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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 칼럼]공유하고 싶은 영성-컴패션
    좋은 목회자, 좋은 설교, 좋은 예배, 좋은 성도들, 좋은 주일학교, 좋은 교회분위기... 마치 과일가게에서 ‘좋은 사과’를 고르듯이 ‘좋은 교회’,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분들이 상상외로 많다. 물론 교회가 그런 분들의 비위와 욕구를 맞추다보며 자칫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 성도들, 그런 분들의 교회에 대한 불만의 요소를 무시해선 안된다. 만일에 교회가 그런 성도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면 아예 ‘가나안’성도, 즉 교회에 “안나가”, 그런 성도로 만들 위험성이 많다. 교회는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느냐 이전에 그 무언가 성도 간에 따뜻함, 포근함, 만족, 기쁨, 그래서 그런 가운데 맡겨진 사역을 감당해 나갈 때에 보람과 가치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지도자간에, 성도간에 친밀감이 부족하고, 부정적인 현상들이 자주 발생하는 교회라면 마지못해 교회를 다니거나 아니면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저런 교회에 대한 불만 때문에 교회중심에 들어오기를 꺼려하고 교회변두리에서 방황하는 성도들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교회생활에서 우리들이 맡겨진 일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일의 성취이전에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그분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일해 나가는가? 막6장의 ‘5병2어’ 사건에서 그 예수님의 마음을 만난다. 3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저들이 얼마나 천국복음에 굶주렸으면, 진리에 목말랐으면, 알고 싶은 진리가 많았으면, 영적 문제이든 육적인 문제이든 해결 받고 싶은 문제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렇게 온종일 나를 따라 다닐까? 쉴 새 없이 몰려오는 것일까? 마치 목자 없는 양들처럼 헤매며 방황하는 불쌍한 양 무리 같도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온종일 주님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들으며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놀라운 모습을 지켜 보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해가 서산으로 져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여기 저기서, “아, 저녁이네! 허기지네! 배가 고프다!”. 바로 그런 상황가운데서 그 유명한 5병2어의 사건이 터져 나온 것이다. 날은 어둡고, 날씨는 추워오는데 이 굶주린 많은 무리들을 어찌 할 것인가? 그 안타까운 문제 앞에서... 문제 앞에서 예수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다른 가를 발견한다. 예수님의 마음은 목자의 마음이다. 상대의 형편과 어려운 처지를 나의 형편과 나의 처지처럼 여기면서 도와주려는 마음이다.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때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영어성경에서는 ‘Compassion’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보았을 때 그저 ‘안됐다. 불쌍하다, 안타깝다’ 생각으로만 끝나는 마음이 아닌 그들의 처지와 고통에 함께 동참해 돕고자 하는 강한 충동내지는 열정을 뜻한다. ‘불타 오르는 동정심, 도와주고 싶은 열정’.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NGO자선단체 가운데 ‘컴패션’ 이름을 가진 단체도 생긴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님의 생애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사” 그 컴패션으로 가득차 있다. 어려운 형편을 보고 그냥 지나치시는 주님이 아니라, 행동이 동반되는 모습을 보이셨다. 직접 팔을 걷어붙이시고 열심히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고, 설교하시고, 영과 육이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고, 막6장에서는 5병2어로 굶주린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그러나 주님의 컴패션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위에서 나타나셨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교회 일을 감당해 나갈 때에...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 공유하고 싶은 영성은 바로 상대의 형편과 동일시하고자 애쓰는 목자의 마음, 컴패션 마음이다. 고전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모쪼록 하늘나라 공동체인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 장로와 장로, 교회지도자와 성도 간에, 성도와 성도 간에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무장 받아 교회를 훈훈한 분위기로 만들어 나가면서 풍요함에도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 나가는 그리스도인, 교회로 끊임없이 거듭, 거듭,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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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31
  • [서임중 칼럼]교인을 내쫓는 목사와 장로
