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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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을 통한 이단들의 미혹이 심각하다”
    Q. 코로나 이후 이단들의 동향이 궁금합니다. A. 디지털 환경을 이용한 이단들의 홍보 및 포교활동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활발한 온라인 활동을 펼쳐온 이단들은, 포교, 세뇌, 통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사이버 공간 속에 구축하고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 등을 통한 온라인 비대면 예배를 마치면, 손에 들린 핸드폰을 통해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디지털 세상에는 유익한 사이트나 동영상도 많지만, 위험천만한 미혹의 덫도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설령 이들이 내 곁에 있더라도 영적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온라인을 통한 이단들의 미혹이 심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Q. 대구 신천지 집단 감염 사건 이후 몸을 낮추던 신천지가 최근 눈에 띄게 공개적인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포교활동을 강화하고 있는지요? A. 지난 3월 말부터 이만희 교주의 특별지시에 따라, 신천지 12지파는 ‘적극적인 비대면 포교’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신천지가 발간한 「안녕하세요 신천지입니다」라는 홍보책자에는, '방역 수칙 준수' '혈장 공여' '신천지자원봉사단'을 선전하는 내용과 함께, '온라인 신학' '온라인 수료식' '온라인 예배' '온라인 기도회' '인터넷시온선교센터' 등의 비대면 온라인 포교, 교리교육, 신도통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현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자에 적힌 “이제 장소와 시간에 제약 없이 생명의 말씀이 당신을 향합니다!”라는 신천지 홍보 문구를 읽으면서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최근에는 각 교회 요람을 확보하라는 지도가 내려졌고, 신천지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에 담는 비디오와 블로그의 합성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신천지 청년이 하루의 일상을 재미있게 편집해 보여주면서, 신천지 신도들도 평범한 이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모략포교가 오픈포교로 전환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Q.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이단들의 해외 활동이 여전하다고 염려합니다. A. 소위 K이단들의 해외 진출과 활동이 여전히 활발합니다. 해외의 선교사님들과 이민교회에서 이단문제를 만나게 되면, 고립감과 막막함이 가장 먼저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대처의 한계로 인해 좌절감과 패배감에 빠져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게다가 국내와는 달리, 전문단체나 공권력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고, 이단 단체들의 영향력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도리어 추가적인 피해를 입는 억울한 일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역별 한인교회협의회나 선교사연합회가 있는 곳들은 연합적인 대처가 가능하지만, K이단들의 세력이 강한 남미, 아프리카, 동유럽, 동서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단대처 없는 해외선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K팝과 K문화로 중무장한 이단들의 친절하고, 친밀하고, 치밀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최근 「현대종교」에서 『한국어·영어·중국어로 간추린 이단바로알기』 eBook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습니다. 해외 이민교회와 선교사님들의 복음전도와 선교를 위해서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참조해주셨으면 합니다. Q. 온라인 이단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예방 및 대처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요? A. 이단은 ‘친절’하게 다가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후, ‘치밀’하게 미혹합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해 활동하는 이단들에 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온라인 이단의 위험성과 심각성은, 기존의 이단문제와 비교할 때, 그 파급력과 파괴력 면에서 결을 달리합니다. 온라인 이단 대책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먼저 온라인 이단들의 활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가 원한다면, 밤낮없이 접촉이 가능하다. 해외에 유학을 가있거나, 심지어 군복무 중이라도 언제든지 미혹과 통제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온라인 이단들의 콘텐츠는 대부분 소위 고퀄리티입니다. 더 이상 정통이라는 미명하에 허접한 콘텐츠를 강요할 수는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특히 다음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완성도 높고 세련된 온라인 신앙교육 및 이단대처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Q.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이단 대처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A. 향후 디지털 환경을 적극 활용하는 이단들의 포교와 교육, 통제가 더 광폭 행보를 보일 전망입니다. 하지만 최근 교회의 사회적 고립을 지켜보면서, 다종교 한국사회에서 이단과 교회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구한말 콜레라 역병을 퇴치하기 위해 앞장섰던 교회가 민족의 소망으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이단과 코로나 역병의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한 한국교회의 선한 영향력 확산과 순기능 회복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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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1-06-10
  • [대담]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이 이 시대에 큰 울림이 되길”
    일시 : 2021년 5월 14일(금) 오전 11시 장소 : 산돌손양원목사기념관 대담 : 이성구 목사(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회장) 박유신 목사(손양원기념관 관장) 사회 : 신상준 편집국장 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회장 이성구 목사, 이사장 정주채 목사)에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을 기념하며 ‘사랑과 애국정신’이라는 주제로 ‘손양원 UCC 및 손양원 독후감 공모전’을 개최한다. 또 오는 6월 6일 기념감사예배를 가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산돌손양원목사기념관에서 이성구 목사와 손양원 목사의 외손자이자 애국지사손양원기념관 관장 박유신 목사을 만났다. 신상준(이하 신) :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사실은 작년 9월)이 됐다. 70주년을 기념해서 손양원목사기념사업회에서는 어떤 사업들을 준비 중에 있는가? 이성구(이하 이) : 손양원 목사님은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는 분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세계 교회 역사에도 남을 분으로 평가된다. 해외에서 그 분의 일대기를 소개하면 믿지 못하고 그것이 사실이냐며 반문할 정도다. 우리가 너무 홀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 분의 정신이 계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70주년을 맞아 큰 행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멈추지 않아 여러 가지 계획들을 축소하거나 연기해왔다. 오는 9월 28일이면 손 목사님 순교 71주년이 되는데, 그 전에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결정하고 이번 6월 6일 현충일에 순교70주년기념감사예배를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대면하지 않아도 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일을 계획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서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지 않나. 그래서 UCC 동영상 공모전과 독후감 공모전을 개최하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지금 우리 삶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준비했다. 신 : 많은 분들이 손양원 목사라고 하면 여수(애양원)를 떠올린다. 고향이 이곳 칠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이곳에 손 목사님의 생가 복원과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박유신(이하 박) : 기념관이 있는 이곳이 손양원 목사님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기념관 입구에 손 목사님의 생가를 복원했다. 사실 이 생가 터는 기념관이 생기기 전에 가축사육장으로 변해 있었고, 칠원교회에서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손 목사님의 생가 토지를 매입했다. 손양원 목사님의 모 교회인 칠원교회가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빚을 지면서도 생가터 400평을 매입했다. 이를 알게 된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가 그 부채를 담당하면서 기념관 건립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경남 함안군과 손양원기념사업회에서 50억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지금의 기념관을 개관하게 됐다. 이 : 손양원 목사님을 추모하며 기념사업 등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지만 구심점을 갖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이뤄졌었다. 김삼환 목사님을 중심으로 기념사업회로 모임을 가져오다가 이만열 장로님이 사업회를 새로 조직하기로 하고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로 조직됐다. 그렇게 조직된 기념사업회와 칠원교회, 함안군에서 마음이 맞게 됐다. 당시 함안군수 하성식 군수가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알게 됐고, 함안을 빛낸 인물로 인정하면서 손양원기념사업에 적극 나서게 됐다. 사실 하 전 군수는 불신자다. 작은 한 교회, 몇 사람,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불신자가 합작해서 탄생한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정신이 전해지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것 같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신 : 손양원 목사님하면 크게 세 가지가 생각난다. 