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
[은혜의말씀]명가의 조건
-
-
명품, 명가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본문의 내용처럼 3,4대까지 저주를 받는 가문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서 풍성히 받은 복이 수천 대까지 이어지는 명문대가가 있다. 복 있는 사람, 쓰임 받는 한 사람이 일가를 잘 이루면 믿음의 명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설립자 김용기 장로님의 “호”가 “일가”이다. 한 사람의 원칙과 고집이 조국이여 안심하라는 구국기도 동산을 만들고, 알도록 배우자며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웠다. 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며 농장을 일구어서 대한민국에 새마을운동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개척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케 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부자는 식솔이 많고, 오래오래 이어지고, 난리 때에 진가가 드러나는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는 사랑채보다 안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안방마님의 살림살이가 결정적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누구보다 강하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부모님의 희생과 수고를 밑거름 삼아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이 옮겨져 바다로 간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가 바로 성도의 모습이다. 성도는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고통당할 때 오히려 향기가 진동한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긍휼사역을 하고 경천애인, 경건미인대칭이 되면 자연히 이웃을 사랑하게 되니 선교대국을 이루게 된다.
유대인들이 강한 이유는 고생을 많이 하고 사면에 적이 있으나, 절기를 잘 지키고 자녀 교육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고, 차별화, 특성화, 전문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교 불가능하고 대체 불가능한 독특함까지 갖출 때 비로소 명품이 된다. 신앙의 명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선대부터 쌓아 온 기도의 마일리지가 후대에도 이어지며 빛을 발하게 된다. 아이야의 축복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 이어진다. 외할머니 로이스가 가진 거짓이 없는 믿음이 어머니 유니게를 거쳐 아들 디모데에게로 흘러갔다.
부모세대는 잘 살았지만 자녀세대에 이르러 망하는 가정을 막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편 37:25에서 의인의 자손은 버림을 당하거나 걸식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출애굽기 20장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수천 대까지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죄를 짓는 자들은 삼, 사대에 망하는데 이는 삼, 사대 동안 벌을 받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복을 받을 씨가 말라 버리기 때문이다.
포도나무 한 그루가 심겨지고 세월이 지나면서 아름다운 포도원을 이루었다. 45년 전에 부산의 변두리 구포, 덕천동에 심겨진 포도원교회가 어느새 화명성전, 화명 비전센터, 금곡 드림센터, 양산 미션센터, 아프리카 우간다 포도원교회로 큰 숲을 이루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품이 명품이 되고 소박한데서 대박이 나고 평범한 것이 비범하게 된다.
-
2025-12-01
-
-
교육부, ‘개방감사’ 취임 승인 통보
-
-
학교법인 고려학원 ‘개방감사’ 논란이 일단락됐다. 최근 교육부는 공문을 통해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려학원 임원(감사) 취임 승인 통보’를 해 왔다. 교육부는 “귀 법인이 제출한 임원 취임 승인 신청 건에 대하여 ‘사립학교법 제20조제2항에 따라 승인하오니 관련 업무에 철저를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승인을 허락했다. 따라서 개방감사로 취임 승인을 받은 박종흔 장로는 2025년 11월 7일부터 2027년 11월 6일까지 2년 동안 개방감사직을 수행한다.
개방감사 문제는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가 개방이사추천위원회로부터 추천받은 감사(이준형 장로)를 투표에 의해 부결시킨 것이 발단이 됐다. 일부 언론들은 “고려학원 이사회가 개방이사추천위원회로부터 추천받은 감사를 선임하지 않고, 법률이 정한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금년 초부터 계속해 왔다. 당사자인 이준형 장로도 교육청 진정과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ㅋ2025카합100135)은 “사립학교법과 정관 제21조 제5항은 학교법인이 감사를 선임할 경우 그중 1인은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으로 선임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뿐,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을 반드시 선임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며 “학교법인 감사 중 1인을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로 선임할 의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이사회에서 개방감사 선임 안건을 반드시 가결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거나 개방감사 선임 안건을 부결시키는 것이 위법하다고 해석하기도 어렵다”고 판결 한 바 있다.
결국 이번 교육부 임원(감사) 취임 승인 통보로 고려학원 개방감사 문제는 일단락 될 전망이다.
