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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아이들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다음세대 교육을 할 때 우리가 부딪히는 많은 부분이 감정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다 다른데, 이 감정들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떤 아이는 기분이 계속 좋아요. 그런데 어떤 아이는 기분이 훅 나빠져요. 왜 그럴까요? 아이들마다 그 부분이 건드려지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그 아이만의 히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아이들은 다 괜찮은데 나만 감정이 상하고 힘들다면, 우리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감정의 이름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우리가 만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단순히 아이들이 말하는 “개 짜증”, “기분 나빠.”가 아니라 그 일이 왜 나에게 기분 나쁘게 다가왔는지를 파악하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려고 합니다. 첫 번째, ‘불안’입니다. “불안하네. 이거 잘 될까? 불안해!” 이 ‘불안’은 사실 뭐냐 하면 우리 삶의 거품을 제거해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싶으면 뭘 해야 하냐면 “이 불안은 왜 찾아오는 걸까?” 돌아봐야 합니다. 흔들리고 불안하다면 이건 정말 필요한 것 이외의 것들을 제거하라는 사인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나, 내 속에 있는 진짜 나를 붙잡고 껍데기를 버리게 하는 과정이 바로 불안인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건드려질까 봐 불안한 거죠. 그렇다면 내가 그것만을 남겨놓고 나머지를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불안한 순간에 우리는 정말 중요한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두려움’입니다. “나 저거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은 뭐냐 하면 사실 우리 용기의 출발점이 됩니다. 두려움이란, 내가 이걸 넘어서서라도 꼭 얻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대학 입학을 놓고 두려워하는 우리 학생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 대학을 가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내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게 없다면 두려움도 없겠지요. 두려움이란 나의 목표를 알려주는 감정입니다. 세 번째, ‘질투’입니다. “질투는 나쁜 거 아니야?” 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아니요. 질투는 나의 욕망을 보여주는 감정입니다. 누가 사랑받는데 보니까 질투가 난다. 내 안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에이!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이렇게 넘어가려고 해요. 그런데 알고 보면 내 안에 그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단 말이죠. 그동안 숨겨왔던 것. 그동안 거부했던 것. “아니에요. 난 안 그래요! 안 그래요!” 했었는데 진짜 내가 누구인지, 진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장치가 뭐냐? 그게 질투라고 하는 거예요. 네 번째, ‘외로움’입니다.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연결에 대한 갈망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 괜찮아! 괜찮아! 나 안 만나도 괜찮아! 나 괜찮아! 나중에 봐!”라고 하지만 괜찮지 않거든요. 여러분은 늘 괜찮으세요? 아니요. 우리 모두 괜찮지 않아요. 외로움이라는 이 감정은 연결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일깨워주는 감정입니다. 다섯 번째, ‘실망’입니다. 실망은 나쁜 감정이 아닙니다. 실망은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에요. 내가 그 사람에게, 그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입니다. 많이 기대한 만큼 실망하니까요. 추락하는 것은 항상 날개가 있는 것이잖아요. 나한테 별로 관심 없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까 내가 되게 실망했어요. 그 때, 나는 “내가 기대했었구나. 내가 그걸 원했었고, 내가 바라고 있었구나. 내가 그것을 진짜 원했네!”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여섯 번째, ‘초조함’입니다. 초조해요. 손이 떨려요. 초조함은 더 나은 나를 향한 채찍질입니다.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떨지도 않아요. 정말 잘하고 싶으니까 초조한 거예요. 떨리는 거예요.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초조할 일도 없는 거에요. 면접 보기 전에 왜 초조해요? 대학 입시 보기 전에 왜 초조해요? 잘하고 싶으니까요. 그래요. 이 초조함이라는 감정은 잘 하고 싶어서 생기는 참으로 소중한 감정인 겁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분노’입니다. 분노는 나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감정입니다. 내안에 분노가 일어났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화가 났다는 건 적어도 내가 그 사람에게 진심이었다는 거예요. 진심이 아니면 화가 날 일도 없어요. “그놈의 인생! 그렇게 살라고 해!” 지나가 버리면 화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왜 분노하는가? 정말 사랑했으니까! 정말 진심이었으니까! 적어도 그 사람에게 난 뜨거웠으니까! 그 마음이 짓밟히고, 그 마음이 무시당할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 또한 우리 아이들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줄 때 우리는 이 감정을 통해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감정을 바르게 읽어내고 이를 바르게 이끌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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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10-24
