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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네팔 지진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우연히 네팔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향 9개를 발견합니다. 2년 전 tvN에서 방영되었던 ‘나인(nine)’이라는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그 때 배경으로 등장했던 마을이 포카라(Pokara)였습니다. 마을 뒤편으로 등장하는 ‘인간이 오르는 것을 신이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산’이라 불리는 ‘마차푸차레(Machapuchre)’의 압도적인 위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로 그 지역 일대를 지난 4월 25일, 진도 7.7의 강진이 덮쳤습니다. 최초에 보도되었던 수십 명의 사상자 수는 현재 사망 5,057명, 부상 10,915명으로 불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히말라야 산맥 자락에 웅크리고들 있는 오지(奧地)가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피해는 가늠할 길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시장조사기관인 IHS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복구비용이 5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인구 3,000만 명에 1인당 GDP 700달러의 나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중한 재해(災害)입니다. 이미 긴급구조단을 현지에 파견한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국제사회의 돕는 손길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이번 네팔 지진도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가 겹쳤다고들 합니다. 지진 발생 불과 1주일 전에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전세계 지질학자를 비롯한 과학자 50명이 모여 1934년에 이 나라를 강타했던 지진이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덮칠 가능성을 경고했다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번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기사도 떴습니다. 그런데 대비는커녕 이처럼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논조입니다. “지진을 그냥 천재(天災)라고 말하고 하늘 탓만 할 수는 없다. 미 캘리포니아에서라면 주민 100만 명에 10~30명이 숨질 때 같은 지진으로 네팔에선 1,000명이 숨진다. 파키스탄, 인도, 이란, 중국이라면 10,000명이 숨지게 된다. 지진피해가 인재(人災)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지질조사국 한 과학자의 논평입니다. T. S. 엘리어트의 말처럼 4월은 잔인한 달인가 봅니다(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지난 28일에는 세월호 선장 등 승무원 15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어른들의 말을 믿고 질서정연하게 대기하던 어린 학생 등 304명이 끔찍한 고통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재판장의 말에 유족뿐만 아니라 방청객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1년이 지났어도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고 여전히 차가운 바다 밑에 수장(水葬)되어 있습니다. 네팔 지진 사태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난입니다. 그렇다면 작년 이맘 때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어떻습니까? 인구 5,000만 명에 1인당 GDP 28,738달러를 자랑하는 OECD 가입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이 사고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네팔은 힌두교도가 전체 인구의 80%를 넘습니다. 힌두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마하바라타 라마야나에는 33,333개의 신들이 나오는데, 오늘날 힌두교의 신들 숫자는 3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klaiein meta klaionton)”고 말씀합니다(롬 12:15). 주한네팔인협회에 의하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네팔인의 수는 약 29,000명이며 이들 중 대부분이 근로자들입니다. 지진이 일어난 고향 소식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네팔로 돌아가는 분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천재지변에 어쩌면 인재까지 겹쳐진 재난 속에서 슬퍼하는 네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울고 또한 기도하는 일은 그저 아름다운 미담이나 휴머니즘(humanism)의 발로(發露)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주어진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하물며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자녀를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처절하게 눈물 흘리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 가족들의 슬픔에다가는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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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30
  • [서임중 칼럼]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
    사람은 오관을 통하여 일상생활을 한다. 오관(五官)이란 시각(視覺), 청각(聽覺), 미각(味覺), 후각(嗅覺), 촉각(觸覺)을 말한다.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가운데 시각(視覺)은 더욱 중요한 감각 기관이다. 내가 존경하는 한국교회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신 실로암안과병원장 김선태 목사님은 시각 장애인으로서 세계적인 인물로 선정된 분이시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사람들보다 모든 면면에 뛰어난 대한민국이 낳은 거목(巨木)이시다. 그분은 보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보다 한 가지 더 볼 수 있는 은총을 늘 감사하는 분이시다. 그것이 무엇인가? 상대방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마음이 보인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상대방이 다른 곳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대화를 하면서 마음 중심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 그 말이 진심과 건성이라는 것, 그 이상의 모든 것을 다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다. 목사님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은혜를 감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는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다. 