애국지사 손양원, 애양원에서의 삶,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용서와 화해의 삶’ 등이다. 각각의 삶을 조명해본다면. 박 : 손양원 목사님을 언급하기 전 손종일 장로님에 대해 먼저 언급해야할 것 같다. 손양원 목사님의 아버지인 손종일 장로님은 경남 함안군에서 3.1만세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지사셨다. 함안군에서도 손 장로님에 관심을 갖고 손양원 목사님의 추모사업을 진행한 것 같다. 손양원 목사님이 손 장로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손 목사님이 현 칠원초등학교인 칠원 보통공립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전교생에게 동방요배를 시켰다. 그 때 손 목사님 혼자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가 퇴학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은 1937년 동아일보에 나게 된다. 애국지사 손종일 장로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그 정신을 배워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나선 것 같다. 저는 개인적으로 집안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심과 애국심도 남달랐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따라한 것 아닐까. 저의 어머니 손동희 권사님께 듣기로는 손 장로님의 성격이 불 같았다고 한다. 그 불이 신앙에 붙으면서 신앙심도 불처럼 뜨거웠다. 이 : 저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지만 꽂힌 게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꽂혔던 것 같다. 그것이 일관성 있게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하고 6.25때 피난가지 않고 나병환자들과 함께 있도록 한 게 아닐까. 손 목사님은 49세에 돌아가셨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그런 마음이 일찍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 : 그리고 손 목사님이 부산 상애원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다. 그때 매견시(메켄지) 선교사 목사 밑에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제가 어린 시절 나병환자가 있는 곳에 가서 추도예배 등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나병환자들의 피고름 냄새가 멀리까지 퍼질 정도로, 악취가 났었다. 역한 냄새에 간호사들도 힘들어 할 정도였다. 손 목사님은 상애원에서 7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매견시 선교사가 나병환자를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 목사가 바로 저런 분이구나, 나도 저런 목회자가 돼야 겠다’라는 것이 형성됐다고 한다. 신 :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는다는 것이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이 어려운 일이다. 이 : 1948년 10월 손동인, 손동신이 순교했다. 그 때 당시 애양원 교회에서 이인재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손 목사님도 처음 두 아들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인재 전도사는 손 목사님이 신사참배반대로 감옥에 함께 수감됐었던 분이다. 이 목사님이 손 목사님에게 ‘우리는 과거 감옥에서 순교도 못하지 않았는가. 아무나 할 수 없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좋은 일이니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박 : 경남성경학교(고신대 전신)에서 손양원 목사님이 공부할 때, 주기철 목사님을 처음 만났다. 제 어머니에게 듣기로는, 손 목사님이 아내에게 “주기철 목사님이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잘 먹고 잘 살려고 믿는 게 아니라 잘 죽으려고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을 잡아야 된다”는 강의를 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고 한다. 손 목사님이 순교에 대한 정신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순교 자체를 흠모한 것 같다. 이 : 손 목사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만났던 이 분들에 의해 신앙이 형성된 것 같다. 신 : 한국교회는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2021년 1월 발표한 한국교회 신뢰도가 21%인데, 이 중 비개신교인만 살펴보면 9%다. 말 그대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때 손양원 목사님의 삶이 우리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다. 이 : 손양원 목사님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 중 하나가 언행일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거대 담론이 필요하다. 지금 불신의 사회가 됐다. 한국교회가 이때에 모든 주제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로 담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정의를 말하지만, 사랑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누구에게만 적용하는가. 원수에게는 정의롭고, 남을 죽이는 일에만 정의를 말하지 자기 자신은 정의와 전혀 상관없다는 듯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 십자가의 사랑이 필요하다. 자기를 희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이 있어야 공평한 정의가 실제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실제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아예 재껴두지 않나. 교회도 분열이 일어나고 교회 안에서 다툼,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손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손 목사님만 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뻔히 알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교회는 손양원 목사님의 원수를 품었던 사랑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사랑을, 사랑의 민족이 되도록 거대 담론을 펼쳐가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손양원 목사님의 겸손, 용서, 희생정신은 다 사랑이 있었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셨다. 사랑 없는 믿음, 사랑 없는 소망은 진정한 믿음, 소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을 빼면 모든 좋은 말도 헛말이다. 그래서 손 목사님의 정신이 이어지길 바란다. 신 : 경남에는 칠원에 손양원목사기념관, 그리고 진해 웅동에 주기철목사기념관, 마산에 호주선교사기념묘원이 조성돼 있다. 이 세 곳을 성지순례 코스로 잘 조성하면 한국교회에 의미 있는 명소가 될 것 같다. 그런 노력이나 계획이 있는가? 이 : 이사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3곳을 한 번에 돌아 볼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 중 하나는 손 목사님이 피난을 위해 배를 탔다가 애양원의 사람들 생각에 배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 모습을 이곳에 추가적으로 구현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박 : 손양원목사기념관은 1년에 3만 명이 방문한다. 이곳은 함안 최고의 관광지다. 함안의 의지와 정책이 맞물린다면 더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양원기념관은 건축상을 받은 곳이다. 예전에 어머니 책이 ‘The seed must die’라는 이름으로 번역돼 소개된 적이 있다. 이후 해외에서 이게 사실이냐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기념관 방문자는 처음 15분짜리 영상을 보게 된다. 영상 후 제 소개를 하면 사람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더라. 손양원 목사님의 외손자인 제가 관장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신 : 바쁘신 가운데 대담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정신이 한국교회를 다시한번 변화시키기를 기대해 본다. 정리 : 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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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담/대담
    2021-05-21
  • “자유 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일한다”
    Q. 부산자유기독인연합회를 새롭게 출범했는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2020년 10월 하순에 기독자유연대라는 이름으로 발대식을 했습니다. 조직하게 된 동기는 3.1운동 정신으로 건국한 대한민국이 이 정부 4년 동안에 정치, 경제, 안보,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국민적 파열음이 생기고, 위기의식이 고조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전체주의, 공산주의 국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또 ‘예배허가제’의 발언으로 교회가 위기감이 조성되고, 코로나로 인한 교회의 존립위기가 고조되면서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와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교 130년이 지났지만, 지금처럼 교회에 대한 혐오감이 고조되고, 전도의 문이 막혔을 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나라가 힘들 때 마다 교회가 한 긍정적인 역할들은 사라지고, 지금은 혐오시설로 취급당하는 분위기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Q. 그동안 다양한 활동들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먼저 우리 자유기독인연합회는 세 가지 행동강령으로 움직입니다. ‘첫째,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부산을 사랑하는 기독인들이 자발적으로 연합하여 부산자유기독인연합회를 조직한다’ ‘둘째,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며 언론 출판 결사 인권을 존중하는 국민 행복 추구의 국가 발전과 부울경발전에 최선을 다하여 봉사한다’ ‘셋째 우리는 상호 존중하는 품위와 질서를 존중하며 부산시정발전과 지역선교에 적극 협력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등입니다. 행동강령 이외에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결속 할 때, 때마침 4.7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이때 회원들이 약 450명 정도의 목사, 장로, 집사, 권사들이 결집해서 미력하나마 행동강령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또 지역개발사업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들을 위해 시와 시의회에 건의와 항의를 하면서 부산시조례 등을 새롭게 개정하도록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각지대에 있는 미자립교회나 개척교회, 임대교회들을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Q.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기존 연합단체사업과 겹칠 수 있지 않은지 우려됩니다. 