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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교육부서 예배와 공과순서를 체인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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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는 주일 예배와 공과 공부 시간을 체인지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저희 교회가 돈 안 들이고 한 제일 좋은 일이었습니다. 저희 교회 다음 세대 스케줄은 모든 부서가 동일합니다. 주일아침 10시 반에 교사 경건회를 하면서 분홍 목사 미팅을 합니다. 그리고 11시에는 반별 소그룹 공과 공부를 하고요. 11시 반에는 부서별 대그룹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혹시 여러분의 교회는 같은가요, 다른가요? 아마 다를 겁니다. 많은 교회가 예배를 먼저 드립니다. 그리고 공과를 합니다. 왜 그렇게 하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했었으니까, 다 그렇게 하니까 이유도 모르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데 그 발상을 깰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의 방식은 문제가 상당히 많습니다. 첫 번째, 예배에 지각하는 교사나 학생이 많다는 겁니다. 교사도 학생도 아무 가책 없이 늦게 옵니다. 이렇게 많이 들을 때 중간에 들어오는 거 하나도 창피해하지 않습니다. 찬양할 때 오고, 설교할 때 오고, 광고할 때 오고, 축도할 때 옵니다. 결국 다 오는 건 언제냐면 예배 끝나면 다 옵니다. 예배지각의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두 번째는 공과 학습 시간과 내용의 편차가 심하다는 겁니다. 예배가 끝났으니까 공과시간에 선생님들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야! 떡볶이 먹으러 가자! 야! 팥빙수 먹으러 가자!” 다 가고 나면 남은 애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선생님! 우리는 왜 안 나가나요? 우리는 뭘 잘못했나요?” 남은 반이 이상해지는 풍경이 발생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반은 되게 쿨한 반이고, 남아 공과하는 반은 이상한 선생님이 돼버립니다. 세 번째, 교사가 예배 시간에 공과 공부 준비하느라 예배에 집중을 못 하고 학생들을 못 챙깁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선생님들이 요즘 정말 바쁘세요. 그래서 공과 준비를 못 해요. 언제 하느냐면 교회 오는 버스 안에서 합니다. 교회 오는 지하철 안에서 합니다. 그래도 못하면 언제 예배 시간에 합니다. 예배드리고 있는데 교사들이 뒤에 앉아서. 오리고 붙이고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애들이 볼까요, 안 볼까요? 다 봅니다. 그럼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되죠. 네 번째, 예배 시간에 드나드는 인원이 많습니다. 애들이 예배 중간에 계속 들어오니까 선생님들이 들어오는 아이들 챙기다보면 벌써 예배 끝났어요. 선생님들이 예배 못 드립니다. 끝으로 다섯 번째, 제일 중요한 거 설교 말씀을 다 잊어버린 채 돌아가게 됩니다. 예배 끝나고 나서 공과랍시고 이런저런 떡볶이 먹다가 팥빙수 먹다가 떠들다가 뒤돌아서 가면요, 아무것도 기억 안 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가 이런 순서를 바꿨습니다. 저희는 공과를 먼저 합니다. 그다음에 주일 예배를 드려요. 그렇게 하니까 여러분, 분위기가 정말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나? 첫 번째는 지각하는 교사와 학생이 줄어들어요. 일단 교사가 제 시간에 안 오면 그 반은 고아가 됩니다. 공과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안 올 수가 없죠. 그리고 학생들도 수십 명 앉은 데 들어오는 데 괜찮지만 서너 명 앉은 공과를 늦으면 티가 납니다. 그래서 애들이 창피해서 일찍 옵니다. 두 번째, 공과 학습 시간 내용이 일정해집니다. 어떻게든 다른 반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게 됩니다. 어떻게든 옆에 반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하니까 그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공과가 아주 알차게 진행됩니다. 세 번째, 교사도 학생도 모두가 예배에 집중합니다. 공과가 끝났으니까요. 여러분, 공과가 얼마나 부담 없냐면 공과 시간에 애들이 질문하면 “그거 예배시간에 전도사님께 질문하렴.” 하면 되요. 뒤에 예배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선생님은 애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거예요. 저희 교회는 공과를 이렇게 합니다. A4 용지에 그 요절 말씀 하나 뽑아 와서 요절 말씀 같이 읽고 혹시 아이들이 모르는 단어 설명해 주고 끝입니다. 그리고 애들과 관계 나누고 기도해 주고 나머지는 설교 시간에 들으라고 넘깁니다. 이게 진정한 원포인트 교육입니다. 근데 지금 기존의 방식은 설교 시간에 내용 다 듣고 나서 공과를 또 합니다. 그러니까 공과시간에 교사들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똑같은 말을 하자니 지겹게 되고, 다른 말을 하자니 안 되고 그러니까 할 말 없으니까 “에이! 그냥 떡볶이 먹으러 가자!” 이렇게 나가는 거죠. 공과가 안 되는 거예요. 네 번째, 예배 분위기가 잡히고 드나들지 않습니다. 이미 아이들이 다 온 상태에서 예배를 시작하니까 예배 시간이 너무 좋고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다섯 번째,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선포된 말씀을 품고 한 주간의 삶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말씀이 움직이는 삶이 됩니다. 말씀 붙들고 바로 끝나고 집에 가니까 엄마 아빠한테 그 말씀 얘기를 하는 겁니다. 밥 먹으면서 “엄마, 엄마 오늘 말씀 들었는데...” 이렇게 애들이 달라지니까 엄마 아빠들이 “목사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하십니다. 그런데 이건 아이가 달라진 게 아니고요, 교회가 달라진 겁니다. 부서가 달라진 겁니다.