  • [은혜의말씀]열린 사람, 열린 교회
    사람을 볼 때 열린 사람이 있고 닫힌 사람이 있다. 하늘 문이 열려서 위로부터 각양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이웃을 향해서 마음 문이 활짝 열려서 소통, 공감, 나눔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반면에, 죄악으로 인하여 하늘 문이 닫히고 저주가 임한 사람이 있다. 이웃을 향해서도 과민한 의심과 지나친 경쟁심으로 까칠하다. 열린 사람이 안 되면 닫힌 사람이 된다. 다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면에 상처가 많고 마음이 우울한 사람은 속을 다친 상태기 때문에 건드리면 더 아프게 된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어둠을 물리치고 우리를 밝게 해 준다. 가정이 오픈되어 대화와 웃음꽃이 피어나고, 교회가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며 구제, 장학, 봉사하며 전도와 선교를 하고, 나라가 세계 속에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된다. 주님은 지금도 문밖에 서서 내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께서 들어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강제로 내 마음 문을 열어젖히시지 않는다.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도록 기다리신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듣는 게 제사보다 낫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연합되고,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에게는 하늘의 아름다운 보물창고를 열어주신다. 동서남북, 전후좌우가 막혀있어도 성도가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린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사역을 시작하실 때처럼 하늘이 열리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성령과 은혜 충만함을 입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라는 음성을 듣는 것이 인생의 필요, 충분, 완전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신통, 인통, 물통, 사통, 밥통이다. 예수님께서는 눈물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셨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온몸이 강건해진다. 부모가 기도할 때 태의 문을 열어주신다. 부모가 기도할 때 자녀의 앞길을 열어주신다. 성도가 기도할 때 전도의 문을 열어주신다. 사람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거침돌이 되지 말고 미래를 열어가는 디딤돌이 되라. 올해 포도원교회는 부흥회와 기도회, 주일 저녁예배시간을 통해서 주님께 심령이 활짝 열려있는 귀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북한 동족을 위해 힘쓰시는 임창호 목사님은 시종 일관 웃으시고 모든 대화를 은혜롭게 이끌어 가시는 데에 진심이셨다. 그리고 최주열 원장님은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고 재미없는 시절을 보냈지만 기이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의사가 되고, 심심해서 불던 색소폰을 가지고 연주를 하는데 그 소리가 단아하고 꾸밈이 없어 더욱 큰 울림을 주었다. 또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 설립자 하스데반 선교사님은 컨디션이 굉장히 불편하신데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도착하면서부터 떠날 때까지 시종일관 기도하셨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되는가를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 무대에 악기 하나 없이, 찬양대원 한 사람 없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였다. 그저 조용히 성도들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찬양을 퍼 올렸다. 다시금 첫사랑을 회복하자.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죄를 버리고 하늘을 향해 가슴을 활짝 펴고 두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 하늘 문이 열린다. 하나님이 지으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 선교하는 열린 교회, 열린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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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 [시사칼럼]광야1.0에서 광야4.0까지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먼저 ‘나비스’가 에스파를 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 ‘블랙 맘바’가 ‘광야’로 설정된 무대를 휘감고, 에스파가 등장하는 거죠.”(매일경제, 2022. 10. 7) 아시아 뮤직 어워드(MAMA)에서 걸그룹 에스파가 등장하던 장면을 소개하는 요즘 세대(Z~α)의 설명입니다(광야4.0). 이들에게 “광야”란 어떤 의미일까요? 놀랍게도 일종의 ‘세계관’을 가리킵니다. “무규칙, 무정형의 영역이자 무한의 에너지가 흐르는 곳”입니다. 이런 세계관 위에서 사회의 갈등과 화합이나 심지어 인간과 인공지능 등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과감하고 위험부담이 가득한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수용과 거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까요. 아무튼 사뭇 놀라운 “광야”의 새로운 지적 소비입니다. “광야”를 두고 몇 개의 세대를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광야1.0세대’가 있습니다. 이 세대는 “광야”라 하면 먼저 ‘이육사’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해서 “내 여기 다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로 끝나는 시(詩) 말입니다. 