그리고 기존 연합단체와 함께 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우리는 교계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사업도 기존 부기총, 성시화, 부교총이 하는 일에 절대 겹치지 않도록 할 생각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행동강령에 맞는 일과 기독교의 위상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갖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위치한 교회들을 위해 일할 겁니다. 하지만 연대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손을 잡고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Q. 재건축, 재개발로 교회들이 강제철거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나 임대교회들의 피해가 크다고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A. 부산자유기독인연합회 내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습니다. 타 도시의 자치단체에 조례를 살펴보고 있고, 종교기관이 소외를 당하지 않도록 조례 문안을 만들어 부산시의회에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 전문가를 초빙해서 지원하는 방안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시의회 의장을 만났고, 해당지역 구청장들과의 면담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산시장도 만나 저희들의 주장을 강력하게 건의할 생각입니다. Q.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까? A. 대부분 목사,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회장단에는 각 교단의 어른들로 구성되어 있고, 실무임원진에는 젊고 유능한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교단이나 교파를 초월해서 자발적으로 참여를 원하는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앞으로 전체 총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합니다. Q. 일부에서 정치단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A. 지금까지 기독교 단체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비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색깔이 있다’는 지적과 ‘또 하나의 연합기구를 탄생 시켰다’는 비판은 겸허히 받아 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때보다 교회가 위축되고, 전도의 문이 막힌 상황에서 우리도 (교회의)생존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회원들이 정치를 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지도자, 자치단체장, 시의원 같은 공직자들이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이념을 가지고,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게 목소리를 낼 것이며, 큰 교회가 아니라 작은교회, 개척교회, 임대교회들이 소외받지 않고, 스스로 복음을 잘 전파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돕는 단체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기도와 협력을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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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1-05-20
  • 부경대 29년 재직, 미래수산식품 연구자 남택정 장로
    남택정 장로(부산서문교회 원로)를 지난 4월 경 부산 중앙동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쉽게 말해서 앞으로 100세대 시대 곧 4차 산업혁명 바람이 수산산업에도 불어닥칠 것에 대응하기 위한 ICT융복합 수산식품가공 핵심기술 개발과 이에 걸맞는 인재를 양성하는 미래수산식품연구센터를 부경대에 유치하여 퇴직 후에도 계속하여 첨단기술 개발연구와 인재양성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기술이 우리 건강과 기호에 맞는 수산식품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하고 모교 대학에 ‘미래수산식품연구센터’ 연구책임자를 맡아 연구하는 식품공학계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꼽고 있는 남택정 장로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5형제 중 맏이로 자라나 집안에서 가장 늦게 예수를 믿게 되었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바른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문무성의 초청으로 4년간(85년~89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일본 국비 장학생으로 박사과정을 이수하여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고 1990년도부터 모교 부경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였다가 2019년 8월에 퇴직을 하였다. 남 장로는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에 어느 누구 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많은 연구비를 정부로부터 받아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였으며, 우수한 많은 제자 연구원들이 연구에 참여하여 함께 땀 흘리며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르겠다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4년마다 개최하기에 세계수산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제7회 세계수산회의’를 2016년도에 부산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유치위원장직과 조직위원장직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룰 수 있게 하나님의 간섭들이 순간순간 있었음을 간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같은 해에 부산시 문화상도 수상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연구성과를 인정 받아 2019년도에는 우리나라 석학들의 모임인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와 대화하는 동안에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이다. 예장합동 측 동부산노회 산하 부산서문교회에서 20여년간 장로로 시무하고 동부산노회 장로회 회장과 남전도회연합회 회장 까지 역임했으며, 장로 은퇴 나이 70세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조기 은퇴하여 원로로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누구나 남 장로를 볼 때면 첫 인상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그것이 몸에 베여 있어 천생 ‘샌님’이라는 느낌이 풍기는 외모에 가식이 없는 모습으로 모두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외유내강의 성격에 불의와 부정은 타협하지 않는 곧은 성격에서 때로는 손해를 볼 때가 많다고 한다. 어머니의 믿음과 기도로 오늘날 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남 장로는 “늘 어머니의 기도 덕분으로 자라왔다”며 어머니와의 시간들을 회상했다. 결혼 후에는 집사람(김미영 권사)의 기도와 바른 신앙의 내조가 그냥 앞만 보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는 대학시절에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와 저희 집사람, 그리고 외할머니, 이 세 여성의 기도 덕분에 오늘의 자리를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새로 나온 과일들을 사올 때면 목사님을 위해 하나 더 사가지 오셔서 목사님의 서재실 앞에 갖다 놓고 오시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목회자를 섬기는 모습이 대단했다는 것을 교인들의 입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남 장로는 1974년도에 부산수산대학을 지원했고, 100세 시대를 내다보며 수산물이 건강식품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고 수산식품영양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적중했다. 그래서 지금 맡고 있는 “미래수산식품연구센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지금은 온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식사하는 것조차도 제대로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하는 고독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길들여지고 있다. 남 장로는 변화되는 식생활에서 개인 맞춤형 식단을 만들어 조리할 수 있도록 식품제조기계 또는 간편식 조리기구가 발명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3D프린터로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과거에 프린트는 종이에 글씨를 인쇄하는 것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입체 모형까지 만들어내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실용되어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3D식품프린팅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소비자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또 개인에 맞게 기능성을 부가하여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인공지능 시대가 될 테인데, 개인의 영양정보를 빅데이터화 하여 인공지능으로 분석해서 개인에 맞는 식단을 추천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3D프린터가 음식을 제조할 것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구를 남장로 연구팀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많은 기대가 된다. 국내에서는 부경대학교가 수산식품 가공핵심 기술개발로서는 독보적이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관심을 모아지고 있으며, 또 대학에서 남 장로가 퇴직 후에도 ‘미래수산식품연구 센터장’의 책임자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도 했다. 신기술의 고부가가치가 한국 식품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려 일으킬 인물이라는 점에서 후배 인력 양성을 위한 중요한 자리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건 사장 이에 남 장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하는 아내와 여러 선후배 장로님들의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그의 교회와 가정, 직장인 부경대 후배 교수들의 헌신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향후 우리나라의 수산업 기술이 세계 식품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 게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 장로는 이 일을 위한 연구에 나이를 초월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몰두하고 있다. 교회 선임장로직에서 조기은퇴를 하고, 노회에서 장로 부노회장이 될 수 있는 인물이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기에 그것에 매진하고 싶은 뜻으로 생각된다.
