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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유니폼으로 하나 되어 다가가는 교사
    다음세대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목회자와 교사들이 다음세대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아이들에게 먼저 나아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신체적인 성장과 정신적인 성장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아이들은 지금 혼란을 겪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이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교사 유니폼을 맞추는 것입니다. 저는 매주일 분홍색 자켓을 입고 교회에 갑니다. 다음세대들을 만났을 때 그 아이들이 저를 보고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목사님인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제 각오가 좀 되십니까? 담임목사가 이런 복장으로 교회에 간다면 우리도 뭔가 달라져야겠구나!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주일 아침이 되면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입기 좋은, 우리에게 좋은 복장을 입고 갑니다. 내가 옷장을 보면서 “이번 주에 뭐 입고 가지” 이렇게 골라가요. 그러면 나는 좋지만, 애들이 감동할 포인트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분홍 목사가 왜 분홍색으로 매주일 입고 교회에 가겠습니까? 왜 나이 50 넘은 목사가 이러고 다닙니까? 아이들에게 어필하고 싶어서입니다. 그걸 애들이 알아줍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주는 겁니다. 저한테 마음을 열어주는 거예요.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 교사들. 우리 아동부 교사들은 다 정해진 유니폼을 입고 다닙니다. 혹시라도 못 입고 오신 교사들은 부서 교사들에 준비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을 만납니다. 복장부터가 준비된 겁니다. “얘들아, 난 널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너희들과 함께 뒹굴고 함께 뛰놀며 하나님나라를 같이 만들어 갈 거야. 나는 헌신할 거야.”라는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면 그러시거든요. “목사님! 애들은요. 예쁜 선생님, 젊은 선생님만 좋아합니다.” 그러시거든요. 이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정확히 말씀드릴까요? 아이들은 예쁘고 젊은 선생님이 아니라 예뻐 ‘보이고’, 젊어 ‘보이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유니폼은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이걸 다같이 입으면 다같이 젊어 보이고 예뻐 보입니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면 교사들도 애들인지 어른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저희 성민교회에도 아이들 아빠보다 10살 많은 분들이 교사를 합니다. 그런데 같이 놀아요. 왜? 유니폼이 주는 힘이에요. 애들 할머니 뻘 교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교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애들이랑 같이 놀고 같이 예배하고 같이 활동합니다. 어떻게요? 이게 유니폼의 힘이에요. 여러분, 저희 어린이부 활동한 사진을 보면 참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왜 재밌냐면 분홍 목사가 잘 안 보입니다. 이런 사진 흔치 않습니다. 보통은 사진을 찍으면 제가 워낙 튀는 분홍색 옷을 입으니까 저만 보여요. 보통은. 그런데 저희 교회 어린이부 사진에서는 제가 잘 안 보여요. 왜 그럴까요? 다 분홍이니까요. 선생님들이 다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아이들을 만나니까 제가 가려집니다. 제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들이 먼저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들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이게 저희 성민교회 어린이부의 힘이고 저력입니다. 저는 그래서 저희 교회 학교를 사랑합니다. 선생님들 복장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교회 어린이부 교사들의 복장을 보면 다 분홍 목사입니다. 이게 저희 교회의 특징입니다. 분홍 목사님처럼 사랑하고, 분홍 목사님처럼 말씀에 목숨 걸고, 분홍 목사님처럼 애들 끌어안고, 기도하겠다고 마음먹은 교사들이 지금 저렇게 분홍 옷을 입고 준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유치부는 무슨 색을 입을까요? 유치부는 어린이부보다 훨씬 더 진한 색을 입습니다. 보통은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이것 저것 묻히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먹다가도 자꾸 묻히고 물감이나 교구도 쓰다가 막 떨어지고 묻혀서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그렇다면 청소년부 교사들은 무슨 색을 입을까요? 청소년부는 교사들이 유채식 옷을 입으면 청소년들이 도망갑니다. 그래서 무채색으로 입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까만 옷에 까만 모자, 까만 마스크까지 온통 새까맣게 입고 오니까 교사들은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밝은 회색으로 입고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니폼을 입을 때 좋은 점은 또 있습니다. 교사들의 직분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들 똑같은 복장을 하기 때문에 나이도 세대도 직분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 부서 교사들 가운데는 장로님도 계세요.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 다 섞여 있어요. 그런데 유니폼을 입고 부서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다 같은 교사가 되는 겁니다. 저희는 장로님이 평교사를 하시고, 서리 집사가 부장을 합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장로님들은 아이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해 주시고, 아이들 사주시는 일에 적극적이십니다. 그럼 담임교사가 맞습니다. 그리고 서리 집사님은 행정을 잘합니다. 그럼 부장으로 섬기는 겁니다. 직분대로 가지 않습니다. 기능대로 기질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교회가 이렇게 유니폼을 맞춰입고 하나되어 아이들을 만나고 기쁨으로 섬기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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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6-14