하나님은 보이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보이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의 진정한 사랑의 관계 또한 보이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약점이 된 것이 보이는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저기 불편스러운 일들이 주님의 교회 안을 어지럽히게 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보이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진정 신령한 은혜의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니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라는 복음의 생활이 일상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 교회가 행복하고 평안했다. 사람은 두 종류의 눈을 갖고 있다. 하나는 육신의 눈이고 하나는 영의 눈이다.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는 세상의 것을 보고 영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를 본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올바르게 보는 것(正觀), 조용하게 보는 것(靜觀), 대강 보는 것(槪觀), 꿰뚫어 보는 것(洞觀), 전체를 훑어보는 것(通觀), 크게 보는 것(大觀),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直觀), 외모를 보는 것(外觀), 멀리 내다보는 것을 달관(達觀)이라 한다. 그뿐 아니다. 주관(主觀), 객관(客觀), 참관(參觀), 비관(悲觀), 낙관(樂觀), 방관(傍觀) 등, 이와 같은 숙어를 말하자면 끝이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만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보면서 살아가는가? 무엇을 보기 위해 교회에 왔는가? 무엇을 보면서 오늘 예배를 드리는가? 무엇을 보아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 무엇을 보면서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가?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너무 많은 가족과 재산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분가(分家)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선택의 우선권을 롯에게 주었고 롯은 보기에 좋은 요단지역 소알을 선택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선택했다. 결과는 보이는 곳은 멸망이었고 보이지 않았던 곳은 축복이었다. 중요한 것은 롯의 눈에는 요단 지역, 소알까지 물이 넉넉한 것만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인도함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즉 역사의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역사의 들러리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 성장에도 부흥의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교회 부흥의 들러리가 있다. 가문에도 가문의 번영에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가문의 번영에 들러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사울왕과 다윗이 본 골리앗은 달랐다. 육신의 눈으로 본 사울왕은 골리앗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결론 내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본 소년 다윗은 골리앗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허수아비와 같이 보였고 그렇기에 그를 향해 물맷돌 다섯 개와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 12명의 정탐꾼의 사건도 같은 의미를 시사한다. 육신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았던 가룟유다, 고라, 발람, 웃시야, 아합, 가인, 데마 같은 사람들의 결과는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승자 같았으나 실패와 영원한 저주의 대명사들이었다.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늘 사용하는 이야기가 있다. 노란넥타이를 메고 강단에서 이 칼라 어떻습니까? 물으면 “믿음색깔 황금색이네요.” 라고 대부분 대답하지만,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하고많은 칼라 가운데 왜 하필 똥색입니까?”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색깔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말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냐를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감사의 눈으로 가능성의 눈으로 희망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부정적, 비판적, 절망적으로 보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와트는 주전자의 물이 끓는 것을 보고 증기 기관차를 발명했다. 프랭클린은 번개 치는 것을 보고 전기를 발명했다. 로댕은 화강암을 보고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했다. 월트 디즈니는 쥐를 보고 미키 마우스를 창안했다. 청교도들은 바다의 풍랑을 보고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지금도 우리에게 하신다. “네가 보는 것을 내가 네게 주리라.(창1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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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임중 칼럼
    2015-04-30
  • 마음은 두둑한 5월이 되길
    화창한 봄 날씨가 기분 좋은 5월이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5월 5일 어린이 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15일 스승의 날, 5월 21일 부부의 날이 있다. 1일 근로자의 날에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휴교하며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 간의 화합을 독려하고 있다. 각종 기념일이 가득한 5월은 지갑은 얇아지지만 마음은 두둑해지는 한 달이다. 기념일이 많아 가계 지출이 증가한다. 또 황금연휴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아 지출은 증가한다. 그러나 서로간의 관심과 마음을 표현하는 따뜻함으로 웃음 짓게 하는 5월이다. 교회들도 분주하다.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스승의주일로 보내고 간혹 청년주일, 부부주일도 기념해 지키는 교회들도 있다. 교회 교육기관들은 행사에 맞춰 선물을 준비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이런 기념일을 통해서 가족을 돌아보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하다. 지진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네팔을 보면서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늘 곁에 있어 무관심했던 가족들에게 기념일을 맞아 낯 뜨거운 말 한마디, 오글거리는 애정표현을 해보자. 지갑은 얇아져도 우리의 마음은 두둑해지는 5월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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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30
  • 사회 국법을 무시한 고려학원과 총회운영위 이래도 합법인가?
