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29(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신앙교육나침반] 3040세대를 지키기 위한 핵심 전략 '2025 HUG FAMILY!'
    대한민국은 지금 <트랜드>열풍입니다. 현재의 특별한 양상을 분석하고 아는것이 모두에게 참 필요하고 유용합니다. 한국교회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한 영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매 해 바뀌는 트랜드를 분석한 책과 세미나에 주목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특별히 최근 들어 한국교회는 3040세대와 그들의 가정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가장 많이 잃어버린 세대가 바로 3040세대이며, 이들은 바로 다음세대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가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독특한 트랜드와 심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들에 맞는 목회를 펼치고자 야심차게 <3040 사역 위원회>와 같은 사역부서를 신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3040 사역 위원회>는 무엇을 토대로 목회 전략을 세우십니까? “밀레니얼세대는 이래요, 통계수치가 이렇고, 이 책이 이렇다고 하고, 이들의 심리상태가 이래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래야해요!” 혹시 귀교회가 이와 같은 현재의 트랜드에 주목하며, 목회전략을 세우고 있습니까? 이러한 방식의 목회전략은 매우 허술하고 위험합니다. 한국교회는 다음세대 가정에 대한 트랜드에 주목하기 이전에, 수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본질을 우선 찾아야 합니다. 주님이 창조하시고 설계하신 본질을 모른채 트랜드만 쫒아가면 매우 위험해집니다. 100년도에도, 2024년도에도, 3000년에도 변하지않을 본질은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지난 10월 12일 해운대제일교회에서 <2025 HUG FAMILY>세미나를 주최하였습니다. 본 세미나는 트랜드를 앞세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3040세대가정을 향한 수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성경적인 본질을 세워드렸습니다. 그러한 본질의 기반위에 트랜드는 참고로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교회 뿐아니라 세계 선교지 가정을 회심케하고 하나되게 한 복음놀이를 직접 온 몸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세미나의 결론은 “HUG FAMILY!”입니다. 3040 다음세대 가정은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순수한 사랑의 관계(Harmony), 온 세대 한 몸 교회 공동체(Unity)의 경험을 통한 강력한 소속감, 교회와 가정에서 온몸으로 경험하는 강력한 복음(Gospel)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부산지역 세미나에 참여한 70여명의 목회자와 교사, 부모들이 모두 함께 울고 웃으며 은혜와 감동을 경험하였습니다. 10월 21일은 용인 향상교회에서 <2025 HUG FAMILY>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하여 <교회를 위한 교회>로만 달려가는 걸음이 <가정을 위한 교회>로 전환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가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일상이 교회로 서도록 믿음의 부모를 일깨우고 훈련하며, 아프고 쓰러진 가정을 복음의 능력으로 일으켜세우는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수많은 후기 가운데, 부산지역 세미나 스텝으로 참여한 분의 후기를 공유드립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최고의 미디어(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미디어)는 가정이다. 우리 가정은 어떠한가 돌아보게 하시고, 경건한 가정을 소망한 나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격 흐르는 눈물은 STAFF인줄도 잊게 하시네. ‘일상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다오!’라는 주님의 당부! 마지막 SEED 볼트는 우리의 가정이다. 거룩한 씨가 보존되게 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날 보내셨네. “Home is Church!”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신앙교육 나침반
    2024-10-18
  • [다음세대칼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스위스의 사상가 카알 힐티(Carl Hilty)라는 분이 쓴 ‘행복론’이라는 책이 있다. 이 분이 쓴 책에서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감사를 말한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감사할 수 있다면, 아무리 나쁜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에 발표된 ‘2024 아동행복지수’ 결과를 보면 우리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가 총점 100점 만점에 45.3점으로 OECD 22개국 중 꼴찌를 기록한 바 있다. 이전보다 환경은 좋아졌고, 이전보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동·청소년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조건과 상황은 행복할 것 같은데,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감사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감사를 잘한다는 것이다. 하루를 감사로 시작한다. 식사할 때도 먼저 감사 기도를 드리고 밥을 먹는다. 예배드릴 때마다 감사의 찬양을 부른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사는가? 감사의 삶을 통해 더 풍성한 삶을 사는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무엇을 감사하며 살 것인가? 골로새서 2장 6절과 7절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인의 감사가 남달라야 한다고 말씀한다. 우선 감사의 내용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이 체험한 것을 기초로 말한 것이다. 원래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유대교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기독교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러던 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전격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를 만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그래서 예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세례를 받았고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 물론 바울이 원한 바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기도한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만나주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골로새서 2장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은혜이고, 자신에게 이것보다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사도 바울뿐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우리가 원해서 그리고 우리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 이것보다 더 감사할 것이 없다.