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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부부가 된 담임목사 결국 사임 압박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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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교회 담임목사 사모와 자녀들이 교회 부임한지 3년이 지나도 교회 사택에 이사는 오지 않고 주말 부부로 살았다. S교단 A교회의 담임목사를 보다보다 더 이상 기다려 주지 못해 당회 시무장로들이 담임목사 사임 요구에 이르렀다고.
A교회 담임목사 사모는 서울 모학교 교편을 잡고 있는 이유가 있겠으나 담임목사 주말부부는 아무래도 교회 정서에 안 맞는다고... 그래서 현대교회 목회가 어렵다지만, 어찌하겠나? 목회자의 이 딱한 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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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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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몸살을 앓고 있는 A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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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K교단 A교회에 평신도가 주일날 설교할 때 맨 앞자리에 검은 안경을 쓴 채 목사의 설교를 녹음하고 있다고 하니, 강단에서 설교하는 담임목사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고심하다가 당회가 중지를 모아 그 문제의 남자 성도를 서리집사직까지 박탈하고 출교까지 하는 과정에서 담임목사 제척사유를 들어 당회가 재판을 할 수 없게 되자 B노회에 위탁 판결까지 가게 되었다고.
B노회는 기소위원회가 모여 검토했으나 골치가 아프니까 도로 해당 당회로 이첩시켰다나. 과거 영도에 있는 모교회에서도 하도 애를 먹이니 ‘교회접근금지 가처분’까지 법원으로 받았던 사례가 있다. A교회도 이 사례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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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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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사모님 때문에 사임 뜻을 밝힌 교회 너무 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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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교단 B노회 H교회는 담임목사가 부임한지 3년 남짓. 그런데 담임목사가 갑자기 사임서를 낼 형편이다. 이유인즉 담임목사 사모가 친정집에 돈이 필요했는지 새롭게 출석한 성도 여러명에게 돈을 빌린 것이다. 차츰 액수가 커져 2천여만원 고액이 되니 결국 당회까지 말이 나고 말았다. 담임목사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당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시무장로 세분은 절대 시무는 안된다고 하고, 일부 항존직 몇 분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덮고 넘어가자고 하고, 초임이고 자녀 중 고3 학생도 있으니 5월까지나 아니면 연말까지 배려해주자는 분들도 있다. 이해가 안되는 사모의 행동에 목양의 길은 망쳐 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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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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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장로들이여 주일날 작은 교회에 참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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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왜색문화가 짙어 있는 부산항에 1884년 9월 14일 첫발을 디딘 알렌 선교사. 이듬해인 1885년 4월 2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부산을 거쳐 인천항에 도착했다.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한 그들은 그야말로 암흑과 다름이 없는 무지, 삭막한 대한민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선교사로 이 땅을 밟았다. 복음의 씨를 뿌렸던 젊은 20대 선교사들의 헌신은 13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에 찬란한 복음의 꽃을 피웠다. 복음의 빚을 진 한국교회는 이제, 세계 각국에 2만여 선교사를 보낼 만큼 제2 선교대국으로 성장했다.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교회
한국교회 곳곳에는 다음세대를 향한 시대적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목회자들은 계속 늘고 있는데 교회는 자꾸만 침체 늪에 빠져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절실해 지고 있다. 그 한 실례로 보면 예장통합 교단의 통계자료를 보면 다음세대에 관한 절실한 과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 8,417개 교회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48%, 중등부가 없는 교회가 47%, 아동부의 고학년 부서가 없는 교회가 43%, 저학년 부서가 없는 교회가 47%, 유치부가 없는 교회가 51%, 유아부는 77.4%, 그리고 영아부가 없는 교회는 78.5%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략 절반 가량의 교회가 교회 학교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회학교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전도사를 둔 교회는 25%에 불과하다.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 중에서 절반 가량은 전담교역자가 없지만, 전국에 남아도는 교역자는 수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수도 서울에 목사 신분을 가진 1,000여 명은 택시기사, 경비원, 청소원, 기타 잡부로 이중 직업을 가져 겨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의 경우 필자가 작년(2014년) 12월말 경에 교회 시무장로로 은퇴한 후 줄곧 주일날 작은 교회를 순방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작은 교회를 찾아가 보니 주일예배에 모이는 교인 숫자는 불과 평균 10~20명 이내로 교회 운영이 힘든 교회가 허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은퇴장로들(시니어급) 분산하여 작은 교회 도와야
그래서 ‘함께 가는 작은 교회 참여하기 운동’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은 시니어급 은퇴장로들 수천명(통합교단 부산권만도)이 자신의 교단 미자립교회, 작은 교회를 주일날 찾아가서 함께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대표기도하며 동참하는 것이다.