    교회 지도자의 공통된 마음은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디 지도자만 그렇겠는가? 모든 교인들의 마음이 그렇다. 그런데 마음은 그런데 실제는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주역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교회 생활을 한다. 우연한 기회에 식당에서 옆 식탁의 세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을 경험했다. 주고받는 이야기가 속닥거리는 것이 아니라 옆 식탁 손님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이기도 했지만, 그 대화 내용이 교회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목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민망하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야, 너 그 ○○ 잘 알지? 그게 장로야? 그 ○○ 보기 싫어 나 그 교회 안 나간다. 목사란 양반도 똑같아. 그런 ○○ 비위나 맞추고 있으니 그게 목사야? 교회가 결국 그 모양이 되는 거 아냐?” “야 임마, 목소리 낮추어라. 그래도 너도 그 교회 교인인데 그러면 되니?” “나 그 교회 안 나간다니까.” “그래도 인마 너도 예수쟁이잖아.” 웬만한 포항시민이면 나를 알아 볼듯한데 그분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지, 아니면 알기에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마치 내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그냥 앉아 듣기 힘든 대화를 들으면서 밥 한 그릇 먹는 것이 그리도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대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기에 식사를 대접하는 집사님의 얼굴도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한 표정이었고 차 한잔 마실 겨를도 없이 훌훌 털고 식당을 나왔었다. “교인을 내쫓는 교회, 그리고 목사와 장로” 식당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이 허허벌판에 선 느낌이었다. 오래전 메가스터디 엠베스트 김성오 대표의 저서 <육일약국 갑시다>를 읽었다. 마산에서 전국 최소 약국, 최소평수인 4.5평의 약국을 <육일약국>이라는 간판을 달고 3년 동안 약국 이름 알리기 위해 택시만 타고 “육일 약국 갑시다.”를 외쳐 마산의 랜드마크로 만들어 내었고, 1조 원 매출 기업의 CEO가 된 감동스토리는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지금은 서울 대방교회 장로로 전국을 다니면서 말씀 사역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장로님이다. 우리교회는 일찍이 6월이면 한 주일 택시타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 교인이 그 주일은 택시를 타고 교회로 오는 운동인데 교회 알리기, 택시기사와의 관계 맺기를 통한 간접 전도인만들기 등 다양성을 갖고 있다. 김성오 장로님이 3년여 동안 택시 타고 “육일약국 갑시다.”를 외쳐 마산의 랜드마크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교회 택시타기주일 운동과 너무나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 더욱 마음에 닿았다. 포항중앙교회의 택시타기주일 운동은 20여 년이 되어간다. 우리교회 택시타기 주일 운동은 기업경영, 교회부흥, 개인 성공의 신화의 물줄기가 되어 전국 온 세계에 잘 알려지고 있다. 김성오 장로님의 성공비결은 아주 간단했다. 약국 경영을 할 때 “우리 가게에 온 손님이 만족할까? 다음에 또 올까? 다음에 올 때는 다른 사람까지 데리고 올까?”라는 평범한 자문(自問)을 하면서 그는 오는 손님에 대한 마음자세가 다시 오게 하였고 그것은 최고의 경영철학을 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업경영을 하든 식당을 경영하든 작은 가게를 경영하든 성공철학의 공통점이 있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천사처럼 여기는 마음이다. 김성오 장로님처럼 자신이 서울대학교 약대를 졸업한 약사라는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통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을 했다. 즉 손님이 만족할까? 또 올까? 또 올 때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올까? 이것은 성공 경영철학의 교과서라고 할 것이다.교회 성장도 똑같다. 사람들을 오게 하는 교회가 있고 사람들을 내쫓는 교회가 있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아픈 사람, 힘든 사람, 외롭고 지친 사람이든 교회에 올 때 그들을 품어 안고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고 위로할 수 있는 교회는 오는 사람을 만족하게 하고 다시 오게 하고, 다시 올 때는 다른 사람까지 데리고 오게 한다. 그것이 부흥하는 교회, 가고 싶은 교회, 머물고 싶은 교회다. 목사가 싫어서 장로가 싫어서 교회를 떠난다는 식당에서 넋두리처럼 쏟아낸 그 사람의 말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교회 부흥을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걸핏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는 지도자를 보는 평신도들은 오늘도 말없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우리교회는, 그리고 나는 어떤가? 교회 부흥을 외치면서 교인을 내어 쫓는 그 험악한 대화의 주인공은 아닌가?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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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31
  • [함께 생각해 봅시다]사울과 사울
    사울과 사울을 보고 교훈을 받아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아름다워야성경인물 중에 동명이인(同名異人)이 한둘이 아니다. 사울도 그 중 하나이다. 구약에 사울이 있고 신약에도 사울이 있다. 사울과 사울은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같은 점은 이름뿐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두 사람을 대조해보면 흥미롭기도 하면서 교훈이 나온다. 먼저, 두 사람의 신분을 보면 구약의 사울은 이스라엘의 최초의 임금이고 신약의 사울은 사도 중 마지막 사도이다. 또 두 사람의 육체적인 면을 보면 구약의 사울은 키가 크고 준수했다. 신약의 사울은 왜소했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또 두 사람의 처음을 대조해 보면 구약의 사울은 아주 겸손했다.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데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결국 찾았는데 숨어 있었다. 