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것보다 더 감사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죄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 떠날 때 저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믿음이 자라도록 이끌어 주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나은 뒤에 잘 양육하여 성인이 되도록 뒷바라지를 한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믿은 뒤에 믿음이 자라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그래서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도록 이끌어 주신다. 이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해야 할 제목이다. 이제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 왔던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우리는 늘 감사의 제목을 상황과 환경에서 찾는다. 하지만 성숙한 믿음은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을 감사하는 삶이다. 어떠한 불이익 가운데서도 믿음의 고백과 감사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 다음 세대가 행복하려면 감사의 삶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우리 다음 세대에게 감사함이 넘치게 되는 삶을 전수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4-10-18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를 교회전도지 표지모델로
    여러분의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입니까? 요즈음 많은 교회가 전도에 목숨을 겁니다. 그만큼 오늘날은 복음을 들고 나가 전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해 듣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전도특공대를 만들고 전도지를 만들어서 교회 주변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전도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전도지를 나눠줘도 거리의 행인들은 흘낏 한 번 보고는 던져 버리기 일쑤고,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습니다. 휴지나 물티슈, 생수나 사탕 등을 끼워서 선물로 줘보지만 받지도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받아도 바로 곁에 두고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나마 받아가는 사람들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 전도하는 사람도 기운이 빠져 버리기 쉽습니다. 과연 이런 전도가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도,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저희 교회는 이런 고민 끝에 다른 교회에 없는 저희 교회만의 전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설교 한 편이 담긴 미니설교집입니다. 지난 달 저희 교회 주일예배 시간에 선포된 설교 가운데 한 편을 골라서 미니 설교집을 만듭니다. 보통 32페이지 정도가 됩니다. 살짝 볼륨감이 느껴지는 정도의 소책자가 됩니다. 이렇게 소책자로 만들어서 주면 받는 사람이 바로 버리는 일이 줄어듭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펼쳐서 읽어보게 됩니다. 특히 버스를 기다리면서, 누군가 약속한 일행을 기다리면서 이 미니 설교집을 읽고 계신 분들을 저희 교회 주변에서는 자주 마주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전도지 표지 모델을 저희 교회 다음세대 아이들이 직접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달의 다음세대 부서 활동 사진 중에서 가장 표정이 좋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골라서 표지로 담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받아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저희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집니다. 저희는 이런 식으로 전도지를 한 달에 천 부씩 만듭니다. 한 달에 천 부를 찍어서 교회 인근 사하구 지역에 나눠줍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교회 인근 주민들의 인식이 달라집니다. 저희 교회 주변 모든 사하구 구민들의 머릿속에 성민교회 그러면 좋은 교회라는 인식이 생깁니다. 왜 좋은 교회일까요? 성민교회는 다음 세대가 많고 행복한 교회니까. 이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서 공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까? 아멘.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을 드립니다. “왜 좋은 교회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조금은 생각을 해야 답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인 이유가 여러분의 머릿속에, 그리고 입술의 고백으로 분명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의 전도지가 지역주민들에게 성민교회가 좋은 교회인 이유는 다음 세대가 많고 행복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있습니다. 교회 주변에 어느 가정이 이사를 왔는데 그 집에 자녀가 있다면 주변 이웃분들이 자기도 모르게 “성민교회 가시겠어요? 성민교회라고 좋은 교회가 있는데.” 라고 전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도한 분이 반드시 저희 교회 교인이셨을까요? 아닙니다. 제가 전도한 분을 물어보면 “저희 옆집 세탁소 아저씨요” 하십니다. “어? 그분 딴 교회 나가는데!”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가서 물어보죠. “아니, 집사님! 집사님은 다른 교회 다니시는데 그 새로 이사 온 가정을 왜 우리 교회로 보내셨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애가 있어서요. 애가 있으면 성민교회 가는 거 아닙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말씀하셔서 저도 놀랐습니다. 어떤 가정은 이웃 구멍가게 아저씨가 전도했어요. 그런데 그 집 사장님은 교회도 안 다니는 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찾아가서 물어봅니다. “사장님,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랬더니 그 분이 아무렇지 않게 “애가 있으니까요. 애가 있으면 성민교회 가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답을 하셨습니다. 이게 완전히 공식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 전도지, 다음세대가 표지모델이 되는 전도지가 왜 중요하냐면 이게 온 교회의 이미지가 되고, 주변 주민들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작 한 달에 천 부에 불과하지만 이 천 부가 매달 지속적으로 뿌려지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가정은 저희 교회로 인도해 오고, 그 아이 때문에 행복하니까 부모가 더 행복하고, 그 부모가 또 전도하고, 또 전도하고, 또 전도하는 선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교회에서도 한번 시도해 보세요. 다음세대가 표지모델이 되는 전도지, 교회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10-18
  • 10월 부마 민중 항쟁 사건이 오늘에 미친 영향은...
