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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연구] 성도가 알아야 할 것
    본문은 바울 사도께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드린 기도입니다. 이때 바울은 감옥에 계셨습니다. 그는 감옥의 고통 중에도 성도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정말 주님의 충성된 종이요, 성도를 사랑하는 목자였습니다. 그는 육체의 안락함과 세상의 부귀영화 따위에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알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드린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있는데, <알게 하소서>입니다. 성도는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알았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알아야 했고,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기독교강요』제1권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한 이기적 동기에서 움직이게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길 때 열심을 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사랑과 능력을 알 때, 그분이 온갖 우상과는 다른 유일한 참 신이심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에베소서가 기록되던 당시 로마 세계에는 온갖 우상숭배가 판을 쳤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우상과 다른 분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 안에 있는 소망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생명으로 부르셨고, 믿음으로 부르시고, 사명으로 부르십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그 안에 엄청난 복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게 부르심 안에 있는 소망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장차 얻게 될 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의 조상이요,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또 성도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기업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장소적 개념을 추구한다면 천국을 생각해도 좋습니다. 장차 주실 천국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풍성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아픈 것, 눈물, 죽음이 없는 영생의 나라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또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입니다.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홍해를 가르치고,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감옥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 황제보다 크심을 알았고, 하나님 나라가 로마 제국을 백 개 이상 합친 것보다 크심을 알았고,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있는 엄청난 복과 그 능력을 알았습니다. 비록 현실이 성도를 억압하지만, 그건 잠시뿐임을 알았기에 그는 철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성도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악을 행하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의지합니다. 목회자와 교회 중직자 중에도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있는 영광과 소망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세상의 것을 의지하여 교회와 교단과 교계의 권리를 얻으려고 온갖 추한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아마 이 세상이 영원할 줄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리 교회가 커도 하나님 나라에 비할 수 없을 텐데, 교회를 사유화하여 마음대로 주무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세상을 믿는 것이요, 자신을 믿는 것이요, 사단을 믿는 것입니다. 진실로 바울의 기도에 나오는 것들을 우리 모두가 알길 원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면서, 세상을 극복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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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시사칼럼] 삼십 퍼센트의 진실
    집권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를 바라보면서 의아한 점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온갖 억측을 불러일으켰던 용산으로 관저 이동, 이태원 참사의 후속처리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과오, 가족의 비리 문제, 국제잼버리대회 졸속 운영 문제, 양평고속도로 사태, 해병대 수사단장 박 대령 사건 등 숨 돌릴 틈조차 없이 이어진 연이은 사건사고 속에서도 콘크리트 같은 30% 지지율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주 정부가 시작되면서 들어섰던 전직 대통령들 모두 저마다의 암초를 만나 지지층 급락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IMF 사태, 고 김대중 정부의 경우 두 아들의 구속,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광우병 사태와 BBK 문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문재인 정부의 경우 부동산 문제 등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국정지지도가 추락하는 수모를 겪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현재 대통령은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줄지어 발생하는데도 굳건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으니 신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지 나름대로 분석을 시도합니다. 