  • [다음세대칼럼]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른 시간일 수 있는 아침 7시 전화가 울렸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예요?” 전화기 너머로 알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아침의 고요함을 깨웠습니다. “큰 일 났어. 정은이가 죽었대. 조금 전에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됐다고...” 저는 믿기기 않는 소식을 직접 확인이라도 해야 할 듯이 달려갔습니다. 5개월 전에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소동을 벌였던 정은이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지난 봄 이후 정은이는 둥지에서 기본적인 생활과 학교생활은 무난하게 해왔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가끔 감정의 기복이나 컨디션의 난조로 보이기도 했고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하여 염려를 하기는 했지만 더 자해나 자살충동은 느끼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왔기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퇴소를 열흘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잘 생활하겠다며 다짐했었는데..... 믿기 힘든 소식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전날 정은이는 집 근처 병원치료 후 다음날 등교를 위해 외박을 허락받아 집에서 있는데 밤 11시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잠시 나간 후 소식이 없었습니다. 정은이의 엄마와 오빠가 동네를 다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고 아침에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급하게 현장에 가서 정은이 시신을 확인한 후 둥지로 연락을 했지만 충격으로 제대로 대화가 안되었던 것입니다. 경찰이 아파트 CCTV 등을 조사한 결과 정은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진 가운데 혼자 아파트 출입문에 들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센터장님! 정은이는 17년 동안 힘든 시간을 살았어요. 그래도 마지막을 둥지에서 지내면서 많이 웃고 밝아지고 좋은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찍은 사진도 제일 많구요. 정은이의 마지막 가는 길도 꼭 챙겨주세요” 정은이 어머니는 따따이에게 장례식을 부탁했고, 저는 둥지 아이들과 정은이의 장례를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정은이를 기억하는 많은 친구들과 둥지의 가족들이 정은이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당장이라도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며 정은이가 밝게 인사하면서 저쪽에서 들어올 것만 같은데 마음 아프게 그 곳은 정은이의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충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충격 속에 3일간 장례를 치르고 2019년 7월 7일 오전 7시 정은이의 시신을 화장하고 추모공원에 봉안하였습니다. 17년의 짧은 생애 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간 보내다가 둥지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처음 입소 때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왔었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자살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올해 1월 잠정 집계한 자살 사망자는 13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3% 급증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은 어떨까요. 매년 2600여명 전도의 기독교인들이 자살로 사망한다고 추정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죄로 여겨 교회 안에서 자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지 않고 이 때문에 예방과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살예방교육을 할 수 있도록 부산에서 작은 움직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OECD 국가 42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1위라고 합니다. 더욱이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부산이 1위로 가장 심각한 상황입니다. 특히 청소년자살문제는 계속 높아지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살아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어른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런 제목으로 생명존중세미나가 6월 19일 수요일 오후4시 동래제일교회(미남역)에서 열립니다. “저 내버려 두세요. 내 맘대로 할거예요”라는 반항은 “저 좀 관심가져주세요”라는 애교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정말 죽고 싶어요”라는 말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사느냐 죽느냐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괜찮니?”라고 물을 수 있는 어른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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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신앙교육나침반] 한국 교회, 기독 가정, 기독 학교는 지금 복음놀이리부트 열풍!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수많은 기독 가정은 특별히 부모와 자녀의 신앙 전승이 단절되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0세부터 100세까지 경험하는 복음의 파워를 담고 있는 [복음놀이리부트]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기독학교에서 부모를 통해 복음이 강력하게 전수되도록 돕습니다. 