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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집회 참석하고, 교계 행사도 참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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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부산교계지도자신년하례회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중 A의원의 경우 구원파 박옥수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거론될 정도로 IYF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한 인물이다. 최근 구원파피해자모임측이 “박옥수 구속영장 기각 배후에 A 국회의원이 있다”고 주장할 정도. 이날 참석한 정치권 인사로는 서병수 부산시장과 A 의원, 그리고 중구청장, 사상구청장, 해운대 구청장 등이 교계 신년하례회에 참석했다. 이중 IYF 월드캠프에 참석해 축사나 명사강연을 한 인물이 5명 중 3명이나 된다. A 의원과 부산시장, 그리고 해운대구청장 등이다. 모 교계지도자는 “혹시 여기가 IYF 행사로 착각하고 온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할 정도. 다른 모 인사도 “이런 행사(신년하례회) 때 항의를 해야지, 정치인 온다고 좋아만 하는 부기총 집행부도 한심하다”며 “이단이 부산에서 흥하는 이유가 다 이런 이유 때문 아니겠느냐”고 따끔한 지적을 했다. 한편, 지난 12월 31일 불구속 기소된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씨의 변호인과 재판부 배석 판사가 부부사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대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해 재판부 전원이 교체됐다. 박옥수 씨의 혐의는 수백억 대 주식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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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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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세모가 유인물 살포의 핵심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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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장신대학교를 다시 세우는 사람들의 모임(부세모)이란 이름으로 지난해 9월 통합 총회 총대 1500여 명에게 ‘부산장신대의 아픈 현실을 총대님들에게 알려드리는 탄원서’라는 유인물과 SNS로 살포한 것 때문에 김해중부경찰서에 유인물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고발된 내용들이 차츰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1월 12일 본지를 방문한 부산장신대평의회 의장인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와 서은성 장로가 유인물의 진실을 말하고 살포한 것이 본인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유인물 살포는 어디까지나 학교를 사랑한 나머지 아픈 현실을 바로 알리려는 의도였다고 말하고 한 개인이 아니라 여기에 가담한 인사가 G목사를 비롯한 여러 동문과 뜻을 같이한 다수 인물들이라고 김해중부경찰서에 직접 가서 소상히 진술하고 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SNS에 무작위로 살포한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의 중대함을 느껴 이것을 경찰이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언했다. 모 인사는 “이것은 최무열 전 총장을 살리려는 술수밖에 안된다”고 코멘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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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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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시장' 주변 교회들은 시들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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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은 부산 국제시장(중구 신창동) 일대이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국제시장 안에 ‘종각국수’집이 있다. 단연 서민들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이곳 종각국수 집의 박 모 주인은 이곳에서 돈을 벌어 중구 부평동 ‘억수탕’, ‘억수여관’을 구입하여 헬스장 대중목욕탕을 경영하다가 작고하는 바람에 다시 팔고, 아파트가 세워졌다. 국제시장에서 장사해 재미를 붙여 잘 나가던 분은 화장품 가게를 처음 미화당 백화점 한쪽 코너에서 시작한 강국만 장로 내외가 신창동 대각사 입구에서 일본인, 중국인들이 즐겨찾는 바람에 지금은 광복로 빌딩 2채를 살 만큼 재산을 늘렸다. 따라서 광복 포럼에 초대회장으로 크리스마스트리축제에 상가대표로 준비위원이 되어 새로운 트리문화축제의 붐을 안겨 주는 주역을 담당했다.교회는 줄고 장사는 흥행해 70~80년대 부산진시장에 처음으로 부산진 시장선교회가 출범했다. 뒤이어 국제시장 안에도 시장선교회를 만들어 매월 한 번씩 예배를 드리고, 모금한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도 가졌다. 시장 내 크리스천이 경영하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고(故)양봉화 장로(동성교회)도 국제시장 내 점포, 빌딩을 갖고 있었다. 소위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기독교인들에게 이곳 국제시장은 생을 이어가는 삶의 터전이였다. 그러나 국제시장 장사는 흥하는데 반해 주변 교회는 차츰 시들어 갔다. 6.25 피난시절 임시청사를 서구 부민동(옛 법원 위쪽)에 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동광교회에 출석했다. 지금 평양노회에 속하면서도 용두산공원에 인접한 위치에 있어서 집회의 전매특허 마냥 이곳이 부산 교계 유일한 집회 장소로 활용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다녔던 곳이라 동광교회는 부지 건축등기를 떼어보면 유일하게 건축등기 없이 그냥 무허가 건물로 남아있다. 과거 부산시청 시장실에서 용두산공원 쪽으로 바라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동광교회였다. 동광교회에서 70년대 초 조용기 목사를 초청, 신유집회를 가졌는데 당시 인산인해로 마당 복도까지 꽉 차고 또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는 놀라운 신유은사가 일어난 역사 깊은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는 부산 중구지역이 상권 중심 지역으로 바뀌고 주거지는 점차 외곽으로 벗어났다. 