    지금으로부터 45년전 10월 부마항쟁이 있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여러 형태로 전개 되지만 실제 당시 눈과 귀로, 피부로 와닿았던 민주인사는 거의 하늘나라로 갔다. 금년 10월 16일은 (재)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3대 이사장에 박상도 이사장(전 부산YNCA 이사장)이 새로 취임했다. 박 이사장이 필자에게 모처럼 연락이 왔다. 축하인사와 함께 박이사장 왈 “형님 지금 그때 당시 부산중부교회 관계했던 청년들과 재야 인사들 대부분이 하늘 나라에 가고 형님과 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 생명과 호흡을 연장시켜 주신 만군의 주 여호와께 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은 국가가 10월 16일 행자부 주관으로 부산시청 광장에서 거행되고 있다. 10월 부마 민주항쟁은 어떻게 전개 되었나? 오늘날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꽃을 피게 한 것은 부마민주항쟁이란 씨앗이 뿌려졌기에 싹이 나고 열매를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5년전 1979년 10월 암울했던 군사독재와 유신정권을 종식시켰던 것이 부산과 마산 민주인사들의 피 맺힌 몸부림과 희생의 제물이 된 민주 인사들이었다. 관계했던 주요 인사들 대부분은 지금 하늘 나라에서 이 나라를 지켜 보고 있을 것이다. 부산중부교회(당시 기장교단 경남노회 소속) 담임했던 고 최성묵 목사와 심응섭 목사(부산중부교회 직전 담임), 고 임기윤 목사(기감, 제일감리교회 담임), 고 김광일 변호사(부산중앙교회 장로 당시), 고 이흥록 변호사(카톨릭 평신도), 송기인 신부 (남천성당 주임신부 당시), 고 김동수 장로(부산영락교회, 부산대학병원 교수 의사), 고 우창웅 장로(부산진교회 장로, 부산교육대 해직교수), 박상도 이사장(부산중부교회 집사, 부산YMCA 이사장 역임), 고 유기선 장로(당시 부산영락교회 장로, 유기선의원 원장), 김정광 목사(당시 부산YMCA 총무), 김형기 목사(당시 부산중부교회 집사. 부산Y 간사), 차선각 목사(KFCF 간사) 등 부산중부교회 청년 대학생 및 문부식, 김은숙(고인, 당시 부산중부교회 주일학교 교사, 고신대 교육학과, 신학과 학생,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 주동자), 김희욱 집사(양서협동조합 총무. 부산영락교회 집사). 잘 훈련된 부산중부교회 기독청년 대학생 고 김영일, 이태원, 조성삼 장로(당시 청년. 작고) 20~30여명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대학생 청년들이었다. 무엇보다 부산도시산업선교회 총무로 맨 앞에서 나섰던 박상도 이사장. 이를 뒤에서 물질과 변호로 법적 뒷받침을 해 주었던 김광일 변호사, 민주인사들을 결집시켰던 대부 고 최성묵 목사(부산YMCA 총무, 부산중부교회 담임)가 없었다면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부마 항쟁의 불씨는 보잘 것 없는 부산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 2층 벽돌 건물에 자리 잡고있던 부산 중부교회. 이 교회에서 매주 1~2차례씩 민주인사 석방 기도회로 부산 대학가 당국과 온 경찰서 정보과 형사, 정보부 부산 분실 관계자, 보안사 삼일공사 기관원들이 총 동원 하다싶이 매일 주시하고 관찰한 곳이 이곳 부산중부교회 요시찰지로 여겨왔다. 필자는 이곳에서 근 10여년 간 집사 평신도로서 주일학교 부장으로 지켜 보고 온 산 증인으로 남아 있었던 교계신문(교회연합신보) 기자로 활동했다. 김광일 변호사를 교회연합신보 신문지사장으로 모시고 있던 관계로 더욱 이들의 재야 활동을 일일이 주시하고 가슴에 담아 두고 기록하고 있었다. 언론 통제로 기사화 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라 메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안사 담당팀장으로부터 부산중부교회를 나와 다른 교회로 가지 않으면 친동생이 육사(27기) 연대장 대령에서 장군 별자리는 달 수 없다는 협박과 회유로 할 수없이 지금의 부산 은성교회로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뒷날에 ‘부산 예수. 한국교회 역사의 현장’이란 책에 수록하고 발간한 것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이곳 부산중부교회야말로 수도권에서 일어난 재야 인사들의 탄압사건은 하루, 이틀 만에 모두 정보가 알려져 있을 만큼 부산 재야 인사들의 고향이자 민주화 성지였다. 중부교회는 부산 민권운동의 원동력이자 민권운동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구실을 한 정보 산실이기도 했다. 동시에 부산 YMCA가 뒤에서 밀어 주고 함께 힘을 모아 준 것도 연합적인 공유로 지렛대 역할을 감당해 민주항쟁을 이루어 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재야 기독인사들 대부분이 하늘나라로 가고 없지만 지금도 살아 활동하는 박상도 이사장이 부산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3년간, 직무)을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다 과거 몸으로 헌신 한 결과이고 열매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게 했던 부산 민주항쟁은 영원토록 자유대한민국에 길이 남을 자랑스런 역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적 인물(김대중, 김영삼 장로)들은 부산중부교회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김대중씨가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도 이를 면회하러 간 인사도 중부교회 청년들이고 김영삼 장로가 재야 운동의 근원지 부산중부교회 배후에서 기도회를 열어 주고 영적 힘을 실어 주어, 국회의원 출마했던 부산 서구, 중구 지역 민중들이 지원하고 밀어준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인물이 김영삼 장로이다. 서구 대신동교회(여동생, 동서 출석), 남부민중앙교회(손상률 목사 담임)도 2003년 10월 21일 부산롯데호텔에서 김영삼 장로 초청 부산 기독교계 지도자 간담회를 열어 준 것도 부산 교계 지도자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산 교계 숨은 역할과 결집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45년이 지난 오늘날 부마 민중항쟁의 일지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한다는 것이 역사적 영향권을 행사하며 살아 숨 쉬고 있는 산 표징이기도 하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24-10-18
