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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천지와 서명운동, 부산교계 연합이 절실
    신천지 안드레지파가 부산 연제구 연산동 이마트 옆 부지에 본부 이전을 추진 중이다. 신천지 안드레지파는 본부 건물을 건축하려고 했으나, 연제구기독교연합회에서 이를 반대하는 1만3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연제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연제구청은 반대서명을 토대로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자, 신천지는 9만5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다시 승인 요청을 했다. 1만3천여명의 반대에 맞서고자 신천지측에서는 9만5천여명의 서명을 제시하며 건축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연제구기독교연합회는 함께 대책회의를 갖고, 부산지역 전체 1800여 교회가 반대 서명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기로 결의했다. 부산지역 교계는 5월 31일까지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신천지 측에서 9만여명의 서명을 받아왔기에 교계에서는 최소한 20만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이 보기에 단순한 종교 싸움으로 보일 수 있지만, 최근 CBS가 8회에 걸쳐 방송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신천지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지역 시민들의 참여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책위에서는 변호사 등 각계 전문인들과 협조를 위해 법률 고문단 조직구성에 힘을 쏟고 이를 위한 재정마련 등 신천지의 건축 문제뿐만이 아니라 진리 수호를 위해 끝까지 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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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9
  • 수도노회 이변, 총대 탈락
    예장고신 수도노회에서 금년 9월에 열릴 65회 총회에 참석할 총대 선출에서 19년간 한결같이 총대로 나갔던 김종인 장로(고려학원 전 이사장)가 총대에서 탈락됐다. 문제는 총대 탈락이 조직적인 작업(?)에 의한 것. 노회 산하 고려신학대학원 S교수가 주동역할을 했다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총대 탈락은 고려신학대학원 이전 문제와 관련한 정치보복이라고 김종인 장로는 말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다 말인가? 울분을 참지 못해 본보에 호소하면서 이런 비열한 방법은 없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교수들의 양식이 이 정도라면 어떻게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강하게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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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9
  • 뒷 감당은 인근 교회들의 몫
    최근 교회나 건물을 이단에게 매각하는 기독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손해보고 팔수는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건물을 팔고 나오면 되지만 건물 인근 교회들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모 교회는 교회 근처 건물이 이단에게 매각되면서 주일마다 000교회 성도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다른 모 교회는 교회 바로 옆에 000 이단이 이전해오면서 힘든 싸움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성도들도 많이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교회 주변에 이단이 오면서 피해를 보고 있는 K 목사는 “건물주는 이단에게 건물을 매각하면 그만이지만 그 뒷감당은 주변의 교회들의 몫이다”며 “특히 기독교인이 이단에게 건물을 매각하거나, 임대를 주는 것은 신앙양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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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9
  • 이런 협박(?) 장로를 아십니까?
    ‘코닷 특집보도 예고’라며 문자를 보내면서 ‘고신대 총장 선거에 모 언론사 사장 개입 진상을 밝힌다’라는 협박 문자를 계속 보내는 K 장로가 있다. 협박 수준이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본보는 할 수 없이 K 장로를 상대로 지난 4월 부산지검에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정식 고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부산사하경찰서에서 고소인 진술을 마쳤다. 또한 협박과 더불어 “신 사장이 지혜로우면 새이사장하고도 협력관계를 잘해야 사업하는데 좋다”, “그는 아무리 씹어도 효력을 못 본다”, “너 바로 죽는다. 너 그러면 죽는다”는 막말을 일삼고, 고소 취하하라는 압력까지 넣고 있다. 정식 사과문을 내면 취하해 준다고 해도 “내가 왜 사과하나? 너가 해야지”하고 밤새도록 카톡 문자를 수십통씩 보내고 있다. 사하경찰서에 정식 출두하라고 해도 이리저리 미루고 있는 상황. 결국 구인장 받고 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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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5-29
  • 계파들 임원 후보 추천
