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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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의 힘]달란트중심의 교육
    기독교교육은 달란트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춤과 게임도 모두 한 달란트입니다. 어느것이 더 중요하고 귀한 것이 아닙니다. 100명중 1등은 단 한명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달란트 중심의 교육을 하면 모든 아이들이 활기차게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달란트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 달란트의 우열을 우리가 정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공부중심의 교육에서 달란트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하면 많은 아이들이 행복해집니다. 교회는 이것을 학부모에게 훈련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앞으로 많은 부분들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많은 직장은 없어지고 또 새로운 직장들이 생길 것 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아이에게 주신 달란트를 찾고 세워주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순종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달란트를 찾을 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일단 돌아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 중 제일 잘하는 것이 아마도 그의 달란트일 것입니다. 그 달란트를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세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의 욕심이 들어가지 않아야합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마음껏 해 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십시오. 그 분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지해주시면 달란트 발달에 큰 도움이 됩니다. 달란트 중심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달란트는 더 좋고 또 어떤 달란트는 별게 아니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없이 이땅에 태어나게 한 생명은 없습니다. 그 계획이 부모의 계획가 다를수 있음을 인정하고 높은 하나님의 뜻을 붙잡으면 됩니다. 아이들의 달란트가 아름답게 열매맺는 교육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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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의 힘
    2021-09-03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율법과 은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길고 험난한 방학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1년 6개월 동안도 거의 방학처럼 지냈는데 8월부터는 공식적이자, 본격적으로 방학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는 아이들이 온전히 쉴 수 있는 방학에 엄마인 나도 들뜬 마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계획하곤 했는데, 아이들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제는 그럴 에너지마저 사라지고 “오늘은 또 어떻게 세 끼 밥을 줘야 하나?”는 걱정이 먼저 든다. 아이들도 이미 집에서 지내는 상황과 시간에 익숙해져서 특별한 일 아니면 별 흥미를 갖지 못하고 조금씩 지쳐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럴 때, 아이들은 방학을 맞이했지만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없을 때, 하루 종일 집에서 무언가는 하면서 보내야 하는 이럴 때, 교회에서 ‘1week, 1word - 한 주에 한 구절씩 성경암송’ 책자를 나눠 주었다. 코로나19로 가정에서 신앙 훈련을 한다는 취지로 한 주에 한 말씀씩 30주 동안 계속해 12월에는 ‘전 교인 30구절 성경암송’ 대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씀 카드를 받은 나도 시큰둥, 아이들도 시큰둥이었다. ‘이 더운 여름에 집에서 말씀 암송하는 것으로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나? 분명 아이들도 하기 싫어 할텐데… 어떻게 하지?’ 이미 시작도 하지 않은 내 마음 속에 포기부터 하고픈 마음이 꿈틀꿈틀 싹트고 있었기에 암송 카드를 받고는 책상에 두고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막상 방학이 시작되고, 집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게 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암송 카드였다. “그래, 시간이 많을 때 아이들에게 말씀 암송을 하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 한번 해보지 뭐” 이런 결심을 하고 아이들에게도 슬쩍 의견을 물었다. “교회서 암송 대회를 하는데, 대회에 나가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대” 라든지, “초등학생은 참가만 해도 상금이 있다는 말이 있던데…”라며 아이들을 살살 달랬다. 선물 이야기를 하고, 일주일에 겨우 한 구절 말씀이라며 안심을 주니, 아이들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결국 기나긴 방학을 암송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 지… ” “야, 지은율 너 제대로 안외울래? 그 부분에서 꼭 틀리더라. 모든 지각,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 이라고” “누나, 이 부분 너무 어려워. 도대체 지각이 뭐야? 우리가 학교 늦게가는 그 지각이야? 하나님이 지각에 뛰어나?” “설마, 하나님이 지각하겠냐? 나도 잘 몰라. 그냥 외워. 계속 읽다보면 외워져.” 그렇게 나른했던 방학의 날들이 아이들의 암송 소리로 다시 활기차졌다. 아이들은 누가 잘 외우냐, 못 외우냐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 잘 외우고 있는지 봐주기도 하고, 틀린 부분은 반복하며 서로 짚어주면서 말씀 암송 재미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방학 동안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율법적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실제로 해보니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고 무엇보다 자율적으로 암송하는 태도를 보여줘서 너무 감사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깨닫고 삶 속에서 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즐거워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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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8-13
