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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기감, 합동, 통합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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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총 122개 교회가 세습을 단행했는데, 이중 85개가 직계세습을, 37개 교회가 변칙세습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단별로는 총 40개 교회가 세습한 기감이 1위, 예장합동과 통합이 2, 3위를 이었다.
특히 이날 변칙세습이 눈길을 끌었는데, 아들이나 사위를 지교회를 설립하여 담임으로 세우는 ‘지교회 세습’,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세습’, 한양제일교회(기감), 은혜교회(기감) 등에서 시도한 경우와 같이 여러교회가 서로 교차적으로 이루어가는 ‘다자간세습’, 아버지 목사가 자신과 가까운 목사에게 교회를 형식적으로 이양한 다음, 이를 다시 아들에게 물려주는 ‘쿠션세습’, ‘징검다리세습’, ‘분리세습’, ‘통합세습’, ‘동서간세습’ 등이 변칙세습으로 소개됐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교회세습은 교회를 사유화하는 것”이라며 “세습교회는 그 교회가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특정 가족의 혈연으로 맺어진 교회이며, 한 목회자 집안의 교회이고, 그 집안의 사기업이라는 것을 공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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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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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지파 건축 작정 헌금이 35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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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안드레지파 본부이전 문제로 교계가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는 이때, 신천지 야고보지파도 지난 5월 31일 건축작정헌금에 돌입했다. 목표액은 350억 원 규모. 실제 이 금액을 모금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100억원 이상의 건물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야고보지파는 주일 주차장 문제로 주변 민원을 많이 받고 있다. 주차문제에 대한 민원 해소를 할 수 없어, 결국 본부이전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야고보지파 본부를 어디로 이전하는가 여부다. 사하구 신평, 강서구 명지 등이 거론되지만, 항상 이상한 소문을 흘려 교계의 뒷통수를 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지역 교계가 긴장감 속에 예의 주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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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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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남을 빛낸 교계 여성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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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민족의 지도자들 중에는 부산, 경남이 낳은 여성 인물들이 많다.
양한나 선생은 1893년 3월 3일 출생 부산 동래 북천동 출생. 조국광복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대의원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초대회장을 지냈다. 1950년대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 여성노숙자, 고아, 생계형윤락여성, 정신병자 등을 돌보는 ‘자매여숙’을 설립하고 1976년 6월 26일 소천 할 때까지 소외된 여성들을 돌보는데 노력했다. 예수의 사랑을 봉사로 실천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은 희생과 헌신의 공덕으로 용신봉사상과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일신여학교 1회 졸업생이다. 현재 부산YWCA의 전신인 부산진일신여학교 청년회의 총무로서 여자기독교청년회 활동에 참여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밀항으로 상해에 가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상해에서 돌아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고, 1920년대부터 계속 돼 온 부산 지역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호주선교사 에이미 스키너는 양한나와 절친으로 한국에 올 때 양한나와 동행했다.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했던 에이미 선교사는 한국 땅을 밟은 첫 여성이다.
1946년 7월 1일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창립 시 총무도 없이 초대회장이 됐다. 농촌 부녀자들에게 농업, 축산, 원예 등의 기술을 교육하고 1984년 회장직을 안음전 권사에게 물려주고 부산여자기독교 청년회를 떠났다.
부산진교회의 명예권사인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교회 기장묘역에 안장됐다. 자매여숙은 양한나 여사의 뒤를 이어 그녀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부산진교회 장로 故우창웅 장로가 이사장으로, 그의 부인 윤애리나 권사가 2대 원장을 지내면서 평생토록 헌신했다. 우창웅 장로는 부산YMCA 제6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양한나 여사의 동생 양성봉 장로(초량교회)는 1949년부터 환도할 때까지 경남도지사를 지냈고, 환도 후에는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양성봉 장로는 10녀 1남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외동아들이다. 양성봉 장로는 부산진공립보통학교에서 공부한 후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진학, 졸업했다. 이후 부산철도국 서무과에서 일하기도 했고, 울주군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다가 부산으로 돌아와 미국인 선교사 어을빈의 제약회사에서 일했다. 1929년 초량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의 집례로 장로 장립을 받았다. 미군정시절인 1945년 11월 26일 부산시 부시장에 취임한 양성봉 장로는 솔직하고 화통한 성격과 아부하거나 잔꾀를 쓰지 않는 인물로 신뢰를 받아 1946년 1월 24일 제1대 부산시장에 취임하게 됐다.