본명은 이원록이고 이육사는 수인(囚人)번호로 경북 예안 출생(1904)의 독립운동지사였던 지은이는 베이징 소재 일본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1944). 그가 노래하던 “광야”가 가지는 상징성은 오랜 세월 동안 세대를 관통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에게는 조금은 낯선 모습입니다. 그래도 역사적 광야로 길이 남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광야2.0세대’를 생각합니다. 이들은 “광야”라 하면 먼저 이런 노랫말을 떠올립니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으로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가사는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도와 만주를 넘나들며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1980년대에 치솟은 민주화의 시대적 열망을 가득 품었던 많은 젊은이들의 심장을 미친 듯이 울려대는 절규와 함성의 이미지가 바로 “광야”였습니다. 안치환과 고(故)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는 이제 그 시대적 사명을 다한 듯합니다. 어디에서도 희미하게 서린 모습이나 어렴풋이 들리는 흔적을 보고 보고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민주와 자유와 정의의 깃발이 나부끼는 한 그와 함께 울려퍼지던 광야의 노래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광야3.0세대’는 뜻밖에도 한 찬양(CCM)을 통해 등장합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히즈윌, 2013). 주지하다시피 “광야”는 성경에서 ‘말씀과 함께’(미·드바르)라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누구 하나 곁에 없고 오직 고독과 위험과 불안만 가득한 곳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말씀이신 분이 함께 하는 공간이라니, 그러나 가르치기는 쉽지 않았던 이 광야의 개념을 이처럼 서정적이고 압도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청년들을 넘어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나아가 세상 사람들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광야의 노래입니다. 개인적으로 다시 광야에 섰습니다. 광야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외롭고 쓸쓸하며, 굶주림과 날선 추위와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간 불러왔던 광야들(1.0-3.0)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습니다. 광야란 요즘 세대(광야4.0)가 잘 표현한대로 ‘나의 본질적인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은 “광야”(마 4:1, 요 1:23 등)를 “한적한 곳”(막 1:35, 6:31, 요 11:54)이나 “빈 들”(마 14:15, 눅 9:12)이라고 번역할 때가 많습니다. 전자는 기도와 안식이 필요한 곳을, 후자는 침묵과 기적이 존재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그곳을 불현듯 방문하시고 도와주시며 인도하시는 광야의 주인을 만나는 현장입니다. 다시 그 광야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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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 [성서연구]비움의 축복
    얼마 전부터 왼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30, 40대에 걷기를 많이 했습니다. 쉬는 날에는 등산도 많이 했습니다. 여름휴가 때는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80리터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걷기도 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두 번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조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리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왼쪽 다리가 조금 시원치 않다고 여겼었는데, 이번에 탈이 났습니다. 디디기 힘들었고, 왼쪽 무릎이 많이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퇴행성관절염의 시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빌려 표현하면 식탐이 잉태하여 과체중을 낳고, 과체중이 장성하여 무릎 통증을 낳은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근육 운동과 체중 감량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께서는 의사이신데, 똑같은 경우를 당하셨다면서, 체중 감량 후 아픔이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특정 주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장로님께 여쭈었더니 주사의 효능은 식욕을 감퇴시켜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용도 들지만,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의지로 감량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소식을 했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였습니다. 간식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체중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그러던 중 놀랍게도 체중이 어느 지점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서서히 사라진 게 아니라, 거의 완전하게 사라졌습니다. 이 일을 통해 줄임, 비움의 효능을 체험했습니다. 이 평범한 일이 그동안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심을 굳게 하자, 가능해졌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십자가는 예수님의 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빌립보서 2장 7절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나 영광의 보좌를 떠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고, 보통 사람도 달리지 않는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도 역시 비울 때입니다. 