  • [신앙교육 나침반]코로나 시대, 경건한 가정을 향한 열망을 품는 교회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 급여 500만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 이상, 예금 잔고 1억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 번 이상. 이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가정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기준에 조금이라도 근접한 삶을 살아보고 싶어 달리고 또 달립니다. 남들보다 더 안락한 집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자 하는 열망, 더 풍요롭고 즐겁게 살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채 부모와 자녀 모두 달려갑니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전속력으로 달리고 또 달립니다. 그렇게 윤택한 삶을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와 학원에서 지내는 통에, 우리가 살아가는 집은 의식주만 해결하는 하숙집이 된지 오래입니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모든 사람이 지쳐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질주는 멈추지 않습니다. 코로나 시대는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을 새로운 동력으로 여기며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며 계속해서 박차를 가합니다. 부모들은 온오프라인으로 초연결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오늘하루도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TMI(too much information)의 홍수로 자신만의 철학이나 주관을 잃어버린 채 달려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계속 달려가면 점점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행복하기는커녕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분열되고, 고장이 나고, 병이 듭니다. 시편 127편 1절(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말씀은 이에 대해 명료하게 기록합니다. 집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집을 멋지게 세우면 세울수록 가정은 점점 무너집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하나님을 담지 않고 달려가면, 가정은 반드시 무너지고 고장이 나도록 설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말라기 2장 15절(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만든 가정의 본질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NIV 성경에 보면 ‘경건한 자손’은 ‘Godly offspring’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이 그토록 열망하시는 자손을 설명하는 ‘Godly’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답게’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을 담은’(with God) 자손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 된 가정이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 하나님을 담고 살아갈 때 참된 가정으로 서도록 디자인하였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바라보면서 어찌하든지 남보다 안락하고 윤택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정을 바라보면서 어찌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부모와 경건한 자녀로 서길 열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가정이 하나님을 담은 성소로 세워지길 열망하시며, 부모들이 먼저 그러한 열망을 품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의 복을 열망하며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부모들의 열망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인정을 향해 자녀들의 손을 맞잡고 달려가는 부모들에게 그 길의 끝에 사망이 있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의 브레이크로 그들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가정이며, 그 가정 안에 하나님을 담고 살아가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임을 분명히 지도해야 합니다. 가정이 하나님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담으면 됩니다. 시편 1편 1절 말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은 우리 가정이 하나님 말씀에 ‘즐거워하다’와 ‘묵상하다’로 반응하며 살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코로나 시대, 교회는 점점 더 온라인 미디어와 메타버스 활용을 향한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하지 말 것은 이러한 온라인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부모들이 세상을 향한 열망을 멈추고 하나님과의 대면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도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들이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한 동력으로 자녀들과 대면하여 신앙을 전수하도록 일깨우는 방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코로나시대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온라인 도구를 활용할 때에, 성도가 삶속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씀을 받고, 받은 말씀을 삶속에서 살아내도록 하는 궁극성을 유념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모든 가정이 세상을 향한 열망을 멈추고 경건한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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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1-08-13
  • [다음세대 칼럼]남이냐? 딸이냐?
