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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가난해서 스타가 된 아이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서울의 삼광국민학교를 다녔는데 빨간색 체육복이 아주 멋진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체육복이 없었습니다. 집에 돈이 없어서 삼천원짜리 체육복을 사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체육이 있는 날이면 삼촌이 입던 츄리닝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그러다 운동회 날이 되었습니다. 전교생 앞에서 저 혼자만 다른 츄리닝을 입고 서야 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울며불며 체육복 안 사주면 나 학교 안 갈 거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꾸깃꾸깃 감춰뒀던 비상금을 주셨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들고 뛰어나가는 데 문앞에서 아버지에게 그 돈을 빼앗겼습니다. 아버지는 그날도 술을 드셨습니다. 저는 결국 체육복을 못 사고 보라색 츄리닝을 입은채 운동회를 갔습니다. 그날의 제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창피하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순간 교회학교에서 듣던 전도사님의 설교말씀이 떠오르면서 제 안에 작은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 옷 한 벌 가지고 네가 이렇게 기죽어? 야, 그러면 하나님은 뭐가 되냐? 야, 기 펴! 어깨 펴! 고개 들어!”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어깨를 펴고 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생각도 못했던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는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운동회 날 점심시간이 되면 엄마, 아빠는 자기 아이를 찾아 가서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전교생이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아이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별이 잘 안 됩니다. 여기서부터 문제였습니다. 부모마다 자기 아이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다른 색 옷을 입고 있었잖습니까. 그래서 엄마들이 자기 자녀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점심시간이 되면 보라색 쟤 옆에 가 있어라. 그러면 내가 널 찾아갈게.” 그리고는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제 옆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정작 저희 부모님은 이날 장사하시느라 못 오셨습니다. 그런데 제 덕분에 아들을 찾은 엄마들이 저한테 고마워하시며 연신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네 덕분에 우리 아들을 찾았다구요. 제가 일종의 랜드마크, 깃발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내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햇습니다. “융희야, 나 그 옷 부럽다. 나도 한번 입어보면 안 되냐?” “야, 우리는 똑같은데 너만 특별해 보여.” 저는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체육복을 못 입었는데 그날 저는 학교에서 완전히 스타가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저는 그날 깨달았습니다. “난 특별하구나. 나는 가난하지만, 체육복도 못 사 입지만, 아빠한테 빼앗긴 술값으로 내 체육복은 날아갔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나는 특별한 존재구나.” 그리고 저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든 저를 쓰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리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워도 기가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이날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홍목사가 된 지금도 만나는 다음세대들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너희들 중에 집에 돈이 없어서 체육복을 사 입지 못하고 츄리닝을 입고 학교에 가본 아이가 있니? 없다면 너희는 목사님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너희가 목사님보다 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기를 바래. 하나님은 그 시절 그 가난한 아이였던 내게도 다가와주셨단다. 지금 너희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꼭 붙들기를 바래. 하나님은 너희들의 앞날을 인도해주시고 너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하신단다. 우리 하나님의 손을 잡고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사명들을 하나씩 감당해 보자. 힘을 내렴. 하나님이 함께하실 거야!”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음세대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랑하고 보살피고 양육합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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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2-11
  • [신앙교육나침반] 코로나시대, 이 땅의 쓰러진 부모들에게
    모세는 이집트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집트의 노예의 신분으로, 죽음의 위험가운데 태어났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들의 언어와 모든 일에 능통하게 되었다. 그는 공주의 양자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일을 하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다. 모든 사람은 그를 우러러봤으며, 그의 자리를 부러워하였다. 하지만, 그는 반짝이는 대리석이 아닌, 거친 모래바닥을 지탱하며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분노가 치미는 것을 날마다 느껴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기어이 인내의 한계선을 넘고야 말았다. 이집트 사람은 지칠 데로 지쳐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쓰디쓴 채찍을 휘둘렀고, 모세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 그는 바로를 피하여 머나먼 미디안으로 달렸다. 왕자의 자리에서 한순간에 도망자의 자리로 내려온 순간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누군가를 지휘하거나 재판하지 않는다. 그가 자랑했던 이집트의 지식은 그가 살아가는 광야에서는 더 이상 쓸모없는 지식이다. 그는 날마다 모래바람 속에서 양들과 씨름하는 목자일 뿐, 한숨과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갔다. 모세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자리에 있었다. 