그러자 교회학교가 쇠퇴하며 사라지기 시작, 거의 교회 내 주일학교는 폐쇄 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복교회(보수동)도 차츰 교인 수가 줄어들고 부산중앙교회(고 노진현 목사 시무)도 교회학교가 안돼 남구 쪽으로 이사를 하고, 부산침례교회도 안락동으로 이주하고 말았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사이 부산중부교회가 민주 성지의 주역으로 적은 숫자의 교인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감리교, 보수교회도 이름을 바꿨고 중구 동광성결교회가 그나마 교인에 맞춘 교회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대청동의 대청교회는 구서동으로 옮겨가고 부광교회만 합동측 교회로 남아있다. 그리고 대성교회(통합)는 반으로 나눠 장유대성교회(한재엽 목사)로 분리했다. 차츰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어른들 예배로 영위하는 교회로 중구 지역 교회들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실정이다. 상업적 장사는 잘 되었으나 한때 6.25 피난 시절의 중구 대청교회, 대성교회, 보수교회, 중앙교회, 광복교회, 부광교회, 성동교회는 교회당 안이 비좁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피난민 수용소와 다름없을만큼 교인 수가 날로 늘어갔던 적이 있었다. 50~60년대까지 피난민 교인들이 교회를 가득 메웠고 70~80년대부터 정상 수준으로 유지되다시피 하다가 거주지가 변두리로 차츰 이주하기 시작하자 교인 수가 줄어들었다. 이처럼 국제시장을 중심한 중구는 한때 부산 교계의 메카라 할 만큼 부산YMCA, 부산YWCA, CBS부산방송(광복동 입구)이 위치해 있었고, 음식점으로는 남정, 피정, 호텔로는 뉴관광호텔과 동양관광호텔로 YS가 부산에 오면 꼭 투숙한 곳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 기독교의 메카는 중구에서 동구로 옮겨가 지금의 중구는 과거 영화로웠던 향수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구 광복로에서 부평동, 보수동, 신창동, 대청로까지 트리문화축제로 인해 광복로가 다시 기독교 향기로 부활하고 있는 추세다. 어느 때인가 몰라도 목사가 국제시장을 지나가는데 자기 교회의 집사끼리 싸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집사님들, 같은 교인끼리 창피하게 왜 싸웁니까?”라고 했는데 같은 교인인줄 모르고 싸웠다고 하는 일화가 있었을 만큼 국제시장 안에 3분의 2가 크리스천 상인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시장 자아상이다.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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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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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양의 해에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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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송우 교수(부경대학교)
양의 해가 시작된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다시금 몸으로 느낀다. 양의 해를 맞으며 모두가 양처럼 살기를 기원하며 새해를 출발했다. 양처럼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우선은 모두가 양처럼 순하게 산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양의 이미지가 지닌 평화로움과 속죄양이 지닌 희생적인 삶을 떠울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양처럼만 살도록 놓아두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양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바보취급당하며, 순한 양이 결국은 참지 못하고 반항자로 변신하도록 만드는 부조리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이 지닌 긍정적인 이미지를 닮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양은 선한 목자를 만나 양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새해 우리가 모색해야 할 삶의 자세를 양과 관련된 몇 가지 고사성어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양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고사성어 속에는 우리가 양의 해를 살아가면서 음미해야 할 삶의 지혜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사자성어가 망양보뢰(亡羊補牢)이다. 새해를 제대로 엮어나기기 위해서는 지난 해의 시행착오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성숙의 단계로 나아간다. 똑같은 시행착오를 매번 반복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실패의 경험이 실패를 초극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 해에 잃었던 양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양을 잃지 않기 위한 채비를 철저히 해가야 한다. 다시는 양을 잃지 않기 위해 양의 우리를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양을 잃고서야 양의 우리를 고치는 일들을 얼마나 경험했는가? 많은 재난과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를 깊이 성찰할 때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양을 잃고서 양우리를 고치는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각각 소유하는 양을 잃지 않고 제대로 간수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복잡하여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다원성과 전문성은 갈수록 삶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복잡성은 이 세상을 더욱 다기망양(多岐亡羊)하게 만들어, 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너무 길이 많기에 제대로 된 길을 찾기가 더욱 힘든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찾아,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늘 공부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않는 처방은 늘 임시방편으로 끝나 언제나 또다시 문제가 생길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에서 문제의 근원을 완전히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부단히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이를 실현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한 사회는 겉은 화려하지만 내실은 빈약한 것들이 세상을 주도하는 양질호피(羊質虎皮)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다른 세상에서 진실을 찾아 실현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양질호피의 세파에 휩쓸려 살아가는 데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있다. 