    금년 K교단 65차 총회 후보자들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각 계파들의 회동이 전해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개혁파는 금년 목사부총회장에 배굉호 목사, 장로부총회장에 김진욱 장로가 각각 공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보수파는 김상석 목사와 장태휘 장로가 보수파 지원을 업고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그리고 부산노회 박창제 장로도 계파 지원없이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거대한 공룡같은 계파 정치에 정면으로 부딪혀 맞서는 박 장로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는 이가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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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9
  • [시내산] 성완종 현상과 한국교회의 현주소
    사업가이며 정치인이었던 성완종씨의 자살과 그가 남긴 소위 성완종 리스트가 한국사회를 또 한번 휘청이게 했다. 그 여진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에 더욱 문제적인 사안이다.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세월호 사건 일 주기에 즈음해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더욱 국민들의 마음에 던져지는 파문은 컸다. 1년이나 끌어온 세월호의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가운데서 벌어진 사태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후진적인 자화상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성완종 씨의 이력만 보면, 그의 삶은 단순한 자수성가를 넘어서, 위대한 한 인간의 인간승리로 보기에 충분하다. 초등학교의 학력으로 시작된 그의 밑바닥 인생여정이 펼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의 초인적 삶은 가히 놀랍다. 기업인으로 성공해서 장학재단을 만들고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이렇게 환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놀라운 수준을 넘어 존경의 예를 표할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는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회의원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에 드러나는 그의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존경의 마음은 간 곳 없고, 정말 아직도 이런 생각으로 기업을 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라는 한탄스러운 심정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특별히 그가 교회를 이끄는 장로로서 생활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그가 내보인 삶의 행적 자체가 어쩌면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그가 믿은 기독교는 자신의 삶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었지, 결코 기독교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직 성공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그에게는 하나님이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기복적 신앙의 매개일 뿐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인지를 늘 고민했다면,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적 힘을 사야 한다는 잘못된 기업윤리로부터는 자유로울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완종 세대들의 기업문화는 정경유착을 하지 않으면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할 수 없다는 잘못된 관행들이 상존했기에, 그도 이런 세속의 큰 흐름 속에서 전형적인 정경유착을 실천해 갔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세속적 욕망의 원리가 한국교회의 외형적 성장과정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난무하는 부조리와 불의를 정화하고, 이를 초극하기 위해 자신을 촛불처럼 불태워가야 할 신자들이 세상과 짝이 되어 흘러갔으니, 한국교회가 이 땅에서 제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의 지도자급에 속하는 많은 인사들 중에 소위 기독교 교인들의 수가 생각보다는 많다는 점이다. 우선 성완종씨가 몸담았던 정치 영역에서만 살펴보더라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 중에 개신교 신자가 120명(40%선)이나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정치수준과 신자의 현주소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토릭 신자 국회의원 수까지 합치면 60% 이상이 기독교 신자라는 점에서 더욱 절망감을 느낀다. 이들이 신앙양심에 따라 정치를 제대로 한다면, 현재 한국 정치의 수준이 이 정도에만 머물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는 기독교는 교회 안에만 묶여있는 신앙이지 종교적 가치가 현실 정치를 정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종교를 위해서 정치를 활용해도 문제이지만, 정치를 위해 특정 종교를 수단화 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그러므로 정경분리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신앙양심에 따라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시켜나가는 일에 전력투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과 삶을 일치시켜나가는 일에 부단히 진력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세속적 가치관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한국 국회 내에 형식적인 신자의 수는 과반수가 넘지만, 제대로 된 정치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신자가 신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이러한 한국교회 신자들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 개혁을 위해 제대로 된 신자를 교회기 키워내야 하는 근원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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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4