-
2025-11-28
-
-
‘신도 5명 성추행’ 한 모 교회 담임목사 항소심서 감형
-
-
부산 모 교회에서 여성 신도 5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담임목사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지법 형사 2-3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목사에 대한 항소심이 열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A 목사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 청소년 기관과 장애인 관련 기관 5년간 취업 제한 명령은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목사인 A 씨가 교회 신도인 피해자들을 여러 차례 추행했다”며 “피해자들과 관계, 범행 수법과 횟수 등을 보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에게 용서받지 못했다”며 “피해자들이 A 씨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 씨가 범행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며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강제추행은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일정 금액을 형사 공탁하는 방법으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며 “사건 기록에 나타난 양형 조건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이 다소 무겁다고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2025-11-28
-
-
사랑의교회 3대 담임목사에 윤대혁 목사
-
-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당회가 3대 담임목사로 LA사랑의빛선교교회 윤대혁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의했다. 사랑의교회측은 18일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사랑의교회 당회는 “청빙위원회가 지난 4월부터 기도와 숙의를 거쳐 윤대혁 목사를 청빙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윤대혁 목사는 제직회와 공동의회 등의 위임 절차를 거쳐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된다.
윤대혁 목사는 오정현 목사가 남가주사랑의교회 담임으로 재직하던 시절, 청년 담당 목회자로 함께 사역한 바 있다. 윤 목사는 총신대 신학과와 신대원,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했고, 오륜교회 청년부와 남가주사랑의교회 대학부·청년부를 거쳐 2013년부터 LA 사랑의빛선교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
2025-11-28
-
-
[교회법특강]종교개혁가 칼빈은 왜 엄격한 권징을 반대했을까?
-
-
개혁가 칼빈(1509-1564)이 꿈꾼 교회는 권징(勸懲)을 시행하는 교회였다. 이를 위해 교회의 영적 정부인 치리회를 별도로 구성했다. 그리스도가 주신 명령(마태 18장)을 따라 교리와 생활에서 과오를 범할 때 처음에는 두 번까지 은밀하게 권하고 훈계하지만 계속 자기 죄를 고집할 경우 세 번째는 모든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출교해야 한다고 했다. 칼빈은 출교가 교회에 유용하며 필요하지만 엄격한 권징은 반대했다. 이 때문에 그는 당시 재세례파를 논박하는 글을 썼다. 그는 왜 엄격한 권징을 반대했을까?
재세례파의 지도자 메노 시몬스(1492-1559)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그는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본래 교회의 신부였다. 개혁가들의 저술을 읽고 영향받지만 재세례파의 지도자가 된다.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자로 알려졌지만, 출교에 대한 입장은 아주 엄격하다. 그의 저술 『출교에 관한 문답』에서 이를 볼 수 있다. 교회에서 출교를 당해야 하는 사람을 마태복음 18장과 고린도전서 5장에 근거해서 공개적이고 부끄럽고 육체적인 생활을 좇는 사람, 이단적이고 부정한 교리에 빠진 사람(딛 3:10) 등은 교회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분리’할 것을 명령했다. 남편과 아내, 부모도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들도 교회에서 출교와 ‘분리’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들로부터 오염되기 때문이다. 다음을 보라: “어떤 사람이 이런 출교(명령)를 지키지 않았음에도 경건한 자라고 불린다면, 그 역시 징계를 받아야 하는가? 아무리 경건한 자라 하더라도 경건을 순종 속에서 보여야 할 것이고.....만약 어떤 사람이 의도적으로 성경에 금지된 것을 행한다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공개적으로 반항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우리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회중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출교 때문에 서로 분리할 수 있느냐? 아버지와 자식 간도 마찬가지인가? 먼저 징계의 법칙은 보편적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아비와 자식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우리는 추방이 배교자의 거짓 교리와 육체로 더럽혀지는 것을 막아 준다고 말한다. 누구도 우리를 더럽힐 수 없기에 성령은 그들을 차단해서 우리가 그들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신다. 남편 또는 아내, 그리고 자녀를 그리스도 이상으로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이에 칼빈은 『재세례파 논박』(1544년)에서 첫째, 권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말씀과 성례가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곳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으며,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둘째, 그러한 ‘오염된’ 교회에서 자기를 ‘분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 지상교회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교회여서 “누구든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성례에 사악한 사람들과 함께 참여할 경우, 자신이 깨끗하고 청결한 양심을 갖기만 한다면 그들의 무리에 오염되지 않는다”고 했다.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를 예로 들며 “광신자들이 도입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참 신자는 교회의 악한 자들로 인하여 자신이 오염될 것이 두려워 무리로부터 자신을 분리했다고 읽지 않으며 도리어 자기가 나무란 잘못을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고치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였다(고전 5:1이하, 갈 5:4 이하). 칼빈은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분리’는 우리를 교만에 부풀게 하고 위선으로 미혹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버리게 하는 마귀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사보다 더 거룩한 모습을 갖고, 만약 그러한 자만으로 그리스도의 회중에서 우리를 분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마귀가 된다.” 이러한 칼빈의 교훈은 큰 의미가 있다. 권징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격하게 권징을 하는 것 역시 잘못되었다.
