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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⑦
    1. 셰프 전성시대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야훼의 마지막 날 잔치모든 종교는 의식(예배 혹은 제사)과 먹는 것(밥)이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에게 바치는 제물은 곡식, 떡, 양, 염소, 소, 비둘기 등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번제와 희생제, 감사제와 요제를 드리게 된다. 그리고 제사 이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제사 음식을 먹는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출18:12).”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고 나서도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이스라엘의 축제일인 유월절, 무교절, 추수절, 초막절 역시 모두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애굽의 종살이에게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일로 제물고기와 누룩 없는 떡을 먹었으며 추수절과 초막절은 밭 곡식과 포도의 추수에 관련된 축일로 가난한 이들(노비,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까지도 함께 즐겨야 했다(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신16:14).이사야가 선포하는 야훼의 마지막 날의 모습도 먹고 마시는 잔치이다. 시온 산에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고 모든 민족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25:6)”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먹는 잔치로 묘사된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초대 교회 공동체는 어떤가?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생활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준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행2:44-47).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는 이러한 밥상 공동체가 깨어졌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고전11:20-21)”고 전한다. 곧 부자들은 취하도록 배불리 먹고 가난한 자들은 굶주린 상태에서 에배와 성찬에 참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해결책으로 공동식사인 애찬과 성찬을 분리시켰고 결국은 성찬만 남게 되었다(“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고전11:34a). 사실 사회적 신분(주인과 노예)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예수의 밥상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은 아닌 것이다. 이후 요한복음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예수의 삶으로 이끌고자 종교적 의식 행위에서 오늘의 현실 속에 예수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6:56).”이를 구현한 이가 교회사에 등장한다. 지난 2015년 7월 6일은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의 화형 6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후스는 성찬식을 개혁했는데, 성찬식은 실제로 굶주린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밥상공동체 운동이다. 이러한 후스의 개혁운동을 더욱 확산시켰던 후스파 운동은 ‘이종성찬(빵과 잔 둘 다 허용)’을 진행했는데, 이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당시 성찬 집례시 잔은 사제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러나 후스파는 평신도들에게까지 잔을 베풂으로 평등 공동체를 구현했다. 성찬을 통해 사제계급의 특권을 파괴한 것이며 성찬을 공동식사(애찬)로 바꾸어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잔치가 되었다. 3. ‘멋, 맛, 못’의 말씀 요리사인 설교자설교자는 말씀의 셰프이다. 최현석 셰프와 같이 요리하는데 멋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기에 대행자로서 멋이 있어야 한다. 개그맨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 맛이 있어야 한다. 백주부(백종원 셰프)의 솜씨와 같이 지식인이든 어린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할 것 없이 맛있게 먹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감칠 나게 요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자의 설교에는 못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손맛과 같은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 찔림이 있어야 한다. 본향에 대한 그리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첫사랑에 대한 찔림, 미래의 희망에 대한 저 내면 깊숙한 곳에서의 외침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거든 요리를 배워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함께 더불어 먹기라도 해야 한다. 부활한 예수도 이념이나 정신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말씀 요리와 밥을 나눠 먹는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 것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24:28-35).”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담임,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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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7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⑥