세상풍조를 거슬리기보다는 풍조에 따라 사는 것이 세상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가 일상화되어버리면, 세상사의 가치는 쉽게 양두구육(羊頭狗肉)이 판을 치게 된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하는 근원적 문제 중의 하나가 신뢰구축이라면, 양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라고 팔고 있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현실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사욕에 눈이 멀어 공의가 사라져 도덕과 윤리관념이 밑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양들이 양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산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힘들다.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양들이 목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포악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했던 여랑목양(如狼牧羊)의 시절이 얼마나 많았던가? 민주화 과정을 통해 이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십양구목(十羊九牧)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오직 선한 한 목자만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선한 한 목자를 따르는 순한 양들의 공동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속죄양이 더 필요한 것일까? 한국사회의 변화는 얼마나 많은 속죄양이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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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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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관장]그리스도의 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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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는 많은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나 신년예배 설교 주제일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전 것은 대부분 잘못으로 치부되고, 새로워질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이 단체의 대표를 맡게 되면 이제까지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는가 보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처럼 과거의 모든 허물을 만회할만한 쇄신은 쉽지 않다. 새로운 시도 역시 우리가 이전에 대부분 시행했던 일로 단지 외형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골백번 투표를 하고 개혁한다고 떠들어 봐야 늘 그래 왔듯이 우리 사회는 별 변화가 없으리란 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다. 유대교 랍비가 제자들에게 “동이 트는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한 제자가 “멀리서 개와 양을 구별할 수 있는 때”라고 말하자, 또 다른 제자는 “무화과나무와 포도 덩굴을 구분할 수 있는 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랍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희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들을 너희의 형제나 자매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빛이 있을 때가 바로 동이 트는 시간이고, 그전까지는 아직 어두운 밤이다.” 하시디즘(Hasidism)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동이 트고 새날이 온다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인식하고 그들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의 본질을 깨우쳐 주는 듯하다. 필자가 출석하는 부산 산정현교회의 이번 송구영신 예배 주제 역시 ‘새 일을 행하리라’였다.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새해 비전이 선포되었다. 부임한 지 3년 차에 접어드는 담임목사는 그동안 본 교회의 역사와 정체성(identity)을 세심히 헤아린 듯하다. 평양을 시작으로 이어져 내려온 본 교회 성도들의 삶은 주기철 목사의 순교, 조만식 장로의 애국, 장기려 장로의 봉사를 뜻하는 소위 『주·조·장의 정신』으로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순교나 순국을 말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섬김』이라는 비전이 선택된 것 아닌가 싶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 서로를 섬기며, 지역을 섬기는 교회!” 이것이 새해를 맞는 우리 교회를 통해 행하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새 일’인 것이다. 지금은 지구촌 일원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지만,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이 되어 어둠 속에 있던 대륙 아프리카. 이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타민족을 위해 평생을 숨어 봉사하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온 기자가 원주민들에게 “슈바이처 박사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이 무엇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줬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를 사랑한 것은 알고 있다.”라는 원주민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야말로 온 세상 구석구석의 어둠을 밝히고 새날이 오게 하는 원천이며, 이는 인간을 사랑하여 성육신 해서 지극히 낮은 데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제자 된 삶을 사는 우리들의 새로운 행동 강령이어야 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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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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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급매물-남편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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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도는 급매물 광고 하나.
