수 있는, 《신》입니다. 이 책은 신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이 세대를 향해, 나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김현호 저자는 이 책에서 서양철학과 신학, 역사, 문학에 더해 현대 물리학 등을 망라하여, 인문학적으로 오늘도 우리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최근 과학을 무기로 한 무신론자들을 비롯해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이 신적 존재로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김수성 저자는 이 책의 목표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정치한 이해를 통해 서양문명의 심층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책은 불신자나 일반 교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기독교의 하나님을 증명하는데 집중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궁극적인 목표는 ‘인문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길구 맞습니다.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란 부제가 있습니다만 저자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신을 떠난 인간’의 문제로 진단하면서 다시 신본주의적 관점에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중에서 〈아담의 창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책 맨 앞에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호 이 그림에서 흰 수염을 휘날리며 막 창조된 아담과 손가락을 마주대려고 하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의 하나님이, 실제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모습에서 나온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인문학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르네상스인들은 제우스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고 합니다. ‘인문학’과 ‘기독교 인문학’ 구분해야 김수성 그렇다면 ‘인문학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한다는 말에 있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길구 저자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인문학은, 정확하게는 ‘기독교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르네상스 당시의 인문학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에 비해 기독교 인문학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가 그 주제가 되어야겠지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인문학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그래서 저자는 먼저 그리스철학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르네상스 초기 인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테의 《신곡》에서 인용을 하고, 그것들을 기독교 인문학의 정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비롯한 다양한 저작과 상호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속성을 찾아나가는군요. 김수성 역사적으로 본다면, 신이라는 코드로 서양사상의 두 기둥인 헬레니즘적 인문학과 히브리즘적 기독교 인문학을 가로 세로로 직조하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불신자나 일반 신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김길구 그래서 사회학자 등에게서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만, 신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바는 적지 않다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헬레니즘 전통의 ‘불변성’과 히브리즘 전통의 ‘역동성’을 비교한 것은 하나님을 증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인격성을 이야기합니다. 김현호 변하지 않는 제우스는 오늘날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 속에 갇혀 옛날이야기로만 읽혀지는데 비해, 역동적인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늘도 우리와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하고 있다고 구체화합니다. 김수성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상호모순이 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도 누누이 지적하고 있듯이 초기 기독교사상에는 그리스 철학이 상당부분 흡입되었고, 아직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자기가 원하는 神 만들어 김길구 사실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교부철학시대에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더하여 신플라톤주의에다 기독교 옷만 입혀 교리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토아철학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김현호 저는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점으로 동물-식물 등으로 계층화시킨 ‘자연의 사다리’가 기독교에 유입되어 ‘존재의 사다리’로 변형되었다는 것이 기억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천사-인간으로 서열화되고, 교회 안에서도 교황-주교-사제-평신도로 계층화되었죠. 사실 이 ‘존재의 사다리’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수성 저자는, 대표적인 신학자인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기는 했음에도, 이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은총’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인물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들의 사상을 물려받아 ‘존재의 사다리’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만인제사장설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도 직분을 계급으로 착각하는 교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김길구 끝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네가 하나님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만일 네가 그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자칫, 내가 창조한 하나님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김수성 유명한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신이라는 관념의 진정한 의미는 초(超)‘신학적’입니다. 이것은 정의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신비스러운 초신학,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종말이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떠받치는 힘입니다.” 내가 만든 하나님을 내가 신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말입니다. 김현호 역사적으로 인간이 이성을 중시하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죠. 근대주의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아니 ‘이성이라는 하나님’이 세계를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하고 어리석은가를 실감했습니다. 그 결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였지만, 이제는 첨단 물질문명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결과를 빚고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만의 하나님을 창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길구 이 책을 계기로 여러 사람이 다양한 저작물을 많이 출판하여 기독교 인문학을 더욱 발전시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교회의 부흥도 새롭게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제임스 K. A. 스미스가 쓴 《습관이 영성이다》(비아토르, 2018)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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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23
  • [기독교 교양 읽기 39]근본주의의 소중한 유산
    이 책은 ‘근본주의가 남겨준 유산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라는 부제(副題)에서 알 수 있듯, 근본주의에 관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본주의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근본주의의 문제점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 근본주의에서 우리가 배울 점을 부각시킨다.약점과 강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약점을 바로잡으려고 강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강점은 강점대로 살리고, 약점은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앙에 있어 어느 하나만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 그래서 서로를 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근본주의에서 주장하는 개인 구원의 중요성과, 행동주의에서 강조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억압 시스템의 타파는 어느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는 나머지 다른 모든 것들의 기반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이 책에서 ‘톱밥’은 저자가 어렸을 때 참석했던 야외전도집회 천막 아래 바닥에 깔아놓았던 톱밥길, 이 길을 따라 집회장 앞으로 걸어 나가 무릎을 꿇고 회개하라는 요청을 받았던 길의 표상이다. 즉, 톱밥길은 ‘회개의 길’을 의미한다.◈ 《톱밥 향기》 || 저자 리처드 마우(Richard J. Mouw)는 미국 칼빈대학교 등에서 기독교 철학과 윤리학을 가르쳤고, 1993년부터 20년간 풀러신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문화와 일반 은총》 《아브라함 카이퍼》 등이 있다. 원제 The Smell of Sawdust(2000). SFC, 2016. 12,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무례한 기독교》 / 리처드 마우 / Ivp《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 제임스 스미스 / Ivp 복음주의의 강점은 여전히 소중하다 “인내와 겸손을 통해 ‘제2의 소박함’ 촉진해야”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 복음주의의 가장 큰 장점인 신앙적 순수성은 어떤 경우에라도 소중하다. 이 장점을 더욱 살리면서 단점을 고쳐나갈 때 한국 교회의 미래도 밝을 것이다.[사진은 2016년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개최된 부흥회에서 '톱밥길'을 따라 나와 기도하는 모습, 출처:greensboro.com]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중 스스로를 점검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너무 적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바로 자기반성이 특히 어울리는 운동이다. 운동은 방향감각을 필요로 한다. 어디에서 왔고, 현재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본문 37쪽에서] 신앙부흥운동의 뜨거운 열기 기억해야 김길구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마우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을 미국 복음주의에 도입한 학자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즉,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김현호 아브라함 카이퍼는 네덜란드 신학자이자 정치가죠. 그는 국회의원을 거쳐 총리로 재직한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라 현실 참여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오늘의 네덜란드가 있게 한 주역 중 한 명이었습니다. 김길구 리처드 마우가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뒤에 ‘공공신학’의 실천자가 된 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닙니다. 공공신학에서 신학은 창조, 역사, 문화, 사회,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삶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교회의 사회적 형식,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춥니다. 