    몸이 불편한 아이를 둔 어머니가 계셨다. 가끔씩 학교에 오실 때면 교목실에 조심히 오셔서 “목사님 커피 한 잔 주실 수 있으세요?”하면서 나를 잠시 만나고 가고 하셨다. 하루는 학생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목사님, 제 소원 아니 우리 부부의 소원이 뭔지 아세요?” “우리 애보다 하루 늦게 죽는겁니다. 불편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애를 지지해주고 끝까지 지탱해줄 사람은 우리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이 말을 듣는데 가슴이 얼마나 먹먹했는지 모른다. 신약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등장한다.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그 지역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머니는 예수님을 무작정 찾아왔다. 그리고 예수님께 간절하게 부탁을 한다. “우리 딸이 귀신을 들렸는데 불쌍히 여기고 고쳐 주십시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어머니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내 백성(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지 이방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가나안 여인의 입장에서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날 상황이었다. 만약 나였다면, 분명히 따졌을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은 하면서 사람을 가려서 하냐?”고 분명히 따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차 부탁을 한다.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부탁을 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다시 부탁을 한다.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이 여인의 정성과 믿음을 보시고 귀신 들린 딸을 고쳐 주셨다. 나는 이 사건을 뒤집어서 생각해봤다. 귀신 들린 딸이 힘들었을까? 어머니가 힘들었을까? 분명히 힘든 당사자는 어머니다. 위의 제자 이야기처럼 이 땅의 부모님들은 내가 아픈 것, 내 자존심 상하는 것, 그렇게 개의치 않는다. 내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모든 것 다 내려 놓고 자녀들을 위해 희생한다. 가나안 여인 역시 정작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이었지만, 어머니가 힘들지만 힘들다고 하지 않고, 우리 딸 아이가 불쌍한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만약 귀신들린 사람이 내 딸이 아니라 남이었으면 분명히 어머니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귀신들린 사람이 남이 아니라 내 딸이니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딸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지금 교회 교육현장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남인가? 딸인가? 과거 우리나라 주일학교 부흥이 일어났던 시기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우리를 가르치실 때 남이 아니라 딸같이, 아들같이 여기며 우리를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셨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수준도 높고, 교회의 여건도 잘 정비되어 있지만 과거의 신앙의 야성은 다 사라진 듯 하다. 여름을 지나가면서 올해도 예전과는 다르지만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부흥회라는 이름으로 여름 사역들을 진행했을 것이다. 이 사역 가운데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남이었는가? 딸이었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본질의 회복이다. 프로그램, 교육여건이 아닌 본질의 회복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는 여름 사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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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1-08-13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직박구리가 나에게 깨우쳐 준 것들
    토요일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여유롭게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기로 했다. 날도 화창하고 기분도 좋아 아이들을 연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섰다. 한 20분쯤 길을 걸었을까, 갑자기 제일 앞서 가던 셋째가 소리를 지르며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셋째 옆에 가서 자세히 보니, 새 한 마리가 뒤집혀서 퍼득퍼득 거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새가 (사람이 누워 있는 모양처럼) 뒤집힌 것을 보지 못해서 아픈 새가 불쌍하기보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아이들은 아픈 채로 힘없이 쓰러진 새를 불쌍히 여기며 ‘우리가 구해야 한다’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길 바랐다.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엄마인 나는 거리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어린 새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렁이와 개미의 공격에 누워 있는 새의 날개가 잠깐 퍼득일 때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 뒤로 숨기도 했다. 그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저 적당히 동물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 있다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빨리 그 자리를 뜨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30분 즈음이 흐른 후부터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여기에 계속 있어봤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어. 이제 그만 산에 가자”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완강했다. 특히 둘째 딸은 금새 눈물이라도 뚝뚝 흐를 것처럼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내게 동물병원에 전화를 하든, 어떻게 하든 이 새를 돕기 전에는 절대 산에 가지 않을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정말 난감했다. 특히 아이들이 “엄마는 교회도 다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아픈 새를 보며 그냥 갈 생각을 할 수가 있냐”고 말할 때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19에 전화를 했다. 모르겠다. 왜 하필 그 때 119가 생각이 났는지, 119로 전화하면 이런 위급 상황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19에 전화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민원 상담하는 곳인 110에 전화를 하란다. 119를 끊고 다시 110에 전화를 하니 야생동물 구조와 관련된 것은 관할 구청에 알아봐야 한단다. 