양한나 여사의 부군은 김우영 변호사이며, 여동생 양봉옥 권사(부산진교회)는 우덕준 장로의 부인으로 부산YWCA 회장을 지냈다. 양한나 여사의 집안은 그야말로 YMCA, YWCA에서 활동한 공로자 집안이다. 그의 후손들은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믿음의 복을 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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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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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봅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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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여권은 미국 다음으로 힘이 있어
우리나라를 자랑스럽다고 하면 어떤 이는 당장 우리나라가 뭐가 그리 자랑스러우냐며 반박할 것이다. 우리가 보는 한국은 다소 어수선하고, 시위도 많고, 한국은 왜 이럴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만 외국인이 보는 우리나라는 전혀 다르다. 지금 온 세계가 한국을 우러러보고 부러워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점을 생각하면 어깨가 으쓱해 진다.
자랑스러운 점이 뭔가. 우선 대한민국의 여권을 보라. 여권이 뭔가. 여권은 정부가 국민에게 외국여행을 허가하며 소지자의 국적과 신분을 증명하고 외국에서 보호받을 권리와 모국으로 재입국할 권리를 보장받는 공식문서가 아닌가.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이 여권을 들고 힘이 세고 잘 사는 나라의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보면 괜히 주눅이 든다. 반면 힘이 없고 못 사는 나라 심사대 앞에서는 공연스레 의기양양해 진다. 같은 줄에 서있어도 강대국 국민의 여권은 고급스러워보이고 약소국 국민의 여권은 초라해 보인다.
실제로 여권에는 등급이 있다. 다 같은 여권이 아니다. 영국 컨설팅그룹 헨리앤파트너스가 전 세계 200여 국가의 여권을 94등급으로 분류했다. 여권만 있으면 비자는 받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나라의 순위를 매겼다. 국력이 강할수록 국민의 여행이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을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여권의 영향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에서는 1위이다. 한국은 독일, 프랑스와 함께 2위 그룹에 포함되었다. 비자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145개국이다. 1위는 미국과 영국 등인데 비자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147개국이다. 3위는 이태리, 스웨덴 등인데 비자없이 144개국에 갈 수 있고 4위는 덴마크, 필란드, 일본 등인데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143개국이다. 북한은 캄보디아, 가봉, 레바론 등과 함께 73위이다. 그나마 북한은 여권발급 대상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은 대부분 여권이 뭔지 조차 모른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한국에 정착한 후 대한민국 여권을 받아들고 그 첫장을 보면서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는 기쁨에 눈물이 솟구쳤다고 TV프로그램에서 밝힌바 있다.
생각해 보라. 조그마한 한국의 여권의 영향력이 미국 다음으로 제2위라니 어찌 온 세계가 한국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또 인천국제공항을 보라. 인천국제공항은 6년 연속 최우수공항이라는 평가를 받고 상을 받았다. 명실공히 명품공항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어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아닌가.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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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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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바이러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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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R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가 유행입니다. 바이러스(virus)로 인해 고열 증상을 동반하는 일종의 호흡기 질환입니다. 2003년에는 사스(SARS)가, 2009년에는 신종플루(인플루엔자)가, 작년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렸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 또 새로운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게 된 셈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그의 책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인류의 문명을 바꾼 동인(動因) 중 하나로 ‘병균’을 꼽은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류는 중대한 고비마다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 같은 병균의 공격으로 인구의 급감이나 경제력의 감실, 심지어 나라의 흥망성쇠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1346년에서 1352년까지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 때문에 당시 유럽 인구의 1/4이 사망했고 이는 중세라는 한 시대 자체에 큰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1519년 코르테즈(Cortez)가 6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지만 사실은 당시 스페인 군대에 의해 묻어간 천연두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한 때 2,000만 명을 상회했던 잉카 제국의 인구가 1,618년 160만 명으로 감소한 것도 이러한 병원균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깝게는 1940년대 전세계에 퍼진 독감 때문에 2,000만 명이 사망한 예도 있습니다. 이번 메르스나 지난 번 사스 둘 다 동일한 바이러스가 일으킨 소동입니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는 발열, 기침, 콧물, 빠른 호흡, 비정상적 호흡음, 낮은 혈중 산소 농도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05년 코네티컷 주 예일대학의 칸(Jeffrey Kahn) 박사가 주도하는 팀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린이들의 가와사키 병(Kawasaki disease)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 가와사키병은 안구 감염, 구강 및 목의 발적(發赤), 발진(發疹), 그리고 손 혹은 발의 홍조(紅潮) 증상을 수반하며 때로 심장 질환을 유발하는 질환을 말합니다. 