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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활절에 부산기독교역사관 건립, 1사람이 1만원씩 헌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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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한국교회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세운 예장통합 경남노회가 부지를 제공하고 창원시가 국비, 시비로 50억원의 건축비를 충당했다. 그 결과 지난 3월 24일 주기철 목사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웅천동로 174에 2층 규모로 우뚝 세워진 기념관 개관식을 성대히 개최했다.
늦은 감은 있어도 해당 노회와 창원시가 협력하여 세운 기독교의 성지로 기독교 역사에 남을 만한 가치있는 기념관이었다. 주기철 목사는 부산 초량교회에서 오랫동안 시무하다가 평양 산정현교회로 옮겨 순교를 당한 주의 종이다. 그런데 부산에는 그런 기념관이나 기독교역사관 하나 없는 삭막한 곳으로 지목 받을 수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동래중앙교회가 개교회적으로 세운 역사관 뿐이지 초교파적인 부산 교계 연합 기독교 역사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미 부산기독교총연합회에서 부산 기독교적 역사관 건립을 위한 불씨를 지펴 정부와 시비, 교부금 지원 요청을 한 것으로 안다. 더구나 부산진교회가 부산 기독교 역사의 발상지로서 기독교 역사관 건립을 위한 대지를 마련하였다는 소식과 아울러 부산 동구가 어느 지역보다 기독교의 산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으로서, 동구 지역에 기념관이 세워져 후손들에게 교육의 장이 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이 있다. 따라서 부산기독교총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부산에 기독교 역사관 건립을 위한 준비에 착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주기철목사기념관이 세워진 것을 보며 더욱 명분이 뚜렷하다.
부산 1800여 교회 성도들이 한 사람이 일만원씩만 헌금해도 충분히 기독교역사관 건립비는 충당할 수가 있다.
이번 부활절을 기해 부산기독교역사관 건립을 위한 헌금과 아울러 시작을 선포하는 뜻깊은 부활의 아침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부산교계 이름으로 청원을 드린다. 아울러 부산기독교 역사에 관한 자료도 출판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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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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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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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고신총회 마지막 날 폐회시 총회장 김철봉 목사는 “임기중 고려측과의 통합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는 말을 총대들에게 남겼다. 교단내에서는 김 총회장의 말대로 임기 중 두 교단이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는 여론이다.
합동추진위원회는 합신교단이 먼저 구성되었지만, 실제 통합은 고려측과 먼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교단 내부에서는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교단 통합을 추진한 합신의 경우 지난 2010년부터 5년 동안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한 형제였던 고려는 작년 추진위원회도 구성이 되지 못했지만 물밑 접촉으로 큰 진전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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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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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부산 A노회 M교회, 3년간의 갈등대립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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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부산A노회 M교회 당회 갈등 대립이 종결됐다. 지난 2007년 M교회 담임인 H목사가 선교를 명목으로 당회가 회집하지 않았음에도 당회록 위조와 미화 10만불을 불법 송금해 교회 분쟁이 발생했다. 해당 부산A노회는 명백한 위법 행위로 기소, 재판해 1차 화해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H목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고소돼 ‘시무해임 6개월’ 2차 판결을 받았다. 이에 H목사는 총회재판국에 상고했고 총회재판국은 H목사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A노회는 총회재심재판국에 재심을 청원했고 총회재심재판국은 당회록허위내용(위조), 관공서문서변조를 사유로 지난 1월 재심개시 결정을 통보했다. 재심결과 화해합의판결이 내려졌다. 사건의 당사자인 H목사 외 5인 A노회 노회장 및 기소위원장, 그리고 총회 재심재판국이 모든 권한을 위임한 화해조정위원 4인이 배석한 가운데 사과문 작성과 화해각서에 같이 합의 날인한 것으로 사건이 종식됐다. M교회 관계자는 “사필귀정으로 재심재판국이 부산A노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부산A노회가 명예를 회복했고, 총회도 명예를 회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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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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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후계자 구도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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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사안은 서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금년 말이면 만 70세로 정년은퇴하게 됨으로 후임은 누가 되는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측근 인사냐 아니면 제3의 인사냐 갈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편, 한국교회 보수주의 계통 고신총회 두 계파의 보스가 금년 말 은퇴를 하게 된다. 보수 측의 서울 Y교회 L목사와 창원 H교회 Y목사가 정년은퇴를 선언했다. 두 계파 보스가 은퇴를 하면 누가 그 자리에 바통을 이어갈지가 미지수?
