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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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아져 가는 김의식 총회장 사퇴 요구
    예장통합 김의식 총회장의 사퇴 요구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지난 27일 장로회신학대 교수평의회가 성명을 내고 “(불륜)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즉시 교회와 교단의 모든 직위와 직무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신대 신대원 학생들도 김 총회장의 사죄와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에 들어갔다. 신대원 학생들은 김의식 총회장의 신속한 사퇴를 요구하며 “한국교회 자정 노력에 지금이라도 동참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이사장 지형은 목사)와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회장 전병금 목사)도 입장문을 발표하고 “총회장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현재의 직무에서 사퇴해야 하고 이로써 교단과 한국교회에 늦게나마 조금이라도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교단의 지도자들을 비롯해 한국교회의 지도자 모두가 이 사태를 계기로 다시금 통절하게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며 “이번 사태가 현재 한국교회의 병든 단면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모두가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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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07-05
  • 부산이 사라지면 교회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부산시가 전국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했다는 지난 7월 1일자 일간지에서 처음으로 보도가 나왔다. 부산 16개 기초지자제 중에서 절반 이상인 11개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다는 내용이 일면 탑 기사로 뉴스로 보도되자 부산교계도 매우 당황하는 상황이다. 현재 부산지역 교회 숫자가 1800여개교회로 공표된 2019년 코로나19 이전에 교계가 풍요를 울렸으나 그 이후 급속도로 하향 곡선으로 떨어져 실제 교회 출석하는 교인과 교회는 최소 10%~20%미만으로 감소 추세를 보여 주고 있다. 인구 감소가 더 빠르게 확산되는 징후에 대비하여 부산교계도 고령화와 저출산 대책에 공동으로 힘을 모아야 할 방안이 시급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정황이다. 30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지역산업과 고용’ 2024년 여름호에 실린 ‘지방 소멸 2024: 광역 대도시로 확산하는 소멸위험’(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처음 소멸위험 지역 측정한 이후 부산시가 전국 광역시 중에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으로 진입했다는 보고서에 충격을 주고 있다. 부산 인구 329만 명으로 65세이상 인구는 23.0%, 20~39세 여성인구는 11.3%에 불과해 소멸 위험지수 값 0.490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17개 광역 시중에 유일하게 8개 도시 중 부산이 포함되고 그것도 광역시 중 처음으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데 이어 첫 소멸 위험 지역 케이스로 분류되어 모든 16개 구청들은 물론 종교계 특히 부산 교계 연합 단체 지방회 지역 노회 모두가 비상이 걸렸다. 이 보고서는 통계청 ‘주민등록 인구 통계’를 활용해 올해 3월 인구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물이다. 부산이 타 도시 유출로 인해 한국 내에서도 제일 먼저 소멸할지도 모르는 광역시로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부산 영도구가 소멸 위험지수 0.256으로 소멸 위험 전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해운대구는 0.491로 전국에서 14위, 동래구 역시 0.499로 15위이고 부산 서구, 동구, 중구, 금정구, 사하구가 4~8위를 차지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와 대통령실은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저출산 고령화 대응을 위한 컨트롤 타워로 부총리급 기획 부처인 ‘인구 전략기획부’를 신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면 한국교회나 부산교회들도 그냥 불구경하듯이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없는데 어찌 교회가 존재하겠는가? 다 같이 죽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제일 먼저 사라진다고 하여 국가 비상사태라도 발동하여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 국회에서 이런 민생 중에 가장 시급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저급하게 김건희 여사 고급 핸드백이나 다룰 시간인가? 재미교포 최 아무개 목사라는 분으로 기독교가 이런 꼼수나 쓰는 형편없는 짓이나 행동하는 그런 목사로 인해 이미지 추락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OECD 38개국 회원국 중에 출산율이 1명이하인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대한민국이라니 너무 창피하지 않는가? 향후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느 정당·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대통령, 목회자 등 성직자가 과연 필요하겠는가. 먼저 출생 인센티브로 한국 교회가 교회, 노회, 총회마다 각종 지원책을 세워 주거, 교육, 복지 등 다방면으로 예산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교회들이 한가하게 여름 컨퍼런스로 외국에 나가 선교 비전을 할 때인가 자기 집안, 나라가 사라지는 판인데 과거 정책은 재고하여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교회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무슨 협의체, 총연합회 등은 불필요한 존재로 남아 허수아비 기구로 전락할 것다. 