"사정 상 급매합니다. 1991년 12월 14일 예식장에서 구입했습니다.구청에 정품 등록은 했지만 명의 양도해 드리겠습니다.아끼던 물건인데 유지비도 많이 들고 성격장애가 와 급매합니다.상태를 설명하자면 구입당시 A급인 줄 착각해서 구입했습니다.마음이 바다 같은 줄 알았는데 잔소리가 심하고 사용 시 만족감이 떨어집니다.음식물 소비는 동급의 두 배입니다.사용 설명서는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읽어봐도 도움이 안 됩니다.A/S 안 되고 변심에 의한 반품은 절대 안 됩니다. ㅎㅎ사은품으로 변덕심한 시어머니와 까칠한 시누이도 포함됩니다.울 신랑은 원래는 괜찮았는데 사용자 부주의라며 억울하다네요.글고 울 친구는 내거 팔 때 자기 신랑 1+1로 같이 내놓겠답니다."
대체 결혼은 무엇일까요? 결혼에 대한 정의는 끝없습니다.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곧 결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국 속담에 “결혼은 포위된 요새이다. 밖에 있는 자들은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고, 안에 있는 자들은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혼자들은 결혼했다는 그 멍청함에 대한 벌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 며 결혼을 조롱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이렇게 까지 말합니다. “나는 결혼한 여왕이 되느니 차라리 결혼하지 않은 거지가 더 좋다. 결혼반지는 나에게 멍에와 마찬가지이니까.”그 뿐이 아닙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면 나는 항상 군인들이 전쟁터로 나갈 때 연주되는 음악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결혼을 전쟁터와 연상시킵니다.예부터 금슬 좋은 부부를 일러 ‘삼각배필’이라 했습니다. 서로 허리를 부여잡고 호흡을 맞추어 뛰어야 하는, 누구도 먼저 갈 수 없고, 혼자 갈 수 없는... 호흡을 맞춰 함께 걸어야 하는 그 특별한 소풍날의 경기 말입니다.나이 50줄이 되어 결혼한 함민복 시인은 삼각배필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냅니다
긴 상이 있다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한 발또 한 발
삼각배필의 의미를 아는 그 날, 급매물 광고도 사라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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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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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률상식]총회는 재판국 보고를 변경, 갱심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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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재판국 판결은 취소, 변경, 하회로 갱심케 하는 것뿐이고, 총회는 재판국 보고를 채용, 환부, 특별 재판국 설치뿐이야."