나의 존재도, 나의 사명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오셨다.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과 근심을 알고 내가 그들을 이집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려 한다. 이제 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낼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원대한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하나님, 저는 이제 왕자가 아닙니다. 다스리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저를 좀 보세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저를 보세요. 저는 이제 양을 돌보는 일만으로 충분히 바쁘고 분주합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일을 맡을 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일을 맡을 만한 능력도 없어요. 하나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낼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나’를 분명히 보여드렸다. ‘사명의 자리를 떠나버린 나’를 정확히 보여드렸다. 존재가치를 잃고, 사명의 자리를 떠나버린 자리에 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이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다. 모세의 물음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라면, 모세의 존재가치를 회복시키는 말씀이 어울린다. 모세가 잃어버린 사명의 열정을 다시 불태울 수 있는 말씀이 적합하다. 예를 들면, “모세야, 너를 다시 왕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다시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서 이집트 백성을 멋지게 구출하도록 하여라!”와 같은 말씀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신다. “모세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은 자신을 잃어버린 모세에게 참된 자아를 분명히 알려주셨다. “모세야, 나와 함께하는 네가 바로 참된 너란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지 않아도, 사명을 잃어버려도 나와 함께한다면 너는 너란다!”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부모들은 아마도 모세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 제가 너무 힘듭니다. 제가 이런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존재가치를 잃고, 사명의 자리를 떠나버린 자리에 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와 같이 체념하며, 어린 자녀를 기르는 힘들고 분주한 육아의 자리에서 존재와 사명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모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너라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너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중요한 일을 해낼 능력과 힘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란다. 너라는 사람은, 나와 함께 할 때 비로소 너란다!”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이 놀랍고 강력한 메시지를 꼭 전해주면 좋겠다. 이 땅의 쓰러진 기독 부모들이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와 사명이 아닌 하나님과의 함께함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 회복하며, 그것을 일상의 원동력으로 삼는 부모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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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최고의 전도사님을 만나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저희 집은 꽃을 파는 꽃집이었습니다. 장미와 튤립, 아네모네, 프리지아, 백합... 학교 다녀오는 길에 가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면 좁은 길 양쪽으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온통 가득했습니다. 천장에는 색색의 리본이 다발로 매달려 있고 여기저기 바구니와 스티로폼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꽃집은 기본적인 꽃다발과 꽃바구니 뿐 아니라 결혼식 부케도 잘 만든다고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집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신부용 결혼사진에 쓰이는 부케를 선전하는 어린이 부케 모델이 되었습니다. 모델은 튀어야 눈에 띈다며 초등학교 1학년짜리였던 제게 당시 흔치 않던 파마까지 해주셨던 아버지의 센스가 인정을 받았는지 부케는 찾는 이들이 참 많았고 꽃집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잘 되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나라에서 꽃집을 사치산업으로 지정해서 금지시키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운영이 잘 되던 꽃집은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술을 드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모아놓았던 돈도 모두 떨어지자 아버지는 당시 건설붐이 일던 중동의 리비아라는 나라로 돈을 벌러 가셨고 어머니는 조그마한 옷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사를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집에서 정이 좀 들라치면 또 이사를 가고, 그 동네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형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또 큰 길을 넘어 옆 동네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한 살 차이인 형과 제가 다른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된 것은 지금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가난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살아가던 시절, 저는 집에 텔레비전도 없어서 길거리에 나와 혼자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 날도 지나가는 개미떼를 지켜보며 여름방학의 오후를 보내고 있던 제가 삐에로 선생님의 북소리를 따라서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가게 된 것은 어찌보면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노방전도의 열매로 나가게 된 교회학교는 제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해야 칭찬을 받지만 교회는 나오기만 해도 착한 어린이였습니다. 성적을 매기는 것도 아니고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부장님은 못난 모습 투성이인 저를 늘상 예쁘다, 예쁘다 하시며 반겨 주셨고, 선생님들은 항상 맛있는 간식을 두둑이 챙겨주셨습니다. 