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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몸으로 경험하며 가슴으로 느끼는 교육을 꿈꾸며⋯
    <땀을 뻘뻘 흘리고 산을 오른 후 시원한 물 한 잔 벌컥벌컥 마시기, 해가 질 무렵 모래를 밟으며 시원한 바닷가의 공기 느끼기,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엄마를 발견한 후 와락 안기기, 보조바퀴를 뗀 후 신나게 두 발 자전거로 달리기>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육아 프로그램들을 보면 두 가지를 느낀다. 하나는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구나!’이고, 또 하나는 ‘사람을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할텐데…’라는 생각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화려하게 세팅된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닷가 모래를 만질 때 느껴지는 오묘한 촉감과 약간의 지저분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이가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부모가 알아서 제공하면 아이는 무엇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까? 세상은 물질만 있으며 뭐든지 다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줄기차게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 인간되는 가장 기본적인, 예를 들어 사랑, 자존감, 배려, 충만과 같은 마음의 자양분들은 물질 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그 다른 요소 중 하나는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경험이다. 5년 전, 1년 동안 제주도에 살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100일 정도 될 무렵이었다(막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외출이 가능한 한 달 후부터 여기저기 함께 다녔다). 그 때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기’였다. 내가 본 제주도는 발을 딛는 모든 곳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환상적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고, 또 차를 타고 10분 정도 더 가면 저기 오름직한 동산이 반기고 있었다. 절물자연휴양림같은 곳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 매일 다른 매력을 뿜어내기에 언제든 가도 새로웠다. 집 안에서 장난감을 갖고는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노는 것을 지겨워하는 아이들이 밖에 풀어 놓으면 한 두시간은 물론이고 한 나절 내도록 놀고 또 노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밖’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밖에 나갔을 때 마음껏 상상하며 어디든 뛸 수 있는 자연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싸한 자연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최적의 교육 장소였다. 최근에 오랜만에 바닷가를 찾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을 보며 “오랜만에 아이들과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자”며 온 가족이 갑자기 바다로 간 것이다. 바닷가에 도착 후 처음에는 그 주변을 산책했다. 새롭게 꾸민 구름다리(?) 같은 것도 건너고, 돌도 몇 개 주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래 위를 걷고 싶다고 해 양말을 벗고 본격적으로 바다 곁에서 맴도는 순간 아이들의 숨은 뜻이 드러났다. “엄마, 바닷물에 발만 살짝 담그면 안될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닷가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은 그 순간 이미 아이들이 바닷물에서 놀고 있으며 결국 옷이 다 젖을 것을 경험적으로 예상해야 한다. ‘그래, 너희들이 여기까지 왔으면서 어찌 그 말이 나오지 않나 싶었다’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아직 날이 추우니 10분 정도 정말 발만 담그자”라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받아내고 아이들을 물로 보냈다. “오빠, 진짜 시원하지. 우리 안으로 더 들어가자”부터 시작해 “우리 물이 오면 4명이 동시에 뛰는 거 하자”까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난치고 웃고 떠들며 달이 저 멀리 보이지 않을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그렇게 놀았다. “엄마,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매일 매일 밖에 나가서 놀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한결같이 밖에서 또 놀고 싶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그 날 아이들의 일기장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또 가고 싶다” “바다가 너무 좋다” 등 기분 좋은 단어만 가득 써 놓았다.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밖에서 놀기’. 나는 앞으로도 상황이 되는 한 이 교육 방법을 추구하며 몸으로 경험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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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6-25
  • [신앙교육 나침반] 1/168은 위험하다
    1/168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분모 168은 하루 24시간에 일주일을 곱한 시간의 총합입니다. 즉, 168은 우리가 일주일 동안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입니다. 분자 1은 자녀들이 신앙교육을 위해 보내는 평균 시간입니다. 이 한 시간은 주일에 주일학교 예배와 후속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일주일 168시간 중 평균 1시간 영적인 영향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학교는 일주일에 겨우 한 시간 가량 자녀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인 167시간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생애의 주기(영아기-노년기)마다 부모의 미세한 표정과 반응을 포함한 모든 생활방식과 태도에 강력한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는 자녀에게 그대로 전수되며, 그것은 자녀들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영향력이 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악을 쓰고 대든다고 고민하는 부모와 상담을 해보면, 문제의 원인은 바로 악을 쓰고 싸우는 부부에게 있었습니다. 서로를 무시하고 공격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는 자신의 부모와, 미래의 가족에게 똑같은 공격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사는 아버지 가인의 영향력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예배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는 일상 속에서 결코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가인의 자녀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까? 창세기 4장 16절 이하에 보십시오. 가인의 자녀들 역시 하나님이 없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오늘 하루 어찌하면 나의 이름이 드러날까? 어찌하면 즐겁게 살아갈까? 어찌하면 편안하게 살아갈까?’를 궁리하며, 그것을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갔습니다. 그들의 일상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경건한 아버지 셋의 자녀들을 보십시오. 