어느 기업체가 출생하는 부모들에게 무조건 현금 1억원씩 주는 믿지 않는 기업체 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한국교회나 노회, 지방회, 총회가 저출산 해결을 먼저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 하지 못할 시에는 전도나 선교도, 교회도 존재 마저 꽃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과거 산아제한 캐치프레이저가 얼마나 저속한 채로 낙후된 것임을 미리 예견하지 못한 것이 몹시도 부끄럽고 국가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왜 진작 느끼지를 못했을까? 우선 순위에 놓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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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목회자칼럼] 효율지상주의에 물든 나의 사고 방식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다. 적은 비용을 투자해서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이 기업의 생존 전략이자 경영 철학이다.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기업의 경영을 밝게 하고, 미래를 준비한는 핵심 가치이다. 기업 경영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효율성’을 그대로 가정으로 데려 와보자. 가정의 목적이 이윤이 될 수 있을까? 적은 비용을 투자해서 큰 수익을 남기는 것이 자녀를 양육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너도나도 가성비를 중심으로 한 효율성을 따질 때, 가정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관계, 가성비가 좋은 양육, 가성비가 좋은 부부사이가 가능할까?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 아기에게는 온통 소비하는 일만 발생한다. 경제적 소비, 정서적 소비, 심리적 소비 등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한마디로 밑지는 장사다. 그러나 아이는 온 가족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조건없는 기쁨, 무한한 사랑, 경외로운 생명을 선물한다. 이건 효율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효율을 넘어선 가족 관계, 사랑의 가치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물질만능주의가 사회 속에 자리잡으면서 어느덧 효율지상주의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 일이 경제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냐, 되지 않느냐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버린 것이다.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나의 재능, 직업으로 인한 사회의 기여도 등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연봉, 휴가 등을 고려하는 풍조, 가정을 섬기고 돌보아야 할 언약 공동체로 보는 것이 아닌 기능적인 부분만 하고 살아가는 현상 등이 모두 효율지상주의에 갇힌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러나 여기, 효율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효율적인 측면으로 따지자면 평생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 효율성으로 보자면 완전 말도 안되는 선택이다. 경제적으로 따지자면 이익될 것이 하나도 없는 행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이게 바로 최고의 효율, 사랑이라는 것을 마치 온 몸으로 보여주듯 말이다. 성경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야기 전체가 인생 최고의 효율이자 가치인 사랑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가져야 할 기독교 사상임을 나타내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효율지상주의에서 최고로 꼽는 검사와 의사들의 갈등이 종종 드러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검사와 의사의 민낯을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어두운 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음에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들고 있는 그들을 선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효율지상주의에 찌들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내가 먼저 나누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돈을 낭비하고 마음대로 살다 온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를 포함한 온 공동체가 송아지를 잡으며 함께 기뻐하는 장면이 주 내용이다. 세상의 논리라면 효율성이 전혀 없지만, 성경의 논리로 힘든 사람을 품고 내가 먼저 나누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이다.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나누는 것이 바로 효율지상주의를 넘어 한걸음 나아가야 할 실천이다. 둘째, 기쁨에 이어 잔치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의 가진 것을 내어놓고 이웃과 함께 잔치함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가 살아있는 사회이다. 내가 내어놓아야 할 잔치 비용이 아까워 기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슬퍼할 수도 없는 상태. 이런 모습은 어쩌면 하나님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마음을 개혁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회, 함께 나누며 기뻐하고 잔치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선한 일’을 ‘함께’하지 않는다. 주로 이익이 되는 일을 혼자 한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내는 언약 공동체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하며, 내가 먼저 낮아지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세상에 불고 있는 맹목적인 경쟁의 광풍에 저항하며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관계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품는 자들이 될 것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되돌아보자. 우리 공동체는 과연 ‘교회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효율을 추구하는 집단인지, 아니면 진정 형제 자매가 하나가 되어 ‘사랑’이라는 가치를 살아내는 언약 공동체인지 말이다. 이 언약 공동체를 내가 먼저 세워나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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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6.25 전쟁기 부산에서의 교회