    1. 사실의 사진: 교리 주입 사진-신학(Photheology)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매력적이다. 사진에도 신학이 있을까? 그렇다면 사진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사진에 신학과 신앙이 없다면 그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진에 신앙과 신학이 있다는 것은 사진 한장에 한 사람의 숨결이나 한 세대의 생명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신학적 의미를 부여받고, 신앙적 생명을 얻고,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의 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백승균 교수는『사진 철학을 만나다』(북길드, 2014)에서 사진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인간 의식과 사진의 관계에 관해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으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26-37). ▲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 여기 사진이 있다.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연작 사진이다. 사랑하는 딸의 패션쇼를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사진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는 패션쇼를 가능하도록 만든(옷을 입혀준) 언니 희주가 있고, 또 이 모습을 찍은 아빠가 있을 것이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언니와 아빠 모두가 이 사진의 완성자가 될 것이다. 이처럼 사진은 사실의 기능을 한다. 사진-신학의 지평도 마찬가지다. 사실의 사진은 사실의 신학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를 주입하는 신앙에 다름 아니다. 교리에 그 교리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 그리고 그 교리를 완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 하에서. 따라서 사람들의 이해 지평(곧, 의미)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사실의 사진은 의미의 사진으로 넘어가고, 사실의 신학은 의미의 신학으로 진행해야 될 것이다. 2. 의미의 사진: 해석학적 신학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해석의 지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희진이의 패션쇼는 아빠의 사랑이, 언니의 정성이, 그리고 주인공 희진이의 애교가 의미놓여져 있다. 이것은 배고파도,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의미의 차원이다.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창설한 프뢰벨(F.W.A. Fr?bel, 1782~1852)은 아동의 내적인 신성이 자연물과의 친근함을 통해 발현된다고 말한다. 가령,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목각기차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으로 달려간다면, 프로벨은 그 기차를 그저 장남감으로만 여기지 말고 실제 기차로 간주할 것을 주장했다(백승균, 32). 그렇다. 사람은 사실만으로 살지 않고(그리고 이 사실은 경제와 정치, 현실의 모든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로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잘 알았고, 마귀의 시험을 지혜롭게 대처하셨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1-4절) 따라서 의미의 신학은 해석학적 신학의 지평을 열어준다. 사실의 신학이 단순한 교리 주입이라면, 의미의 신학은 성서 말씀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사실을 넘어 해석학적 의미의 지평 융합을 이룬 것처럼. 3. 의식의 사진과 신학의 사명: 김아타를 중심으로 사진은 불가능한 순간(가령 1/125초~1/15초의 순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기술이며, 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영원으로 잇게 하는 예술이다. 사진의 특별한 기법에는(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해당되지만) ‘연장노출(extended exposures)’과 ‘다중노출(multiple layering)’이 있다. 연장노출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두고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들의 형체를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 반면 다중노출은 이미지를 수십 번 중첩하는 것으로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다. 따라서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처음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 뉴욕을 촬영한 1만컷 이미지를 단 하나로 중첩시킨 작품 앞에 선 김아타 <뉴욕 타임스>가 “철학적 사고가 지극히 참신한 작가”라 극찬한 박박 민 머리, 동그란 안경, 검정 인민복의 사진작가 김아타는 연장노출과 다중노출 기법을 통해 작품을 창작했는데, 뉴욕의 모습을 찍은 1만장의 사진을 겹쳐 한 장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약간의 채도 차이가 있을 뿐 희뿌연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자『도덕경』5290자,『논어』1만5817자,『반야심경』260자를 한자한자 촬영해 각각 한 장으로 포개는 작업도 했는데(성경은 분량이 많으니 ‘요한복음’이나 ‘창세기’만을 한 글자 한글자 찍어서 촬영하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작업 가운데 김아타는 “자신을 구속하던 경전이 솜사탕이 되더라”고 말한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고, 없애버림으로써 있음을 드러내는 구도자의 깨달음이다. 