주일 예배와 공과시간 순서만 바꿨는데 부서도 교회도 달라졌습니다. 저는 모든 교회가 이런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분위기의 교회학교를 경험하시게 되기를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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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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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선한 삶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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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암살범의 총에 의해 피격을 당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기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국민 약 1천 200명이 사망했다. 그날 이후,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팔레스타인 국민 3만 5000명이 사망했고, 8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충격과 아픔 그리고 슬픔과 분노의 현장들이다.
1916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코파 아메리카 2024 대회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1960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 2024 대회에서 스페인이 우승했다. 1877년 영국에서 시작된 2024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가 남녀 단식경기에서 우승했다. 기쁨과 환희 그리고 감격과 감동의 현장들이다.
슬픔과 분노의 현장이든지 기쁨과 환희의 현장이든지 그곳에는 항상 그 현장을 목도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또한 여러 가지의 매체들을 통해서 그 현장의 소식들을 전해 듣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일들이 일어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과 현장에서 일어난 소식을 전해 듣는 사람들의 정서적 충격 여파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목격하고 경험해야 하는 삶의 현장이 후자여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1. 선한 삶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심상사상(心想事成),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 했다. 지성이면 감천과 유사한 의미다. 세상과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은, 간절하게 사모하는 자가 얻게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부귀와 영화, 출세와 성공, 건강과 명예, 관계의 회복과 심신의 평안을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에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복권도 구매해야 당첨될 수 있다. 선한 삶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악함을 원하면 삶의 자리로 그러하다.
2. 선한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선한 삶을 추구하고, 계획하고, 마음을 먹는다고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천리의 길도 첫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고, 천자문도 하늘 천(天)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선한 삶의 현장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월드컵이 진행되고, 축제가 열려도 자신이 그 현장에 없으면 현장이 주는 기쁨은 결코 누릴 수가 없다. 현장의 기쁨과 감격은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열매이며 축복이다.
3. 선한 삶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인생에서 받아야 할 가장 큰 축복이 만남의 복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 했다. 곁에 있으면 물드는 것이 상식이다. 생선을 만지면 비린내가 나고 꽃을 만지면 향기가 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인격자가 되고, 사기꾼을 만나면 인생을 망친다. 동일한 선상에서 비판적이고 호전적인 사람을 만나면 삶이 거칠어지고,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어그러지기가 쉽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선한 삶의 자리와 선한 삶을 향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한다.