그리고 덧붙여서 오늘이 토요일이라 관련 민원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수 있다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다시 또 영도구청에 전화를 하니, 야생동물 긴급구조대로 연락해 드디어 담당자와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담당자에게 누워있는 새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니 어딘가에 부딪힌 ‘직박구리’라며 상자를 구해 옮긴 다음 잘 보관하고 있으면 오후에 구조하러 오겠다고 한다. 내가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말하자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상자를 구하는 일도, 새를 보호하는 일도 아이들이 알아서 다 했다. 나는 징그러워 차마 직박구리 근처에 가기도 싫은데 둘째는 맨손으로 그 새를 만지며 상자에 담아 집까지 모시고(?) 왔다. 아이들은 집 앞 놀이터에 직바구리를 두고 눈을 떼지 못하며 긴급구조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약 2시간 후 긴급구조차량(야생동물-천연기념물) 이라는 마크가 붙은 차가 와서 직박구리 상태를 확인하고는 잘 치료하겠다고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그제야 안심하며 놀이터에서 돌아와 밥도 먹고 자기들끼리 직박구리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작은 해프닝으로 인해 나는‘당황스런 사건을 만날 때 나의 말과 행동’을 직면하게 되었다. 아픈 새를 볼 때 아이들이 한 말은 “어떻게 해서든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라는 것이었고, 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며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기를 바랐다. 또한 아이들이 “길거리에 아파 누워있는 새를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다”고 말했을 때도 나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집에 데려가서 키울 수도 없지 않냐”며 노력도 해보지 않고 포기했다. “할 수 있을 만큼 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쓰지 말라고 했던 문장들을 내가 계속 쓰고 있었다. 그날 밤 혼자 많은 생각들을 했다. 이론과 실제의 간극,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 등에 대해 아이들을 통해 배웠던 점들을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육아 15년 차이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통해 오늘도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함을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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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7-23
  • [신앙교육 나침반]세대를 분리하는 예배의 결말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몇몇 교회들은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를 분리하여 예배드리고 교육받는 시스템의 마련이다. 혁신적인 교회들은 전 연령이 함께 예배드리고 교육받던 형태에서, 부모가 예배할 때 동시에 운영되는 주일학교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부모세대들과 자녀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각 세대별로 분리된 예배와 교육은 개인의 경건에 매우 유익하다고 판단되었으며, 현재 대부분의 교회가 세대를 분리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1부 예배는 40-50대 성도들을 위한 클래식 고전예배, 2‧3부 예배는 현대인들의 취향을 조금 더 배려한 세미클래식한 분위기의 예배, 4부 예배는 20-30대 젊은 세대를 위하여 워십팀과 드라마팀을 동원하여 모던 예배로 드린다. 이러한 세대분리 예배는 회중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켜서 전통적인 형태의 예배보다 회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ἐκκλεσία)’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죽음, 부활에 응답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기 위하여 부름 받은 공동체이다. 교회는 고린도전서 12장 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의 말씀과 같이 세대와 계층과 문화를 뛰어넘고, 언어와 인종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의 몸이 된 신비로운 연합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 안에서 이러한 다양성이 하나 되는 신비로운 연합이 경험되어져야 한다. 예배가 다양한 지체들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을 세우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분리된 예배의 결과는 참혹하다. 세대 간 신앙교류의 부재로 인해 신앙의 공동체성이 약화되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 공동체의 집합이며, 교회 신앙공동체의 붕괴는 작은 단위인 가정 신앙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세대분리예배는 가정 내 부모와 자녀의 분리를 가져오는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 세대가 분리되어진 예배와 교육체제 안에서는 신앙의 대 잇기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교육학자 존 웨스터호프 3세는 신앙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세대를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자로 받아들이며 끌어들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참된 예배란 1세대부터 3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교류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예배는 다음 세대를 통해 잃었던 비전을 회복하고, 젊은 세대의 열정에 참여하며, 앞선 세대들의 역사적 교훈과 신앙의 유산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세대 간의 매듭이 끈끈하게 묶여지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예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예배, 곧 ‘세대통합예배’(Intergenerational Corporate Worship)이다. 세대를 통합하는 예배의 결말은 어떠할까? 세대통합예배의 결말은 ‘가정의 회복’이다. 가정은 예배 안에서 부모와 자녀의 연합을 경험하게 되어 점차 참된 성소로 세워져간다. 온 가족이 하나의 말씀을 담아서, 삶속에서 그 말씀으로 살아내려는 동일한 열망을 품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세대통합 예배는 경건한 가정을 세우고자 하는 교회비전의 심장이 된다. 하나님은 부모세대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자녀세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전수하도록 명령하셨다(신명기 4:9-10). 우리가 자녀세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는 최고의 방법은 예배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세대와 문화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는 예배의 자리에서 비로소 복음의 능력을 몸소 경험하게 되며, 그러한 복음 안에서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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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1-07-23