겉으로 보기에 웅장한 성도, 화려한 업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고 길렀습니다. 자녀들과 씨름하는 바쁘고 분주한 일상의 자리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르며 동행했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영향력은 자손 대대로 전수되어 타락한 세대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은 노아에게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가족들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게 하려고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과중한 업무를 해내며, 틈나는 시간은 각종 미디어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갑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노스리지(CSUN) 연구에 따르면 가정에서 부모들과 자녀들이 나누는 ‘의미 있는 대화’는 주당 평균 3분 30초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교감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크리스천 부모들은 다를까요? 대답은 생략하겠습니다. 크리스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미디어의 노예가 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부모들, 그리고 미디어로부터 강력한 영향력을 받고 있는 자녀들! 지금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자녀들과 유일하게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며 의미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는 부모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주 앉아 말씀에 반응하는 시간을 꼭 마련하셔야 합니다. 교회지도자들은 이를 위해서 부모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167시간의 일상이 되도록 교육하며 적극 도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자녀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부모의 일상으로부터 생명의 영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들이 일상 속에서 자녀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족중심의 신앙교육 컨텐츠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한 시간은 세상의 강력한 영향력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생명의 고자극이 되어서 부모와 자녀의 삶을 형통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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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1-06-25
  • [다음세대 칼럼]하나님 이게 뭡니까?
    2008년 3월 마지막 주일 이삭교회 고등부 교역자로, 교육목사로 부임하게 됐다. 온천제일교회를 사임하고 브니엘고등학교 교목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교회를 찾던 중 평소 좋아했던 정진섭 목사님(이삭교회 담임목사) 밑에서 사역을 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목사님께 부탁 전화를 넣었다. “목사님, 저 좀 써주십시오. 지금은 이삭교회에 제가 섬길 자리가 없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에 집중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자리가 비면 저 좀 불러 주십시오” 전화를 드린 그 주간에 사역을 잘 하시던 부목사님이 갑작스럽게 사임을 하시게 됐고 학교 부임한지 한 달 만에 긴급으로 이삭교회에 부임을 하게 됐다. 내 앞에 사역을 했던 목사님이 사역을 잘 하셨던 것 같다. 교사들과 학생들의 신망이 높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갑작스런 사정으로 잘 하던 부목사가 사임을 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목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부임을 하니 고등부 전체가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모양이 마치 내가 잘 있던 사람을 밀어낸 분위기였다. 첫 교사모임 분위기를 아직 기억한다. 쌔~한 분위기, 요구조건만 늘어놓던 교사들의 모습, 한 쪽에서는 ‘당분간 우리에게 웃음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는 말들. 왠지 내가 오면 안 되는 곳에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임한 첫 주일에도 고등부 예배 대표 기도를 하던 집사님이 사임한 목사님에 대해서는 눈물로 기도를 하시는데 그날 부임한 목사인 나에 대해서는 기도를 하지 않기에 그 때의 난감했던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이때는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기댈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동네북 같은 신세였다. 첫 예배를 드린 주일 고등부 아이들의 숫자가 20여명 남짓 됐다. 내 사역이 원래 항상 바닥칠 때 부임하는 것이 주특기였던지라 하는데 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설교와 제자훈련에 집중하고 아이들하고 친해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스럽게 학교에서 아이들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교목실을 찾아 주고, 와서 농담하고 놀다가 가고, 그리고 몇 안 되는 이삭교회 아이들이 찾아와서 말동무 해주며 그렇게 학교와 교회에서의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들의 지지가 늘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도움을 받은 아이들도 늘어났고, 건빵으로 인해서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2008년 4월 20여 명되던 아이들이 8월을 넘어서면서 70-80명의 인원으로 급성장을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교회로 모이기 시작한 아이들이 제자훈련을 받고, 토요 기도회, 주일예배에 시간이 지나도 열기가 식지 않고 1년 이상을 계속 이어갔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2009년 세례식을 하는데 고등부 아이들 50여명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대부분 브니엘의 아이들이었다. 세례 받는 모습을 보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나는 이 아이들 전도한 적도 없고, 교회 오라고 한 적도 없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찾아와서 교회를 나오더니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세례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이게 뭡니까? 하나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첫 수업에서 말했던 것처럼 한 번도 전도를 한 적도 없고, 교회 이야기를 한 적도 없기에 나는 ‘하나님 놀랍습니다. 하나님 정말 놀랍습니다’하는 고백만이 나올 뿐이었다. 이삭교회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청소년들이 세례를 받은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선 글들과 같이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청소년들은 사람보고 예수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람 뒤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더라는 사실이다. 이 평범한 진리를 교회학교가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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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1-06-25
  • [신앙교육 나침반]부모를 일으켜 세우는 교회학교가 되어라!