극구 사양하는 그를 데려다가 겨우 왕으로 세웠다. 신약의 사울은 어떠했던가. 그는 아주 교만했다. 거기다가 잔혹했다. 스데반의 죽음을 보고 통쾌하다고 했고,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러 이를 갈며 달려갔던 사람이다. 이만큼 두 사람은 대조적이었다.다음, 두 사람의 훗날을 대조해 보면 구약의 사울은 갈수록 타락했다. 그토록 겸손했던 자가 거만해졌다. 제사장 외에는 관장할 수 없는 제사를 자기가 집례했다. 또 아말렉을 무찌른 후 하나님의 명을 어겼고 하나님 앞에는 변명했다. 그뿐아니라 승리의 표적으로 전승기념비까지 세웠다. 사울의 교만은 극에 달했다. 그뿐인가. 무죄한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반해 신약의 사울은 이름을 바울로 개명하고 날로 새로워지고 갈수록 겸손했다. 사울 때에 가졌던 성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새사람이 되었다. 다음, 말년에 가서 두 사람이 남긴 말을 보면 구약의 사울은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랬다. 그런데 신약의 사울(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남은 것은 주님 앞에 가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순서뿐이다” 이같은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최후를 보면 구약의 사울은 길보아산에서 자살했다. 그런데 신약의 사울(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성밖에서 장렬히 순교했다. 얼마나 대조적인가. 여기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이 뭔가. 우리의 생애는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설령 처음은 신약의 사울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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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31
  • 형제복지원 일가 160억 챙기고 법인 팔아
    500여 원생의 목숨을 빼앗은 형제복지원 일가가 부산시의 ‘법인 설립 인가 취소 처분’ 전인 지난해 5월 160억 원 이상의 차익을 남기고 복지법인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1월 9일자 부산일보가 보도했다. 문제는 박인근 씨가 ‘장로’라는 직책 때문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고, 이를 안티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기독교의 대외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50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인물이 교회 장로”라며 기독교를 심각하게 폄하하고 있다. 형제복지원도 과거 문제가 불거지자 작년 2월 재단이름을 ‘느헤미야 재단’으로 변경 할 정도로 친기독교적인 이미지를 부각해 왔다. 실제 이 재단 이사로 활동한 사람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계 인사들이 있다. 또 교계내에는 박인근 씨의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교계인사도 다수 있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박인근=기독교’라는 이미지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내부에서 먼저 과거 청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인근 씨 돈으로 공부하고 혜택을 받은 사람들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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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1-17
  • 이단집회 참석하고, 교계 행사도 참석하고..
    지난 8일 부산교계지도자신년하례회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중 A의원의 경우 구원파 박옥수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거론될 정도로 IYF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한 인물이다. 최근 구원파피해자모임측이 “박옥수 구속영장 기각 배후에 A 국회의원이 있다”고 주장할 정도. 이날 참석한 정치권 인사로는 서병수 부산시장과 A 의원, 그리고 중구청장, 사상구청장, 해운대 구청장 등이 교계 신년하례회에 참석했다. 이중 IYF 월드캠프에 참석해 축사나 명사강연을 한 인물이 5명 중 3명이나 된다. A 의원과 부산시장, 그리고 해운대구청장 등이다. 모 교계지도자는 “혹시 여기가 IYF 행사로 착각하고 온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할 정도. 다른 모 인사도 “이런 행사(신년하례회) 때 항의를 해야지, 정치인 온다고 좋아만 하는 부기총 집행부도 한심하다”며 “이단이 부산에서 흥하는 이유가 다 이런 이유 때문 아니겠느냐”고 따끔한 지적을 했다. 한편, 지난 12월 31일 불구속 기소된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씨의 변호인과 재판부 배석 판사가 부부사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대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해 재판부 전원이 교체됐다. 박옥수 씨의 혐의는 수백억 대 주식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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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1-17
  • 부세모가 유인물 살포의 핵심인물들