  • [목회자칼럼] 인공 지능 시대에 목회를
    MZ세대를 지나 알파 세대(Alpha generation) 시대가 온다. (아이패드가 출시된) 2010년 이후 출생된 젊은이들을 알파세대라 부른다. 유치원을 가기 전부터 리모컨과 핸드폰, 키즈 유튜브를 입맛대로 골라보는 아이들, 어린이 맞춤형 키즈 카페에서 노는 아이들, 디지털 기기를 자기 몸처럼 자연스럽게 다루는 아이들에게 문자, 글자보다 영상이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 모리스 드니는 세 개의 사과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이브의 사과, 둘째 뉴턴의 사과, 셋째로는 폴 세잔의 사과를 말하는데 여기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출시한 후 애플의 한 입 베어 물고 난 후의 사과 모양 로고가 네번째 사과라고 평가했다. 알파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자녀, 부모, 교시를 이야기한 후 목회자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째 알파세대의 자녀는 1. 메타버스의 증강현실이 실체화 된다. 상상속의 세상과 현장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Zoom(줌) 교실 속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수업도 같이 한다. 원격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집에서 엄마가 주는 밥을 먹고 게임을 하며 친구와 논다. 2. 디지털 기계가 너무 익숙한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을 왔다 갔다 한다. 3차원 가상세계, 즉 증강현실, 가상세계, 거울세계, 라이프로깅, 4가지 개념으로 이해된다. 3. 아이들은 가상세계, 현실세계의 구분 없이 살아간다. 실제의 삶에서 누리는 자유를 갖고 있다. 전 세계를 아주 간단하게 연결하고 누린다. 4. 나와 타인이 함께 공존하며 관계없이 단편적 캐릭터로 여기면서 경험한다. 5.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어하며 기다림과 인내와 윤리적인 것들을 힘들어한다. 6. 장점은 창조성과 놀이를 같이 갖고 있어(예술성) 미래를 지배하는 것도 있지만 단점으로는 인간관계의 정을 이해하기 힘들다. 둘째 부모 입장에서는 1. 1980~2000년 교육을 받은 기성부모세대는 경험해보지 않은 자녀를 볼 때 이해하기 힘들다.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두렵기도 하다. 2. 노력하면 된다는 노력결과중독사회에서 성장했기에 성공하지 않으면 못 살아간다는 강박을 갖고 살아간다. 자녀에게 강요하다 보면 더 심한 충돌과 회의감을 느낄 것이다. 3. 성공과 결과에 대한 실패와 책임감 모두를 제도적 관점에서 살피지 않고 개인에게만 돌리는 사회와 마주칠 것이다. 4. “알랭 드 보통”이 말하기를, 성공에 대한 주관적 잣대를 갖게 될 때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성장주의, 결과주의에서 벗어나 만족의 새 길을 찾을 수 있다. 셋째 교사 입장에서 1. 디지털 시대의 세상에서 단점과 문제도 있지만 장점인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도 이야기 해야 한다. 2. 이제 지식의 교육에서 벗어나 참 지혜의 교육을 찾아갈 때가 되었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정서를 이해하는 교육으로 변화해야한다. 3. 이성적이고 냉철한 합리적 사고에서 상황과 감정과 정서를 같이 가는 성숙한 교육관을 다시 찾을 때가 되었다. 이제 사회도 논리성과 함께 그 맥락을 읽는 직관성의 지혜도 같이 성숙할 때다. 넷째 목회자로서 1. 과연 우리는 자녀, 부모, 교사 모두를 이해하고 품을 그릇과 이해력이 준비되어있는가? 38년 동안 청소년 사역을 한 나 자신도 요즘 이해하기 힘들다. 2. 선택하여 책임지는 것에 자신 스스로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갖고 있는 이 때에 그들의 고독과 외로움, 갈등을 안고 설교와 목회를 해야 한다. 3. 우리의 인생은 누군가의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미래를 전망하든 가족의 소중함과 권위의 역할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의 대한민국 사회를 기대하며 한국 교회의 미래를 알파세대에 기대해본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4-10-18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감부열 선교사(1)
    감부열(甘富悅)로 알려진 아치볼드 캠벨(Archibold Campbell, 1890-1977) 선교사는 여러 일화를 남긴 선교사였고, 그의 여러 가족이 한국 선교사로 일했던 한국선교 가족이었다. 그의 형 에드워드 캠벨(Edward Campbell, 甘茂悅, 1887-?), 여동생 메리(Mary Cross Campbell, 1892-1969)도 한국선교사였고, 이종사존 마리안 킨슬러(Marian Kinsler)와 헬렌 킨슬러(Helen Kinsler)도 한국 선교사였다. 감부열은 1890년 9월 28일 필라델피아에서 에디슨 캠벨과 애니 런던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913년 6월 시에틀의 와싱턴대학을 졸업하고 문학사 학위를 얻은 그는 곧바로 프린스톤신학교에 진학하여 3년간 수학하고 1916년 신학사 학위(BD)를 받았다. 그해 9월에는 헬렌 막스웰 오트(安惠理, Helen Maxwell Ott, 1888-1972)와 혼인했다. 