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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만남은 사역의 시작이자 은혜의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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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사역을 하다 보면 매달 백 명이 넘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그중 어떤 아이는 단 하루 스치듯 지나가고, 그중 어떤 아이는 몇 달 혹은 몇 년을 함께하며 마음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날 때, 우리가 전하지 못한 복음이 얼마나 무겁게 마음에 남는지 사역자는 모두 알고 있다. 최근 나는 그런 아픔을 겪었다. 열 달을 함께했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주었던 시간, 함께 밥을 먹으며 웃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 ‘내가 복음을 조금만 더 서둘렀더라면…’ 하는 자책이 길게 남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만나는 아이마다 복음을 미루지 말자.”
■ 청소년 사역은 ‘수많은 만남’ 위에 세워진다. 아이들은 사역자의 마음을 흔든다. 어떤 날은 기쁨으로, 어떤 날은 걱정과 속상함으로, 어떤 날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감사로 마음이 가득해진다. 만남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그 아이의 삶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때로는 그 아이의 ‘가장 힘든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이 사역자일 때도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성경 속 모세의 인생이 문득 청소년 사역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모세의 삶도 만남의 연속이었다. 믿음의 부모와의 만남, 애굽 공주와의 만남, 동족과의 갈등이라는 만남, 광야에서 십보라를 만난 사건까지 모든 만남이 그의 인생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모세의 인생은 ‘사명’이라는 방향을 갖게 된다. 광야에서 보낸 40년은 허무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빚어가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 사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하나님과의 만남’ 우리는 청소년 사역을 하며 아이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종종 맞닥뜨린다. 얼마 전 밤 11시에 한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며칠 동안 꿈에서 목사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어요. 하나님… 정말 계신 것 같아요.” 또 다른 아이는 제주 한길학교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진로, 새로운 꿈,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두 해 만에 교회에 다시 찾아왔다. 이 아이들의 고백은 사역자의 피곤을 단번에 녹여내는 은혜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이미 그 아이들을 향해 일하고 있었다.”
■ 아이들과의 모든 만남은 ‘하나님의 퍼즐 조각’이다 청소년 사역이 어렵게 느껴질 때, 나는 다시 이 사실을 붙든다. “우연한 만남은 없다. 사역자에게 주어진 모든 만남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다.” 어떤 만남은 우리를 웃게 하고, 어떤 만남은 마음의 짐처럼 느껴지고, 어떤 만남은 오랫동안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조각이 아이 한 명을 세우고, 사역자를 빚고,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새로운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나는 묵상처럼 이 기도를 드린다. “주님, 이 아이의 인생을 준비하신 당신의 이유를 보게 하소서.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사역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아이들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빚어가고 계신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모든 청소년 사역자와 교회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지혜가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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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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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애]‘어울림’이라는 말이 교회에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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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러 다닌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는 교육을 다니면서 교육 마지막 즈음에 본인이 다니는 대학원 동기들과 찍은 사진, 그리고 누누서포터즈 단원들과 찍은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밑에 써 놓은 한 문장을 읽어주며 어울림을 강조한다. 그 문장은 이렇다. “장애인의 건물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법적 요구 사항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울림이 중요하다”(크리스 H. 헐쇼프, 예수와 장애, 대장간)
이 문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이들과 어울리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도 편견 없이 차별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고 어울리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교회 내에서만 외치는 구호로 남겨 놓고, 교회 밖에서는 끼리끼리 어울리는가? 왜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외치면서 실생활에서는 자신과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아온 가정교육, 학교교육, 교회교육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신 보다 경제 형편이 좋지 못하거나, 배움이 덜 하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자들과는 어울려 놀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릴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함께 어울리는 교육을 직장을 다니는 어른들과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의무적으로라도 받고 있다. 본인이 강의를 하러 전동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멈칫하며 피하기보다는 신기하게 생각하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장애인을 마주할 때에 어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처량하고 불쌍한 눈빛과 말은 아이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은 의무교육을 통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 교회는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한다. 다른 부서들도 분리했다고? 분리한 것은 맞다. 대신 연령대별로, 성별로 나뉘어 놓았다. 그런데 유독 통합해서 만든 부서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랑부라고 명명된 장애인부다. 장애인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교회 내 다른 부서들은 연령별, 성별로 나뉘어져서 연령과 성별에 맞게 예배도 드리고, 교육도 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그리고 담당 교역자도 가급적 부서 전문 사역자를 찾아 세운다. 그런데 장애인부는 어떤가? 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애인부에는 연령대 구분도, 성별 구분도, 심지어 장애 유형 구분도 없이 하나로 통합되어 운영되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교육도 없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에게 말로써 상처주는 사람들 중에 교인들이 제법 많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본인이 미안해진다.