  • [다음세대 칼럼]목사님 제가 꼭 한번 쏘겠습니다
    오늘날 입시 제도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와 많이 달라졌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당연히 공부가 필수이지만, 봉사 활동과 같은 이른바 ‘스펙’들도 필요하다. 그런데 학교에 있다 보니 아이들이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이리 저리 방법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밥퍼(밥퍼나눔운동)’를 알게 되었다. 마침 서울 다일교회 담임 목사로 계신 김유현 선배의 도움으로 밥퍼 본부를 소개받고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봉사활동을 했었다. 본부장님이 우리 학생들 20명을 매주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밥퍼 봉사는 매주 토요일 오전 부산 시청 광장에서 노숙인들과 노인들에게 밥을 퍼 주는 사역이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여기에 동참하여 설거지, 식판 나르기, 어르신들 안내하기 등의 봉사를 했다. 섬김의 정신을 배우면서, 아울러 봉사 시간도 덤으로 얻는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열심히 봉사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매주 참석했지만, 학교 업무가 많아지고 다른 봉사 단체와도 연결되면서 매주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학생 중 S를 팀장으로 세워 그에게 밥퍼 봉사의 인솔을 맡기고, 나는 다른 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뜬금없이 봉사팀장으로 임명했던 S가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여기 오신 어르신들 밥값이 얼마나 드나요?” 나 역시 모르는 사항이었기에 국장님께 물어보았다. “국장님, 이렇게 어르신들 식사 대접을 하면 하루에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음, 300만 원 정도 듭니다.” 국장님과 내가 대화하는 것을 듣더니 S가 끼어들었다. “목사님, 15년 안에 제가 한번 쏘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저분들께 밥을 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 귀한 말이다. 그동안의 봉사 활동을 통해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았다. 물론 S의 말이 지켜질지는 이제 7년 후(위의 약속을 한 후 8년의 시간이 흘렀다)가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려운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쏠 수도 있고, 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의 목적과 돈을 버는 목적이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S는 앞으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들의 스펙을 쌓게 해 주기 위한 도구로 봉사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작은 섬김 속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있었다. 나는 S가 대견스러웠다. “짜식, 꼭 그렇게 해라.”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걸작이다. “네, 목사님. 오천 명을 먹이겠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라는 가치가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삶의 모토가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대학 입시에서 면접관들을 대할 때마다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단다. 이는 분명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면접관들이 면접 중에 칭찬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전해 듣는다. 가치교육은 이런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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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교사의 힘]교사의 책임
    1. 교사는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사역이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존중하는 사람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약속을 쉽게 어기면 신뢰할수 없게 됩니다. 2. 교사는 자신의 영성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교사는 영성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교사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교사가 먼저 먹어야 아이들에게 줄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성을 위해 말씀을 먹고 적용하며 간증하는 교사들이 가르칠 때 그 말씀 또한 강하게 전달되는것입니다. 바쁘다고 핑계 대며 자신의 영성 배양을 소홀히 하는 교사라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교사를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3. 교사는 자기 개발의 책임이 있습니다. 유행하는 문화, 아이들의 언어, 가르치는 방법등 교사가 배워야 할 것들은 많습니다. 올해 아이들에게 적용했던 방법을 내년에 똑같이 적용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똑같이 반복하면 안됩니다. 아이들은 매우 빠른 변화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사는 변질되면 안되지만 변화에는 민감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여 아이들의 리얼타임 문화코드에 맞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보는 TV프로, 유튜브, 영화, 광고등에 관심깊게 보면서 아이들의 문화추이를 따라 잡아야 합니다. 성경공부 도입부에 사용하면 자연히 생동감 넘치는 변화가 생깁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교사를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그의 말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들리는 성경공부는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교사에게 주어집니다. 준비하고 노력하는 교사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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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교사의 힘]뜨거운 열정이 아이들을 감동시킨다.
