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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지 창간 20주년이 되기까지…
    대한민국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방까지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부산에서는 두 번째 초교파신문인 ‘부산기독교신문’의 제호로 1995년 4월에 창간 첫 호를 발행했다. 그 당시에는 부산 교계가 불과 300~350개 교회에 불과한 열악한 교계 환경 속에서 교단지도 어려웠던 시기였다. 초교파신문이 자리 잡기엔 역부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래서 5년 먼저 발행한 동업지 A 신문은 경영부진으로 부도를 맞아 몇 년간 휴간 되고 발행인이 부도수표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런 파란만장한 세월 속에 꾸준히 견뎌 온 본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지가 탄생되기까지 그간 20년간 타 중앙지 기자로 노하우를 쌓아 온 덕분에 인동초처럼 견뎌 왔다. 하지만 어려움은 피눈물 나는 고통 그 자체였다. 뿌리를 내리고 여러 이사장과 이사, 후원교회 배려로 이만큼 지탱해 온 것은 하나님의 한량 없는 은혜이다. 지난 6월 18일 오전 11시 창간 20주년 기념예배, 강봉식 이사장 취임과 김상권 장로 이임, 더불어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野史 2>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곳에 많은 교계 인사들이 성원해 준 것에 머리숙여 감사할 뿐이었다. 더 많은 기도와 후원으로 독자와 교회 앞에 거듭나는 교계 정론지로서, 광야의 소리 같은 용기 있는 신문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드린다. 지면을 빌려 참석한 100여명의 교계 인사들과 축금, 화환 등을 보내주신 여러 기관, 개인에게 거듭 감사를 드린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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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6-25
  • 임박한 고신대병원장 선거
    7월 20일 고신대복음병원장 선출은 고려학원 재단이사회에서 이사 9명 중 3분의 2 이상, 총 6명의 지지표를 받아야 가능하다. 이번 병원장 선거는 전광식 총장과 이사회가 조율해야만 통과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총장 고유권한인 제청권을 병원장 심사위를 구성해 후보자를 제청하겠다고 총장이 발표하자, 일부 이사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한편, 잘못하면 병원장 대행체제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현 이상욱 병원장의 임기는 8월 20일로, 한달 전에 선정하는 이사회의 행보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배제 못한다는 여론이다. 항간에 현 이상욱 병원장이 재선을 언급했다고 하고 현 부원장이며 고신의대출신 1기생 오경승 교수도 병원장 도전을 할 것이라는 여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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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6-25
  • 통합 제100회 총회 공천위원장 민영란 목사 선임
    통합 측 제100회 총회 핵심 상비부를 공천하는 총회공천위원장에 부산의 민영란 목사(부산장신대 이사장)가 당선됐다. 민 목사는 총회 총대 1500여 명을 공천하는 총책임자가 되었고, 공천부 서기에 최현성 목사, 회계는 홍성언 장로로 총회 공천위 조직이 완료 됐다. 23일 100주년 기념 소강당에서 총회임원 주관으로 전국 65개 노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노회장 김영동 목사와 부산남노회장 민영란 목사가 경합을 벌여 26:37로 민 목사가 당선됐다. 총회 계파 가운데 고시영 대 반고시영 전선으로 개혁을 열망하는 노회장들의 쾌거였다고 민 목사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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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 K교단 제3의 계파가 형성됐다고?
    K교단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총회임원, 유지이사, 법인이사, 감사후보 선거 공고를 교단지 6월 13일자에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7월 7일 오후 2시 각 노회가 임시노회를 열어 본격적으로 후보자 추천결의에 할 예정이다. 하지만 모 인터넷 신문에서 사설로 쓴 K교단 계파의식이 희석되고 신대원 기수와 서열 중심으로 단일 후보 전망을 게재했다. 그리고 계파가 많이 희미해진 것은 교단 인사들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동안 내려온 계파의식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증경총회장 L목사는 기자에게 “모든 조직체에는 계파가 있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이번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현 검찰총장보다 2년 후배를 봐도 서열과 기수는 정치계나 교단에도 파괴될 수 있고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또한 유일하게 보수 개혁파에서 부산 B목사를 이번 부총회장 후보로 러브콜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단 내 새로운 제3의 계파가 생겨난 것이 인터넷 모 언론이라고 교단 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어느 중진 목사가 본보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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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 K장로 사과함으로 취하
    부산 사하경찰서에 정식 고소한 바 있는 A교단 K장로가 직접 본사를 내방해 잘못을 시인, 사과함으로 고소인이 지난 5월 20일 조건 없이 취하하고 서로 화해했다. 부산사하서(제2015-02344호) 사건 처리 결과통보는 피해자가 피의자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명시적인 표현을 했으므로 불기소(공소권 없음)의견으로 부산지방검찰청에 송치했다고 통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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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 故 송상석 목사, 그는 친일파의 고등계 형사였는가?