계파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지만 지금도 보이지 않게 영향력 행사는 여전하다고 한 교단 관계자는 코멘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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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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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부목사가 여자 부목사를 폭언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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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유명한 A교회. 남자 부목사가 여자 부목사를 폭언한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 되고 있다. 부임한지 두 달 밖에 안 된 남자 P 부목사가 교회에 오랫동안 있었던 여자 L 부목사에게 수석부목사를 양보해 달라며, 처음엔 부탁했지만 이후 언성이 높아져 벽에 밀치고 폭언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교회 한 관계자에 의하면 문을 잠가놓고 밀고 당기는 폭언까지 한 것이 감금되는 사태까지 갔다고 말했다.
남자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설교를 중지시키며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라 지시했고, 여자 부목사는 사건 발생 후 스스로 사임서를 제출하고 외부와 단절한 채 지내고 있다. 옛 말에 호사다마라고 했다. 잘 나가는 교회에 방해가 생기기 마련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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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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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의회 오버 행동 이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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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오전 10시경 부산장신대학교 대학평의회가 간담회로 모였다. 그날 강당에서 채플이 마칠 즈음에 대학기획처장 K 교수를 향해 대학평의회 S 장로가 “대학평의회 모임에 좀 가자”고 했다. 그러자 K 교수는 “내가 갈 이유도 없으며, 강의하러 가야한다”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여러 학생들이 채플을 마치고 나오는 시간에 평의회 S 장로가 교수 팔을 끌어당기면서 “대학평의회 요청사항이 있고,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언성이 높아지며 몸싸움이 벌어지는 헤프닝이 있었다. S 장로는 예배드리는 중이 아니고 축도를 마친후에 K 교수를 평의회 모인 자리로 모시고 가기 위해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K 교수와 교수협의회는 “이것은 엄연한 교권침해며, 교수회의를 통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대학평의회는 총장을 보좌하는 예산 자문기구와 개방이사, 감사를 추천하는 기관인데도 불구하고 선을 넘어선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이사회 한 관계자는 말했다.
한편 이날 이런 헤프닝이 벌어진 이유는 대학평의회가 모여 1차 회의를 가졌고 또 간담회를 열어 10가지에 달하는 질문과 함께 교통비를 지급해주지 않느냐며 기획처장을 불러 낸 것으로 안다고 대학 관계자는 코멘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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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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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장기려 기념관과 기념사업회는 부산 시민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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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가 故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그가 태어나 자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로 174번지에 우뚝 세워졌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4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한 경남이 낳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관이 통합 경남노회(노회장 정성익 목사)가 부지를 제공하고 창원시(시장 안상수)가 국비 45억, 시비 5억 총 50억을 들여 2층 규모의 건물(전시실, 강의실, 수장고 등)로 기독교 역사의 산 체험장으로 만들어졌다. 민족의 성자이자 한국교회의 자랑스런 순교자 주기철목사기념관은 그야말로 한국교회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기념관이 되었다.
부산 초량교회, 마산문창교회, 평양산정현교회를 담임하고 재직하면서 목사 사례비를 올리지 않고 오히려 70원, 50원, 30원으로 사례비를 줄이도록 당회에 요청했다. 그의 참목자상은 지금 한국교회 4만여 목회자들의 귀감이 된다.
△ 故 성산 장기려 장로 기념관은?
항일독립운동가로 신사참배를 반대한 주기철 목사는 기독교의 순교자로 신자와 불신자 상관없이 인정을 받는 인물이다. 창원시가 국비와 시비 50억 원 지원으로 주기철목사기념관을 세워 국내 성지의 메카로 만든 것을 보고 느낀 점이 있다.
왜 성산 장기려 장로의 기념관은 고신대복음병원 안에 외톨이처럼 세워져 있을까? 장기려 장로는 순교를 한 것은 아니지만 민간 최초 청십자의료보험을 만들어 국민의료보험의 효시가 되었다. 또 간이식 수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해 국민건강에 기여하고 가난한 백성을 위해 헌신한 한국의 슈바이처로 가난한 백성을 무료로 치료했던 믿음의 어른으로 순교자 못지않다. 부산 시민의 자랑거리로 남을 만하지 않는가.