세상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존재임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되어 가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서 분리 할 대상이며, 나이와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하나의 묶음으로 존재한다. 학교와 사회는 장애인과의 어울림을 강조하는 데, 교회에서는 어울림 보다는 분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이제 교회 내에 장애인부가 존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고마워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회는 이제 장애들만을 따로 분리하는 것을 멈추고, 이들 역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어울림’이라는 말이 교회에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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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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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여호와를 의뢰하고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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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때문에 불평, 시기하지 말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정 때문에 울고불고 반응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선명한 뜻을 정하고 감사, 노래하라. 한 입으로 인간을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송하라. 한 입으로 쓴물과 단물을 동시에 낼 수가 없다. 조건반사적인 ‘때문에’의 삶을 살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을 살라. 원망, 불평, 핑계, 이유, 변명, 미움, 시기의 삶을 살지 말고 용서, 감사, 사랑, 인정, 존경의 삶을 살아라. 풀은 시들고 잎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기 마련이나, 그런 유통기한이 짧은 것을 바라보지 말고 영생복락을 기대하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인내를 이루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라.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을 마주하고 상대하지만,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다. 할 수만 있으면 선으로 악을 이기라. 지는 게 이기는 것이고, 내려놓을 때 자유가 온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이 땅에서 나그네 세월을 지나며 성경의 가치를 따라 성실, 겸손, 거룩을 감당하면 원수도 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 기뻐, 바뻐, 예뻐하라. 사람 때문에 울고불고 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 사람을 사랑하면 상처받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하박국에서도 악을 행하는 자들이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 하였다. 악인들은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을지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라. 환난 풍파 많은 세상에서 주께서는 먼저 평안을 주셨다. 그래서 고요한 가운데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5,6). 무거운 짐을 지고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라. 의지하라. 신뢰하라. 위탁하라. 던져 버려라.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안식을 주신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1,3)
진인사대천명이다. 하나님100%, 사람100%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모두 하나님 손에 맡겨라. 하나님의 확실한 언약을 붙들고 그저 우리의 할 바,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애를 쓰면, 결국 믿음대로 말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엉뚱한 헛심을 쓰지 말고 진짜 핵심가치를 붙잡아라. 행사가 행복이 되려면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야 된다. 철저히 계획하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되 일을 되게 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준비는 철저히! 전투는 치열하게! 떠날 때는 말없이! 언행심사가 하나가 되고 신행이 일치하는 사람이 영혼이 잘되는 사람이며 범사에 형통하고 온몸이 강건하게 된다. 이 어렵고 복잡한 시대에 천국 소망을 바라보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여호와만 의지하고, 오직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고, 모든 일을 여호와께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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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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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독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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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회수련회 장소로 울릉도를 물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울릉도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지요. 바로 곁에 있는 작은 섬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인 바로 그 섬, 독도 말입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란 걸 알았습니다. 일단 기상(氣象) 관계로 접안이 가능한 날이 기본적으로 연간 40% 가량입니다. 운이 좋아서 배편을 얻었다 해도 풍랑이 심해서 상륙은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독도에 갈 수 있다’고들 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우리도 독도는커녕 울릉도조차 갈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복병이 등장해서였는데, 예전에 다녀오신 분들이 그 당시 혼을 쏙 빼놓았던 뱃멀미의 고통을 그렇게 이리저리 간증하고 다니셨거든요.