    아포리아(Aporia)라는 그리스어로 ‘통로가 없는 것’, ‘길이 막힌 것’을 뜻합니다. 즉, 더 이상 길이 막혀서 나아갈 수 없는 상태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는 지형적 특성상 항해술이 발달했는데, 선원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좌초되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아포리아!’라고 불렀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2014년 7월 28일 생존학생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더 위급한 상황에 대한 지식이 많으니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선실에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준 어른은 없었습니다…” 아포리아 상황에서 그 누구도 아이들을 이끌어 출구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갔고, 수많은 자녀들이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교회와 가정의 신앙교육 현장은 아포리아(Aoria) 상황입니다. 수많은 교회학교 문은 닫힌 지 오래되었습니다. 설령 교회학교가 현장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드리는 상황은 예전과 다릅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지키며 앉은 현장에서는 예배와 소통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설교자와 선생님의 표정을 보지 못하여 더욱 주의가 산만하며, 신나는 대그룹 활동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아예 진행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자녀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있을까요? 말씀을 잘 전수받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은 교회교육 현장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어린자녀가 지금 당장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린자녀를 단지 교회교육의 대상으로만 봅니다. 즉, 어린자녀를 지금 당장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려내야 할 성도로 보지 않고, 복음을 연습하고 예배를 연습해야 할 교육연습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부모님들은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만 종식되면, 자녀의 신앙교육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자녀의 영혼구원에 대한 절박함이 없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코로나키즈들이 교회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하고,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지 못하는 현실에 가슴을 치며 몸부림치는 부모들이 없습니다. “얘들아! 여기가 생명의 출구란다. 어서 나가자!”라고 외치며 죄에 빠진 자녀의 영혼을 구해내는 부모가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하루속히 절박함과 시급함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부모들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무기력함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이에 자녀들의 영혼을 구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나가버리게 됩니다. 여호수아 이후의 자녀세대들이 그러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1세대들은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만난 하나님을 전수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2장 10절 말씀은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놀라운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세대의 자녀들이 여호와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하였습니까? 그들이 자신들이 만난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전혀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공기 비상사태가 되면, 어린자녀를 동반한 보호자는 반드시 보호자 자신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후에 자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야 합니다. 보호자가 살아 숨 쉬어야만 어린자녀를 숨 쉬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학교는 쓰러져있는 부모님들의 영혼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일에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녀세대들의 마주하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 바로 부모입니다. 교회는 그러한 부모들이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자녀들에게 생명의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지원하며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생명의 능력으로 일어선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이끌고 생명의 출구로 달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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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1
  • [다음세대 칼럼]개독이 기독으로