    • 인물
    2021-05-07
  • “재개발문제에 교회의 생존권이 달려 있다”
    먼저 중부산노회 재개발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 박은수 목사 : 우리 노회 산하 4개 교회가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피해를 입게 되었다. 늘푸른교회, 양정로교회, 부암목양교회, 주안교회 등이다. 이중에는 강제집행 당한 교회도 있고, 현재 소송중인 교회, 또는 조합측과 협의해서 이주한 교회들도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사업 등으로 종교시설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교회들의 피해가 크다고 하는데... - 박은수 목사 :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겪어오면서 교회는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또 학교와 병원을 지어 지역사회에 교육과 구제, 보건, 문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봉사를 해 왔고, 무엇보다 윤리적 규범 제시 등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큰 힘이 되어 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도시균형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사업’ 등으로 교회들이 강제로 이전하거나 철거해야 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오래된 교회의 경우 50년에서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건축)당시에는 잘 지은 건물들이었으나 지금은 (건물이 오래 되었기 때문에)보상이나 감정이 잘 나오지 않는다. 감가상각만 하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사찰의 경우 보전해야 될 가치(문화재)가 있다는 이유로 절대 손을 못된다. 교회가 오랜 시간 동안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왔지만, 사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현재 도시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의 상황은 어떠한가? - 박근래 목사 : 작년 2월 법 개정으로 토지확보율 60% 이상만 되면 사실상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개인의 경우 현금보상과 분양을 택할 수 있는데, 종교시설의 경우 현금보상을 위주로 하고 있다. 우리(양정로교회)의 경우 대토를 원하고 있다. 그 지역이나 아니면 그 근처에 조합측이 땅을 마련해서 교회를 이전하는 방법이다. 기존 성도들을 편의를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조합측은 대화 자체도 나서지 않는다. 소송을 통해 사업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지만, 승소는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물론, 모든 조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화에 나서는 조합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재개발 지역 내 종교시설(교회)은 언제든 강제철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건물이나 땅을 갖고 있지 않은 임대교회들도 많이 있다. 이럴 경우 임대교회들은 어떻게 되나? - 박근래 목사 : 자기 건물이 아니더라도 일부 사업자들은 매출증명을 하면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교회는 비영리기관이 아닌가? 법적으로 보상을 받기 힘들다. 지역에 따라서 이사 지원금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 한다. 일부 교회들은 인테리어나 부대비용 등이 들어갔겠지만, 보상을 받기 힘들다. 임대교회가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 부산지역에 대략 몇 개 교회가 이 정비사업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나? - 박은수 목사 : 재개발지역마다 교회가 포함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만큼 교회는 우리사회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처음에는 약 400여개 교회가 이 문제에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부 (재개발)사업들이 철회되면서 지금은 200여 교회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보나? - 박은수 목사 : 규모가 작은 교회, 임대 교회들의 경우 생존의 문제다. 일부 교단들은 자체적으로 세미나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준비를 해 오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사업’은 지역사회의 문제다. 각 지역에서 대표적인 연합기구들이 힘을 모아 대책기구를 마련해야 되고, 시와 구청과 대화를 통해 지역사회의 종교시설들이 소외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두 개 교회가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지역사회 전체 교회의 관심과 기도가 필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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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1-05-04
  • 라이온스 인도주의상에 선정된 고신대복음병원 최영식 병원장
    Q. 이번에 국제라이온스협회 ‘라이온스 인도주의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셨다. 소감을 부탁드린다. A. 개인적으로 의료봉사를 많이 해서 준 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해 복음병원 70주년이고, 의과대학이 40주년이 되는 해다. 장기려 박사님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저희 병원이 해왔던 의료봉사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Q. 라이온스 인도주의상은 어떤 상인가? A. 사실 저도 상을 받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국제라이온스협회는 1917년 미국 시카고 사업가인 멜빈 존스가 ‘성공한 사람들의 사회봉사’를 촉구하며 창설한 국제적인 단체다. 200여 개국 4만 8000개 클럽에 유력한 실업가, 직업인 등이 회원으로 있는 세계 최대규모의 사회봉사단체다. 라이온스 인도주의상은 라이온스협회가 전 세계에 인도주의 활동을 실천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이번에 48번째 수상자로 선정됐고 우리나라에서는 3번째로 수상하게 됐다. 마더 테레사 수녀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낸시 레이건 여사, 세이브더칠드런 등이 수상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 가천의대 길병원 이길여 이사장이 수상했다. Q. 수상자로 선정된 배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처음 우리 병원에서 추천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다른 분들을 추천했었다. 그래서 제가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했을 때 제 개인보다는 지금까지 봉사해왔던 병원 전체에 주신 상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봉사활동을 했다. 국내에서는 다문화가정 어린이 검진과 한국문화 전파활동, 독거노인 무의촌 진료, 도서산간 무의촌 진료 등을 해왔다. 해외에서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봉사했다. 2010년 이후 현지 병원 및 의과대학과의 진료협약을 통해 해외거점병원을 두고 활동을 시작했다. 페루와 아마존, 필리핀 뚜게가라오 지역 등에서 의료봉사활동이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왔다. 저도 필리핀에 의료봉사를 갔을 때 갑상선에 이상이 생긴 환자들을 많이 봤다. 우리나라의 경우 요오드 과잉으로 인한 증상이 많은데 필리핀에는 요오드가 부족해서 생긴 증상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함께 했던 의료진들과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고 의료학술지에 SCI에 논문을 쓰게 됐다. 이런 점들을 높게 평가받은게 아닌가 생각한다. Q. 실제로 고신대복음병원과 의대에서 의료봉사를 많이 해오고 있고 의료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 고신의대로 알고 있다. A. 고 장기려 박사님의 정신을 계승해오고 있는 복음병원은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국내외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다.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병원의 교직원들이 아프리카 말라위,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미 페루,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 의료가 낙후된 해외 제3세계 지역민들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개교회가 단기의료선교를 다녀오면 이후 현지인들에게 약 처방 등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종기나 상처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 외 약 진단에서는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을지는 미지수였다. 그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기획실장이 됐을 때 거점병원을 통한 의료봉사를 제안했다. 당시 이상욱 병원장님과 필리핀 뚜게가라오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인 피플제너럴병원, 가가얀 의과대학과 협약을 체결했다. 필리핀 외 아프리카, 동남아 지역 현지 병원, 의대와의 협약을 통해 해외거점병원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시적인 의료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술교류와 현지 의료인 양성, 상화 환자협진, 의약품 및 의료기기, 의료기술 등을 지원한다. 현지 선교사들의 활동에도 좀 더 효과적으로 돕고 있다. Q. 앞으로 계획된 봉사활동이 있다면? A.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예전처럼 찾아가서 봉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국책사업 과제를 통해 부경대, 포항공대, 울산과기원(UNIST) 등과 함께 스마트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LG전자를 비롯해서 얼마 전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메쥬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AI(인공지능), IT(정보기술)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과 MOU를 체결하면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로써 선교사가 있는 현지의 환자를 비대면 원격 진료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준비하게 하신 것 같다. 곧 병원장으로서 임기가 끝이 난다.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선교에 헌신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있다. 이후로도 고신대복음병원의 의료를 통한 봉사활동은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받은 상금 25만 달러 전액을 제3세계 의료봉사를 위해 쓸 생각이다. Q. 장기려기념사업회의 부이사장을 맡고 계신데, 관련 사업들이 있는가? A. 장기려 박사님과 함께 전영창 선생님도 기억해야 한다고 본다. 전 선생님은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 구호기금을 가지고 오셨고, 그것으로 천막병원이 만들어져 장기려 박사님께서 진료를 시작하셨다. 올해 병원 설립 70주년을 맞았다. 그래서 병원을 설립해주신 분과 병원을 아껴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을 모시고 70주년 행사를 하려고 계획했지만 할 수 없게 됐다. 이후에 전영창 선생님과 장기려 박사님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분들을 위한 일들이 있길 바란다. Q.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됐다. 이 일로 3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다. 고신대복음병원의 70년, 의과대학의 40년, 개인적으로도 이곳에서 학생 때부터 복음병원의 의사로, 교수로 있으면서 4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광야와 같은 시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라고 느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셈법이다. 최근 어려움을 겪던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병원비 전액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이것에 대한 하나님의 셈법이다. 마지막으로는 축복의 통로다. 그동안 고신대복음병원이 해왔던 의료를 통한 봉사활동들이 선교사들과 현지인들이 위로가 됐길 바란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을 다시 알게 됐다. 대담 신상준 편집국장 사진 및 정리 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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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천파워