갑자기 독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근자에 일본 측에서 또 다시 독도영유권 문제를 건드리고 나섰기에 그러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草苗) 신임 일본총리는 원래가 극우 인사로 유명한 인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물론 특히 자신들이 매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다케시마 행사의 날(2월 22일)을 적극적으로 언급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특수비행단(블랙이글스)이 두바이 에어쇼 참석을 위해 오키나와 기지에서 중간급유지원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일본 정부는 독도 상공을 비행했다는 이유로 기왕에 이루어졌던 합의를 뒤집고 거부한 바 있습니다. 아니, 자국 영공을 자국 비행기가 날았다는 사실을 저들은 왜 문제로 삼을까요? 1905년 당시 일본 내각이 독도를 무주지로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자기네 행정구역(시네마현)에 편입한 다음부터 줄곧 독도영유권을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근거는 선교 차원에서도 입증이 가능합니다. 일본이 편입을 주장하든 말든 1909년 강원도 삼척의 감리교 매서인이었던 김병두가 울릉도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나리교회). 또한 놀랍게도 부산을 기지로 삼았던 호주 출신의 매켄지 선교사가 1910년부터 1917년까지 5회에 걸쳐 울릉도를 방문했다고 합니다(1927년에도 방문). 이들이 과연 울릉도만 목표로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우여곡절 끝에 2022년 세워진 울릉도 내 선교관의 명칭은 ‘울릉도·독도 선교 100주년 기념관’입니다. 벽안의 선교사들조차 독도를 별개의 섬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외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1735년 프랑스 선교사 뒤 알드(Du Haude)의 지도나 1869년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리델(Félix Clair Ridel) 주교가 제작한 지도에조차 독도가 우리 영토로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독도는 부산의 교회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1953년 여전히 독도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일본인들을 막아선 전설적인 독도의용수비대(대장, 홍순칠) 33인 가운데 울릉도 출신인 오일환 집사가 부인 백묘숙 권사와 함께 정착한 곳이 바로 영도교회였기 때문입니다(강영길, 「밥보다 예수」(홍성사, 2014) 참고). 이 두 분의 ‘젊어서 독도사랑 늙어서 예수사랑’과 ‘내사마 예수 안 믿으면 죽습니다’의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참 아름답지 않나요? 또한 전술한 맥켄지 선교사는 2~3일이나 걸리는 그것도 당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을 무릅쓰고 울릉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세례를 베풀고 집회를 인도하고 직분자를 임명하고 교회를 세우는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1915년에는 부인도 동행했는데 임신한 몸으로 섬에 도착해 부인과 소녀들을 가르치고 믿음을 전수했다고 했습니다(당시 뱃속의 아기가 훗날 일신병원의 설립자). 이러한 사역은 부산 지역 성도들의 이해와 기도와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지난 시월에 민락수변공원 일대에서 “독도를 달리다 부산”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두 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각각 1025m, 5411m 코스였습니다. 전자는 ‘독도의 날’인 10월 25일을, 후자는 1954년 11월 21일에 벌어진 치열했던 ‘독도대첩’을 기념해서 정했다고 합니다. 대한국민이라면 ‘독도는 우리 땅’ 노래 정도는 다 압니다. 최근에는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홀로아리랑’도 상당수가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도의 날’도 ‘독도대첩’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독도를 지켰고, 가깝지도 않은 섬에서 치열하게 헌신했던 신앙 선배들의 족적에 대해서도 솔직히 무지합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이렇게 한번 외쳐라도 봅시다. ‘독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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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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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내가 나 된 것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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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에 채널 A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0%대의 시청률이었으니, 드라마로서는 참패했지만, 감동을 주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시골 벽촌 출신의 주인공 강여름은 특별히 발탁되어 걸그룹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데뷔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함께하던 멤버 중에는 최고 스타가 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여름은 그렇게 못된 것에 실망합니다. 그녀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단역으로 출연하는데, 그 경력마저 끊기는데, 그녀가 특정 상품명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녀는 단역도 끊기는 좌절에 빠지고, 다시 고향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혀 모르는 미국 교포로부터 동봉하는 팔찌를 끼고 충남 부여 여행을 대신해 달라는 부탁이 전달됩니다. 여름은 화가 났습니다. 작가나 카메라 기사도 없이, 혼자 부여를 다녀오라니,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떠난 여행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팔찌를 보고 놀란 주민 한 사람을 만났고, 미국의 교포와 그녀가 쌍둥이임이 밝혀져 자매가 상봉하는 보람 있는 열매였습니다. 그 후에도 또 다른 여행 부탁을 받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여름의 마음에 <왜 내가 남의 여행을 대신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자기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신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드디어 그녀다운 그녀가 된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입니다.