한달 후인 10월 24일 미국북장로교 시아틀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한국선교사로 파송되어 12월 9일 부인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2년 앞서 1914년에 내한했던 형과 누이 동생 부부는 선천과 청주에서 각각 사역하고 있어 한국이 낯설지 않았다. 내한한 감부열은 평안북도 강계 선교부로 배속되어 1917년 2월부터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에 정주하면서 강계를 중심으로 평안북도 북부지역, 곧 산서(山西)노회 지역의 강계, 후창, 장진, 자성, 위원 등지의 교회를 관할했다. 1918년부터는 지역교회 순회와 관리 외에도 강계읍의 명신소학교와 영실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24년 6월에는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가 펜실베니아대학교애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문학석사(MA)학위를 얻었고, 1925년 다시 임지로 돌아와 영실학교 교장으로 일했다. 이 영실학교는 1931년까지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 당시 재학생 80명 가운데 85%가 기독신자였다고 한다. 그 졸업생 중의 한 사람이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되고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던 서정환 이었다. 그는 감부열 선교사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학생이었다. 강계선교부에서 일할 때 감부열은 1930년 8월 동료 선교사들과 백두산탐사여행을 다녔는데, 사울세브란스병원의 부츠, 연희전문학교의 피셔, 남감리회의 에머릭, 성서공회의 홉스, 서울의 사업가 모리스 등은 회령선교부의 맥밀란과 만나 두만강 무산에서 출발하고, 감부열은 계레지병원의 바이람, 한국을 방문한 장인 오트와 함께 압록강 혜산진을 출발하였는데 두 팀이 산지연에서 합류하여 백두산을 등반했다고 한다. 감부열은 여름휴가 때 백두산 정상을 오르곤 했는데, 백두산 생태계를 촬영하여 1931년 6월 25일 선천기독청년회관에서 ‘백두산 실사회’를 개최한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감부열은 수영도 좋아하여 백두산 천지(天池)를 가로 질러 수영했던 사람은 오직 3사람 뿐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천지는 신성시 되던 곳인데, 수면은 해발 2,257m, 면적은 9.165 km2, 둘레는 14.4 km이고, 평균 깊이는 213.43m라고 한다. 백두산 천지를 가로질러 가려면 동서 길이가 3.54km, 남북으로는 4.5km라고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거리였다. 무엇보다도 수온이 낮고 수압이 높아 수영하기 어려웠으나 감부열은 그렇게 했다고 한다. 1932년과 1933년 두 번째 안식년을 보냈다. 다시 임지로 돌아왔을 때는 일제의 군국주의가 심화되면서 1935년부터는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선교학교는 신사참배를 하면서 학교를 유지하던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폐쇄하던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었다. 북장로교는 이론과 격한 토론이 있었지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폐쇄하기로 했다. 결국 영실학교도 1938년 폐쇄되었고, 남아 있던 재학생은 일단 선천의 신성중학교로 보냈다. 감부열은 교장직에서 물러났고, 산서노회의 80여 교회를 돌보며 교인들을 격려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집회를 인도했다. 그러다가 1940년 6월, 세 번째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미일관계가 악화되었고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10-18
  • [전영헌 목사] 지역교회와 미션스쿨의 연합
    학교는 매력적인 선교지이다.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사회 속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 중 하나는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매우 중요한 선교지 중 하나이다. 학생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지식과 인성을 형성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교는 신앙의 가르침이 배제된 채, 세속적인 가치관과 인본주의적 교육이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를 선교지로 바라보는 시각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08년부터 브니엘고등학교에 교목으로 부임하여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17년 학교 사역 기간동안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사역의 결과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역의 결과들은 교목실 단독으로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2008년 학교 부임과 동시에 이삭교회 교육 목사로 고등부를 맡아서 겸직을 하게 되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의 사역기간동안 이삭교회는 본교회 교역자요, 지역학교 교목인 나를 전적으로 믿고 최선의 후원을 해주었었다. 당시 이삭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정진섭 목사님은 당회와 교회의 허락을 얻어 매년 4천만 원(?)