복음이 담긴 찬양과 놀이는 부모와 자녀가 자연스럽게 신앙을 공유할 수 있는 생명가득한 시간이 됩니다. 대구에 중학생 이상 성도 1,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3040세대를 지키기위한 3040위원회가 있습니다. 3040위원회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신앙전수 프로그램인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대안으로 찾고, 당회가 결의하여 다섯명의 복음놀이코디네이터를 세웠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한달에 두번,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진행하였고, 드디어 6월 첫째주일에 전반기 마지막 6회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향기나무복음놀이터 대한민국 2호점 대구대일교회입니다. 대구대일교회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교회가 3040세대의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복음놀이리부트50] 이 책을 대안으로 찾으시고, 교회의 온세대 신앙전승 프로그램으로 세우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은혜샘물교회는 5월 셋째주일에 95가정 315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복음놀이리부트50]을 활용한 [가정예배 리부트]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영유아자녀를 둔 가정부터 청소년자녀를 둔 가정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복음을 경험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는 온 세대가 두시간동안 흐트러짐없이 복음에 집중하며 함께 복음을 놀이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버지들에게 복음의 갑옷을 입힌후 함께 기도하는시간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부모님들은 복음의 옷을 입은채 자녀를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부산에 있는 구화학교는 청각장애, 지적장애 유초중 과정이 있는 사립 특수학교입니다. 구화학교는 특별히 기독교세계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며 복음도 함께 전하는 미션 스쿨입니다. 고 이종수 장로님의 헌신으로 세워졌고 올해 개교 58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 향기나무 복음놀이 코디네이터 중급자격의 전문 코디네이터가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곽소정 코디네이터입니다. 구화학교는 올해부터 월1회 <가스펠 데이>를 정해 복음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아이들이 복음을 즐거워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놀이는 그 어떤 장벽도 없이 그대로 흡수됩니다. 기독교 대안학교 다소니 미니스트리의 아동과 청소년 50여명의 친구들은 올 여름 캄보디아에 선교를 하기 전에 [복음놀이리부트] 선교훈련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온 몸으로 복음놀이를 경험한 후에, 이를 캄보디아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가서 복음놀이사역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언어가 다른민족에게 단순히 언어적, 논리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탁월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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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4-06-14
  • 기독교사학 김천대, 구원파 손에 넘어가
    기독교 사학인 김천대가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기쁜소식선교회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김천대 법인이사회는 강신경(1929~2019) 목사의 딸인 강성애 이사장과 윤옥현 총장 등 이사 전원이 사임했으며 IYF 설립자 박옥수씨 등 8명이 새 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의했다. 이사장 선임의 건은 오는 17일 다룰 예정이다. 그동안 김천대는 학생수급과 재정난을 겪고 왔다. 학교측은 어려운 재정난 때문에 기쁜소식선교회에 학교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 등에 따르면 학교 측과 IYF가 합의한 사항은 기독교 설립이념 계승을 비롯해 고용 승계, 200억원 규모의 재정지원, 교직원의 급여 삭감 복구, 대학이 정상화되면 대학 경영에 참여 등으로 알려졌다. 김천대 법인이사회 관계자는 국민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 입장에선 교직원들 전체가 언제 학교가 폐교될지 몰라 늘 해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IYF에 경영권을 넘기면서 재정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교직원들이 계속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됐으니 되레 고마운 사항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IYF 이단 시비는 기독교계 안에서의 논쟁에 불과하다”며 “또 교육부 승인 하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법적 문제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천대는 예장통합 소속인 강신경 목사가 설립한 학교 중 하나로 기독교 정신에 따라 운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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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06-14
  • 여고생 사망사고 은폐 시도한 교회는 구원파 교회
