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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진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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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양산미션센터 입당감사예배를 드렸다. 저녁예배 4성전 출석이 궁금했다. 그런데 덕천성전, 화명성전, 금곡 드림센터 출석은 그대로였는데 양산미션센터에 별도로 800명이 출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대마다 때마다 부담을 주시는데, 그 미션을 수행하면 항상 깜짝 선물 같은 역사를 보여주신다. 이에 번개같이 드는 생각이 주께서 양산미션센터를 허락하심이 새로운 전도의 열심을 주심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면 매너리즘에 빠져서 현실에 안주하기가 쉽다. 그러나 포도원의 부흥역사를 보면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새로운 비전과 도전을 주셔서 덕천 찍고 화명 찍고 금곡 찍고 양산 찍고 아프리카 우간다에까지 이르도록 부담을 주셨다.
피곤이 능력이고 부담이 사명이니 이 또한 감사하다. 아이야의 축복을 보면, 마침내 아브라함이 왕성 창대하게 되었다가 끝이 아니다. 아브라함을 이어 이삭, 이삭의 이후로 야곱, 야곱 후에 요셉에게로 축복이 연결되고 이어진다는 것이 또한 큰 축복이다. 이삭은 어머니 사라가 죽고 난 뒤에 얼마나 큰 상실감에 빠졌겠는가? 이삭은 늦둥이요 허약한 아들로 마마보이가 틀림없었을 것이다. 마마보이들의 약점은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혼의 원리는 창2:18을 볼 때 부모를 떠나는 것이 시작이다. 떠나지 못하는 것이 정신병, 고착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은 어머니가 별세한 이후 외로운 나날을 들판에서 저물도록 하나님을 묵상하며 지냈다. 망연자실해서 술에 취하거나, 소일거리 취미, 유튜브에 중독이 되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신앙생활은 눈싸움이다. 바라봄의 법칙이다. 사울은 다윗을 묵상했고 다윗은 하나님을 묵상했다. 혼란한 시절 속에서도 요게벳은 갓 낳은 모세의 준수함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초대교회의 담임목사 바나바는 볼썽사나운 관계들을 보지 않고 교회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하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유혹에 지고 말았다.
아브라함의 축복은 늙고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소통의 달인이었다. 어린 도련님에게 예를 갖추고 본분과 충성을 다하였다.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비로소 가장으로서 리더십이 생겼고 어머니를 떠나 리브가로 중심 이동이 되었다. 만남의 축복이 되어 리브가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어머니 장례 후에 리브가가 큰 위로가 되었다. 반면에 기도하는 어머니의 품을 떠난 후에 들릴라를 만난 삼손은 실패했다.
외할머니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이어받은 디모데는 초대교회의 리더십이 되었다. 아버지를 떠난 이후에 다시 돌아온 탕자는 회복되었다. 포도원의 첫사랑, 덕천성전 이후 청년 화명성전, 중년 드림센터를 지나 양산미션센터는 이삭이 어머니를 여읜 후 아내, 리브가를 만난 것과 같다. 어머니의 큰 사랑 이후에 아내를 만나 새로운 사랑의 신비함으로 나아갔고, 그 리브가는 이후에 아들 야곱의 축복을 연출, 시나리오, 무대소품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후에 리브가를 만났던 이삭처럼,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큰 상실감을 느낄 때에 우리의 진정한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 모든 것이 채워지는 은혜를 맛보아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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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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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정교분리와 종교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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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간의 화제는 뭐니 해도 ‘정치와 종교’라고 하겠습니다. 통일교와 신천지 같은 유사종교에서 불교와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정종유착(政宗癒着) 관련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종교단체의 수장들이 압수수색을 받거나 심지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종교탄압(宗敎彈壓)이라는 말들이 안팎으로 터져 나오는 양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종유착을 강조하는 측도 종교탄압을 강조하는 측도 똑같이 내세우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정교분리’입니다.