마침 올해가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 사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먼저 ‘파레토 법칙’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정치경제학자였던 그는 자국 내 부(富)의 분배 상황을 연구한 후 20% 인구가 80% 부(富)를 차지하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를 후학들이 ‘파레토 법칙’이라 명명하면서 유명해진 이론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파레토 법칙은 오늘날에도 많은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상위 20% 소득자가 전체 세금의 80% 이상을 부담하고, 백화점 20%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책임지며,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20%의 버그를 수정하면 오류 및 충돌의 80%가 해결된다거나(Microsoft), 심지어 평소 즐겨 입는 옷조차도 옷장 속 20%에 불과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양한 통계적 사실들을 말할 때 곧잘 파레토 법칙을 거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이러한 20%를 공략하라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다방면에서 상당히 수긍이 가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정치 분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엄청난 지지율을 자랑했던 전직 대통령들이 상기한 여러 문제로 인해 한 자릿수의 처참한 지지율을 기록했던 사실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30% 원리’를 주장하는 사례들도 존재합니다. ‘패션의 70/30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인데, 브랜드의 상위 30% 스타일에서 전체 매출의 70%가 나오더라는 얘기입니다. ‘연애 강자 3할의 법칙’도 있습니다. 연애 잘 하는 사람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더라는 의미입니다. 주로 일본 쪽에서 많이 나오는 말인데(일본인구문제연구소), 『솔로사회가 온다』(북바이북, 2022)의 저자 아라카와 가즈히사에 의하면 연애를 하든지 이미 결혼을 했든지 불문하고, 심지어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 중에서도 연애 강자의 비율이 30%를 차지하고 있더랍니다. 야구의 경우에도 타격을 잘 하는 기준이 3할입니다. 즉 세 번 나와서 한 번꼴로 살아나가면 훌륭한 타자라는 칭송을 받습니다. 이처럼 30%라는 비율은 정확하게 설명할 길은 없어도 우리 일상에서 실질적으로 임상적으로 체험하는 경험적인 수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 영역만큼 경험치가 무의미할 때가 많은 분야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원리 역시 지금 대통령의 지지율 30%의 정밀한 기반이 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30%’ 견고한 장벽의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대통령의 발언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으로부터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1년 전과 달리 ‘문제는 이념이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새는 두 날개로 나는 법이지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지금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홍범도 장군’ 같은 논쟁이 이로부터 기인한다고 봅니다. 독립전쟁의 영웅이지만 공산주의는 안 된다는 시각에서 촉발된 논쟁이 아닙니까?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므로 한-미 동맹 강화가 가장 중요한 정책일 수밖에 없고, 필요하다면 일본과도 손을 잡고 반공을 위해서라면 강제징용이나 오염수 같은 문제에 있어서 조금은 양보해도 좋다는 인식이 나타나지 않나 합니다. 올해로 어느덧 휴전 70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6. 25 세대들에게 전쟁은 아직도 실제적으로 현재진행형입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거나 전쟁 종료 후 약 10년 안에 태어나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학습한 세대가 바로 나이 60대 이상이며 현재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로 견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의 중요한 기반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념이 물론 중요합니다. 우리 현실에서 반공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나 민생과 같은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는 리바이어던을 정당화시켜줄 수는 없습니다. 반공은 국시일 수 있으되 우상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영적인 하한선만은 반드시 지키며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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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은혜의말씀] 최고의 예배자가 되십시오(창 4:1-5)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와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기브온에 가서 일천 번제를 드렸는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시지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수한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제사하러 오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는 숫양의 번제와 실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 하시면서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 다시는 제사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까?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히 11장은 그 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있습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답은 믿음으로 드리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자신의 예배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예배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순간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자기 편의대로, 자기 생각대로 드렸지, 하나님을 생각함이나,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습니다. 자,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믿음의 예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받으시는 믿음의 예배는 최고의 것을 드리는 예배입니다.(4절) 아벨은 뜨거운 감사와 감격으로 첫 새끼를 바쳤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첫 번째였습니다. 이런 우선순위는 우리 인생의 출발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주일 예배를 미리 준비하십시오. 예배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십시오. 주일 예배에 좀 일찍 나오셔서 한 주를 돌아보고, 오늘도 예배를 통해 주실 말씀을 기대하며, 미리 설교 본문을 읽고 기도한다면, 얼마나 예배가 은혜롭겠습니까? 우리의 우선 순위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받으시는 믿음의 예배는 자신을 드리는 예배입니다.(4,5절) 우리가 드림을 강조할 때 항상 따라오는 것이 예물입니다. 그런데 헌금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 그 자체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제물보다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배의 의식이나 모습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배는 그 사람의 전 인격을 드리는 것입니다. 