    인천의 모 교회에서 여고생이 온 몸에 멍이 든 채 학대치사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문제의 교회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구원파 계열의 박옥수가 설립한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교회로 드러났다. 현재 이 사건으로 교회 50대 신도와 박옥수씨의 딸이자 그라시아스 합창단장인 박모씨와 40대 여성단원 등 총 3명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기쁜소식선교회피해자모임측은 “17살 여학생이 교단 설립자 박 모 목사의 딸 박 모 합창단장과 단원들에 의해 학대를 당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며 “학생이 이 단체에서 같은 신도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목숨까지 잃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전대미문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구원파 단체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고 했다. 한편, 박옥수씨와 구원파 계열은 한국교회 주요교단인 예장통합과 합동, 기독교대한 감리회 등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장통합측은 제77회(1992년) 총회에서 박옥수씨 등 구원파 계열에 대해 “믿음의 한가지 기능인 깨달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영지주의적 사고임에 틀림이 없으며, 구원의 확신이 곧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롬 9:6)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또한 (구원파는)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별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하면 지옥 간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명백한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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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06-14
  • 한국교회여 더 늦기 전에 미리 준비 해 둘 것은
    지난 5월 28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에 이렇게 한국의 현재를 예측하고 있다. 아주 보기 드문 미래의 관측을 예언하는 글이었다. 2024년 한 해에 한국 정치 지형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 선거 두 개가 있다고 하면서 하나는 국회의원 선거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대통령 선거라고 말했다. 이를 전제하면서 4.10 총선은 현 집권 세력이 참패했고, 11.5 미국선거는 한국에 결국 이롭지 않은 분위기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안팎으로 고난의 행군이 예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들어 온다면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파수꾼이 아니라 공짜도 아니며 모든 대외 관계는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의 관계로 변한다는 것을 뜻하면서 종래의 우방 관계, 자유진영의 우방관계가 아닌 독자적인 안보와 국가 보위를 독자적으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어 우리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1980년대 부흥의 물결이 코로나 팬데믹라는 전염병의 재앙으로 2024년초 부터는 차츰 식어져 가면서 교인과 교회들이 10%~20%까지 감소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여 향후 미래 2030년대부터는 아예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노인 교인들이 반수 이상 가득 차지하여 교회 운영 예산은 그야말로 감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척 교회에서부터 농,어촌 교회까지 차츰 문을 닫는 현상이 빈번할 것으로 미래 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5월 28일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22년 대비 2052년 시도별 인구는 경기도와 세종시만 늘어나고 나머지 15개 시도는 모두 줄어 들 것으로 예측했다. 부산 인구는 이 기간에 330만명에서 245만 명으로 감소해 감소율이 25.8%에 달하여 전국 17개 시도 중에 최고로 높다. 그리고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국적으로 1886만 명에 달하게 된다. 결국 부산이 34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크게 감소한다고 했다. 교회도 예외 아닌 것은 어린이집이며 유치원 아이들이 없어 폐쇄 수준에 들어가고 노인 고령자 교인만 교회를 반 수 이상 출석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니 노인 유치원과 노인 돌보미 또는 재가요양센터와 같은 복지관 운영에 관심을 가져야 교회 노인들을 붙들 수가 있다. 노인 유치원에서부터 장년 경로대학에 이르기까지 노인교회에 대한 복지 전환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본보에 기고한 황수섭 목사(갈보리교회, 전 고신대 복음병원 교목)는 각 교회들 마다 노인 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그들이 과연 난청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잘 듣고 “아멘”이라고 할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까? 의문이 든 것은 대부분 노인 교인들은 난청으로 설교를 잘 듣지 못하는 경향이 많아 교회들마다 이어폰이며 어른들의 난청에 대한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고 염려 겸 대책을 세워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개인의 경우도 세상에서 늙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늙음이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라면 그날을 위해 늙음을 공부해 둘 필요가 있듯이 개인이나 기관•단체, 특히 한국교회는 앞으로 오는 먼 훗날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대책을 위해 차근 차근 준비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하면 노후 생활 대책이 미리부터 재산 정리를 하여 자식들에게 물려 줄 필요없이 모기질 등 주택을 담보로 생활비가 국가로부터 나와야 하늘 나라에 갈 때 까지 평안히 살 수가 있다. 교회도 앞으로 10년~20년 안팎으로 미래에 대해 미리부터 노인교인 공동체 관리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아마도 유럽 나라들의 교회마냥 교회 안에 노인들만 빼곡히 모여 예배드릴 날이 올지 모른다. 한국교회 중 이를 등한시하는 교회는 후회한들 이미 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정신분석가인 에릭슨은 인생의 단계적 과정을 건강하게 적응하며 지나온 노인은 타인과 융화하는 인격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건강한 적응에 실패한 노인은 외로움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건강한 적응이란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에 부딪히면서 긍정적으로 단련되는 힘을 말하고 있다. 21세기 교회도 사회 변화에 뒤쳐지지 말아야 한다. 