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
[신앙교육나침반] 세대통합을 위한 첫 걸음
-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20세의 노련한 리더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민족 전체를 향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절절히 외쳤습니다. 그의 외침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그는 타락한 세상속에서 믿음의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내적 차원인 ‘마음’을 두고 싸우는 부모세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귀 교회의 부모세대는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고 종교생활하는 ‘교인’이 대부분입니까?
하나님을 마음 다해 뜨겁게 사랑하여 일상을 교회로 세우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교인’만 가득한 교회는 자녀세대에게 생명이 없는 율법을 가르칩니다. 교인만 가득한 교회는 자녀세대에게 율법을 잘 가르치기 위해, 모두 교사가 됩니다. 그리고 무지하고 부족한 자녀세대를 교육하기 위해 부모세대로부터 철저히 분리합니다. 생명이 없는 율법은 자녀세대의 삶에 그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도리어 자녀세대를 정죄시하고 아프게 만들어서, 불안하고 방황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자녀’가 가득한 교회는 자녀세대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하나님 자녀가 가득한 교회는 자녀세대에게 생명의 복음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모두 영적인 목자가 되어 그들과 늘 함께합니다. 부모세대는 자녀세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녀세대의 영혼을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함께 예배하며, 함께 복음을 경험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생명의 복음은 자녀세대의 삶을 일으켜세우는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여, 자녀세대를 빛의 자녀로 세웁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교회(ἐκκλησία)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기 위하여 부름 받은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신분, 성별, 연령을 초월하여 하나로 연합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한마디로 ‘한 몸’입니다. 여러 다른 세대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를 ‘너’로 보지 않고, ‘나’로 보게 되는 곳이 바로 교회만의 본질이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비입니다. 세상은 세대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세대를 분리하고 의도적으로 단절시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반대입니다. 교회는 세대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더욱 세대를 통합하고, 하나로 모인 자리에서 강력한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오면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온 세대의 허그(HUG)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개혁교회는 교회의 이러한 본질을 회복하는 세대통합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유아, 어린이, 청소년, 장년, 노년이 모두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한 몸을 세우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매 주일, 복음을 ‘함께’ 듣고, ‘함께’ 은혜 받으며, ‘함께’ 결단하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면, 자연스럽게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간의 신앙전수가 활발해집니다. 기독교교육학자인 존 웨스터호프3세는 신앙 전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 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며, 함께 복음을 경험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함께 복음을 받고, 함께 복음을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자녀세대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느 공동체에 속해있는지에 대한 정체성과 강력한 소속감을 얻게 됩니다.
온 세대가 함께하는 예배와 프로그램은 세대와 계층과 문화를 뛰어넘고, 언어와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 되는 신비와 기쁨을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예배와 프로그램을 의도적이고, 정기적으로 마련한다면, 자녀세대들은 교회와 한 가족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세대들은 ‘함께함’의 경험 속에서, 자신이 ‘교육부서의 학생’이 아닌, ‘교회의 참된 성도, 참된 지체’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유아, 아동,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 모든 세대가 복음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고, 복음의 온기로 인하여 치료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온 땅에 퍼지길 기도합니다.