[질의] 총회가 재판국 보고를 검사하여 변경하거나, 노회 재판을 파기하고 노회로 갱심케 할 수 있는지요? 그리고 환부는 노회와 총회 재판국 중 어디로 환부하는 것인지, 법적인 답변을 바랍니다. (합동 총회 사무담당 목사)
[답] 총회 재판국의 판결과 총회 재판국의 판결에 대한 총회 보고와 관련하여 총회가 변경할 수 있는지, 총회가 노회로 갱심하도록 하달할 수 있는지, 환부 시에 노회로 하는지 총회 재판국으로 하는지 등에 대하여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관한 전화 문의가 적지 않으므로 질의자의 교단 소속에 따라 합동 총회의 헌법으로 답한다. 1. 총회 재판국의 판결 범위 총회 재판국은 교회 재판의 최종심으로서 사실심으로 재판하는 것이 아니요, 증거조를 폐하고(권징 제94조2항) 하회 서기가 상회 서기에게 교부한 서류만을 가지고(권징 제96조) 하회가 재판절차에 따라 재판했는지, 법적용은 적합한지, 벌의 정도는 합당한지 등의 적부를 심의하여 판결하는 법률심이다. 그러므로 총회 재판국은 상소인이나 피상소인이나 증인 등을 소환하여 심문·조서해서는 안 되고 하회 서기가 보내온 하회 재판에 관계된 모든 서류를 심사하여 권징 제99조 제2항 (4)에 규정한 대로 하회 판결을 ① 취소하든지, ② 하회 판결을 변경하든지, ③ 하회로 하여금 갱심케 하든지 3가지 중에 하나로 판결하여 그 판결문을 원.피고와 총회 원 서기에게 교부함으로 총회에 보고 시까지 쌍방을 구속(현상 동결)하는 것(권징 제138조, 제139조)으로 재판을 종결한다. 이때 총회 재판국은 하회서기가 상소 건에 관한 관계 서류를 교부하지 아니했으면 재판을 할 수가 없다. 종종 총회 재판국이 하회 서기가 서류를 올려 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소인이 제출한 상소장으로 재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재판은 당연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인즉 권징 제101조에 “상소가 제기되면 하회는 그 사건에 관한 기록 전부와 일체 서류를 상회에 올려 보낼 것이니 만일 올려 보내지 아니하면 상회는 하회를 책하고 이를 올려 보낼 때까지 하회의 결정을 정지하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회가 재판 관계 서류를 올려 보내지 않거나 올려 보낼 수가 없을 경우에는 하회의 판결이 계속하여 정지 상태가 되므로 하회판결은 무효(정지) 확정과 같다는 말이다. 이는 하회의 서기가 상소인이 제출하는 상소 통지서의 접수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기도 하다. 상소 통지서를 거부할 경우 상소장과 상소 이유 설명서가 없으므로 상회에 제출할 서류 중 상소장과 상소 이유 설명서가 없지 않는가? 상소인이 제출한 상소장과 상소 이유 설명서는 상소 건의 성립을 위한 구비 서류일 뿐이지, 총회 재판국이 재판할 재판자료가 아니요 총회 재판국의 재판 자료는 오직 하회에서 올려 보낸 하회의 재판 관계 서류뿐이기 때문이다. 2. 재판국의 판결에 대한 총회의 처리 범위 총회는 총회 재판국의 판결에 대하여 법대로 접수된 상소 건이나 소원 건을 총회가 재판국에 위탁한 사건이라면(권징 제134조 2항의 규정에 의하여 총회가 위탁하지 않은 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재판국은 재판할 수 없고, 총회는 그 판결 보고를 받아도 안 된다.) 권징 제141조에 규정한 대로 총회 재판국의 판결을 검사하여 ① 채용하거나, ② 환부하거나 ③ 특별 재판국을 설치하여 그 사건을 다시 판결하여 보고하게 한다. 여기에서 총회가 환부 처리하는 것은 노회로 환부하는 것이 아니라 총회 재판국으로 환부하여 다시 재판하여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회 재판국이 총회의 결의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전과 같이 재판할 우려가 다분할 경우에는 특별 재판국을 설치한다. 3. 결론 총회는 질의 자가 질의한 내용과 같이 총회 재판국의 판결을 변경하거나 노회로 갱심토록 처리할 수는 없다. 변경하거나 노회로 갱심케 하는 것은 오직 총회 재판국에서 판결할 때에만 할 수 있는 사안이다. 오직 총회는 재판국의 판결을 ① 채용하거나 ② 총회 재판국으로 환부하거나 ③ 특별 재판국을 설치하는 것뿐이다. 다만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현행헌법 대로는 총회가 위탁하지 아니한 상소 건이나 소원 건을 총회결의나 총회규칙 등을 빙자하여 총회 파회 후에 헌의부가 보낸 것을 받아 재판하여 보고할 경우는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의하여 총회로서는 처음 접하는 사건이므로 권징 제134조 2항의 규정에 의하여 기각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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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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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세 번째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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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하나를 찾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하나를 찾으면 벗들과 이웃을 불러 잔치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사람에게는 잃어버리지 말아야하는 하나가 있다. 이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 ‘본래의 나’라는 사실이다. 이 하나를 찾으면 모든 것은 다 해결된다. 거듭나는 것도, 하나님 나라도, 아버지로부터 능력을 얻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나’를 찾아야 하며, 이 ‘나’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회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란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나’를 찾는 것이며, 삶 속에서 ‘나’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삶 속에서 본래의 내가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내 주변에 먼지가 쌓여 있을 수 있다. 나는 며칠 전에 새벽에 내가 갖고 있는 장애가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 가운데 부모님께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 아버지 내가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소아마미에 걸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입니다. 