동반성장과 균형성장을 위한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교회부터 살려내야 교역자 수급도 되고 미자립교회 지원 정책에 재정적 보탬이 될 것이다. 계속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큰 교회, 큰 노회 예산의 상당한 금액이 작은 교회 지원책에 사용할 수 밖에 없어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미자립교회 교역자들은 사례비만으로는 생활을 하기 힘든 실정이다. 따라서 교단 및 노회, 대형교회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은 교회와 대형교회가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은퇴장로들은 각자의 교회에서 20~30년 섬기며 시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은퇴 후에는 작은 교회, 미자립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하자. 교회는 새로운 성도가 찾아와서 반갑고 또 헌금으로도 보탬이 되니 교회 운영에 도움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작지만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앞으로 남은여생, 주님이 부르실 때 “너는 이생에서 무엇하고 왔나”라고 물을 때 “미약하나마 작은 교회를 돕다가 왔습니다”라고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각자가 섬기는 교회는 이때까지 돕고 살았으니 이웃 교회, 작은 교회, 미자립교회를 돕고 살 수만 있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남은 여생을 주님이 기뻐하실 일에 동참하자. 자신도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은퇴장로들이여 이제부터 남은 여생, 유통기간이 끝나기 전에 작은 교회 돕기와 주일 예배 참여하기에 서로 독려하며 살아갑시다. 섬겼던 지교회의 1~2부 예배에 참석하고 3부 11시(혹은 11시 30분) 예배는 작은 교회에 가서 예배에 동참하면 노후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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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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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봅시다] 입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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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의 입장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 말하면 실례가 될 수 있어
사람은 누구에게나 입장이라는 게 있다. 따라서 무슨 일에 관하여든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보면 나의 입장과 남의 입장은 차이가 난다. 그 때문에 말을 할 때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입장에서 말하다보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예를 들면서 나의 입장과 남의 입장의 차이를 열거해 보고자 한다.
△남이 차를 천천히 몰면 너무 소심하다 하고, 내가 천천히 가는 것은 안전운전을 위해서라고 한다. △며느리는 남편한테 꼭 잡혀 살아야 보기 좋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보기 좋다고 한다.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라 하고, 자기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자기 주장이 뚜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고,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남이 음식값을 각자 내자고 제안하면 이기적인 사고방식이라 하고, 내가 각자 내자고 하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남의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공처가라 하고, 자기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애처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약속을 어긴 경우에는 사람이 어쩌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이렇게 말하고, 남이 약속을 어기면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한다. △내가 지각을 한 경우엔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그리 되었다 하고, 남이 지각하면 정신 자세가 틀려 먹었다고 한다. △남이 학교에 자주 가는 것은 치맛바람이라 하고, 내가 학교에 자주 가는 것은 높은 교육열이라고 한다. △며느리가 부부싸움을 하면 여자가 참아야 한다 하고, 딸이 부부싸움을 하면 아무리 남편이라도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한다.