김수성 한마디로 종교와 세상을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그러니 세상살이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상당히 현실참여적인 신학을 이야기한 학자가 근본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길구 미국 기독교의 발전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를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저자는 미국 기독교를 청교도 신앙으로 대표되는 1세대, 복음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이 대립하던 2세대, 그리고 상호 문제점을 뛰어넘고자 하는 3세대로 구분하여 이야기합니다. 김현호 1세대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하나님의 땅’으로 여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던 청교도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받으려고 노력했던 세대라 할 수 있겠죠. 복음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종교 대각성운동’으로 대표되는 순수한 신앙운동 시기였습니다. 김수성 이 책에서 언급된 ‘톱밥길’은 1세대 신앙인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자료를 보면 대형 천막 안에 수천 명의 신도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은 에디 마틴의 집회 때 모습인데, 이에 앞서 드와이트 무디의 신앙부흥운동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복음주의적이지만 독선적이지 않아야 김길구 1세대 신앙부흥운동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지만, 이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부각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반(反)지성주의, 내세지향성, 분리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유럽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 땅에도 들어옵니다. 그러자 이들 양 진영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그런 가운데 근본주의가 부각됩니다. 김현호 근본주의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은 물론, 당시 팽배하던 다원주의와 사회주의, 새로운 철학 사조와 문화 운동 등 모든 것을 비판하며 오직 성경을 모토로 전도와 선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김수성 저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기억합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교회성장론과는 달리, 한편에서는 역사비평과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의 방법론으로 기술한 신학서적들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다 제3세계의 해방신학 서적까지 더해지자 기성교회에서는 이들 서적을 불온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김길구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성장에 관한 이론이 연구되었던 곳이 바로 풀러신학교였습니다. 이로 인해 풀러신학교가 나중에 비판을 받기도 했죠. 어쨌든 이들 두 진영의 대립은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드러냈습니다. 저자는 《무례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앞으로 나아갈 바를 적절하게 지적합니다. 첫째, 자유주의적이지 않지만 온건한 태도, 둘째, 타협하지는 않지만 정중한 태도, 셋째,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일종의 다짐, 넷째, 만약에 기독교가 자신이 있다면 더욱 세상에 대해서 겸허할 것을 주장합니다. 김현호 복음주의적이지만 독선적이지 않아야 한다, 지킬 것은 지키더라도 정중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럼에도 대화를 단절해서는 안 된다.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세상의 지식도 포용해야 한다는 뜻이죠.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메시지라 하겠습니다. 김수성 사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정치권력과 타협한 사례가 너무도 많습니다. 특히 독재정권에 빌붙어 세력을 확장했는가 하면, 그러한 정권에 반발하는 세력을 간접적으로 탄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유증이 이제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김현호 복음을 지킨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교회가 독선으로 빠져들기도 했죠. 그러면서 교회의 태도가 거칠어졌습니다. 이러한 것이 복음 전파를 오히려 위축시켰습니다. 이제는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모든 분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단점은 고치고 장점은 살려야 김길구 저자는 3세대 신앙으로 신(新)복음주의를 이야기합니다. 근본주의든 자유주의든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니 각자의 단점은 고치고 장점은 살려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근본주의의 강점으로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톱밥 향기’를 내세웁니다.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열정과 순수,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죠. 김현호 실제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기억과 느낌이 신앙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 배웠던 것들에 허점이 많았던 것을 깨닫지만, 그럼에도 주일학교에서 체험했던 신앙적 순수성이 있기에 온전히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수성 근본주의 못지않게 자유주의 신학에 따른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게 근본주의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열성적인 신앙을 감정적으로 치부하고, 개인전도 중심의 활동을 폄하한 것이죠. 또한 주지주의와 계몽주의로 인해 경건주의가 나타나게 되었음을 새삼 일깨웁니다. 김길구 그렇기에 저자는 ‘제2의 소박함’을 강조합니다. 기왕에 드러난 단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것을 견뎌낸 믿음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두 가지 언급합니다. 인내와 겸손입니다. 독선주의를 떨치고 신실한 행동을 요구하는 제자도로 나가기 위한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한마디로 하면 ‘거룩한 현세지향성’이죠. 내세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현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되, 근본주의의 가장 큰 덕목인 거룩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인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회 현실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수성 그동안 우리가 몇 차례 거론했던 지역을 섬기는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길구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용상 우리 한국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존재의의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9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이기는 하지만, 철학자인 김용규의 《신》(Ivp, 2018)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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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2
  • [기독교 교양 읽기 38] "너 지금 올 수 있겠지?" 이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삶과 죽음에 관한 묵상집 이 책은 ‘장례예배’ 설교 모음집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목회하는 분들, 특히 신임 목회자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아이를 출산하러 병원에 갔던 30대 산모가 주검이 되어 나온 사례가 있는가 하면, 가족과는 달리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고인에 대한 고별 예배, 우울증으로 자살한 신자의 죽음 앞에서 저자는 메시지의 한계를 절감한다.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신자들에게도 ‘심각한’ 의미를 부여한다. 신앙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냥 툭 던지는 메시지가 아니다. 고인이 평소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 그의 이력과 성품을 소개하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해석’한다. 고인의 이력을 보면, 미국에서 살았다는 것만 빼면, 우리네와 비슷한 삶의 여정이기에 그 의미가 진득하게 다가온다. 부록으로 게재한 ‘거룩하고 의미 있는 장례예배를 위해’는 목회자에게 실제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임종 과정에서의 목회’ ‘임종에서 애도까지’ ‘장례 설교에 대해’ 세 부분으로 나눠, 간략하지만 핵심적인 사항을 정리해 놓았다. ◈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 저자 김영봉 목사는 미국 남감리교대학교 퍼킨스신학교, 캐나다 맥매스터대학교에서 연구하고 협성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지금은 미국 와싱톤사귐의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 《숨어계신 하나님》 등이 있다. Ivp, 2016. 11,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애도수첩》 / 캐시 피터슨 / 샘솟는기쁨《삶을 위한 죽음 이해》 / 김명선 / 대한기독교서회 “너, 지금 올 수 있겠니?”이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 “너, 지금 올 수 있겠니?”라는 주님의 질문은, ‘내 품에 안기는 것이 그곳에서 사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믿느냐?’라는 뜻이었습니다. [본문 20쪽. 그림 출처: everplans.com]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 것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있으며, 흔들리지 않는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믿는 데까지 자라가야 하며, 그것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거기까지 이르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을 사모하고 열망하게 됩니다.” [‘여는 묵상’ 중에서] 고인의 삶을 성경에 비춰 ‘의미’ 부여 김길구 이 책에는 16편의 장례 설교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고인들의 죽음을 나름대로 분류해보니 절반 이상이 돌연사를 비롯해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신 경우입니다. 물론 책 편집을 위해 사례를 선별했겠지만, 어쨌든 상당수는 장애나 병을 거쳐 죽음에 이른다는 데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김현호 이 책을 보면서 살아있는 자들이 돌아가신 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죽음이든을 막론하고, 품격 있는 죽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예의를 갖추는 것은 오로지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의 장례문화가 예의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수성 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저자가 맞춤 설교를 했다는 점에서 부러웠습니다. 인용한 성경구절도 우리가 장례식 때 흔히 보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인의 삶과 죽음에 적절한 성경을 인용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한 편의 시를 더하기도 하였습니다. 김길구 그러기 위해 저자는 고인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떤 삶을 누렸는가에 대해 자료를 찾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고인의 삶을 성경에 비추어 ‘해석’하고 생전 삶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요. ‘사귐과 섬김’에 초점을 맞춘 목회를 하였기에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형교회에서는 이런 장례 설교를 하기 힘든 게 현실 아닌가요? 김현호 대형 교회의 경우, 교구목사들이 집례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인들의 사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목회자는 교구목사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 교인들이 장례 예배를 담임목사가 집례하고 설교하지 않으면 ‘섭섭해’ 한다는 것이지요. 김수성 이 책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사례가 몇 건 있습니다. 유가족에 대해 지속적으로 배려해야 김길구 우선 고인에 대해, 칭찬 일색이거나 미화하지 않는 절제된 깊은 성찰을 들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과 불화가 잦고, 한번 등지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다시 보지 않는 까칠한 화가를 회고한 설교가 그러합니다. 고인이 그린 그림을 소재로, 내면의 외로움과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고인의 열망을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 가사에 빗댄 설교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김현호 자식들의 부탁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던 아버지에 장례 예배도 인상 깊었습니다. 