△ 성산기념사업회 통합은 범부산시민의 것으로 돌려줘야한다
최근, 밖에 벌리고 있던 장기려기념사업회를 그가 세운 고신대복음병원으로 가져와 하나의 통합된 기념사업회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로 통합된 기념사업회는 가장 잘 한 것이지만 이것이 잘못 비춰지면 고신대학교복음병원만의 PR과 전용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산 장기려 박사가 복음병원을 설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 말년에 남긴 활동영역은 그의 스승이었던 백인제 선생이 세운 부산 백병원에 가서 더 열심히 봉사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부산대학교병원에도 헌신하여 성산기념관이 있고, 부산 카톨릭대학에도 헌신한 업적이 남아 있다. 이는 부산 시민 전체의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뜻에서 어느 한 기관에서 유지, 관리하는 것보다 부산시가 주도하여 대지를 구입하고 기념관을 만들어 부산 시민들의 자랑거리와 역사의 산 체험장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범부산시민성산기념사업회로 거듭나며 새 성산기념관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기철목사기념관과 같이 창원시가 주도한 것처럼...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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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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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호 목사] 말씀의 부활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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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경험하는 부활절, 이젠 부활절이 주는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되새김질 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말씀의 부활이 없이는 안 된다는 점을 논하고 싶다. 말씀이 선포되지만 성도들의 삶이 안 바뀐다고 난리인 시대이다. 거꾸로 그럼 말씀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나는 바뀌었나? 만일 내가 안 바뀐 그 말씀으로 성도를 바꾼다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닌가?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전 존재를 바꾼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기에 유익한 말씀의 부활이 절실하다. 이번 부활절을 기념하면서 말씀의 부활을 외쳐 본다. 말씀 사역자라면 성경전체를 30분 만에 말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와 신구약 중간기, 그리고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서를 5분 정도씩 할애해서 말할 준비가 되었는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그렇게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0분 만에 성경 좀 설명해 주십시오” 그럼 어쩔 텐가... 훈련되지 않으면 버벅거리고 막상 지쳐서 포기한다. 줄이지 못하면 늘리지도 못하고, 늘어진 것을 줄이지 못하면 늘인 것도 허당일 수 있다. 교리와 신학은 죽을 때 까지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역사적 전통을 지켜온 바른 신학을 더 연구해야 한다. 그보다 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전체를 이해하는 일이다. 목회자는 물론이고 성도도 동일하다. 짧게 핵심을 꿰고 있어야 한다. 이게 준비 안 되면 창조적인 스토리가 생기지 않는다. 거룩한 상상력이 전혀 일어 날수 없다. 그뿐인가? 성경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는지 알기위해 주도면밀하게 성경 각 권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서는 과거사건을 스토리로 전개하고 있다. 스토리를 정확하게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가서는 현재의 경험을 노래로, 시로 드러내고 있다. 거룩한 정서를 가지고 묵상해야 한다. 선지서는 미래에 일어날 기대를 설교로 메시지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시간대는 영원한 현재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관통한다. 그러므로 시간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400년 침묵기에 일어난 역사를 알아야 복음서를 이해 할 수 있다. 400년 침묵기에 일어난 헬라와 로마 그리고 100년간의 이스라엘 독립기를 이해해야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열심당과 에세네 사람들과 율법, 이스라엘을 준비시키는 하나님 그리고 복음을 통해서 히브리인에게, 로마인에게, 헬라인에게, 그리고 오고 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이야기를 꿰뚫어 설명해내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아무 퍼즐이나 하나씩 꺼내다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만다. 결국 횡설수설이 되고 만다. 성도들은 오리무중이다. 퍼즐 하나의 이야기를 아무리 잘 이야기해도 그 다음 퍼즐과 아귀가 맞지 않으면 꽝이다. 전체를 연결하여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다음에야 비로소 퍼즐의 오묘함이 드러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순서를 잘 맞춰서 보여줘야 한다. 아무쪼록 어리바리 하다가 사역과 인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제자리에서 든든하게 사역하다가 주님 뵈옵는 일이 일어나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황홀하신 하나님, 아름다우신 하나님, 거룩한 쾌락과 희락의 세계로 이끄시는 그 하나님을 지루한 하나님, 따분한 하나님, 재미없는 하나님, 매력 없는 하나님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감동과 충격을 주는 하나님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나님, 반응 없고 대답 없는 하나님으로 소개해서는 안 된다. 안내자가 길안내를 잘못하면 해고되는 것이다. 버림받은 자로 자신을 부리는 일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금년 부활절에는 말씀사역자들 모두에게 말씀의 부활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님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종들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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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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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부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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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교수(부경대학교)
올 해도 어김없이 부활절을 맞는다. 부활절이 절기상 봄과 맞물려 있음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겨우내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생명들이 봄과 함께 되살아나는 자연적인 현상 속에서도 부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부활절은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다. 일 년에 한 번씩 경험하는 절기행사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부활절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음과 동시에 그 정신을 현재화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부활절이면 내가 죽은 이후에 나도 예수님처럼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후의 부활신앙만 확신하고 살아간다. 이는 반쪽짜리 부활신앙이다. 사후 다시 살아 날 것이라는 부활신앙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면서 부활신앙을 실천해 가야한다. 이러한 실천이 없으면 온전한 부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살아가지 못함으로써 비난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참된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삶인가? 이는 어려운 신학적 논의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부활이란 단어가 지닌 근원적인 뜻만 잘 이해하면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사안이다. 부활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남”이다. 이 단어 속에는 두 가지의 요소가 들어 앉아 있다. 