예수께서도 깨달은 바 천하 만국의 영광이 결국 사라짐을, 아쉽지만 지금 사랑하는 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 속에 사라져 감을 깨닫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셨고,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는 답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의미를 넘어 의식의 변화가 새로운 존재를 창출하는 것이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4-8절) ▲ (2004) 사진에서 의식의 변화를 이룬 김아타의 ‘아이스 모놀로그(Ice Monologue, 얼음 이야기)’인 ‘ON-AIR Project’ 시리즈는 영원함을 상징하면서 역사적 의미도 지닌 파르테논 신전, 부처, 마오쩌둥, 피라미드 등의 조형물들을 얼음조각으로 만들고, 그 조각이 점점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 3개월 동안 실제 크기의 15분의 1로 얼음조각을 만든 뒤 녹아 없어지는 1개월의 과정을 사진에 담아냈다. “모든 존재는 생멸하고 이 우주에 생멸하는 법을 거스를 존재는 없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가령, 스틸 사진 3장으로 표현한 <마오의 초상>은 권력의 무상함을 떠올린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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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⑤
    1. 빛을 쓰기 사진(photography)은 어원적으로 빛(photo)을 쓰는(graphy) 것이다. 따라서 사진작가는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세상을 쓰는 사람이다. 1944년 브라질의 작은 마을 아이모레스(Aimores)에서 태어난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는 젊은 시절 활동가로 브라질 군부 독재에 저항하다 결국 프랑스로 건너간다. 이후 파리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은행(WorldBank)의 아프리카 커피 산업에 대한 조사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 렐리아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출장 후 “경제리포트를 작성하는 것보다 사진 찍는 일이 더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진작가로 새 출발을 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처음엔 뉴스 에이전시에서 작업을 할당 받기도 하고, 잡지 사진이며 누드 사진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요청받아 사진을 찍는 대신 스스로 주제를 정해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후 10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며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눈먼 투아레그족 여인 살가두에 따르면 사진은 ‘구도’와 ‘배경’, 그리고 ‘생동감’이 있어야 하는데, 생동감이란 피사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의 감동 있는 이야기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롤랑 바르트(R. Barthes)가 말한 풍크툼이다. <눈먼 투아레그족 여인>을 통해 살가두와 인연을 맺은 빔 벤더스 감독 역시 그의 작품에서 그 어떤 ‘화살처럼 꽂혀오는 강렬함’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살가두의 작품에서 인간 존재의 심연과 고통, 그리고 마침내 구원을 향한 절규와 그 응답인 빛을 보게 된다. 2. 인간이라는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 ▲ 세라 펠라다 금광(1986) ‘사람을 아끼는 사진작가’라고 평가받는 살가두는 인간의 ‘욕망’과 ‘기아 문제’, ‘노동자의 치열한 삶’, ‘이주민들의 고통’ 등을 자신만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포착해냈는데, 그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품은 브라질의 세라 펠라다(Serra Pelada) 금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에 대한 작품이다.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쓴 인부들, 황금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탐욕과 원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이주 문제 역시 인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임을 고발하는 증거이다. 따라서 살가두의 사진은 이러한 인간 존재의 죄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우리들은 인간이라는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이라고 말하는 살가두의 담담하지만 비애에 찬 목소리와 표정은 보는 이들의 가슴에 무겁고 깊은 울림을 전한다.따라서 지구촌 고통의 현장을 다니며 잔혹한 정치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모습 등을 렌즈에 담으며 마침내 증오가 증오를 낳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촬영하는 일에 회의를 느낀 살가두는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3. ‘나無의 신앙’과 신의 사도 살가두 고향에 돌아간 살가두는 부인 렐리아의 제안으로 브라질의 도체강 유역 아이모레스에 대지 연구소(Instituto Terra)를 세워 지역 생태계 복원작업을 주도하게 된다. 무분별한 벌목과 철광석 탄광 개발로 인해 황폐해진 지역에 나무를 심어 생태계를 복원한 것이다. “천국에서 태어났으니 이곳을 다시 천국으로 만들자”는 그의 말은 사진 작업에 있어서도 새로운 계기가 된다. 치유된 살가두는 이제 자연의 경이를 카메라로 포착한다. 