삶이 곧 예배입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한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 가운데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주목하여 찾으십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아벨처럼 믿음으로 최고의 예배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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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저는 다음세대 사역에 관한 강의나 설교를 할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는 저를 정말 행복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이 저는 가슴 떨리게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미래가 굉장히 밝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미래를 너무 어렵고, 어둡고, 힘들게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바라고 기대하는 우리의 소원과 이 기도의 제목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몸된 교회에 주신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거나 이러한 노하우를 소개하기를 매우 기뻐합니다.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여러분, 이런 교회를 바라십니까? 물론 바라시겠죠. 그런데 정말 이런 교회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바라긴 하지만 이런 교회가 있냐? 라고 물으면 다들 주저주저하세요. 아니, 다음 세대 사역이 좋긴 하지만, 필요는 할 텐데 그걸로 교회가 부흥할까? 라고 하는 반신반의를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제가 저희 성민교회에 부임한 지는 8년 됐습니다. 그전까지 저희 교회는 세워진 지 25년 된 전통교회. 모든 것이 일반적인 교회였습니다. 특별할 것이라고는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제가 부임해서 첫 1년 동안을 설교하고, 심방하고, 성경 공부하는 데만 전념을 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저희 장로님들이 저를 보고 당회 시간에 정책 당회를 하는데 “목사님! 이제 좀 정체를 드러내시죠.” 그러시는 거예요. “목사님! 분홍 목사님 아니십니까? 다음 세대 사역하시는 거 저희가 알고 모셨는데 목사님! 한 1년 동안은 설교와 심방과 성경 공부만 하셨으니까 이미 저희와는 이제 신뢰 관계가 형성이 됐습니다. 이제 목사님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희가 다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다음 세대 부흥 5개년 계획>안을 들고 나와서 “그러면 이걸 한번 해보실까요?” 그랬더니 장로님들이 “오케이!” 하셨어요. 그래서 2017년도부터 제가 5개년 계획을 했는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5년 안 걸렸습니다. 시도한 첫해 우리가 꿈꾸던 게 다 됐어요. 그래서 숫자만 커진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 행복 지수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어디 가서 우리 애에 대해 소개할 때 그렇게 소개합니다. “우리 애들 전교 1등입니다. 행복 지수가.” 성적 전교 1등은 소용없어요. 여러분, 그거 해봤자 잘 먹고 잘사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행복 지수는 전교 1등이에요. 그래서 저희 교회는 30분, 1시간 걸려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교회, 부모님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교회, 그래서 아이들 때문에 등록하는 교회, 아이 때문에 우리 교회로 찾아오는 교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부산뿐만 아니라 김해, 양산, 진해. 저희 경남 모든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 그리고 가장 핫한 교회가 되었어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저희 교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저희 교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냥 이러면 좋겠다가 아니라 해보니까 이렇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다음 세대 사역 표어는 “다음 세대를 주인공으로”입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주인공인가? 라고 하는 거예요. 과연 어른들이 주인공을 다 하시고, 아이들은 그냥 엑스트라 아니면 애들은 조연 배우,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1,2 정도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다음 세대란 말이 문제가 있다고 그래요. 다음 세대니까 다음에 도와주자고 자꾸 그러신다고. 그러나 다음 세대는 주인공이고요. 지금 아이들은 가장 대우받고 사랑받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이게 왜 다음 세대가 주인공이냐면요. 저희 때 70년대만 해도 한 해에 100만 명이 태어났어요. 100만 명이면 길거리에 치는 게 아이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북만 쳐도 따라왔어요. 그런데 이게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 해에 64만으로 훅 줄어버립니다. 이때부터 교회 학교 위기론이 나왔어요. 애를 안 낳아요. 그러다가 2010년도 들어가니까 연간 평균 47만 명으로 훅 줄어들더니 이게 2020년도에 들어가니까 드디어 27만 명. 지금은 20만 명이 안 돼요. 즉, 5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어요. 길거리에 애들이 없어요. 학교가 줄고 있고, 폐교되고 있고. 여러분, 부산 시내에 시내 복판에 있는 학교가 지금 폐교되고 있어요. 그건 매우 심각한 위기예요. 그러니까 학교를 끼고 편하게 교회학교 사역을 하던 교회들이 지금 위기를 만난 거예요. 그러면서 그 교회들이 지금 누구에게 전화를 거느냐? 저희 교회에 전화 옵니다. “홍 목사! 심각하다.” 이러면서 저한테 요즘 굉장히 많은 전화가 오는데요. 제가 다음 세대를 사역하면서 “다음 세대 위기입니다. 필요합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던 목사님들이 이제 교회에 코로나가 딱 터지니까 애들이 사라졌잖아요. 애들이 교회 안 나오고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 또 안 와요. 그러니까 이제서야 위기를 깨닫고 저한테 전화가 오고 찾아오시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고 솔루션을 묻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지면을 통해서 몇 회에 걸쳐서 솔루션들을 아주 자세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시고 계속 이 지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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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9-22