교인 중에는 믿지 않는 분에 대한 장례 예배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릴 이유가 충분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결국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김수성 저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분에 대한 장례 예배 때의 메시지가 새삼스러웠습니다. 자살이라는 외형적인 사건만을 보고 교리적으로 판단하는 교인들에 대한 권면입니다.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므로, 인간이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이죠. 김길구 그러면서 저자는 일반적인 자살과 고인의 죽음을 구분하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다. 그러나 마음의 병도 질병이므로 우울증 등으로 인한 자살은 암과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유가족과 주위 분들을 위로합니다. 김현호 유가족에 대한 배려도 감동적입니다. 사실 생각지도 못했던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은 유가족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줍니다. 그렇기에 장례 설교는 이들 유가족을 충분히 생각해야 하고, 장례식이 끝이 아니라 이들이 그 슬픔과 아픔에서 벗어나기까지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해서 보살피고 배려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길구 특히 둘째 딸이 분만실에 들어갔다가 주검으로 나온 사실에 망연자실한 부모에게 목사인 저자도 할 말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신정론으로 변호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목사 노릇’을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김수성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 로드리고 신부가 하나님을 향해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죽어가는 데 “왜 당신은 계속 침묵하고 있느냐”고 절규하던 장면이 생각나게 합디다. 세월호 사건 때 몇몇 목회자가 어설프게 유가족을 위로했다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했죠. 김현호 이럴 때는 저자와 같이, 유가족과 함께 아파하고 탄식하고 울어주는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께 대들기도 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목회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둔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다가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도 돋보여 김길구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부록입니다. 우선 미국과 한국의 장례 예배를 비교해볼 수 있는 점입니다. 또한 목회자가 주의하고 준비해야 할 점을 세세한 부분까지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장례 예배를 ‘고별예배’라는 부른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고 하듯이, 집례자가 말씀을 통해 고인의 인생을 정의한 것도 의미가 크고요. 김현호 임종 예배 때 성찬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죽음을 앞둔 분들이 성찬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휴대용 성찬기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이런 부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수성 부록의 내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연세 높은 분들이 많은 우리나라 교회 현실에서 목회자들에게 좀 더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핵심적인 부분을 잘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회를 새롭게 시작한 목사들에게는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는 지침서라 할 것입니다. 김길구 설교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장례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만큼 많은 노력과 깊은 묵상을 통해 준비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현호 뿐만 아니라 집례자가 고인의 삶을 통해 오히려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흔치 않은 목회 고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수성 이 책의 부제가 ‘삶과 죽음에 관한 설교 묵상’입니다. 죽음 못지않게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올 수 있겠니?’라는 제목의 글로 이 책을 시작합니다. 김길구 맞습니다. 저자는 설교를 통해 장례 예배에 참가한 신자들에게도 죽음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적절하게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욱 다가오는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풀러신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리처드 마우의 《톱밥 향기》(SFC, 2016)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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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25
  • [기독교 교양 읽기37] 기독교문화의 풍성한 발전이 곧, 복음 전파의 지름길이다
    문화로 읽는 십계명 요즘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구태의연한 옛날 이스라엘의 법규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십계명을 현대적 의미로써 풀이한다. 문화의 옷을 입혀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현상으로만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어차피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신학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종교는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나므로, 십계명을 기독교문화로 표현해낼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래서일까,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가 아닌, 현재 우리의 삶과 환경에서 확장하여 해석한다. 또한 그의 그림에 관한 지식을 보여주듯, 곳곳에서 다양한 명화를 꺼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괜찮은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학적인 문제를 문화로 설명하려고 하니, 가끔 부대끼는 곳이 툭툭 튀어나와 앞뒤 맥락을 연결하며 읽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십계명을 문화적으로 해석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설명하고자 한 시도만큼은 충분히 흥미를 끌만하다. 이 책은 저자가 2015년에 《월간고신 생명나무》에 연재했던 글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펴낸 것이다. 당시 《월간고신 생명나무》에서는 한 해 전체를 십계명 특집으로 배정하고, ‘원문으로 읽는 십계명’ ‘문화로 읽는 십계명’ 등 다섯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 《십계명, 문화를 입다》 || 저자 안재경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기도 남양주의 온생명교회 담임으로 시무하면서 웹진 〈개혁정론〉의 운영위원 및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흐의 하나님》 《렘브란트의 하나님》 등이 있다. SFC, 2017. 10,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칼로그-십계명,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김지찬 / 생명의말씀사 《삶의 목적과 의미》 / 마이클 호튼 / 부흥과개혁사 《오래된 새 길》 / 김기석 / 포이에마 기독교문화의 풍성한 발전이 곧, 복음 전파의 지름길이다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 십계명은 오늘 우리의 무분별한 문화에 비춰 새롭게 인식해야 할 중요한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마르크 샤갈이 그린 ‘Moses Beholds All the Work’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을 케케묵은 옛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라, 하지 말라’는 요구 또는 명령들의 모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이 이룬 모든 것을 문화라고 한다면, 사람은 어느 누구도 문화를 피하거나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세상 문화로 말미암는 십계명에 관한 왜곡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문화로 인해 왜곡된 십계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결국 믿음까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서문’ 중에서]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십계명 김길구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계가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로 기독교문화의 침체 또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야기할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문화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기독교 예술단체가 설립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어필하거나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작품 활동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수성 저자는 십계명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면서 대체로 독자에게 익숙한 그림을 먼저 끄집어내 소개합니다. 서문에서는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며 어디로 가는가?〉를, 제1계명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제6계명에서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제시하였습니다. 김길구 계명을 이야기하기 위한 예시로서 그림 등 유명한 작품을 먼저 소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 현대인들에게 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십계명의 의미를 우선 그림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저자는 그림과 관련된 책을 저술하기도 한 분이죠. 김현호 십계명을 현재 우리 사회의 현상과 비교하면서 설명한 것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제3계명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에 제대로 된 ‘고백문화’를 만들어 가야함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제1계명에 ‘신들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제3계명에 ‘하나님의 이름을 찾아주세요’ 같이 친근한 제목을 붙인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타 종교에 비해 상당히 윤리적인 규범 김길구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사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문화는 장르 간에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말씀을 내세움으로써 문자적인 면에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조각이나 회화 쪽은 상당히 침체일로를 걷습니다. 김현호 초대교회 이후 계속 논란은 있었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상을 일반화하였지요. 특히 문맹자가 많은 현실에서 그림이나 조각으로 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한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이콘(icon)이 크게 발달하였죠. 김길구 루터와 츠빙글리,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성상을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루터는 이것이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행위’라며 ‘예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말씀은 우리에게 빛과 지침을 제공’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책의 종교’로서 발전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기독교 미술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발휘하지 못하고, 성경 말씀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그칩니다. 