    지난 4월 24일 오후 2시 대구 성동교회당에서 모인 고신 총회 운영위원회에서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고려학원 이사회에서 보내온 (이사장 강영안 장로)인준 요청을 중요안건으로 통과 시켰다. 이 자리에서 증경총회장 윤희구 목사가 제시한 이사장 시무교회(두레교회)에서 개척한 주님의보배교회 이명 절차에 따른 문제와 12월 26일까지 이시원 이사 법적인 등록된 이사 사임건에 대해 집중 논의가 되었다. 교회 이명 절차는 이명하여 온 교회에서 3년을 경과한 후 다시 공동의회 투표로 시무를 결정되는 총회 법규를 무시하고, 해당 노회장이 두레교회 장로라는 발언으로 통과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또 이시원 이사 법적임기를 놓고 총회에서 처음이사 될 때 쓴 확약서(2015년 4월 16일까지 사임한다는 내용)가 법적 효력을 가지며 대법원 판례까지 언급한 고려학원 감사의 발언, 조용히 넘어가자는 총회 임원들의 노력도 인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법원 행정처 등기 정보 중앙관리소의 등기기록(등기번호 00025, 2015년 4월 21일 현재)에 의하면 엄연히 이시원 이사는 2011년 12월 17일 취임하여 2015년 12월 26일까지 임기로 교육부와 대한민국 법원 등기난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다. 그래서 교육부 회신에 의해서 재단사무국장이 이시원 이사를 이사장 투표하는 4월 17일 오전 출석하시라고 전화를 한 사실이 있다. 재단사무국장은 교육부 공문 회신에 의해 이시원 이사가 12월 26일까지 이사기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모 이사도 교육부 사학담당 사무관한테 직접 찾아가 (임기가 12월 26일까지)맞다는 확인까지 받고 온 사실은 왜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대법원 판례를 운운했지만, 대법원 판례는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사임의사를 표한 것이고, 이시원 이사의 경우 타의적 확약서를 쓴 경우이기 때문에 상황이 다른 것이다. 누군가 이사 중에 이사장 투표 무효확인 가처분을 한다고 할 경우 어느 쪽에 손을 덜어 줄 것인지 자명한 해답이 나올 것이다. 법원에 이사 등록도 안 된 4명의 신규 이사들이 이사장 선출의 법률적 권한 행사를 한 것을 놓고, 또 대법원 운운할 수 있을까? 이시원 이사는 그렇다고 치자. 법원 등기 안된 이사의 법률 권한 행사는 여지없는 불법 행위라는 것은 법을 잘 모르는 관계자들도 알 수 있는 기본 상식이다. 사회국법과 사립학교와의 문고리 역할을 담당하는 교육부에서 이사 승인은 행정적 이사자격이 있다는 요식 행위이지 먼저 법원 등기부터 해 놓은 후 이사장 선출을 하는 것이 법 절차다. 총회운영위가 인준해도 이번 총회 석상에서 크게 논란이 될 전망이다. 과거 김정일 이사는 총회확약서를 쓰고도 3개월 더 이사직을 수행했는데도 이시원 이사만 그만 두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과거 전례를 살펴봐도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총회 운영위 초반에도 “분명 교육부에 진정이나 사회법에 문제제기가 있을 것”이라며 운영위가 적절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결국 덮어 버리고 말았다. 법률적 법인 이사는 사회 법 절차(국법)가 우선하기 때문에 드리는 충고다. 시한폭탄이 남아 있는 한 가처분한 분이 이사장 되는 것이 대명천지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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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4-30
  • 부기총 차기 상임회장 어디 없소?