    교사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사역에는 아무런 간증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교사에게는 자신이 맡은 아이들의 영혼에 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아무나 교회를 다닐 수 있지만 아무나 교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현직 초중고등학교 교사라 해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 뜨거운 열정이 없고 주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 없으면 교회교사는 못합니다. 그만큼 교사가 중요하고 1년 동안 학생들과 사역하는 그 시간은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교사와의 관계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먼저 교사가 주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없이 아이들과 놀 수는 있지만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고 그들의 변화를 위해 수고하는 교사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역하지 않으면 관계를 형성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사역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부분에서 애써야 합니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교사 사역은 사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들이 있다면 그 교회학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교사감이 된다 싶은 분들에게 애원하다시피 사역을 맡긴다면 아이들의 영적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스럽습니다. 교회는 다음세대에 투자해야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예산만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위한 사역을 펼쳐야 합니다. 교사들을 지원하는 부서도 세우고 예산도 마련하여 교육과 훈련을 하면서 교사들도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교회학교의 예산 중 교사를 위한 부분은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교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교회학교 부흥은 교사들의 열정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사가 영입되는 것보다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향할 한명의 교사를 세우는 일에 힘을 쓴다면 앞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부를 걸 수 있습니다. 교사는 어떠한 책임 속에 사역해야 할지는 다음 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사역입니다. 교사는 어떠한 책임 속에 사역을 해야 하는지 함께 다음 회에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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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의 힘
    2021-07-09
  • [다음세대 칼럼]기독교교육-가치를 가르치다
    “목사님,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필리핀 어린이들을 위해 컴패션 후원 모금을 해야 하는 거죠?” 어느 날 학생 D가 내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어차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거라면 우리나라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요?” 나는 D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D야, 만약에 말이다. 120년 전, 아니 가깝게 60년 전에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의 누군가 우리를 돕지 않고 자기들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만 생각했다면, 지금의 한국이 있었을까?” “아니오. 우리도 누군가의 원조를 받았으니 이만큼 된 거겠죠?” “그래. 목사님은 그렇게 생각한다. 네 말처럼 우리나라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이 많아. 그런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으면 해.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생활로 받아들였으면 한다는 거지. 이제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커졌단다. 5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이 된 거야. 목사님은 그래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누군가 우리를 도왔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그 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나는 우리 브니엘의 아이들이 그냥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좀 더 넓게, 특별히 제3세계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나는 너희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뿐 아니라 그들을 춤추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지독한 가난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필리핀의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모은 돈이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너희들이 하는 모금은 단지 3천 원이라는 액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망이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어.” 젊은 청년시절 김동호 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동호 목사님의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교육의 핵심가치로 삼고 학교에서 가르친 지 어느덧 15년이 다되어간다. 이 문구에 매료되면서 내 삶은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타인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다.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복 받게 하는 삶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할 바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은 나의 목회 철학과 교육 철학이 되었다. 브니엘고등학교와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 부임하여 15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목사 선생으로 살면서 줄곧 아이들에게 외쳤던 메시지는 “오천 명분을 먹어 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오천 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외침에 반응하는 제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취업하여 첫 월급을 받고 그 월급의 일부분을 컴패션을 통해, 월드비전을 통해 기부약정했다는 제자들이 소식을 전해오곤 한다. 가치교육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난 후 배웠던 삶을 실천에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교육에서, 그리고 미션스쿨이 해야 할 일은 뭔가를 벌이긴 보다는 일상에서 영향력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 있는 교육들이 현장에서 다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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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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