  • [김양현 목사] ‘아버지 됨’을 생각하다
    [그러므로 먼저 인간적인 ‘아버지 되심’이 있고 그 다음에 소위 어떤 신적인 ‘아버지 되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먼저 참되고 본래적인 ‘아버지 되심’이 하나님께 있고, 그 ‘아버지 되심’으로부터 우리가 인간들 사이에서 ‘아버지 되심’이라고 아는 것이 유래한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 모든 자연적인 ‘아버지 되심’의 근원이다.] - 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 중 칼 바르트가 사도신경 첫 구절을 강해하면서 한 말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에 대하여 논한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때,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와 연상된 이미지로 생각합니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투사’라고 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신이라는 것도 우리의 의식이 투사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가 본 그리스, 로마의 신들은 인간과 유사한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바를 투사한 결과로서 신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르트가 말한 바는 이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우리가 영향받은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하나님께 투사하는 대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아버지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우리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아버지 상’이 교정되어야 마땅합니다. 물론 이러한 교정은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만날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를 제대로 만나고 그 아버지를 통해 교정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권위적이고 아니 더욱 위선적인 아버지가 되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니 제법 많습니다. 특히 교회의 중직자들에게서 이런 모습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일까요? 목회자나 장로, 안수집사 등 중직자 자녀들 중에 적잖이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하고 오히려 신앙을 등지는 경우를 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아버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 아니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자신 안에 체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르트가 지적하듯이 오히려 자신의 본래적 ‘아버지 됨’을 하나님께 거꾸로 투사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권위적이고 억압적이고 닫힌 구조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함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탈 권위적이며, 사랑의 총합이며, 섬김과 헌신이며, 자기 내어줌의 극치입니다. 그 ‘아버지 되심’에서 ‘아들 됨’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의 완전한 표본이 삼위일체 안에 있습니다. 진정한 ‘아버지 됨’에 의해 참된 ‘아들 됨’이신 예수가 나오셨고, 그 분은 아들로써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중적 위치를 가집니다. 모든 아버지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아들들’입니다. 그 ‘아들’됨을 잘 이룬 자가 또한 ‘아버지 됨’을 이룹니다. 5월입니다. ‘아들’인 ‘아버지’, ‘딸’인 ‘어머니’의 위치를 회복하여 사랑과 은총이 가득한 가정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 전에 하늘 아버지를 경험하고 변화되어야 함을, 그러한 사람이 참된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만들어 가는 5월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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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15-05-14
  • [목회자 칼럼] 탈진과 회복 (14)