김수성 기독교가 말씀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면, 십계명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 규범으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십계명은 당시 인근 지역의 다른 신들에 대한 예배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윤리적인 생활규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에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고 선포한 것부터 그러합니다. 김길구 당시 다른 신들에 대한 예배에서는 인신공양이나 신전 창녀들과의 결혼예식 등이 횡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에 대해서 ‘살인하지 못 한다’ ‘간음하지 못 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인명존중사상을 고취하고, 예배를 빙자한 난혼(亂婚)을 경계하라고 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선 윤리의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오늘날에도 십계명은 우리 믿음의 나침반으로 역할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십계명은 나침반과 같이 결국 우리가 나아갈 바를 바르게 가리켜줍니다. 광야에서 헤매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김수성 십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궁극적으로 해방과 평등공동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규범이라고 지적하는 분도 있습니다. 김길구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들에게 하나님은 참인간다운 삶을 누리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이집트 종살이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달콤한 휴식의 시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유대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김현호 그런데 주 5일 근무가 일반화된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도 안식일은 찾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생산성 향상에 내몰린 현대인, 오로지 발전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쉬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조금 더 깊게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도 김수성 디지털 네트워크가 우리의 안식을 빼앗아 가버렸죠. 쉴 사이 없이 울려대는 벨 소리와 문자 소리, 여기에 더하여 소셜 미디어(SNS)가 더해져 스스로 24시간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주 가볍게 터치하고 지나쳐버렸습니다. 김길구 이 책이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문화만 입힐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하면서 십계명 본래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참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입니다. 단적인 예로, 제8계명 ‘도둑 아닌 사람이 없다’에서 앤디 워홀의 〈마르린 먼로〉 작품을 인용하면서 천박한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가짜 복제에 대한 부분만 강조했습니다. 대중이 그에게 환호하는 이미지의 대중화, 과거 소수 특권층의 소유에 대한 표현의 보편화와 같은 의미는 간과하였습니다. 또한 미술사의 교과서라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서론은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기독교문화를 논하기에 앞서 인용된 사진 11컷 전부가 저명한 서양예술인의 작품인데, 성경을 소재로 한 것은 3건에 불과합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신학적 의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잡지에 ‘문화로 읽는 십계명’이라는 타이틀로 연재해야 하는 한계도 작용했을 것이고요. 김수성 어쨌든 십계명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갈수록 빈약해져가는 기독교문화의 토양에 대해 우리 모두의 관심을 촉구한 저작이라 생각합니다. 김길구 저자가 지적했듯이 현대는 이미지라는 우상이 지배하는 사회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주체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예 이미지를 숭배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기독교가 나가야 할 길은 기독교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김영봉 목사의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IVP, 2016)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정리: 김수성]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8-04-23
  • [기독교 교양 읽기36] 한 마리 벌레처럼 오래 걸으니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에 닿는다
    ▲ 한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 이 책은 저자가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인제-양구-화천-철원-연천을 거쳐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DMZ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약 380킬로미터의 길을 열하루 동안 오롯이 걸었던 기록이다. 그것도 유월 하순의 무더위 속에 햇빛 피할 곳도 제대로 없는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어떤 때는 생애 최악의 폭우 속에 온몸을 맡기고 걷기도 했다. 생각만으로도 지칠 것 같은 그 고통의 길을, 아름다움을 기도하면서 한발 한발 내디뎠다. 걷는 가운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길가를 걷는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내달리는 차량을 보면서 ‘무례한 것은 곧 난폭한 것’이라고 느꼈다. 인적 드문 길을 가면서 제 자리에 서 있는 조그마한 표지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한참을 산 뒤에 뒤돌아보아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도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 걸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체득했다.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을 밟고 있다는 느낌과 제대로 된 삶의 속도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이 땅을 새롭게 느꼈고, 너무도 빨리 변하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속도는 걷는 속도와 닮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왜 하필이면 DMZ를 걸었느냐고 묻는 분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분도 있으리라. 중요한 것은 그 길이 기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다. ◈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 || 저자 한희철 목사는 현재 부천 성지감리교회를 섬기고 있다. 시인이며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은 머슴도 안 살아봤나》, 동화책 《네가 치는 거미줄은》 등이 있다. 꽃자리, 2018. 17,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작은교회 이야기》 / 한희철 / 포이에마 《어느날의 기도》 / 한희철 / 두리반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특별손님: 한희철 목사 ▲ 한희철 목사는 DMZ 길을 순례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두 발로 이땅을 밟으면서 현실을 느꼈고, 삶의 적절한 속도를 찾았다고 한다. <’기쁨의 집’에서 오른쪽부터 한희철 목사, 김길구, 김현호, 김수성> 하나님께 지고 싶어 순례길을 떠나다 김길구 오늘은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를 쓴 한희철 목사님을 특별손님으로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DMZ 길을 걸었습니까?한희철 두어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걷고자 다짐했던 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우리 산하에도 걸어야 할 순례길이 많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또한 평소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한다고는 했지만, 허리 잘린 조국에 대해 항상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접 현장을 걸으며 동강난 허리를 ‘호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이후 다른 분들이 좀 더 촘촘하게 꿰맬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호다’는 ‘헝겊을 겹쳐 바늘땀을 성기게 꿰매다’는 뜻].김현호 책에 보면, 목사님 스스로도 목회 중 일어난 일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나섰다고 하는데….한희철 맞습니다. 교육관 건축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논어에 ‘군자는 의를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는 구절이 있는데,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돈과 관련된 문제는 소인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안타까웠습니다.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지요. 나 역시방향감각이 무뎌진 것은 아닌가 하고.김수성 아픔은 아픔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군요?한희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에, 그가 한 수도사와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그 수도사는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데, 하나님을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고 싶어서 싸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하나님께 지고 싶어서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김길구 열하루 내내 걸으면서 기도했다, 그것도 태어나서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이 감동적이었습니다.한희철 새해가 되면 전 교인들에게 기도카드를 적게 합니다. 그 카드를 강대상에 올려놓고 매일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제단 앞에 꿇어앉아 기도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자세를 좋은 기도 자세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번에 걸으면서 기도를 해보니 이 자세도 상당히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여태껏 나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을 떠올리며 기도하니 더욱 좋았습니다. “기도는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김현호 열하루 동안 걸으면서 모든 분들이 다 생각나던가요? 시간이 모자랐을 것 같은데.한희철 내가 그렇게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지 않아서 그런지, 열하루 동안 내 기억 속에 있던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 보니 얼굴이나 이름이 아니라, 먼저 그분들의 아픔과 만나게 되더군요. 즉, 모두가 무엇이든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에는 아픔 없는 분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는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와 인연을 맺은 분을 위해서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김수성 걸으면서 기도하는 것 못지않게, 자연과 함께 드린 예배도 인상적이었습니다.한희철 예배는 내용과 함께 형식도 중요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 갔을 때 한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예배시간이었는데, 그레고리안 성가로 이어지는 수도자들의 예배 자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진솔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걷는 중에 맞이한 주일,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가 찬송하고, 나무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계곡을 따라 부는 시원한 바람이 축도를 한 예배는 결코 혼자 드린 예배가 아니었습니다.김길구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한희철 사실 갑자기 떠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준비가 소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걷는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코스는 함광복 장로님께서 일일이 적어준 로드맵에 의존함으로써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함 장로님은 DMZ에 관한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또한 중간 중간 교회 장로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기꺼이 동행해주셔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김현호 걷는 동안 날씨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하던데.