    6.25전쟁기 부산지방의 기독교회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부산에서 기독교회는 1892년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혹 1893년) 설립이후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설립되는데, 1896년에는 영도교회(현 제일영도교회), 1904년에는 엄궁교회(현 은혜로교회)와 하단교회, 1905년에는 항서교회, 수안교회, 금성교회, 기장교회, 구포교회가 설립되고, 이어 두구동교회(1906, 소실됨), 대연교회(1907), 초읍교회(1909), 사상교회(1909), 상애원교회(감만동, 1910) 등이 설립된다. 또 수영교회(1919), 부전교회(1932), 남부민정교회(현 항남교회, 1936), 해운대교회(1937) 등이 설립된다. 이렇게 되어 1940년 당시 부산 지역의 장로교회는 23개 처였고, 다른 교파 교회로는 부산성공회(대청동, 1903), 수정동성결교회(1918. 4), 온천중앙성결교회(1918. 9) 그리고 구세군부산중앙교회(1935) 등 몇 되지 않았다. 1945년 해방 당시 부산지역 인구는 28만 정도였고 30-35개의 교회가 있었다. 해방이 되자 여러 교회가 설립되는데, 은혜교회(현 새부산진교회, 1946), 성산교회(1947), 성경교회(현 충일교회, 1948), 거제교회(1948), 거성교회(1948), 온천교회(1948), 항도교회(1948), 복음교회(현 신평로교회, 1949), 부민교회(1949), 부산남교회(1949), 제2영도교회(1949), 제3영도교회(1949), 서문교회(1950) 등이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교회당을 접수하여 시작된 교회도 있었다. 그것이 광복교회(1945. 11)와 부산중앙교회(1945. 12)였다. 일제 통치기 부산에서 일본인 교회가 가장 많았을 때는 7개 교회가 있었는데, 해방 당시 대표적인 두 일본인 교회가 광복교회와 부산중앙교회로 개편된 것이다. 전자는 윤인구 목사에 의해, 후자는 노진현 목사에 의해서였다. 해방 후 부산에는 여러 교회가 신설되는데, 1949년에는 장로교회만 31개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중 19개 교회는 부산부에, 12개 교회는 동래부에 소재하고 있었다. 해방 이전까지 부산지방 교회는 교파적으로 볼 때 장로교 중심이었고, 해방 이전 부산에는 성공회 1개처, 구세군 2개처, 성결교회 2개 처뿐이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부산에도 장로교 아닌 타 종파 교회가 설립되기 시작한다. 예컨대, 성결교의 경우, 동광성결교회(1945. 12)와 영도성결교회(1951. 11)가 설립된다. 감리교의 경우, 1948년 7월 부산제일교회가 설립되는데, 이 교회가 부산지방 최초의 감리교회였다. 이 교회는 1949년 4월 부산 서구 동대신동 1가 49번지의 적산 가옥을 매입하여 예배처소로 사용했다. 이어서 부암감리교회(1951.1), 해운대감리교회(1951.1), 수정교회(현 성일교회), 대교교회(1951. 3), 시온중앙교회(1951. 9), 보수교회(1952. 1), 영도중앙교회, 온천교회 등이 설립된다. 1950년 말에는 부산의 장로교회는 41개 처에 지나지 않았고, 목사 10명, 전도사 23명으로 교역자는 33명으로 보고되어 있다. 다른 교파의 교회는 10여 개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부산지방의 교회는 50개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1950년 말 통계라고 하지만 6.25 전쟁 발발 당시 부산의 교회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 기간 중 부산의 교회수는 급증하게 된다. 기존교회로부터의 개척(설립)도 없지 않았으나 교회분규나 내분, 특히 고려신학측(현 고신총회)을 따르는 신앙노선 문제로 기존 교회로부터 분리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쟁기 설립된 다수의 교회는 월남한 피난민들이 세운 피난민교회였다. 6.25 전쟁 전후 부산지방으로 월남 피난민들이 유입하게 되자 피난민들은 두고 온 북한 지역의 교회를 부사에 재건하는 등 피난민 교회가 설립되는데, 약 50여개 처로 파악되는데 장로교계가 40여개 처에 달한다. 이들 장로교계 피난민 교회를 설립 년 중심으로 정리하면, 북성교회(현 대성교회, 1950. 2), 성도교회(1950. 12), 구덕교회(1951), 영락교회(1951. 1. 7), 서북교회(1951. 2), 철산교회(현 산성교회, 1951.3), 선천교회(현 산성교회, 1951.3), 우암교회(1951.3), 영도교회(1951), 평광교회(1951. 6), 수정동교회(1951. 7), 평북교회(현 산성교회, 1951. 8), 평동교회 (1951), 남성교회(1951. 10), 산정현교회(1951.10), 평양교회(1951.6.10, 평광교회와 대청교회로 분리된다), 모라교회(1951), 양정중앙교회(1951), 연산제일교회(1951), 원산제일교회(현 성덕교회, 1951. 12), 서북교회(현 동광교회, 1952.1. 6), 거양교회(1952. 1), 한양교회(1952. 3. 2. 이 교회에서 그해 6월 남부민교회가 분리되었으나 1973년 은성교회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삼성교회(1952), 영도중앙교회(1952), 부산서교회(1952. 4. 27), 감만교회(1952. 6), 신암교회(1952. 10), 양정교회(1953. 7), 영주교회(1953. 8), 명신교회(1954. 5) 등이다. 그리고 감리교회로는, 원산지역 피난민 중심의 부산제2교회(현 충무로교회), 해주 출신 교인들로 구성된 일신교회, 평양 출신 중심의 시온중앙교회, 그리고 서울아현교회 성도들 중심의 보수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이렇게 되어 1953년 당시 부산에는 160여개의 교회가 있었다. 전쟁 중이던 1952년 3월 부산을 방문한 호주빅토리아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였던 조지 앤더슨(안다손, George Anderson)은 당시 부산교계인사들의 정보를 종합하여 당시 부산에는 156개 교회가 있다고 보고했는데 상당힌 신뢰할 만 하다. 그때로부터 10년 지난 1965년 당시 부산에는 300여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1년 당시 920-950개 교회가 있었고, 현재 부산에는 1800-1850여개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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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7-05