    2021-04-23
  • “신바람 나는 YMCA를 만들겠습니다”
    Q. 지난 15일 신임이사장으로 취임하셨다. 소감을 부탁드린다. 정성규 이사장(이하 정) :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팬데믹 상황에서 부산YMCA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많은 생각을 했다. 개인적인 소감은 영광되고 기쁘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책임감이 크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은 특정 단체가 시민운동이나 정책 등을 추진하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가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면 그것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시민들이다. 이사장을 맡고 가장 먼저 생각했던 방향이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표준에 따라 부산시민들에게 정책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전문 지도력을 갖춘 분들과 논의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자 한다. Q. 이사장으로서 중점을 둔 사업이 있다면? 정 : 취임사에서도 밝혔지만, 부산YMCA가 해왔던 생명과 평화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아래 3가지 과제를 정했다. 첫째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 개인이 가진 개성들이 YMCA라는 조직 아래 함께 노력하고 소통하면서 신념과 철학이 하나가 된 역동성 있는 운동을 전개하고 싶다. 두 번째는 연대의 정신이다. YMCA는 세계적인 기구다. 모든 나라와의 소통은 쉽지 않지만 동아시아 해양도시들과 소통하는 것은 가능하다. 자국의 이익을 넘어선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두고 국제적 연대가 실현할 수 있도록 부산YMCA가 주도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 세 번째는 공동체의 연속성이다. 국가나 사회, 어떤 조직이든 지속가능해야 한다. 부산YMCA에서 회원으로 20년간 활동하면서 이를 위해 논의하고 대책을 세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재정적 안정, 회원의 안정, 조직의 안정이 완전하지 못하다. 임기 중에 조직의 실질적인 안정을 위해 실무진과 함께 재정 및 조직의 개선, 성과제 도입 등 혁신적인 방안으로 영속적으로 조직으로 봉사하는 기반을 조성하겠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부산YMCA에는 150여 명의 직원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큰 틀에서 시민운동가라는 자아실현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싶다. 완전하진 않겠지만 직원들이 행복한 YMCA를 만들고 싶다. Q. 부산YMCA가 기독교사회운동의 맏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점 역할이 약해진 것 같다는 평이 있다. 오문범 사무총장(이하 오) : 지난해부터 교계와 다시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고민해왔다. 기독교 사회선교기관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 낸다면 더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교회와 협력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을 위한 사역이다. YMCA가 가진 청소년 상담, 신앙적 고백 속의 자기계발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사회복지영역에서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을 많이 하지만 작은 교회는 그것도 어렵다. YMCA의 노하우를 공급해 교회가 지역사회를 잘 섬기고 소통할 수 있도록 기획했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시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TF팀을 구성했다. 만남이 힘든 때라 어려움이 있지만 필요하다면 교회연합체와 협의를 해서 제공하려고 한다. Q. 시민사회에서의 YMCA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 : 90년대 초반까지는 Y가 시민사회 허브역할을 했지만, 이제 환경적으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광우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시민사회단체가 플랫폼 역할을 했다면 광우병 파동 이후 SNS나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 스스로가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 개인이 직접을 의견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이전과 달라졌다. 이전처럼 이슈를 선정하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대안을 만드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본다. 많은 분들이 YMCA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YMCA가 함께 하길 바라는 곳들이 많아 적절하게 연대하는 방법을 간구하고 있다. Q. 이사장의 임기동안 이루고 싶은 성과가 있다면? 정 : 앞서 말한 과제를 이루는 것과 YMCA 회원을 위한 회원대회를 여는 것이다. 그래서 역동성을 부여해 신바람 나는 YMCA 운동을 전개하고 싶다. 지난 해 창립 75주년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행사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으며 기술력을 갖추게 됐다. 올해는 랜선이나 소규모 형태라도 회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마련해 내부적으로 분위기를 붐업시켜 YMCA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Q.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정 : 교회의 사명은 영적구원이며, 기독청년회인 YMCA의 사명은 시민운동이다. 둘이 다른 것처럼 느껴져서 케미(케미스트리의 줄임말)가 잘 되지 않았다. 공학자라서 사회학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케미, 융합이 최선의 방향이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하나님 아래서 선교와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같다. YMCA의 한계를 교회의 영향력이 동참해준다면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힘을 모아 연대하는 기회를 만들겠다. 오문범 : YMCA에 대한 큰 기대감이 무거울 때가 있다. 다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예전에는 콜링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전문성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이것들의 융합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뛰어난 프로그래머도 좋지만 성실한 운동가로서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다. YMCA 내부적으로 기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모든 기대가 다 충족되진 않지만 YMCA가 잘 쓰임 받는 단체가 되도록 신임 이사장님과 함께 열심히 하겠다.
    • 인물
    • 인터뷰
    2021-04-21
  • “지역사회 신뢰를 통해 소외된 이웃을 위한 질 높은 나눔을 실천하겠다”
    지난 1월, (사)나눔과기쁨 이사장으로 나영수 목사(예평교회)가 취임했다. 나영수 이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소외 이웃을 위한 질 높은 나눔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영수 이사장에게 사단법인 나눔과기쁨의 사역과 올해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Q. (사)나눔과기쁨의 사역 소개 부탁드립니다. 나눔과기쁨은 정부지원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외된 이웃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민간사회안전망 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현재 6700여명의 지역활동가들이 읍면동 단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450여개의 지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눔과기쁨은 6개의 민간사회안전망 사업을 진행합니다. 먼저, 청소년을 위해서는 보육원과 보호소 출신 청소년과 학교밖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브릿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청소년지도자를 현재 450여명 육성해 지역사회에서 청소년을 만나고 봉사단을 조직하고 의미있는 자원봉사를 지도합니다. 동시에 청소년브릿지를 위한 지역사회 자원과 진로지도 멘토링을 연계하는 일들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둘째, 영세자영소상공인들을 위해서는 미소금융을 연 40여억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저리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140여개 사업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나눔과기쁨 미소브릿지를 시군구에 설치합니다. 이를 통해 시군구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소상공인들과 창업 도전자들을 지원하는 일들을 지역사회가 더욱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나눔과기쁨 실버브릿지 사업입니다. 나눔과기쁨 지역활동가들이 매주 읍면동 단위에서 2008년부터 반찬도시락을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해왔습니다. 매주 12,000여개의 반찬도시락을 자발적인 나눔을 통해서 십수년간 진행하는 일은 어떤 NGO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눔과기쁨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후원을 조직하고 투명한 집행을 통해 읍면동 단위에서 직접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성장해왔습니다. 2021년부터는 실버브릿지 사업을 통해 스스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실버활동가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도움이 필요한 실버세대였다면,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노인세대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실버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실버 세대가 직접 참여하고 보다 나은 개선을 이루도록 하는 모델이 실버브릿지입니다. 그리고 생명브릿지입니다. 나눔과기쁨은 지금까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일반인이 참여하고 나눔과기쁨 조직에 녹아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도 능동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생명브릿지로 참여하고 지역사회 민간사회안전망의 구성원으로 세워지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다섯째로는 나눔과기쁨 국제브릿지 사업이 있습니다. 우간다에서 암소은행을 운영하여 80여 마리의 암소를 각 가정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미소금융 사업을 통하여 1,300여개의 자활사업체를 지원했습니다. 키르키즈스탄에서는 토마토치과와 협력하여 1:1 매칭 펀드 방식으로 산간 오지에 치과를 개설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제브릿지 사업은 모두 현지인 목회자와 현지인 교계 연합모임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브릿지 사업을 통해 기독교 영향이 미약한 지역에서 현지인 목회자들이 사회적 입지를 확보하고 성도들의 자활을 지원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눔과기쁨 마을만들기 사업입니다. 