당시 학자들은 이 새로운 바이러스를 뉴해븐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메르스라는 질병을 일으키는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견된 셈입니다. 자꾸만 새롭게 옷을 바꿔 입는 바이러스와 인류는 지금 치열한 전쟁 중에 있습니다. 바로 그 2005년 무렵, 둘째 아이가 가와사키로 추정되는 증세를 보인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했기 때문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습니다만,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입원시키고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물론 의학적으로 원인을 밝히고 그에 대한 처방 혹은 항바이러스 물질을 개발하는 일이 급선무이겠습니다만,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 또한 치열한 병마(病魔)와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그 때 절감했습니다. 고열에 시달리며 애처롭게 앓는 아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부모 된 자로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심한 무력감에 시달릴 때, 홀연히 여호와 라파(출 15:26)의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 앞에서 정말 간절하게 주님을 찾고 부르짖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6~17).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영적 전쟁에 관한 말씀입니다만, 바로 이어지는 구절을 눈여겨보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하라”(6:19). 메르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아프고, 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그분들을 위해 또 우리 자신을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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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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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꿈은 눈물에 젖을 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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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참 많이 울었다. 불신 가정에서 쫓겨나 겨울 눈보라 속을 걸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가난한 신학생이라 양복이 없어 설교를 할 수 없을 때도 채플실 바닥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다. 서울에 올라와 가락동에서 개척을 한 후에도 토요일이면 설교연습을 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억센 전라도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설교 원고를 교정하고 다섯 번에서 일곱 번을 강단에 서서 소리 내어 연습했다. 내일 누가 올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설교연습을 했다. 뿐만 아니라 전도지를 들고 동네를 누비며 눈물로 전도하고 다녔다. 그때는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다. 오죽하면 토요일 저녁에 빈 의자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면서 기도한 적이 있다. “주님, 이 빈 의자에 내일 사람을 앉혀 주세요. 지나가는 거지가 되었든, 넝마주의가 되었든 사람을 앉혀 주세요.”그 눈물은 결코 비관과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 눈물은 도전과 희망의 눈물이었으며 내 영혼을 살리는 꽃씨가 되었다. 영혼을 사르는 불덩이가 되었다. 아니, 이 땅의 불덩이를 넘어 절망과 어둠의 밤을 밝히는 꿈의 별이었다. 야곱도 요셉도 눈물로 꿈을 성취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 구약의 선지자들도 조국을 위해 피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예수님도 감람산 언덕에서 훗날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다보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며 우셨다. 예수님은 그 당시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당해야 할 처참한 심판을 예견하며 우셨다. 예루살렘은 무너졌지만 주님의 눈물은 마침내 새 이스라엘을 이루었지 않았던가.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는 비극적 시대다.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가족을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절망과 상실의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꿈은 뜨거운 눈물에 젖을 때 빛이 난다는 사실을. 눈물을 적시지 않으면 꿈은 빛나지 않는다. 눈물이 무엇일까? 아픔과 통증, 고독과 가난, 치를 떨게 하는 외로움의 젖은 고백이 아닐까. 꿈은 아픔을 동반한다. 시련과 역경의 채찍에 맞아야 꿈틀거리며 깨어난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을 쏟아야 한다. 인생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마음 아프다. 인기 연예인, 정치인, 관료, 학자, 사업가 등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마저도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삶의 꽃을 꺾어버린다. 차라리 울어야 한다. 그냥 울기만 해도 다시 꿈을 꿀 수 있다. 새 희망이 솟아날 수 있다. 삶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 고난의 산이 첩첩산중으로 막혀 도피할 수 없을 때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보면 어떨까. 울고 울다 밤이 깃들고 산도 강도 모두 잠들 때 까지 울고 또 울어보면 어떨까. 산천도 고요하고 밤의 적막에 휩싸였을 때 그 깊은 슬픔의 끝에서 가느다란 삶의 희망의 실타래를 붙잡을 수 있을지도. 더 나아가 나만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 아픈 시대를 위해서 울고,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 울고,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며 울고 또 울어본다면 더 맑은 영혼의 정화를 느낄 수 있으리라. 울어야 살 수 있다. 울어야 희망이 있다. 차디찬 새벽 도로에서 쓰러져 잠든 청춘이여, 인생을 비관하고 절망에 빠진 상처 받은 이들이여, 누군가 당신을 위하여 울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지. 상처 받은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그 분의 사랑이 당신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도시의 밤은 냉혹하고 어둠에 쌓여도 콘크리트 벽에 사랑의 이름을 새겨 넣는 이가 있다. 