지구의 경이로움에 헌사를 바치는 프로젝트 ‘제네시스’(천지창조)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며 치유가 되고 순환하는 삶의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자란 이 땅에서 나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내가 죽은 다음 이 숲은 내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죠. 내 인생을 담은 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겁니다.” 인간은 대자연(신앙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나無) 자각이 있을 때 참된 신앙의 깊이에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케노시스 기독론(자기비움의 그리스도)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6-11) 사람들은 사진기를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찍는 살가두를 보고 신께서 천국에 갈 인물을 찾는 일을 그에게 맡겼다고 생각한다. 곧 신의 사도인 살가두를 이 땅에 보내어 사진을 통해 천국 갈 사람을 찾게 한다는 것이다. 끝없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한줌 세상의 소금으로 내어주는 사람들을 신의 사도인 살가두는 자신의 사진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타자를 위해 비운 자만이 신의 사도가 될 수 있으며 그때 참다운 빛은 보여지고, 쓰여지고, 찍힐 것이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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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6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④
    1. 사진의 도전: 회화가 근본으로 돌아가다. 미학의 역사에서 칸트(I. kant)는 고전주의를 벗어나 근대를 연 사상가이다. 고전주의는 미란 ‘본질을 현시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정한 규칙(본질, 혹은 진리)을 정해놓고 그것과 예술 작품이 1:1로 대응하면(혹은 잘 묘사하면) 아름다운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파르테논 신전과 같이 수치 비례적으로 완벽에 가까워야 하며, 예술은 진리와 도덕과 종교에 종속되어야한다. 나아가 모든 사물과 사건은 ‘진’리→-‘선’함→‘미’의 순서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미스코리아의 순위처럼. 그러나 근대가 열리면서 예술은 본질로부터 탈피하여 물질을 통한 감성의 창출, 대상의 상실, 현실의 주체적 해석, 상상 공간의 창조, 의미의 배제 등으로 새롭게 변화된다. 그 시작에 칸트의 미학이 놓여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는 개인적인 느낌을 따르는 것이다. 미란 인식이 아니라, 쾌감이다. 따라서 예술의 본질은 진리의 내용에 있지 않고, 예술의 형식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가는 스스로 규칙을 세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천재’이지, 고전주의 예술가처럼 일정한 규칙을 따라 자연을 모방하는 ‘장인’이 아니다. 이제 ‘미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예술은 더 이상 윤리적인 가치를 가질 필요가 없다. 오로지 고유의 미적 자율성만 필요로 하게 되었다. ‘순수한 형식의 조합과 상상력의 놀이’로 예술이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술의 발명¹은 위기이기도 했지만, 회화가 자신의 근본으로 돌아가 형식의 자유로운 유희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사진은 풍경화와 인물화, 정물화 등 회화가 재현 대상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을 더 잘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고전주의에 입각한 사람들에게 사진은 회화보다 더 수치 비례적으로 대상과 완벽에 가까운 것이기에 회화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회화는 선과 색, 곧 형태와 채색이라는 회화의 근본으로 돌아가며 위기를 극복한다. 차가운 추상의 몬드리안의 작품이나 뜨거운 추상의 칸딘스키의 작품. 그리고 추상표현주의 잭슨 폴록의 작품은 바로 회화가 그 자신의 근본인 ‘형’과 ‘색’으로 돌아갔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때 회화는 폭발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현대 미술이 탄생된 것이다. 2. 사진-신학의 도전: 신학이 근본으로 돌아가야!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분이며 신약성서에서 신은 직접 사람이 되어 힘없고 억압당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교회는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살리기 보다는 교회 자체의 존재를 우선시 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사라진 종교는 없으며 돈이 많아서 망하지 않은 종교도 없다. 번영신학을 통해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의 분위기 속에, ‘목회’가 아니라, 교회라는 단체를 ‘경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저 찬란한 정교분리를 통한 내세축복을 바라는 기복신앙과 현실적 맘몬에 가치를 둔 실용주의가 그 근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화가 사진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의 때에 근본으로 돌아가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처럼 신학도 교회도 위기의 때에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류대영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푸른역사, 2009)를 보면 한국 개신교의 정치성을 역사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 땅에 첫 개종자를 배출한 이래 개신교는 줄곧 문명과 야만, 중화와 서방,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최일선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개화기의 개신교는 ‘진보의 전도사’였다. 