다윗의 생애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언제일까요? 골리앗을 이긴 순간일까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때일까요?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다윗이 늙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을 때, 신하들은 어여쁜 동녀 아비삭을 데려와 왕의 침상에 누워 체온으로 왕이 춥지 않도록 하게 했습니다. 다윗이 아비삭을 취해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오히려 아비삭을 멀리했습니다. 저는 다윗의 생애에서 이 장면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과거에 많은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참지 못해 밧세바를 품에 안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 장군까지 죽게 하는 연쇄적 범죄를 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는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늙은 다윗은 아비삭을 밀어냄으로써 밧세바에게 했던 것과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과거의 다윗이 움켜쥐는 자였다면, 이때의 다윗은 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비움은 말년에 돋보입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야반도주하던 그 와중에서도 그렇습니다. 제사장 사독이 언약궤를 메어와서 다윗을 따르고자 했을 때, 그는 사독과 하나님의 궤를 본래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궤가 함께하면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압살롬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할 텐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는 다윗의 비움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5장 25~26절입니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다윗의 이러한 비움은 우리의 귀감입니다. 목회에서 은퇴할 무렵에 손에 잡은 것을 놓지 못하는 목회자들, 이룬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많은 이들,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우리도 다윗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비삭을 밀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비워야 합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인생의 절정이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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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 [서임중칼럼]절차탁마(切磋琢磨)의 교훈
    서른다섯에 신학을 시작해 3년간 수학한 뒤, 마흔 살에 목사 안수를 받은 그날 아침,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불꽃처럼 타오른다. “나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모든 이치를 농심(農心)으로 해석하고 살아왔다. 통감(通鑑)의 지혜로 목사로서 이치를 벗어나지 말아라.” 나는 여기서 MIPO(Ministry-Input-Process-Output)목회를 디자인했고, 목회철학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절차탁마 목회(切磋琢磨 牧會)라 정의했다. 포항중앙교회에서 목회가 꽃피우고 향기를 발하며 열매를 맺어갈 때, 조금은 힘이 있을 때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를 섬기고 싶은 마음에 조기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11년 동안 쉼 없이 부흥사경회를 인도했다. 해외까지 자비량 집회를 인도하며, 파주에서 해남까지 수차례 순회하면서 한국교회의 실상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작금의 목회현장은 목회(牧會)가 아니라 목회(凩會)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엎드림의 시간이 깊어지면서 눈물이 난다. 목회자의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나눔과 베풂이 있는 따뜻한 가슴으로 감격하는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푸름이 드리워진 목장을 가꾸어야 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위로의 노래가 되는 목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있고, 책망받을 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미워함이 있을 때 기도하는 마음, 괴롭힘이 있을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엮어내는 목회, 걸음마다 아름다움의 윤기가 흐르고, 감격할 줄 아는 눈물로 마르지 않는 눈,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 많은 이들의 아픔을 쓸어안고도 남을 넓은 가슴으로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한마디로 함축하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통감목회(通鑑牧會)’다. 절차탁마는 자르고 갈고, 쪼고 닦는다는 뜻으로, 인격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목회에 필요한 교훈이라 생각되었다. 여기서 각론으로 통감목회를 세웠다. 통감목회는 역사(歷史)를 거울로 보는 혜안과,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영안(靈眼), 그리고 작은 자를 예수님처럼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열고 목회하는 것이다. 통감목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보인다. 첫째는 모심(母心)의 목회다. 