지난 60년~70년의 인생을 가지고 그 이후 남은 10~20년의 세월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지는 않듯이 교회도 과거 풍요했던 70~80년처럼 운영하면 교회는 자연 도태되고 말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안에 저출산이며 고령화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선두로 달리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교회도 사회 변화에 빨리 적응하여 대책을 세워 나가는 교회는 살아 남고 아니면 교회 역시 조용히 문을 닫는 날이 올 것이다. 요즘도 개척교회 가 많은 부산, 울산, 경남의 경우 작은 개척 교회끼리 합치거나 문을 닫는 숫자가 노회 할 때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 노인도 교회공동체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화를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 변화는 개인의 경우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노년을 살아갈까? 젊었을 때부터 몸으로 실천하는 연습과 시행을 실습해야 하듯이 교회도 많은 교역자들이 해마다 밀물같이 쏟아져 나오는 신학교 졸업생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청빙할 것인지 미리부터 교단과 노회 지방회 차원에서 면밀히 분석하여 대책안을 내어 놓아야 한다. ‘노인’교회라면 어떤 모습으로 떠오를까? 퇴보되는 느낌이 들까 이런 생각이 들 무렵부터 이미 노인교회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노년 교회의 앞으로 모습은 어떻게 다가올까? 생각한다면 이미 노인 교회 문턱 앞으로 다가 온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징조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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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목회자칼럼]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평양까지
    새로운 한국교회의 부흥과 위대한 복음의 역사를 노래하거나 말할 때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 “백두에서 한라까지”다. 한국교회 부흥의 시작은 1907년 평양을 기점으로 전국의 교회로 확산된 평양대부흥운동이다. 평양 장대현교회에 연합집회로 모였던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온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역사가 나타났다. 당시 런던타임즈는 “마치 밖으로부터 뭔가 물밀듯 밀려드는 강력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한 듯했다.”고 보도했다. 선교사, 지도자, 성도들의 변화와 헌신으로 부흥의 불길과 성령의 파도는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 운동은 한국교회에 경건하고 건전한 부흥 운동의 모델이 되었고, 나아가 한국교회를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흥을 말할 때 그 역사의 현장과 시작점이 된 평양과 1907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지나간 한국교회는 위기의 상황을 넘어 소멸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증가했고, 예배 의식은 약화 되었고, 순종과 헌신과 봉사의 열정은 식어졌다. 세상과 국가 공동체는 할 수만 있으면 쾌락과 방종 그리고 타락과 무신론의 문화를 파종하기에 여념이 없다. 황금만능과 자기 중심주의적인 삶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잠식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현실에 안주한 의식은 다음세대를 점점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어른 세대는 복음화율이 20%, 젊은 세대는 10%, 청소년 세대는 미전도종족인 3~5%, 유치원은 1~2%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산에 소재한 1830여 교회 중, 주일 예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가 상당수다. 청년회가 없는 교회가 절반을 상회하고,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가 부지기수다. 교단을 초월해서 신학교는 정원미달이 고정화되고, 젊은 신학생보다는 중년의 신학생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저출산의 문제는 세상보다 교회 안에서 더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반인들의 출산율이 0.74:1이라면 교회 청년들은 0.62:1이다. 이슬람은 자녀가 알라의 축복이라고 교육함으로 한 가정에서 약 8명의 자녀를 출산하고 있다. 이슬람은 자녀 출산을 통해 2050년까지 지구 인구의 절반을 무슬림화 하겠다는 계획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열패감과 좌절 그리고 절망과 탄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을 허비해야 할까?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자리에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야 한다. 깨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의 자리로 함께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은 정말로 위대하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했고, 엘리야는 비가 없던 땅에 비를 오게 했고, 바울은 성경과 교회를 남겼고,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9월 8일 해운대성령대집회는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웃교회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교회 차례다. 그러므로 부산에 성령의 파도와 바람과 물결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나와 우리 교회를 위함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만 있었으면 멸망하지 않았다. 도시 전체와 의인 10명이 대등의 관계에 있었다. 하나님은 오늘, 부산과 한국교회를 살릴 의인을 찾으신다. 그 찾으시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모두가 홍보대사, 후원자, 함께 백사장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개교회의 사역은 그다음 주에 해도 된다. 해운대성령대집회는 10년만에 이루어지는 연합집회이며 공동체적 기도의 현장이다. 이를 통해 반드시 부산과 한국교회에 성령의 역사, 부흥의 바람, 부산대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부흥의 표현과 성령 임재의 역사성이 바뀌기를 바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평양까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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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신학자 구두인 신부