취임 후 소외된 이웃이 없는 마을 100개를 만든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나눔과기쁨은 주거 안정과 소득 증대에 초점을 두는 기존의 귀농귀촌의 장점과 전문 운영법인과의 계약방식으로 경영 시스템과 사업 운영 노하우 축적을 결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귀농귀촌의 과정에서 정부자금에 의존하는 의존도를 낮추고 다양한 구성원 간의 민주적인 합의과정이 정착되는 시간을 공동체가 확보하도록 지원합니다. Q. 지난 1월, 이사장 취임사에서 ‘나눔과기쁨 아카데미’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히셨는데, 설립 목적과 운영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나눔과기쁨은 다양한 브릿지 사업을 민간사회안정망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데, 나눔과기쁨 아카데미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게 됩니다. 나눔과기쁨 아카데미는 기존의 나눔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서 그치는 단기적인 모습을 지양하고, 나눔과기쁨이 지향하는 ‘나눔은 동행이다’라는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지역활동가들 스스로 디자인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훈련하게 됩니다. 나눔과기쁨 아카데미는 향후 백세힐링교실, 이동마켓, 창업사관학교, 마을만들기 등의 사역 현장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운영될 것입니다. Q. 또한 100억원을 목표로 모금 활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모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또 모금액은 어떻게 사용되나요? 현재 나눔과기쁨은 새로운 리더십들을 중심으로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나눔과기쁨 회원 가운데 뜻이 있는 분들이 현재 1,000만원 혹은 500만원을 출연하고 있으며, 이러한 취지를 살리는 일에 각계각층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00억 가운데 20억은 나눔과기쁨의 사옥을 마련하는 데 사용되고, 80억은 나눔과기쁨이 목표로 하는 100개의 마을만들기를 위한 마중물로 사용될 것입니다. Q. 나눔과기쁨은 만남의 사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대면활동이 어려운데, 어떻게 실시되고 있습니까? 코로나로 인하여 매주 독거어르신과 결식자를 위한 반찬나눔과 무료급식 사업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일상생활 방역을 강화하고 수혜자들이 모이는 게 아닌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부산이나 수원 등의 지역사회에서는 푸드냉장고와 푸드나눔 가판대를 설치하여 외부인의 방문을 꺼려하는 수혜자들이 직접 푸드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도 있지만 고통당하는 이웃이 있는 한 찾아가는 나눔은 중단될 수 없다고 봅니다. Q. 나눔과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나눔과기쁨 동참 방법은 목회자와 일반인으로 구분하여 안내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회자인 경우에는 자신의 목회 비전이 ‘마을이 교회다!’라는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즉, 교회 안의 성도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 밖의 지역주민들을 진심으로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회자의 리더십이 불안한 교회는 목회자에게 교회 안 성도만을 돌보는 데 집중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따라서 목회자의 비전이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와 일치하고 동시에 나눔과기쁨이 제시하는 교회상에 맞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자신이 섬기고 싶은 대상을 정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점검해야 합니다. 나눔과기쁨에서 주최하는 미소브릿지는 영세자영업자를 안정적 경영의 길로 컨설팅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청소년브릿지는 청소년의 진로와 정서 케어를 지원하는 상담과 컨설팅을 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실버브릿지도 비슷합니다. 노인은 직장과 사회에서 은퇴한 후에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버브릿지는 도움이 필요로 하는 노인과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싶은 노인을 위해 적절한 사회적 자원과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이에 맞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마을만들기는 참여자의 생활수준에 맞는 마을을 디자인하되, 정부안전망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안정적인 주거와 생계와 더불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핵심가치로 두고 진행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국제브릿지는 빈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되는 자활 사업들이 중심이 되는데, 이를 위해 현지 지역사회에서 직접 활동하거나 적절한 개발 모델을 컨설팅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Q. 앞서 언급하신 것 외 향후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향후 나눔과기쁨은 다양한 나눔이 지역사회에서 관계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브릿지’ 영역을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사회적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활용되고 있지 못합니다. 이는 1990년대 말 IMF가 한국정부에 제출한 이행요구사항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라도 사회적 신뢰를 증진할 수 있는 자원봉사의 전문 영역들이 개발되어야 하고 이러한 전문 영역들을 소외된 영역의 사람들과 연계하는 ‘능동적인 이웃’이 많아져 충분히 제 기능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역량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나눔과기쁨은 이를 위해 각계각층의 전문인 사역자들이 참여하는 창업사관학교를 전국의 광역시도에 설치하고 상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나눔과기쁨 문의 1544-9509
    • 인물
    • 인터뷰
    2021-04-07
  • [좌담회] "낮은 자와 함께하며 예수님의 사랑 회복하는 부활절 되길"
    일시 : 2021년 3월 15일(월) 오후 12시 장소 : 프라미스랜드 사회자 : 이병수 교수(고신대) 참석자 : 박서근 목사(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 증경회장, 부산미문교회 담임) 정용근 목사(부산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 회장) 황희수 목사((사)예평글로벌비젼 바울지역아동센터장, 바울교회 담임) 가브리엘 교수(경성대 교수, 수영로교회 영어예배부 목사) 이병수 : 오늘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나누는 하나됨을 주제로 좌담회를 마련했습니다. 특별히 탈북민, 장애인, 다문화가정 사역을 통한 경험들을 나누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먼저, 가브리엘 교수의 하시는 사역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브리엘 : 저는 남아공에서 2005년 한국에 처음 왔습니다. 한국교회 초청을 받아 선교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교회의 영어예배와 선교원 일을 담당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저는 남아공교회와는 매우 다른 한국교회 구조와 예배 방식에 대해 배웠습니다. 한국 와서 우송대학교에서 3년, 이후 고신대학교에서 7년 동안 교수로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성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고, 수영로교회 영어예배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아내와 3명의 자녀가 있는 다문화가정입니다. 이병수 : 한국교회가 남아공교회가 무엇이 다르던가요? 가브리엘 : 예를 들면, 남아공에는 새벽기도회가 없고, 금요철야예배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더 초점을 맞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는 청소년들이 따로 예배드리지 않고 어른들과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얻은 많은 교훈 중 하나가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에 대한 열정입니다. 기도는 한국교회를 든든히 세운 큰 기둥 중 하나로, 서양의 교회들이 한국교회로부터 그 열정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병수 : 황희수 목사님께서 하고 계시는 바울지역아동센터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황희수 : (사)예평글로벌비전 바울지역아동센터는 부산에 단 2곳뿐인 탈북아동 위탁시설 중 하나입니다. 수도권에 집중된 탈북 청소년 복지시설 인프라의 불균형 문제와 지역에 있는 탈북 가정이 느끼는 소외감,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여러 터전을 옮겨 다니다가 현재 영도 영선동 바울교회 안에 자리 잡게 됐습니다. 처음 센터를 하게 된 계기는 2018년, 탈북한 새터민 자녀 11명이 거처할 곳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환난 중에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것이기에 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탈북한 새터민 자녀들 중 국적이 없는 상태인 아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중도 입국자라고 합니다. 부모는 탈북민이지만 아이들은 탈북민이 아닙니다. 많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 팔려갑니다. 낳은 아이들이 중국에서 중국말을 배우고 그곳에서 살아가지만 국적이 없습니다. 그 탓에 다시 북한에 잡혀가거나 남한으로 탈출합니다. 중도입국자 아이들은 한국에 와서도 국적이 없다보니 학교에 갈 수가 없습니다. 중국인 부모를 데려오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국적을 취득하면 다문화가정에 속하지도 못합니다. 탈북민 부모들은 자녀양육이 쉽지 않아 자식들과 따로 떨어져 생활하게 됩니다. 바울지역아동센터에는 전국에서 모인 7세~15세 아이들이 기숙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한국어 표현능력이 될 때까지 부산다문화국제학교를 다닙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지만 한국학교에 가면 국내 또래아이들과 언어와 문화 등이 다르다보니 여전히 힘들어합니다. 또 문화적 박탈감이 심각하고 불안정한 가족관계로 인한 심리적인 문제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기초한국어 교육, 인성교육, 도덕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통일시대의 우수한 인재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병수 : 한글부터 시작해서 한국을 배워가는 11명의 아이들과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황희수 : 교회 근처에 2층 전셋집을 구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야간으로 사감 집사님이 11명의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며 보호하고, 빨래와 식사로 섬기고 계십니다. 넉넉한 상황은 아니죠. 