물론 양자가 이제야 새삼스러운 관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로부터 역사 속에서 둘은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그 결과 일종의 법적 결과물을 양산했는데, 현대 헌법들에 그 흔적과 자취를 또렷하게 남겼습니다. “의회는 종교를 세우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미국수정헌법 1조, 1897년). 이를 두고 ‘정교분리’(the Saparation of Church and State)의 원조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이 원리를 제대로 명문화한 국가는 독일입니다. 바이마르공화국헌법(1919)은 일찍이 “국교의 부존재와 종교단체의 설립”이라는 표제 하에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137조 1항)라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우리 헌법도 그 영향을 받아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라는 조항을 두었는데, 거기다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문구를 더했습니다(헌법 20조 1, 2항). 왜 그랬을까요?
미국의 수정헌법과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이 국교(國敎)를 부인하는 배경에는 종교개혁에 이어진 종교탄압 및 종교전쟁이라는 역사적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헌법태동기의 한국인들에게는 약간은 낯설었던 현상입니다. 따라서 한국헌법의 정교분리선언은 남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원래 정교분리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에 치중했다면, 우리는 ‘종교의 국가적 중립성’을 동일하게 강조한다고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제1회 국회속본회의 속기록 23호 참고). 그런데 ‘정치→종교’보다 ‘종교→정치’의 방향성에는 다음과 같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이를 종교인의 모든 정치적 발언과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든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성정엽,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의 의미”, 「법학논고」, 경북대 로스쿨(2020))
실제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교회에는 정교분리를 이유로 제국주의의 불법부당한 지배에 굴종하는 모습을 합리화했던 사적(史蹟)이 존재합니다. 일부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이유로 정치적 사건에 일제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그 결과 개인적인 각성과 부흥에만 천착하는 한국교회의 비정치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비판하는 견해들도 있습니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1988), 최영근, “한국기독교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신학사상」, 157호(2012)).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단체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공적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민의를 호도하거나, 종교인이 국가적인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사적으로 개입하여 대의를 그르치는 일에 관여한다든지, 교회의 강단에서 설교의 본질을 유월하는 정치적 발언을 자의적으로 무제한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인이나 종교단체의 정치적 발언과 행위는 종교적 신앙(religious belief)뿐만 아니라 공적 이성(public reason)에도 근거해야 합니다. 정치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래야만 비종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정교분리는 ‘정치→종교’의 반작용에 해당했지요. 영국의 청교도 탄압과 프랑스의 위그노 학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오히려 ‘종교→정치’의 반작용에 가깝습니다. 정치가 종교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땅히 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정치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찬가지로 정치영역과 시민사회로부터 저항을 초래합니다. 성경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 하고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라”(딤전 2:2)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불법불의한 권세나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에게까지 그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동시에 스스로도 불법불의나 권한남용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민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데(딤전 2:4) 스스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더욱 경계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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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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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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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했습니다. 저는 영상으로만 봤지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신형 무기들이 등장하는 모습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61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JL)-3, 다탄두 탑재가 가능한 ICBM DF-5C와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훙치(HQ)-19, HQ-29 등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최초로 공개된 DF-61 미사일은 DF-41의 개량형으로 추정됐으며, 이외에도 ‘괌 킬러’ DF-26D,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무력화할 무기로 꼽히는 DF-17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상공 비행을 통해선 J-20S·J-35A 등 중국이 최근 수년 사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과시됐고 YJ-17 등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로봇개 등 무인전투체계도 공개되었습니다. 사실 그 장면을 보고 러시아의 푸틴도 내심으로는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중국이 대만을 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그러나 대만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물론 이 모습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지켜봤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기분이 좋을 리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국은 실전 경험도 없고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미국 항공모함의 역사는 10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경험과 노하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입니다. 자꾸 평화만 주장하지 말고, 안보력과 국방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방위비, 국방 안보비를 삭감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번 중국의 열병식을 보고 나서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방위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입니다. 한미일 공조뿐만 아니라 대중, 대러, 대북과의 외교력도 잘 펼쳐 나가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미 폴란드에 FA-50 전투기를 수출하였고 동구 나라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구라파 나라들에도 전투기를 수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간곡하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한국은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나라였습니다. 새벽이면 차디찬 교회당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 기도원에서 구국기도의 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아리쳤습니다. “주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옵소서. 저 155