-
2025-11-21
-
-
[최현범 목사]윤리의 경계석이 옮겨지는 시대에 교회의 사명
-
-
얼마 전 총신대 평생교육원에서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 죽음의 정의와 본질, 존엄사와 안락사, 조력사 그리고 자살에 이르기까지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갖고 강의도 하고 토론도 했다. 마지막에 수강생 중 미국에서 오신 장로님이 자신이 경험한 존엄사를 들려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중병을 앓던 아내가 어느 날 낙상하면서 의식을 잃었고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자녀들 모두가 호흡기를 제거하는 최종 결정을 아버지에게 미루더란다.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을 결정해야만 했던 괴로웠던 순간, 이후에 진행된 과정과 법적인 절차 등을 들려주는데, 이론이 아닌 이 실제가 모두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100세 시대에 죽음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가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최근 미국에서 코린이라는 여성이 2021년에 있었던 부모의 조력사를 공개했다. 어머니가 대동맥판막협착증 진단을 받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며 수술을 거부한 뒤 낙상 사고로 상태가 악화되자 92세에 조력존엄사를 신청했다. 그러자 이미 뇌졸증 증세를 보였던 95세의 아버지는 “아내가 먼저 떠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면서 함께 신청했다. 이 부부는 스스로 선택한 날 의료진이 제공한 약을 복용하고 한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딸은 이런 부모의 죽음을 행복한 죽음이라 미화하면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공론화하려는 목적에서 뒤늦게 이것을 밝힌다고 했다.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의 양태가 유럽이나 미국 여기저기서 수용되어 가고 있고 그 영향이 우리 사회에도 밀려오고 있다. 이것을 보도한 중앙일보(2025.10.30)는 기사 마지막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인 응답자의 82%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이 여론조사가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갖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유럽이나 미국을 좇아 변해가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커다란 윤리적인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20세기 이후 전통적인 가정 제도가 서서히 붕괴하고 있고 성도덕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의과학의 급속한 발달은 출생과 죽음의 영역에서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미국은 20세기 초만 해도 인구의 2/3가 50세 전에 사망했지만, 2023년의 평균수명은 78.4세에 이르고 있다(한국은 83.5세). 노인병 전문의인 랭고는 “수많은 사람이 그토록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이렇게 오래 사는 문제를 인간 사회가 이전에는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런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여기까지는 허용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라고 하는 윤리적인 경계선이 끊임없이 밀리고 있다. 어제는 인간적 행동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간주하며 경계했던 것들이 내일에는 이미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마치 밤사이에 누군가 경계석을 몰래 옮겨버린 것 같은 세상이다. 윤리신학자 스튀겔베르거는 이 시대를 비판하면서 유전공학, 컴퓨터공학을 앞세우며 이런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선동적인 말들이 힘을 얻으면서 ‘균형과 목적이 없는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E. 브룬너는 이처럼 경계석을 옮기는 시대에서는 윤리의 기반 자체가 해체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윤리적인 기반으로 붙들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세상의 거친 행보는 위기로 느껴지고,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좁고 협착한 길로 여겨진다. 생명의 시작점에 관한 논쟁, 인공수정, 안락사 문제, 환경문제, AI의 진화로 불거질 다양한 윤리적인 문제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이런 21세기의 다양한 윤리 문제에 대한 지침을 성경에서 찾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 한다. 이를 통해 균형과 목적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쉬운 세상이 옳은 길로 가도록 돕는 그것이 또한 세상의 빛이고 소금인 교회의 사명이다.