    개독. 어느새 이 단어는 낯익은 단어가 되어 버렸다. 그리스도인들이 영향력을 잃어버린 순간 ‘기독’은 ‘개독’이 되어 버렸다. 14년전 브니엘고에 부임했을 당시 브니엘의 아이들은 브니엘고에 배정되는 순간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아이, 재수 없어!’ 첫째는 기독교 학교라는 이유이고, 그 다음이 교통이 안 좋다는 이유이고, 마지막으로 소문이 안 좋다는 이유이다. 심지어 브니엘을 브니헬(hell)로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학교에 부임한 이후 줄곧 나의 목표는 개독을 기독으로 다시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개독이 다시 기독으로 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면 된다. 기독 교사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자연스레 개독은 기독으로 바뀔 것이다. 간혹 제자들 중 학생으로서 하면 안 될 일을 하다가 적발이 되어서 경찰에 잡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집에 연락할 가족이 없든지, 도저히 집에 연락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제자들이 마지막에 보호자로 선택하는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렇게 경찰서를 드나들면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얻게 되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아웃사이더라고 부를 수 있는 녀석들이 목사의 편이 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건들거리는’ 녀석들이 나를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고개만 까딱하던 녀석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거의 조폭의 ‘형님급 인사’로 허리를 숙였다. 사실 이들은 내가 수업을 할 때 가장 건들거리면서 방해만 하던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자기 친구들을 도와주고 나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스스로 들을 준비를 하고, 나와 눈 맞춤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학교 욕을 하거나, 교회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날 이후 J가 말했다. “목사님 이제 개독교라고 안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회 잘 나가 보겠습니다.” 물론 J는 교회에 성실하게 출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3년 내내 잊을 만하면 주일 예배 때 나타나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가곤 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였다. J는 졸업할 때까지 보호감찰을 받으며 부모와 교사의 속을 참 많이 썩였다. 졸업도 하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2,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포기하지 않고 잡아 주셔서 무사히 졸업을 했고, 군대를 다녀왔고 이제는 철이 들었다. 그는 군대에서 가끔씩 내게 전화를 했다.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시커먼 사내 녀석이, 그것도 까까머리 군인이 보고 싶다고 하니 몸에 닭살이 돋기는 했지만, 마음은 무척이나 흐뭇했다. 이처럼 더이상 개독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고, 고비의 순간에 교회를 찾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은 삶이다’라는 교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전도와 학원의 복음화가 목적인 삶이 아니라, 개독에서 기독으로, 브니헬에서 브니엘로 부르는 아이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하며 ‘몸으로’ 승부하고 있다. 한 제자가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싶다. “교목 샘. 저 기억나세요? 고등학교 때 제일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화가 나서 유리를 깨고, 팔에 유리를 꼽은 채 상담하러 갔더니 목사님께서 그걸 또 하나하나 빼 주셨던 거였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그렇다. 아이들은 어떤 말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를 기억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개독이 기독이 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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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1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하나님, 우리 엄마 이번 책 많이 팔려서 맛있는거 많이 사줄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현재 1인 출판사를 하고 있다. 아직 출판사가 자립할 상황이 아니라 다른 일도 이것저것 하지만 원래 나의 주 업무는 출판이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책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을 잘 알아서 내가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글을 쓰거나 교정을 보고 있으면 “엄마, 이번에는 무슨 책 나와?”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아울러, 몇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은 엄마가 책을 새롭게 내도 그다지 큰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월 31일, 새 책 출간을 앞두고 그 전 주일에는 밤에 거의 잠을 못자며 마지막 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다. 그 날 밤에도 아이들이 엄마가 바쁜 것을 아는지 스스로 샤워를 하고 자기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중학교 1학년인 큰 아이와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가 나의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빠, 엄마 이번에 새 책 나오는가봐. 잠도 못자고 엄청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책이 나오면 뭐해? 누가 그 책을 읽는다고…” 이 말을 듣는 순간, 큰 아이에게 당장 뛰어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엄마 책을… 뭐라고…”라며 큰 소리치고 혼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큰 인내심을 발휘해 참고 그 다음 대화를 이어 들었다. “오빠,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책이 잘 나오고 사람들도 많이 봐야지.” 그래, 그래, 역시 딸 밖에 없다. 저렇게 엄마 상황을 이해하며 이쁜 말을 해주니 없던 힘이 저절로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 때, 그 다음 말이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오빠, 오빠도 엄마 책 나올 때 기도 많이 해. 나는 매일 기도하고 있어. 하나님, 우리 엄마 이번 책 많이 팔려서 우리에게 맛있는거 많이 사 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그러니까 오빠도 기도해.” 