모심에는 애심(愛心), 성심(誠心), 관심(關心)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강도와 삯꾼과 목자의 교훈을 말씀하셨는데, 모심은 목자에게 있지 강도나 삯꾼에게는 없다. 그들은 모심의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성심과 애심과 관심의 기본이 내재하지 않는다. 일의 경중을 가릴 줄 알고, 사물의 앞뒤를 분별하며, 분수와 염치를 알고, 인내와 절제를 통한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마음에서 연출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목회의 바탕에 깔고 있다. 이것이 또한 모심목회(母心牧會)다. 모심목회는 지각 있는 행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목회의 기경(起耕)이다. 둘째는 농심(農心)의 목회다. 한 해의 농사를 위한 기경(起耕), 씨뿌림, 가꿈, 거둠의 함축된 용어가 농심이다. 농부의 농심으로 목회할 때, 그 목회 현장은 참으로 윤택하고 아름다움이 열매 맺게 된다. 그 아름다움은 거둠의 시간까지 말할 수 없는 땀과 수고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목회의 씨뿌림이다. 농사는 항상 추수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 년 내내 논과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심고, 잡초를 제거하고, 농약을 살포하며, 한여름 내내 비지땀 흘리며 일한다. 수확을 앞두고 풍수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농부는 포기하지 않는다.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간 들판의 돌을 치우고, 다시 논밭을 일구어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한다.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희망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 농심이다. 셋째는 예심(藝心)의 목회다. 농심이 씨뿌림이라면, 예심은 가꿈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목사의 마음이 예술가의 심정이 되는 것이 예심목회다. 다양한 화선지에 그림과 글씨를 통해 명작품을 만드는 화가의 마음으로, 다양한 돌을 가지고 걸작품을 만들어내는 조각가의 마음으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룩한 성도로 빚어가는 목회를 예심목회라 한다. 어찌 걸작품만 나오랴, 때로는 쓸모없는 졸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예심에는 절차탁마가 기본이 된다. 넷째는 시심(施心)의 목회다. 목회의 기본 틀은 나눔과 베풂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구체적 사역이며, 전도와 구제, 봉사로 나타난다. 여기서 이해와 관용, 용서와 사랑이 연출되는 복음의 생활이 가능하다. 시심(施心)은 성령님의 마음이다. 낮아질 수 있어야 하고, 겸손함이 있어야 하며, 사랑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시심이다. 시심목회는 마태복음 25장 40절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는 비교법이 아니라 창조법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작은 자의 개념을 주님은 설명해 주셨다. 즉,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은퇴 후 1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전국 교회를 다니며 여전히 절차탁마의 목회를 하고 있다. 작금의 목회현장은 목회(牧會)가 아니라 목회(凩會)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파한다. 은퇴 전에는 한 교회의 담임목회를 했지만, 은퇴 후에는 부흥사경회 강사로 초청받아 모든 교회 강단에 서는 그 시간마다 담임목사의 마음이 된다. 그리고 절차탁마의 이치로 말씀을 대언한다. 그 매 순간이 통감목회 현장이 된다. 그곳에 모심과 농심, 예심과 시심으로 성심을 다하고, 또 다음 마을을 향하여 주님의 나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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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서임중 칼럼
    2025-10-24
  • 어떻게 그런 실수를...?
    “총회장 투표 406명중 찬성 403명으로 당선” 총회장 정태진 목사가 총회 선관위가 넘겨준 개표결과 쪽지를 읽으면서 총회장과 목사부총회장, 장로부총회장, 사무총장 당선자 명단을 발표하고, 강단에서 선포했다. 순간 총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분명 총회 회원점명 시간에 전원 참석(570명)을 발표 했는데, 실제 투표자가 406명이면 164명 정도가 투표를 하지 않고 사라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상함을 감지 못한 선관위는 다음선거를 바로 실시했다. 나머지 임원과 법인 이사감사 선거를 마치고,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인 후에야 투표함 1개가 개표되지 않았음을 확인 한 것. 선거관리위원회 오병욱 목사가 총대들에게 사과했지만, 총대들의 원성은 커져갔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작년에도 모 법인 이사의 임기중 정년을 확인하지 못했던 선관위가 이번에도 큰 실수를 저질렀고, 또 선관위원장은 금년 4월 경 총회 임원에 출마한 특정 후보 교회에 가서 설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선관위 입장에서는 6월 3일 등록 전 일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누가 출마할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공정성을 가져야 하는 선관위 위원장이 특정 후보자의 교회에서 설교한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모 총대는 “선관위가 해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총대들에게)협력해 달라는 말을 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왜 공정한 선거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는지 궁금하다. 선관위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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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25-09-26
  • [교회법특강]요한 칼빈(1509-1564)과 교회법