    한국에서 일한 저명한 신학자 구두인(具斗仁, Charles Goodwin, 1913-1997) 박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려신학대학에 입학한 이후인 1972년 혹은 1973년경으로 생각된다. 부산의 보수동 고서점에서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이 발간하는 ‘신학논단’ 7집(1962. 10)을 샀는데, 거기에 실린 구두인의 “희랍어와 한국어 발음의 비교”라는 글을 대하게 되었다. 그 때는 희랍어를 공부하기 이전이었음으로 글 내용을 지금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국인들은 서양인들보다 더 정확하게 희랍어 본래대로 발음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짧은 논문이었지만 영어는 말할 것도 없지만 희랍어와 나전어 한글과 중국어까지 비교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연유로 ‘신학논단’ 11집(1972. 6)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히랍어 어려운 말”(γλώσσαι ελληνικαι)이라는 한글로 쓴 논문이 게재되어 있었는데 희랍어 몇몇 단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원의를 바르게 전달하는가를 취급하고 있었다. 이런 글을 대하면서 구두인 교수는 고전어에 박식한 학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가 예일대학교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수득했다는 사실과 그가 성공회 신부로서 선교사 신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비록 그는 신약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그는 실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였다. 신약은 말할 것도 없지만 히브리어나 구약에도 박식했고 교회사나 예전, 교리 등에도, 심지어는 교회음악에도 깊은 식견을 지닌 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구두인 교수를 늘 마음에 두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미국 코넷티컷주 하트포트에서 1913년 5월 5일 출생했다. 1931년 성 바울신학교를 거쳐 1935년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하여 옥스퍼드에서 수학했다. 1939년에는 미국켐브리지성공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사제서품을 받고 10여 년 간 성공회 신부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60년 예일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한성공회의 요청으로 1960년 9월 교수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하는 한편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1979년까지 연세대학교 신학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고전어, 성경원전 강독, 신약학 등을 가르쳤다. 이 기간 중에 구약 강좌가 필요하면 구약을 가르치고, 교회 음악 교수가 없을 때는 교회 음악도 가르치는 만능 교수로 활동했다고 한다. 은퇴한 이후에는 성공회 부산교구 휘하의 부산 수영의 성공회 수양관에서 생활했다. 성공회 성직자는 결혼할 수 있으나 그는 독신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가 부산에 살고 있기에 대학자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장로교인인 내가 성공회 신부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든 중 교회연합회가 주최한 세미나가 성공회수양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구두인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1984년 혹은 1985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성공회수양관은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1072-55번지에 있었는데 주변에 밭이 있었고 비교적 한적한 곳이었다. 수양과 건물에 주택이 붙어 있었는데 그곳이 구두인 신부의 거처이자 서제였다. 당시 관리인에게 면담을 청했는데 마침 구 신부님이 미천한 신학도를 기꺼이 만나 주었다. 키도 크고 건장했으나 어깨가 완전히 굽어 있었다. 일생동안 공부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신으로 살다보니 그의 이웃이란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다. 그는 고양이 한 마리와 가족처럼 살고 있었다. 그날 구두인 박사는 나를 맞아주었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나는 그에게 서재(書齋)를 한번 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기꺼이 나를 서재로 안내했다. 책으로 가득찬 한 벽면 책장 위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커틴을 제치자 값진 고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16세기 간행된 책들이 있었고 성공회 관련 고문헌들,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공회 시원에 관한 문서들, 곧 영국인 요한(Charles John Corfe) 주교의 문서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그가 프랑스 파리의 외방전교회 샤를르 달레 신부(par Ch. Dallet)가 쓴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를 가리키며 이 책을 아느냐고 물었다. 1980년 역간된 안응렬 최석우 신부의 역본은 알고 있었지만 1874년의 불어판 원본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3권으로 구성된 호화 양장본이었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그의 고서들이 나를 유혹했다. 이런 고서들 외에도 금영 측우기(測雨器)는 아니었으나 측우대(測雨臺) 같은 것도 있었다. 