    부기총 정기총회가 6월 4일 시온성교회에서 개최된다. 하지만 차기 목사 상임회장을 맡을 인물이 없어 현 집행부가 고심중이다. 이번에는 침례교단 차례로 영안침례교회 박정근 목사에게 의사를 물어봤지만 뜻이 없고, 기하성 이건재 목사도 교단 총회 서기직을 염두에 두고 있어 힘들다는 의사를 비추고 있다. 또 백석교단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목사도 부기총 상임회장직을 고사하고 있어 선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차기 대표회장이 되는 이성구 목사는 “5월 중에 어떻게 해서든 찾아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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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4-30
  • 추측성 기사를 쓸 수 있나?
    최근 A 인터넷 언론에 ‘증경회장의 수준이 이래서야’라는 사설이 보도됐다. 고신 두 증경총회장이 고려학원 이사장 선거에 개입되어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과 관련 두 증경총회장 중 한명으로 지목된 창원한빛교회 윤희구 목사가 총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이 보도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을 했다. 윤 목사는 “원래 발언을 할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발언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려고 했다. 그런데 A 인터넷 언론에 나와 이용호 목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해명은 해야 겠다는 생각에 발언을 결심했다”고 배경설명을 한 뒤 “고려학원 이사장 선출에 관련해 이용호 목사와 통화를 한 사실이 없다. 또 고려학원 이사나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전화나 부탁을 한 사실이 전혀 없음을 알려 드린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강영안 장로와 경합한 양재한 장로가 우리 교회다. 그리고 이용호 목사는 박 장로의 처외삼촌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실도 아닌 추측성 보도를 할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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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4-30
  • 주말 부부가 된 담임목사 결국 사임 압박 받아
    A교회 담임목사 사모와 자녀들이 교회 부임한지 3년이 지나도 교회 사택에 이사는 오지 않고 주말 부부로 살았다. S교단 A교회의 담임목사를 보다보다 더 이상 기다려 주지 못해 당회 시무장로들이 담임목사 사임 요구에 이르렀다고. A교회 담임목사 사모는 서울 모학교 교편을 잡고 있는 이유가 있겠으나 담임목사 주말부부는 아무래도 교회 정서에 안 맞는다고... 그래서 현대교회 목회가 어렵다지만, 어찌하겠나? 목회자의 이 딱한 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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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4-30
  • 지금도 몸살을 앓고 있는 A교회
    부산 K교단 A교회에 평신도가 주일날 설교할 때 맨 앞자리에 검은 안경을 쓴 채 목사의 설교를 녹음하고 있다고 하니, 강단에서 설교하는 담임목사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고심하다가 당회가 중지를 모아 그 문제의 남자 성도를 서리집사직까지 박탈하고 출교까지 하는 과정에서 담임목사 제척사유를 들어 당회가 재판을 할 수 없게 되자 B노회에 위탁 판결까지 가게 되었다고. B노회는 기소위원회가 모여 검토했으나 골치가 아프니까 도로 해당 당회로 이첩시켰다나. 과거 영도에 있는 모교회에서도 하도 애를 먹이니 ‘교회접근금지 가처분’까지 법원으로 받았던 사례가 있다. A교회도 이 사례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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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30
  • 목사 사모님 때문에 사임 뜻을 밝힌 교회 너무 딱해
    D교단 B노회 H교회는 담임목사가 부임한지 3년 남짓. 그런데 담임목사가 갑자기 사임서를 낼 형편이다. 이유인즉 담임목사 사모가 친정집에 돈이 필요했는지 새롭게 출석한 성도 여러명에게 돈을 빌린 것이다. 차츰 액수가 커져 2천여만원 고액이 되니 결국 당회까지 말이 나고 말았다. 담임목사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당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시무장로 세분은 절대 시무는 안된다고 하고, 일부 항존직 몇 분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덮고 넘어가자고 하고, 초임이고 자녀 중 고3 학생도 있으니 5월까지나 아니면 연말까지 배려해주자는 분들도 있다. 이해가 안되는 사모의 행동에 목양의 길은 망쳐 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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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30