여의 재정을 들여서 이삭교회와 금정구 자원봉사센터와 브니엘고등학교가 연합으로 지역의 홀로 어르신들의 도시락 반찬을 매주 배달해 주는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재정과 반찬 만드는 봉사는 이삭교회가 맡아 주었고, 홀로 어르신들 선정과 봉사 시간 부여 행정은 금정구 자원봉사센터가, 그리고 만들어진 도시락 배달은 브니엘고등학교 1학년 60명, 2학년 60명 학생이 격주로 홀로 어르신들을 찾아서 배달해 주는 봉사를 7년 동안 후원해 주었다. 이를 통해 브니엘고등학교 사랑의 도시락 봉사자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평균 120시간 정도의 봉사 시간을 부여받아 졸업하게 되었다. 단순히 봉사 시간만 부여받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성교육과 입시결과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시각변화와 나아가서는 기독교에 대한 자세가 바뀌어지는 결과들로 이어졌다. 사랑의 도시락 봉사를 했던 학생 중 서울대에 합격한 제자가 자신이 받은 장학금을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대학 진학이 이삭교회 사랑의 도시락 봉사로 인한 것이라는 고백을 담아 편지까지 적어서 교회에 헌금을 한 일도 있었다. 2018년부터는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 전보 와서 7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 기간에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학교 채플 장소를 학교 인근 함께하는교회(담임 황동한 목사)당에서 3년간 장소사용허락을 얻어 사용했었다. 이유는 교회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이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교회를 출입해 보는 경험을 주고자 함이었다. 교회가 공간을 내어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월요일 같은 경우는 모든 교역자가 쉬는 날인데 휴일을 반납하고 뒤처리할 것이 많은 학생 채플 공간으로 대여하는 것은 교회의 결단이 아니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24년 우리 학교 채플은 지역교회인 제자들교회(담임 김규환 목사)와 연합으로 진행하고 있다. 월간 채플이라는 이름으로 드려지는 매월 첫 주 채플에 제자들교회는 청소년부 사역자를 메신저로 그리고 매월 아이들의 먹거리를(매월 30여만 원 지출) 우리 학생들에게 조건 없이 제공해주고 있다. 채플을 섬긴다고 해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제자들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님에도 지역교회의 사명이 지역 미션스쿨을 돕는 것이라는 사명으로 섬겨주고 있다. 우리 학교 비전 홀에서는 주일마다 2021년에 개척한 브릿지교회(담임 이성근 목사)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브릿지교회 역시 우리 학교가 필요한 것들을 언제든지 채우기 위해 살피고 있다. 결국 미션스쿨은 혼자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지역교회와 지역학교가 함께 할 때 미션스쿨들이 버틸 힘을 가지고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랑과 섬김을 받은 아이들은 개독교라고 부르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개독이 아니라 기독으로 바뀌게 된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더더욱 그렇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이며, 복음은 들려지는 소리로 인해 그 영향력은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지역교회들이 눈을 조금만 돌려서 주변의 미션스쿨들과 교회 안의 기독교사들을 잘 격려해 주었으면 한다. 다음 세대가 없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일어날 수 있는 근원지인 학교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정론
    2024-10-18
  • [은혜의 말씀] 플랜 B (본문 창세기 25 : 23)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울 때는 A안이 있고, 그대로 안 될 경우를 대비한 대응책이나 또 다른 계획을 플랜B라고 한다. 잠언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드라마틱하다. 하나님의 스카웃은 길거리 캐스팅이 많다. 주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그래서 B급 인생도 가망이 있다. 결핍, 부족, 연약한 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B급 인생이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하며 낙망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고아, 과부, 소자, 약한 자, 병든 자, 세리, 창기를 멸시치 않으신다. 성경에서 장자를 중요시 하지만 의외로 차자가 쓰임 받은 경우가 많다. 다윗은 여덟째요, 모세는 셋째요, 아벨은 둘째요, 야곱도 둘째다. 하나님의 뜻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이다. 장자인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고 털이 많은 상남자 스타일이다. 거기에 비해 야곱은 조용한 자요, 거의 계집아이 같은 분위기였다. 에서는 따놓은 장자권을 가볍게 여기다가 뺏겼지만 야곱은 일생을 통하여 장자권을 쟁취해 나아갔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싸웠고(뼛속까지 장자), 형님 발을 붙잡고서라도 지기 싫어했고(이기는 습관), 팥죽 한 그릇을 가지고 장자권을 샀고, 얍복 강에서 씨름을 할 때는 포기하지 않고 질 수 없는 싸움을 했다(이긴 자). 그래서 이름도 바뀌고, 사기꾼이 사랑꾼이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오지랖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복잡한 집안 구조인 열두 아들이 열두 지파가 되어 야곱의 축복을 이루었다. 