기독교에 대한 대사회적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으로 채워져 가고 있고, 무신론과 탈종교화 사회로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먼저 선한 삶을 추구하고, 선한 삶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선한 삶의 모델이 되어 주고,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선한 삶의 현장을 접하게 해주는 통로와 동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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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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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교육나침반] 온가족성경학교 사역 현장 보고서 (주제: Great Gospel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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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 수많은 교회가 가정과 함께하는 여름사역을 준비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이 개발한 복음놀이프로그램인 [느헤미야] 주제로 온가족 성경학교를 진행한 교회의 은혜를 보고드리려 합니다.
이번 [느헤미야] 주제의 복음놀이 프로그램은 향기나무 복음놀이 코디네이터과정에서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코디네이터들에게 보급되었습니다.
복음놀이코디네이터들은 2주간의 코디네어과정을 수료한 후에, 본격적인 여름사역을 준비하면서 느헤미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였습니다. 느헤미야 말씀속에 담긴 복음은 강력했습니다. 특히 가정을 향해 선포되어질 때는 더욱 강력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을 향한 눈물을 묵상하다보면, 죄악으로 상한 나를 향해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을 보게 됩니다. 무너지고 불터버린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빛나는 보좌를 떠나 죄악으로 무너진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한 코디네이터들은 [느헤미야] 말씀에 담긴 Great Gospel(위대한 복음)의 능력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학교 교사와 부모과 함께 느헤미야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코디네이터들은 이번 여름사역이 형식적이거나 의무감으로 치뤄지는 연례행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느헤미야 말씀을 매일 한 장씩 필사하거나 묵상하며 뜨겁게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이 개발하여 교육해주신 [느헤미야] 예배 콘텐츠는 우리의 사역을 빈틈없이 뒷받침해 주었고, 기도와 무한 응원으로 지치지 않을 동력이 되어 주셨다. 우리는 7월 13, 14일이 되기 4주 전부터 말씀의 성벽을 쌓자는 의견을 모았고, 부모와 교사가 한마음이 되어 느헤미야 13장의 말씀을 필사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매일 교사들이 돌아가며 기도를 녹음하고 단톡방에 공유할 때, 온 교사가 함께 아멘으로 화답하며, 릴레이기도를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가정의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영적인 회복, 무너진 예배의 회복,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 회복, 각 영역의 무너진 부분들을 깨닫고 회개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흥덕향상교회 박정은 전도사| 향기나무 복음놀이코디네이터)
이렇게 준비한 성경학교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복음의 능력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부모와 자녀들은 복음벽돌을 하나, 하나 붙잡으며 서로의 무너진 부분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각 가정의 모습과 기도제목이 담긴 광목천을 십자가로 연결하여, 다른 가정의 아픔과 연약함을 자신의 아픔과 연약함으로 품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가정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떠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했던 가정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잃어버렸던 가정은 다시 말씀과 기도로 생명을 충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악의 어둠 가득했던 가정은 다시 하나님 자녀의 권세로 인한 빛이 가득해졌습니다.
믿음의 가정을 회복시켜 작은 교회로 세우는 것!
이것을 위해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계속 달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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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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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교단 총회 목사부총회장 후보 윤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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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9월 총회 각 교단 목사부총회장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예장합동 목사부총회장에는 김동관 목사(동안주노회, 수원안디옥교회)와 민찬기 목사(서울북노회, 예수인교회), 장봉생 목사(서울노회, 서대문교회) 3파전으로 치러진다.
예장통합은 지난 22일 후보 등록을 마감했다. 목사부총회장은 황세형 목사(전북노회, 전주시온성교회), 정훈 목사(여수노회, 여천교회), 양원용 목사(전남노회, 광주남문교회) 다자 대결이 될 전망이다.
