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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 내 인생의 밑줄이셨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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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rvey Q 3R 선생님은 그렇게 다가오셨다. 무슨 암호냐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까까머리 소년은 이 기호부터 배웠었다. S는 Survey(관측)다. Q는 Question(질문)이다. 그리고 3R이란 Reading(읽기)과 Recite(Recall, Recording-암기, 기록) 그리고 Review(되풀이, 반복, 복습, 재음미)를 말한다. 독서법이었다. 난 지금까지 이 독서법을 놓쳐본 일이 없다. 그 독서법이 재미있어 읽고 또 읽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이란 만인의 대학”이라고 했다. 나는 한 해도 아닌 두 해를 월반(?) 했고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다. 활자는 이해력, 상상력, 집중력, 어휘력, 기억력 등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깨우쳐 준 스승이었다. 잘 고른 한 권의 책은 스스로를 격려하고 채찍질하는 좋은 길잡이였다. 한 번 붙잡은 책은 여지없이 밑줄이 그어졌다. 밑줄이 그어질수록 나의 세계는 확장되어 갔다. 선생님은 입시공부보다 더 중요하게 책 읽기를 강조했다. 선생님의 그 원려(遠慮)를 깨우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글씨를 잘 쓰려면 “오천 권의 문자가 가슴에 있어야 한다.”는 말로 책읽기를 장려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유배지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라면서 폐족으로서 책읽기를 통해 집안을 일으키라고 당부했다. 책을 붙잡고 누비지 않은 세상이 없었다. 밟지 않은 땅이 없었다. ‘밑줄 인생’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밑줄이란 중요한 것에 대한 표시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에 다짐이다. 다시 돌아보고자 하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때로는 자신을 향한 마음의 박수가 되기도 한다. 밑줄을 많이 그으면 그을수록 인생은 빛난다. 밑줄은 끝내 자신의 인생의 훈장이 된다. 밑줄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내 인생의 부호(符號)였다. 선생님은 때로 의문표였고 쉼표였고 느낌표였으며 Apostrophe(')가 되기도 했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질문하는 법을 배웠고 감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익혔다. 불가능(Impossible)을 가능(I'm possible)으로 만드는 열쇠가 지혜임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날 학창시절에는 물 건너 먼 산 쳐다보듯 바라다보던 모교의 스피릿(교훈)이 선생님의 철학이고 삶이었음을 안다. 여느 학교의 교훈과 달리 스스로의 고백 문으로 작성된 ‘나는’으로 시작되어 ‘되련다.’는 고백으로 끝나는 교훈이 지금은 나의 삶의 교훈과 철학이 되어 있다.
1.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지금껏 내가 밑줄을 긋고 또 밑줄을 그은 문장들 중에 이보다 더한 명문장을 찾아본 일이 없다. 아니 선생님이 바로 내 인생의 밑줄이었다. 덤으로 얻게 된 물음표와 쉼표 그리고 감탄사와 어퍼스트로피 조차도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든 선생님의 편린(片鱗)들이었음을 안다. 이제는 안다. 선생님을 대신해서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 밑줄이 되고 부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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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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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독서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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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무엇일까요? 가을입니다. 한 설문조사 결과 연령 불문하고 응답자의 44.2%가 선호하는 계절로 가을을 꼽았다고 합니다(2014.10. 한국갤럽조사연구소). 그래서인지 가을 하면 유독 아련히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많습니다. 국화, 코스모스, 단풍, 낙엽, 황금들판, 보름달, 추석, 가족, 천고마비(天高馬肥),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가을 전어(錢魚), 그리고 독서의 계절, 그렇습니다. 누군가 ‘가을은?’이라고 물으면 자기도 모르게 ‘독서의 계절’이라고 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을 시간도 여유도 많이 부족한 계절이 가을이라는 사실이 함정입니다. 직장인들은 연말 인사고과에 반영될 실적 올릴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분주하고, 주부들은 추석 명절 준비하느라 정신없고, 수험생은 수능시험 때문에 독서란 말 자체가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하지만 독서는 환경이 아니라 습관이 더 중요합니다.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는 『습관의 힘』에서 바이러스성 뇌염을 앓고 기억을 잃어버린 ‘E. P.’라는 환자를 통해 이루어진 ‘기억은 사라져도 습관은 남는다’는 발견을 소개합니다. 이를 독서에 적용한다면, 계절이나 환경과 관계없이 어떻게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이 쓴 『독서의 역사』 첫 페이지는 위대한 독서가들 사진이나 그림을 18장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시각장애인이었던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66)가 누군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경청하는 사진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독서를 습관적 행동이 되게끔 만들어주는 선한 동기와 열망과 공감대로 기능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책읽기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를 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책을 손에 쥘 때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려 할 때처럼 행동하라. 