한글 보급과 출판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고 축첩, 조혼, 신분제 같은 전근대적 구습과 대결하는가 하면, 인권을 신장하고 민족의식을 불어넣어 지식인과 민중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계기로 한국 개신교는 뚜렷한 탈정치화 경향을 띠면서 내세지향적인 감성 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1920년대 유입된 ‘사회주의와의 충돌’은 뿌리 깊은 반공주의의 기원이 되었고, ‘반공의 신학화’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월남한 교계 지도자들에 의해 더욱 견고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세력화’는 마니교적 선악이원론과 종말론적 위기의식, 80년 광주를 지나면서 시작된 친미주의 세계관의 균열에 대한 불안 등이 정치적 보수주의와 유착되어 일부 교회의 정치적 행동주의를 추동했다는 것이다. 다시금 전근대적인 구습이 한국사회를 드리운 이때 ‘한국 교회사의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본으로 돌아가라)’인 개화기의 개신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 몬드리안의 작품 활용 ▲ 칸딘스키<원속의 원> ▲ 잭슨 폴록의 작업 모습 <각주1> 사진은 공식적으로 1839년 8월 19일 프랑스인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 J. M. Daguerre, 1789~1851)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이미 최초의 사진은 그보다 10여년이 앞선 1820년대 중반 역시 프랑스 사람 조셉 니세프르 니엡스(J. N. Niepce, 1765~1833)에 의해 만들어졌다. 물론 사진영상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자각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500년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시작되었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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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9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③
    1. 김치파스타와 포스트모던 예수‘김치파스타, 짬짜면, 카레라이스’ 등의 음식문화. ‘아파트로 들어온 한옥, 온돌과 벽돌을 혼합한 집’ 등의 주거문화. 최근 문화 현상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전에 존재하는 것들을 혼합 또는 조합하여 새로운 제3의 것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경계를 해체하는 이러한 혼합 정신은 곧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다. 빌라도가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질문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고 되묻는다.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는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답한다.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노라”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33-38)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에서 우리는 또 다른 포스트모던 정신을 예수에게서 읽을 수 있다. 빌라도의 질문은 ‘왕, 혁명, 진리 (여기에 민중, 통일, 해방, 진실 규명 등을 넣어도 될 것이다)’ 등 거대담론이었으나, 예수의 대답은 동문서답과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경계 해체, 혹은 미시 담론, 곧 작은 이야기를 중시하는 포스트모던적이었다. 오늘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잡담거리로, 진실 규명을 영원한 수수께끼로, 영생과 구원, 생명과 부활의 담론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이때 원조 포스트모던 예수는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2. 사진회화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¹는 미술적으로 혼합을 선호한 작가였다. 동독 출신이지만 서독과 파리를 여행하면서 전통적인 고전주의 회화 양식이 아닌 새로운 예술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자극을 받게 된다. 특히 1959년 두 번째 서독 여행에서 관람한 <카셀 도큐멘타 Ⅱ>전시회는 그의 예술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이 전시회에 전시된 잭슨 폴록(J. Pollock), 바넷 뉴먼(B. Newman)의 작품을 통해 당시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인 추상 미술을 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리히터는 동독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추상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새로움은 리히터가 추구할 ‘제 3의 길(Third Path)’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그는 전통적인 고전주의 예술과 현대미술을 접합시킬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진회화이다. 그림을 그리되 사진처럼, ‘사진 같은 사진이 아닌’ 회화인 것이다. 빌라도의 이데올로기 담론에서 포스트모던 예수가 말했던 경계 해체, 미시담론, 혹은 추상적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녕 제 3의 길이 될 수 있을까? 3. 