-
2024-11-08
-
-
[성서연구] 오직 은혜뿐입니다
-
-
무엇을 드러내려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이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영락교회 목사가 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이 영락교회가 6.25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락교회는 1945년 12월 2일에 창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베다니전도교회였으나, 영락교회로 개명했습니다. 지역이 영락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영락교회 하면 한경직 목사님이 떠오를 정도로 영락교회와 한경직 목사님은 거의 한 몸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완전히 한 몸>이라 하지 않고, <거의 한 몸>이라고 표현한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락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였습니다. 6.25가 발발한 날은 주일인데, 그날 주보를 보면 장년 출석이 4천 명을 넘었습니다. 그 후 80년대 중반에 와서 수만 명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민족 복음화에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전국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군목 제도를 시행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고, 영락교회는 1,004군데의 군인 교회 중에서 건축비 전액 부담으로 300여 교회, 반액 부담으로 300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600여 교회 이상이 영락교회의 헌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교육 선교에도 힘을 쓰셔서 1938년에 자진 폐교한 숭실대학교를 1954년에 영락교회에서 재건했고, 또 보성여중고를 재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대광초등학교,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 영락중학교, 영락고등학교, 영락의료과학고등학교를 세웠습니다. 현재 영락교회는 총 8개의 학교를 운영 중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긍휼과 사랑 사역에도 힘쓰셔서 신의주에서부터 시작하신 고아를 위한 보린원을 비롯하여 중증장애인 시설인 애니아의 집, 모자원 등 현재 총 15개의 복지법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락교회 목사로서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영락교회 성도들은 이것들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이 영락교회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영락교회와 한경직 목사님이 완전히 한 몸이 아니라, <거의 한 몸>이라고 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거의>라고 한 이유는 영락교회와 한경직 목사님 사이에 거리감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거리감은 성도들은 이상의 일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데,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드러내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겸손이었습니다.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영락교회 성도들은 한경직 목사님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하지만, 한경직 목사님처럼 하지는 못합니다. 여기에 영락교회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가 놓여 있습니다.
제가 영락교회에 부임한 후에 성도들이 주문한 것은 <한경직 목사님처럼!>이었습니다. 이것은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요구였습니다. 하나는 한경직 목사님처럼 많은 사역을 하라는 것과 동시에 한경직 목사님처럼 겸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역은 드러내는 쪽입니다. 겸손은 숨기는 쪽입니다. 두 가지는 물과 기름 같습니다. 저는 무능해서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조용히 있는 것뿐입니다. 뭘 하겠다고 나대지 않는 것입니다. 조용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시편 131편 1절에서 감동받았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조용히 있으면 부수적 효과가 있는데, 그것은 겸손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려고 노력하는 게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오직 예수님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랑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제게만 필요한 것일까요?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2024-11-08
-
-
[소강석칼럼] 아쉽지만 마음은 함께 합니다
-
-
제가 탈진을 하여 링거를 맞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부산 세계로교회를 섬기시는 손현보 목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이러다가 한국교회가 큰 일을 당할 것 같습니다. 10월 27일 종교개혁주일 오전 11시에 광화문에서 한국교회를 지키는 연합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누워 있는 채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긴박한 상황인가요? 아직은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목사님이 함께하자고 하면 해야지요. 제가 주일날 예배를 포기하면서라도 기꺼이 가겠습니다. 그러나 주일 오후에는 제가 참석할 수 없습니다.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자라고 배운 신학교, 교회와 역사관을 방문하기 위해 미국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국교회를 위한 염려와 걱정은 같았고 의견이 동일했습니다. 그 분도 단순하고 저도 단순하게 쉽게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사실 말이 그렇지 주일 낮 예배를 포기하고 광화문으로 모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주일 오전에 광화문에서 모인다는 것은 다른 집회와 괜한 혼선을 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런 복잡한 계산보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동의를 한 것이죠. 저의 몸은 많이 지쳐서 계속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회 시간이 오전에서 오후로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자단과 순례하는 일정을 조정하기 위하여 담당 목사에게 날짜를 조정해 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각도로 노력해봤지만, 기자단의 출장 날짜와 선교사들의 출신 신학교 총장과 교수, 역사관 예약 등의 변경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펜젤러 선교사의 후손도 어렵게 시간을 마련했다고 해서, 이를 어찌할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때 손현보 목사님께서 저에게 공동대회장을 맡아 달라는 간절한 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놓고 제 주변에 있는 동역자들과 의논을 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참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이름만은 넣는게 좋지 않느냐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한 동역자들이 만류를 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 동기와 목표는 참 좋은 것이지만 일회성 집회로는 대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 기도회 후에도 있을 일을 감당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적지 않는 재정적 부담도 있을거구요. 더구나 참석 못하면서 이름을 올리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날짜가 안 맞아서 출국하시는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담임목사님을 대신해서 희망하는 성도들과 함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여당이나 야당에서도 차별금지법이나 동성애법이 발의된 게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차분하게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저에게도 어떤 직책을 맡으면 재정적 부담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저는 잠들어도 10.27, 일어나도 10.27 생각뿐이었습니다. “집회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든지 간에 순수한 진의가 잘 전해져야 할텐데...” 저는 개인적으로 손현보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이 많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집회 시간이 오후로 변경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참여를 못하게 되었지만요. 물론 한 번의 큰 기도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략적으로 반기독교의 흐름과 공격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장수는 앞서서 전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선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죠.