한희철 유월 하순이었는데도 삼복더위 못지않았습니다. 걸핏하면 스마트폰에 무더위 주위보가 날아와 ‘바깥활동은 삼가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진부령을 오를 때는 뇌성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우박까지 쏟아졌는데,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만났던 가장 심한 악천후였습니다. 걸으면서 ‘삶의 적절한 속도’ 깨달아김수성 저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길, 사람보다 차를 중시하는 길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한희철 DMZ 길도 아찔한 곳이 많았습니다. 인도가 아예 없는 길도 여럿 있었고, 있다 하더라도 주행하는 차의 폭력적인 운전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특히 탱크가 내 옆으로 지나갈 때는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이를 피할 곳이 마땅찮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문득 2002년 경기도 양주 마을도로에서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길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오래 걸음으로써 삶의 적절한 속도를 찾으셨다고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한희철 삶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저는 우리 인생은 평생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 걸으면서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에 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몸으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참으로 중요한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순례길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무언가 변화가 있었나요? 교인들의 반응 같은….한희철 특별히 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지요. 더 이상 상황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비가 되기를 기도하며 한 마리 벌레 같이 걸었지만, 오히려 번데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김수성 그래도 번데기가 되었으니 한 단계는 진전한 셈입니다. 번데기를 거쳐 때가 되어야 나비가 될 수 있으니까요[웃음].김길구 이 책을 처음에는 편하게 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 등 현실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한사연 목사님의 순교 등과 관련된 ‘바이블루트’는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부산까지 오셔서 자리에 함께해주신 한희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안재경 목사의 《십계명, 문화를 입다》(SFC, 2017)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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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8-03-26
  • [기독교 교양 읽기 35] 정서와 영성은 아날로그 영역에 있다!
    ▲ 아날로그의 반격 아날로그는 살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온통 디지털로 뒤덮인 이 세상에 아직도 아날로그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아날로그가 건재하고 있는 이유를 꼼꼼하게 하나씩 제시한다.저자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준레코드’라는 상점이 문을 연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CD와 인터넷 다운로드로 시작한 디지털 음악은 차츰 파일로만 유통되다가,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스트리밍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끔 변신했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LP 레코드점이라니,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대인 젊은이들이 오히려 LP 레코드를 찾는 기현상(?)까지 나타나다니….이 책에는 이외에도 아날로그로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종이 수첩과 책, 보드게임, 학교, 오프라인 매장 등을 죽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디지털의 본거지 실리콘밸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날로그의 현상을 하나씩 적시한다. 내로라하는 IT 기업에서 명상이나 선(禪)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허락하고, 종이와 펜을 사용하여 먼저 디자인하는 교육을 시키고, 갈수록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는 등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의 직원들도 아이들은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도록 교육하고 컴퓨터조차도 없는 대안학교에 보낸다. ◈ 《아날로그의 반격》 || 저자 데이비드 색스(David Sax)는 캐나다의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이다.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 책은 2016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어크로스, 2016. 16,8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신국원의 문화이야기》 / 신국원 / IVP《과학의 영혼》 / 낸시 피어시 / SFC ▲ 느리고 불편하지만 아날로그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업계는 누구보다 아날로그를 중시한다고 한다. 아날로그의 가치에 충실할 때 디지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림출처: www.nmgncp.com] 이번 시간에는 지난번에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과 관련,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기독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아날로그’였다. 아날로그, 디지털 만능 속에 살아남다김길구 먼저 지난 시간에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시작하도록 합시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일상화되면 일자리 문제는 물론이고, 우리의 신앙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 교회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김현호 아날로그가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가 틈새시장으로서 버티고 있는 다양한 품목과 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교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적절하게 활용하면 좋은 대안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성 사실 디지털 세상에 대한 반응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서구 사회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디지털을 산업적 측면에서만 소개하고 홍보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래서 뒤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에 비해 서구 사회는 문제점도 직시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을 우리도 충분히 살펴봐야 합니다.김길구 LP레코드판의 보급을 보면,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LP 판매량이 2007년 99만 장이던 것이 2015년에는 1200만 장 이상으로 늘었고, 연간 성장률도 20%를 웃돈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는 2015년에 새로 생산된 레코드판이 3000만 장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합니다. 더구나 이 LP판을 사는 소비자층이 20대를 주축으로 10대까지 가세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실정이죠.김수성 LP판의 경우 가격 문제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음악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또는 염가로 다운로드하든지 스트리밍하여 듣는데 익숙해진 젊은 층이 기기를 구입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죠. 외국에서는 요즘 디지털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저가의 턴테이블이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습니다.김현호 저는 서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종이와 관련된 내용이 더 눈에 들어옵디다. 종이 수첩이 아직 건재하고 있고, 종이책은 전자책에 전혀 밀리지 않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몇 년 전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학자들은 곧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자책 리더 판매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관계는 아날로그’라는 의미 되새겨야김길구 아날로그가 아직도 건재하는 이유에 대해 ‘실재감’ 때문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스트리밍한 음악은 듣고 나면 사라지죠. 전자책도 내용만 스크린을 통해 글을 읽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날로그는 불편하고 더디더라도 ‘내’가 그것을 직접 만지고 조작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감을 통해 ‘내것’이라는 실재감을 느끼는 것이죠.김현호 디지털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르고 간편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뒤떨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특히 전자책을 볼 때와 종이책을 볼 때 뇌의 활동에 차이가 많다고 합니다. 즉, 종이책을 볼 때 뇌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이로 인해 더 오래 내용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죠.김수성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만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은 그 책을 드는 순간부터 오감이 작동하죠. 책의 크기와 두께, 종이의 질감, 표지 그림과 제목의 서체 등 모든 것이 독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줄을 긋는다든지 간단하게 메모를 하는 등, 이 모든 것이 책을 읽는 것에 속하는 동작입니다.김길구 이 책에 의미심장한 말이 나옵니다. “관계는 아날로그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SNS 등으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은 물론, 교회 공동체에서도 되새겨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김현호 우리 교회와 예배가 디지털화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교회 공동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에 심어준 독특성은 모두가 아날로그일 것입니다. 느리고 불편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단 뒤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은 자칫 성도들을 예배를 ‘보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김수성 스크린을 통해 성경말씀과 찬송가 가사를 보여주고 교인들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현실이죠. 성경봉독할 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 교인이 성경 구절을 찾고, 마찬가지로 찬송가도 함께 찾는 과정이 예배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디지털안식일 운동 전개하길김길구 “정서와 관련된 모든 단어가 아날로그 영역에 있었어요”라는 말도 의미심장합니다. 디지털의 특징은 무미건조합니다. 우리 교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속성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아날로그는 따뜻합니다. 웹진과 종이로 만든 소식지가 신자들에게 훨씬 더 감동을 줍니다.김현호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일반적으로 종이잡지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언급했고,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도 보도했듯이, 오히려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독립잡지는 훨씬 활성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잡지가 다양화되고 전문화되고 고품질화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이잡지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지요.김수성 몇 년 전 서구사회에서 일어난 ‘디지털안식일’ 운동을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전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즉,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예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든지, 최대한 절제하는 운동입니다. 비슷하게 ‘디지털 다이어트’ ‘디지털 금식’이란 말도 사용합니다. 이 책의 저자도 신자는 아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디지털안식일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고 고백합니다.김현호 주일에 교회에 올 때 아예 스마트폰 등을 집에 놔두고 오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에 따른 준비를 미리 하게 되고, 부수적인 효과도 극대화될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예배시간에 폰을 쳐다보는 일은 사라지겠죠. 또한 교인들 간에 대화가 늘어남으로써 신앙이 ‘이야기’로 계속 전수될 수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디지털은 우리가 멈출 수 없는 흐름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가 언급했듯이, 디지털 사회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때까지 중시해온 ‘가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교회가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앞으로도 이 사회에서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한희철 목사가 쓴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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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6