엄마가 하는 일에, 엄마를 위해 진심으로 응원하는 아이들의 기도소리를 들을 때면 일을 하다가도 멈추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사실,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가급적이면 내게 주어진 것만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이럴 때는, 어느 순간 아이들이 나의 영역에 훅 들어올 때는 조심스럽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출판을 처음 시작할 때, 여러 목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만든 신앙 도서를 우리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우리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믿음의 글들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실제로 중학교 1학년인 큰 아이는 가끔 내가 출판한 책들을 보며 이런 저런 피드백을 해주기도 한다. 순전히 자기 생각으로. 이런 나의 마음을 모아 일주일 전 또 한 권의 책이 엠마우스를 통해 출간되었다. ‘사회비평에세이’라는 비교적 교계에서는 접하기 힘든 분야이지만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편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번에 나온 ‘시선’이라는 책이 (저자인 홍석진 목사님의 표현을 빌려) 예기치 않았던 시대 가운데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길 바라며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표현을 빌려) 책이 많이 팔려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줄 수 있기를 희망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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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6-11
  • [교사의 힘] “관계중심의 사역”
    다음세대를 섬기는 사역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다음세대를 향한 사역이 중요하고 더 이상 다음세대를 놓칠 수는 없는 상황이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교회가 다음세대를 중요하게 외쳤지만 다음세대들의 마음에 그것이 얼마나 다가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세대는 표어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감동이 됩니다. 감동이 되지 않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관계사역은 두가지 핵심적 희생이 따릅니다. 바로 시간과 물질입니다. 둘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장소나 예산이 아니라 교사의 헌신을 통하여 그들을 만나고 떡복이라도 함께 하는 시간이 사랑한다 귀한다라는 말 백번보다 강합니다. 물론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않지만 사람만나는 것이 더 그리워진 이 시기에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집니다. 줌을 사용하고 아이들에게는 배달을 시켜서 함께 보면서 한끼 식사를 하는것도 아이들에게는 효과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이제 본 칼럼을 통하여 조금더 구체적인 관계사역에 대해 글로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다음세대는 말로 살릴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관계와 나눔으로 살립니다. 그 현장에는 반듯이 교사와 사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친구들에게 큰 영향을 받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항상 존중할만한 어른을 찾습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이 서계십니다. 지속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다음세대에게 다가가는 교사가 있는 한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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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1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부모로서, 인간으로서, 한계를 만났을 때
    밤 11시 40분. 월요일과 화요일(3월부터 5월, 9월부터 11월)에 내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돌봐야 할 어린 아이가 있는데도 엄마가 그 늦은 시간에 들어간다고? 일주일에 두 번이나 자정 즈음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내게 이런 말들을 하고, 나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돌려서 내게 이런 분위기로 말을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러게요. 참. 그렇네요” 라고 얼버무리고 말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이런 상황을 보내야 할 때라 참고 견디며 있는 중이다. 그런데, 항아리에 물이 차고 차다 한 바가지만 더 부으면 흘러 넘치듯, 이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이 차고 차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감정이 차고 넘쳐 나의 한계를 만나는 일을 종종 경험한다. 지난 월요일 밤이 그런 날 중 하루였다. 그날도 역시 자정 무렵 집에 들어가니 둘째 아이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평소에는 내가 늦게 들어가는 날에는 아이들이 자고 있다.) 이유를 들어보니, 모르는 수학, 영어 숙제가 있어서 엄마와 같이 하려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일은 등교하는 날이라 일찍 잠들어야 하는 아이가 숙제 때문에 그 시간까지 엄마를 기다렸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답답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몰려왔다.(물론 남편이 그 시간에 집에 있기에 숙제를 종종 도와주지만, 둘째는 꼭 엄마랑 같이 숙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하고 아이 책상에 앉아 꼬박 1시간 반을 함께 숙제를 했다. 4학년이 되면 곱셈 나눗셈의 단위가 높아져서 아이들이 힘들어하는데, 우리 둘째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이고, 발음하기 어려운 영어가 많아지는 것 또한 아이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숙제를 다 끝낸 아이를 재우고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었다. 온 종일 해야 할 일을 마치느라 몸은 엄청 피곤한 상태인데 이상하게 정신은 말짱했다. 아니, 정신이 말짱했다기 보다는 뒤엉킨 감정의 실타래가 피곤한 육체보다 더 커서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또 다시 한계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일도 하고, 집안일도 뚝딱뚝딱 잘하고, 아이들도 매끈매끈하게 잘 키우는 슈퍼맘이 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결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도 완벽하게 잘하지 못하면서, 집안일은 엉망이고, 아이들은 하나둘 부족한 부분이 있는 약할 대로 약한, 미숙할 대로 미숙한,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를 만나는 내 모습을 또 발견한 것이다. 