예장고신은 오는 30일 후보가 노회 서기에게 서류를 접수하면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후 8월 6일 임시노회(혹은 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8월 9일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서류 접수를 마감해야 후보로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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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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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 때문인가?... 조용히 캠프 치르는 I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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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IYF(국제청소년 연합) 월드캠프가 예년과 다르게 조용히 행사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년에는 그날 행사를 발빠르게 홈페이지에 업로드 했고, 다양한 외부행사를 진행해 왔지만, 금년 월드캠프 행사에 대해서는 외부인들이 알 수 없도록 조용히 진행중이고, 외부행사도 자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주일) 벡스코에서 개막을 했지만, 24일(수)이 되도록 개막식 행사 내용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기쁜소식선교회 산하 기쁜소식 인천교회에서 발생한 여고생 사망사건과 기독교 사학인 김천대 인수로 교계와 사회적 반감이 높은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월드캠프가 열리는 부산에서 지역교계의 반대 기자회견과 1인 시위까지 진행되자, 예년과 달리 조용히(?) 행사를 진행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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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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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의 갑작스런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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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의 사임 소식이 전해졌다. 지구촌교회를 설립했던 이동원 목사가 65세 조기은퇴 후 2, 3대 목사 모두 중도사임이다.
2대 진재혁 목사의 경우 비전을 이루고자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로 떠났다. 하지만 당시 정년이 안 된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선교를 위해 교회를 사임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소문들이 무성했다. 그런 가운데 부임한지 5년 밖에 안 된 최성은 목사의 사임은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4일 교회 홈페이지 올라온 최성은 목사의 사임 이유는 ‘일신상의 이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1일 지구촌교회 사무총회에서 교회의 최 목사 사임 배경의 설명에서는 ‘느헤미야 프로젝트를 이끄는 과정에서 보인 부족한 리더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느헤미야 프로젝트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채플 증축공사인데, 이 과정에서 최 목사의 부족한 리더십이 드러났고, 결국 자진사임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일부 교계언론에서는 본인(최성은 목사)이 자신의 사임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는 보도와 자진사임이 아니라 권고사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동원 원로목사의 설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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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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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위기, 원인과 처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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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위기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그 원인과 처방은 무엇일까? 진단해 본다.
1980년대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 정도로 부흥과 풍요를 누리면서 자기 도취에 빠져 취했다. 세웠다 하면 교회당과 십자가이고, 수십명 아니 수천명씩 몰려드는 교인들 속에서 세계 굴지의 교회(여의도순복음교회 등)가 수도권에는 만명이 넘는 대형 교회가 10여개로 늘어나면서 지방 부산에서도 5000여 명 넘는 수영로교회, 호산나교회, 포도원교회, 세계로교회 등이 세워졌다. 10여년 근간에 풍요 속에서 자기 교회 확장과 기도원과 복지관을 늘려 왔다. 그리고 세계 열방을 향하여 선교와 선교사를 파송하여 과거 104년전 한국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암흑기의 대한민국에 선교사 언더우드와 알렌 선교사들이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정말 막막한 암흑기와 같이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허망하기 짝이 없었던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의 한 줄기가 되어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희망의 밝은 빛이 되었다. 조국 대한민국에 거의 모든 믿음의 선각자들이 예수를 믿고 이 땅을 바로 세워야겠다고 희생을 한 안창호, 고당 조만식, 김구, 이승만 등이 복음의 기치를 들고 희망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였다. 그들로 인해 병원과 교육을 받아 새 일꾼이 된 이들이 훗날 조국 광복을 위해 밑거름이 된 원동력이었다.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속에 부흥을 일으켰던 한국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하자 자만과 교만에 차서 사회적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회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고 소외되기 시작한 것이 1988년 세계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세계 열방들이 한국을 우러러 보기 시작했다. 교회는 교회대로 수천명이 주일날 모이는 곳에 정치가와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사회에서도 우러러 보기 시작했다. 어느날 IMF가 오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와서 하나님은 이 땅의 백성들에게 큰 재앙을 내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세웠던 신학교 난립과 각종 수많은 교단과 교파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만들어졌고, 각종 사이비 기관과 단체는 그 숫자마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부산교계의 경우도 그렇게 화합과 단합으로 하나의 기독교 연합기관을 만들어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면서 사직동 운동장, 구덕운동장, 부산역 광장, 용두산공원 등지에서 하나의 연합 기구로 단합과 협력을 다짐했던 그 시절이 흘러간 옛말이 되고 말았다.