이 일로 두 분께 슬픔과 절망을 안겨드려서 죄송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로 인해 웃음이 터져 나오고 행복해하셔야 하는데 저의 장애로 두 분께 눈물을 흘리게 했으며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긴 세월동안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두 동생들에게, 아내와 세 자녀에게도 내가 장애이어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다. 그리고 수 십 년이 지난 일이지만 대학 졸업 후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거절한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서도 용서를 빌었다. “내가 건강했다면 즐거워하며 기꺼이 나를 선택하는 기쁨을 누렸을 텐데 나로 인해 거절하는 불편함을 겪게 한 것 미안합니다. 그 덕분에 독립이라는 것을 알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이랬더니 내 속에서 감사 함과 감격의 눈물이 흘렀고 마음이 자유로워지면서 새로운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새로운 회개를 했다. 회개는 세 단계를 거처야 온전한 나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장애를 예로 든다면 첫 단계는 장애라는 상처로 인해 생긴 두려움, 억울함, 적개심과 미움을 씻어내야 한다. 마음을 이해받으면서 상담을 하며 울고, 소리 지르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장애로 인해 생기는 모든 불편함과 어려움을 이겨내어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단계이다. 여기까지는 아직 자기중심적 단계이다. 마지막 단계는 장애와 장애로 인해 생기는 거절과 모든 어려움을 전적으로 내 책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럴 때 어두움이 사라지며 죄가 없어지며 모든 상황과 사람을 품에 안는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을 살면서 여러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두려워하고 원망한다. 그리고 관계 속에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다른 사람, 환경 탓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며, 내 책임으로 끌어안을 때 ‘본래의 나’가 회복되며 그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본래의 나를 아는 것은 목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는 섬기는 마음은 마음에 생기는 먼지를 닦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의 회개를 할 때 어떤 환경이나 어떤 사람을 만나든 평화로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대한 능력을 경험하는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생긴 먼지를 닦아내는 회개를 할 때 본래의 나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 사랑과 자유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행운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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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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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믿음의 표어의 실제 (로마서 10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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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회사의 표어나 구호를 보면, 압축되고 상징화된 구호나 카피를 보면 감동이 오래 갑니다. 유태인들이 강한 이유는 탈무드, 토라, 율법을 어릴 때부터 늘 귀로 듣고 이마에 새기고 옷소매에 달고, 항상 배우고 익히고 바라보아서 유태인들이 그렇게 강한 민족이 되었고, 중국 사람들이 강한 이유는 조상들의 교훈을 한자 4자에 담은 고사 성어, 압축하여 담아낸 사자성어가 많다는 것이다. 선교단체들이 강력한 원인은 그 표어가 원색적이고 강렬합니다. CCC 김준곤 목사님은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굉장히 구호자체가 선명하고, 원색적이고 강렬합니다. CCC는 이때가 되면 해마다 연말연시에 원단 금식수련회를 합니다. 젊은 청년들이 금식하며 수일 기도회를 합니다. SFC는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 삶의 중심을 잡고 동계수련회를 하며 1주일 동안 합숙하여 수련회할 때 많은 학생들이 뜻을 정하고 꿈을 꾸고 나아갑니다. YBF 지성사회의 복음화, 대학사회 속에 캠퍼스와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자 해서 지성사회의 복음화를 외칩니다. JOY 선교단체는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last(third) 예수님을 첫째로 모시고 이웃을 둘째로 섬기고 너 자신을 마지막으로 두면 참 기쁨이 온다. UBF는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라 해서 대학생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세계로, 열방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몇 백 개의 나라로 흩어져서 세계 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 선교단체들이 갖고 있는 구호 한마디가 굉장히 강렬하고 압축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 ‘써니텐 하나님’ 흔들어서 복을 주십니다. 역전의 하나님, 반전의 하나님, 재활용의 하나님, 이순신 신앙입니다. 이순신 신앙이 뭘까요? 「‘아사 교회 생’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산다. ‘아생 교회 사’ 내 자존심을 살리고 내 고집을 살리면 교회가 죽는 다」는 이순신 신앙입니다. 한 사람이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고 신앙을 업그레이드 할 때는 구호가, 표어가, 말씀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능력만큼 일하는 게 아니고 목표만큼 일을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명중을 합니다. 기도제목이 있어야 응답을 받습니다. 소원이 있어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의 표현들이 있습니다. 「기쁨을 샘솟듯 하게하라. 은사를 불일 듯 하게하라. 청춘을 독수리 날개 침 같이 하라」 이런 표현들은 표현자체가 샘솟듯, 불일 듯, 날개 치듯, 굉장한 역동적인 성령님의 역사, 하나님의 강권적인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축복입니다.