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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라인 사태와 디지털 국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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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자국 내 외국기업 혹은 다국적기업의 자원 독점 및 수탈을 막기 위해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국유화 조치를 감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1974년 베네수엘라는 50년 간 부여했던 미국철강회사들의 철광채광권을 국유화한다면서 국내 외국기업은 소유주식의 80%를 베네수엘라 투자가들에게 매각하여 국영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은 대단한 저항과 수많은 논란을 야기했지만, 국가의 주권적 행위인지라 국제사회에서 뚜렷한 해결책과 원만한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시장자본주의가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어가던 국유화조치가 최근 들어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 세기와 사뭇 다른 점은 동일한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를 이론적 배경으로 내세우면서 과거에 그렇지 않았던 국가들이나 지금은 경제대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 역시 유사한 조치를 감행하는 현상에 있습니다.
먼저 새천년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격적으로 실시된 중남미 일대의 국유화 조치를 살펴보겠습니다. 2006년 5월 1일 볼리비아 정부는 석유 · 가스 산업을 국유화하는 내용을 담은 포고령을 발표합니다. 2009년 5월 8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 역시 마라카이보 호수 유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60여 개의 국내외 석유서비스기업 자산을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2012년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또한 자국 내 최대 다국적에너지기업인 YFP 국유화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쟁 중인 러시아 정부가 이와 관련하여 깜짝 놀랄만한 발언들을 쏟아내어 화제입니다. 지난 4월 12일 러시아 하원이 자국 내 외국인투자회사의 국유화와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여 심의 중에 있고 조만간 그 입법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법률신문 5. 16). 한 때 사회주의 진영의 종주국이자 최고의 산업국이던 러시아가 이런 조치를 발표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러시아만이 아닙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중국도 최근 몇 년 간 상당히 주목할 만한 비정상적인 경제적 조치들을 단행한 바 있습니다. 독특한 화학적, 전기적 특성을 띠어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첨단 장치에 필수적인 17종 원소를 통칭하는 “희토류(稀土類, Rare Earth Resources)”라는 말이 최근 수년 간 엄청나게 회자되지 않았습니까?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중국이 2010년부터 희토류를 일종의 ‘자원 무기(Resource Weapon)’로 만들어서 우호적인 국가에만 수출하고 대립하거나 자신들을 제재하는 나라들에는 수출을 금지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자원민족주의는 석유나 가스 등 자원에 국한되었고 주로 국유화조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희토류뿐만 아니라 니켈이나 리튬 같은 자원으로 대상이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양상 또한 생산량 제한이나 선별적 수출과 같이 다양화되고 있어 문제입니다. 특히 화석연료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그 중요성이 급증하고 있는 탄소중립 필수자원의 공급망을 관리하는 방식(SCM, Supply Chain Management)을 활용하고 나서기 시작하면서 더욱 문제가 복잡해지고 커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최근에 상기한 자원민족주의의 신종 형태로 등장하여, 우리나라가 거기 엮여서 그 자체로도 문제인데다 이를 둘러싼 국론조차 대립하고 분열되어 더욱 심각한 근심거리가 되고 있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 메신저 역할을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는 온라인서비스 ‘라인’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일종의 국유화 시도가 그러합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른바 ‘플랫폼 데이터 규제’ 조치가 미국이나 유럽연합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 내에서 중국 산 ‘틱톡’ 앱의 퇴출 방안과 이에 대항하여 중국이 취한 자국 내 미국 동종 플랫폼의 사용 금지 조치 등에 국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 정부는 개인 정보 유출을 이유로 한국 기업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을 매각하도록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굴종외교라며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반면 반일몰이라며 경제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우리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조치를 통해 앞으로 ‘디지털 국유화(Digital Nationalization)’ 내지는 ‘온라인 자원무기화(Online Resource Weaponization)’가 더욱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영토나 주권을 배경으로 하던 시대와는 그 결을 달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경도 없고 장벽도 없는 인터넷 세계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혼란에 빠뜨리고자 하는 시도는 옳지 못합니다. 부디 이번 사태로 인해 디지털 세상의 자유와 정의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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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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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믿음의 하인리히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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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인류는 산업의 발전을 경험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큰 사고도 많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업 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931년도 미국의 보험 설계사였던 윌리엄 하인리히가 찾아낸 ‘하인리히 법칙’이 있습니다. 그는 산업 현장의 사고에 대해서 ‘1:29:300’이라는 비율을 제시합니다. 이 법칙은 ‘중대형 사고 1: 경미한 사고 29: 사고의 징후 300’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사람이 죽고 크게 다치는 정도의 아주 심각한 중대사고 한 건이 벌어질 때, 그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인리히의 연구에 따르면 이미 그 전에 같은 건으로 경상자가 29명 나왔었는데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이 일이 커져서 큰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큰 사고가 나기 전, 가벼운 사고가 29건 일어나는 동안 이미 이 사고의 징후는 이미 300번이나 있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어?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 사고 날 것 같은데!”하는데도 이를 가벼이 여겨 고치지 않고,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특별히 돈이나 시간을 들여서 보수하지 않고 손을 보지 않으니까 그러다보니 “어? 또 사고 났는데!” 하면서 그 자리에서 예상되었던 사고가 생겨났고, 결국 그것이 쌓이다보니 사람이 죽고 회사와 사회에도 큰 손해를 끼치는 중상해 사건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하인리히 법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세상이 뒤흔들리는 커다란 사건은 반드시 그 이전에 수많은 징조와 징후를 통해서 간파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 주변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미리 우리의 위기를 대비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징조와 징후가 산업현장만의 이야기일까요? 이는 우리의 믿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일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의 편에 서게 된 것은 어쩌다 갑자기 한 번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분명히 많은 징후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가볍게 여기는 적어도 29번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돌이켜보면 그 전에 벌써 300여 번의 번성과 돈과 성공에 집착하여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번에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지만, 돈이 귀하게 여겨지고 하나님보다 돈이 좋아질 때 빨리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기는 종교인들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믿음의 위기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간절히 메시야를 사모하며 기도하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채 자신의 입장을 세우기에만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의 제 자리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와 표적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믿음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요? 