대중가요에서 싸이는 B급 감성이라고 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강남스타일’을 불렀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규격화된 딱딱한 모습이 아니라 먼저 망가져서 무겁지 않고 가볍고 재밌는 모습이 편하고 좋다. 세례 요한의 주제는 나는 망하고 예수는 흥하는 것이다. 주께서 길거리 캐스팅을 하실 때도 베들레헴 들판의 다윗, 바벨론 포로수용소의 다니엘, 미디안 광야의 모세, 애굽 감옥의 요셉, 갈릴리 바닷가의 베드로를 부르셨다. 모두 중심이 아니라 주변 언저리였다.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였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다. 예루살렘 다운타운이 아니라 저주받은 사마리아에서 선한 사람이 나온다. 당시 최고 양반이라고 자처한 바리새인, 고관대작을 차지한 사두개인, 성경박사인 서기관들이 아니라 역사의 아웃사이더들, 외인부대, OB팀, B급 인생들을 들어 쓰셨다. 하나님께는 외모, 스펙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본질, 중심을 보신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적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많은 것을 맡기신다. 소박한 데서 대박이 터지고, 평범한 데서 비범함이 나온다. 병든 자식이 효도한다. 똑똑한 자식은 나라에서 데려가고, 돈 많은 자식은 장모가 데려가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이 사역을 잘한다. 고물가 시대에 "못난이"상품, "B급"상품, "못생긴 농산물", "부끄러운 과일과 채소", "못난이 감자", "못난이 수산물"이 인기가 있다. 때깔이 좋은 과일은 농약을 치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고, 색깔도 꾀죄죄하고 크기도 모양도 볼품없는 과일이 무농약에 진짜배기인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아름다운 풍채도 없으셨다. B는 Best의 약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A급이 아니라, B급 인생이라도 들어 쓰신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누구에게도 소망이 있다. 지치고 상한 채 무기력에 빠지지 말고,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들어 써주시옵소서 하고 나아가자.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4-09-30
  • “한국기독신문 아니에요?”
    26일 오후 본보에 확인을 원하는 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 과거 본보가 ‘A교단 교단지 사장에 대한 여러 의혹 보도’를 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들이었다.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받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니, B언론사가 보도한 ‘(기자수첩)에반겔리아 박사학위는 무슨 돈으로?’라는 보도 때문이었다. 내용 중 “의혹이 한 기독 신문에 의해 제기됐다”는 문구가 오해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 모 장로는 “의혹이 한(국) 기독 신문에 의해 제기됐다고 판단했다. B 언론사에서 실수로 ‘국’자를 빼먹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도 “순간적으로 빠르게 읽다보니 한국기독신문으로 착각했다”, “다른 기독신문에 아무리 찾아도 보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서 한국기독신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전한 사람도 있었다. 결국 (이 기사를 읽은)다수가 오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본보가 이 보도 내용에 대해 취재 해 보았다. B언론사의 보도 내용의 핵심은 첫째, A 교단 교단지 사장이 73회 총회에서 연임을 할 당시 에반겔리아대학교 박사과정이 이력에 추가되었는데, 2022년 2월 에반겔리아대학교 입학당시 전후로 교단지에 입학광고가 수차례 나갔고, 현재까지 광고료가 입금되지 않고 있어 에반겔리아 박사학위는 무슨 돈으로 공부를 했는지에 대한 의혹보도를 한 매체(여기서는 ‘한 기독 신문’으로 표현)가 보도를 했다는 것과 두 번째는 지난 9월 24일 유지재단 이사장 및 이사 이취임식 후 첫 이사회에서 재단 감사에 의해 위 내용이 제기됐고, 유지재단 이사회 언론분과가 조사에 나섰다는 게 내용의 핵심이다. 하지만 본보가 취재한 내용은 사실과 다른 점이 있었다. A 교단 교단지 사장은 “(B언론사)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에반겔리아가 (광고료 입금)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팩트다. 광고국장에서 수차례 수금을 지시했는데, 당시 광고국장인 구00이 수금을 못했고, 후임인 서00 광고국장이 들어와 일부 수금을 했고, 현재 300만원이 남아있으며, 연말까지 다 송금하겠다고 에반겔리아에서 약속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총회유지재단 이사회 언론분과에서 위 내용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했다. 유지재단 이사인 C 장로는 “이취임식 후 첫날이라 상견례 자리였다. 대출연장건과 유치원 교사 임명건 등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신임 이사들을 소개하고 인사하는 자리였다. 언론사 사장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고, 언론분과에서 조사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사실과 다르다”고 확인해 줬다. 혹시나 해서 총회유지재단 이사장이며 교단 총회장인 정태진 목사에게도 위 같은 내용을 질의했다. 총회장은 단호하게 “그런 결정을 한 적이 없습니다”고 답변을 보내왔다. 본보로 오해를 낳았고, 처음 이 내용을 보도한 언론(한 기독 신문)은 뉴스00이라는 매체다. 서울에 본사를 둔 인터넷 언론이다. 그런데 이 언론은 ‘기독신문’이라고 볼 수 없다. 일부 교계 뉴스들이 눈에 띄지만, 대부분이 정치와 사회, 문화에 대한 보도가 주를 이루는 일반언론이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2024-09-27