마일의 휴전선을 지켜주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내용을 더 확장시켜야 합니다. “주여, 우리 대한민국 서해를 지켜주옵소서. 남해, 아니 동해도 지켜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이 전투기만 수출할 뿐 아니라 항공모함을 수출하게 하시고 세계 평화 질서를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뀐다고 할지라도 안보와 국방, 그리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시종일관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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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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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지진 전 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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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백성이 아니라, 남 왕국 유다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모스는 예언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아모스 7장 14~15절입니다.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마샤는 벧엘의 금송아지 신당 제사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는 선지자도 아니고, 목동이요, 농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문성이 없는 아모스를 북 왕국에 보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업적 종교인보다 때 묻지 않은 사람을 통해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1장 1절이 이를 말씀합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시 남 왕국에는 웃사야가 왕이었고, 북 왕국에는 여로보암 2세가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남북 왕국 모두 상당히 번성하던 때였습니다. 특히 여로보암 2세 당시의 북 왕국은 다윗 시대처럼 강했고, 영토도 가장 넓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이런 면만 봅니다. 경제 지표, 정치적 상황만 고려하면서, 살기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줄을 대고, 경제적 번영을 위해 달리며 먹고 마십니다.
그러나 믿의 성도라면 1장 1절에서 다른 구절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입니다.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지 2년 후에 거대한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지진 전 이년>이라고 한 것은 이 지진이 충격으로 새겨진 지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서를 읽는 사람들은 그 지진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은 앞의 웃시야 왕 시대,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번영과 대조됩니다. 후자가 번영을 의미한다면, 전자는 멸망을 의미합니다. 지진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격적이며 무서운 재난입니다. 성경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노와 경고와 징벌의 징조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는 번영의 때가 아니라, 멸망 직전입니다. 흥청댈 때가 아니라,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1절 이후에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예고가 이어집니다. 아람의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향하는 곳은 힘을 가진 지도자들입니다. 벤하닷의 궁궐, 규 잡은 자, 궁궐들, 보스라의 궁궐, 왕, 지도자들, 재판장 등이 이를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 나라의 힘 있는 자들을 겨냥하십니다. 요즘 핫뉴스는 네팔 사태입니다. 시위로 총리가 사임 후 도피하고 각료들의 집이 불타고 심지어 도로에서 구타를 당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지도자들을 향한 백성의 분노입니다. 지도자들은 책임이 무겁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이들의 죄는 무엇일까요? 각 나라에 주신 책망의 내용은 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약탈하고 죽인 죄입니다. 그런데 유독 유다는 여호와의 율법을 떠나고 우상 숭배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유다의 다른 죄보다 가장 하나님께서 심각하게 보시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했습니다. 2장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일반적인 죄 외에도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의 죄룰 가장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지진 전 이년>이란 구절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아담과 하와 죄 이후 인류는 늘 <지진 전 이년>의 상황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도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심판 경고가 주어지는 시간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라로 말하면 멸망하기 직전이요, 성읍으로 말하면 함락되기 직전이며, 개인으로 말하면 숨 거두기 직전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이렇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영적으로 깨어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종말론적 깨어 있음입니다. 이 깨어 있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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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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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엄마가 너희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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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초등학교 4학년 딸이 학교에 갔다 와서는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내 친구가 그 일 때문에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벌도 섰대. 진짜 슬펐을 것 같아. 내 친구 너무 불쌍해. 그 엄마 너무 했어.”