하인리히의 법칙을 이제는 이것을 믿음의 법칙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온전한 승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도 한 번에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 전에 적어도 29번의 물질과 시간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바른 물질 사용의 회개가 있어야 하고 바른 시간 사용에 회개가 있어야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데, 그걸 위해서 그 전에 많이 필요하고, 매일매일 필요한 건 바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 즉 내 필요와 내 욕심을 조금 더 내려놓고 내 주위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물질에 대해 자유할 수 있고, 시간에 대해 자유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마음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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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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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주님의 가치를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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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위기 청소년 사역이다. 가정 밖 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학교 안 가는 청소년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사역을 한다.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한 건당 얼마를 받는지 물어본다. 필자는 매우 당당하게 말한다. 돈을 받는게 아니라 돈을 지불하면서 그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되묻는다. 그럼 왜 하는지 물어본다. 세상 사람들은 돈에 가치를 두고 살기에 이런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인생의 즐거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은 다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오직 예수님밖에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인생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이유로 이 사역을 한다.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 이것이야말로 정말 예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이다.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빌립보서를 쓴 사도 바울도 보면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던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복음을 전했고, 신약성경 가운데 13권을 썼고, 나중에는 로마에서 순교까지 당했다. 이런 삶의 모습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고, 불쌍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그 역사의 대열 안에 같이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필자는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예수님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징은 주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언제든지 주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죄로 인해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다. 마치 죽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바싹 마른 뼈와 같이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이미 사망 선고가 내려진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었고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그 결과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안에 기쁨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그렇게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0절과 11절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면 바울이 부활을 얼마나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20절 말씀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다시 말하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은 우리도 죽은 다음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가 죽은 다음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 땅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소망이 되는 말씀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서부터 부활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이 죽어야 하듯이, 우리의 옛 성품, 옛 습관, 옛날 욕심들이 다 죽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부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힘쓰고 노력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부활의 삶을 살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땅의 것들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 모두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 모든 것들은 저 하늘나라에까지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언제나 주 안에서 기뻐하고, 날마다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가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의 가치를 따라 기뻐하고, 부활을 소망하며 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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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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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바빠도 힘들어도 자녀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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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속에서 자녀세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핵심전략을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 6장의 쉐마 명령에 나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5-7)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서의 화려하고 바쁜 정착생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광야는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동, 만나와 메추라기 등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완전히 다릅니다. 정신없이 바쁘고 분주한 삶속에서는 하나님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착생활 속에서도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세워야겠다고 결단하셨습니다. 가나안에 세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모’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힘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전하는 부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충전된 부모는 악한 세상으로부터 자녀를 지키는 든든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됩니다.
지금 수많은 우리의 자녀세대의 뇌는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은 몸집의 아이들이 여러 종류의 학원가방을 메고 분주하게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를 풀고, 태권도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릴 여유는 없습니다. 너무 바쁘거든요.
그러한 시간속에서 자녀들의 영혼은 더욱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들의 영혼은 돌처럼 굳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무감각한 자로 성장합니다.