-
2025-11-21
-
-
[목회자칼럼]투기 말고 투자를
-
-
한동안 온 나라를 휩쓸었던 부동산 투기의 열풍이 식고, 이제는 주식 투기의 열풍이 불고 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다. 지수의 등락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직장과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도 제법 큰 영향을 미친다. 미처 투자의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과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포모증후군을 겪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냉정하게 평가하면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자자가 아니라 투기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원리 가운데 투자의 원칙이 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최적의 투자로 최고의 능률을, 최단의 투자로 최장의 가치를 내고 얻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에 성공하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실패하면 고난의 인생을 살게 된다. 영역과 정도와 결과의 차이는 있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투자자라 할 수 있다. 동일하게 이 투자의 원리를 영혼의 세계에 적용하면, 영혼의 영역에 투자하지 않는 자와 투자하는 자로 나눌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 영혼에 투자하지 않는 많은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겠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아주 특별한 인지적 능력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영혼의 세계에 대해 사유하지 않거나 준비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피조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땅에서의 삶으로 모든 것이 다 끝이 난다면 우리의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면 일반영역에서의 최대, 최고, 최적, 최상의 효과를 거둔들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사망과 함께 전부가 전무로 돌아간다면 온전한 삶을 위해 몸부림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후자의 경우, 영혼에 투자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을 기회와 준비의 시간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찰나의 시간으로 영원의 세계를 꿈꾸는 자들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하는 자들이다. 또 가장 단순한 것을 통해 최고로 위대한 것을 소유한 자들이다. 이들은 불확실한 신기루에 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약속에 투자하는 것이다. 때때로 경제적, 세상적으로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가 아니라 부분적 실패의 영역일 뿐이다. 따라서 절대자와 함께 이루어갈 본질적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선포와 확장과 완성에 자신이 가진 시간, 즉 33년 중 3년의 시간을 투자하므로 부활, 승천, 구원자, 재림주, 심판자로서의 권세를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예수가 전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자기의 생명을 투자한 까닭에 스스로 성공한 인생임을 고백했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자가 되었다. 세상에서 잠시 소유한 것으로 하늘과 영혼과 영원한 세계의 무한한 것을 소유하며 누리게 되었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가치 있는 투자가 어디 있을까? 투자의 효과로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고의 투자라 할 수 있다.
영혼의 세계에 투자하는 자가 되려면 영혼의 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유한의 존재로서 무한의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이 불가능한 진리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위해, 우리를 존재하게 한 절대자가 우리 속에 자신을 알 수 있는 종교성을 심어 놓았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혼의 세계를 다스리는 신과 그가 다스리는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고 그것을 사모하며 신앙하게 되었다. 모든 세대, 세계, 영역, 인종들은 다 신을 신앙했다. 내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실존하는 것을 실존한다.
현자들이 유비무환이라고 했다. 우리는 준비하는 자들을 지혜롭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혼의 세계를 준비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자들에 대해 이성과 종교성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솔직히 어렵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를 가진 지혜로운 투자자라면 안개와 같은 자신의 삶을 결코 일회용으로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일식 간에 사라지는 것으로 영원의 나라와 진정한 가치에 지혜롭게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찰나는 영원으로, 유한은 무한으로, 생명은 영생으로 변화될 것이고 새로운 세계에서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
2025-11-21
-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진 페리는 누구인가?
-
-
호주빅토리아장로교회의 한국선교는 1889년 10월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1856-1890)와 그의 누나 메리(Mary, 1853-1941)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 데이비스 남매는 1889년 10월 2일 부산을 거쳐 4일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5일 서울로 이동하였다. 서울에서는 언더우드와 함께 지내며 조선말을 공부했고, 내한 5개월이 지난 1890년 3월 14일에는 누나 메리는 서울에 남겨둔채 남쪽으로 전도여행을 떠나 약 20일간 483km의 여행을 마치고 목적지 부산에 도착했으나 여행 도중 천연두에 감명되었고 폐렴까지 겹쳐 부산 도착 다음 날인 1890년 4월 5일,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첫 선교사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호주교회는 후속 선교사 파송을 결의하고, 1891년 5명의 제2진 선교사를 다시 한국으로 파송했는데, 그들의 매카이 목사(J. H. Mackay)와 그 부인 사라(Sarah), 그리고 멘지스(Belle Menzies), 퍼셋(Mary Fawcett), 진 페리(Jean Perry, 1863-1935) 등 세 사람의 미혼 여선교사들이었다.