그렇지만 작년 어린이주일에는 아이들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전국해법수학경시대회에서 최우수 1명, 우수 4명, 장려 4명이 입상했고, 4명은 영재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병수 : 장애인 사역을 하고 계시는 정용균 목사님과 박서근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정용균 : 저는 처음부터 장애인 사역을 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취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서울에서 김동식 목사님을 만났고 4년 동안 사역을 함께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사람에 대해 더 알고자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결혼을 하고 8년 동안 노숙인 사역을 했지만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후 해외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다가 한국에 돌아왔는데, 부산에 장애인선교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고민과 갈등을 하던 중에 한 목사님께서 책상머리에서 고민하지 말고 현장에서 고민하라는 말에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현장에 내려와 사역의 방향을 고민할 때 한 장애인이 저에게 외형이나 프로그램에 매이지 말고 그냥 우리 곁에서 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와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이들 곁에서 손잡고 먹고 마시며 삶을 나눈 것 아니냐며 힘들고 어렵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친구로서 곁에서 살아가겠다고 하고 지금까지 기쁘고 행복하게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장애인들과 만남이 쉽지 않습니다. 매년 해오던 캠프도 작년부터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서근 : 초등학생 때 처음 교회를 갔고, 성장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목사가 되어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교회를 개척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교회가 없는 시골 농촌에 교회를 세우게 해달라고. 신학을 공부하고 14년을 목회를 하다가 1982년에 시골에 교회를 개척하고 1987년에는 장애인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하면서 정말 많은 장애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의 교회 등록과 출석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말할 수 있는 것은 장애인의 교회 출석 비율은 현저히 낮습니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 중에 문턱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을 구분하기 위해 문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턱이 교회에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에게 문턱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할 때 다른 말로 차별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뿐 아니라 다문화가정, 탈북민 사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식이 동일시되어야 하는데, 그 말을 눈높이가 같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동일하다는 인식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병수 : 교회가 여러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떠한 부분에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또 그것을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서근 : 개인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한 대형교회가 새로운 성전을 짓고 얼마 안 돼 그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장애인 화장실을 가봤습니다. 화장실을 가보니 변기와 손잡이가 있었고, 거기에 청소도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큰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하게 될 때 마다 시정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만큼 이것이 한국교회 현실이고 문턱임을 느끼게 합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인식을 동일하게 하더라도 실천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저는 이 실천이 교회의 중직자들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적 대안 중 하나가 중직자들이 필수적으로 사회봉사훈련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끔 중직자들에게 물어봅니다. 장애인들과 생활한 적이 있는지, 그들을 집으로 초청해본 적이 있는지를요. 한국교회 중직자 중 사회봉사훈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10%로 안 됩니다. 그런 사회적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없는데 인식을 개선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고 봅니다. 정용균 : 요즘 교회에 장애인 전용석을 마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죠. 그러나 배려는 당사자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려가 때로는 더 큰 차별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예배당의 장애인 전용석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휠체어 장애인의 경우, 가족과 함께 교회를 갔다가 떨어져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도 편의시설에 관한 법률 때문이 경우가 많죠. 강대상에는 대부분 경사로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강대상에 오를 수 없습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분리와 차별입니다. 장애인 사역자를 청빙하는 문제, 장애인부서의 분리 문제 등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 유진우 씨의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장애인을 이해하고 신앙으로 지도할 전문 사역자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병수 : 교회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가브리엘 교수님과 황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희수 : 많은 분들이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물어보지만 방법을 모르니까 한번 시도를 하고 그칩니다. 인식이 안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돈보다 진짜 사랑과 관심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 우리 센터에 온 아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주면 되는지. 그 아이가 사랑과 관심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라고 하면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박 목사님 말씀처럼 문턱을 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함께하지 않으니 인식이 안 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릅니다. 단체가 기부를 받아서 운영을 하지만 기부금이 잘 안 들어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부액 중 80%가 논크리스천들입니다. 기도해보겠다고 말하시고 이후에 어떠한 액션이 없습니다. 교회마다 선교비로 지출을 잡지만 목사님과 연결된 곳에 지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지만 정작 필요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단체의 사역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후원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사회봉사단체가 더 활동이 활발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봉사가 아니라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브리엘 : 선교현장에 있었을 때 한국 선교사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역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은 하나의 도전과제입니다. 선교지의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고 그들에게 리더의 권위와 감독권을 주는 것을 꺼려합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도입한 여러 사역들이 한국교회의 지원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못한 탓이 큽니다. 이것은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저지른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사역에도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사역의 부서들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중점을 둬야 할 것 중 하나는 다문화가정 등 이러한 부서를 교회 공동체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다문화가정과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다문화가정과 외국인들을 한국교회 공동체와 분리되게 만듭니다. 그것이 그들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보다 외부인이라고 인식하게 만듭니다. 교회가 이들을 교회 공동체로, 교회의 한 지체가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인가정과 다문화가정을 구별하는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병수 : 인식의 전환,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가 이들을 품을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가브리엘 : 다문화가정 사역을 본다면,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로, 집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한국인과 외국인들 사이의 벽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도록 도와주세요. 교회 성가대와 예배팀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그들이 교회에 소속되었음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한국사회를 돕는 역할을 하도록 혀용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사회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다문화가정과 외국인들이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그들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들이 한국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 안에 있는 마음의 벽도 허물 수 있을 것입니다. 황희수 : 봉사는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지만 헌신은 그만둘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희생을 하며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한 여러 기관을 돕습니다. 그러나 때로 생색내기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한 기관만 돕더라도 그곳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돕는다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기관이 될 수 있습니다. 박서근 :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저는 중직자들의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직자들부터 훈련을 받고 실천해야합니다. 장애인, 다문화가정, 탈북민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교회는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것은 낮은 자들, 병들고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주무시며 그들과 계셨던 것입니다. 정용균 : 한 장애인이 언젠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속도와 효율에 매몰되어, 그 가운데 장애인이 설 자리가 없다라고요. 속도와 효율은 세상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로 들어와 교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장애인부서를 두고 가끔 하는 말이 있는데 구색 갖추기라는 겁니다. 교회 사역에 필요하다고 시작했지만 큰 관심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에 빗대어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실 이러한 부서는 몇몇의 관심 있는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인식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 부정적인 면만 얘기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것이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일부러 그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 불쾌감, 모멸감 등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교회의 한 지체라고 여기고 대한다면 그들도 그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축은지심을 넘어 역지사지로 나아가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병수 : 오는 4월 4일이 부활주일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4월 20일은 한국 장애인의 날입니다. 낮은 자와 함께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부활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오늘 특별히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힘들고 외로운 이들을 위해 사역하는 여러분께서 자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인물