2~3개 교계연합체는 수도권에서 더욱 분열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바람에 지방에서도 가세하여 전염처럼 퍼지기 시작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완전 자기 아집과 독단의 극치를 이루면서 목회자 지도자들의 아성을 쌓고 말았다.
결국 분열의 연속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물론 교회 성도마저도 사회로부터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2023~2024년 안에 와서야 이제 정신을 차리고 “아차, 큰일났구나!”했다. 저출산이 겨우 0.7% 수준에 직면한 정부와 한국교회는 젊은 다음세대로부터 ‘탈 종교화’ 아예 교회 출석은 고사하고 집에서 편하게 온라인 예배가 판을 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한 몫하는 것이 기독교 방송 영상 매체들이 예배 실황을 녹화하여 방영하는 덕에 조용하게 아주 편하게 누워서도 예배를 즐기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작은 교회들은 아예 문을 닫고 폐쇄가 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대형교회들은 명맥을 유지하지만 100~200명 정도 작은 교회들은 완전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심지어 불과 30-50명 모였던 개척교회나 다름이 없는 교회들마저 분열하고 산산이 부서지는 현실 앞에 속수 무책이었다. 한국교회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그 대책은 무엇일까? 전망해 본다.
최근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직면한 상황에 놓인 가운데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선한목자교회 담임 유기성 목사가 그 좋은 성공 모델을 소개했다.
그 교회 담임목사는 일찍히 부산 동구 좌천동 근방 작은 부산제일감리교회를 담임하다가 경기도 지방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멀리 내다보고는 "나이 많은 65세 이상 고령층 상대의 성도들을 모아서 ‘갈렙교회’를 따로 세워 매주 목요일 모임을 통해 예배 드리고 그들이 젊었을 때 갈고 닦은 노하우를 살려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기술, 멋있고 즐길 수 있는 재능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했다. 젊은 층도 와서 배우고 싶도록 와서 배우고 늙은 이들은 아예 이곳에 터전을 잡아 하루종일 일주일 내내 모여서 서로 위로하며 돌보고 도와주는 ‘섬김의 공동체’로 모이는 교회가 되어 보기 좋은 한국교회 새로운 모델 개척교회로 돋보이기 시작해 여러 매스컴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공동체로 나이 든 어르신들이 집에서 노는 것 보다 교회에 와서 배우고 붓글씨 쓰고 장구치고 노래 연습하며 지역사회 복지관을 능가하는 가운데 간접 전도로 교회 성도 1천명이 넘는 교회로 우뚝 서 중형교회가 되었다.
젊은 다음세대들이 이곳 기술과 노하우가 있는 어르신들에게 배워 그들이 사회 나가서 새 영역의 자리를 잡아 나가는 아이디어 뱅크로 신형개발 기술로 벤처사업으로 성공하는 신세대들로 인해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다. 초고령화 사회를 일으켜 세워 나가는 신세대 교회와 다음 세대들과 동조하는 건강한 교회로 자리 잡아 가는 교회에 그 처방을 진단할 수가 있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할 수 있다고, 새 희망을 주는 고령화 사회 진입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선한목자교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교회 이웃에 초중등학교가 있으면 학교에 장학금도 기부하면서 이들 학생들을 상대로 그들에게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유치하여 과감히 투자하면 찬스로 만들 수 있을 가능성에 다음세대를 향한 처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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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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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부산경남지방에서의 서양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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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지방에서 서양음악, 곧 양악(洋樂)은 언제 어떻게 소개되었을까? 