어쨌든 큰 기도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생각은 다 똑같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전략적으로 계속해서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정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집회나 기도회를 통해서도 한국교회를 갈라치기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회를 우려하고 너무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자제해야 합니다. 칭찬은 못할망정 비판을 하는 것은 그 또한 한국교회를 갈라치기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쉬운 마음을 전하면서 기도회가 순탄하게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
2024-11-08
-
-
[시사칼럼] 세대와 복음
-
-
점차 “알파세대(alpha generation)”라는 표현을 쓰는 빈도가 늘어갑니다. 사실 그 동안 많이 썼던 “엠지세대(MZ)”라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15세부터 45세까지(1980년~2010년) 연령대를 망라하기 때문입니다. 10년 터울만 해도 세대차가 엄청난데 무려 30년 간격이 있지 않습니까? 1995년을 전후해서 2010년까지를 지세대(Gen-Z, 젠지)라 하고, 그 다음부터 현재까지 출생자를 알파세대라 부릅니다. 앞선 세대와도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알파세대의 특징은 바로 ‘인공지능(AI-generation)’입니다. 이들은 나면서부터 ‘지니’ 같은 인공지능 목소리에 익숙하고, 숙제를 챗·GPT로 능수능란하게 해냅니다.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며 활동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알파의 복음입니다. ‘알파 예수의 복음’입니다.
앞서 언급한 “지·세대(Z-generation)”는 새 천년 전후로 태어나 자란 세대로, 현재 10대 후반부터 20대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1996~2009). 이 시대를 지나며 다들 아이폰(2007.6.29), 페이스북(2004), 유튜브(2005), 트위터(2006), 인스타그램(2010)의 탄생을 지켜보았지만, 지·세대는 이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세대와 다릅니다. 이들의 특징을 한 마디로 ABCD로 정의해 보았습니다. 먼저 에이(A)는 ‘무신론적’ 성향을 상징합니다(Atheistic). 비(B)는 ‘큰(Big), 총명한(Bright), 뛰어난(Brilliant)’를 가리킵니다. 씨(C)는 ‘크루(Crew)’의, 마지막 디(D)는 ‘디지털(Digital)’의 앞 글자에 해당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새로운 인류라는 뜻의 이름을 부여하기도 합니다(포노·사피엔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신인류에게도 A·I(인공지능)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있는데, 바로 Am·I(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의 복음’입니다!
다음으로 “3040세대”를 생각합니다. 1980년에서 1995년생까지를 보통 “엠(M)세대”라 하는데, 새천년(밀레니움, Millenium)을 맞이한다 하여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엑스(X)세대”(X-generation)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엑스 다음 철자인 “와이(Y)세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령대를 고려하면 “3040세대”라는 말이 훨씬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들은 이미 사회의 주축입니다. 교회에서도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합니다.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숫자가 상당한데 그 가운데 많은 수가 교회를 이탈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소위 ‘가나안 성도’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대가 40대요, ‘플로팅 크리스챤’(부평초 신자, floating christian)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대가 30대입니다(코로나 이후 3명 중 1명이 교회를 떠났다고 함, 목회데이터연구소, 2023).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의 복음’입니다!