이런 넉넉한 사랑은 저의 마음을 완전히 교회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나갔던 교회는 서울 후암동에 자리한 통합측 서울서노회 소속의 염천교회였습니다. 당시 염천교회의 아동부를 담당하시던 이춘수 전도사님은 훤칠한 키에 늘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들을 무장 해제시키던 최고 멋쟁이셨습니다. 이춘수 전도사님은 후에 목사 안수를 받고 평택 동산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시면서 동산교회를 경기지역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키우셨고 은퇴 후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큰 본을 보이시는 존경받는 사역자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처음 나간 교회에서 그런 훌륭한 전도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전도사님은 설교시간마다 우리의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에 대해서 늘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멋지게 사용하실 그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부터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남들도 우리를 귀하게 여겨줄 거라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어깨를 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저희들이 들으면서 다 이해는 못했지만 그래도 참 좋은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기죽지 말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늘 몇 번씩 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에 가면 늘 춥고 배가 고픈 현실이 변함없이 저를 기다렸지만 그래도 교회만 오면 어린 제 어깨를 하나님이 꼭 붙잡아주시는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저를 다니엘처럼, 요셉처럼 멋지게 사용해주실 거라는 영화 같은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오늘까지 다음세대 사역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때 그 어린 시절, 저의 가난을 이기게 해준 복음, 바로 그 능력과 감격 때문일 것입니다. 저처럼 초라한 아이까지도 품어주셨던 전도사님의 품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저도 분홍목사로서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언제까지나 힘차게 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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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1-07
  • [다음세대칼럼] 눈높이 사랑
    1989년 2월까지, 14살짜리 중학생이던 나는 감정과 의지의 밑바닥을 계속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성적과,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중독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의지, 그로 인해 점점 커져가는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청소년에 불과했던 내게 그런 삶은 스스로에 대한 마지막 희망의 끈도 놓아버리게 만드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하지만 2월 5일 오전, 난생 처음 교회에 발을 내딛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꿈이 생기면서 공부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진 자아상을 성경 속에서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독 증세가 내 삶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 브레이크 없이 바닥으로 치닫던 인생이 역전되어서, 하늘을 향해서 달려가는 삶으로 변화된 것이다. 지금 돌아볼 때, 이는 나를 향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가운데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신 교역자, 교사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그분들은 삐뚤어지고 모난 내게 찾아와 내게 친구가 되어주셨다. 그분들은 내가 먼저 찾아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늘 내게 먼저 찾아오셨다. 학교 앞에 찾아오셨고 집에 찾아오셨으며 내 인생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던 나의 꿈을 인정해주시며 이 꿈의 언젠가는 너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응원해주셨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때의 꿈대로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분들을 통해 나 같은 사람도 교회에서는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천 년 전,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거하는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33년을 거하시면서 당신의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진 하늘과 땅의 만남, 그것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한다. 나는 청소년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성육신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만나기시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청소년들의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청소년들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서 함께 이야기하고, 그들의 문화로서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고민 속에서 공감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성육신적인 청소년 사역이다. 지금 돌아볼 때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셨던 분들의 사역 역시 성육신적인 사역이었으며,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성육신적인 사역을 ‘눈높이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의 눈높이에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 것이다. 청소년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과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언어, 생각,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해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삶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주일 오전에 교회에서 기다렸다가 일주일에 딱 한번 만나는 사역이 아니라, 주중에 학생들의 삶 속에 찾아가야 한다. 