  • [황대우 교수] 장로교회의 기원
    장로는 구약의 이스라엘에도 신약의 교회에도 있었다. 구약성경의 장로는 나이가 많고 통치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신약성경의 장로 요건은 신앙이 깊고 통치능력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신약교회에서 장로는 유대교 전통의 용어인 반면에 장로와 동일한 의미의 감독은 로마제국의 명칭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서 고별설교를 하면서 그들을 “감독”으로 지칭하기 때문에 장로와 감독은 동의어다.(행 19:17-38) 또한 바울은 신약교회의 감독 즉 장로를 주요 업무에 따라 두 종류 즉 “잘 다스리는 장로”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로 구분한다(딤전 5:17). 다스리는 장로는 흔히 우리가 부르는 장로에 해당하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는 오늘날 목사에 해당한다. 목사든 장로든 초대교회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종으로 동일한 교회의 사역자를 의미한다. 바울은 그들 모두를 교회가 마땅히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경의 감독 즉 장로로서 목사와 장로는 2세기경부터 감독인 주교와 장로로 확실하게 나뉜다. 감독은 공적 지도자로서 교회를 책임지고 목회하는 사제인데 반하여 장로는 교회 행정을 담당하는 사무 행정가다. 장로는 교회의 통일성을 위해 감독에게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장로가 감독과 동등하지 않다는 증거이자 서열화를 암시한다. “감독(주교) 없이는 교회도 없다.” 3세기 교회는 확실하게 위계적 감독제도로 보인다. 장로들도 사도직을 계승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감독을 따르는 한에서만 그렇다. 점차 감독이 절대적 권위를 갖게 됨으로써 장로의 자리는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결국 로마의 감독 즉 교황 중심의 중세교회에서는 장로 직분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중세 천년 동안 사라진 장로 직분을 부활시킨 것은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이다. 오늘날 장로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 특히 칼빈의 제네바 종교개혁으로부터 유래한다. 칼빈이 장로제도의 이론을 체계화한 인물이라면 장로교회의 기초를 놓은 인물은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써(Martin Bucer)다. 칼빈은 가시적 교회 즉 지상교회에 관한 많은 것들을 부써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장로교회는 부써교회도 칼빈교회도, 심지어 낙스교회도 아니다. 부써와 칼빈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세워진 교회에는 요한 낙스(John Knox)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뿌리를 둔 전 세계의 모든 장로교회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위그노교회와 네덜란드 개혁교회, 그리고 독일의 개혁교회 등 대륙의 교회들도 포함된다. 칼빈의 제네바 종교개혁과 낙스의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는 일개 도시 단위의 종교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단위의 종교개혁이라는 사실에 있다. 제네바교회의 정치제도는 가깝게는 프랑스 위그노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프랑스 개혁교회와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각 도시나 마을에 개별적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그 후에 일정 지역 내의 교회들이 연합하여 노회를 구성하는 형태였다. 다시 말하면 도시교회인 제네바교회와도 다르고 국가교회인 스코틀랜드교회와도 다른 모습이었다. 프랑스 개혁교회는 16세기 후반에, 네덜란드는 17세기 중반에 특정 지역의 유일한 교회형태로 인정받고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오늘날 장로교회는 로마교회, 영국국교회, 감리교회, 회중교회, 침례교회, 루터교회 등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장로교회라는 이름의 기원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다. 그렇다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알아야 장로교회를 안다고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특징은 1560년의 제1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와 1578년의 제2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 그리고 1645년의 웨스트민스터 정치질서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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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성서연구] 무리를 둘러보시고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이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높은 긴장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면서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는데, 이는 유대 지도자들이 볼 때 아무 일도 하면 안 되는 안식일에 추수라는 일을 하는 죄로 보였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를 비난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제자를 옹호하셨습니다. 이런 긴장이 이미 흐르는 가운데,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과 이들이 다시 마주친 것이었습니다. 마침 회당에는 오른손이 마른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장애인은 비참했습니다. 장애는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되었고, 성전에서도 차별받아 이방인의 뜰까지만 갈 수 있었습니다. 성전 가장 바깥은 이방인의 뜰, 그 안이 유대인 여성의 뜰, 그 안이 유대인 남성의 뜰이었습니다. 