1980년대 인텔이 개인용 컴퓨터로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으면서 ‘80286’이란 번호를 붙였고, ‘286컴퓨터’라 불리기 시작하더니 ‘386’, ‘486’, ‘586’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는데, 수강신청을 컴퓨터로 입력해야 해서 소동이 일었고, ‘채팅’이 등장했으며, 밤새 온라인게임을 하느라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들이 속출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주역들을 5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이라 해서 586세대라 부릅니다. 최근 2차 베이비붐세대(1964-1973) 은퇴가 시작되었지만 이들을 요즘 에이(A)세대, 뉴-시니어, 욜드(Young Old),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ves) 등 다양하게 부릅니다. 숫자도 비중도 막강하기 때문입니다(인구의 30%). 게다가 교회에서는 복음전파와 복음교육의 주력 세대입니다(핵심 일꾼의 30%). 이들은 민주화와 학생운동과 사회단체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집단입니다. ‘웨비(WAVY)’라고도 하는데, 재력을 갖추고(Wealthy) 활동적이면서(Active) 추구하던 가치를 단단하게 다지고(Value) 젊음을 놓치지 않으려는(Youth) 신인류라는 의미입니다. 충분히 역량이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희생과 헌신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올해 드디어 한국은 노령 인구 일천 만 시대를 맞았고, 65세 이상 비율이 19%를 넘어서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기 일보 직전이며, 역사상 처음으로 70대 인구((631만 9천)가 20대 인구(619만 7천)를 추월했습니다. 바야흐로 ‘시니어 시대’입니다! 밝은 면만 존재하진 않습니다. 가정에서는 육아 피로에, 교회에서는 봉사 피로에 시달립니다. 섭섭함과 우울함이 찾아옵니다. 고립감과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끝이 아닙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았습니다. 헤겔은 유명한 <법철학강의>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는 말을 남겼는데, 우리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복음의 독수리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정채봉이 들려주는 동화 속 어른 독수리가 말합니다.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나이가 들수록 상처는 많아지고 깊어집니다. 그럴수록 더욱 절실한 것이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구원의 복음입니다. 시니어는 시니어가 전도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날개를 활짝 펴고 벌써 날개를 접어버린 이들에게 찾아가서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시니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24-11-08
-
-
[은혜의말씀] 믿음의 정상(베드로후서 1:5~7)
-
-
등산은 산꼭대기,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다. 신앙생활에도 유치찬란한 수준이 있고 믿음의 정상이 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 정상에서 그의 믿음을 검증받았다. 정상에 오른 사람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무한도전, 한계초월, 지극정성, 지사충성, 일사각오, 일편단심, 오매불망, 꿈에도 소원,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을 거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에 지치면 지고, 일에 미치면 이긴다는 말도 있다.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일상이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
베드로후서 1장에는 신의 성품이 나오는데, 신의 한수가 있듯이 신이 내린 성품도 있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변화무쌍하며 때로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의 성질도, 마음 밭을 잘 가꾸면 신의 성품을 닮아서 성품의 최정상에 도달할 수가 있다. 무릇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지키는 것보다도 어렵다.
성자는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야생마가 천방지축 날뛰다가 임자를 만나 연단이 되면 천리마, 준마가 된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개구쟁이가 철이 들면 다정다감한 호인이 될 수 있다. 모나고 까칠한 성질이 예수를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섬세하고 원만하고 따뜻한 카리스마가 되는 것이다.
생각이 말이 되어 툭 튀어 나오고, 말이 씨가 되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품이 되고, 성품이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 사람의 인품, 인상, 건강, 관계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것이 성질이다. 이혼도 성격차이로 하는 것이다. 신의 성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다. 똥물에도 파도가 있다. 사람마다 성품의 결이 다르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① 믿음에 힘을 써야 된다.
② 믿음의 덕을 힘써야 된다.
③ 덕에 지식을 힘써야 된다.
④ 지식에 절제를 힘써야 된다.
⑤ 절제에 인내를 힘써야 된다.
⑥ 인내에 경건을 힘써야 된다.
⑦ 경건에 형제 우애를 힘써야 된다.
⑧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된다.
이런 여덟 단계를 올라서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벧후1:8 이런 것이 있는 사람은 흡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는다.
벧후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벧후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리라.