  • [기독교 교양 읽기 34] AI, 로봇, 빅 데이터, 생체공학 등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기독교회, 4차 산업에 적극 대응해야
    ▲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 이제 교회가 응답할 때 이 책은 잡지처럼 편집되었다. 전문가 ‘대담’에 이어,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에 관해 전문가 4명의 글을 실었다. 그리고 뒷부분에 ‘북 리뷰’ 페이지를 두어 5권의 책에 관한 소개로 책을 마무리하였다. 단행본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잡지 스타일이다.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하게 인공지능에 쏠렸다. 이어서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잇따랐다. 그동안 기독교 신앙이 외면해오던 과학이, 엄청난 파워로 산업계는 물론 우리 일상생활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제 기독교회가 대답해야 할 때이다. 아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응답해야 한다.이 책에서 필자들은 교회가 지성적 신앙을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과학을 경원시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임으로써 시대와 동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교회가 먼저 고민하고, 그에 대해 신앙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관련된 도서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종교적 중립성의 신화》 《호모 데우스》 《슈퍼 인텔리전스》 《지능의 탄생》 다섯 권을 소개한다.◈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 || 편저자 한국교회탐구센터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회, 한국 교회를 위한 탐구’를 모토로 2011년에 설립되었다. 2016년부터 ‘과학과 신앙’에 대한 시리즈 기획물로서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외계인과 기독교 신앙》 등을 출판했다. Ivp, 2017. 12,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 리처드 왓슨 / 원더박스《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 김영사 ▲ 우리 사회에 인공지능이 성큼 들어온 지도 제법 되었다. 그런데 교회는 아직도 못 본 척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출처: www.regmedia.co.uk] AI, 로봇, 빅 데이터, 생체공학 등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기독교회, 4차 산업에 적극 대응해야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이 2016년에 출판된 후, 전 세계의 IT업계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국가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인공지능, 일상생활 속으로 뛰어들다 김길구 2016년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낱말 중 하나로 인공지능(AI)을 들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기술로서 AI와 함께 로봇, 빅 데이터, 생체공학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런 첨단 과학기술의 일상화가 우리 기독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인공지능이 일반인들에게까지 각인된 계기는 아무래도 2016년 3월에 벌어졌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 간의 바둑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무엇인지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까지, 이 바둑대결을 계기로 AI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으니까요. 김수성 ‘알파고 쇼크’ 이후 뉴스를 타고 불길한 전망이 이어졌죠. 사람을 위해 설계한 인공지능이 오히려 역작용을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AI도 ‘강한 지능’과 ‘약한 지능’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 거론되거나 실용화되고 있는 것은 ‘약한 지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김길구 정말 ‘쇼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직후,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문학상 공모전인 제3회 ‘호시신이치상’ 일반부문에 인공지능이 집필한 소설 11편이 출품돼 최소 1편 이상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반부문에서만 1450편의 소설이 출품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인공지능이 신문 기사도 작성하고, 작곡을 한다든가 그림을 그린다는 발표도 잇따랐죠. 김현호 알파고의 발전 속도도 놀랄 정도입니다. 이세돌과 맞붙은 알파고는 ‘알파고 리’였습니다. 이후 ‘알파고 마스터’ ‘알파고 제로’로 발전을 거듭했죠. 그런데 발표에 따르면 ‘리’가 ‘제로’와의 바둑대결에서 0:100으로 완패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리’가 이세돌과의 대결 이전에 학습한 시간이 7개월이었는데, 2017년에 개발한 ‘제로’는 바둑을 하나도 모르는 밑바닥(zero)에서 이 경지에 도달하는 데 고작 사흘이 걸렸다고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수성 알파고 이전에도 1997년 IBM의 ‘딥블루’와 체스 챔피언의 대결, 2011년 IBM의 ‘왓슨’과 텔레비전 퀴즈 쇼 ‘제퍼디’ 챔피언의 대결 등이 있었습니다. 이후 ‘왓슨’은 병원의 암센터와 연결되어 암 진단 등에 활용되고 있는데, 몇몇 우리나라 병원에서도 왓슨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AI가 전문직 일자리까지 넘보는 현실 김현호 최근 TV를 보면 인공지능 도우미에 관한 광고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통신회사에서 내놓은 것으로, 음성으로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디지털 기기들입니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김길구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곧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으로 일자리 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컴퓨터 도입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벌써부터 일자리가 크게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일상화되면 상당수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김수성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태까지는 단순 반복 노동과 관련된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앞으로는 소위 전문직까지도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김길구 작년에 ‘아마존’ 유통창고의 ‘키바’ 로봇시스템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넓은 창고에 사람은 몇 명 없고, 그나마 로봇의 보조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인공지능화된 로봇으로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이 비슷한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마존 고’라는 무인 편의점은 곧 우리 주변에 나타날 것 같습니다. 김현호 아까 왓슨을 이야기했지만, 의사나 약사 업무도 인공지능이 처리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옵니다. 2016년에는 ‘인공지능 변호사’가 뉴욕 로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특기는 법률문서 검토로서, 초당 1억 장의 판례를 검토해 사건에 맞는 가장 적절한 판례를 추천한다고 합니다. 도저히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죠. 그러자 1년여 만에 수십 곳의 로펌이 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김수성 인공지능이 발달함으로써, 이제는 패턴화된 업무는 모두 처리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예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대체되기 어려운 직업 중 하나로 심리 상담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심리 상담을 잘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심리 상담도 패턴화할 수 있는 업무라는 것이지요. 유발 하라리, “‘데이터교’ 일반화될 것” 김길구 이런 흐름이 곧 기독교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교인에 대한 목회상담은 목회자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이러한 목회상담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기술휴머니즘과 데이터교가 일반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합니다. 즉, 인간의 삶이 기술과 데이터에 종속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죠. 김수성 이로 인한 소득의 불균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때 20대 80의 사회라는 공식이 정보사회로 들어서면서는 10대 90의 사회로, 이제는 1대 99, 심지어는 0.01대 99.99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김현호 앞으로 기독 과학자들이 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제점을 충분히 고려한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김수성 문제는 자본입니다. 자본의 후원을 받아 연구하는 과학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1960년 현재 전체 응용곤충학자의 2퍼센트만이 생물학적 방제 분야에서 일하고, 나머지 98퍼센트는 화학 살충제 관련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즉, 자본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지금 상황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김현호 외국에서는 ‘사이언톨로지’라는, 과학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도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 종교처럼 파고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대세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더디더라도 본질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리함을 따르다 보면 영혼과 정신세계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교회는 거대한 흐름을 선순환 구조로 바꾸는 노력을 사회적 선교개념으로 접근하여야 합니다. 김길구 결국 교회가 팔짱만 끼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적극 나서서 연구할 인력을 지원한다든지, 템플턴(Templeton) 재단 같은 재단을 설립한다든지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이 거대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존재가치를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데이비드 색스(David Sax)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을 읽고, 오늘 나눈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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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22
  • [기독교 교양 읽기 33] 성탄은 하나님의 아픔에서 태어난 복음!