△며느리가 친정부모에게 용돈 주는 것은 남편 몰래 돈을 빼돌려 주는 것이라 하고, 딸이 친정부모에게 주는 용돈은 길러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딸이 애인이 많으면 행실이 가벼워서 그렇다 하고, 내 딸이 애인이 많으면 인기가 있어 그렇다고 한다. △며느리에게는 시집왔으니 우리집 풍속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딸에게는 시집을 가도 줏대가 있어야 한다며 타이른다. △남이 내 아이를 꾸짓는 것은 이성을 잃은 히스테리라 하고, 내가 남의 아이를 꾸짖는 것은 어른된 도리로 타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내 입장과 남의 입장은 차이가 있다. 그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지 자칫 내 입장에서 말하다간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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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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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금수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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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파란 물 넘실대며 굽이쳐 흐르던 강. 한 폭의 비단을 깔아 놓은 듯 화려하고 수려하여 그 이름을 금강이라 했던가. 아니면 4월의 아름다운 봄 햇살에 넘실넘실 춤추는 물결이 눈에 부셔 금강이라 하였던가. 출렁이는 금빛 물결에 쳐다보는 이들의 눈이 부시지 않았다면 금강이라는 이름은 아마 거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남한 4대강중의 하나인 금강 물은 맑고 수려하였다. 충청남북도를 거쳐 군산 만에 이르기까지 395km를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4월의 하늘아래 금빛처럼 반짝거렸다. 내가 태어나 자랐던 시골 초가집에서 바라다 보였던 금강, 이른 봄 파릇파릇 어여쁜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에 강가로 가면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푸르고 맑은 물이 좋아 실컷 뛰어 놀았다. 그것도 모자라 첨벙 첨벙 하늘 높이 뛰어 오르는 숭어 떼, 밀물에서 즐겁게 놀다 썰물 때면 물속으로 가야 하는데 노는 재미에 푹 빠져 강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메기 붕어 떼들이 조그만 웅덩이에 갇혀 여기저기 남아 있다가 아이들에게 잡혀 죽는 줄 알고 머리를 처박고 숨어 있는 광경은 어린마음이지만 재미가 있어 헤헤거리며 깔깔 대기에 충분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이제는 저 멀리 순천만 갈대밭까지 가야만 천연 자원처럼 볼 수 있는 꽃게와 참게들이 상큼한 풀을 뜯어 먹다 집게발을 치어들고 위협을 하노라면 게에게 어린 손가락이 물려 아파 눈물이 나도 한두 놈을 잡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신나고 재미있었다. 이런 재미가 어린 우리에게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보리, 밀, 이삭이 무르익은 여름날 힘든 타작 일을 하다 목이 마를 때 어른들은 서슴없이 강으로 달려가 물속에 몸을 담그고 휘휘 손으로 서너 번 젓은 다음 벌컥벌컥 물을 마셔도 그 물이 얼마나 깨끗했던지 병나지 않은 금강이었다. 그 찬란한 물결, 빛나는 물결을 다시 보고 싶어 얼마 전 찾아가보니 그 강은 이제 예전의 강이 아니었다. 빛나는 한 폭의 비단물결, 하늘로 솟구치던 숭어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푸르고 맑은 물속에서 둥실둥실 떠가는 흰 구름이 거울같이 들여다보여 신기루에 빠진 듯 바라보았던 맑은 물은 어디로 가고 이상하게 칙칙한 물이 모여 슬프게 울고 있었다. 당신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금강은 이미 죽었노라고 통곡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변해 버린 금강의 처참한 모습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불도저로 밀어놓은 강둑에 앉아 넋을 잃은 사람처럼 주저앉은 나에게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가 있었으니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일 많아 사방에 일군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하려고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가세 일하러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민족 운동가 남궁억 선생이 지은 찬송 시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의 노래대로 우리조국 대한민국은 예부터 화려하고 수려한 금수강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를 가도 아름답고 수려한 자연의 모습을 망가뜨리고 파헤쳐서 예전 모습을 볼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아졌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답고 고귀한 자연을 지키지 못하고 훼손하여 이제는 마실 물마저 걱정하고 살아야 하는 슬픈 시대가 온 것이다. 아름답고 수려한 계곡, 금빛처럼 맑은 물, 손으로 떠 마시던 산 계곡에 어김없이 공장이 서있고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는 물의 근원을 싹쓸이 오염시키고 있으니 이 어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렇게 훼손되고 파괴되는 금수강산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믿는 자들이 정치의 주요한 요직에 많이 앉아있다. 