“친구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니 은별이 친구도 이런저런 부분에서는 잘못한 것 같은데, 그 엄마도 딸이 그렇게 행동해서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의견도 말하려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이미 100%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않은 나를 향해 불신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도 “그냥 잠잠히 듣기만 할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부분적 공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깨달은 나의 한계 중 하나는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100%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상대가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내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가족은 내게 ‘온전한 공감’ 받기를 원하며 감정을 쏟아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온전히 공감해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부분적 공감’만 하며 대화의 종착지로 가면 갈수록 내 이야기만 하는 어리석음을 수없이 많이 저지른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공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기에 공감하는 척, 마음을 이해하는 척, 100% 경청하는 척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내 것을 아이들에게 주입’ 시켜야한다는 속셈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람의 내면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정서적 지지’이다.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정서를 100% 공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특히 내면이 막 자라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엄마, 아빠로부터 받는 절대적 공감과 수용이 인생을 건강하게 펼쳐갈 평생의 거름이 된다.
그런데, 난 사실 공감과 수용이 쉽지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말처럼 그들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주고 싶은데, 실제 삶 속에서는 나의 정서를 읽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아이들의 마음을 100%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오늘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아이가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 반응하기. 물론 쉽지 않았다.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쉴 새 없이 빼다 끼다를 반복했으며 두부 한 모를 온전히 다 써는데 20분이 걸리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절충점을 찾아 처음보다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는 일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또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루 1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이 많아서 엄마와의 둘만의 대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 보는 것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어서 아이들의 온전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존재,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 편이라는 정체성을 내가 먼저 인식하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가치를 마음 속에 담고 노력할 때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달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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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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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말틴 루터(1483-1546)와 교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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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틴 루터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종교개혁가이다. 당시 교회의 부패를 잘 보여준 ‘면죄부’(면벌부)를 주제로 토론할 목적으로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95개 조항을 붙임으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을 이루어냈다.
루터가 쓴 여러 책 중에 <소교리문답>(1529년)이 있다. 십계명,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등을 중심으로 해설했다. 그런데 루터눈 이 책 서문에서 자신이 왜 교리문답을 작성하는지 이유를 밝혔다. “근간에 내가 여러 곳의 교회를 시찰(視察)하고 신자들의 비참한 신앙생활을 목격한 나머지 극히 쉬운 문장과 적은 책자로써 준비된 교리문답서를 내놓아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도록 했다. 아! 불쌍하도다. 내가 직접 본 비참한 상태를 슬프다고 아니할 수 없다. 저들은 스스로 신자라고 말하며 세례를 받았다고 하며 주의 성찬을 받으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무지한 가축과 이성적이지 않은 돼지처럼 살고 있다. 복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남용하는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였다.”
루터가 왜 저렇게 탄식할까? 대체 무슨 일이 있은 것일까? 종교개혁은 복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중세교회에서 변질한 교회시찰을 회복했다. 여기에 앞장선 이가 루터다. 교회시찰은 본래 사무엘, 엘리야(삼상 7:17, 10:8; 11:14; 13:8; 15:1; 열왕기상 17-21장) 등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모범을 보이고, 고대교회도 이를 실행했다. ‘시찰’은 교회를 ‘두루 다니며’(‘시찰’) 상태를 살피고 돌보며 악을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행 15:36, 16:4, 18:23, 고전 4:19, 17:5-8 등).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 15:41). 그런데 이 시찰이 중세교회에서 크게 변질하고 부패했다.
루터와 지역 교회는 이 시찰을 다시 회복했다. 그런데 시찰을 시행한 결과는 처참했다. 신자들이 세례받았다고 하면서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을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 짐승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복음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남용하는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였다고 개탄했다.