-
2024-11-08
-
-
[위드애]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
-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계절이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생각나는 것이 ‘따뜻함’이다. 이 따뜻함은 남녀노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이 따뜻함이 더욱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 노인, 한부모가정, 외국인, 노숙인 등등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또 하나, 미혼인 사람들도 약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고, 중심으로부터 밀려나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이들은 중심에서부터 밀려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장애인 당사자이면서 미혼인 나도 이들과 같다.
이들에게는 어떤 따뜻함이 필요할까?
‘따뜻함’이라고 했을 때에 대부분 ‘물질의 따뜻함’을 떠올렸을 것이다. 비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세상을 살아갈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물질(돈)이다. 이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물질은 필요하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 사실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금을 진행하고 그것을 사랑의 온도로 표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따뜻하게 만든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도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모금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12월 25일 성탄예배를 드릴 때에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모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교회 주변 또는 교회 내에서 찾아서 지원하거나, 단체의 기부를 하는 형식으로 돕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형식적이든 비형식적이든,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다면, ‘시선의 따뜻함’에 대해서는 어떤가? ‘따뜻함’이라고 했을 때에 단 한 번이라도 ‘시선의 따뜻함’을 떠올려 본 기억이 있는가?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선의 따뜻함이 중요하다. 아니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따뜻한 시선을 기다리고 있고 필요로 하고 있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약자들이나 미혼인들에게는 사회에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교회 중심에서도 벗어나 있기에 더더욱 필요하다.
이들이 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을 전통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서의 시선, 전통적으로 관습되어 내려온 시선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던 하나님의 시선, 사회적 약자들과 동행하셨던 예수님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들을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그들(상대방)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교회가 사회에서 대접 받고 유명한 이들만 따뜻하게 품는 것이 아니라, 무명이고 연약한 자일수록 교회는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교회 중심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향한 우리의, 그리고 교회의 사랑이 담긴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
2024-11-08
-
-
세계로교회, 전광훈 측에 성명서 발표
-
-
세계로교회(손현보 목사)가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관련해 예배를 방해한 전광훈 측에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로교회는 연합예배 다음날인 28일 성명서를 통해 “집회 및 시위법 상 같은 장소에 두 단체 이상이 집회를 신청할 경우, 먼저 사용하던 단체에 우선권을 주게 돼 있다. 그래서 광화문 지역 중간에 위치한 동화면세점 앞은 이미 전광훈 측이 사용하고 있어 여러 차례 찾아가고 연락해 전광훈 측은 주일 오후에는 그 장소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집회를 열고 이후 우리 연합예배가 가능하도록 약속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약속과 달리 전광훈 측은 한국교회와 전 세계에 흩어진 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 도중, 예배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본인의 정치 집회 영상으로 화면을 변경하고, 음향을 110데시벨 이상으로 더 높여, 더 멀리까지 들리도록 큰 소음으로 예배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세계로교회 당회는 ‘오늘(11월 28일) 이후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고 하나님을 모독한 전광훈 측 정치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정관에 따라 당회 결의로 출교 및 제명에 조치한다’, ‘이 단체에 정치 자금이나 헌금 명목으로 기부하는 사람 역시 동일하게 출교 및 제명 조치한다’, ‘고신총회 이단대책위원회에 전광훈에 대한 이단성 조사를 재개할 것을 요구하며, 그동안 중단되었던 이단성 조사가 신속히 진행되도록 촉구한다’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
2024-11-08
-
-
언제 떠날지 모를 내 삶, 떠날 때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
-
아주 젊었을 때는 미래를 모르고 하루하루 그날만을 위해 살아 왔다. 그야말로 형편과 처지에 따라 그날 그날 만을 위해 살아 온 셈이다. 인생에 목표가 있고 꿈과 비전을 위해 달려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냥 되는대로 방향과 비전도 없이 환경에 주어진대로 살아 온 지난 날이 몹시도 후회스럽다. 30대 결혼하고 40대 생활의 기반을 잡아야 하는데 될대로 되어라 하고 하루 살이 인생으로 살아 온 것이 한번 뿐인 인생 실패작으로 세월과 나이만 먹어 허송세월로 지나 온 것이 너무 가소롭고 허망하기 그지없다. 왜 내가 그 때에 마음먹고 정신차리고 목표를 향하여 열심을 다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창피하고 후회스럽다.