자연 만물이 훼손 되는 것을 보고 있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선물을 보존하는데 앞장서야한다. 그리고 믿음의 자녀들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량을 줄이고, 길가에 버려진 휴지 한 조각 내가 먼저 줍는 정신이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을 사랑하고, 믿음의 선배 남궁억 선생이 지은 노래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는 찬송을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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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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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사무총장] 핵발전이 없어도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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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를 겪으며 한국Y운동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단기적으로는 노후핵발전소 폐쇄를 이루어 다가올 치명적인 사고를 예방하고, 핵발전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려 시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탈핵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미래세대에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회복된 사회를 물려주어야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핵발전을 통해 생산하던 대량의 에너지는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선진 에너지 자립마을을 탐방하는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탐방지역을 간단히 소개해본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작은 부거란트 주 남부의 귀씽마을, 제2차 세계대전이후 피해로 산업시설이 전무하고 인구의 대부분이 노인이며 가장 가난했던 마을에 시장의 헌신을 통해 재생에너지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에너지비용이 유출되지 않고 지역에 머물게 되고, 에너지기업이 유치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어 세계에서 에너지전환과정을 경험하고자 매년 3만명이 귀씽모델을 찾아온다. 농축산부산물과 폐목재를 활용한 바이오매스, 바이오가스, 펠렛, 태양열을 통해 열과 전기를 생산하고 태양열지역난방시설을 적극 활용하여 석유고갈과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농가수입이 증대되는 결과를 얻었다. 다음은 에너지절약을 위한 최적의 에너지이용을 위해 활약하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주 정부와 에너지컨설팅기업의 협업사례를 보았다. 주 정부 담당부서가 별도 조직 운영되고 있으며 에너지컨설던트가 기관과 기업 그리고 시민에게 연간 3,000건의 현장 컨설팅을 한다. 주된 내용은 에너지 기기 구입 및 관리, 건축 등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생산,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최적화)를 하도록 지원한다. 독일에서는 2000년 재생에너지법 제정되고, 2004년 재생에너지법이 개정(재생에너지 생산 시 이윤 4-8% 지원)되면서 폭발적으로 태양광이 보급되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민태양광발전소가 세워졌다. 후쿠시마 사고 후 독일정부는 원전정책을 탈핵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재생에너지법을 강화하였는데 주요내용으로 공공건물 옥상에 임대료 없이 태양광설치를 가능하게 하여 2013 현재시민 에너지조합은 888개이다. 지역의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활동하는 사회적기업인 독일의 징엔 솔라 콤플렉스를 방문하였는데 현재 개인, 기업, 지역에너지회사, 정당 등 1,000명이 주주로 투자, 투자금액은 1억, 최소 4%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 주요 프로젝트는 지붕과 벽면, 나대지를 활용한 마을 하천 이용 생태적인 소수력발전소, 풍력발전소, 우드 펠렛 난방과 바이오 에너지 마을을 매년 1개씩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견학한 곳은 세계적 환경도시로 이름난 프라이부르크 시의 보봉 생태마을이었다. 1970년대 반전·반핵운동은 환경보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보봉 생태마을은 병참시설을 생태주거단지로 개조한 신흥주택지인데 1992년 기존주민(SUSI/주지)을 포함하여 전문가와 함께 구성된 보봉포럼과 시의회, 시정부가 협업하여 ‘쇼셜 에콜로지주택지’ 라는 개념하에 주택개발의 프로세스를 개발하였다. 주요내용은 도보와 자전거교통, 대중교통 절대적 우선과 큰 나무 보존 및 주택지 비오톱 보호, 다양한 사회계층이 입주, 녹지로의 우수한 접근성, 저에너지 건축양식과 지역난방이다. 이같이 주택과 사회적 가치가 접목된 생태적으로 건강한 저탄소 도시가 되어 하루 평균 약 6,000명이 찾아오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친환경 저에너지 주택단지의 모델이 되었다. 한국의 에너지정책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았다. 먼저 시민의 힘이었다. 오스트리아는 핵발전소 건설을 완공했음에도 국민투표를 통해 여론을 확인하고 가동을 하지 않고 즉시 폐쇄하였다. 