이럴 때,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감정은 다름 아닌 ‘자괴감’이다. 이상적으로는 잘할 수 있다고 큰 소리 뻥뻥 치면서 실제로는 여기저기 구멍이 펑펑 터지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은 마음,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당장 연기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자괴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날 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다시 이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하나님, 오늘도 나는 나의 한계를 만나며, 또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를 만져 주시고, 나에게 하나님의 긍휼함을 주셔서 하루하루 은혜로 살아가게 인도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한 다음, 이런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주님이 있다는 것에, 내 모든 감정과 상황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나의 주님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나는 부모로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나의 한계를 만날 것이고 그런 순간마다 나의 한계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종종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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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5-21
  • [신앙교육 나침반]온 가족 놀이로 경험하는 “Godly Family”
    하나님이 보시니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도록 지음 받은 부모들이 죄악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형상자가 아닌 사탄의 형상자로 살았습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과 비례하여 죄악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비신앙적이고 세속적인 결혼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됨의 가정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경건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아버지 ‘노아’에게 임하였습니다. 노아는 에녹의 증손이며, 므두셀라의 손자이며, 라멕의 아들입니다. 에녹의 ‘동행’ 신앙은 그의 자녀와 손자, 그리고 증손자에게까지 대대로 이어져 내려갔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이들은 제단을 쌓고 제물을 올리는 순간만 하나님을 찾고 구했지만, 노아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세상의 풍조를 따라 세상의 일만 생각하며 불경건하게 살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당대에 완전한 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멸하기에 앞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를 긴급히 부르셨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히브리서 11장 7절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으니라.” 즉,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그들의 가족을 구원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만 붙잡고 아무 징조도 없는 가운데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임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귀 가정도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 붙잡고, 하나님 말씀 드러내는 경건한 부모와 경건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지적, 논리적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린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자녀들과 마주하여 온 몸으로 성경놀이를 함께 경험해보세요. 몇 가지 놀이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종이벽돌을 준비하여서 ‘말씀유산 릴레이 놀이’를 해보세요. 가족이 둥글게 모여 앉아서 아빠(또는 엄마)가 말씀스티커를 블록에 하나씩 부착한 후에 옆으로 전달합니다. 이때 반드시 가장을 중심으로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말씀벽돌을 전달합니다. “여호와께서”라고 말씀구절을 또박또박 외치면서 옆에 있는 엄마에게 전달하면, 엄마도 “여호와께서”라고 말하면서 자녀에게 전달합니다. 마지막에 말씀을 받은 자녀가 말씀의 벽돌을 순서대로 쌓아서 창세기 7장 1절 말씀을 완성해봅니다. 놀이를 하면서 귓속말로 주제를 이야기해주세요. “전하자! 전하자! 말씀을 전하자! 아빠, 엄마는 오늘하루 어찌하든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너희들에게 전할게!” 다음으로 ‘말씀밥 보리밥’ 놀이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마주 앉은 후 한 명이 양손을 펼쳐 말씀밥 잡을 준비를 합니다. 다른 한 명이 말씀 스티커를 부착한 말씀 벽돌을 들고 ‘말씀밥’과 ‘보리밥’ 중 한 가지를 외치며 공략을 합니다. 보리밥을 외쳤다면 아무리 꽉 움켜잡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밥을 외칠 때 잡아야만 말씀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벽돌을 이용해서 놀이를 반복하면서 누가누가 말씀벽돌을 많이 가지는지 내기해봅니다. 놀이를 하면서 이렇게 말해주세요. “말씀밥을 줄까? 보리밥을 줄까? 우리 가족은 오늘 하루 어찌하든지 하나님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꼭 붙잡는 가족이 되자.” 향기나무 교육개발원에서는 이상의 놀이 외에도 귀 교회의 가정을 경건한 가정(Godly Family)으로 세우는 데 필요한 다양한 성경놀이를 제공해드립니다. 우리집 성경놀이터 ‘Godly Family’를 신청하시면 성경놀이에 필요한 10종 이상의 재료가 포함된 놀이키트와 예배영상자료 및 교육을 제공해드립니다(문의|향기나무 교육개발원 031-30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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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1
  • [다음세대 칼럼]내가 죽일 놈입니다.