잠긴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별들이 당신을 향한 누군가의 눈물이라면, 가을 강가의 은빛 갈대가 당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 분의 사랑의 손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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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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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가나안, 성공의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신명기 32장 48-5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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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가나안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드시 가나안을 얻어야 한다는 설교를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상당 부분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는 목적이 가나안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을 만났을 때 단 한 번도 가나안을 얻기 위해 애굽을 떠나겠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출애굽의 목적은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더구나 모세는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 쯤 들어가서> 여호와를 섬기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5장 1-3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도 아닌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길 수만 있다면 그곳이 가나안이든 광야든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라도 하나님만 섬길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나안만 강조하는 데서 오는 잘못은 가나안을 얻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반드시 가나안을 얻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만약 가나안을 얻지 못한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면 모세는 실패한 사람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듯이 그는 가나안에서 단 하루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 므리바 물가의 사건으로 인해 가나안에 발을 디뎌 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의 삶을 결코 실패의 삶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34장이나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은 모세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가나안만 강조하다보니 가나안을 얻기 전까지의 삶을 비참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광야 사십 년은 비참한 삶이었나요? 아닙니다. 기적의 떡인 만나를 먹으면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던 은혜의 나날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광야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을 예배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행함으로써 충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가나안만 강조하다가 여러 문제를 만났습니다. 가나안을 얻지 못한 사람은 열등감과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을 얻기 전에 지나가는 광야 생활을 비참한 삶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교인들 대부분을 욕구 불만 환자로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을 얻은 사람은 교만하여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광야에서가 아니라 가나안에서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에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했습니다.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나안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 망합니다. 우리는 오늘 광야를 걷고 있더라도 거기서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광야를 걷다 보면 어느새 가나안에 도착한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 길을 감사함으로 걷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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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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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충남-기독교 사적지 방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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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셋째 날-8일(수), 서천 마량진-서산 해미-공주 금번 충청남도를 택한 이유 중 두 번째 큰 이유가 되는 서천 마량진을 향해 출발했다. 마량진! 두 가지 의미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영어로 쓰인 성경책이 이곳에 전해진 ‘한국 최초의 성경전래지’요, 다른 하나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목포에서 개최되는 성경번역회에 참석차 인천에서 목포로 향해 가던 중 이곳 마량포에서 여객선이 침몰되어 순직하신 곳이다. 마량포 선착장 항구에는 두 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1. 한국 최초의 성경전래지-1816년 9월, 영국의 알세스트 호가 조선해양 탐사차 이곳에 왔다가 함장인 바실 홀이 마량진 참사 조대복에게 영어성경을 선물하다. 2. 다른 하나는 아펜젤라 선교사의 흉상과 그의 사적을 기록한 기념비이다. 근처 언덕 위에 세워진 ‘아펜젤라 순직 기념관’(Henry D. 아펜젤라, 1858~1902, 한국최초의 감리교 선교사)에는 사적 기록물만 아니라 값진 유물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아펜젤라 부부+언더우드(미북장로교)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여 드린 아펜젤라 선교사의 기도문이 눈에 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많은 은혜를 받고 86km 떨어진 충남 북쪽 끝인 서산 해미를 향해 출발했다. 작년 8월 프란체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했는데 1790년~1880년 사이에 6천여명의 무명의 순교자들, 더욱이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생매장’ 순교지로 알려져 있다. 천주교 순교지를 볼 때마다 마음에 와 닿는 감동과 도전은 가톨릭은 최선의 정성을 다해서 과거의 순교자들을 추모하며 순교지를 조성하고, 가꾸면서 다음세대들에게 그 귀한 순교사적들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오후 4시경 78km 떨어진 다음 목적지 공주를 향해 출발했다.