즉 진 페리는 호주 빅토리아장로교회 여전도회연합회(PWMU)가 조선에 파송한 제2진 선교사 5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1863년 영국 런던 근교 세인트 메리스 크래이(St. Mary’s Cray)에서 출생했는데 19세가 되던 1882년 부모를 따라 호주 퀸즈랜드로 이민하였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중 1891년 여전도회연합회 파송으로 내한하게 된 것이다. 페리는 동료 4사람과 함께 1891년 9월 5일 시드니를 출발하여 40여 일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1891년 10월 12일 부산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진 페리는 호주 빅토리아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런데 페리는 호주빅토리아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약 2년 6개월간 일한 후 1895년 6월 말로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 선교사직을 사임했다. 그가 사임한 이유는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플리머스 구룹의 입장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갔던 페리는 7월 1일자로 장로교회의 특정교리에 대한 견해차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사임서를 보낸 것이다. 이 사임서는 두 달 후인 1895년 9월 1일 멜버른의 여전도회연합회 접수되었다. 여전도회연합회는 페리의 사임에 대해 매우 당황했고 그의 사임서를 수리하지 않고 임명 자체를 종료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호주장로교 선교부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 궁금하여 여러 문헌을 검토하였으나 단지 ‘신학적 견해 차이 때문’이라는 기록뿐이었다. 그렇다면 견해차가 무엇이었을까? 북장로교의 사무엘 마펫의 기록을 보면 그 ‘신학적 견해차’를 알 수 있는데, 마펫이 엘린우드에게 보낸 1895년 8월 21일자 편지에서 페리가 호주장로교 선교부를 떠난 것은, “그가 일본을 한 차례 여행하면서 몇 사람과 접촉했는데, 플리머스 형제단에 가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로교에 속했던 페리는 반교권적 반성직주의를 지향하되 원시 교회를 이상으로 여기는 플리머스 형제단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 호주장로교 선교부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신학적 차이는 결국 교회관의 차이였다고 할 수 있다. 호주 선교부를 떠난 그는 일본에서 1896년 9월 호주로 돌아가 선교 후원자를 찾아 지원을 호소하고, 다시 내한하여 서울에서 엘렌 패쉬(Ellen Pash)라는 여성과 새로운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엘렌은 일본에서 만난 여성인데, 영국 켐브리지 길턴대학(Girton College) 출신으로 인도에서 사역하던 중 건강 때문에 일본으로 가 요양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을 방문한 페리와 만나게 된 것이다. 많은 점에서 의견을 같이했던 이들은 걸인, 유랑자 혹은 고아와 맹인 소년 소녀들을 위해 독립적으로 사역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1897년 ‘영국복음주의선교회’(BEM: British Evangelistic Mission)를 조직했다. 이들이 서대문 밖 정동에서 시작한 첫 사업이 고아원(孤兒園, Garden for Lonely Children) 사업이었다. 이때 영국에 있는 친구들의 재정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899년에는 맹인들을 위한 ‘훈민학당’을 설립하고 점자교육을 실시했다. 이처럼 페리는 고아와 맹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1915년까지 사역하고 52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곽안련(C. A. Clark) 선교사에 의하면, 페리는 1915년 한국에서 은퇴할 때 고아원과 모든 구호 시설들을 구세군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던 페리는 72세 때인 1935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페리는 문필력을 겸한 인물로 한국 체재기에 한국선교와 관련된 Chilgoopie The Glad,
The Man in Grey: or More About Korea, Uncle Mac The Missionary: or more News from Korea, True Stories by a British Missionary Woman, Twenty Years a Korean Missionary와 같은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초기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적 상황을 헤아려볼 수 있는 수중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
2025-11-21
-
-
[교회건축칼럼]교회건축의 에너지 절약 계획
-
-
교회건축시에 에너지절약은 완공후 교회 운영에서 관리비 절감과 직결되어진다 최근에는 석탄연료의 사용절감과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교회도 수도권에서 건축되어지는 경우 녹색인증을 받아야 사용승인이 허락된다.
교회 건축의 에너지 절감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시스템 구축에의한 에너지 절감방안이다. 저전력 고효율에너지 운영 방식이다. 휴일 및 심야시간이나 장기간 부재시에 불필요한 대기전력을 차단되는 대기전력 차단콘센트나 심야시간의 미사용 기기들의 대기전력차단 타이머 콘센트의 설치와 같이 능동적 시스템 구축에 의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에 교회 전기, 냉난방 ON, OFF와 가튼 인텔리전트 구축도 증대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절약을 위한 건축기기나 소재의 적용에 의한 절감이다. 전등이나 조명은 고효율 LED 내장형 기구의 사용으로 효율과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요즘은 에너지 저소비형 램프도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으며 전력부하를 저감시킨다 건축의 냉방이나 난방을 경제적으로 운용하려면 건물외벽에 단열재를 고효율 제품을 적용해야한다. 단열재는 건물의 부위별로 각기 다르게 적용된다. 지붕이 가장 두껍고 고성능재를 적용하며 그다음 벽체와 바닥순이다. 지하층의 외벽도 단열이 잘 유지되면 결로 현상이 많이 감소되어진다.