  • [성서연구]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우리나라에 <찔레꽃>이란 같은 이름의 노래가 세 곡이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박태준> 작곡의 동요인 <가을밤>의 곡에 <이원수> 선생이 가사를 붙인 곡입니다. 이 곡은 엄마 생각을 간절하게 합니다. 이 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얼마 전 부모님 살던 집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간절히 그리웠습니다. 그때는 거기가 집이었습니다. 체온을 느끼며 함께했습니다. 늙고 연약해지셔도 부모님은 부모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젠 다 안 계십니다. 손자가 태어났을 때도 알려드릴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것에 눈물이 났습니다. 부모님의 부재는 집의 상실로 다가왔습니다. 종종 나중에 어디서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근 삼십여 년 살았던 부산, 강을 좋아하니 북한강이나 남한강변, 산을 좋아하니 공기 좋은 설악산 근처, 아니면 아들이 사는 울산 근처, 혹은 아직 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서울 근처에 살아야 하나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러나 어디도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가지 않는 큰 이유는 부모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생존의 조건으로 의식주를 말합니다. 그중에서 <주>는 단순한 집이 아닙니다. 사람은 흔들리는 나그네입니다. 집은 인생을 붙들어주는 것은 마음 붙일 곳입니다. 그곳은 집 이상입니다. 고대광실이라도 마음이 가지 않으면 인생을 붙들어주지 못합니다. 초가삼간이라도 마음이 가는 곳이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8장 3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여기 <곳>이란 <마콤>이란 히브리어인데, 여러 가지로 번역되었습니다. 『NIV성경』은 이라 했고, 『쉬운성경』은 <자기 집>으로, 『현대인의성경』은 <자기천막>으로, 『새번역성경』은 <자기가 사는 곳>으로 번역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기 곳>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그가 살던 마므레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5킬로 정도 남쪽에 위치한 헤브론 근처로 보입니다. 그의 주거 형태는 장막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소돔을 멸망시키러 가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 대접했고, 하나님의 사자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을 낳을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 후 그들이 소돔성으로 떠날 때 아브라함은 따라가며 전송했습니다. 창세기 18장 16절을 보면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의 장마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몇 분 정도 걸어야 할 거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은 어떠했을까요? 그곳에는 아내 사라와 종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 하나님께서 계셨을 것입니다. 일찍이 조카 롯이 소돔 방향으로 떠난 후 아브라함은 그대로 빈들에 남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후반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장막은 불편했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잘 지어진 성읍 안에서 살았으나, 유황불에 멸망했고, 아브라함의 장막은 안전했습니다. 소돔이 멸망하던 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전송하던 곳에서 소돔의 멸망을 바라보았습니다. 창세기 19장 27~2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우리의 <곳>은 어떤 곳인가요? 우리의 <곳>도 하나님을 뵙는 곳이 되길 원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둘러싼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용서하시고 변화시키신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그녀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겁박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은 그 전날 분노한 채로 <자기 집>으로 갔고,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곳>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장차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까지 결정될 것입니다. 삶의 처소를 하나님 안에서 경건하게 가꾸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24-09-1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