    2. 험담과 모함사람을 낙담하게 하고 절망시키는 아주 나쁜 것으로 〈험담과 모함〉이 있다.〈험담〉이란 남의 약점이나 아픈 부분을 들추어 내어서 이야기로 즐기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악한 취미이다. 남을 나쁘게 말하는 것도 험담에 속한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사실(fact)대로 말하기보다 사실과는 다르게, 사실보다는 더 나쁘게 말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받는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의 행동을 보라. 하나님을 나쁘게 말하고 있다. 하와에게 하나님을 악평(惡評)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보다 사탄의 험담 쪽으로 더 기울어진다. 사탄의 험담에 귀를 기울이고 즐기기까지 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기억하지 않고 사탄의 험담에 맞장구를 친다. 그리고 마침내 사탄과 한 통속이 되어 하나님을 배신한다. 이것이 인간의 첫 타락이고 〈원죄 原罪〉 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하와에게 하나님을 험담하여 재미를 본 사탄은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험담을 하고 험담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서 그들의 험담하는 성품을 이어 받은 우리들은 별 생각 없이 쉽게 다른 사람을 험담한다. 이것을 가리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라고 부른다. 쉽게 남을 험담하다보면 습관이 되기 쉽다. 이것은 아주 나쁜 습관이다. 이 습관이 심해지면 남을 험담하는 것을 즐기게 까지 된다. 험담하기를 즐기는 정도까지 되면 그 사람의 심령은 황폐화된다.그런 사람에게서는 ‘인격 Personality’이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그럼 〈모함〉이란 무엇인가? 모함이란 없는 사실, 불분명한 것을 ‘사실인양, 직접 본 것처럼 퍼뜨리는 것’을 뜻한다. 악의적(惡意的)으로 악평(惡評)하는 것을 뜻한다.그러므로 험담보다 더 사악한 짓이 〈모함〉이다. 그러므로 〈모함〉은 상대방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고 그 인생을 망치게 하는 짓이다. 심지어 상대방이 충격을 받아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다. 이런 모함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하다. 그런데 아무런 근거나 증거도 없이 남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거짓 이야기를 만들어 악평하는 모함 때문에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생명을 짓 밟을 뿐 아니라 한 가정까지 파멸시키는 참담한 짓을 〈만물의 영장〉으로 일컬어지는 인간으로서 어찌 감히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전혀 근거 없이 모함을 당하여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타격을 받아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교회가 나서야 한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복음으로 저희들을 살려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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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목회자칼럼
    2015-05-14
  • [교회법률상식] 총회 노회 분립 위원회의 반역(1)
    -노회역사성 인정 않고 전통노회 해산하는 노회 분립 언어도단-노회역사는 전통 노회가 이어가고 분립노회는 1회로 시작해야 제99회 총회가 한서노회(위원장 이성택 목사), 평양노회(위원장 이종희 목사), 안주노회(위원장 최희용 목사), 황해노회(위원장 남태섭 목사), 서대구노회(위원장 전주남 목사), 서수원노회(위원장 박덕기 목사) 등 6개 노회의 노회 분립을 허락하였다. 그런데 그 중 평양노회 분립위원회와 안주노회 분립위원회의 분립내용을 보면 노회분립 위원회가 총회헌법에 도전하는 반역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인즉 기독신문 제1994호(2015.1.14.) p.2에 “평양노회 분립위원회 명칭 결정”이라는 머리기사의 내용으로 “평양 A노회(김선규 목사 측)를 가칭 평양제일노회, 평양 B노회(고영기 목사 측)를 가칭 평양노회로 결정하고 특정노회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양 노회의 역사성과 회기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 소속을 결정하지 못한 교회는 1월31일까지 소속을 청원하도록 하고 그 후에는 위원회에서 실사하여 소속을 결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동 p.5에는 “안주노회 15일 분립예배 드려”라는 머리기사의 내용으로 “안주노회가 15일 분립예배를 드리고 가칭 신안주노회와 동안주노회로 분립한다. ··· 신안주노회를 15일 오후 1시 성현교회(라계동 목사)에서, 동안주노회 분립예배를 오후 3시 성인교회(이현국 목사)에서 드리기로 했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관련하여 노회분립의 원칙을 정리함으로 이해를 돕고자 한다(2014. 교회 법률상식 pp. 410-416 참조). 1. 분립위원회의 직무한계 총회가 보낸 노회분리위원회의 직무한계는 헌법의 규정에 따라 노회가 합법적인 노회의 결의로 총회에 노회분립허락 청원서를 제출하면 총회가 허락하고 위임한 대로 전통노회에 관하여는 그 어떤 일도 간섭해서는 안 되고 분립할 노회만 조직하는 사회자의 직무일 뿐이다.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노회의 분립청원서 내용에 기록된 분립할 노회의 지역, 노회의 명칭, 교회 수, 목사 및 교역자 수, 장로 수, 교인 수 등을 명시한 대로 제1회 ○○노회를 조직 해 주는 것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분립위원회는 전통노회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 오직 전통노회가 스스로 임시노회를 회집하여 노회 분립으로 인하여 결원된 노회 임원을 보선하고 노회분립 후의 후속조치를 위하여 요구되는 노회규칙수정과 시찰회 및 상비부 등의 조직을 보완 조정하면 그만이다. 2. 분립위원회의 월권 그런데 안주노회분립위원회와 평양노회분립위원회는 분립할 노회뿐만 아니라 전통노회까지 간섭하면서 “양 노회의 역사성과 회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양 노회에 분립예배를 시차를 두고 드린다고 하면서 월권을 넘어서 전통노회를 해산하는 반역을 행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노회분립위원회가 노회명칭을 가칭으로 정해주고 각 지교회의 소속할 노회를 청원하면 위원회가 실사하여 소속노회를 정해준다고 하니 노회분립의 행정이 거꾸로 돌라가는 것 같아 보여 심히 염려스럽다. 실제의 상황을 살펴보자. 15일에 안주노회의 분립을 하면서 가칭 신안주노회는 오후 1시 성현교회(라계동 목사)에서 분립예배를 드리고, 가칭 동안주노회는 오후 3시 성인교회(이현국 목사)에서 분립예배를 드린다고 했는데 양노회의 가칭은 언제 누가 어떻게 떼어줄 것이며 안주노회의 역사는 어디서 보전할 것이며, 분립위원회가 무슨 권한으로 지교회에 소속노회를 청원하라고 지시를 하며 무슨 자격으로 소속노회를 정해준다는 말인가? 노회분립위원회가 지교회에 소속노회를 청원하라하고 위원회가 소속을 결정해준다고 함은 어불성설이다. 혹 무지역노회의 분립청원서에 누락된 지교회가 있을 경우에는 그 누락된 교회들은 모두 전통노회에 소속하는 것이 지역노회와는 달리 무지역노회에 관련한 법리적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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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5-05-14