셋째, 패시브에너지 절감이다. 패시브 에너지는 자연현상의 수동적 형태의 방법이다 건물내에 바람길을 형성하게 하면 결로나 내부곰팡이와 같은 요인은 많이 제거되며 환기에도 유리해진다. 외부에 창은 내부에 브라인드나 커튼을 설치하여 여름과 겨울에 적절한 태양광을 자동조절해서 유입시킬 수 있게된다. 화장실의 기기도 차례식 수도꼭지나 초절수형 양변기를 설치하면 물소비량이 많이 절감되어진다. 건축시에 지하에 저수탱크를 설치하여 빗물를 저장했다가 청소용수나 식재용으로 재 사용할 수 있다. 지붕층은 태양열에 의해 에너지 부하가 크게 증대된다. 따라서 지붕은 조경을 설치하거나 채양있는 구조등을 설치하면 에너지 절감에 크게 기여한다. 태양의 복사열에 의해 내부에너지의 절약은 외벽 부근에 차수림이나 녹화를 조성하면 내부열부화를 절감시킬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듯이 에너지 절감은 다양한 기법과 부위별에 적합한 절감방안을 통해 건물은 친환경적이고 쾌적한 공간으로 건축되어진다. 건축시에 에너지 절감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적용을 계획하여 완공후에 유지비나 에너지를 절감해야한다.
교회주차장을 잔디블럭으로 포장하면 교회주차장은 마치 공원처럼 녹지공간으로 바뀌게 되며 마을장터나 바자회장과 같은 소통과 기능의 공간이 된다. 에너지도 절약하고 기능은 극대화되는 지혜가 필요하다.
-
2025-11-21
-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를 주목하시는 하나님
-
-
하나님께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았지만 거역하고 도망쳤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담은 요나서는 우리에게 참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책입니다. 그중에서도 요나서의 결론에 해당하는 요나서 4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4:11)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이것이 하나님이 아끼시는 대상을 나타내는 말이었어요. 이 표현은 당시에 6세에서 7세 미만의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직 유치부, 미취학 아동인 거에요. 당시에 이 아이들은 아무 쓸모없는 물건처럼 취급을 당했어요. 말도 잘 안 통하고 일을 시킬 수도 없고 자꾸 울고 보채고 먹을 것이나 찾고...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무조건 강자 중심이고 어른중심이 아닙니까? 경제활동을 하니까요. 돈을 벌지 못하면 사람 숫자로 잘 치지 않습니다. 요나서가 기록된 구약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만 숫자로 치던 시절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몇 명인지는 셀 이유도 없고 세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니느웨에 사람 숫자를 헤아리면서 어른 숫자가 아니라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숫자를 계수하십니다.
이건 요나가 아까워하는 대상과는 완전히 다르죠. 요나는 자기한테 유익이 되는 대상, 자기의 머리 위를 가려줄 유능한 박넝쿨을 아까워했어요. 비록 하루아침에 났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박넝쿨이지만 요나는 그런 존재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유익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을 말씀하고 계신 거에요. 왜요? 그들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이 우리가 사는 이유이고 우리의 목적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고 그들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예수님께서 직접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18:10-14)
너무 놀랍지 않으세요? 아이들마다 그들의 천사들이 있는데 그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고 하십니다. 이건 그야말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잃은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잃은 양이 바로 앞에 나온 “이 작은 자중의 하나”인 겁니다. 그럼 이 잃은 양을 어떻게 찾을까요? 그 천사가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기 때문에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이 직접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잃은 양이 14절에는 다시 “이 작은 자중의 하나”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이 작은 자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잘 키워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키워내는 교회가 되자고 할 때 이 말은 다음세대와 기성세대를 나눠서 서로 경쟁하자는 게 아닙니다. 누가 더 소중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음세대가 없으면 교회는 미래가 없어집니다. 아무리 큰 교회도 이제 다 문 닫고 다른 용도로 팔리는 시대가 곧 올 겁니다. 유럽과 미국교회의 사례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곧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다음세대를 사랑하고 살려내는 교회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다음세대를 살려 미래를 열어가는 복된 교회가 되길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
202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