ㆍ 넷째 날-9일(목), 공주-경북 안동 공주 방문의 목적은 충청도 최초의 감리교회인 공주제일교회(1902년~)와 문화재로 등록된 ‘옛 교회당-역사박물관’을 보기 위함이다. 현재 공사 중이나 배려로 여러 사적들을 볼 수 있었다. 근처에 있는 ‘공주영명학교’(1904~, 4만 8천평, 남녀공학:中300+高700)를 방문했다. 교목인 유혜종 목사의 안내와 ‘永明100年史’ 책자를 선물 받았다.(설립:R. A. 샤프 선교사, 유관순을 양녀/이화학당에 추천, 장티푸스로 34세로 요절, 학교뒷산에 선교사가족묘지). 유 목사의 사랑으로 뜻밖에 천주교 순교지 ‘황새바위’도 방문했다. 참수, 교수형, 옥사, 아사, 고문 등으로 금강이 그들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여질 정도로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했다. 기념무덤안의 순교자들의 고백문이 감동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오후 3시쯤 마지막 행선지인 안동을 향해 출발했다.(공주-안동:195km) 안동은 금번 여정의 목적지는 아니나 한국기독교회사, 특히 통합측 교회사에서 널리 알려진 곳이라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이다.
ㆍ 다섯째 날-10일(금), 안동-대구-마산 마지막 날이다. 본래 계획에 없던 곳이어서 편한 마음으로 안동 시내를 둘러보았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양반도시 같은 넉넉함과 여유가 보인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통합측 ‘안동교회’(1901년~)를 방문했다. 3천여평의 대지에 고풍스러운 옛 교회당, 그 옆에는 ‘100주년기념건물-SOLI DEO GLORIA’이 지어져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 본당, 옛 건물은 교육관...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지금도 옛 교회당을 본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새 건물은 교육관과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당으로 사용하는 건물에 들어가니 마루바닥이고 소리가 삐꺽~ 그러나 정이 담뿍 묻어나는, 참으로 감동적인 곳이었다. 젊은 김승학 담임목사의 설명, “선교사가 세운 교회가 아닌 한국 성도들이 세운 교회, 3.1운동당시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곳, 한국교회 최초의 청년면려회 창립지, 안동 최초의 유치원, 안동최초의 성소병원...등”을 듣고 원로장로님의 안내를 받아 안동교회 역사전시실에 들어서자 벽면에 붙어있는 말씀이 나의 마음을 감동으로 뚫고 들어왔다. 신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나는 그 말씀을 4월 19일 주일 설교시 본문으로 택하여 성도들과 금번 안식주간의 삶을 나누었다. 대구를 거쳐 마산에 도착하니 밤 8시 30분, 그동안 달린 거리는 1,076 km!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의 사랑과 기도로 2015년 안식주간을 은혜와 안전 가운데 마치게 됨을 감사드린다. 모쪼록 “옛 것을 귀히 여기고, 기억하고, 감사하고, 옛것으로부터 지혜와 경계를 공급받으면서 오늘과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와 교회”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기독교사적지 방문을 통해 받는 도전과 배움이 너무도 큼으로 앞으로 성도들과 함께 1박2일/2박3일 일정으로 목회에 접목하면 어떨까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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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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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自明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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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 푸르고 싱그럽다 푸르고 맑은 하늘 해 맑은 호수에 새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새싹들이 웃자라 우거진 숲속에는 수많은 새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가지에 둥지를 튼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새 생명을 잉태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새의 둥지에는 입 벌리고 짹짹거리며 먹을 것을 달라하는 귀여운 새들이 보일 것이다. 이처럼 오월은 찬바람 가시지 않은 잔인한 4월보다 포근하고 따뜻하며 싱그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인지 계절의 여왕 오월은 여러 행사로 바쁜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특별히 사랑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는 장차 나라의 기둥이요 주인이요 참되고 티 없이 맑게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며 평등하게 교육을 받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이념에서 색동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1923년5월1일 드디어 어린이날로 선포되었고 어린이는 장차 나라의 주인이라는 인식하에 모든 국민이 기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 다가오는5월8일이 있으니 바로 어버이 날이다 어버이날은1913년 미국의 한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하가 위해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나누어 준 것이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미국에서는 매년 5월 두 번째 주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고 점차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도1956년5월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매년 기념해오다1973년3월30일대통령 령으로 각종 기념일에 관한규정이 제정 공포되면서1974년부터는 어버이 날로 변경되어 지켜오고 있다. 이 땅에 어머니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으랴 만은 세상은 나날이 변하고 악해져서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자기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 구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허다하니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안아주고 업어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주고 이 눈치 저 눈치 채면불구하고 온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평생을 자식위해 몸 바쳐 희생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늙은 부모 한 몸을 안 모시려고 형제끼리 아웅다웅 다투고 싸움질 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역겨울 뿐이다.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여행 가자해 좋아라! 기뻐했는데 비행기타고 제주도까지 와서는 여행은 고사하고 자기 어머니를 쓰레기처럼 버려놓고 도망가는 천하에 몹쓸 짓도 서슴없이 한다니 개탄이 절로 나온다. 제 자식은 소중하고 부모는 죽어버려라! 