    • 좌담/대담
    2021-03-26
  • “죽음의 문화를 생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화전도운동”
    지난 3월 14일 주일, 유의신 목사는 33년간 사역했던 믿음찬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전하고 내려왔다.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유의신 목사는 “아들만 두 명이지만 결혼식장에서 딸을 시집보내며 눈물짓는 아빠의 심정을 알 것 같다”며 은퇴를 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교회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더 크다고 밝혔다. 은퇴 후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에서 문화전도에 대해 더 집중해서 연구하며 사역할 계획이라는 유의신 목사를 연구소가 있는 이사벨고교 강당에서 만났다. 사랑의 공동체 유의신 목사는 1974년 미국 사우드웨스턴성서대학(기독교교육)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이사벨여고(당시) 교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평신도를 위한 목견운동이라는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그 훈련의 일환으로 ‘늘노래음악전도단’이 구성됐다. 국내 최초 전업 음악전도 보컬 그룹이었던 늘노래 사역을 활발히 하며 교회뿐 아니라 교회 밖, 교도소, 군부대, 병원 등 집회를 다녔다. 늘노래 사역을 왕성하게 하면서 기존 교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됐다. 유 목사는 “1986년, 너무 무리한 탓에 늘노래 필드를 쉰 적이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로컬처치를 비판한 네가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교회를 하겠다고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한 교회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1988년 믿음찬교회를 개척했다. 정춘애 사모가 운영하던 유치원을 주일에는 예배처소로 사용했다. 50여명의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을 때 유 목사는 교인들에게 자신을 담임목사로 청빙해 줄 것을 요청했고, 1993년 청빙투표를 거쳐 7년간 시무를 하게 됐다. “개척을 하고 5년이 지났을 때, 문득 교인들이 손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청빙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이 7년마다 재신임투표를 거쳐 교회에서 시무하게 됐다” 교인들은 총 4번의 신임투표를 가졌고, 유의신 목사는 올해 77세로 은퇴를 했다. 유 목사는 “이미 7년 전에 은퇴할 것이라고 했지만 교회에서 마지막이라며 투표를 했다. 그리고 원로목사나 공로목사 같은 타이틀과 은퇴식은 필요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교회의 규모에서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은퇴식을 해줬다. 너무 좋다”며 교인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믿음찬교회의 특징이라고 하면, 재정을 퍼센트로 관리하며 예산서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믿음찬성도의 약속’으로 교회규약을 볼 수 있다. 규약에는 교회 재정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교회의 수입 10%가 교역자사례비, 40%는 대외선교비, 50%는 대내 교육 관리비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예측 불허한 내일을 위해 오늘 불러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믿음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이유다. “수입과 지출을 정한다는 것은 예측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예측하고 그것에 맞춰 사는 것은 믿음이 아닌 것 같다”는 유의신 목사는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지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믿음찬교회가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교회로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앙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교단 법이 아닌 성경이라는 법 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이다. “‘먼저 그의 나라의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대로 복음을 우선으로 뒀을 때 하나님께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셨다. 사실 작년부터 은퇴 전까지 처음으로 안식년을 가졌다. 내가 아니라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다시 교회를 세워간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내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은퇴를 준비했다. 현재 후임 목사님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찬교회와 함께할 사람을 보내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목자장이신 주님을 따르는 목견운동 목견운동은 주님의 목장에서 목자장이신 주님을 따르는 충성된 개들을 양육하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이다. 유의신 목사가 미국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역이다. 3년 과정인 목견운동은 현재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가 위치한 이사벨고교 강당에서 시작됐다. 목견운동의 정신은 훈련을 받은 성도들이 각자의 처소로 흩어져 훈련받은 대로 삶을 사는 것이다. 유 목사는 “목견운동을 수료하는 사람들이 회관이나 단체를 만들자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사람들을 규합해서 단체를 크게 만드는 것은 목견운동의 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제자훈련의 생명은 훈련받고 교회로 돌아가서 그곳을 섬기며, 배운 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견운동을 시작하면서 유 목사는 1976년 노문환 목사, 이광무 목사를 만나 늘노래보컬그룹으로 음악전도 사역을 하게 됐다. 늘노래 늘노래Ⅰ, 늘노래Ⅱ, 늘노래뉴젠으로 활동했지만 2007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문화사역은 계속 됐다. 음악으로 전도를 했던 유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장르의 문화가 전도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지역의 문화사역자들이 자신들이 가신 전문성으로 전도할 수 있다는 인식과 도전을 주기 위해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를 개소하면서 늘노래 사역을 새롭게 전환했다. 유의신 목사는 “문화전도연구소에서 문화전도사역을 위한 세미나, 모임, 기도회 등을 해왔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할 수 없지만, 교회사역을 내려놓은 앞으로는 문화전도에 대해 더 연구하고 사역을 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해주신다면 말이다”며 바람을 전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문화사역, 죽음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유의신 목사는 문화전도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성장을 위한 전도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다. 죽은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전환시키는 혁명적인 운동이 바로 문화전도운동”이라면서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천하를 주고도 한 생명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전도를 많이 하면 상을 받는 것 등 전도를 교회의 성장으로 연결하다보니 전도가 이기적이게 됐다. 이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은 복음이다”고 힘줘 말했다. 코로나19로 맞은 비대면 시대에 미디어 저변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교회도 온라인예배 등 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예배의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대형교회가 아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전문적으로 미디어를 다룰 인력이 부족하다. 또 미디어를 다루는 세대 간 격차도 크다. 동서대학교 교목인 유의신 목사는 이러한 격차를 현장에서 경험한다고 말했다. “MZ세대를 디지털 원주민이라고도 부른다. 미디어 속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외계인 같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IT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혼자 계속 공부해왔다.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주신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젊은 교수나 목사들이 이런 미디어를 다루는 것에 힘들어 하고, 지금 세대와 문화차이가 급격한 속도로 커지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화려하게 보이는 미디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콘텐츠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미디어를 그릇에 빗대며 “목마른 사람에게 그릇의 종류가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순수한 물이냐는 것이다. 미디어라는 그릇보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콘텐츠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의신 목사는 전도에 비즈니스가 섞이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크리스천들이 기독문화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면서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과 똑같이 사니까. 성경말씀이 실효성이 없어지고 설득력이 떨어질 뿐이다. 교회 성장시대에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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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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