독일 또한 후쿠시마 사고이후 선거를 통한 국민의 여론이 작용하여 원전정책에서 탈원전정책으로 전환하여 노후원전 8기를 폐로하고 2022년까지 나머지 9기를 폐로하여 탈핵을 선언하도록 한 국민의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시민의 힘만으로 가능한가? 시민의 여론을 집중시키고 선도 할 수 있는 관련정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우선 전기료의 적정화가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전기료가 값싼 이유는 한전이 독점운영하면서 운영손실분을 정부가 보조하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한다. 또 주목할 점은 온실가스를 감소하려는 자발적인 참여가 일어날 수 있는 권한이 시민에게 주어졌고 시민참여를 통해 정책이 입안되는 민관거버넌스로 재생에너지정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재생에너지생산에 따른 보조금 지원 정책은 개인에게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게 되어 실효성을 담보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 자립은 지역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았다. 키워드는 “지역순환”이다. 지역에서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거나 자립하고, 개인이나 소규모 재생에너지발전으로 생산하여 지역이 사용하고, 지역일자리를 창출한다. 즉 지역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다. 에너지는 반드시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고의 에너지는 에너지가 필요 없는 것임을 볼 수 있었다. 에너지절약과 효율화(최적화)가 더욱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면서 이를 충분히 활용하는 생명존중의 가치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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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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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탈진과 회복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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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서 벌 같이 쏘아버리는> 특유의 전법(戰法)외에 무하마드 알리 선수가 사용하는 또 하나의 전법은 상대선수를 <조롱하기 taunting> 였다. 속사포같이 팔을 쭉쭉 내뻗는 (straight) 횟수만큼이나 알리는 쉴 새 없이 상대 선수를 향하여 무차별 조롱을 퍼붓는다. 그래서 <떠벌이 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4년에 <20세기의 복싱대결>이라 일컬어진 대격전이 알리와 조지 포먼 사이에 펼쳐졌다. 조지 포먼의 주먹은 무쇠 주먹이고 그의 힘은 황소의 힘이었다. 복싱 전문가들마다 조지 포먼이 압도적인 펀치(주먹)의 힘으로 알리를 KO시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시합이 시작되면서 알리는 스트레이트 주먹과 떠벌이 조롱의 말을 함께 포먼에게 쉬지 않고 퍼부었다. 포먼은 그 강력한 주먹으로 한 방에 알리를 KO시킬 욕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번번이 그 주먹은 빗나가고 만다. 왜 그럴까? 알 리가 쉴 새 없이 떠벌리는 <조롱의 말>에 화가 머리 끝 까지 오른 포먼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결국 포먼은 알리에게 비참하게 패하고 말았다. 포먼은 알리의 주먹에 쓰러졌다기 보다 알리의 <쉴 새 없이 쏘아대는 조롱의 말 taunting>에 기분이 상하고 감정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져서 결국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은 <치명적인 무기>다. 치명적인 ‘살상무기’다. 이유 없이 무차별 조롱을 받으면 그 상처와 후유증은 의외로 심각하다. 성경에도 <조롱하는 사건>이 기록돼 있다. 느헤미야 4:1~3을 보면 산발랏과 도비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페르시아의 수산궁으로 부터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나서는 느헤미야를 향하여 <조롱의 말>을 퍼붓는다. 성경 본문에는 이렇게 기록돼있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이유 없이 아주 나쁜 마음으로 나를 향해 조롱을 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하는 것이 좋을까? 느헤미야는 사악한 자들의 <조롱의 말>에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담대하게 처신하고 있다. ◎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 그들의 조롱은 결국 그들의 머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믿었다. ◎ 그들의 조롱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 우리는 결코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용감히 맞서 싸우라고 다짐하였다. ◎ 낮에는 성벽을 쌓고 밤에는 파수하리라고 다짐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누가 이유 없이 우리를 조롱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흔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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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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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률상식] 헌법개정위원회에 바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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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3. 