그리고 그대들이 책 읽기를 끝낼 때면 책장을 덮고 하나님의 입을 통해 나온 그 모든 단어들에 감사를 표하라. 그 이유는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역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발언입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도 아마도 비슷한 취지로 1966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Wir brauchen doch-die Bibel und die Zeitung.” 직역하자면 “우리는 성경과 신문 양자를 다 필요로 한다”가 되겠지만 이보다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경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명언입니다. 어디 신문뿐이겠습니까? 책도 읽어야 하고, 때로는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대자연도 읽어내야 하고, 때로는 남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사람들도 읽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특별히 부여된 사명과 책임이라는 생각입니다. 197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소웨토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백인 정권의 강압적인 교육정책에 반발한 소웨토(Soweto) 지역 흑인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로 600명이 죽고 수천 명이 도피했던 사건입니다. 이어진 암울한 80년대를 거쳐 1994년 마침내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는 흑백연합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현대사를 통해 종교적 죄의식과 역사적 부담감으로 고민하던 작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접근하는 방식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이러한 작가군 중에서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가 1991년, J. M. 쿳시(Coetzee)가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오면 올해에는 한국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까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성인 1인당 평균 독서량 9.2권(월 0.76권), 기독교인 중 1년에 신앙서적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60%가 넘는 나라입니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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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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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 칼럼] 목회(凩會)가 아닌 목회(牧會)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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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牧會)를 시작하면서, 나 같이 죽을 죄인이 하나님이 맡기시는 주님의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고 치는 성역(聖役)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어야 하는 당위성을 마음에 담고 목회를 시작했다.
이론이야 쉽지만 그것이 삶에 적용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는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지혜롭게 넘기지 못하고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목회(牧會)는 목회(凩會)가 된다. 牧會를 푸른 초장이라면, 凩會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을 뜻한다. 이와 같은 경우는 지상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픔이고 고뇌다. 그래서 십자가의 보혈로 세워진 주님의 교회가 사람들의 사욕(私慾)에 의하여 허허벌판이 되기도 하고 거룩한 그 나라의 사람들, 곧 성도(聖都)의 성도(聖徒)라 하면서 시정잡배(市井雜輩)만도 못한 언행과 관계로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지경이 되면 소위 세상에서는 상식이라도 통하지만, 상식도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귀신도 웃는다는 말이 통용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소(苦笑)를 금할 수 없는 말이 있다. ‘못된 망아지는 두들겨 패야 길이 든다.’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 통용되어 정상적인 상식이 통하는 이해관계는 기대할 수 없고 조폭출신의 말은 먹혀든다는 말이 우리 귀에 들려지는 것이다. 이보다 더 기막히고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직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믿음이 없으면 의리라도 있어야지 의리로 똘똘 뭉쳐진 조폭만도 못한 예수쟁이가 되어서 되겠는가?’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지는 교회실상이 주님의 아픔이 된다.
교회를 들여다보면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가난의 옷을 입고 살면서 늘 부요한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구제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오랜 지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만나면 그냥 훈훈한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서 목회(牧會)의 행복과 감동을 느끼고 경험한다.