  • [성공칼럼] 사랑의 길, 에고의 길
    사랑으로 가는 길과 에고 즉, 정욕으로 가는 길은 겉은 비슷해 보이지만 속은 정반대의 길이다. 사랑은 선으로 가는 길이며, 정욕은 거짓과 악으로 가는 길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이 목적이지만 정욕은 상대방을 이용하여 내가 잘 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사랑은 내가 수고하고 내가 희생하지만 정욕은 상대방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상대방이 내 생각대로 따르지 않아도 서운해 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욕은 상대방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아서 나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분노한다. 선한 사람의 생명은 사랑이며, 악한 사람의 생명은 정욕인 것이다. 자신의 시작이 사랑으로 시작하는지, 정욕으로 시작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내 중심에 사랑이 있는지 정욕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자신의 입장부터 먼저 생각하는가? 상대방의 마음부터 살피는가? 내 입장부터 살피면 정욕, 상대방의 입장부터 살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 진리를 사랑하고 선을 행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하여 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가?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이 목적이면 사랑, 하나님을 이용하여 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면 정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는 의존이며 이용이며 정욕적인 것이며, 주님을 사랑하여 정직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은 사랑이 되는 것이다. 부모나 선생이나 의사나 종교지도자나 그의 목적이 상대방에게 있는가? 자신에게 있는가? 그 목적이 자신의 의도에 맞추어져 있으면 사랑이 아니라 정욕이 되는 것이다. 모든 망가짐의 시작은 상대방을 위한다는 사랑을 가장한 에고 즉 정욕에서 시작된다. 교회나 부부나 국가나 기업이나 모든 시작은 사랑으로 시작한다. 사랑은 그 근본 마음이 주고 싶은 마음이기에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위할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더 좋은 것을 줄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이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와 능력이 나와서 더 행복해지고 강해지고 부유해진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했다.’ ‘내가 대단하다’ 등의 자만심과 ‘내가 이만큼 했으니 나는 대우받아야 하며, 사람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는 자기 옳음이 생기면서 사랑은 사라지고 이기심과 소유욕과 지배욕이 들어서게 된다. 이리하여 서로 간에 믿음이 깨지면서 갈등과 싸움이 생겨서 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잘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고 망가뜨리는 것은 에고인 것이다. 마귀의 목표는 사람 속에 있는 사랑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사람의 생명이기에 사람에게서 사랑을 없애기만 하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마귀는 사랑 없이 모든 것을 다하기를 바란다. 사랑이 없는 종교지도자, 교육자는 가장 극악한 악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신을 다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사랑 없는 종교 지도자는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입혀서 상대방도 사랑을 버린 삶을 살도록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어찌하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표에 온 마음을 쏟도록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들어 결국 욕심 때문에 양심을 버리게 한다. 또 마음속에 두려워하고 분노하게하고 질투가 나게 하여 사랑을 없애는 것이다. 혹시나 사람들이 진리를 알았을 때는 서로 자신의 진리가 맞다고 주장하게 하여 갈등과 싸움을 만들어 사랑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삶은 내가 사랑하며 살 것인가? 정욕으로 살 것인가의 영적 시험장이며, 영적 전쟁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환경과 사건 속에서 사랑으로 가는 것이 진리로 살아가는 길이다. 이 길이 모두가 사는 길이며, 내 목표, 내 생각을 주장하면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길은 정욕의 길이며, 모두가 죽는 길인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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