시벌과 해벌은 권징재판이 아닌 교회 예배 의식 만일 예배모범의 시벌과 해벌을 권징조례에 옮겨서 시행한다고 가정할지라도 그 양상은 마치 상의는 양복정장을 하고 하의는 한복 바지를 입고 신발은 운동화를 신은 사람과 같이 꼴불견 중에 꼴불견인 헌법이 될 것 같아 심히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그 이유로 해벌은 재판회나 재판국에서 해벌하는 것이 아니고 행정치리회에서 목사는 노회가, 일반 신도는 당회가 결의하여 예배모범에 규정한 의식으로 행정치리회 회장이 회원에게 해벌·공포하는 것이요, 시벌은 재판회(국)에서 판결하여 원·피고에게 선고한 후 회원들에게는 행정치리회장이 정치 제7장 교회 예배 의식 10항에 의하여 예배모범 의식으로 공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헌법 조문에서 검토해 보자. 현행 권징조례 제31조에 “치리회가 시벌하거나 해벌하는 때는 장로회 예배모범 제16, 17장의 규정한 바에 의하여 처리함이 옳다”라는 규정에서 여기의 치리회는 권징치리회가 아니고, 행정치리회인 노회와 당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개정위원회는 개정안 제33조(시벌 및 해벌)에서 엉뚱하게 행정치리회인 이 “치리회”를 “재판회(국)”로 개정 초안했으니 또한 기가 막힐 일이다. 해벌할 때에 과거에 재판한 그 재판국은 이미 해산되고 없어졌는데 무슨 방법으로 재소집해서 해벌하란 말인가? 아니면 새로운 재판국을 설치하여 해벌하란 말인가? 말이 도무지 안 된다. 오직 행정치리회가 결의하고 행정치리회장이 예배모범의 의식으로 공포하는 것이다. 당회재판으로 생각해 보자. 재판회는 심리·판결하여 원고와 피고에게 재판회장이 선고하는 것이므로 권징조례에 속하고, 그 판결을 교회에 알리는 공포는 당회장이 예배시간에 교회에 공포하는 것이므로 시벌과 해벌은 권징조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속하는 것이므로 예배모범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법과 세상법이 다르고 교회재판과 세상재판이 다른 점이라는 말이다. 4. 헌법 전면 개정의 의미와 범위 원래 헌법 개정의 절차는 어떤 개인의 청원이나 제의에 의해서 개정안이 총회에 제안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치리회의 헌의(정치 제8장 제1조, 동 제10장 제6조 2항, 6항, 동 제12장 제4조)에 의하여 총회의 결의(정치 제12장 제4조)와 노회의 수의 과정을 통하여(정치 제23장 제1조, 제2조) 총회가 공포 시행하는 것이다. 즉 총회 현장에서 헌법 개정이 긴급하게 요구되는 조문이 발견되었다고 할지라도 총대 개인의 제의나 어떤 집단적 개체(장로회, 교역자회 등) 또는 총회 상비부나 위원회, 임원회 등의 제안으로는 헌법 개정안을 총회에 상정할 수 없다. 오직 “당회가 헌법 개정안을 노회에 헌의(혹 노회 회원들의 긴급 동의안으로 제의)하고 노회가 그 개정안을 받아 결의하여 총회에 헌의(혹 총회 총대들의 긴급 동의안으로 제의)하면 총회가 받아 결의하여 노회 수의 후 공포 시행하는 절차에 의해서만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2012년 제97회 총회에서 “헌법 전면개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계속 활동해 오다가 제99회 총회에서 명칭을 “헌법 개정위원회”로 변경은 하였지만 그 기능과 역활은 존속시키면서 그 위원회에 헌법 전면 개정안을 제안하도록 위탁하였다. 그러므로 헌법 전면 개정의 의미(범위)는 모모 교단이 장로교회 헌법의 원조인 웨스트민스터 헌법의 틀과 판을 허물고 세상 법과 같이 삼권분립의 형식으로 개정하여 교회 헌법의 고유한 특성을 훼손한 헌법 개정과 같은 전면 개정이 아니고 현행 헌법의 장과 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법이 정한 헌법 개정 절차 중에 총회에 헌의하기 이전의 하회 치리회가 헌의해야 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총회가 그 절차를 헌법 전면 개정위원회에 위탁한 특별한 비상조치로 보아야지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5. 결론 바라기는 헌법개정위원회는 “성경으로부터 이탈한 중세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기치(旗幟)”를 잊어서는 안 된다. 웨스트민스터 헌법 제정이야말로 종교 개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의 목표인 것처럼 웨스트민스터 헌법에서 빗나간 현행 헌법을 웨스트민스터 헌법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헌법 개정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개정위원회는 기이 초안한 개정안은 접어두고 이제껏 헌법을 개정할 때마다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번역하여 출판한 1922년도 판 헌법에서 빗나가게 개정하므로 인하여 시행할 수 없는 부분(정치 제13장 제4조 등)과 시대적 문화적 변천으로 인하여 그 의미가 바뀌어 시행할 수없는 용어(권징조례 제136조 등) 등의 부문만 찾아내서 개정안을 초안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웨스트민스터 헌법으로 되돌려 놓는 헌법 개정으로 세계 만국 장로교회들이 공히 시행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헌법과 버금가는 헌법 개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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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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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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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 밝은 생각에서 밝은 감정이 나오고 어두운 생각에서 어두운 감정이 나오듯 거짓과 악은 서로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생각과 행동이 짝을 이루어야 하듯이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가 서로 짝을 이루어야 한다. 