자녀들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더욱 강력한 복음입니다. 잠자는 영혼을 깨울 초강력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구나!’, ‘하나님이 나의 빛이구나!’를 감탄할 수 있는 일상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생각 그 이상의 위대한 영향력이 있는 존재입니다.
부모의 무표정이 지속되면, 자녀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부모의 미소가 지속되면, 자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집니다.
그래서 초강력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는 하나님으로 충전된 부모입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부모를 통해서 자녀에게 복음이 리듬있게 전파되기를 바라며, <복음놀이리부트50>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50가지의 복음과 복음놀이가 담겨 있습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이지만, 등교전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녀에게 복음을 읽어주면 됩니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복음의 내용과 연결된 복음놀이를 간단하게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영혼을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전하는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복음입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속에서 우리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복음을 강력하고 리듬있게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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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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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식 느끼는 침례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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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단이 총회장과 제1부총회장의 직무가 법원에 의해 정지되면서 교단 안팎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제1부총회장 선거 무효확인 소송에서 본안 판결 확정시까지 홍석훈 제1부총회장의 직무를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직무대행자로 총회 총무 김일엽 목사를 선임했다.
여기에 캄선교회 대표의 믿기 힘든 일들이 폭로되면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당사자가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교단도 탈퇴했지만, 그 휴유증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교단이 직영하고 있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총장 피영민 목사)가 대학기관인증평가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임교원확보율 64%가 중요한 지표인데, 교육부 고시 전에 교원확보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교단안에서는 “대의원들이 교단을 살리기 위해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목소리를 낼 때”, “규약과 각 기관과 위원회의 정관과 내규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들을 논의해 교단의 환골탈퇴 할 수 있는 길을 마련”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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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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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의지 나타낸 한교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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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총연합이 지난 14일 연합운동공로자 초청 오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한 이철 감독회장은 “한교총을 중심으로 연합을 잘 하고 있지만, 아직 한기총과 한교연이 남아있다. 가능한 통합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참석한 이들에게 협력을 당부했다.
환영인사에 나선 장종현 대표회장도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해 힘써주신 모든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한국교회 연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교파 교리 문제로 분열을 거듭한 한국교회 역사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등 연합기관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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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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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합신, 대신 대법원 앞 규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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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이 수술을 받지 않은 A씨 등 5명을 가족관계 등록부에서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한 판결이 내려지자, 예장 고신⦁합신⦁대신 3개교단동성애대책협의회(대표 이일호 목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동성애 반대 기도회 및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규탄하는 성명서 발표했다.
대책위는 성명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가장 정직하고 공정해야 할 법원의 어처구니없는 판결과 방침에 극심한 분노와 실망감에 흥분하고 있다. 법원은 이념과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고, 이 칼끝은 힘없고 선량한 국민들을 향해 휘두르고 있는 것 처럼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의 성별정정 허용은 고스란히 선량하고 연약한 여성들의 피해로 주어질 것”이라며 “법원이 정말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존경받기 바란다면, 권력과 이념을 떠나 법 앞에서 사심 없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길은 잘못된 방침을 즉시 철회하고 공정과 법 앞에서의 평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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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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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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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한다는 착각, 내가 서툴다는 착각, 내가 소중하지 않다는 착각, 내가 이쁘다는 착각’
‘인생은 착각의 역사다’는 말이 있듯 사람은 알게 모르게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 중 하나가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무심하게 대하는 내 모습을 본다. 항상 내 옆에 있기에 편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아내, 오랜 시간 한 교회를 섬기며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동역자들과 교인들. 편한 친구들과 동생들. 모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잘 안다고 여겼는데, 문득 생각하니 나 중심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 형님이 “너 자신을 알라”고 했으니, 익숙함으로 인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첫째, 마음 속 우월감, 열등감을 돌아보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비교란 언제 생길까? 나의 정체성이 약해질 때,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시선이 나에게서 타인으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내게 있는 좋은 점들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에 시선이 멈추며 생각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월감, 열등감이 물밀 듯 밀려오는 시점이다. 분명, 나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녀인데, 그 정체성은 사라지고 비교의 함정에 빠진게 된다. 토끼가 거북이와 비교할 때 빠르지, 기린과 비교하면 빠르다고 할 수 있을까? 상대적인 비교에 빠지만 착각의 늪에 헤매고 만다.
둘째,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보자.
나는 장년부 사역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청소년 사역자로 섬기고 있다. 38년 동안 청소년 사역을 한다고 청소년들을 만나고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지만 과연 나는 청소년을 잘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혹시, 내가 오랫동안 청소년 사역을 해왔기에 청소년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의 고민, 아픔, 갈등, 내면의 생각을 깊게 알고 있기는 한건지 나의 정체성을 다시 돌아본다.