필자의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무심하게 지냈는데 최근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대강이라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어떤 음악교사가 이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가 서양음악이라할 때 우선 동양음악이 아닌 것으로 정리하면 우리나라에서 서양의 음악을 처음 알게 된 때는 1780년이라고 말한다. 박지원이 청나라 사절로 다녀온 후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썼는데, 이 책에 언급된 풍금기(風琴記)가 첫 언급이라고 한다(유덕희, 세계음악교육사. 406). 그후 천주교의 전파와 더불어 코랄이나 그레고리안 찬트 등 교회 음악을 통해 서양음악이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784년 이승훈의 영세 이후 천주교는 백여년 간 금압된 종교였음으로 천주교회 음악이 대중화에 기여하지는 못했다. 실제적으로 한국에 양악이 소개된 개신교의 전파 이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상우는 한국에 서양음악이 소개된 시점을 1885년으로 보고 있다. 기독교는 서양문화의 옷을 입고 전파되었으므로 1884년 이후 서양 음악이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통해 유입된 것이다. 첫 선교 학교라고 볼 수 있는 1885년에 설립된 배재학당에서는 처음부터 ‘창가’(唱歌)를 가르쳤는데, 서양음악의 보급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창가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이화 경신, 인천의 영화여학교 등 선교학교와 교회에서 찬송가를 통해 서양음악이 소개 된다. 북감리교의 존스와 로드와일러의 ‘찬미가’(1892), 장로교 첫 선교사 원두우의 사성부(四聲部) 곡과 가사로 된 찬양가(1894), 북장로교 그라함 리와 기포드 부인의 찬셩시(1895)를 시작으로 여러 찬송가가 발간되면서 서양음악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최남선의 ‘소년’이 창간된 1908년 당시 찬송가 발행 부수가 6만 부, 1910년 당시 22만5천부, 1911년에 다시 5만 부, 그래서 찬송가 첫 발간 이후 22년간 87만4천5백 부가 발간되어 양악이 한국인의 일상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1920년대까지 서양음악은 사실상 찬송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구한말 왕실이 군악대를 조직하고 독일인 음악가 에케르트를 초빙하여 군악대의 육성을 맡긴 일(1900)도 양악 소개의 한 축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부산경남에서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서양음악이 소개되었을까? 이 지방에서의 양악의 소개도 개신교 선교 및 선교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891년 내한하여 부산에 정주하게 된 윌리엄 베어드는 영선현에 자신이 주택을 건립하고 예배용으로 서양 악기를 준비했는데 그것이 일본 요꼬하마에서 1892년에 수입한 풍금이었다. 이 풍금이 부산경남 지방 두 번째 서양식 악기였다고 한다. 베어드의 부인 애니(Annie)는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1859년 미국인 와너(A. B. Warner)가 쓴 가사에 브레드버리(W. B. Bradbury)가 곡을 붙인 “예수 사랑하심”(Jesus Love Me this I Know)을 우리말로 번역했고 풍금을 타며 이 노래를 가르쳤는데 애니가 번역은 이 가사는 1898년에 편찬된 찬송가 「찬성시」에 게재되었다. 1895년에 설립된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처음부터 성경, 가사, 조선말, 한문 등과 창가(음악)을 가르쳤다. 창가는 사실상 찬송을 가르친 것인데 여 선교사들의 몫이었다. 1914년 이후에는 교장인 대마가례(M. Davies)가 음악을 가르쳤다. 이런 음악교육이 서양음악의 전파였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는 예배음악을 통해 양악을 소개했다. 부산에 처음 소개된 피아노는 선교사 사보담(William Sidebotham) 부인 에피(Effie)의 것이었다. 이들은 1899년 11월 내한하여 대구지부에서 일하게 되는데, 태평양을 건너 온 피아노는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대구 달성이 사문진 나루에서 16km 거리인 대구시 중구 종로(현재의 약전골목)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운반했는데 이것이 대구지방 첫 피아노였다. 1900년 3월 말의 일이었다. 그런데 사보담 선교사가 1900년 11월 부산선교부로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소유 피아노도 부산으로 이동하여 부산과 경남지방 첫 피아노가 된다.