책장을 커튼으로 가린 것은 햇빛에 책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7년 전인 1990년 ‘성공회의 특징’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 추천의 글을 쓴 이가 대천덕 신부였다. 이 책에 쓴 구두인 신부의 한마디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고 있다. “내가 속한 교파를 가장 좋은 교파로 여기면서도 다른 교파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하고, 다른 교파의 가르침을 경청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혹은 우리는 “다른 교파에 대해 존경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등이다. 그는 1997년 6월 28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8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의 보물 같은 책의 행방이었다. 후에 들으니 성공회대학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 생을 살았던 성공회수양관은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 이곳에는 송원파크빌라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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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6-14
  • [김성철 목사] 특별하고 유능한 비서
    지난달에 독일을 다녀왔다. 자녀들이 출석하는 독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사는 시대가 얼마나 편리한 시대인지 다시한번 체감했다. 독일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잠깐 배운게 전부인 내가 통역 없이 설교자의 메시지를 60~70%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번역기 앱을 켜고 독일어를 한글로 번역해 달라고 설정하고 음성을 선택하고 나니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독일어를 한글 텍스트로 바로 번역해 주었다. 여행 중에도 언어로 인한 불편함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식당 메뉴판이 어느 나라 말이든 상관없이 카메라로 찍어 번역을 요청하면 그 음식이 어떤 종류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종 종 재미난 번역도 있긴 했지만 음식메뉴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한글 지원이 안 되는 박물관이나 관광지 표지판 등 이 기능 하나로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모든 언어가 능통한 비서를 한 명 대동하고 다니는 듯 했다. 최근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AI이다. Open AI.사가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인 ChatGPT를 발표한 이후에 세계는 AI전쟁에 돌입했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물건에는 AI라는 말을 붙여서 나올 정도이다. 필자는 AI 특히 ChatGPT를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내가 가진 한계를 넘어 내가 필요한 부분에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능한 비서를 월 20$에 고용하여 함께 일하고 있다. AI 비서는 나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다. 첫 번째는 성경구절 인용을 풍성하게 해 준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 목회자들은 수권에 이르는 성구사전을 두고 내가 필요한 구절을 찾았다. 인터넷 검색기능이 활성화 되면서 이제는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된 앱을 통해 내가 필요로 하는 구절을 검색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앱을 통한 검색의 기본은 정확하게 그 단어를 알아야 한다. 단어가 정확하지 않으면 내가 어렴풋이 아는 구절을 인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내 AI비서는 단어를 몰라도 그 구절 속에 이런 어떤 어떤 의미를 가진 구절을 구절을 찾아달라고 요구하면 금방 여러 개의 구절을 내 앞에 뿌려준다. 두 번째는 내가 필요한 그림을 그려준다. 이전에는 성경공부나 설교를 준비하다가 내가 원하는 그림이 있는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지 못하면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AI비서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요구한다. 처음에는 그려준 그림에서 이 부분만 빼고 싶어서 다시 시키면 기존의 그림은 온데 간데 없고 또 새로운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런데 요즘은 유능해져서 그려준 그림에서 일부분만 수정하는 기능까지 구현해 준다. 심지어 요즘은 한국사람으로 표현해 달라고 하는 요구까지 받아서 처리해 준다. 세 번째 원어에 대한 도움도 준다. 설교 준비를 하다 보면 한글로 번역된 단어에 대하여 같은 원어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지금 내가 보는 이 단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런데 AI 비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준다. 특정 성경구절을 원어로 표시하고 각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 봐라고 하면 몇 초안에 그 답을 제공한다. 진짜 똑똑한 비서이다. AI비서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나의 전문사역인 컴퓨터선교 사역을 위해 필요한 웹사이트와 프로그램까지도 이 비서는 도와준다. 1989년부터 컴퓨터 선교 사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기독교계는 새로운 문화가 나오면 부정적인 접근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분명 AI도 양날의 칼처럼 음양이 존재한다. 그 부분들은 사용하는 사람이 잘 분별하고 사용하면 된다. 몇 개월이라도 AI비서를 고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해 보라고 권한다. 분명 내가 부족한 많은 영역에서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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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서임중칼럼] 인연(因緣)을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인연(因緣)이 있다. 