루디 삼촌과 이해할 수 없는 예수 리히터 (1965) <루디 삼촌(Uncle Ludi)>은 리히터의 인간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부분을 특히 잘 투영한 작품이다. 배경과 사람을 흐려놓아서(경계 해체) 사람이 반투명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심령사진 같기도 하다. 사진 속 주인공의 복장을 보라. 저 코트와 모자는 당시 독일 나치 장교들의 복장이었다. 독일의 나치는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으며,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루디 삼촌(Rudolf Schonfelder)도 결국 나치의 일원이 되지만, 리히터의 눈에는 단지 그의 가족이자 삼촌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치 시대의 독일 군인을 생각하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무자비한 군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군인은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과 정다움이 느껴진다. 사실 리히터의 사진회화는 구체적인 과거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사화(歷史畵)’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서양미술사에서 역사화가 시민혁명 이전의 지배논리를 정당화하는 시각적 장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리히터의 사진회화는 전통적인 역사화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1977년에 있었던 테러리스트의 비극을 그린 〈1977년 10월 18일〉, 정신박약으로 나치수용소에서 살해당한 〈마리안네 아줌마〉, 나치즘에 부역한 사실이 발각되어 법정 앞에 선 〈하이드 씨〉, 경찰에 연행되어 가는 범인의 눈가리개를 강조한 작품 〈후드(덮개)〉, 시위 광경 사진을 그린 〈데모〉 등 40년 작업생활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리히터의 주제는 ‘사진 속의 역사’였다. 하지만 사진회화를 통해 리히터는 개인과 사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역사적으로 주어진 사실과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판단을 요구한다. 대립적 영역 사이에서 지난 역사적 사건을 진지하게 다시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김치파스타, 짬짜면,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정치 철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이데올로기적 함성을 듣는다. 그러나 리히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을 이해가 안 되게 묘사할수록 더욱더 훌륭한 그림이 된다.” 빌라도 앞의 예수는 오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주> 1. 게르하르트 리히터 : 1932년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1961년 서독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스탈린 체제와 나치즘의 영향을 받으며 예술가로 성장했다. 1950년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벨라스케스(D. Velazquez), 렘브란트(H. Rembrandt) 등의 고전주의 대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디에고 리베라(D. Rivera), 파블로 피카소(P. Picasso)에게 사사 받으며 전통적인 고전주의 회화 양식을 습득하였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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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30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②
    : 도마, 사진-신학(Photheology)의 세례요한 매화 절벽에 매화 한 그루 바위틈에 끼어 있구나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도 좋다하네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라네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란다네꺼꾸로 매달려도 제 멋 제 철을 못 이기어눈 쌓인 그 사이로 방긋이 피었구나멋없는 잣나무들이사 그 마음을 어이 안다하리 절벽에 매화 한 그루 바위틈에 끼어 있구나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도 좋다하네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라네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란다네 - 김인곤 작시, 김규환 작곡 1. 매화예찬: 부활 예수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매화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한다. ‘겨울철의 세 벗’이라는 뜻으로 흔히 한 폭의 그림에 그려서 ‘송죽매(松竹梅)’라고 한다. ‘지조 있는 선비인 군자’를 상징하기도 하며 ‘탄탄대로를 걷다 인생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변치 않고 찾아주는 친구’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세한삼우 가운데 매화와 대나무에 국화와 난초를 더한 것을 매란국죽(梅蘭菊竹)’이라고 한다. 이 4가지 초목과 꽃을, 기품이 있고 고결한 군자와 같다 해서 사군자(四君子)라고 한다. 이들은 춘하추동의 순서대로 이 험난한 한반도 땅에 피어나고 자라고 있다. 특히 사군자 가운데 매화는 다섯 장의 순결한 백색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며 그 모습이 애처로우나, 은은한 향기를 지녔다. 매화의 꽃말은 ‘인내, 품격, 기품’이라고 한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찬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한 성정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가는 선비의 의연한 자세와 닮았다 하여 군자의 꽃인 것이다. (경남의) 아이들은 눈치 밥 때문에, 어머니들은 가정 형편 때문에, 아버지들은 퇴직 때문에, 청년들은 일자리 때문에 이래저래 힘든 세상살이이다. 