부산에서 8년간 일한 사보담 부부는 안식년을 맞아 1907년 말 미국으로 돌아갔고 1908년 12월 3일 사보담은 가스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그후 에피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8년간 부산을 지켰던 그 피아노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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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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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 인터콥과 다락방,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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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를 내세우는 다락방, 그리고 ‘선교’에 집착하는 인터콥에서 거의 동시에 연이은 탈퇴자들이 나오고 있다. 오랜 기간 다락방과 인터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회한(悔恨) 속에 탈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콥의 경우, 지난 2024년 3월부터 5월까지 인터콥 선교사 300여 명이 탈퇴했다고 한다. 전체 인터콥 선교사의 20%에 이르는 수치다. 인터콥에 몸담고 가족과 함께 선교 오지에서 활동하던 이들의 주된 탈퇴 이유는, 인터콥 설립자이자 본부장인 최바울 및 그의 가족과 관련된 재정 문제, 즉 재산 사유화의 문제 때문으로 알려졌다.
인터콥의 공적 자산이, 최바울 본부장 가족에 의해 사유화되고 있으며, 또한 부인과 자녀가 인터콥 주요 요직에 포진된 것도, 불만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터콥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의 위험지역에서 가족들과 힘든 선교 활동을 해 나아가는 동안, 최바울 본부장과 가족들은 안전한 한국에서 풍요롭게 살며, 재산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의혹이 신빙성 있게 제기되고 있다.
다락방도 비슷한 형편이다. 지난 7월 16일 다락방 탈퇴 목회자와 사모 40여 명의 한국교회에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탈퇴의 주된 이유는 다락방 내 핵심 간부들의 성범죄가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다락방 교리의 오류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다락방의 건축헌금과 목적헌금 명세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인터콥과 다락방 모두 처음에는 순수한 전도와 헌신적인 선교운동으로 시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설립자의 사리사욕과 비윤리적 행태로 인한 내부적 혼란과 분열을 겪고 있다. 평생을 혹은 인생의 황금기를 인터콥과 다락방에서 보낸 목회자와 선교사들의 자괴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인터콥과 다락방은 가장 많은 교단으로부터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받아왔다. 인터콥에 대해서 통합(예의 주시, 참여 자제), 합동(교류 단절), 합신(참여 금지, 교류 금지, 이단), 고신(초청 금지, 참여 금지, 심각한 이단성을 가진 불건전 단체), 기성(경계 대상), 기침(불건전 단체), 기하성(예의 주시, 참여 금지) 교단의 공식적인 결의가 있었으며, 다락방도 고려(비성경성), 고신(불건전 운동, 이단), 통합(사이비성), 합동(이단), 기성(사이비운동), 기침(이단성), 기감(이단), 기하성(이단) 교단의 공식적인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콥과 다락방은, 자신들의 문제는 이단성이 아니라, 기성교회의 질시와 투기 때문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인터콥과 다락방 소속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탈퇴를 보며, 한국교회의 우려와 염려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터콥은, 교회를 신앙의 중심으로 이해하기보다, 인터콥 비전스쿨이나 단기선교 참가자를 모집하는 공간으로 이용하는 한편, 인터콥 활동에 대한 참여도를 기준으로 영적 수준을 판단하면서, 교회의 전통적인 질서를 무력화하고, 교회의 분열을 조장했다. 또한, 다락방 전도 운동이 도입된 국내외 교단이나 교회에서도 다수의 분열이 조장되었으며, 소속 교회를 위해 헌신하도록 이끌기보다, 교회 밖의 렘넌트 활동과 모임에 참여하도록 강조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 과연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는 인터콥 선교와 다락방 전도 운동을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있을까? 선교단체의 재정을 편취 혹은 사유화하고, 전도 운동을 명분으로 성과 돈을 노린다면,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한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용기를 가지고 인터콥과 다락방을 탈퇴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2차 가해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시 한번 헌신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의 관용과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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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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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심슨 가족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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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미국 대통령선거전 관련 이야기가 화제입니다. 그런데 외신을 통해 아주 흥미로운 보도 하나가 전해졌지요. “심슨 가족의 예언”이라는 촌평입니다. 22일(현지) 미국 CNN과 CBS 방송은 최근 온라인에서 24년 전 방영된 심슨 가족(현재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최상수 TV 시트콤 애니메이션)의 한 에피소드 내용을 현재 상황과 비교하며 작성한 글이 퍼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회차는 극중 주인공 이름을 따서 “바트 투 더 퓨처(Bart to the future)”(1985년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의 패러디)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심슨 가족의 자녀 중 한 명인 리사 심슨이 성장해서 2030년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바이든이 사퇴하면서 여성 부통령인 해리스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급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나 버린 것입니다. 