    부산장신대학교를 다시 세우는 사람들의 모임(부세모)이란 이름으로 지난해 9월 통합 총회 총대 1500여 명에게 ‘부산장신대의 아픈 현실을 총대님들에게 알려드리는 탄원서’라는 유인물과 SNS로 살포한 것 때문에 김해중부경찰서에 유인물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고발된 내용들이 차츰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1월 12일 본지를 방문한 부산장신대평의회 의장인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와 서은성 장로가 유인물의 진실을 말하고 살포한 것이 본인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유인물 살포는 어디까지나 학교를 사랑한 나머지 아픈 현실을 바로 알리려는 의도였다고 말하고 한 개인이 아니라 여기에 가담한 인사가 G목사를 비롯한 여러 동문과 뜻을 같이한 다수 인물들이라고 김해중부경찰서에 직접 가서 소상히 진술하고 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SNS에 무작위로 살포한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의 중대함을 느껴 이것을 경찰이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언했다. 모 인사는 “이것은 최무열 전 총장을 살리려는 술수밖에 안된다”고 코멘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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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1-17
  • 부산 '국제시장' 주변 교회들은 시들어가는데…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은 부산 국제시장(중구 신창동) 일대이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국제시장 안에 ‘종각국수’집이 있다. 단연 서민들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이곳 종각국수 집의 박 모 주인은 이곳에서 돈을 벌어 중구 부평동 ‘억수탕’, ‘억수여관’을 구입하여 헬스장 대중목욕탕을 경영하다가 작고하는 바람에 다시 팔고, 아파트가 세워졌다. 국제시장에서 장사해 재미를 붙여 잘 나가던 분은 화장품 가게를 처음 미화당 백화점 한쪽 코너에서 시작한 강국만 장로 내외가 신창동 대각사 입구에서 일본인, 중국인들이 즐겨찾는 바람에 지금은 광복로 빌딩 2채를 살 만큼 재산을 늘렸다. 따라서 광복 포럼에 초대회장으로 크리스마스트리축제에 상가대표로 준비위원이 되어 새로운 트리문화축제의 붐을 안겨 주는 주역을 담당했다.교회는 줄고 장사는 흥행해 70~80년대 부산진시장에 처음으로 부산진 시장선교회가 출범했다. 뒤이어 국제시장 안에도 시장선교회를 만들어 매월 한 번씩 예배를 드리고, 모금한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도 가졌다. 시장 내 크리스천이 경영하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고(故)양봉화 장로(동성교회)도 국제시장 내 점포, 빌딩을 갖고 있었다. 소위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기독교인들에게 이곳 국제시장은 생을 이어가는 삶의 터전이였다. 그러나 국제시장 장사는 흥하는데 반해 주변 교회는 차츰 시들어 갔다. 6.25 피난시절 임시청사를 서구 부민동(옛 법원 위쪽)에 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동광교회에 출석했다. 지금 평양노회에 속하면서도 용두산공원에 인접한 위치에 있어서 집회의 전매특허 마냥 이곳이 부산 교계 유일한 집회 장소로 활용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다녔던 곳이라 동광교회는 부지 건축등기를 떼어보면 유일하게 건축등기 없이 그냥 무허가 건물로 남아있다. 과거 부산시청 시장실에서 용두산공원 쪽으로 바라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동광교회였다. 동광교회에서 70년대 초 조용기 목사를 초청, 신유집회를 가졌는데 당시 인산인해로 마당 복도까지 꽉 차고 또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는 놀라운 신유은사가 일어난 역사 깊은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는 부산 중구지역이 상권 중심 지역으로 바뀌고 주거지는 점차 외곽으로 벗어났다. 그러자 교회학교가 쇠퇴하며 사라지기 시작, 거의 교회 내 주일학교는 폐쇄 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복교회(보수동)도 차츰 교인 수가 줄어들고 부산중앙교회(고 노진현 목사 시무)도 교회학교가 안돼 남구 쪽으로 이사를 하고, 부산침례교회도 안락동으로 이주하고 말았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사이 부산중부교회가 민주 성지의 주역으로 적은 숫자의 교인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감리교, 보수교회도 이름을 바꿨고 중구 동광성결교회가 그나마 교인에 맞춘 교회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대청동의 대청교회는 구서동으로 옮겨가고 부광교회만 합동측 교회로 남아있다. 그리고 대성교회(통합)는 반으로 나눠 장유대성교회(한재엽 목사)로 분리했다. 차츰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어른들 예배로 영위하는 교회로 중구 지역 교회들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실정이다. 상업적 장사는 잘 되었으나 한때 6.25 피난 시절의 중구 대청교회, 대성교회, 보수교회, 중앙교회, 광복교회, 부광교회, 성동교회는 교회당 안이 비좁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피난민 수용소와 다름없을만큼 교인 수가 날로 늘어갔던 적이 있었다. 50~60년대까지 피난민 교인들이 교회를 가득 메웠고 70~80년대부터 정상 수준으로 유지되다시피 하다가 거주지가 변두리로 차츰 이주하기 시작하자 교인 수가 줄어들었다. 이처럼 국제시장을 중심한 중구는 한때 부산 교계의 메카라 할 만큼 부산YMCA, 부산YWCA, CBS부산방송(광복동 입구)이 위치해 있었고, 음식점으로는 남정, 피정, 호텔로는 뉴관광호텔과 동양관광호텔로 YS가 부산에 오면 꼭 투숙한 곳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 기독교의 메카는 중구에서 동구로 옮겨가 지금의 중구는 과거 영화로웠던 향수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구 광복로에서 부평동, 보수동, 신창동, 대청로까지 트리문화축제로 인해 광복로가 다시 기독교 향기로 부활하고 있는 추세다. 어느 때인가 몰라도 목사가 국제시장을 지나가는데 자기 교회의 집사끼리 싸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집사님들, 같은 교인끼리 창피하게 왜 싸웁니까?”라고 했는데 같은 교인인줄 모르고 싸웠다고 하는 일화가 있었을 만큼 국제시장 안에 3분의 2가 크리스천 상인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시장 자아상이다.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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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7
  • [시내산]양의 해에 어떻게 살 것인가?