학교의 교문 앞에 찾아가서 점심시간에 잠시 얼굴 보고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간식 하나 쥐어주고 오더라도 우리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이들도 안다. 주일날 만나서 “보고싶었다.”는 교역자, 교사의 말이 진심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안다. 주중에 연락 한번 없고, 만나려는 노력 조차 없었으면서, 주일날 만나서 보고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다. 학생들은 그런 말보다는 주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주중에라도 그들에게 연락하고 찾아가는 마음의 발걸음을 원하고 기다린다. 나는 지난 25년간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평일에는 거의 매일 제자들이 다니고 있는 중고등학교에 점심시간마다 찾아가거나 밤늦게 학원 앞에서 만나왔다. 그곳에서 기도회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건 아니지만, 잠시 얼굴 보고 싶어서 등 한번 두드려 주고 싶어서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이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고 가슴으로 느껴지는 복음이 되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사랑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높이에 당신의 시선을 맞춰주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친구가 될 수 있었듯이,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눈높이를 맞춰줘야 할 시기이다. 교역자, 교사로 사역하는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눈높이가 청소년들의 눈높이와 수평을 이루고 함께하는 올 한해가 되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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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신앙교육나침반] 2022년 온가족 형통공식 “하나님 + 가정 = 하나님 담는 가정”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말씀은 우리의 존재목적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자로 설계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자로 살지 못하면 우리는 망가지는 인생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자로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하나님의 형상자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 닮도록 흉내 내면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담아야,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담는 그릇으로 만드셨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내고,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담고,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부모는 자녀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부모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부모가 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생명을 담지 않는 부모는 죽이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며, 이웃을 아프게 하는 부모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지 않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며, 이웃을 품지 못하는 부모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해답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을 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가득 담는 순간,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가득하게 된다. 하나님과 말씀을 담는 하루는 하나님을 담는 하루가 된다. 그 하루는 가족을 살리는 하루, 가족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하루가 된다. 그 하루는 이웃을 살리는 하루, 이웃을 사랑을 품을 수 있는 하루가 된다.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놀이터의 1월 주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만드셨어!”이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찰흙으로 각자의 그릇을 만들어본다. 하나의 덩어리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하려면, 엄지손가락으로 찰흙의 도톰한 곳을 힘껏 꾹꾹 눌러서 옴폭하게 만들어야 한다. “비우자! 비우자! 나를 비우자!” 가족들은 이렇게 말하며, 찰흙으로 그릇을 만든다. 속에 가득 찬 것을 꾹꾹 누른 후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을 담자! 하나님을 담자!” 가족들은 그릇의 옴폭한 곳에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기록된 사랑 스티커와 요한일서 5장 12절 말씀이 기록된 생명 스티커를 가득 붙여 담는다. 그리고 가족들은 나와 서로의 신체에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스티커를 붙여준다. 지치고 힘든 우리 아빠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 우울한 우리 엄마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 학업 스트레스로 늘 긴장하는 첫째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이라고 힘차게 외친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은 우리를 형통하게 하는 형통버튼이다. 가족들이 서로의 몸에 붙어있는 형통버튼 스티커를 누르며 박장대소하며 웃어본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가득하면, 이렇게 모든 자극에 “하하하”로 화답할 수 있다. 어떠한 환경에도 “하하하”로 감사할 수 있다. 2022년을 시작하는 지금, 온 가족이 마주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형통버튼으로 가득 채워지는 뜻 깊은 시간을 꼭 마련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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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교회에서 자란 아이가 교회의 미래다