그럴수록 매화와 같은 고결한 지조로써 힘든 겨울을 이겨내는 강인함이 그립다. 외세의 억압에도 굽히지 않고 불의에 물들지 않으며 오히려 맑은 향을 주위에 퍼뜨리는 매화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순절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게 된다. 2. 아우라 없는 예수: 사진 신학(Photheology)의 세례요한, 도마 요한복음 20장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모임에 없었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도마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시켜 주시며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고 고백한다. 사진 미디어는 인간의 ‘감성적 측면’과 ‘이지적 측면’을 종합하는 기능이 있다. 만지고, 찍고, 보는 기능은 미디어의 감성적 측면이 강조되는 반면, 말하고, 전시하고, 회상하는 기능은 이지적 측면이 강조된다. 도마는 감성적인 인간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를 자신의 손으로 만져야말 했다. 또 눈으로 보아야 했다. 이런 감성적인 인간이었던 도마는 그의 복음서에서 감성을 넘어선 깨달음의 경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예수에 관한 전통적인 아우라(aura)가 벗겨지지만 또 다른 신앙의 신비를 우리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 114개의 어구로 이루어져 있는 <도마복음>은 동양적이고 신비적인 색채를 지녔다. 신약 성서의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예수를 신의 대변자나 신의 아들이라기보다는 깨달음에 이른 영적 스승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도마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자들 각자의 내면의 자각을 통해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곧,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중기만의 도구’로 대중문화를 비판했던 미학자 아도르노와 달리 발터 벤야민은 대중문화를 문명의 진보를 위한 도구로 본다. 따라서 벤야민은 사진 미디어를 통해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 기술과 마술, 현실과 초현실 간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데, 사진에는 일반 회화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베일에 가린 채 먼 곳에 놓여 있던 종교적, 권위적 및 전통적 아우라(벤야민에게 있어서 아우라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느낌, 작품을 대하는 주체가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종류의 거리이다)는 사진과 같은 ‘순간의 미학’에 의해 클로즈업되고 복제되어 만인에게 전시되고 공개될 때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가깝게 다가 온, ‘벗겨진 아우라의 새로운 현실’은 또 다른 신비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일방적이며 폐쇄적인 전통적 아우라는 사라졌지만, 사진 미디어를 통해 도달한 경험 세계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현실과 추상 간의 긴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우라란 예술 작품이 원본이라는 대상적 속성과 결부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예술 작품을 대하는 주체의 주관적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성이 이지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을 깨달음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도마는 사진신학의 세례요한이다. 그에게서 우리는 아우라 없는 예수를, 그러나 나만의 예수를 발견하게 된다. 3. 매화 예수 2000년 전 부활하신 예수는 김인곤의 시와 같이 절벽 바위 틈 매화 한 그루의 모습에서 세상 죄 지고 가신 어린양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혹은 세상을 비껴 서서, 사람을 굽어 보는 매화에게서 우리는 도마가 들려주는 예수의 진솔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눈 쌓인 바위 틈으로 방긋이 피어나는 매화는 십자가 고난을 이긴 부활의 예수를 우리들에게 그려준다. 인생의 험난한 길을 걷다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변치 않고 찾아주는 친구인, 아니 아예 죄인들의 친구인 예수는 매화를 통해 우리들에게 변치 않고 다가온다. 자, 지금 그 순간을 찍을 준비가 되었는가? 늦으면 늦으리!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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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02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①
    : 사진-신학(Photheology) 선포 1. 겨자씨와 ‘사진 한 장’“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마가복음 4:30-32).”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요단강 북쪽 강가에 많이 자라는 식물인 겨자씨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고 있다. 정말 자세히 보아야 보일 정도로 작은 씨인데, 일단 자라기만 하면 7m까지 자라, 새가 둥지를 틀 정도로 큰 나무로 자란다. 보잘 것 없는 작은 겨자씨 하나에 놀라운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겨자씨는 새의 모이이다. 먹잇감인 것이다. 이러한 먹히는 생명이 자라 자신을 먹이로 삼는 새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시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이 겨자씨의 비유로, 원수까지도 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여기 사진 몇 장이 있다. 