이 일이 사람들 주목을 끌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만화는 비슷한 시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내보냈는데, 2016년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만화 속에서도 그 다음에 리사 심슨이 등장하는데, 이번에 트럼프의 대항마로 여성이 최초의 대통령 후보자가 되기 직전이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 너무나 신기해서 사람들이 예언 아니냐고들 그럽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만이 아니라 세부적인 묘사까지 예언이라 해도 믿을 만큼 일치했는데,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 장면은 놀랍게도 17년 전 만화 속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켰더랬습니다. 그리고 데자뷰(déjà-vu) 같은 사건이 이번에 또 다시 벌어진 건데, 급부상한 해리스 부통령 사진이 온 세상에 퍼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습이 또한 이십 여 년 전 리사 심슨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해리스도 심슨도 똑같이 보라색 자켓을 입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게다가 둘 다 귀에는 진주귀걸이를, 목에는 진주목걸이를 장신구로 착용했는데, 마치 해리스가 만화 속 주인공을 모델로 했다 여길 정도로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예언 운운 하지는 않겠지요. 2012년의 심슨 가족 판에서는 가수 레이디 가가가 공중을 날아다니며 공연하는 장면을 실었었는데, 2017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서 가가는 만화 그대로를 재현하고 말았습니다. 만화가 공연이 되고 공상이 현실이 되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미 1990년대에 지금은 상용화된 휴대전화나 가상현실 같은 류(類)를 벌써 예측하여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CNN은 “심슨 가족이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로 찬사를 받고 있다”며, “복권 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야 할 판”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논평을 남겼습니다.
심슨 가족만 예언자로 일컬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월드컵 문어를 아십니까? “파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의 문어 한 마리가 UEFA 유로 2008과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패 여부를 높은 확률로 맞춰 일약 유명해져서 죽을 때까지 점쟁이 문어, 족집게 문어 등의 별명을 갖고 유명세를 떨치며 살았습니다. 문어가 그럴진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유튜브를 보면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자칭 예언가들이 수두룩합니다. 그 중에는 잘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로부터 한국의 탄허 스님 그리고 9.11테러부터 오바마 당선과 코로나 창궐까지를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바바 반가, 역시 코로나 등 사건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인도의 소년 예언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언가들이 갑자기 많이 등장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만큼 예언과 같은 이야기에 솔깃한 세상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하기야 손에 왕(王)자를 새기게 하고 당신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했다는데 그대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일약 스타가 되어 나아가 정치계까지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려진 무슨 스승이나 법사 같은 이들이 있다지요? 점술가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스스로 존립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각종 점쟁이와 자칭 예언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이 그만큼 미신과 무속과 풍수와 도참에 빠져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러한 풍조에 휩쓸리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몹시 슬픕니다. 성경적 관점에 설 때 기독교인들은 특히 예언이라고 하는 개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정통적인 교리에서 이르는 바와 같이 이미 구원에 관한 예언은 다 이루어졌고(충분함), 앞날을 내다보는 예언은 그렇게 큰 실익도 없다(무익함)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분별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월터 모벌리는 『예언과 분별』에서 그 동안 예언의 주장과는 달리 예언의 분별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전문가들조차 논의하지 않는데 어떻게 일반인 신자들이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예언이 미래의 종말이나 새로운 세상에 관한 즉 묵시(黙示)에 해당한다면 한층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스티븐 쿡은 『예언과 묵시』에서 묵시에 관한 새롭게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묵시에 관해서 지나치게 영적으로만 해석하거나 박탈 이론으로써만 이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한층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손바닥 글자나 무덤을 이장하거나 예언이라는 말에 의지하여 인생을 변화시키려는 작태를 그만두어야 할 때입니다. 헛된 예언이 아니라 참된 계시의 말씀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일에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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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