그것이 선연(善緣)이든 악연(惡緣)이든 다를 바 없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악연은 빨리 잊고 선연은 곱씹으면서 살아간다. 나에게도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선연(善緣)이 있다. 그것이 나의 오늘을 있게 한 토양(土壤)이었다. 그래서 인연을 들숨과 날숨으로 내 삶을 호흡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어느 관계도 하나님의 섭리 울타리를 벗어난 것이 없기에 인연은 내 삶의 들숨과 날숨이 되어 오늘을 살게 한다. 사계절처럼 오고 가는 인연을 굳이 악연을 붙잡고 헐떡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연을 붙잡고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처럼 삶을 다듬어 가는 사람도 있다. 5월이 되면 더욱 인연(因緣)을 생각한다. 일상이 그래야 하지만 그래도 5월은 더욱 부모님이 생각나고 스승과의 인연이 생각나고 친구와의 인연이 생각난다.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삶에서도 자식을 위한 부모의 본능적인 양육은 평생 곱씹어도 모자랄 사랑이다. 오늘의 내 자리매김을 생각할수록 스승의 가르침은 내 삶의 영양소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미소를 짓게 해 주는 친구는 삶의 활력소다. 마흔이 넘어 목사로 임직받은 후 어느 날 집에 오신 엄마에게 “엄마 젖 먹고 싶다.” 할 때 “야야 징그럽다.” 하시면서도 마흔이 된 자식에게 젖을 물리시고 내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목사 한다고 얼마나 고생 많겠나” 하시면서 눈물짓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이 젖 때문에 5남매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하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때 말없이 내 머리를 어루만지셨던 어머니였다. 그 엄마 마음으로 나는 평생 교인들에게 젖먹이는 모심목회(母心牧會)를 했다. 우리 부부를 약혼주례 결혼주례 하신 고 김기수 목사님은 내 목회의 토양(土壤)이었다. 목사님이 소천하시는 그 해까지 3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리 부부는 결혼기념일에 분수에 맞게 최선을 다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여 목사님을 찾아 축복기도를 받는 것이 결혼기념일 행사였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스승의 가르침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목회의 정도(正道)로 정행(正行)을 했다. 얼마 전, 정장복 총장님의 부음(訃音)을 받았을 때 믿기지 않았다. 지난해도 어김없이 내외분을 모시고 식사하시면서 “나 죽기 전 고향교회 부흥회 한 번 인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올 4월에 일정을 약속하고 함께 고향교회를 방문하리라 기뻐하시면서 친히 점심을 사 주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르신이 마지막 부탁하신 부흥사경회를 인도했다. 기차를 타고 1시간 넘게 광주로 가서, 광주에서 마중 나온 목사님 차를 타고 2시간 완도로 가서, 완도에서 다시 1시간 배를 타고 청산도에 도착하여 3일 동안 자비량 집회를 인도했다. 평생 신언전달자(神言傳達者)를 가르치신 스승님에게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저의 설교의 정의입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교훈을 받고자 진언(眞言)할 때 기뻐하시면서 “청출어람 청어람이로다” 하시면서 “그래도 설교는 <신언전달(神言傳達)>이다”라고 파안대소하셨다. 그 가르침 때문에 강단에 설 때마다 그 말씀을 되새김질했다. 이제 총장님은 천국 가시고 그 가르침이 내 목양의 토양(土壤)이 된다. 일본에 하시모토 다카오 장로님이 계신다. 나에게는 더 없는 친구다. 부인 요시애 다카오 장로님의 지극한 내조로 장로임직을 받고 선한일에 부하고 교회를 세우는 야긴과 보아스처럼 성직을 수행하시는 분이다. 친구의 인연을 맺어온 지 20여 년이 되었다. 나의 삶은 섬김과 나눔과 베풂으로 2등 하기 싫은 마음가짐으로 평생 살아왔는데 하시모토 장로님 내외분에게는 이기지 못하고 언제나 2등의 삶으로 오늘도 우정(友情)을 맺고 살아간다. 아름다운 인연은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시적인 마음이 근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보이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보여지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때로는 언어로 때로는 삶으로 때로는 물질로 가시화된다. 그래서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고 말은 생각의 표현이다. 사랑은 묻어둘 수 없고 묻히는 것 또한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섬김과 나눔과 베풂으로 연주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이제 고희의 마지막 날들을 계수하면서 다시금 인연(因緣)을 생각한다. 인간사 어찌 선연(善緣)만 있으랴. 살아가노라면 악연(惡緣)도 맺어지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이치라면 오늘을 살아가면서 진정 축복받은 삶이란 악연도 선연으로 바꾸는 삶이리라. 그것이 어이 마음대로 되겠는가만 그래도 섬김과 나눔과 베풂으로 살아가노라면 아름다운 인연이 엮어지리라. 고희의 삶을 살면서 잠간 멈추고 뒤돌아보면서 나와 인연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회고해 본다. 인연의 여정에서 경애(敬愛)는 고사하고 왜곡과 망각과 배신이 명확할지라도 그것조차도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삶을 통해 둥글게 다듬어 내면서 나는 어제를 살아왔고 오늘을 살아간다. 김광규님의 아름다운 글의 표현이 생각난다. 경애(敬愛)를, 빗속을 걸어가는 법이라 했다. 그러면서 ‘사랑은 기꺼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길이며, 사람에게 젖어 드는 일’라고 했다. 이 얼마나 깊은 사고(思考)의 표현인가.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을 살맛 나는 인연으로 하루를 엮어가면서 내가 후일 천국에 이른 후 나의 후학들이 나와의 인연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면서 오늘도 선연(善緣)의 삶을 기도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의 첫 구절을 마음 깊이 읊조린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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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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