우리에게는 각기 <나의 길, my way>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고, 베드로가 세 번 대답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될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1장 18~19절입니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말씀처럼 후에 베드로는 끌려가서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곁에 있는 요한의 미래가 궁금해서 질문했습니다. 21장 21~23절입니다.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면서, 베드로는 베르도의 삶을 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삶을 살면 충분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의 인생과 우리 인생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가 <~~처럼>, <~~만큼>이란 구조 안에서 고통받습니다. 남처럼 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합니다. 남만큼 이루지 못한 것에 열등감에 빠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본문을 <새번역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베드로처럼 일찍 제자가 되지 못한 것 등을 두고 주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고 감사했고, 그것을 은혜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나>에 감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은 현재를 기쁘게 살게 해 줍니다. 그러나 오늘 감사하고 만족하다 해서 자신이 완벽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나에게 부족한 모습은 내일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을 가져옵니다. 미래를 향해 꿈을 품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나>에 대한 감사는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 은혜와 미래에 베푸실 은혜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오늘의 나에 대한 감사>가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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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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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흙수저였기에 더 간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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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모처럼 명성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김삼환 목사님과 오찬을 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에티오피아에 갔다 오신 지가 며칠밖에 안 됐기 때문에, 제가 찾아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 명성교회로 갔습니다.
사실 제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시기에 국가조찬기도회 때 설교를 하면서 김삼환 목사님께서 설립하신 ‘에티오피아 MCM기독병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서 보니까, 명성교회에서 600억 원을 넘게 들여 엄청나게 큰 병원을 짓고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아프리카를 섬기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향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김삼환 목사님께서도 선교사들의 영향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과 배석자 없이 단둘이 식사를 나눴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소 목사, 소목사나 나나 한 가지 특징이 있어. 그게 뭔지 아는가? 우리는 모두 흙수저 출신이데이. 누가 뭐라 해도 흙수저래이. 나나 소목사나 금수저 출신이었다면 지금 이런 교회를 섬길 수가 없데이. 나는 소 목사를 볼 때마다 너무나 나와 비슷하고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너무나 자랑스럽다
네.”
“저도 목사님을 큰 바위 얼굴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가락동에서 개척을 하고 분당으로 교회를 이전했을 때, 명성교회 대형버스가 우리 교회 앞에서 교인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정차하고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제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이 버스가 가득가득 차게 하여 주옵소서. 명성교회가 부흥해야 우리 교회도 부흥하고 우리 교회도 부흥해야 한국교회가 부흥합니다.’ 목사님, 저도 이런 정도의 마음 그릇을 갖고 있었던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목사님, 아직은 그림자를 밟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목사님 흉내라도 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김삼환 목사님도 흙수저로서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분이 스펙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지혜를 주시고 또 목회의 천재적 은사를 허락해 주셔서 사람이 모일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석·박사도 생각하지 못하는 순간순간의 지혜를 터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르신의 장신대 동기 가운데 총회장이 6명인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분이 직접 그런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김 목사님의 후원을 받고 총회장이 되셨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목사님의 배웅을 받고 돌아오며, 차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역시도 얼마나 초라한 흙수저였는가. 흙수저였기 때문에 더욱 간절한 마음이 마음속에서 일렁거렸지 않았던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 성도들을 향한 간절함, 말씀에 대한 간절함, 또 목회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가득했는가….”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간절하게 원하는 만큼 이루어진다고 했다죠. 저는 그 책을 보기도 전에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신학생 시절부터 그 간절한 마음을 채플에 쏟고, 무등산기도원에 쏟고, 또 가락동 시절 그 지하 예배당에 쏟고, 그 간절함이 축적되고 또 무르익어서, 부족하지만 오늘의 소 목사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수요일 생전 처음으로 유송근 장로님과 함께 골프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연습한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이 필드에 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필드에 가서 공을 치는데 왜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생기는지요. “만약에 값비싼 시간을 내어서 와 가지고 공도 안 맞고 또 제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예배 때 어떤 얼굴로 교인들을 볼 것인가….”