  • [다음세대칼럼] 우리 시대와 사사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들과 폭행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자녀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우리 시대가 왜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가정이 붕괴되고, 학교 교육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교권이 무너졌습니다. 시대가 갈수록 악해져만 갑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 시대가 보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중에서 사사기 17장과 사사기 17장의 ‘미가’야 말로 사사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종 사건 사고들이 우리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의 ‘미가’가 사사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자기 시대와 그 시대 사람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미가는 어떤 사람이었고, 미가가 보여주는 그 시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사사시대의 특징은 하나님보다 먼저인 것이 많은 시대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어느 날 거액의 돈이 도둑을 맞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은 1,100세겔이 없어졌습니다. 그 돈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사사기 17장 10절에 보면 미가가 자기 집의 제사장에게 준 1년 연봉이 ‘은 10세겔’이었습니다. 최소한 10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의 돈이 없어졌습니다. 오늘날 월급을 200만원으로 계산하면 연봉 2,400만원 정도이고, 약 24억 정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안의 여주인이 훔쳐간 자를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저주를 듣고, 두려움으로 훔쳐간 돈을 돌려준 사람은 놀랍게도 그 집안의 아들 ‘미가’였습니다. 미가는 왜?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어머니의 재산을 훔쳤습니까? 이런 아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거액의 돈을 훔쳐간 자를 ‘저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범인이 아들인 줄 알고, 돈을 돌려주자 급하게 말을 바꿉니다. 사사기 17장 2절 말씀에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하면서 ‘축복’했습니다. 죄를 지은 아들을 책망하지도 않고, 도리어 ‘축복’한 것이 바로 미가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 모습입니다. 이렇게 사사 시대는 내게 해가 되면 저주를 퍼붓고, 내가 득이 되면 축복을 남발하는 시대였습니다. 복과 저주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즉 자신이 왕이고 신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미가든 그의 어머니든 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조금의 인정함도 없습니다. 입으로는 여호와를 말하고 범사에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율법도 없었습니다. 결국 미가와 미가의 어머니,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사람과 사람의 저주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무디고,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는 민감했던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사 시대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아들에 대해서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들이 잘못되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잘되어야 합니다. 굳이 아들이 잘못한 것을 지적해서 기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 내 아들 기를 죽입니까? 누가 내 아들 기를 죽입니까? 누구도 내 아들 건드리면 안 됩니다. 설사 하나님이라도! 내 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리라!’ 이것이 미가의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보다 내 아들’, ‘말씀보다 내 아들이 더 우선’입니다. 어머니가 이러니 미가도 똑같은 죄를 짓습니다. 사사기 17장 5절 말씀입니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레위인도 아니고, 아론의 후손도 아닌 사람은 절대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미가입니다. 결국 아들을 말씀 위, 하나님 위에 둔 것이 그들의 모습입니다. 미가의 어머니와 미가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위인 존재,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들을 돕는 존재, 복 주는 존재, 저주를 막아주는 존재, 인생 무대의 엑스트라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퇴색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우리 시대도 이렇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예배, 말씀, 교회보다 우선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대 아닙니까? 시간이 남아야 예배하고, 돈이 있어야 헌금하고, 여유가 있어야 봉사할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은 자꾸 우리 삶에서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음 세대를 외치지만 이 시대의 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먼저인 것이 너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대가 갈수록 악해져 가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절대적인 신앙으로 살아가고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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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양육칼럼] 듣는 마음으로 자녀와 소통하라
    오늘날 자녀 간, 가족 간의 갈등은 물론 최근 들어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가족 간, 세대 간 소통부재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최근 한 교육기관에서 실시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가정에서 자녀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설문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자녀와 나누는 대화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에 '30분 이상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30.9%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10분 이상 30분 미만'(29.1%), '1시간 이상 2시간 미만'(22.0%), '2시간 이상'(11.9%), '10분 미만'(6.2%) 순으로 집계됐다. 즉 응답자의 66.2%가 자녀와 하루 평균 1시간이 안 되는 대화시간을 갖는 셈이다. 