  • 은퇴 장로들이여 주일날 작은 교회에 참석합시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왜색문화가 짙어 있는 부산항에 1884년 9월 14일 첫발을 디딘 알렌 선교사. 이듬해인 1885년 4월 2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부산을 거쳐 인천항에 도착했다.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한 그들은 그야말로 암흑과 다름이 없는 무지, 삭막한 대한민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선교사로 이 땅을 밟았다. 복음의 씨를 뿌렸던 젊은 20대 선교사들의 헌신은 13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에 찬란한 복음의 꽃을 피웠다. 복음의 빚을 진 한국교회는 이제, 세계 각국에 2만여 선교사를 보낼 만큼 제2 선교대국으로 성장했다.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교회 한국교회 곳곳에는 다음세대를 향한 시대적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목회자들은 계속 늘고 있는데 교회는 자꾸만 침체 늪에 빠져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절실해 지고 있다. 그 한 실례로 보면 예장통합 교단의 통계자료를 보면 다음세대에 관한 절실한 과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 8,417개 교회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48%, 중등부가 없는 교회가 47%, 아동부의 고학년 부서가 없는 교회가 43%, 저학년 부서가 없는 교회가 47%, 유치부가 없는 교회가 51%, 유아부는 77.4%, 그리고 영아부가 없는 교회는 78.5%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략 절반 가량의 교회가 교회 학교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회학교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전도사를 둔 교회는 25%에 불과하다.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 중에서 절반 가량은 전담교역자가 없지만, 전국에 남아도는 교역자는 수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수도 서울에 목사 신분을 가진 1,000여 명은 택시기사, 경비원, 청소원, 기타 잡부로 이중 직업을 가져 겨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의 경우 필자가 작년(2014년) 12월말 경에 교회 시무장로로 은퇴한 후 줄곧 주일날 작은 교회를 순방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작은 교회를 찾아가 보니 주일예배에 모이는 교인 숫자는 불과 평균 10~20명 이내로 교회 운영이 힘든 교회가 허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은퇴장로들(시니어급) 분산하여 작은 교회 도와야 그래서 ‘함께 가는 작은 교회 참여하기 운동’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은 시니어급 은퇴장로들 수천명(통합교단 부산권만도)이 자신의 교단 미자립교회, 작은 교회를 주일날 찾아가서 함께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대표기도하며 동참하는 것이다. 동반성장과 균형성장을 위한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교회부터 살려내야 교역자 수급도 되고 미자립교회 지원 정책에 재정적 보탬이 될 것이다. 계속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큰 교회, 큰 노회 예산의 상당한 금액이 작은 교회 지원책에 사용할 수 밖에 없어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미자립교회 교역자들은 사례비만으로는 생활을 하기 힘든 실정이다. 따라서 교단 및 노회, 대형교회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은 교회와 대형교회가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은퇴장로들은 각자의 교회에서 20~30년 섬기며 시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은퇴 후에는 작은 교회, 미자립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하자. 교회는 새로운 성도가 찾아와서 반갑고 또 헌금으로도 보탬이 되니 교회 운영에 도움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작지만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앞으로 남은여생, 주님이 부르실 때 “너는 이생에서 무엇하고 왔나”라고 물을 때 “미약하나마 작은 교회를 돕다가 왔습니다”라고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각자가 섬기는 교회는 이때까지 돕고 살았으니 이웃 교회, 작은 교회, 미자립교회를 돕고 살 수만 있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남은 여생을 주님이 기뻐하실 일에 동참하자. 자신도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은퇴장로들이여 이제부터 남은 여생, 유통기간이 끝나기 전에 작은 교회 돕기와 주일 예배 참여하기에 서로 독려하며 살아갑시다. 섬겼던 지교회의 1~2부 예배에 참석하고 3부 11시(혹은 11시 30분) 예배는 작은 교회에 가서 예배에 동참하면 노후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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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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