    고려파(고신)의 두 물줄기가 있다면 故 한상동 목사와 故 송상석 목사일 것이다. 이들이 고려파 초창기 교단형성의 초석을 다졌다는 것을 교회 역사가들이 말해주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고신 경남노회 100년사를 집필하기 위해 허창수 목사(창원동성교회), 양재한 장로(창원 한빛교회), 강종환 장로(가음정교회)가 본사를 내방했다. 강종환 장로는 “<경남노회 100년사>는 고신교단의 역사이자 교단 역사의 전초기지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고신 경남(법통)노회에서 활동했던 故 송상석 목사(제일문창교회)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故 송상석 목사는 과연 고등계 형사였나? 故 송상석 목사는 1967년부터 1975년까지 고려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의 사위 故 한남석 장로(부산영락교회)가 소유했던 애린유스호스텔(부산 중구 보수동)과 부산남교회 인근 부흥여관(부산 중구 동광동)에 머물면서 이기진 목사(진영교회), 현기택 장로(제일신마산교회), 김해룡 장로(진해시장 역임), 故 박윤섭 장로(교단 장로부총회장 역임) 등 그의 일급참모들과 함께 의논하며 어울렸던 현장을 목격한 바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코람데오닷컴에 K장로가 기술한 글에서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고 애를 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난 故 송상석 목사를 친일파, 고등계형사, 독립 운동가를 투옥시킨 인물로 표현한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다. 송상석 목사는 1938년 신사참배 반대자를 도운 혐의로 이약신 목사와 함께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루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나왔다. 그의 좋은 점은 뒤로하고 나쁜 과거 행적을 나열하면서 매도하는 것은 역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약간 벗어난 사관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1979년 9월 총회 직전, 총회 전망기사를 위해 송상석 목사가 살아생전 자주 갔었던 애린유스호스텔에서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의심과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기자 근성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송 목사님, 어른에 대한 실례를 무릅쓰고 어렵게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라고 운을 떼자 송 목사는 한번 들어볼 테니 말을 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딱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과거 고등계 형사로 계셨습니까?” 그가 대답하기를 “아, 그거. 교회를 다니지 않던 소싯적에 잠시 일본계 형사 시험에 합격해 활동한 적 있었지. 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민족 양심에 가책을 받아 사표를 쓰게 됐다네.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 사립 원량학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이곳 교회 강임영 영수의 전도로 예수를 믿었지”라면서 “그런데 말일세,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인을 괴롭게 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사도 바울을 기억하는가? 그때 형사 신분증을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네. 1946년 만주에서 신학자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오라는 사명을 맡아 바다로, 산으로 무수한 역경을 겪을 때 그 신분증이 필요했다네. 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해 준비하셨던 것 아닌가 싶네. 일본군 검문소를 수없이 통과할 때마다 그 형사신분증으로 죄인(박형룡)을 압송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위기를 모면했었네. 그때는 ‘친일인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속국에서 살아남아 큰일을 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이었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대 기사화하지 말게”라고 오프더레코드를 조건으로 말했다. 통합 측 유호준 증경총회장을 비롯해 부산에 김길창 목사(항서교회), 소설가 이광수 등 친일인사 명부에 올려져있는 교계인사들이 수없이 많았다. 송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제 당시 그들의 마음 한켠에 조국 독립을 위한 염원을 붙들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또 강압에 못 이겨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故 송상석 목사가 남긴 업적은? 송상석 목사는 서울에서 종로 중앙교회 김창준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김창준 목사의 후원으로 금연, 금주 등 절제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3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고 1934년 제29회에 졸업했다. 1934년 5월에는 조만식 장로가 회장으로 조직된 ‘조선 기독교 절제 운동회’에 총무를 맡았다. 그 후 평양문 밖 대타령교회 청빙을 받아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무렵 경남 진해에서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 목사 등이 주도한 신학 강좌가 개최됨을 알고 거기에 합류하면서 고신교단에 발을 딛게 됐다. 그는 송도 고려신학교 땅을 합동 측과 환원하면서 갈라설 때 배경업 장로(칼빈신학교 서무과장)가 밤새 줄자로 재어 도면을 그리고 법원에 고신교단 것으로 등기하고 또 구포 땅 70만여 평 기독교협력회 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김진경 교수(연변과기대 총장), 김상원 장로로 이어오면서 김상원 장로 개인에게 고스란히 뺏겼던 비하인드도 있다. 오늘날 성도고등학교 자리다. 여러 교단 부동산을 바로 찾아 세우려고 노력한 사람이 송상석 목사지만 그의 업적은 온데간데없이 나쁜 역사의 흔적만 들춰지고 있다. 마산문창교회의 지루한 소송 30년 법정분쟁자로, 1967년 7월 고려학원 재단 공문서위조 책임의 불명예 이사장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역사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도 기자들의 역할 아니겠는가?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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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06-25