더 들어가면 제단이 있는 본래의 성전 뜰이고, 그 안에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진 건물이 있었습니다. 장애인은 이방인의 뜰까지만 갈 수 있었기에, 사도행전 3장의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장애인도 여성의 뜰에 들어가는 입구인 미문 앞에서 구걸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른손이 말랐다는 것은 그가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음을 의미했고, 그는 가난했을 것이며, 회당에는 왔지만, 아무도 그를 중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시당하고,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지 엿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식일에는 병을 고치면 안 되며, 이것도 일이라 여겼습니다. 간병하는 사람은 안식일에는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도 치료라는 일을 하는 죄가 된다고 여겼습니다. 정말 이상한 법이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발할 증거를 찾기 위해 엿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악한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의 안타까운 생각도 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그는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오실 때부터 자신의 병을 고치실 것을 기대하면서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그들과 척을 지고는 유대 사회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를 고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에게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고 하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은 잠시 갈등했을 것입니다. 일어나 한가운데 서면, 유대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을 게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기로 결단했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한가운데 섰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는 손 마른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 그가 순종하자, 그의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손을 내밀라>고 하기 전에 <무리를 둘러보셨다>는 것입니다. 회당에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를 둘러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없는 메시지였습니다. <아무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나를 가로막아도, 아무리 케케묵은 안식일 규정이 나를 가로막아도, 이로 인해 내가 미움을 받고 죽더라도, 나의 사랑을 멈출 자는 아무도 없다. 난 손 마른 사람을 고치려 한다. 보느냐? 너희도 은혜가 필요하지 않느냐? 왜 보고만 있느냐? 너희도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너희도 마비된 너희 인생을 내 앞에 가져오라. 내가 너희도 고치고, 은혜를 베풀 것이다>란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당 안의 다른 무리들도 인생이 마비된 사람들이요, 그들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절실했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 은혜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서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도 마비된 인생이 펴지는 복을 얻을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의 주인공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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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소강석칼럼] “18년째 이어온 보은행사 이야기”
    지난 화요일은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TV조선 ‘뉴스 퍼레이드’ 생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태생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저녁형 인간입니다. 그래서 젊을 때 새벽기도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피곤하다가도 저녁만 되면 눈이 반짝반짝 뜨이고 머리 회전이 팍팍 돌아가는 걸 느끼죠. 그런데 그날은 일찍 일어나서 분명히 찬물로 세수를 하고 출발을 했는데, 차 안에서도 졸려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물론 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죠. 생방송이란 편집을 하지 않고 즉문즉답을 적절하게 잘 해야 하는 것인데, 저는 현장에 강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스튜디오로 들어갔습니다. 물이라도 몇 모금 마시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막상 인터뷰에 응하려고 하니까 목이 많이 잠겨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후회를 하였습니다. “물도 좀 마시고, 목소리도 고르게 발성연습도 하고 들어갈 걸 잘못했구나….” 그런데 끝나고 나올 때 앵커께서 “저도 기독교인입니다. 목사님, 아주 적절하게 잘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수십 건의 문자가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내용이 “목사님, 너무 잘 하셨어요. 다큐 50분짜리보다 훨씬 더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요. 목이 잠겨서 몹시 불편했고, 워딩도 100% 만족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에요. 꾸밈없이 순수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도 목사다운 목소리였습니다.” 그런 문자가 왔습니다. 