그런데 모든 것을 갖고 살면서 홀로 벌판에 선 듯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의 언어는 수천 만 마디 쏟아내면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들, 언제보아도 얼굴은 편하지 않고 그러기에 입술에 불평과 원망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 자기 자신이 가장 교회를 사랑하는 듯 분별도 분수도 모르고 언행하면서 정작 갈라디아서 5:22~23절의 성령의 열매는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그 반대적인 언행으로 분열과 분쟁을 일으키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벌판 같은 목회(凩會)의 현장에 서 있는 고뇌를 느끼고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牧會이든, 凩會이든 그 현장을 윤택하게도 하고, 허허벌판처럼 만드는 것도 목회자의 몫이다. 그러기에 凩會현장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목사는 종종 말씀의 검을 들어야 하고 징계의 채찍도 들어야 한다. 그래서 목회 행정면에서 권징(勸懲)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牧會)를 위하여 목회자는 원망을 듣고 아픔을 당하기도 하지만, 凩會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아픔과 고뇌도 마음 안에서 삭여 내어야 하는 힘든 시간들이 있다.
牧會현장에 수없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가는 사람들! 그리고 멀어졌다가 다가오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벳새다 언덕의 예수님에게 수 천 명의 군중이 다가왔다가 그 수 천 명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 대며 멀어져 갔던 것을 생각해 본다. 그래서 오늘의 목회 현장에서도 예수님에게 향유를 깨뜨렸던 마리아가 있는가 하면, 예수를 은 30에 팔아넘긴 유다도 있고, 바울에게는 자신의 목이라도 내 놓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했던 에바브로디도와 디모데,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는가 하면, 항상 바울에게 해를 입혔던 구리 장색 알렉산더도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사랑을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또 그 마음으로 너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나의 삶을 오늘에 실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나눔이다. 이 사랑과 나눔은 낮은 마음을 가진 자들의 몫이며, 그곳이 牧會현장이다.
목회현장에서 은퇴를 한 후 1년 52주일 쉼 없이 전국 방방곡곡 크고 작은 교회의 초청을 받고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는 뜰 밖의 목회를 하면서 종종 교회가 목회(牧會)가 아니라 목회(凩會)현장이 되어가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로 집회를 인도할 때가 있다. 그래도 주님의 은혜로 집회가 마무리 될 때는 감동과 행복, 기쁨과 감사로 얼룩진 얼굴로 목회(凩會)현장이 목회(牧會)현장으로 바뀌어 지는 은총을 경험하면서 이 땅의 교회가 목회(牧會)현장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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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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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애굽기 4장 2절,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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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들 중 한 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구출하여 가나안을 향해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도 처음부터 위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실패로 인해 깊이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십 세가 되었을 때 노예로 고생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을 죽였는데, 동족들이 그를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배척했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해야 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사십 년 동안 그는 세상에서 완전히 잊힌 인물이 되었고, 그저 양을 먹이는 목자로서 살아갈 따름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용기도, 의욕도, 열정도, 비전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이런 모세가 딴 사람이 되는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양을 먹이던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깊은 절망 때문에 자신은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의 생각과 말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출애굽기 4장 2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묻지 않으시고, <있는 것>을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물으셨습니다. 당시 모세는 손에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만을 생각하며 낙심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십시오. 집안의 가구들, 신발, 옷가지, 냉장고의 음식들, 소지품들부터 시작해서 옆에 있는 가족들, 우리를 걱정해주는 사람들, 건강, 재능, 기회......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다고 낙심한 사람들도 아직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입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아무리 우리가 연약해도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이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게 하셨고, 모세가 던졌을 때 뱀이 되었습니다. 