  • [함께 생각해 봅시다] 대단한 나라 대한민국 (1)
    이제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내가 한국인이란 것이 자랑스러워 1960년대 한국(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의 절반 수준이었다. 120개 독립국가 중 북한은 40위인데 한국은 10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최빈국가였다.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 그러다가 1976년을 기점으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2배로, 3배로, 4배로, 10배로, 20배로, 근 30배로,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소득의 격차가 생겼다. 눈여겨볼 것은 북한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국민소득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새로 탄생했거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 나라가 85개국인데 이 85개국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이건 놀라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이 한때 “한국의 삼성, LG, 포스코, 현대가 우리 뒤를 바짝 쫓아온다”고 경계하더니 지금은 자기들이 뒤지니까 “한국의 이 회사들을 어떻게해서든 따라잡자. 더 밀리면 안된다” 이렇게 구호가 바뀌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한국을 연구하는 박사급 인사 3,000명이 한국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자기들은 대국이고 한국은 별볼일 없는 변방 소국으로 생각해 왔다. 그렇게 보던 한국을 이젠 기를 쓰고 배우려고 한다니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가. 한국은 이젠 더이상 후진국이 아니고 개도국도 아니다. 이미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외국의 원조를 받아 겨우 연명해 오던 우리나라가 이젠 빈곤한 나라를 지원하는 DAC 국가로 변모하였다. 한국의 국력과 순위를 보면 국토의 크기는 미국의 한 주에 비할 정도로 작은 나라이지만 GDP(국내총생산규모)는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대국이다. 조선산업은 세계 1위, 철강과 자동차산업은 세계 5위, 반도체 생산은 세계 1위, 인터넷 기술도 세계 1위, 휴대폰 기술도 세계 1위, 교육열도 세계 1위이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순 없고, 종합국력이 세계 9위이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 한국을 “미꾸라지 용된 나라”라고 했다. 전날에 우리나라는 농업국이면서도 식량도 자급자족이 안 되는 나라였고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나라였는데 이젠 어느 사이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건 전날 상상도, 예측도 못했던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한국인이란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 한국이 어떻게 이토록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는가. 이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되었다.(신명기 8:11~18)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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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5-06-25
  • [시내산] 왜 정치에 박수치지 않는가
    최근 총리후보자를 거명할 때 거의 사양한다는 말이 뉴스에 나왔다. 이는 현실정치의 주소이며, 정치에 박수를 칠 수 없다는 참담함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치, 플라톤의 이상국가론부터 현대정치까지 그 이론의 핵심은 최대 다수의 백성들에게 최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는 숨은 백성들까지 굴 밖으로 나오게 하라는 따뜻한 말이다. 이는 군주제이든, 공화제이든,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모든 형태의 국가는 이를 실현하려는 것이 정치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현실은 어떠한가? 비판하고 소외되어 도피하였던 백성들이 돌아와 행복을 구가하는가? 혹, 동굴 속으로 몰아넣는 꼴은 아닌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민초들은, 흔히 유전과 무전의 차별과 배경의 유무에서 오는 한쪽의 상실감이란 문제이다. 또 자신의 역할을 찾아도 기회를 얻지 못해 실망감에 눌려 주저앉아 한숨 쉬게 되었고 하늘 꼭대기 까지 올라간 땅값과 전월세 값과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연일 보도되는 뉴스, 기대했던 정치인들이 주는 실망감, 외치는 개혁이라는 구호 그 자체가 개혁인가?