    ▲ 남송우 교수(부경대학교) 양의 해가 시작된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다시금 몸으로 느낀다. 양의 해를 맞으며 모두가 양처럼 살기를 기원하며 새해를 출발했다. 양처럼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우선은 모두가 양처럼 순하게 산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양의 이미지가 지닌 평화로움과 속죄양이 지닌 희생적인 삶을 떠울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양처럼만 살도록 놓아두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양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바보취급당하며, 순한 양이 결국은 참지 못하고 반항자로 변신하도록 만드는 부조리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이 지닌 긍정적인 이미지를 닮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양은 선한 목자를 만나 양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새해 우리가 모색해야 할 삶의 자세를 양과 관련된 몇 가지 고사성어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양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고사성어 속에는 우리가 양의 해를 살아가면서 음미해야 할 삶의 지혜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사자성어가 망양보뢰(亡羊補牢)이다. 새해를 제대로 엮어나기기 위해서는 지난 해의 시행착오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성숙의 단계로 나아간다. 똑같은 시행착오를 매번 반복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실패의 경험이 실패를 초극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 해에 잃었던 양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양을 잃지 않기 위한 채비를 철저히 해가야 한다. 다시는 양을 잃지 않기 위해 양의 우리를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양을 잃고서야 양의 우리를 고치는 일들을 얼마나 경험했는가? 많은 재난과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를 깊이 성찰할 때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양을 잃고서 양우리를 고치는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각각 소유하는 양을 잃지 않고 제대로 간수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복잡하여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다원성과 전문성은 갈수록 삶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복잡성은 이 세상을 더욱 다기망양(多岐亡羊)하게 만들어, 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너무 길이 많기에 제대로 된 길을 찾기가 더욱 힘든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찾아,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늘 공부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않는 처방은 늘 임시방편으로 끝나 언제나 또다시 문제가 생길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에서 문제의 근원을 완전히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부단히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이를 실현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한 사회는 겉은 화려하지만 내실은 빈약한 것들이 세상을 주도하는 양질호피(羊質虎皮)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다른 세상에서 진실을 찾아 실현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양질호피의 세파에 휩쓸려 살아가는 데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있다. 세상풍조를 거슬리기보다는 풍조에 따라 사는 것이 세상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가 일상화되어버리면, 세상사의 가치는 쉽게 양두구육(羊頭狗肉)이 판을 치게 된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하는 근원적 문제 중의 하나가 신뢰구축이라면, 양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라고 팔고 있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현실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사욕에 눈이 멀어 공의가 사라져 도덕과 윤리관념이 밑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양들이 양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산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힘들다.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양들이 목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포악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했던 여랑목양(如狼牧羊)의 시절이 얼마나 많았던가? 민주화 과정을 통해 이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십양구목(十羊九牧)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오직 선한 한 목자만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선한 한 목자를 따르는 순한 양들의 공동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속죄양이 더 필요한 것일까? 한국사회의 변화는 얼마나 많은 속죄양이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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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7