셋째, 나의 내면을 자세히 보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대에 나의 내면을 자세하게 볼 여유가 없다. 마음을 잡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나의 자아를 특정할 수 없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조차 일관성있지 않는 모습, 나와 타인을 수용하지 못해 요동치는 내 마음.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실제로 나의 내면을 직면하면 결국 남는 것은 “내가 착각 속에 살고 있구나”라는 사실 뿐이다.
넷째, 내 생각의 뿌리를 살펴보자.
예수님의 제자라면 삶 속에서 예수님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말로는 믿음, 사랑, 소망, 섬김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행동으로는 철저하게 나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크고 작은 결정을 할 때, 타인과 관계할 때, 어떤 일에 진행할 때, 예수님의 생각이, 성경적 생각이 먼저 떠올라야 하는데 오늘도 나는 내 생각이 무의식으로 흘러나온다. 익숙함에 착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로 말이다.
살다보면,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들, 나에 대한 깊은 고민들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착각을 멈춘 후에, 내가 존재적으로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인인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우리가 은혜스럽게 부르는 이 찬양의 가사를 몇 번이고 곱씹어 보자.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란 이 표현이 삶으로 동의가 되는지. 내 삶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아픔과 꺾임이 있는지 자문해보자.
사랑하는 동역자, 성도님들과 이같은 고민, 갈등을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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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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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계의 새 목회자 지형이 변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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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되 땅은 영원하도다”(전도서 1:4)
11절에도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들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 됨이 없으리라”고 전도서 기자는 세월의 허무함을 기록하고 있다.
예장통합 부산노회(노회장 조현성 목사)가 지난 4월 18일 구덕교회당에서 제198회 부산노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내년이면 200회 정기노회를 맞이하는 셈이 된다.
1970년 10월 13일 (소정교회당) 열린 제91회기(노회장 고 김두봉 목사) 경남노회에서 부산노회로 변경하여 부산, 부산동, 울산노회로 분리하였다. 1980년 10월 15일 부산진교회당에서 3노회 첫 분리 예배를 드려서 거의 45년이란 세월이 지나 내년 4월은 제200회 정기노회를 맞이하게 된다.
이미 경남노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07년이 되고 부산노회는 제91회기부터 출발했으니 내년 2025년 4월이면 제 200회가 개최된다. 금년 2024년 10월, 제199회 가을 노회는 4년 마다 한번씩 선출하는 장로 노회장이 규칙에 따라 선출되어 당선되는 장로 노회장은 기념비적인 가문의 영광이요 부산노회 장로교 연혁에 경의로운 축제의 한마당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져 2파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강용 장로(은성교회)가 먼저 장로 부노회장을 역임하여 직전 부노회장이 되고, 부산노회장로회 회장까지 역임한 경력이 단단하여 노회 안에 인지도가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김덕성 장로(산성교회)는 현 부산노회 장로 부노회장 직에서 헌신하고 있는 여러 노회원들 사이에 덕망과 신뢰를 두텁게 쌓고 있다. 진주노회 산하 사천 서포교회 김상섭 원로장로(총회 재판국장, 진주노회장 역임)의 아들이다. 이들 둘 사이는 막상 막하로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망하고 있다.
부산노회 역대 노회장 가운데 91회부터 53년 제133회기 김기동 목사 노회장까지 변태호 목사, 정연승 목사, 황병보 목사, 문종영 목사 외 다른 분들은 대체로 하늘 나라로 이사를 갔으며 그 이후부터 장로노회장 역시 고 안인호 장로, 고 배준기 장로 외 (정대성, 양한석, 이성만, 진장명, 김수찬 장로)는 현재 열심히 헌신하고 있다.
마침 부산노회 4개 시찰(서부, 중부, 동부, 북부) 가운데 북부시찰 경내 역사가 100년이 넘은 김해교회(103년)는 조의환 목사가 2024년 4월초 정년 2년을 남겨 둔 채 조기은퇴를 하였고 그 후임에 정의수 목사(43세), 안양제일교회 부목으로 있었던 정의수 목사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대지교회도 100년이 넘는 역사로 최무열 목사가 은퇴를 하고 그 후임에 신창대 원로장로 아들 신정일 목사가 부임하였고 위임을 받았다. 대지교회는 강서구 엘코델타 지대 넓은 대지 1004평을 종교부지로 불하 받아 교회 이전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민교회 신광열 목사도 조기 사임으로 김준태 목사를 청빙 받아 시무허락을 이번 노회로부터 받았다. 새날교회 역시 새 담임목사로 김창식 목사(54세) 경주중앙교회 담임을 전격적으로 청빙하여 오는 가을 노회에 정식 허락을 앞두고 있다.