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흠집 내기 품위와 장기근속도 아닌데 스스로 연금수혜자가 되게 한 이기적인 의정활동이 주는 비애로 인하여 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접고 어디론가 깊숙이 숨어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민생문제 외치지만 여전히 불량 식재료와 유해물질로 음식을 만들어 팔고, 돈벌이를 위해 가짜 물품을 제조하는가하면 가격을 담합하는 이해 할 수없는 경제 난맥상과 사스에 이어 찾아온 메르스 등, 각종 전염병 바이러스에 답이 없으니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도력이 필요한 곳, 정치는 물론 경제는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모인 곳, 사회단체, 학교, 교회에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백성들의 소리가 정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 다양한 소리들을 합창의 지휘자처럼 아름다운 화음으로 창출하여야 한다. 만약, 그 소리들을 화음으로 만들어 낼 자질이 없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지도자의 길을 포기하거나 그만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참신하고 진취적이고 개혁적이라 말해도 그에 부합하는 지식과 경륜이 없다면 헛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보았는가? 정치는 무대에 올려 진 연극과 같아서 영화와 달리 N. G(no good)할 수 없다. 대사를 잊어도 연기가 서툴러도 다시하고 되돌릴 수 없이 그대로 끝내야 하는 일이기에 밤을 새워서라도 연구하고 준비하여 무대에 올라야 되는 것이다. 머리에 전문가적 지식을 채워 높은 수준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부합하는 성명도 발표하고 정성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용감한 사람들” 이라는 책으로 프리처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이었던 J. F. 케네디가 상원의원시절, 세인트로렌스 강으로부터 중부 시카고지역까지 수로를 개설하는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 후 찬성연설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정책은 자신의 선거구인 보스턴 항구의 이익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 참모진들은 지역민들의 반대를 우려하며 말렸다. 그러나 수로가 완성되면 배들은 멀리 돌지 않고 곧장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어 국가의 이익을 창출하는 미래가치가 더 크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그는 “물거품 같은 인기를 경멸한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었고 소신과 지식과 이상의 승리이었다. 가끔 압도할 만큼의 지식도 경륜도 없는 사람들이 재력과 배경과 또 운동권이니 누구의 아들이니 하는 이력만 들고 정치권에 앉아 세계화를 논하고, 통일과 민생을 논하지만 결국 답이 부족하다. 또한 자신과 지역과 정당과 계파의 이익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정치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 백성들이 정치를 신뢰하고 박수치지 않는가?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듯 도망가게 하지 말라.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교회도 그렇다. 교인들이 도피처에서 밖으로 나오게 하고, 모이게 하여 함께 고민하고 즐거워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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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 [탁지일 교수] 신천지 건축 블랙코미디
    도무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신천지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144,000명이 완성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신천지 신도들이 육체영생을 이루고, 세상을 다스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날이 곧 온다는 얘기다. 실제로 신도수가 거의 144,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신천지는 요즘 왜 그렇게 건물 건축(매입)에 집착하는 것일까? 144,000의 날이 못 미더운 것인가? 아니면 그날이 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일까? 144,000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자신들 소유가 될 터인데, 왜 이렇게 건물 건축(매입)에 힘을 쏟는 것일까? 의심할 여지없이, 144,000은 종교사기인 것이 분명하다. 요즘 신천지는, 144,000은 단순 신도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들”의 숫자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이 황당한 주관적인 판단 기준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신천지 교리는 지속적으로 변개되고, 144,000의 그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신도들은 144,000의 날을 위해, 가족의 품을 떠나, 끊임없이 거리로 내몰려, 피곤하고 지친 삶을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물론 이만희씨와 후계자 김남희씨는 가평의 호화 별장에서 오늘도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들을 보면,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블랙코미디가 유행이라고 한다. 신천지의 최근 모습은 단연 종교적 블랙코미디의 초절정을 보여준다. 교리의 변개와 함께, 신천지의 또 다른 애처로운 모습은 부동산에 대한 집착과 탐욕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곳곳에 집회소 마련을 명분으로 부동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산에서도 거액을 들여 연제구에 안드레지파 본부 건물 마련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허구적인 144,000 교리의 실패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신천지가 몰락해도 재산(돈)은 남기를 바라는 탐욕 때문일 것이다. 