    ▲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일본 신학자가 쓴 '아픔의 신학' 책 까다로운 책이다. 단어도 낯설고 문장도 한 번 더 읽게 만든다. 그래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 ‘아픔’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일본인을 위한 신학 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국학의 심상, 불교 용어, 비극적인 내용의 가부키에서 드러나는 쓰라림 등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픔은, 진노의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이야기한다.저자는 조직신학자이다. 모든 것을 꼬치꼬치 따지고 설명하면서 아픔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 한편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몰트만에 의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많은 신학자들이 지금도 이 ‘하나님의 아픔’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박석규 목사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2014년에 이원제 목사가 다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평신도는 뒤쪽에 있는 ‘해제’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을 것을 권한다. 번역자인 이원제 목사가 이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글을 잘 써놓았다. 그리고 말미에는 ‘아픔의 신학’를 넘어 생각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세월호 사건 등을 예로 들어 지적해놓았다.◈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 저자 기타모리 가조(北森嘉藏, 1916~1998)는 이 책 한 권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일본 신학자이다. 도쿄신학대 조직신학 교수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구원의 논리》 《일본인과 성서》 등이 있다. 원제 ‘神の痛みの神學’. 새물결플러스, 2017. 17,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끙끙 앓는 하나님》 / 김기석 / 꽃자리《긍휼: 예수님의 심장》 / 하재성 / SFC ▲ 기타모리 가조의 ‘아픔의 신학’은 예레미야 31장 20절을 내세운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 [그림은 폴 고갱의 ‘황색 예수’] 성탄은 하나님의 아픔에서 태어난 복음! 아픔은 용서받을 자의 책임까지 짊어지신 하나님의 사랑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한때 우리나라에도 ‘민중신학’이 한창 연구되었던 적이 있다. 박정희 정권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후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1946년에 발표된 기타모리 가조의 ‘아픔의 신학’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패전 직후 일본에 등장한 ‘아픔의 신학’ 김길구 신학은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고트족 침입 시 로마의 위기 앞에서 선 아우구스티누스, 중세를 닫은 마틴 루터, 히틀러 치하의 정치범 사형수 본 회퍼, 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칼 바르트가 그러했습니다. 그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 곧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면 신학이 나름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하나님의 아픔’과 관련된 신학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현호 그동안 우리는 서구 신학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익숙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인간과 같이 희로애락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자칫 편향된 모습의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고통을 겪는 분이라는 측면에서 본 ‘아픔의 신학’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성경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김수성 그동안 이 자리에서 두어 번 이와 관련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세월호, 희망을 묻다》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 책은 고통당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고통을 이야기한 것이었죠. 김길구 맞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픔에 관한 연구입니다. 즉, 높은 곳에 계시면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낮게 내려와서 인간처럼 고통을 겪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그동안 대부분의 신학이 서구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아픔의 신학’은 아시아, 특히 패전 일본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현호 ‘아픔의 신학’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부서진 현실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감싸 안으시는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아픔이 해결되고 우리의 상처는 치유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여기서도 모성적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길구 저자는 하나님의 아픔은 진노의 대상을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죽음에 내주었다는 것이죠. 예레미야 31장 20절 “내 마음이 아프다”는 구절을 “내 창자가 아프다”로 번역한 일본어 ‘문어역성서’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아픔을 구체화합니다. 너무나도 ‘일본적인’ 신학으로 표상화 김수성 기타모리의 신학이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몰트만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에서 언급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한편, 칼 바르트는 기타모리의 신학이 너무도 일본적이라고 비판합니다. 김길구 기타모리의 신학이 일본적이라는 것은 우선 불교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절복(折伏)’ ‘섭수(攝受)’ 등 많은 불교 용어로써 아픔의 신학을 전개합니다. 이는 외래종교를 일본화시키는 특유의 국민성에 기인합니다. 김현호 불교 용어를 차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자기 나라 사람들이 어려운 신학적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수성 자칫 본래의 의미가 왜곡될 가능성은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초창기 일본 그리스도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일본의 ‘오오히(大日)’로 인식하고 신앙했다는 것입니다. 즉, 형식은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신은 하나님이 아닌 일본의 신을 믿었던 것이지요. 김현호 불교 외에 일본 국학(國學)도 거론합니다. 특히 여기서는 일본인의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노노아와레’를 언급합니다. 이 말 뜻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접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느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일본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김수성 기타모리는 일본인들이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게 하기 위해 몇 편의 가부키도 동원합니다. 특히 예로 든 가부키의 내용은, 은혜를 입은 옛 주군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물로 내놓고, 그 아이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결코 내색하지 않는다는, 상당히 비극적인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면서 이 아픔을 ‘쓰라림’이라는 단어로 표상화합니다. 김길구 이에 대해 기타모리는 헤겔 철학을 원용하여 일본의 신학을 내세웁니다. 먼저 그리스-로마적인 그리스도교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갈수록 복음의 진리에서 퇴락하자, 게르만 민족인 루터를 통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루터의 하나님의 모습에서도 ‘하나님의 아픔으로서의 은총’에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부키 등을 언급하며 일본의 비극의 근본인 ‘쓰라림’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파악하게 된다는 다소 국수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김현호 너무도 일본적이라는 것이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타모리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의 아픔입니다. 곧, 용서하는 자가 용서해야 할 죄인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 아픔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복음으로서의 사실이었다고 강조합니다. 가해자-피해자 관계에도 적용될까? 김수성 그런데 이런 복음을 신앙하고 있음에도 무고한 죽음과 같은 사건에 맞부딪칠 때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신정론(神正論)으로서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느니, 하나님도 그들과 함께 슬퍼하신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김길구 기타모리의 신학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아픔의 신학’은 패전 후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가해자로서 피해자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촉구하는 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신자들은 아가페 사랑의 시금석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불의와 배신, 하나님의 법을 떠난 자들에 대해 손 내미신 미라클이라면… 가해자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손 내미는 사랑으로 이 고리를 끊어야겠지요. 어렵겠지만 이것이 산상수훈의 정신이고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일 겁니다. 물론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는 정의를 요구해야하지만 이 땅을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갈 책임을 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자신의 삶에 구체화함으로써 끝내 크리스마스 기적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김길구 자칫 가해자는 가해자로서 남고, 피해자는 계속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고리가 더 견고해질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회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편저한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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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18