    종교개혁가 요한 칼빈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교회를 개혁하고 세울 때 교회법을 작성한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칼빈이 제네바로 돌아온 후 제일 먼저 한 작업은 교회법이었다. 1541년에 시작해서 1561년에 완성되었다. 모두 173개 조항이다. 제네바 교회법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이를 지금 우리와 비교해보자. 우선 목사에 관한 조항은 4-42조로 짧지 않다. 목사 임직을 위한 시험, 임직을 주관하는 부서와 권한, 임직 방식이 나온다. 16-19조는 목사의 서약 내용이 나온다. 20조는 성경을 토론하기 위해 주간의 한 날을 정해서 목사들이 교리적 일치와 순결을 지킬 것을 말한다. 이 규정으로 인해 제네바와 인근 지역 목사들은 매주 금요일 목사회로 모였다. 22조에서 30조까지는 목사의 권징을 다룬다. 목사에게 용납될 수 없는 범죄와 형제 사랑의 권면으로는 불가능한 악을 각각 열거한다. 31-42조는 목사 시찰에 관한 조항이다. 1년에 한 차례 모든 목사를 시찰했다. 시찰 목적은 목사가 복음의 순전함을 해치는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다. 43-47조는 교사로 불리는 직분과 직무를 말한다. 교사의 직무는 신자에게 바른 교리를 가르쳐서 복음의 순전함이 무지와 잘못된 견해로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48-51조는 장로에 관해서, 52-55조는 장로의 직무가 교인의 생활을 감독하고 형제 사랑의 방식으로 권면하는 것을 제시한다. 장로는 소의회에서 2명, 60인회에서 6명, 200인회에서 6명을, 선하고 정직하며 책망할 것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적 분별력을 가진 사람을 선출하라고 한다. 52-55조는 장로 서약을 다룬다. 56-68조는 집사를 다룬다. 69-72조는 세례를, 73-77조는 성찬을 다룬다. 성찬은 일 년에 네 번, 즉 성탄절, 부활절, 오순절(성령강림절), 가을철 9월 첫 주일에 시행하도록 했다. 78-79조는 교회찬송을 다룬다. 80-135조는 결혼에 대한 조항이다.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83-91조), 허락 없이도 결혼할 수 있는 사람들(92-94조), 약혼이 취소될 수 있는 경우(95-96조), 소박하게 이뤄져야 할 결혼의 약속에 대해(97조), 약혼 후 결혼까지 6개월 기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98-102조), 결혼 광고(103-104조), 결혼식(105-106조), 남편과 아내의 별거(107조), 결혼할 수 없는 친족 관계(108-11조), 결혼할 수 없는 인척 관계(112-119조), 결혼이 취소될 수 있는 경우(120-135조)를 각각 다룬다. 136-138조는 장례를 다룬다. 운구 위원은 미신을 피한다는 서약을 하도록 했다(137조). 139조는 병자 심방을, 140조는 죄수 방문을 다루고 있다. 141-147조는 주일 정오에 교리문답 교육을 위해 부모가 아이들을 보내야 할 규정이다. 충분히 교육을 받은 후 교리문답의 요지를 엄숙하게 낭송하여 교회 앞에서 자기 신앙고백을 하도록 하는 것, 이 문답이 있기 전에는 성찬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를 어길 시에는 합당한 징계가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 148-153조는 교회의 바른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위정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말한다. 154-159조는 권징을 자세하게 말한다. 은밀한 죄는 은밀하게 훈계해야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특히 성찬 받는 것을 멸시하는 자들에 대한 권징을 160-166조에서 볼 수 있다. 출교에 관한 권징은 167-172조에 나온다. 173조는 마지막 조항으로 법령 준수에 대한 것으로, 3년마다 6월 첫 주일에 생피에르 교회당에 모여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읽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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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교회법특강
    2025-09-26
  • [임창호 목사]북한 동족 구원과 북한인권 운동은 함께 가야 한다
    북한 정권은 1970년대에 들어 기독교를 체제의 적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선전을 서슴지 않았다. 국제 기독교박해조사기구(ICC)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도 정치범수용소에는 5만에서 7만 명에 이르는 성도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감되어 있다. 태영호 전 외교관의 증언, 탈북자들의 간증, 그리고 북한 당국의 내부 교육 영상까지 종합하면, 오늘도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각오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스스로가 지하교회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아픔도 감수하겠다고 고백했다(롬 9:1-3). 모세 또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감수하겠다고 했다(출 32:32). 바울과 모세,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두 믿음의 거장이 보여준 심정은 곧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절절한 기도의 대상이 있다. 바로 2천3백만 북한 동족이다. 한국교회는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동강변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에서 시작된 한국 복음의 불길은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으로 타올랐고,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의 순교를 통해 신앙의 순결과 애국의 모범이 세워졌다. 그러나 김일성 정권의 교회 탄압으로 수많은 성도와 목회자가 남하하면서, 그들의 눈물과 믿음이 남한 교회의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남한교회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북한 성도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동족 구원과 북한 인권 개선은 다르지 않다. 교회는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을 위해 기도해 왔고, 탈북자를 구출하고 돕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정치가들은 북한인권을 정쟁의 도구로 삼기도 했지만, 교회는 순수하게 동족애로써, 신앙의 책무로써 북한인권을 붙들어야 한다. 