    몇해전 학교에서 아버지 학교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6주프로그램으로 계획을 세워, 부자간의 기질의 차이, 대화법, 아버지의 역할 등에 대해서 workshop 형식으로 진행을 했다. 이름은 아버지 학교였지만 진행을 하다 보니 집단 상담처럼 방향이 흘러갔다. 계획했던 세미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실패한 계획 속에서 놀라운 치유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 아이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가정만 아픔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를 통해 참석한 아버지들은 서로를 보면서 위로받고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 학교만의 새로운 아버지학교의 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6주간의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주차에는 어머니들과 아들들을 같이 참석하게 했다. 간단한 종강파티를 하고 세족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준비한 세수대야에 물을 채워놓고, 아버지들이 정장을 하신 채로 손에 수건을 들고 아들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야간자습을 하던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세미나 장소에 왔다가 엄마 아버지가 계신 것을 보고 당황을 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들들 몰래 참석하셨던 것이다. 아들들을 자리에 청해서 앉게 했다. 아들은 의자에 앉고 엄마는 의자 뒤편에 서서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아들을 세족하고 축복하는 것이 그 날 계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세족을 하기 전, 나는 “지금 이 시간은 우리 아버지들이 아들들에게 세족을 하면서 축복하는 시간입니다. 아버지들, 아들의 발 오랜만에 보셨지요? 이제 아버지보다 발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목욕을 같이 다니며 몸을 씻겨주었던 날 이후로는 아마 아들의 발을 씻겨줄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지금 아버지들 앞에 어느 순간 훌쩍 자라버린 아들들이 앉아 있습니다. 지금 세족을 하기 전에 아들들의 눈을 보면서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하신 후에, 아들들이 두 발로 씩씩하게 걷고, 뛰고 세계를 누비는 발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곳에는 서고, 필요치 않는 곳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출입의 지혜를 달라고 축복하며 정성껏 발을 씻겨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분 정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최고의 축복과 격려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용히 음악을 틀어 주고 세족식을 진행했다. 어머니들은 아들의 어깨를 잡고 격려하고 있었다. 축복을 하라고 했지만 침묵이 흘렸다. 쭈볏거리든지, 아니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용기 내어 말을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한분의 아버지가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하셨다. “목사님 내가 죽일 놈입니다. 내가 죽일 놈입니다. 지금 아들에게 축복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말은 ‘공부 잘하거라’ 라는 말만 기억납니다. 내가 이러고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나쁜 놈이다. 내가 나쁜 놈이다.....” 아버지의 외침은 옆으로 전달되었고 아버지의 눈물은 나머지 아버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왜냐하면 나머지 아버지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제자녀석이 무릎을 꿇더니,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를 안으면서 “아빠 울지마라. 내 아빠 맘 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라. 이제 내 아버지 눈에 눈물 안 나게 할게. 아빠 울지마라~~” 아버지의 세족이 오히려 아들들이 아버지를 안아 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역전이 되어 버렸다. 나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아이들에게 일어나라 했다. 그리고 아버지들을 안아 드리라고 했다. “녀석들아 아버지들의 마음이 이렇다. 혹시나 학교에 와서 너희들 눈에 띌까봐 아버지 학교도 몰래 신청하시고, 몰래 도둑 고양이처험 6주간을 다니셨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몰라서 상처 준 것들이 많다면서 시간마다 많이 우셨다. 이 자리에 계신 아버지들은 아버지 자신보다 너희들이 잘 되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고 하시는 분들이다. 너희들을 위해서 자존심을 구겨 가며 직장 생활하고, 장사를 하고, 너희들이 사회에 자립잡을 때까지 열심히 돈 벌어야 해서 직장에서 안 짤리기 위해서는 험한 꼴 당하면서도 버텨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런 아버지들이 너희 앞에서 울고 계신다. 이젠 너희들이 안아 드려라. 아버지 수고하셨다고 안아드려라. 이만큼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해라. 이제 아버지의 수고를 너희들이 감당하겠다고 말씀 드려라.” 비록 힘들게 세족식을 마쳤지만 이 날을 통하여 아홉 가정은 새로운 가정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아홉 가정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계모임으로 모이신다. 학교는 이런 곳이다. 아이들을 붙들고 가야 하지만 때로는 가정으로 눈을 돌리려 가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소통해 주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가정에 관심이 많다. 가정이 살아야 아이들이 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브니엘이 좋다. 일반학교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생명을 나누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우리 학교가 너무 좋다. 브니엘의 이름으로 지금도 가정들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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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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