  • [기독교 교양 읽기 32]진화가 무신론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과 과학은 양립할 수 있다 재미있다. 그리고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이 말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꿍꿍 앓던 문제점에 대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면서.이 책에서도 사례로 들었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빅뱅과 진화론 등을 배운 후 교회에서 들었던 창조이야기와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과학과 신앙의 갭이 너무도 큰 것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물론,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과학이 밝혀내는 진화도 포함된다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책과 자연이라는 책을 주셨는데,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려준다면, 자연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떻게’를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므로, 과학을 결코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기독교회가 과학을 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의 오류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한국 교회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창조 신앙의 길로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한 책이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저자 우종학은 현재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모토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 설립자이다. 저서로는 《블랙홀 교향곡》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기원》 등이 있다. 새물결플러스, 2017.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예수와 다윈의 동행》 / 신재식 / 사이언스북스《신의 언어》 / 프랜시스 S. 콜린스 / 김영사 진화가 무신론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에 관해서도 좀 더 관심 기울이길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지난 9월 11일 국회에서 개최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후보자 본인의 생각으로는…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창조신앙을 믿는 입장에서는…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고 신앙적으로 믿고 있습니다”고 답했다. 과학은 자연을 통해 ‘창조의 방법’ 밝혀 김길구 : 결과적으로는 자진사퇴했지만, 당시 박성진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자녀를 둔 교인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기독교 선진국들이 겪었던 진화론 논쟁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신앙과 과학의 양립은 불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김현호 : 박 후보자에 대한 논란은 창조과학회라고 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과의 관련성에서 비롯되었죠.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우주 창조가 6천여 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그동안 미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수성 :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과학자들 중에는 천체물리학이나 진화생물학 등 우주와 생물의 탄생을 밝혀줄 학문을 전공한 학자들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미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주장해온 내용도 과학적인 근거가 거의 없거나 일부분만 침소봉대한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김길구 : 기독교계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입장이 나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창조신앙과 과학적 성취 간에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가장 큰이유는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자주의에 입각하여 성경의 창조기사를 과학적 사실로 인식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현대 과학이 연구한 성과와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호 :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은 유대교의 전형적인 찬양시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 또는 과학적으로 표현 한 것이 아니라, 주위 이민족이 섬기는 많은 신들도 결국은 우리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선포한 것이라는 주장이죠. 김길구 : 성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주장은 오랜 기독교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부들을 비롯해 아우구스티누스, 루터나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 그리고 현대의 신학자들도 문자주의적 해석 못지않게 역사적, 교훈적, 은유적 해석 등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수성 : 저자는 “하나님은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가지 책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면, 자연은 과학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구체적으로 창조하였는가를 보여준다고 언급합니다. 즉, 같은 창조를 언급하지만, 성경과 과학은 각각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죠. ‘진화론적 무신론’은 하나의 이념이다 김길구 : 저자는 과학자답게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미 정설로 굳어진 우주 진화와 생물 진화 등 자연현상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성취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를 우리가 수용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창조주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자연현상으로서의 진화와 ‘주의’로서의 진화주의는 전혀 다른 영역이므로 이를 구분하자는 것이죠. 즉, 진화론은 ‘진화생물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생물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해왔는가를 진화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과학’입니다. 이에 비해 진화주의는 진화이론을 바탕으로 신적 존재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이념’또는 ‘신념’입니다. 김현호 :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대표적인 진화주의에 따른 무신론적 저서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진화론을 연구해 보니 신의 존재는 찾을 수 없더라고 주장하는 책입니다. 여기서 진화론을 연구한 것은 과학이지만, 신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개인적 이념이나 신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진화주의에 따른 개인적 판단입니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책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김수성 : 그래서 도킨스를 가리켜 진화론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거꾸로 이 책의 저자인 우종학 교수처럼 진화론적 유신론자도 있습니다. 우주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자지만, 그는 이러한 우주의 탄생과 진화도 하나님의 창조섭리 속에 포함된다고 믿습니다. 김길구 :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진화론적 유신론자가 있죠. 바로 프랜시스 S. 콜린스입니다. 그는 진화를 증명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한 과학자지만, 오히려 유전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은 후 하나님을 믿어 도킨스의 독설이 허구임을 증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쓴 책이 《신의 언어》입니다. 김현호 : 이 시점에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것은 이러한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대해 교회가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특히 창조기사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교인들도 딜레마에 빠져 과학을 백안시하고, 어떤 때는 진화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성경 해석하는 이가 오히려 오류 범해 김길구 : 문자주의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경우 항상 성경무오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성경에는 오류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김현호 : 맞습니다. 성경은 오류가 없습니다. 다만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오류를 범하고서는, 자기들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맞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창조과학회의 주장이 아닐까요?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내세우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김수성 :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들어 과학이 너무도 빨리 많이 발전함으로써 이를 받아들이기에 힘든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에 언급된, 하늘은 궁창으로 되어 있고, 그 궁창에 해와 달과 별이 달려 있고, 땅은 편평하고, 땅 끝에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있다는 내용을 지금 시대에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성서를 기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세시대 때까지 믿어왔던 천동설 대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정설이 되기까지도 몇 백 년이 걸렸습니다. 김길구 : 오늘날 널리 알려진 빅뱅이나 진화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현재 과학적으로 진실이라고 할 만큼 입증된 사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 개인차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신앙하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김현호 : 앞으로 더 시간이 필요하겠죠. 이럴수록 교회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과학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문자주의에 집착하여 과학적 사실을 무조건 거부할 경우, 교회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길구 : 이언 바버라는 학자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갈등, 독립, 대화, 통합이라는 네 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를 상보적으로 위치하기 위해서라도 신앙과 과학 간의 대화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다음에는 일본인 신학자 기타모리 가조가 쓴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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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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