    생각해보면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회에 처음 나간 이후로 항상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너무도 당연하게 매일같이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을 던져놓고 교회 선배들과 어울려서 놀았습니다. 그때는 찬양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고 기도회도 놀이나 다름없이 즐거웠습니다. 형들에게 기타 코드를 배우고 누나들에게 어깨너머 배운 피아노를 뚱땅거리면서 놀다가 어떤 때는 혼자 작곡을 해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배가 고프면 교회 식당에서 남은 찬밥을 꺼내서 먹고, 운 좋은 날에는 계란을 득템하여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학생회 임원을 하고 문학의 밤이나 수련회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들을 맡게 되었습습니다. 그러면서 성극 대본도 쓰고 연출과 연기도 하고 교회에서 성경암송대회, 성경퀴즈대회를 하면 당연히 대표로 나가곤 했습니다. 노회에서 중고등부 찬양대회나 중창대회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연습해서 출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숨겨진 재능도 발견했습니다. 학교에서 알 수 없었던 재능을 교회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성극 대본을 쓰느라 제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때 찬양을 좋아하던 친구는 지금도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있고, 인간관계가 좋던 친구는 지금도 영업일을 하며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 친구들은 각자 그때 발견한 재능으로 다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꿈을 찾은 것입니다. 지금도 저에게 요한복음 15장은 특별한 말씀입니다. 초등학교 때 성경암송 대회에 나가서 외웠던 말씀입니다. 늘 일하시느라 퇴근 후 밤이면 다리가 아프시던 어머니 종아리를 두드려 드리면서 말씀을 외우던 그 시절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다 교회 행사 있으면 나가서 자연스럽게 현수막 걸고 포스터 붙이고 토요일이면 교회 사무실에 주보 나오면 주보 접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의 친구들은 우리를 농담삼아 ‘교숙자’라고 불렀습니다. 교회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숙자들이 다 같이 옹기종기 앉아서 누가 주보 예쁘게 빨리 접나 내기하며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집처럼 여기던 제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수요예배는 당연히 참여해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제게 그때 담임 목사님의 수요 성경 강해설교가 다 이해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돌아보면 그 딱딱한 교리 설교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랐는데 계속 교안을 받아 적으면서 매주 듣다보니까 말씀하시는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궁금해지고 성경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학교 갈 때도 가져가서 쉬는 시간마다 꺼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성경 읽는 아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반에 새로 전학 온 친구가 새로 나갈 교회를 찾다가 학교에서 성경 읽는 제 모습을 보고 너희 교회 가고 싶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전도까지 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교 공부보다 성경이 더 재미있고 성경이 계속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수요일에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 시간에 담임목사님 강해 중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으면서 말씀 해석의 원리를 배우고 나름대로 적용해보면서 막힌 부분을 풀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수요예배를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매주 개근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할 때면 본당 뒤편에 혼자 앉아있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교회를 말씀으로 세워가는 저의 바탕이 되어준 그 시절의 제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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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1-12-18
  • [다음세대칼럼] ‘영향력을 회복하라’
    우리는 영향력이란 단어를 힘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높은 곳에 있고, 우러러보는 곳에 있어야만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I는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편이 아니었다. I의 장래희망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그런 아이였다. 1학년 입학해서 진로상담을 하면서 “목사님 나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대학원에 갈려고 합니다. 꼭 좋은 대학에 가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부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었다. 장로의 아들이고, 성실하고 반듯한 녀석인지라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성실했다. 자습도 빠지지 않고, 수업 시간에 졸지도 않고, 정말 성실하게 공부를 했다. 1년의 시간이 지나고 2학년 5월에 I가 나를 다시 찾았다. 낙심한 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목사님, 속이 상합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목사님은 아시잖아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놀지도 않고 공부했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는데 저는 성적이 안 오릅니다. 공부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데...다른 친구들이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너처럼 하면 하버드간다’고 할 만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항상 4등급입니다. 속도 상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목사님 너무 힘듭니다.” 그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I의 몸부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I야, 네 맘 충분히 알 것 같다. 얼마나 속이 상하겠니.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자. 만약에 네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와서 성적도 1등급 나오고, 네가 가고 싶어 하는 SKY나 H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가서 목사가 되었을 때, 훗날 네가 나 다른 것 할 수 있었는데 목사가 되었어 하며 교만해질 수도 있을 가능성을 하나님이 미리 막아 주셨다고 생각하자. 네 생각대로 노력해도 안되었지만, 하나님이 너에게 최선의 것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고 생각을 하자.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지켜보자. 