그 후 뱀의 꼬리를 잡게 하셨고, 모세가 잡았을 때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지팡이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마른 막대기였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깜짝 놀랄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이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마른 막대기와 같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을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4장 17절에서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지팡이 밖에 없어도 겁낼 것이 없고, 우리가 지팡이처럼 마른 막대기와 같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면 충분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바라보면서 말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물이 반 밖에 없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고, 하나는 <물이 반이나 있다>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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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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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을 말한 고신 경기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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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총회 첫째 날 오모 목사(두레교회)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행정적으로 착오가 있었다. 경기노회장에게 잘못 전달했다”고 사과했다. 이에 총회 재판국은 경기노회장을 위증죄로 소환했으나 아프다는 이유로 결석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사회법에서 위증죄는 법정구속감인데 이를 어떻게 다룰지 고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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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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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 리스트 공개, 누구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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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동 총회에서는 은급재단 납골당과 관련해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이를 계기로 위원회가 꾸려졌고, 총회 넷째 날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납골당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거나 소송 중인 최모 권사에게 유리한 행동을 한 자들을 징계했다. 납골당 설치권자 김*수 목사, 은급재단 상임이사였던 임*순 장로, 매각위원장이었던 김*길 목사, 거짓 문서 작성한 김*수·정*환 목사, 그리고 하*호 목사를 비롯해 공동사업자 지분 인수 및 납골당 매각 등을 결의한 은급재단 이사 및 감사들(전*웅·이*건·정*영·채*현 목사, 정*웅·윤*율 장로)도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이사회 중에는 잘 모르고 참여한 인사도 있어 이후 경중을 가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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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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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전체교인 수 46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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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총회 교세현황보고가 나왔다. 총회사무국에서 발표한 교세현황은 금년 2월 둘째주 기준이다. 따라서 이 현황에 고려측 통계는 포함되지 않았다.
교세현황을 살펴보면 36개 노회에 교회 1,840개(기도소 포함) 중 조직교회는 989개, 목사 3,967명, 세례교인 274,884명이 집계됐다. 유아세례교인은 44,535명, 원입교인 120,698명 전체교인수는 461,476명이다.
고신은 2006년 50만 1,036명 이후로 교인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금년 고려와의 통합으로 내년 교세는 증가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고신뿐만아니라 합동과 통합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가 목회자수는 증가하는 반면, 교인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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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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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형교회가 서울에 지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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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제일 큰 대형교회인 수영로교회가 서울에 교회를 개척한다. 지난 8월 2일부터 서울 동신중학교 강당을 빌려 예배를 가지고 있다. 이름은 ‘수영로서울교회’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여론이 좋지만은 않다. 부산에 있는 교회가 굳이 서울에 교회를 개척해야 하느냐다. 안그래도 교회가 밀집된 서울에 굳이 교회를, 그것도 지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아직 교회가 없는 시골도 많고 부산 인근 지역에도 교회를 개척할 곳이 많은데 말이다.
교회 내 여론도 어지럽다. 성도들 중 일부는 교회가 ‘서울로 진출’하려는 것으로 보고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반면, 모교회를 그리워하는 수영로교회 출신 서울 거주자들과 새로운 교회를 찾는 성도들에겐 반가운 일일 수 있다. 이미 수십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후문이다.
부디 단순한 수도권 진출이 아닌 복음확장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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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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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측 부산지역 중형교회 담임 청빙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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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측 부산 지역 중형교회들의 담임목사가 비상이 걸려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노회 대연교회는 담임목사 청빙광고를 교단지에 게재해 놓고 있다. 서부시찰 내 G교회 Y목사는 현재 3년 임시목사로, 당회로부터 10명의 시무장로 중 반대 6, 찬성 2, 기권 2로 부결되는 상황이라 고심 중에 있다.