또 자녀와의 대화는 '엄마'(55.3%)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고, '자녀'(33.6%), '아빠'(9.1%)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대화의 주도권은 엄마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아빠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비율이 미미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초등학생에서 청소년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아빠와 자녀 사이에 대화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어 민감한 청소년기의 자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사뭇 염려가 된다. 또 다른 조사에서 초ㆍ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하루 평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단 13분(평일 기준)에 그쳤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노는 시간이 하루 0.9%밖에 안 된다. 반면 학원ㆍ숙제 등 학교 밖 공부 시간은 190분, TVㆍ스마트폰 등 각종 미디어 이용 시간은 84분으로 훨씬 많았다. ‘거의 매일 자녀와 대화하는 부모’의 비율은 5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0%에 한참 모자랐다. 짧게 이루어지는 대화마저도 ‘숙제 했냐’ ‘스마트폰 한 시간만 해라’ 이런 식이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본 요소가 가족인데 대화다운 대화는 없고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SNS와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가족의 말투와 표정, 혹은 동작에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없다. 소통의 핵심은 말보다 마음이다. 기술보다 진정성이며, 논리보다 태도다. 자녀와 올바르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녀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듣는 즉 경청하는 태도가 우선이다.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솔로몬은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꿈에 나타난 여호와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하자 ‘듣는 마음’ 구한다. '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이다. 레브는 '마음'이고 쇼메아는 '듣는'이란 뜻이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혜'와 '민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 탁월한 선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솔로몬의 모든 지혜는 하늘의 소리와 백성을 소리를 듣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부모들도 듣는 마음으로 자녀의 말을 경청한다면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자녀의 의사전달력과 경청하는 태도를 함께 키워주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날 있었던 상황보다는 그 상황으로 인해 자녀가 느꼈던 감정을 물어야 한다. 자녀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 받을 때 진정으로 부모와 소통하는 기쁨을 느끼게 되며 위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아존중감도 높아지게 된다. 또한 자녀가 잘했을 때 칭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소통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비난하지 않고 진심으로 격려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진심어린 격려를 받는 자녀는 자신감을 갖게 되며 실패해도 재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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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신앙교육나침반] 10월 31일은 할로윈(Halloween)? 종교개혁기념일(Holy Win)? (1)
    10월 31일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날, 바로 할로윈 데이입니다. 사람들은 유령, 마녀, 괴물 등으로 변장하여 집집마다 돌면서 사탕을 받습니다. 사탕을 받아온 후에는, 다양한 놀이 파티를 합니다. 할로윈 데이는 정말 흥미롭고 매력적인 날일까요? 그 기원에 대해 살펴봅시다. 기원전 500년경, 고대 아일랜드 캘트족은 11월 1일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1년간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머물렀다가 떠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하루전인 10월 31일은 지상에 수많은 악령이 내려와 난동을 부릴 것이라 믿으며, 그들을 두려워하여 검은 옷과 검은 두건 차림으로 횃불을 들고 사탄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신 ‘삼하인’(Samhain)에게 처녀를 재물로 바치기 위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처녀를 내놓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겠다!) 협박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탄숭배 제사의 문화가 할로윈 데이의 뿌리가 되어, 오늘날 수많은 자녀들이 귀신의 모습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를 외치고 사탕을 받습니다. 영향력있는 사탄숭배자 존 라미레즈(John Ramirez)는 하나님을 믿은 후 기적적으로 사탄숭배가정에서 탈출한 후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과 당신의 자녀가 할로윈데이에 귀신의 흉내를 내는 순간, 사탄의 영이 당신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신이 할로윈을 어떤 형태로든 참여함과 동시에 당신은 악마를 기념하는 희생제사로 바쳐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당신은 단순한 흥미로움으로 참여하였지만, 그 찰나에 당신은 원수와 화친협정을 맺고,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탄의 자녀로 바꾸는 희생제물로 바친 것이다. 당신은 그러한 무서운 희생제사를 매년 한번씩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라!”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 수많은 로마카톨릭교회 신도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외에 죽은 성인(聖人)들을 믿고 숭배했습니다. 그들 역시 매년 11월 1일은 죽은 성인들의 영혼을 위한 성인 대축제일로 지켰는데, 바로 하루 전날인 10월 31일에 성인(聖人)들의 영혼이 세상에 나오는 날로 생각했습니다. 로마카톨릭 신자들은 성인(聖人)들을 예수님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믿고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물건을 비싼 돈에 구입하여 만지면,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 역시 복음의 진리를 깨닫기 전, 무려 21명의 성인을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21명을 일주일로 나누어서, 매일 세 명의 성인(聖人)을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루터는 날마다 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금식하고 노동하며, 하나님과 성인(聖人)들에게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행은 전혀 루터의 영혼에 평안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나는 사탄의 사슬에 꽉 묶여 누워있네!”