악은 사랑이 없는 진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없는 진리란 가슴에 분노와 미움과 적개심을 품고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이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뒤에 있던 차가 새치기를 해서 사고가 날 뻔했을 때 온갖 욕설과 악담을 하면서 상대방 운전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그리고 서로 논쟁할 때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것 등이 사랑과 존중을 잃어버린 자기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차가 새치기를 하는구나. 굉장히 다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겠지... 사고 나지 않았으니 감사하지”하면서 마음에 사랑과 여유를 회복한 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선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자유, 생명, 기쁨 등의 본성과 원천이며, 진리는 그 원천에서 나오는 말이며 사상이며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진리는 사랑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기에 내 생각,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물질, 지식, 능력은 선과 자유, 사랑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속에 사랑이 없으면 내 옳음과 내 모든 소유는 악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담겨져 있어야 할 내 생각에 두려움이 있고, 서운함, 적개심, 내 욕망이 있으면 삶은 망가지게 되며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패망의 근원은 모든 것의 근원인 사랑을 버린데 있는 것이다. 책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 속의 왕들을 보면 처음에는 백성을 향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왕이 된다. 여기에서 지혜가 나오고 능력이 생겨 나라가 부유하고 평화롭게 된다. 그러나 왕이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사랑을 버리게 되면 왕이라는 자리에 연연하여 지배욕으로 불타오른다. 그러면 서서히 악이 보이면서 폭군으로 변하며 패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말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내 속에 사랑과 선함 있는지 살피는 것이 악을 막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진리가 함께 있어야 하는 짝이듯이 더 나아가 사랑 속에는 진리, 옳은 생각,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겉보기에는 밝고 선해 보이지만 그 속에 악한 마음 즉 거짓이 있기에 겉이 화려한 무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마음속에 옳지 않은 욕심을 가지고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리 없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악의 근원은 거짓과 어둡게 만드는 생각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거짓을 진짜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을 살다보면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잘 될 때, 안 될 때, 좋은 평가를 들을 때, 비난을 들을 때 등등의 상반된 일들이 생기게 된다. 이 때 크게 두 가지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하나는 사랑과 선을 만드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거짓과 악을 만드는 생각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은 상반된 것으로 하나는 진리이며, 다른 하나는 거짓이다. 이 때 나는 어떤 생각을 선택할 것인가? 예를 들어 내 성적이 원하는 대학에 갈 성적이 되지 않는다. 혹은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실직을 했다. 혹은 갑자기 이혼을 했다면 ‘나는 해도 안 돼, 나 같은 것은 살 필요가 없어. 이젠 끝이야’ 라는 생각을 받아들여서 사랑과 힘을 잃으며 내 삶이 엉망이 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다시 시도해 보자, 결국 나는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해서 힘과 사랑이 생겨서 내 삶이 살아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악의 근원은 내가 사랑이 생기지 않는 거짓을 따르는 것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서 사랑을 더하여 악의 근원을 없애고, 사랑과 진리가 항상 함께 같은 양이 되도록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이 있든지 내 안에 사랑과 진리가 균형을 이루어서, 사랑과 진리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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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