이튿날까지 200통이 넘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TV조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플 퍼레이드 시간에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닌 목회자를 불러 인터뷰를 한 것이 방송사로서는 큰 결단을 해야 했으리라고 봅니다. 돌아오면서 전날 있었던 평개원 간사들의 모임에 대한 피드백 문자가 몇 개 떠올랐습니다. 이분들은 매일 교회에 출근을 하셔서 몸과 시간과 물질로 헌신하는 분들입니다. 어찌 이분들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생각났습니다. 특별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주인공은 김종대 장로님이었습니다. 이분은 18년째 참전용사 초청행사 준비위원장으로 수고해 오셨습니다. 수년 전 장로님께서는 후두암으로 성대를 잃으셨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전문 닥터들이 생존하는 것도 어쩌면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굳센 믿음과 강한 신념으로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 왔습니다. 후두를 제거하면 음식 삼키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밥을 점심까지 씹어서 삼켰다고 합니다. 또 점심을 저녁까지 씹어서 삼키고, 저녁식사도 주무시기 전까지 씹고 또 씹어서 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살아야 합니다. 소강석 담임목사님의 사역을 돕고 6.25 참전용사 행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라면서 그는 성대를 잃은 후에도 이메일로 부지런히 미국과 소통을 해서 지금까지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섬겨오셨습니다. 올해는 텍사스 주의 달라스에서 행사를 합니다. 왜 그곳으로 가게 되었냐면, 그 지역에서 우리 교회 초청을 받은 참전용사들이 너무 감동을 받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교회도 후원을 하였는데요. 그래서 그곳에서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 김종대 장로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래서 그날 인터뷰를 하고 난 후 장로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물론 장로님은 후두를 잃어 전화로 통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께 “장로님 덕분에 인터뷰를 잘하고 왔습니다. 장로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김종대 장로님을 생각할 때마다 생명보다 귀중한 게 사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 또 한 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강종직 장로님이었습니다. 지난 주 장로회수련회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제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한 게 아니라 장로님들의 말을 다 경청했습니다. 대부분 다 담임목사의 목회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이 좀 약간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때 강종직 장로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입이 있다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서도 안 돼요. 우리 목사님은 전적으로 우리와 다른 분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목사님께 순종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분의 이름처럼 강직한 발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장내가 아주 엄숙하고 숙연해진 것입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 교회는 18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보은이 한 개인의 인격이라면, 보훈은 한 국가의 품격이죠. 우리 교회는 적어도 보은을 넘어 보훈의 정신을 함양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니 18년 동안 이어온 보훈행사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교회죠.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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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시사칼럼]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람들, 국격을 끌어올리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국격(國格)”이란 말이 회자되는데, 사실 이 말은 그 유래도 불분명하거니와 2011년에 들어서야 표준어로 지정될 정도로 본래 익숙하여 자주 쓰던 용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사용빈도가 증가한 듯합니다. 최근 국내의 M경제지 사설에는 “국격”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칼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국격 떨어뜨리는 디올백 · 기내식 특검 모두 부적절하다”(6. 6). 누가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말일까요? 과다한 기내식 비용을 지출한 전 대통령의 부인입니까, 아니면 선물의 정도를 상회하는 명품 가방을 받고서도 아무런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는 현 대통령의 부인입니까? “영부인의 뇌물수수 의혹을 덮어주는 대통령”입니까?(야당 대변인, 2. 23) 영부인의 단독외교를 주장하다가 혼란을 자초한 전 대통령입니까?(J일보, 6. 3) 대통령의 해외순방취소가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입니까(야당 원내대표, 2. 16), 아니면 이번에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해외순방을 감행하는 행동입니까?(윤 모, 배 모 여당 의원, 2. 23) 지금부터 30여 년 전 바로 이맘 때(1993. 6. 7)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켐핀스키호텔(Kempinski Frankfurt)은 갑자기 찾아드는 한국인들로 특수를 누렸습니다. 