또 동노회 산하 K교회도 후임자가 들어 온지 불과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당회원끼리 삐거덕거려 매우 불편한 가운데 있다
한편, 부산남노회의 소정교회 채규웅 목사는 내년이면 정년은퇴하며, 양산중앙교회 김득기 목사는 금년 정년은퇴로 후임자를 물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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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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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회에서 병원장 5명을 배출한 ‘송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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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 장로와 이승도 장로, 이화동 안수집사, 故 정기상 장로 그리고 현 임학 장로까지 병원장 5명을 배출한 송도제일교회(담임 주준태 목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박영훈 장로(송도제일교회 원로)는 고신의대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경북의대를 나와 故 성산 장기려 박사의 수제자로서 인턴부터 레지던트까지 장기려 박사 밑에서 수련과정을 쌓았고, 제일외과 과장을 거쳤다. 장기려 박사에 이어서 1976년에 제2대 복음병원장, 그리고 고신의료원 시절인 1981년 제1대, 1985년 제2대, 1991년 제5대 원장을 역임했다. 초창기 순수 복음병원장 시절은 초대 故 장기려 박사와 제2대 박영훈 장로가, 고신의료원 시대에 들어와서는 제1대 박영훈 장로가 11년간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재직했다. 故 장기려 박사가 복음병원을 설립했다면 박영훈 장로는 고신의대를 설립한 중추적인 인물로, 두 사람은 기념비적 공적을 남겼다.
박영훈 장로는 1991년 6월 의대 학생 부정입학사태로 11년간(최장기) 근무했던 의료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고신대학교 명예교수다.
박영훈 장로 다음으로 제3대 고신의료원장이였던 이승도 장로(송도제일교회 원로, 세계로병원 이사장)가 의대학장을 거치고 1991년 의학부장으로 재직했을 때 의대부정입학사태로 박영훈 원장과 함께 물러났다. 병원에서 21년 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동고동락했던 사이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이화동 안수집사가 제6대 고신의료원장으로 근무했고, 현재 제8대 복음병원장 임학 장로(2015년 9월~)가 병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1991년 의대부정입학사태로 잠시 故 정기상 장로(송도제일교회 원로)가 의료원장 대행을 맡아 헌신한 것까지 한다면 송도제일교회에서 5명의 병원장이 배출된 셈이다.
△복음병원 의료원장 시대는?
1951년부터 1976년까지 25년간 고(故)성산 장기려 박사의 시대였다면 1976년부터 1985년까지 박영훈 원장의 시대였다. 1981년 3월부터 고신의대가 신설됨에 따라 복음병원이 고신의료원이 되면서 제2대 복음병원장이었던 박영훈 장로가 제1대 의료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제2대 의료원장을 역임, 1991년에 다시 제5대 고신의료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고신대학이 고신대학교로 종합대학 승격을 받고 고신대학교복음병원 시대가 열리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2년 고신대학교복음병원 제1대 병원장에 김재도 교수가 취임했다.
64년 복음병원 역사 속에서 병원장을 무려 17명 인사가 거쳐 나갔다.
복음병원 행정처장에 서판수 장로, 故 정기상 장로, 약국장 故 박종학 장로, 서이만 의과대학 교무처장, 현 보건대학원 원장 천봉권 장로 등 송도제일교회가 배출한 인물들이다.
송도제일교회는 고신대복음병원과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교회다. 기존 교회당을 의과대학 실험실습과 의사들의 임시숙소로 내어 주고, 옆 언덕배기 대지 500평을 고려학원으로부터 당시 현금 5억 원에 매입하여 건축했다.
지금의 송도제일교회당은 언덕위에 세워졌다. 옆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 아니라 병원장을 길러낸 교회가 되었다. 송도제일교회는 송도 근방에서 든든히 서가는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교회 출신 병원장 5명뿐 아니라 증경총회장 원종록 목사, 이용호 목사, 주준태 목사(현재 송도제일교회 담임)가 이 교회에서 나와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과 같이 숨은 인재 양성을 가장 많이 한 교회로 알려졌다.
더구나 병원 1400여 직원 중 10분의 1이 송도제일교회에 출석할 만큼 인재와 영적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축복의 방주로 여겨지고 있다. 담임인 주준태 목사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풍수지리적 입장에서 풀이한다면 병아리를 품고 있는 어미 닭처럼 의과대학, 간호대학, 복음병원을 품고 있는 영적인 날개 모양으로 큰 인물이 나는 명당으로 꼽히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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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