하나는 죽음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살아남이다. 죽음과 삶, 이 두 개의 사건이 함께 함축된 개념이 부활이란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핵심적인 의미는 부활은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죽지 않고는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활절 하면 다시 살아나는 사안에만 관심을 주로 가졌지, 부활의 전제조건인 죽음은 강조하지 않았다. 부활이 지니는 원래적 의미의 핵심은 다시 살아나는 것 못지않게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늘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는 부활도 경험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일상 속에서 부활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사후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부활 신앙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부활신앙을 경험하는 자라야 사후의 부활을 제대로 신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소위 부활 장이라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린도 교회에 명쾌한 논리로 설명하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상한 사람이라고 강한 어조로 강변하고 있다. 이런 확신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 자신이 부활의 본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 증거이다. 매일 죽는 삶을 통해 사도 바을은 현실적으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매 순간마다 우리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님의 형상과는 거리가 먼 비본질적인 “나”를 죽이고 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는 진정한 “나”가 새롭게 탄생하는 부활을 경험한 바을이기에, 현실 삶에서의 부활을 토대로 사후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비본래적인 “나”는 한번 죽음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삶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무시로 되살아나서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이 고통 속에서 사도 바을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외쳤던 것이다. 매일 매일 자신을 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매일 자신이 죽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성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매일 매일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확신하는 데 있으며, 그 확신을 실천하는 데 있다. 일년에 한번 절기로 지키는 부활절이 아니라, 매일 매일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매일 매일 부활하는 신자로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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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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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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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김북경 목사(런던한인교회 원로)로부터 온 E-메일에 첨부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의 연설문’의 내용이 참으로 감동적이여서 함께 나누길 원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우루과이 대통령(81세)의 연설문은 감동적이다. 발전과 행복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이런 연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아래 연설문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남미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까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2010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지난 2월 말 퇴임했다. 그는 집권기간 중 대통령 궁을 노숙자 쉼터로 내어주고, 대통령 월급 1,300만원 중 90%를 빈민주택기금으로 기부했다. 차는 28년째 타고 다니는 폭스바겐 비틀. 대통령 경호원은 2명, 집은 33년째 살고 있는 우루과이 전통가옥이다. 그의 집권 이후 우루과이는 매년 5.5%대의 경제 성장률을 이뤘고 국민소득 1만5천불, 국민 65%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호세 무히까 대통령의 연설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저는 이 자리에서 몇 가지 의문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오후 내내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빈곤을 없애는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습니다. 과연 우리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현재 잘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발전과 소비 모델을 흉내 내자는 게 아닙니까?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독일 가정에서 보유한 자동차와 같은 수의 차를 인도인이 소유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느 정도 남을까요? 더 명확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서양의 부유한 사회가 하는 그런 소비 행태를 세계의 70~80억 사람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원이 지구에 있을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아니면 언젠가 우리가 다른 논의를 해야만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문명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문명은 시장 경제와 경쟁이 낳았습니다. 그리고 무한의 소비와 발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경제가 시장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장 경제가 자원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니는 세계화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세계화를 통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계화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습니까? 이런 무자비한 경쟁에 바탕을 둔 경제시스템 아래서 우리가 연대나 더불어 살아가자는 논의를 할 수 있나요? 어디까지가 동료이고 어디까지가 경쟁 관계인가요? 우리는 발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량소비가 세계를 파괴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제 부족한 식견으로 보면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정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만든 사회 모델인 것 입니다. 그리고 반성해야 할 우리들의 생활방식인 것입니다. 제 동지들인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6시간 노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6시간 노동을 하게 된 사람들은 다른 일도 하고 있어 결국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오토바이나 자동차 등의 구매에 들어간 할부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돈을 다 갚고 나면 자신이 저처럼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는 노인이 되어 있고, 자신의 인생이 이미 끝나간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운명이 아닌가 라고요? 제가 말하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개발이 행복을 가로 막아서는 안됩니다. 개발은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어야만 합니다. 개발은 행복, 지구에 대한 사랑, 인간관계, 아이 돌봄, 친구 사귀기 등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울 때 우리는 환경 문제의 가장 핵심 가치가 바로 인류의 행복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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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