또 네 성적이 4등급이라 하더라도 너는 여전히 지금처럼 그렇게 공부하면 좋겠다.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 같다.” 그 후로도 I는 이전과 똑같이 공부했다. 박수를 쳐줄 만큼 성실하게 공부했다. 이 정도가 되면 성적이 올랐다가 되어야 ‘하나님이 일하셨다. 믿음의 사람이 잘되었다’ 할 수 있을텐데 I는 여전히 4등급이었다. 나는 안타까웠고 부모님들은 실망하셨다. 하지만 3년의 시간 속에 얻은 것도 많았다. 친구들에게 신뢰를 얻은 것이다.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금 I는 기독교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제 신학대학원을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영향력은 이런 것이다. 앞서 있고, 보여줄 것이 있어야만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본,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것들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늘 이것을 강조한다. 다르게 살아라. 변두리로 가라. 손해봐라. 그리스도인의 대헌장이라고 하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다. 소금과 빛이 의미하는 것은 같다. 세상 속에 스며들어서, 그리고 세상 속에 드러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영향력은 복음적인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향력의 의미 안에서 넓은 의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명령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세상에 웃음을 주는 존재들로 키우고 싶다. 그리고 우리 학교 안에 있는 기독학생들이 기독학생의 선한 영향력을 회복해서 교실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 가운데 주변을 밝게 만드는 등대같은 존재들로 세우고 싶다. 어려운 시간 가운데 성탄이 또 다가온다. 다가오는 성탄에 세상을 밝히는 제자들이 하나 둘씩 더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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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8
  • [신앙교육나침반] 온 가족 성탄 놀이, 이렇게 해보세요
    거센 파도를 마주하지 않고는 풍랑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이므로 죄와 함께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가운데 고통 받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로 몸소 오셨습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죄 가운데 고통 받는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혹시 우리의 자녀들이 성탄절을 흥미로운 축제 정도로만 여기고 있지 않을까요? 성탄 절기에 온 가족이 마주앉아, 죄인인 우리와 함께하러 오신 예수님, 우리에게 생명 주러 오신 예수님, 우리를 자녀삼아주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 열매 맺게 하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이 기쁜 소식을 감사로 받는 성탄절 되기를 소망합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레인보우 스카프(옷, 양말 등)를 이용하여 온 가족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놀이로 경험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각각의 스카프에 담긴 색깔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연결하여 온가족 성탄 놀이를 즐겁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 스카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 주황색 스카프(노란색과 주황색이 혼합된 색깔)는 ‘우리와 함께하러 오신 예수님’, 노란색 스카프는 ‘자녀 삼아주신 예수님’, 초록색 스카프는 ‘영원한 생명 주러 오신 예수님’, 파란색과 남색 스카프(바다와 하늘을 떠오르게 하는 색깔)는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보라색 스카프(포도열매를 떠오르게 하는 색깔)는 ‘열매 맺게 하신 예수님’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쁜소식 스카프 찬양(*향기나무 유튜브 채널 참고)을 부르면서 색깔과 복음의 기쁜소식 내용을 연결합니다. 이제 스카프를 던지며 “감사!”로 외치며 받기 놀이를 해봅니다. 스카프를 던져 혼자 받기 후 두 사람이 주고받기, 세 명이 릴레이로 진행하면서 기쁜소식 스카프를 감사로 받아봅니다. 또한 기쁜소식 스카프를 허리에 달아 꼬리를 만든 후, 상대편의 기쁜소식 꼬리를 잡는 놀이를 진행합니다. 이때 기쁜소식 스카프의 색깔이 상징하는 주제어를 외쳐야 스카프를 가질 수 있습니다(빨간색: 십자가, 주황색: 함께, 노란색: 자녀, 초록색: 생명, 파랑남색: 하나님, 보라색: 열매). 가정에 있는 다양한 색깔의 옷이나 스카프, 양말 등을 이용해서 이와 같이 기쁜소식 놀이를 진행해보세요. 기쁜소식을 감사로 받고 잡는 놀이를 하면서 온 가족 얼굴에 어느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사의 기쁨의 미소가 가득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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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8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삐에로를 따라가 목사가 된 꼬마
    오래 전 일입니다. 한 아동부 전도사님이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노방전도를 계획하여 부서 교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중 한 사람이 삐에로 복장을 하고 큰 북을 메고 둥둥 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초청하면 온 동네 애들이 좋아하면서 다들 따라올 거라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한 여름이라 무척 덥기도 하고 삐에로 복장이 좀 우스꽝스러워서 누구도 쉽게 나서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 교사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자원을 하고 나섰습니다. 드디어 이 청년교사가 삐에로 복장을 하고 북을 치며 나갔습니다. “오세요, 오세요. 여름성경학교 오세요!” 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온 동네에 아이들이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몰려오기는커녕 다 도망가고 멀리서 숨어서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를 보고 웃는 것 같고 날은 더워 땀은 뻘뻘 나는데 같이 나간 교사들마저도 창피하다며 다른 길로 빙 돌아가는 걸 보고는 이 교사가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가까스로 동네 한 바퀴를 다 돌고 교회에 도착하자 이 청년교사는 북을 내던지고 삐에로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다짐을 합니다. “내가 다신 이런 전도 하나 보자. 전도사님이 하자고 하는 거 절대 안 해. 봐, 아무도 안 오잖아.” 그런데 그때, 교회 예배실 문을 빼꼼히 열며 한 꼬마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와, 삐에로가 옷을 벗으니 그냥 못생긴 아저씨다.” 