결혼 하기 전 20대에 폐결핵으로 몸이 무너져 내린 것이 주요 원인으로 모든 것이 허망하고 이렇게 되고 나서부터는 죽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무슨 희망과 꿈이 있었겠는가. 그저 세월아 네월아 그때 그 순간 세월만 흐르고 인생 낙오자처럼 살았으니 무슨 꿈이 있고 앞날에 희망을 품고 살았겠는가? 첫 단추가 건강을 잃고 살아가니까 매사에 용기와비전 없이 살아지고 만 것이었다. 겨우 닥치는대로 뱀탕이며 몸에 좋은 것은 다 먹고 나니 그 몹쓸 결핵도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는 결혼을 30대 초반에 하고 생활에 매달려 하루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빴다. 직장도 없이 월급 한번 받아 온 적이 없는 하루 살이 인생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처가집 생활 아니었다면 벌써 거지나 방랑자로 인생 폐품으로 남아서 인생 종지부로 갔을 것이었다.
한번 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못하고 살았으니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재미교포였던 김영봉 목사가 쓴 책에서 ‘죽음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가기 위한 통로’라고 했다. 인생의 시작과 끝이 모두가 주님께 속한 질서로 받아들여지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여든이 되고 보니 불과 10년 전후로 밖에 살지는 못할 것인데 다가 올 죽음을 어떻게 잘 준비해야 될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날마다 참되게 살기는 살아야 되는데, 말과 같이 잘 되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게 되기 어렵지않을까 싶은 기우다. 항공기 사고가 나면 골든타임 90초 룰이 있다. 사고 발생 직후 90초 안에 비행기로부터 벗어나야 생존율이 높아진다. 순식간에 비행기 안은 지옥을 방불케 된다. 평상시 훈련 받은대로 메뉴얼 대로 행동하여 비상구 위치 탈출 요령을 설명할 사이 없이 비행기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우리 인간이 살아 가는데 우선 순위가 무얼까? 생각하니 첫째가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고 그 다음이 잠언 4:1~9에서 지혜이다고 했다. 옛 어른들은 지식은 부족해도 지혜는 배운 공부와 상관이 없다고 했다. 지혜는 어디서 얻을 수가 있을까? 바로 어릴 때부터 부모 공경으로부터 얻는다. 부모는 우리에게 돈이 재산이 아니라 지혜 곧 효를 통해 생명을 물려 주는 것이다. 인생 선배로서의 가치가 가장 지혜로운 가치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쉰 살이 넘으면 철학자가 된다고 한다. 어느 시골 농부가 어머니를 지개에 얹고 깊은 산골짜기를 가고 있는데 어머니는 자식이 집에 못 돌아갈까봐 가는 길마다 나뭇잎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아들은 지개를 내려 놓고는 “어머니 잘못했습니다”라고 하고 후회한 이후로 고려장이 없었졌다고 한다.
잠언 4:1~10에 있는 것 같이 “너는 내 말을 잘 들어라 내 말을 잊어 버리지 말라 소중히 여기라. 그리고 사랑하라 지혜를 사랑하라”고 했다. 영어에 philosophy 헬라어에서 나왔는데 필로는 사랑한다, 소피아는 지혜라는 말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이고 지혜를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고. 곧 부모의 교훈을 소중히 여겨 지혜가 너를 지키고 너를 높이고 너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절대로 인생 낙오자가 되지도 않고 자살하는 법이 없을 뿐 아니라 문제아가 되는 법이 없다. 바로 효자가 효자를 낳는 이치이다. 하나님은 지혜와 장수와 능력을 약속해 주고 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지혜가 해답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옛말에 ‘보약을 잡수려 하지 말고 효도하십시오’라고 했다.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기쁘게 하면 바로 행복해지고 지혜의 길이 열린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자식들아 내 말이 아니고 성경에서 당부하는 하나님의 첫째 약속이라는 것을 잊지를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너무도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하늘 나라로 떠나고 싶다. 우리 모두가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순종하면 이런 좋은 선물을 안겨 준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
2024-11-08
-
-
[목회자칼럼] 시종여일하고 신시경종하라
-
-
목회자로서 연합사역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다양한 사람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말로 감당할 수 없는 복이며 은혜다. 괜찮은 사람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기준은 처음 함께 했을 때의 마음이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그 처음의 마음은 당연히 공동체의 가치와 목적에 합하고, 순리적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다.