북부시찰은 몇 년 전부터 김해쪽으로 노회 분리를 위한 분리위원회가 연구 검토하고 있다. 교회 숫자는 56개이나 미자립교회가 많아 아직 19개 당회만 구성되어 자립 독립노회까지 20당회만 되면 분리에 착수 할 수 있기에 다음 노회도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부시찰은 넓은 구역을 이루고 있는 광야와 같은 대지를 확보하고 있어 독립 노회 분리는 시간 문제이다. 현재까지 북부시찰이 부산노회 산하 4개 시찰 중에 상회비 부담이 제일 많으며 동부시찰 경내의 산성교회(노회 부담금 약 2억원)보다 북부시찰 장유대성교회가 여전히 노회 부담금(약 3억원)을 내고 있어 부산노회에서 1위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북부시찰 특히 북부전신은 희망과 전망이 밝아 “북부 전선 이상 없다”는 평가를 노회원들로부터 받고 있다.
최근 이웃 노회인 부산 동노회 산하 백양로교회는 김태영 목사 은퇴 이후 캐나다에서 목회하던 정학재 목사를 청빙하여 조용히 목회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웃 동래중앙교회도 정성훈 목사 정년이 다가와 청빙을 준비 중에 있어 이미 대부분 중견 교회들은 목회자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는 형편이라 새 목회 지형이 변화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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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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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문 목사] 개혁주의 교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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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이사야 55:10-11)
위필드가 말하는 “복음주의”는 본질적으로 독일의 루터파가 개신교 종교개혁 시기에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의미한 바, 즉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운동을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을 뜻한다. 위필드는 복음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을 선포할 경우에만 좋은 소식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복음은 은혜의 교리와 운명을 같이 한다.
은혜교리라는 말은 16세기 말에 네덜란드에서 발전한 신학에 대한 반응으로 신학자 야코뷔스 아르미니우스(1560-1609)와 관련이 있었다. 아르미니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유로우며 그 결과 자기 결정적인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고, 이 교리 특별히 예수님이 오직 택함 받은 이들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들을 위해서만 죽으셨다는 가르침을 부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신학적 일탈에 대응하기 위해 도르트총회(1618-1619)가 소집되었고 거기서 오늘날 튤립(TULIP) 또는 칼빈주의 5대 강령으로 알려진 다섯가지 은혜의 교리에 대한 고전적 요약이 담긴 도르트 총회 신경이 나왔다.
튤립(TULIP)이란 일종의 약어로 이 단어의 각 철자는 가장 논쟁거리가 된 교리들, 즉 전적부패(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을 뜻한다.
이 교리들은 인간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될 수 있는 어떤 영적인 선에서도 확신을 두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교리들은 칼빈주의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이루지만 칼빈이 이 교리들을 고안해 낸 것도 아니고 이 교리들이 종교개혁 시기에 그의 사상만의 특징도 아니다. 이 교리들은 칼빈주의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이루지만 칼빈이 이 교리들을 고안해 낸 것도 아니고 이 교리들이 종교개혁 시기에 그의 사상만의 특징도 아니다. 인본주의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는 자아실현적 존재이다.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삶은 자신이 자기애의 대상이 되며, 자기애는 행복한 삶의 동기가 된다. 그 결과 불완전한 자아의 완성에 대한 열망으로 인하여 치열한 경쟁으로 자신을 몰아가며, 극도의 이기적 합리주의 속에서 불가피하게 스스로 자유선택과 자유의지를 파괴해 가는 자기모순적 관념에 빠지게 된다. 성경적 관점에서 자아는 인본주의와 정반대의 개념을 갖는다. 인간의 자아는 절대적인 개혁(reformation)이 필요한 대상이며, 삶의 요체는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삶이다. 마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기적 인간은 불변의 진리와 대면하는 순간 그 진리와 더불어 이타적 존재로 거듭나며, 참된 진리를 추구할 때 비로소 영혼과 삶의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위와 같이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근본적으로 통합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인간은 말씀에서 멀어지면서부터 자신의 본성에 따라 움직이게 되며 삶의 목적은 욕구에 의해 동기화된다. 자신을 향한 인간본성의 방향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향하게 하는 것은 초대교회, 속 사도시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교회의 소명이었다. 그리고 참다운 신앙공동체의 모습은 오직 말씀으로 전인격적인 성장과 변화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롬 12:1-2, 엡 4:13, 신 6:4-9) 신앙 교육이 온전하게 행하여진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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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