둘째, 나름 정상적인(?) 사회적 노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한 한국사회에, 자신들이 (간판도 붙이지 않는) 비밀조직이 아니라, 평범한 종교단체인 것을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144,000의 날까지 비밀조직(모략)을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드린 것으로 보인다. 셋째, 신도들의 효과적인 통제가 목적이다. 계속되는 모략포교로 인해 신천지 신도들은 정신적으로 지쳐있고, 또한 거짓말 스트레스로 인한 낮은 자존감과 불안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친 신천지 신도들을 다독거릴 번듯한 건물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신천지는 144,000의 ‘단기전’이 아니라, 나름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전’을 준비하는 양상이다. 그렇기에 최근 그토록 부동산을 탐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영생과 144,000을 주장하는 신천지의 블랙코미디가 애처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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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5-06-11
  • [목회자 칼럼] 모스크바 방문기
    주후 2015년 5월 18일, 유럽 고신 총회의 초청을 받아 장로 부총회장과 함께 난생 처음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하게 되었다. 소련, 모스크바, 크레믈린, KGB ... 이러한 단어들이 익숙하게 먼저 떠올려지는 땅이었으며, 비록 지금은 ‘러시아’ 라는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우리들에겐 여전히 무겁고 어두운 인상으로 다가오는 나라임은 어찌할 수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막상 발을 직접 디디며 보고 배운 느낌은 먼저 모스크바까지의 거리가 5천 킬로 정도 밖에 안되는 비행거리와, 10시간 남짓하는 비행시간은 의외로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때,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던 공산주의의 종주국(宗主國)의 심장부인 모스크바로, 색상도 선명한 대한항공을 타고 찾아가게 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몽고의 고비사막인 듯한 상공을 지나치니 어느덧 러시아 대평원이 펼쳐진다. 끝없이 계속되는 평지, 습지, 호수들을 내려다보면서, 우리 조상들은 작은 땅, 한반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어떻게 러시아 사람들은 저 광활한 대륙을 다 차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과 부러움을 함께 가지게 된다. 모스크바 공항에는 장로님이 마중 나와 주셨다. 구 소련말에 용감하게 입성하여 정착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대한 독립군을 대하는 것 같이 엄숙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한국인 최초의 러시아 선교사인 황상호 목사님과 함께 모스크바 장로교회의 설립 멤버로서 얼마나 긴장하고 수고를 많이 했을까하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장로님과 가정위에 크게 칭찬과 축복해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제29회 유럽고신총회 개회예배에서는 마 16:15-19의 말씀으로 (교회, 이 땅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설교하였다. 교회는 1. 주님이 친히 세우셨으므로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다. 2. 주님께서는 마귀의 세력(음부, 죄, 사망, 지옥)을 제압하는 권세를 우리 교회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다. 3. 주님께서는 ‘천국 문을 여는 열쇠’를 교회에 맡기셨다. (마 16:19, 28:18-20, 롬 1:16, 10:8-17) 교회는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다. 고국을 떠나 낯선 유럽땅에서 선교사로, 목회자로 좁은 길을 걷고 있는 동역자들에게 용기와 확신과 꿈을 나누어주고 싶은 열망으로 복음을 증거하였다. 모스크바 장로 교회에서의 주일 예배는 ‘행복’ 그 자체였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돌아보면서 러시아는 더 이상 공산주의 소련이 아니고, 서구 유럽풍의 문명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명의 기초와 정신은 단연코 우리 기독교 정신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치적인 자유만 한 단계 더 성숙되면 우리들 자유 세계와 더불어 밝고 건강한 인류문명의 발전대열에 능히 함께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현상을 가장 잘 말해 주고 있는 것 하나를 여행중 발견하게 되었다. 스탈린은 인민의 복지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모스크바의 대표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정교회 건물을 수영장으로 개조해 버렸다. 그러나 60여년 만에 민주주의 회복의 선구자격인 전 대통령 옐친에 의해 교회당으로 원상복구를 시작하였으며, 공사 20년만에 본래의 아름다운 예배당으로 회복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건물을 보면서 러시아의 ‘회복과 희망’을 확신하고 싶다. 성 삼위 하나님께서 한 때 기독교가 왕성함으로써 찬란한 기독교의 부흥을 꽃 피웠던 이 땅, 러시아에 70년 만에 밝은 태양, 의로운 해를 비춰주고 계시므로, 러시아 교회가 전열을 재 정비하여 세계 선교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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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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