삼성의 후계자 이건희 회장이 전 계열사의 임·역원들을 모두 소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신경영(新經營)선언’을 했는데, 그 핵심을 한 마디로 알려주는 말이 유명세를 탔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 그리고 2년 후 중국 베이징에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기업경쟁력은 이류, 행정력은 삼류, 그리고 정치력은 사류”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평하기를 이류에 불과하다던 삼성이라는 기업은 뼈를 깎는 혁신을 이루어 냈습니다. 1995년 당시 통화가 잘 안 된다는 불만이 폭주하던 휴대폰 15만 대를 시가 500억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불구덩이에 던져 버리는 퍼포먼스까지 감행하더니, 2002년 휴대폰 4,500만 대를 팔아 일약 3조원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류에 불과하다던 정치는 어떻습니까? 혁신은커녕 지금 현재는 오히려 국격을 갉아먹는 적폐(積弊)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며칠 전 이제는 범세계적인 팝그룹이 된 비티에스(방탄소년단, B. T. S.)의 일원이자 맏형인 김석진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는 소식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역시 복무 중인 구성원들이 휴가를 얻어 축하해주러 왔고, 팬덤(fandom)들도 다양한 플래카드와 현수막과 풍선 등을 내걸고 축하했지만 현장에 나타난 이들은 적었습니다. 앞서 소속사에서 “전역일은 다수의 장병이 함께 하는 날이니 별도의 행사가 없으며, 혼잡에 따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팬 여러분께서는 현장 방문을 삼가주시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회사에서 팬들까지, 교양과 배려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비티에스는 종종 전설의 비틀즈를 소환합니다. 빌보드 음악순위에서 최근 10년 간 가장 많은 1위곡을 냈고(6곡), 둘은 발표한 솔로 곡마저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여당의 혁신위원장을 포함하여 이들의 군역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얼마나 비등했습니까? 심지어 특례 조항의 신설 취지로 병역법 개정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당당하게 군대에 입대했고, 최선을 다해 병역을 마쳤거나(특급전사)성실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조교) 중입니다. 무엇이 국격을 떨어뜨리고 끌어올립니까? 전술한 사례들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공평과 정의입니다. 이를 합쳐서 ‘공정(公正)’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같은 사안이라면 같은 절차나 같은 실제가 똑같은 원칙과 잣대에 의해 적용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사안이라면 남의 경우를 다룰 때나 나의 경우를 다룰 때 똑같은 원리와 과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정(公正)’입니다. 한국의 정치권은 괄목상대한 경제력이나 문화력에 견줄만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바로 이 ‘공정’이라는 면에서 그러합니다. 그래서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는 겁니다. 반면 엠지(MZ)세대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이 대단한 케이팝 가수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원입대하여 여타 젊은이들과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실천함으로써 공정의 극치를 보여주며 국격까지 한껏 높여주었습니다. 주께서도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는 또한 지극히 기독교적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른 기준의 도량형이나 저울추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거듭해서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레 19:35-36; 신 25:13-15) 바울 사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로마시민권의 특례까지도 포기하고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지 않았습니까? 하늘 보좌까지 기꺼이 버리시고 사람과 똑같이 되신 주님은 어떠합니까? 우리라도 부디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람 되지 말고, 국격을 끌어올리는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의 국격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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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 [위드애] 천국과 지옥
    저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와 함께 등산을 했습니다. 푸르른 신록의 숲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아내가 “천국이 이것보다 더 좋을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가 있는데, 우리는 살아서도 천국, 죽어서도 천국, 영원한 천국을 살고 있으니, 지금 이것도 천국을 누리는 것이고, 죽어서는 더 좋은 천국을 누리겠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천국 같았던 기쁨도 몇 시간이 지나자 육체의 상황에 따라 변했습니다. 하산길에 아내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무릎이 아프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내는 “지옥이 이것보다 더 괴로울까?”라고 말을 하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함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도와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동행했습니다. 나의 무릎이 아프지 않다고 아픈 아내를 뒤로 내버려 두고 빨리 내려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이 제 아내이고, 제 아들과 딸의 엄마이고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가족이 아닌 무심한 등산객들은 저와 제 아내를 추월하여 앞서서 내려갔습니다. 