루터는 동역자 멜란흐톤을 통해 “선제후령의 삭슨지역에서 목사들에 대한 시찰위원 지침”(1528년)을 작성하도록 했다. 서문은 그가 직접 작성했다. 서문에서 루터는 시찰의 실례와 원리, 역사를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다시 우리에게 오게 되었지만, 이제 시찰과 감독의 관행이 다시 세워져야 할 것을 호소했다. 실제로 교회시찰은 2-6년마다 시행되고, 교회재산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리, 당회의 규정, 각종 명부(교인, 성찬, 세례, 혼인, 장례, 성찬 참여자 등)을 살폈다. 목사, 당회, 회중을 시찰하기 위해 특별히 18개 항목을 작성했다. 거기에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 세례, 회개, 성찬, 여러 기도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시찰에 앞서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소교리문답>이다. 소교리문답 내용은 시찰 내용과 흡사하다. 아마 교회시찰이 없었더라면 소교리문답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계속되는 교회개혁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교회개혁을 위해 성경과 사도의 본을 따라 루터가 앞장서 회복한 시찰, 오늘날 노회가 맡은 가장 중요한 기능인 교회시찰이 형식에 그치고 중단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1922년)부터 헌법에 부록으로 수록된 <시찰 위원 특별심방시 문답 실례>를 삭제한 교단도 많다. 노회 직무 중 하나는 시찰위원을 두어 관내 교회를 시찰하는 것이다.
교회개혁을 위해 시찰을 교회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회복한 말틴 루터를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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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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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목사]AI시대, 슬기로운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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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큰 물결 앞에 서 있다. 물론 우리가 오늘날 주로 이야기하는 AI는 엄밀히 말해 거대 언어 모델(LLM)이라는 특정 기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프롬프트(prompt, 사람이 AI에게 원하는 작업을 지시하는 질문이나 문장)에 내가 원하는 것을 입력하면 그 요청을 바탕으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단순히 정보를 찾아주는 수준을 넘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동영상 제작이나 작곡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 최근에는 AI가 에이전트(agent)처럼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이 모든 단계를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목표를 이해하고 과정을 스스로 연결해 수행하는 지능형 대리인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런 시대에 교회가 취할 몇 가지 태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AI 문화와 트렌드를 이해하자.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안 쓰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든 목회자와 성도가 AI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AI가 아무리 탁월해도 우리의 신앙과 사역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AI 문화를 이해하려는 수고는 필요하다. 이미 많은 성도가 일상에서 AI를 사용한다. 양 떼의 형편을 살피는 목자의 마음으로, 성도들이 실제로 접하는 문화의 언어와 사용 맥락을 알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문화 속에서 겪는 신앙적 고민과 유혹을 식별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AI 문화를 아는 것은 기술 박식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화를 살아내는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애씀이라 여겨진다.
AI를 목회 조력의 도구로 활용하자. 하나님께서 문화를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그 문화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복음적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AI가 가진 기능들은 복음전달과 목회사역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조력적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말씀연구를 돕는 도구로서 AI가 가진 정보력을 바르게 활용하면 더 깊이있는 말씀 전달이 가능하다. 설교 내용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이미지나 동영상 등을 제작하여 말씀의 전달력을 높일 수 있다. 사역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재정적 한계나 인력 부족으로 시도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돕는다. 작은 예로 디자인 전문인력이 없는 소교회의 경우 아이디어만 있으면 간단한 AI툴을 이용하면 전문가 수준의 디자인을 얻을 수 있다. AI는 저비용 고효율의 결과물을 제공하므로 목회 조력의 도구로 잘 활용한다면 사역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AI에 의존하거나 종속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AI를 사용하다 보면 편리함으로 인해 내가 해야할 부분까지 의존하기 쉽다. AI를 사용하되, 사용자보다 AI가 앞서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AI를 사용할 때 최종 권위는 AI가 아니라 사람, 바로 사용자 자신에게 있다. AI를 통해 얻은 풍성한 자료와 아이디어들을 복음의 본질에 비추어 검증하고 선별해야 한다. 특히 사실 오류의 가능성이나 알고리즘 편향 문제에 대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과정의 영성'을 잃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여야한다. AI가 조력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도록 조절하여 사용하는 것이 이 시대적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AI 시대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AI가 일상이 되는 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업무의 효율성이나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비성경적인 관점이 만연할 수 있다. 