버려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해놓고 돌아가서 어떻게 자식들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부모에게 잘 하라고 가르칠 수 있으며 늙은 후에 자식에게 효도를 바랄 수 있다 생각 할 수 있는가?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효자비가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자식에게 당시의 임금님이 갸륵한 효성을 후손에게 기리고자 세운 효자비였다 어린마음이지만 효자비 앞에 서면 웬 일인지 마음이 무거웠다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눈앞에 떠오르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오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저 사람처럼 되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걸음을 멈춘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 그 사람처럼 되지 못 했지만.. 배 아파 낳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등골이 휘어도 아프다 말 못하고 자식들 바라보며 참고 또 참고 희생하신 아버지의 은혜는 백골이 진토 되어도 갚을 길 없는 것. 하늘 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사랑 그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그렇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세대들이여 부모를 공경하자 그것이 바로 어린이를 사랑하고 훈계하며 양육하는 법이다 자식은 사랑하고 부모는 외면한다면 잠시 후 당신에게 다가 올 백발의 노년 앞에 당신의 자녀들도 당신을 내다 버릴 것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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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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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만 목사] 부모는 자식에게 카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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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사역하면서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걸 본다. 한 쪽은, 좋은 직장에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크게 보아 평범한 중산층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자식들은 자기 부모를 대단한 부자로 알고 살아간다. 이런 배경에는 부모가 좀 허세를 부린 부분을 부정할 순 없다. 사실 부모가 다 알아서 해 주니까 자식 입장에선 그리 느낄 만도 한 것 같고. 그래서 일까, 일찍 유학을 가서 부모가 놓아준 징검다리를 밟고 인생스텝을 별 어려움 없이 밟으며 성장했다. 다른 한 쪽은, 내가 알게 된 것만으로도 분명 진짜 부자다. 그런데 자식들에게는 일체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 등록금 마련키도 만만찮다는 느낌이 들도록 자식들을 키운다. 해서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 등록금에 보탤 정도다. 물론 자식들도 유학을 보냈지만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근면한 것처럼 사는 게 아니라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참 검소하게 살아간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식들이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어엿한 청년이고, 또 결혼해 자식을 기르는 부모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 이 두 쪽 부모에게서 자란 그들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앞 부모를 둔 자식들은 부모가 다 알아서 모든 걸 공급해 줬기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도 부모가 주는 부스러기로 살아간다. 거의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도, 곧 죽어도 폼 잡고 산다. 나이도 들어 신입사원으로는 안 어울리고, 학위를 인정받아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기에는 졸업한 학교가 좀 그렇고, 한국 기업문화와 다르게 외국생활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적응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믿을 부모가 있기에 조금만 수틀리면 더 출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자의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스스로의 힘과 역량을 더해 자신의 날개로 비상하는 연습을 해 왔기 때문에 뭐가 되었어도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의존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설령 부모가 조금만 더해준다 해도 그걸 기반 삼아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오른다.
이 때문일까? 난 지금도 오늘의 부모를 보면 내일의 자녀가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부모는 자식에게 늘 카피되고 있으니까. 신앙도 마찬가지다. 신앙, 교회하며 사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일 때 “지금은 공부해. 그리고 교회는 이 다음에 합격(성공, 입사, 결혼)한 뒤에 해도 늦지 않아”라고면 자식은 이리 생각한다. “아, 우리 부모가 결국 제일 좋아하고 숭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S.K.Y이고 성공이구나. 결국 하나님도 이것 때문에 붙들고 있을 뿐이구나. 하나님도 별 거 아니네!” 그러니 그 부모 밑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배움은 가까이에 있다. 스승 또한 먼 곳에 있지 않다. 내가 부모이기를 포기하면 자식의 미래는 없다. 자식은 지식으로, 교과서에서, 학원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고 보여줄 게 없다면 그 자식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믿음과 신앙을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하고, 그게 자식의 미래를 자라게 하는 양식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늘은 물론 20년 후도 소망스러울 테니까. 자식은 A/S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나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 바른 원본으로서의 부모됨이 아니면 이미 카피되어가고 있고 자식들의 모습을 되돌릴 길이 없다. 부모는 자식의 현재이자 미래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고, 자식을 보면 부모가 보인다. 당신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카피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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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