그저 그런 사진 몇 장, 그러나 그 한 장의 사진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겨자씨와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 사진 한 장이라는 보잘것없는 도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진-신학(Photo+Theology)은 사진 한 장에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여 신학적 사유의 풍성함과 신앙의 깊이를 다시금 고민하는 것이다. 인류를 사랑하시고,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 그 모진 고통을 받으셨으나,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흔적들이 담겨져 있는(혹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사진 한 장은 신앙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뒤흔들 것이다. 일찍이 “사진은 아우라를 재현할 수 없다”고 말한 발터 벤야민(W. Benjamin)은 이렇게도 말했다. “20세기의 문맹은 사진을 모르는 사람일 것”, 그러나 사진-신학은 이렇게 말한다. “21세기의 신학과 신앙인은 사진 속에서 신학적 의미를 읽어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2. 사진 인문학부산외대 이광수 교수의 사진에 관한 책인 『사진 인문학』 (알렙, 2015)을 보면 ‘사진이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라고 한다. 어떤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진은 나올 수 없기에 맞는 말이다. 따라서 카메라 앞에 반드시 뭔가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사진은 시간을 담는 매체가 된다. 모든 대상은 사진 속에 담기는 그 순간부터 과거에 박제된다. 그때 그 시간은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고, 그래서 지금 현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곧, 사진 속으로 들어간 모든 시간은 과거에 묶여버린다. 수잔 손탁(S. Sontag) 역시 이렇게 말한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닌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 놓은 것이고, 그래서 사진은 ‘기억’을 하기 좋은 매체”라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전해준 구원의 사진첩이다. 창조로부터 타락, 회개와 구원의 길에 대한 모든 순간들이 역사의 현장에 사진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것을 기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결과 무늬가 갈라지는 것이다. 이광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과 같이 시간, 존재, 재현 등에 관한 다양한 시선과 그것을 둘러싼 권력과 맥락을 포함하는 매체는 인문학의 향연을 펼치기에 매우 적합하다. 정해진 해답이 없고, 옳고 그름도 없으며, 접하는 사람에 따라 생각을 달리하고 그 가치를 달리 부여할 수 있는 사진이란, 인간 정신을 상실해 가는 이미지가 범람하고 복제가 만능인 21세기라는 시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문학의 보고”라고 한다. 사진에 관한 시각과 관점은 롤랑 바르트(R. Barthes)의 풍크툼(punctum)과 스투디움(studium)의 개념을 알고 구분할 때 풍성해진다. 풍크툼은 라틴어로 점(點)이라는 뜻이며, ‘해독하기 힘든 개별적인 효과’를 말한다. 곧, 화살처럼 꽂혀오는 어떤 강렬함을 뜻한다. 가령, 한 장의 사진이 뾰족한 창처럼 나를 찌르고, 나를 상처 입히고, 나에게 얼룩과 흔적을 남길 때 우리는 풍크툼의 효과를 느낀다. 반면, 스투디움은 ‘일반화된 상징’을 뜻한다. 성서 한 구절이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고 부숴 심령이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영으로 지배받는 것처럼 한 장의 사진 역시 풍크툼으로 우리 존재를 흔들 것이다. 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R. Guha)는 ‘서발턴(subaltern, 소외된 하위 계층 사람들 곧 하위주체)’이라는 하층민의 역사를 통해, ‘작은 사건’이 어떻게 ‘큰 역사’에 묻혀버리는지 탐구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작은 사진 한 장’이 때로는 ‘역사의 큰 증언’이 될 수 있다. 가령 다큐멘터리 사진 한 장은 ‘현존을 증언’하기 때문에 역사로서의 사진의 본원적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과 같이 사진은 그 초창기 역사에서 제국주의의 식민 침탈의 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은 서양 지배자들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지를 과학적으로 재현하여 실증적으로 보여주는데 다른 어떤 매체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과학은 어느덧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대접받았고 그 과학의 총아가 사진이었다. 그래서 식민 지배 초기에 아시아로 온 유럽의 많은 식민 지배자들은 식민지 곳곳을 사진으로 남겼다.3. 사진-신학바야흐로 사진 인문학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 신학은 사진이 존재의 본질과 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찰나를 신의 이름으로 기억해 내고, 그 사진에 신앙의 깊이를 새겨 넣어야 할 것이다. 이제 카메라를 들고, 현실의 냉혹함을 넘어 존재의 신비를 찾으러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찰나의 의미를 영원의 뒤안길에 소식전할 메신저가 될 수 있을진저!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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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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