우리 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깊게 살펴보면 시작하는 일의 내용과 자세가 더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악하고 나쁜 일도 시작만 하면 이미 반은 진행되었기에, 시작하는 일이 선하고 아름다워야 함은 명약관화하다. 또 시작이 반이라면 선하고 아름다운 일은 시작과 함께 이미 반을 이루었기에, 그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위해서도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행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신시경종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당나라 충신 위징이 당 태종에게 올린 글에 나온다. 그 의미는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능히 끝을 잘 마치는 자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나태하고 게을러질까하는 두려움이 찾아올 때는 신중하게 일을 시작하고 일의 끝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라고 진언하였다. 우리의 역사에서는 한명회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사위였던 성종에게 유언처럼 당부한 말이 바로 신시경종이다. 군주가 조금만 마음을 게을리 하면 간신배들의 아첨에 넘어가기 때문에 항상 일의 처음과 마지막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간언했다. 대국을 다스리는 왕이라 할지라도 신시경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충신이 자신의 주군에게 목숨과 마음을 담은 글을 올린 것이다.
한명회가 남긴 말 중에 신시경종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 말은 “시근종태는 인지상정이지만 종신여시 하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작할 때는 부지런하지만 끝날 때에는 태만해 진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할지라도 군자는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근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종신여시와 비슷한 말은 시종여일이다. 시작과 마침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한명회가 노년에 유배를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후회와 회한 그리고 성종이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언한 것이다.
처음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의미를 지닌 초지일관도 있다. 이것 또한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일이관지’ 즉 처음의 뜻을 끝까지 꿰뚫는다와 모든 것은 하나로 꿴다와 같은데, 처음의 마음이 마침의 시간까지 뜻을 잃지 아니하고, 전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시종여일, 신시경종, 종신여시, 초지일관 등은 거의 다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하고 아름다운 초심을 끝까지 잃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 곧 성공한 삶이며 승리한 인생이다. 역사 이래로 충신들은 한결같이 자신들도, 그리고 자신의 주군도 그렇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초심을 지켜 성공한 사람은 더 강력하게, 초심을 잃어버려 실패한 사람은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솔하고 담대하게 진언한다. 나도 시종여일 신시경종 하는 사람들이 참 좋다. 참 괜찮은 사람들이다. 내 곁에 이들이 있기를, 내가 이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
2024-11-08
-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감부열 선교사2
-
-
해방 전 내한하여 강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감부열 선교사는 1940년 6월 세 번째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대동아전쟁의 발발로 다시 내한하지 못했다. 이때 감부열은 뉴저지의 플레인필드제일장로교회와 엘리자벳제3교회에서 목회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게 되자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며 미국에서 목회를 정리하고 1947년 4월 4일 다시 내한했다. 해방된 한국교회의 재건이 시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속히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한국어도 능통했고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확신했다. 이때는 다시 북한의 강계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대구지부로 배속되었다.
대구 정착과 교회 재건으로 분주하게 지냈는데 1950년 6월에는 전쟁이 발발했다. 대구로 피난해 온 피난민들을 돕고 교인들을 보살폈다. 그의 대구 주택은 피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피난처였다. 전세가 불리하여 위험하다고 본 그는 안의와 선교사와 같이 안동으로 가서 안동선교부의 기물과 주요 문서를 대구로 옮겼다. 안동이 점령당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인천상륙 작전 이후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으로 진격하여 평양에서 수복감사예배를 드릴 때 그는 미군 군목 자격으로 킨슬러와 힐, 아담스, 보켈, 마펫 등과 같이 평양으로 가서 예배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는 대구로 돌아왔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아군이 후퇴하는 긴박한 현실에서도 한국에서의 군목제도 도입을 위해 노력했다. 미국 군목병과의 교범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여 군목제도를 도입하는 일에도 기여하였다고 한다.