오는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광장과 플라자호텔에서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가 열린다. 9개국 76개 북한인권 단체와 미국 인권재단(RHF)이 함께 주최하며, 전 세계 30개국의 탈북자 대표들이 서울에 모인다. 정부 지원 없이 오직 성도들의 기도와 헌금으로 준비되는 이번 대회는 북한 동족 구원과 자유를 향한 간절한 외침이 될 것이다. 북한 지하성도들의 필사성경 원본, 지하성도들의 신앙일지 원본, 6명의 북한억류 선교사 특별 부스전시, 남북한 예술가들의 함께하는 음악회, 국제적 저명한 북한인권전문가들의 초청되었다. 토털 컨벤션으로 펼쳐지는 한국 최초의 민간단체 주관 북한인권세계대회이다. 한국교회는 이 대회를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바울과 모세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참여하고, 도와야 한다. 북한 동족이 자유와 복음을 누릴 그날은 우리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더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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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5-09-26
  • [목회자칼럼]담을 쌓으면 손해다
    나는 촌에서 태어나고 촌에서 자랐다. 어릴 적에 뒷집과 앞집은 그냥 우리 집과 마찬가지였다. 앞집에서 부침개를 하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따뜻한 부침개가 우리 집의 담을 넘어 온다. 뒷집에 손님들이 오면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아주 맛있는 인절미가 우리 집의 담을 넘어 온다. 그래서 우리 집 앞뒤에 사는 분들의 모든 것들을 거의 다 알 수 있었다. 그 집 식구들과 그들이 그 날 저녁에 먹은 음식까지도 웬만하면 다 알았다. 심지어는 부부가 싸우는 소리까지 다 들리니 싸움의 이유도 알았고, 깨어진 그릇의 개수나 종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유는 서로의 경계를 확인하는 담이 낮았기 때문이다. 키 작은 내가 발의 뒤축을 들지 않아도 충분히 넘나다볼 수 있을 만큼 담이 낮았다. 학업의 문제로 내 고향의 담장 낮은 집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 집의 앞뒷집은 공간적, 시각적, 후각적, 감정적, 관계적으로 그냥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학업을 따라 시작 된 도회지의 삶은 그렇지를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앞집에는 누가 사는지, 뒷집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담이 높은 것이 아니라 아예 담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그냥 벽이었다. 어느 곳 하나 소통 할 수 있는 틈이 없었다. 아주 작은, 그러나 언제나 굳게 닫힌 철문만이 우리 집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리 앞집이나 뒷집에서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에도 아주 싸늘하고 감각 무딘 철문이 존재할 뿐이었다. 직장을 따라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내 집은 내 집, 앞집은 앞집, 뒷집은 그냥 뒷집이었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그 집들의 식구와 그들이 즐겨 먹은 음식을. 높은 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높은 담보다 더 높은 벽이 사방팔방으로 철옹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아마 그들도 자기들의 옆집에 있었던 나를 인식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흐름은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이다. 세상살이에 지혜(영악)로울수록 마음의 담은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담은 단절의 벽이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스스로 만든 감옥의 철옹성 안에서 늙은 사자처럼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배회한다. 그로인해 점점 주변에 사람이 없고, 우정이 없고, 의리가 없고, 삶의 향기가 없어진다. 존재하는 낮은 담도 허물어야 우리가 있는데, 오히려 낮은 담을 높이고, 높은 담을 벽으로 만드니까 모두가 다 외롭다. 그렇게 하고서는 또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사람이니까 외롭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자위한다. 원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담이 없었다. 에덴에서 대화하고 동행했다. 서로를 완벽하게 알았고 허물없이 교제했다. 그런데 미혹과 교만이 들어오는 순간 인간이 스스로 나무 아래에 숨어 잎사귀로 자신의 몸을 가리는 낮은 담을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대화할 때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제법 높은 담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소통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피하였다.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벽을 만들었고, 그것은 결국 인간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굳은 벽을 파하셨다. 예수님께서 파담자, 파벽자가 되셨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다. 파벽자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교회와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수많은 담과 벽을 만들어서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 예수님은 담을 허셨는데 우리는 담을 쌓고 있는 것이다. 담을 쌓으면 안 된다. 그것은 모두에게 손해다. 시대는 예수님처럼 막힌 담을 허무는 자를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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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6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6.25 전쟁의 기적: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6)