그런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고유의 가치와 존엄성을 바르게 세우는 일에 힘쓰는 역할을 바르게 감당해야 한다. 기술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두려움이나 맹목적인 기대로 대하기보다 각자의 소명과 필요에 따라 지혜롭게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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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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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병원, ‘공공 병원화’ 장기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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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기독교대한침례교회가 운영했던 침례병원이 지난 2017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은 후 장기 표류하고 있다. 수차례 입찰이 무산되던 침례병원은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공공의료 필요성이 대두됐고, 침례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하자는 여론이 모아졌다. 부산시가 지난 2022년 예산 499억 원을 투입해 매입한 후 ‘보험자병원’으로 추진해 나갔으나, 최종 관문인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 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심의위원회 위원들은 침례병원을 보험자병원으로 전환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고, 운영 과정에서 지속적인 적자가 예상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험자병원은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 병원이 유일하다. 비수도권엔 보험자 병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부산의 한 민간의료기관이 침례병원 인수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즉각 성토에 나서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21일 부산시의회에서 "민간 매각을 위한 밀실 행정을 중단하고 공공병원 계획을 즉각 발표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러는 사이 금정구를 비롯한 북부산 일대 주민들의 의료 공백만 길어지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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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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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몬교, 부산 기장군에 성전 건축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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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몰몬교(후기성도그리스도교회)가 부산시 기장군에 성전 건축을 시도하고 있다. 몰몬교는 세계 각지에 174개 성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141개 성전을 수리하거나 짓고 있다. 국내에는 1985년 서울 창천동에 지은 성전이 있으며, 부산에도 성전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몰몬교가 부산에 성전을 건축하려는 계획은 지난 2022년 10월 열린 몰몬교 연차대회에서 러셀 엠 넬슨 회장이 새로운 성전을 세워질 도시 중 하나로 부산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단전문지 현대종교(이사장 탁지일 교수)는 “몰몬교가 부산시 기장군 일광읍 기장경찰서 인근의 부지를 매입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해당 토지의 소유주는 학교법인 동의학원이다. 이 부지를 매입해 성전 건축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장군은)이미 천부교 신앙촌이 자리 잡은 이 지역에 또 다른 이단의 거점이 마련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계의 관심과 대처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현재 일광읍 주민들이 몰몬교 성전 건립을 결사 반대를 하고 있다. 이 지역 일대에는 ‘일광읍 주민들은 동의대학교 부지에 몰몬교(후기성도그리스도교회)의 설립을 결사반대한다’, ‘동의대학교 이사장은 몰몬교에 토지매각계획을 당장 철회하라!’, ‘동의대학교는 후기성도그리스도교회(몰몬교)에 토지매각계획을 철회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역 교계의 관심과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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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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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실서 성추행한 목사, ‘징역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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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모 교회 목사가 목양실서 여성 교인들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기관 취업제한 5년을 명령받았다. 이 교회 담임목사 A 씨는 지난 2021년 6월부터 지난해 1월 사이 자신이 담임 목사로 있는 부산 한 교회 목양실과 세미나실 등에서 여성 교인 5명을 상대로 신체를 만지는 등 8차례 걸쳐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목양실에서 교인들의 가슴을 만지는가 하면, 엉덩이를 자신의 허벅지게 닿게 만드는 등의 행각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지법 형사3단독(판사 심재남)은 지난 28일 A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담임목사로서 직분을 망각하고 젊은 여성 교인들을 강제로 추행하는 등 죄질과 범죄 정황이 불량하다. 특히 추행 장소가 목양실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고, 피해자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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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