  • [박영규 관장]그리스도의 새 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는 많은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나 신년예배 설교 주제일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전 것은 대부분 잘못으로 치부되고, 새로워질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이 단체의 대표를 맡게 되면 이제까지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는가 보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처럼 과거의 모든 허물을 만회할만한 쇄신은 쉽지 않다. 새로운 시도 역시 우리가 이전에 대부분 시행했던 일로 단지 외형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골백번 투표를 하고 개혁한다고 떠들어 봐야 늘 그래 왔듯이 우리 사회는 별 변화가 없으리란 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다. 유대교 랍비가 제자들에게 “동이 트는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한 제자가 “멀리서 개와 양을 구별할 수 있는 때”라고 말하자, 또 다른 제자는 “무화과나무와 포도 덩굴을 구분할 수 있는 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랍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희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들을 너희의 형제나 자매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빛이 있을 때가 바로 동이 트는 시간이고, 그전까지는 아직 어두운 밤이다.” 하시디즘(Hasidism)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동이 트고 새날이 온다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인식하고 그들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의 본질을 깨우쳐 주는 듯하다. 필자가 출석하는 부산 산정현교회의 이번 송구영신 예배 주제 역시 ‘새 일을 행하리라’였다.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새해 비전이 선포되었다. 부임한 지 3년 차에 접어드는 담임목사는 그동안 본 교회의 역사와 정체성(identity)을 세심히 헤아린 듯하다. 평양을 시작으로 이어져 내려온 본 교회 성도들의 삶은 주기철 목사의 순교, 조만식 장로의 애국, 장기려 장로의 봉사를 뜻하는 소위 『주·조·장의 정신』으로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순교나 순국을 말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섬김』이라는 비전이 선택된 것 아닌가 싶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 서로를 섬기며, 지역을 섬기는 교회!” 이것이 새해를 맞는 우리 교회를 통해 행하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새 일’인 것이다. 지금은 지구촌 일원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지만,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이 되어 어둠 속에 있던 대륙 아프리카. 이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타민족을 위해 평생을 숨어 봉사하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온 기자가 원주민들에게 “슈바이처 박사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이 무엇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줬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를 사랑한 것은 알고 있다.”라는 원주민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야말로 온 세상 구석구석의 어둠을 밝히고 새날이 오게 하는 원천이며, 이는 인간을 사랑하여 성육신 해서 지극히 낮은 데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제자 된 삶을 사는 우리들의 새로운 행동 강령이어야 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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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7
  • [가정칼럼]급매물-남편 팝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급매물 광고 하나. "사정 상 급매합니다. 1991년 12월 14일 예식장에서 구입했습니다.구청에 정품 등록은 했지만 명의 양도해 드리겠습니다.아끼던 물건인데 유지비도 많이 들고 성격장애가 와 급매합니다.상태를 설명하자면 구입당시 A급인 줄 착각해서 구입했습니다.마음이 바다 같은 줄 알았는데 잔소리가 심하고 사용 시 만족감이 떨어집니다.음식물 소비는 동급의 두 배입니다.사용 설명서는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읽어봐도 도움이 안 됩니다.A/S 안 되고 변심에 의한 반품은 절대 안 됩니다. ㅎㅎ사은품으로 변덕심한 시어머니와 까칠한 시누이도 포함됩니다.울 신랑은 원래는 괜찮았는데 사용자 부주의라며 억울하다네요.글고 울 친구는 내거 팔 때 자기 신랑 1+1로 같이 내놓겠답니다." 대체 결혼은 무엇일까요? 결혼에 대한 정의는 끝없습니다.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곧 결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국 속담에 “결혼은 포위된 요새이다. 밖에 있는 자들은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고, 안에 있는 자들은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혼자들은 결혼했다는 그 멍청함에 대한 벌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 며 결혼을 조롱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이렇게 까지 말합니다. “나는 결혼한 여왕이 되느니 차라리 결혼하지 않은 거지가 더 좋다. 결혼반지는 나에게 멍에와 마찬가지이니까.”그 뿐이 아닙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면 나는 항상 군인들이 전쟁터로 나갈 때 연주되는 음악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결혼을 전쟁터와 연상시킵니다.예부터 금슬 좋은 부부를 일러 ‘삼각배필’이라 했습니다. 서로 허리를 부여잡고 호흡을 맞추어 뛰어야 하는, 누구도 먼저 갈 수 없고, 혼자 갈 수 없는... 호흡을 맞춰 함께 걸어야 하는 그 특별한 소풍날의 경기 말입니다.나이 50줄이 되어 결혼한 함민복 시인은 삼각배필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냅니다 긴 상이 있다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한 발또 한 발 삼각배필의 의미를 아는 그 날, 급매물 광고도 사라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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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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