그럽니다. “나 아저씨 아냐. 형아야, 형아.” 청년 교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여전히 말했습니다. “자기는 형아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냥 아저씨다.” “근데 너 처음 보는 아인데 어느 부서야?” “부서가 뭔데요?” “부서도 몰라? 너 우리 교회 애 아냐?” 그랬더니 “교회가 뭔데요?”라고 어리둥절합니다. “너 교회 처음 온 거야? 그럼 여기 어떻게 왔어?” “아저씨가 오라면서요. 둥둥 여름이 어쩌고 저쩌고 오세요, 오세요. 했잖아요.” “너 정말 나를 따라 온 거야?” “그럼요. 진짜 이상한 아저씨네. 자기가 오래 놓고.” 청년교사는 이 아이를 한참 물끄러미 보더니 말없이 아이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감사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아무도 없다고 아무도 안 올 거라고 불평만 했는데 하나님이 이 어린 생명을 보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를 여름성경학교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1학년 삭개오 반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성경학교를 개근했습니다. 그리고는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중등부 총무가 됐습니다. 고등부에는 고등부 회장이 되더니 고3이 돼서 신학을 하기로 마음먹고 장신대 신학과를 갔습니다. 그리고는 장신대 신대원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전도사님이 되어서 사역을 하다가 목사 안수를 받고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은 부산의 성민교회 담임목사가 되어서 큰 사랑을 받으며 다음세대를 살리는 목회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렇게 잘 알까요? 예,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꼬마입니다. 이때 처음 나간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예수님을 만나 천국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가 되어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삐에로 선생님이 참 고맙습니다. 그 선생님 덕분에 교회를 가서 하나님을 만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세대와 교사들에게 사랑의 빚을 안고 분홍목사가 되었습니다. 분홍목사란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분, 그 분을 전하는 홍목사”의 준말입니다. 이제부터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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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1-12-03
  • [다음세대칼럼] 진리가 무엇인가?
    Y대에 면접을 앞둔 O가 면접 지도를 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O가 준비한 예상 질문으로 3~4시간 도움을 주었다. 이틀 뒤, 면접을 마친 O가 서울에서 전화를 했다. “목사님, 면접 대박입니다. 진짜 대박입니다!” “와 그라노? 준비한 것이 나왔더나?” “아뇨. 하나도 안 나왔습니다. 내가 준비한 것도 안 나오고, 목사님이 예상한 것도 안 나왔습니다.” “시끼야, 그런데 어떻게 면접을 잘 봤단 말이고?” “어쨌든 잘 봤습니다. 그럼 내려가서 뵐게예. 내일 커피 한잔 사 주이소.” 그다음 날 부산대 앞 별다방에서 O와 만났다. “자세히 말해 봐라. 어떻게 된 거고?” “목사님, 면접관이 뜬금없이 ‘자네는 진리가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종교적인 답을 해야 합니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야 합니까?’하니까 면접관이 웃으시면서 ‘두 가지 다 해 봐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냥 제 생각을 이야기 했습니다. ‘먼저 종교적인 답은 기독교라고 배웠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만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돈 벌어서 남 주는 것이고,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더니 면접관이 웃으면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고 물으시기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면접관의 얼굴을 보는데 왠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면접만으로 합격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O는 자신이 장담한 대로 Y대에 합격했다. 면접관의 질문은 무척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진리가 무엇인가?’ 누구나 생각해 볼 만한, 또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우리 학교 강당 입구에는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들은 날마다 이곳을 오가며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무언가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아이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진리와 비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다르다. 수업 시간에는 진리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석해서 아이들과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할 상황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에 대해 가치를 두고 고민하도록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이다. 명절만 되면 먹을거리가 풍성해진다.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간식이 바로 강정이다. 강정은 부드러워 먹기도 좋고, 맛도 달콤하여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그런데 강정을 쪼개어 보면 그 속은 텅텅 비어 있다. 그래서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 없는 사람을 일컬을 때 ‘속 빈 강정 같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속 빈 강정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성형 신드롬, 외모 지상주의, 스펙 열풍 등 사회의 분위기가 온통 외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연약한 청소년들이 그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인절미 같은 존재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속이 텅 빈 강정 같은 인생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인절미처럼, 사회 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진리로 속을 꽉꽉 채워 이 시대를 바꾸는 프론티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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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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