유 장로님이 순간순간 코치도 하셨지만 저 역시 정말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마치 목회인 것처럼, 또 저의 사역인 것처럼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주여”를 몇 번을 부르며 공을 치고 또 “생명나무”를 몇 번을 주문 외우듯 하면서 공을 쳤습니다. “하나님, 이 흙수저 출신 종이 드디어 골프장 필드까지 와서 잔디를 밟네요.”
저는 카트도 거의 타지 않고 잔디를 밟는 것도 너무 죄송해서 잔디를 뛰어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저의 간절한 마음이고 애절한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옆에서 신 프로님과 유송근 장로님이 잘 코치를 해 주셔서 그렇지만, 저도 열과 성의를 다하고 어떻게 집중력을 발휘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완전 초짜였지만 공 한 타 한 타를 칠 때도 간절함을 넘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을 쳤습니다. 그 결과 88타라는 믿기지 않을 점수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주님, 이제 여한도 없습니다. 더 이상 골프장 안 가도 됩니다. 이제 주님이 저에게 감동을 주실 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나와서 88타점을 얻었으니, 오늘 예배 마치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럴 때 제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 너는 끝까지 흙수저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거라. 너의 간절함이 살아있을 때 너의 사역도 더욱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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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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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새 시대, 새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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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사랑이 생기면 마음이 설레고 머리에 꿈을 꾸게 된다. 발상, 착상, 구상,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강원도 태백에 삼수령이 있는데, 같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세 개가 하나는 서쪽으로 한강, 하나는 남쪽으로 낙동강, 하나는 동쪽으로 동해로 흘러가는 발원지가 된다. 아브라함은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복의 근원이 되었다. 샘은 작지만 물이 솟아나오고 흘러가서 도랑, 내, 천, 강을 이루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된다.
에스겔 47장에는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을 살리고 강 주변이 살아나고 그 강물이 들어간 바다가 살아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강함이 아니라 잦음이다. 물장구를 치면 파장을 일으키고 그 물살이 물결을 일으킨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데, 고인 물은 썩고 만다. 흐름을 맑고 힘차게 해야 된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하루에도 수많은 파도가 치기 때문이다. 큰물에서 노는 마도로스는 파도를 타고 파도를 즐긴다. 베드로는 바다에 몸을 던지는 헌신자였기 때문에 주께서 쓰셨다.
새 시대, 새 땅의 새 물결이 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물결을 치고 마침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큰물을 이룬다. 성경에 샘물, 은택, 물댄 동산은 사막에 강을 내시는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말한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듯이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큰 핍박을 당하니 오히려 들불이 번지듯이 세계로 흩어지게 되어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다. 환자가 맥박이 뛰지 않고, 숨결의 파장이 없으면 죽는다. 운동을 해서 피가 돌고 심장이 뛰게 하라. 성도는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새벽기도운동, 큐티운동, 전도운동, 성경통독운동.......
부흥의 역사를 보면 체코 프라하의 얀 후스가 화형을 당했지만 종교개혁의 선구자격이었다. 이후에 요한 칼빈, 마르틴 루터, 츠빙글리를 통하여 종교개혁을 하고, 독일에서 17,18세기 경건주의운동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이 성경 읽고 기도하다가 부흥이 일어났다. 또 영국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고, 미국에도 대각성운동이 일어나서 140년 전에 한국으로 복음이 들어왔다. 군불을 지필 때는 아랫불이 중요하다. 한국복음화에 있어서도 부산, 마산, 양산,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중요했다.