그분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분들도 빨리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이 있을 테니까요. 육체의 상태에 따라서 똑같은 환경이지만 천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장애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평생을 지옥처럼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함께 안타까워하며 동행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니까요. 뇌출혈로 편마비 상태가 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어르신의 가족이 여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70대 노부부가 휠체어를 밀면서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노부부만 왔으면 너무 힘들어서 여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사위와 딸이 함께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힘이 센 젊은 사위가 장인어른을 도우며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가족은 천국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동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동행하는 삶이 천국을 누리는 삶이 아닐까요?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파하며 함께 울기도 하시고, 우리의 지옥 같은 삶이 천국 같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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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드애(with 愛)
    2024-06-14
  • [은혜의말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삼상 15: 17-23)
    “리더(leader-지도자)는 리더(Reader-읽는 자)여야 한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이 말을 신앙적인 언어로 바꾸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 왕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1. 겸손한 마음입니다.(17절) 사울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작게 여길 때 &#8211; 겸손할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사울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9절을 보면,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좋은 것을 남겼다고 했지만, 사실은 값지고 좋은 ‘전리품’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의 근원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승리는 내가 한 것이라는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2>12절을 보면,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은’ 하나님의 흔적이 아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죠. 하나님이 아말렉을 이기게 하셨는데, 사울은 자기가 이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겸손을 잃으면 하나님의 은혜도 잃게 됩니다. 겸손은 자아를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오늘 나의 나 됨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2. 순종의 제사입니다.(22절)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말씀이 일치하는 삶이 있는 순종의 예배를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어떤 제물을 가져왔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순종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혀 순종할 마음 없이 거저 습관적인 종교생활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종교적 형식만 갖추고 의식적으로 예배할 때, 그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고백이 일치하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입니다.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듣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진정한 회개입니다.(30절) 사무엘이 책망할 때, 사울은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21절) 변명으로 일관할 뿐 전혀 회개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왕을 버렸다고 할 때’ 30절을 보면, ‘자기가 범죄 하였지만 지금은 자기의 죄를 사하고, 자기와 함께 제사하러 올라가 달라고 간청하지요.’ ‘자기 체면’ 때문입니다. 백성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사무엘을 붙잡고 늘어진 것입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니라 백성들 앞에서 나를 ‘왕 대접’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 했을 때 멋진 변명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참된 회개는 범한 모든 죄를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겔18: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회개는 마음을 다하여 죄를 고백하며 그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을 향해 회개의 문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진정한 회개의 문을 활짝 여시고 죄에서 돌이켜, 진실한 믿음의 길로 달려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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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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