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늘 기억해야합니다. 어려울 때 마다 악하게 어둡게 우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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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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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야누스(ja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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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영어로 제뉴어리(January)입니다. 로마인들이 숭배했던 ‘야누스(janus) 신의 달(januarius)’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야누스는 앞뒤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중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을 야누스 형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여전히 세 모녀 살해 사건에서부터 소위 문건파동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야누스적인 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hypocrites)이요 안과 밖이 다르며 회칠한 무덤 같다고 책망하셨던 이들이 어찌 비단 그 옛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만이겠습니까?(마 23:25-27) 하지만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크리소스톰의 말처럼 가식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한 가지 얼굴만을 갖고 살아가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야누스는 또한 ‘문(janua)’의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로마에서 이 문은 특히 전쟁과 평화를 상징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로마의 첫 번째 왕 로물루스는 카피톨리노 언덕에 야누스 신전을 짓고 문을 단 후 ‘이 문이 닫혀 있으면 평화, 열려 있으면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합니다. 실제로 로마제국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 이르기까지 이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로 정전협정 62주년을 맞았습니다. 한반도 야누스의 문은 지금도 활짝 열려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최근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다면 핵실험을 중지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 외치던 반세기 전 시인의 음성이 아련하기만 합니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시 46:9)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야누스에는 끝과 시작, 과거와 미래라는 변증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로마의 동전에 새겨진 야누스의 두 얼굴이 닮은 듯해 보이지만 살짝 다른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한국의 1월에 전형적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의 야누스적인 날씨가 반복되지만 결국은 봄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치도 같습니다. 겨울이 가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습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는 법입니다. 종군위안부가 항의 표시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한 수요집회가 올해로 24주년이 되었습니다. 238명의 명단 중에서 이제 55명이 남았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명성황후가 시해(弑害)된 지 12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친일 잔재의 망령이 일으키는 소란을 목도합니다. 성경은 야누스보다 훨씬 더 철저한 회개를 촉구합니다. 롯의 아내는 결국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가룟 유다는 자기 의(義)를 청산하지 못하고 비참한 배역자의 말로를 걸었습니다(마 27:3-10). 신년을 맞아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일신우일신, 환골탈태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런가 하면 야누스에 내재된 ‘변화’의 이미지는 오늘날 멀티세대(multi-generation)에 잘 어울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멀티미디어, 멀티태스킹, 멀티홈, 멀티비타민, 멀티개스팅, 유아용 멀티변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멀티 전성시대입니다. 최근에 ‘야누스 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야누스 족이란 낮에는 업무에 열중하다가 스키장으로 퇴근해서 밤에는 다이내믹한 레포츠를 즐기는 신세대 직장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비자발적인 멀티족들도 존재합니다. 두세 가지 일을 하며 학업을 이어가거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들 말입니다. 새해 들어 비정규직 4년 연장안이 발표되었습니다.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비정규직 청년 장그래의 이름을 따서 ‘장그래 방지법’이냐 ‘장그래 양산법’이냐 말들이 많습니다. 두 주장 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래서 더 야누스적입니다. 을미년 정월의 이 혼돈이 이 땅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보다 더 발전적인 변화로 승화되기를 만유를 새롭게 하시는 주 안에서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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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