전쟁 중에서도 한국교회는 신학교 문제로 혼란하였고, 총회가 두 학교, 곧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직영을 취소하고 제3의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1951년 9월 대구에서 총회신학교를 설립할 때 대구의 감부열을 초대 교장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인돈(William Linton), 권세열(Francis Kinsler), 조하파(Joseph Hopper) 선교사와 박형룡, 김치선, 계일승, 명신홍 한경직 등은 초대 교수로 추대되었다. 이 학교가 오늘 총신대학교로 발전했다.
감부열 선교사가 대구에서 일할 때 그 가까이에서 일한 한국인이 서정환(徐廷煥, 1906-1952) 전도사였다.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高山面) 고산진(高山鎭) 출신인 서정환은 감부열 선교사의 전도로 신자가 되었고,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되었다가 해방 후 석방되었고, 감부열 선교사가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구로 와 그와 함께 일했다. 서정환은 감부열 선교사 부부를 부모처럼 여기고 함께 일하기도 했다.
감부열 선교사는 1952년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가 펜실베니아 주 젱킨스타운의 비버대학(Beaver college)과 일리노이주 휘튼의 휘튼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DD) 학위를 얻고 1953년 대구로 돌아왔다. 1954년 4월에는 대구에 계명기독대학이 설립되는데, 초대학장으로 추대되었다. 처음 120명으로 출발했으나 1958년 3월에는 첫 졸업생 49명을 배출했다. 도서를 확보하고 도서관을 건축하고 또 음악당을 건축하는 등 학교 발전에 기여하고 1958년 7월에는 학장직을 안두화 선교사에게 넘겨주고 8월에는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60년 선교사직에서 은퇴했다.
그는 한국선교 경험을 담은 The Christ of the Korean Heart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1958년 김윤국에 의해 ‘한인 중심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한역되었다. 길지 않는 145쪽에 지나지 않는 짧은 책이지만 전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5-6명의 선교사 외에도 고난과 시련 가운데 믿음을 지켰던 한국인 17명을 소개하고 있는데, 김익두, 서정환, 손양원, 안의숙, 이대영, 이승만, 이영식, 임한성, 주기철, 한경직, 한병혁 등이다. 그가 남긴 또 한 가지 저서는 강계에서 함께 사역한 바 있는 노혜리, 곧 로즈(H. A. Rhhodes)와 1935년 이후의 북장로교의 한국선교사를 정리한 500여 쪽에 달하는 역사책(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1935-1959)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그는 여러 일화를 남겼는데, 그가 북한에 있을 때 사냥도 즐겼는데 동료들과 곰사냥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어려움 중에서도 그는 평정을 잃지 않았고, 곰으로부터 큰 화를 당한 일도 있는데, 그런 중에서도 “나는 살겠으나 곰은 살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하면서 위기를 벗어난 일도 있다고 한다. 그가 대구에서 일할 때 정일영 목사가 그를 힘들게 하고 괴
롭혔다고 한다. 정일영(鄭一永, 1901-?) 목사는 평양신학교 31회 졸업생(1936)으로 대구 대봉동에서 일하고 있었다. 감부열 선교사는 참고 지내다가 한 말이, “정 목사, 예수 사면이요!”라고 했다고 한다.
1972년 1월에는 부인 안혜리(헬렌) 여사가 사망했다. 미국펜실베니아주 빌라 신위드의 웨스트민스터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해에 감부열은 루시 링컨(Lucy E. Lincoln, 1905-?) 여사와 재혼했다. 루시 여사는 남편과 사별하고 10년째 혼자 지내던 여성이었다. 5년을 같이 살고 1977년 1월 감부열 선교사는 86세로 사망하여 첫 부인 헬렌 옆에 안장되었다. 감부열은 헬렌과 사이에 1남(Archibold) 3녀(Helen, Frances, Ann)를 두었다.
-
202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