    6.25전쟁은 무엇을 남겻는가? 앞에서 전쟁은 세계사적으로 팽창하던 공산주의 세례을 물리쳤다고 지적했는데, 둘째는 6.25전쟁은 공산주의와 공산당, 그리고 북한의 정치체제가 어떤 이념과 제도인가를 적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비록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수백만 명이 고통을 겪었지만 일인 일당 독제의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 반인륜적 집단인가를 깨닫게 한 것이다. 6.25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의 실상과 실체, 그리고 공산정권의 참혹한 살육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2017년까지 100년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자가 1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공산주의이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1억명의 사람이 죽음을 당한 것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반 인간적인 집단인가를 보여준다. 공산주의는 인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유물론자들이니 인간은 한갓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으니 인권, 인간의 가치, 생명의 소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살상을 합리화 한다. 주변에 사람이 죽어도 게이치 않는다. 전쟁을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의 실체와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셋째, 6.25전쟁은 우리나라의 국제화의 계기기 되었다. 1945년 독립하고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가난한 저개발 국가이자 무명의 나라였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유엔의 지지를 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유엔 협약을 통해 직접적으로 군사를 파병한 나라는 16개국 이었고(참전군 인원 순으로 보면,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델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프랑스 에치오피아 벨기에 암아프리카 룰셈부르크), 물자지원국은 38개국에 달했다. 버바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쿠바 에콰도르 헝가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자메이카 라이베리아 멕시코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이란 레바논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칠레 도미니카공화국 이집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파나마 스위스 시리아 아이티 모나코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일본 리히텐슈타인 바티칸시국 등이다. 그리고 의료지원국은 인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등 5개국에 달했다. 이렇게 볼 때 60개국이 한국을 도왔음을 알 수 있다. 전체국가의 72%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이들나라와 교류하게 되었고 아시아의 소국 한국이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전쟁은 한국의 국제화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넷째,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통해 반공주의가 심화되었고,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기 미국은 가장 먼저 가장 많은 연인원 1,789,000명의 군인을 파견하였고, 이중 3만6천 명이 전사했다. 알지 못하는 나라를 위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또 휴전에 앞서 한국과 미국 간의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체결이 논의되어 1953년 10월 1일 체결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34호로 조약이 발표됨에 따라 한국은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미관계는 동맹 수준으로 격상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다지게 된다. 다섯째, 6.25 전쟁은 국방력의 강화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사회발전과 산업화의 기초가 되었다.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이었지만 전화의 아픔을 극복하고 폐허가 된 이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자강의지가 1960년대 이후 국가 재건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한미동맹의 결과로 국사력이 강화되었고 이를 기초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6.25 전쟁은 한국사회 발전의 동기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기적으로 살아남은 나라이고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우리나라를 지원해주고 후원해준 나라에 감사하고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피흘려 지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가고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더욱 자유, 민주, 정의, 평화, 복지가 이루어지는 건실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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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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