라며 고뇌하였습니다. 이후에 루터는 1507년에 사제로 안수를 받고,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헬라어 성경 원전을 읽고 연구하던 중,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만나 지금까지 믿고 따랐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는 ‘죄인인 나를 의롭게 하시는 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인간의 모든 선행과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붙잡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눈을 뜨게 된 루터는 자신이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 복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제서야 로마 카톨릭교회의 심각한 타락이 낱낱이 보였습니다. 1517년, 루터는 로마카톨릭 교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죄악된 관습에 대해 복음에 근거한 95개조의 반박문을 작성하여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게시하였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바로 이날을 시작으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영광!”의 강령을 외치는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0월 31일에 우리 모두는 사탄의 형상이 아닌, 빛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옷’은 사탄의 간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적하여 공격하는 전신갑주입니다. 10월 31일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종교개혁자들이 생명걸고 외친 다섯 가지의 핵심 5대 강령을 가슴깊이 새겨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기념하며 온 세대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 자료를 공유드리려고 합니다. 온세대가 참여하는 복음 가득한 종교개혁기념 파티에 대한 활동 자료는 유튜브채널 [향기나무 성경놀이터]를 통해서 9월 22일부터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향기나무 성경놀이터] 채널의 많은 구독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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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3-09-22
  • 사건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는 이상한 언론인
    ‘나는 동료 고신 목사에게 형사 고소를 당했습니다’라는 본보 홈페이지 팝업창 광고가 나간 뒤 이 광고를 게재한 하성철 목사가 모 언론사 편집인 A씨의 ‘압력성’ 전화와 문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교단 관계자들은 “해당 고소인이나 교단 관계자가 아닌 특정 언론사 편집인이 왜 광고를 내리라는 압력을 행사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 A 편집인은 “000 목사건은 어째든 서로 오해에다 골이 깊은 듯하니 내가 총회 끝나고 한번 화해의 자리를 마련해볼까 하는데. 한국기독신문 00광고는 이쯤해서 내리는게 좋을 듯하오. 통화하면서도 권면했지만 또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서로 시비거리가 되는 일은 만들지 않는게 좋을듯”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하성철 목사는 “A편집인의 전화나 문자는 ‘광고를 내리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특히 문자 말미에는 학교법인 전 이사장에게 대한 경고의 문구도 포함하고 있다. “00 목사는 이사장 물러나면서 자가용 바꾼게 뒷말이 많던데 몸조심하라고 귀띔해 주시구료” 이 문자를 본 모 교단 관계자는 “사건 관련자도 아닌 A씨가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이 문자를 보고 A씨 언론사에서 보도(고소인이 출마하는 부총회장 선거 관련 기사)된 기사를 얼마나 신뢰할지 의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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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09-22
  • 교회돈 빼돌려 주식 가상화폐 투자 장로 실형
    울산지법 형사 11부(이대로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A 장로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A 장로는 경남 양산시 모 교회 재정장로를 맡아오다 지난 2016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6년여 동안 B목사의 은퇴적립금 등 교회 자금 5억9천만원 상당을 총 75회 걸쳐 자신의 통장으로 몰래 이체했다. A 장로는 이 돈으로 자신의 신용카드 대금을 결재하거나, 주식 가상화폐 투자 비용 등으로 쓴 혐의로 기소됐다. 또 A 장로는 B 목사의 은퇴적립금 통장을 이용해 3600여만원을 대출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 왔다. 재판부는 “횡령액 대부분을 주식, 가상화폐 등에 투자해 피해 보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피해액 중 1억1000만 원가량을 반환한 점을 참작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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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09-22
  • 합동총회, 7년만에 교인 증가
    예장합동 제108회 정기총회가 지난 9월 18일(월)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개최됐다. 이번 총회 보고에 따르면 7년만에 교인이 증가했다. 총회에 발표한 교세 현황을 살펴보면 전년 대비 교인 59,151명, 교회 658개가 증가했다. 예장합동 교인 수는 2017년 268만8,858명, 2018년 265만6,766명, 2019년 255만6,182명, 2020년 238만2,804명, 2021년 229만2,745명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으나 2022년 12월 31일 기준 235만1,896명으로 증가했다. 교회 수 역시 2021년 1만1,262개로 감소 추세였으나 2022년 1만1,920개로 증가했다. 그러나 교역자 수는 감소했다. 목사 수는 2만6,168명에서 2만4,926명으로 1,242명 감소했고, 강도사는 70명 감소한 666명, 전도사는 710명 감소한 1만643명이다. 지난 107회기 총회는 ‘샬롬부흥운동’을 진행하며 전국적으로 전도운동을 펼쳤다. 직전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개회예배 설교에서 “코로나 상황에 성도 수가 감소하고, 교회 수가 감소했다. 지난 107회기 때는 ‘샬롬부흥’을 외치며 전국 노회가 전도에 동참했다”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한 것은 이번 교세 통계를 보니 교인 6만명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교인 수, 교회 수가 감소하고 목사 수가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와는 반대로 교인 수와 교회 수가 증가하고 오히려 목사 수가 감소한 합동 총회의 발표에 관심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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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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