평양 대부흥운동, 해운대 성령대집회도 그러하고, 포도원교회 주관 농산어촌청소년초청 작심삼일 수련회, 그리고 더 웨이브 부산 학교기도불씨운동도 그러하다. 마마클럽이 부산에서 시작되었듯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집회와 기도모임을 이어가는 학교기도불씨운동은 부산의 319개 학교 중 165개 학교의 기도모임을 세웠다. 3500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가 포도원교회에 모였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기도합니다. 포도원교회는 덕천성전, 화명성전, 비전센터, 드림센터, 양산미션센터, 내년 아프리카 우간다 포도원교회까지 전도와 선교의 물결을 펼쳐나간다.
우리는 이 시대에 선한 물결을 일으키고 복음의 바람, 파장을 일으키고,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믿음으로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새 생명의 역사를 세워가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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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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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 목회자 2/3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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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가 10월 20일 ‘청빙, 한국교회를 좌우한다’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용근 대표는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교회 목회자 2/3가 교체된다며 한국교회가 대규모 ‘담임목사 교체기’를 맞이한다고 전하면서 자칫 ‘청빙 혼란기’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와 더불어 청빙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실제 금년부터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 목회자들의 은퇴가 시작됐다. 현재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총 695만 명으로 인구 대비 13.6%를 차지하고 있는데, 목사의 은퇴 연령인 만 70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금년부터 이들의 은퇴가 시작된다.
특히 가장 큰 교단인 예장합동측의 경우 향후 10년 사이 66%의 교회가 담임목사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다. 합동 교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35년까지 7,848명의 목회자가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 이는 합동 교회(2023년 기준, 11,832개)의 66%가 향후 10년 사이 새롭게 담임목사를 청빙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지용근 대표는 “지금은 한국교회 성도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과거 폐쇄적인 청빙에서 이제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청빙이 이뤄져 가고 있다”며 “최근에는 청빙보다 교회간 합병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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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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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교리 ‘허위사실’로 판결한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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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 교리가 허위 사실이라는 판결을 내려 관심을 끌고 있다. 신천지는 센터 및 내부 교육과정에서 “백동섭 목사는 과거 청지기 교육원 멤버 7인 중 한 명이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머리 열 뿔, 멸망자’”, ‘금품을 받고 안수를 줬다’ 등의 내용을 가르쳐왔다. 이에 백동섭 목사 유족 측은 명예훼손 혐의로 신천지를 고발했고, 수원고등법원 민사 4부(판사 정진아)는 지난달 18일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신천지 측은 2008년경부터 최근까지 내부 강의와 설교에서 ‘백동섭 목사가 금품을 받고 자격 없는 17명에게 안수를 줬다’는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전파했다”며 “이는 객관적 사실관계와 다른 허위 주장으로, 고인의 명예뿐 아니라 유족의 추모 감정까지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유족에게 각각 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동일한 허위 내용을 반복 교육하거나 설교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백동섭 목사 아들인 백성덕 목사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된 것보다, 신천지 교리의 거짓이 법적으로 확인된 점이 더 의미 있다”며 “많은 사람이 잘못된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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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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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손현보 목사 긴급구제안’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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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창호) 김용원 상임위원이 제출한 손현보 목사 긴급구제안이 기각됐다. 16일 오전 상임위원회에서 ‘교회 목사 구속에 의한 종교의 자유 등 침해 긴급구제 신청의 건’을 심의했으나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기각됐다. 상임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3인 등 총 4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의결을 위해서는 4인 중 3인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이충상 전 상임위원 후임이 공석이기 때문에 이날 3인만으로 상임위가 열렸지만, 이중 이숙진 상임위원의 반대로 기각이 결정됐다.
앞서 김용원 상임위원은 “근거 없이 선거 과정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헌법 위반 소지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면서 ‘도주 우려’라는 손 목사의 구속 사유도 부당하다고 안건을 제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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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