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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칼럼]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 교회의 미래를 세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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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작은 교회 목회자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고등부가 한 명도 없어요. 예배당에 어린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것은 결코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주일학교 폐쇄, 청년층 이탈, 가정에서의 신앙 전수 약화… 우리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길은 있다. 몇 해 전, 서울의 한 교회는 ‘토요 드림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 성경 공부와 음악·미술·코딩 같은 재능 수업을 함께 진행했더니, 지역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오지 않던 가정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부모는 아이를 따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부산의 한 중형 교회는 ‘세대 통합 예배’를 도입했다. 어른 예배 속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찬양하고, 설교 중에 세대별 적용 시간을 두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신앙을 보고 배우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세대 교육은 이렇게 ‘함께하는 사명’이다. 성경은 신앙 교육의 1차 책임을 가정에 둔다(신 6:6-9). 그러나 교회는 가정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공동체적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성경적 세계관 교육으로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 진로와 소명 교육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게 하고, 삶의 자리에서 사명을 실천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문화 감수성 교육이다. 미디어와 SNS의 홍수 속에서 분별력을 키우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교육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도 어렵지 않다. 먼저, 하루 10분 가정예배 회복과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하는 세대 통합 사역이다. 그리고, 믿음의 선배와 다음세대를 연결하는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와 지역 기관과 손잡는 지역사회 연계가 필요할 것이다. 다음세대를 잃는 것은 곧 교회의 미래를 잃는 것이다. “한 아이를 세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한 영혼을 세우기 위해 온 교회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심는 믿음의 씨앗이 내일 교회의 숲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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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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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자극보다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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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음세대들의 삶을 보면 예전보다 많이 충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학교폭력에 연루되기도 하고 각종 사건 사고의 가해자, 피해자로 엮이는 사건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감정적 존재가 아니라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키울 수 있을까요?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자극과 반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자극들을 받게 되지요. 우리는 보통 자극이라는 말을 들으면, ‘전기 자극’, ‘열 받게 함’, ‘화남’ 그런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자극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하루’라고 하는 자극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기지개를 펴면서 “아이고, 죽겠다!” 하면서 반응하지는 않는지요.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핸드폰을 툭 치면서 “일어나기 싫다, 아 짜증나!” 하면서 일어나지는 않는지요. 이처럼 우리의 삶은 시작부터가 자극과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같이 주시는 하루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많은 자극들에 대한 우리의 매순간의 반응이 우리의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우리의 인격을 만들고, 그 인격이 우리의 운명을 만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말과 행동, 또 압박들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갈까요? 본성대로 할 수도 있고, 기질대로 할 수도 있고, 성질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지혜롭게 조절해야 되겠지요.
자극과 반응에 대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유태인이며, 오스트리아의 의사였던 분이 해 준 것인데요. 이분은 오직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폴란드에 있던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주 비인간적인 삶을 살게 되지요. 이러한 삶은 분명 그가 원했던 자극이 아니었어요. 그는 최고 엘리트의 자리에서 하루 아침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곳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사람들이 똑같은 자극에도 완전히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주어졌던 건 하루에 빵 하나와 물 한 컵뿐이었어요. 그는 거기서 매일 동일하게 주어지는 빵 하나와 물 한 컵의 자극을 어떻게 사용하며 반응하는가가 그 사람의 하루를 만들고, 또 그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배가 고프니까 바로 먹고 마셔버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씩 천천히 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것을 금방 먹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와중에도 자기의 빵과 물을 남겨서 자기 옆에서 죽어가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돕기도 하였다는 것이지요. 비록 빵 하나, 물 한 잔이었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반응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그때 한 가지를 결정합니다. “나는 이런 처참한 자극에도 비인간성을 선택하지 않겠다. 나는 인간다움을 선택하겠다.” 그래서 그 얼마 안 되는 한 컵의 물을 나눠요. 나눠서 조금은 마시고, 또 조금은 세수도 하고, 조금은 면도도 하였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누가 봐도 달라 보이는 거예요. 이 사람은 누가 봐도 이분은 특별해 보이고, 이 사람은 의지할 수 있어 보이고, 자기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죠. 이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그 깨달음 가운데 아주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라.” 자극이 찾아왔을 때 곧바로 반응하지 말고, 그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들라는 아주 유며안 말입니다. 이 ‘공간’이라는 것이 뭘 의미할까요? 이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 삶에 찾아오는 똑같은 자극에 내가 과연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반응할 것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해 내고 이 묵상을 통해 더 나은 사고의 과정을 통해 더 아름다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우리는 그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이전과는 전혀 새롭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자극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반응을 하나님을 향한 선한 믿음의 반응으로 바꿔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인생이 아무리 새로워지려고 해도 우리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찾아오는 부정적인 자극에 스스로 옳게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임재하실 때 비로소 우리 삶에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하신 긍휼과 하나님이 주시는 그 변함없는 사랑이 우리의 모든 부정적인 자극에 대해 긍정적이고 은혜로 반응하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모든 문제를 아뢰고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을 구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자극보다 반응입니다. 현실보다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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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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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청소년들에게 건강한 경계선을 가지게 하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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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난히 질문한 것 같은 종류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유교와 체면문화, 생존경쟁, 감정표현이 부족한 문화 배경이 결국 이런 경계성 인격장애를 더 많이 생기도록 했다.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심리.정서적인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분들이 주변에는 물론 교회 안에도 너무 많다. 그래서, 건강하지 못한 경계선 일부분이라도 찾아서 수정하고 고쳐야 대인관계가 자유롭다. 특히 혼자서도 행복해진다. 신앙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바른 신앙, 풍성한 신앙이 된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2% 정도가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정신과 외래 진료를 받는 사람 중에서는 약 10%, 입원 환자 중에서는 약 20%가 이 장애에 해당이 된다. 인격장애로 진단받은 사람 중에서도 40~60% 정도가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인격장애들보다 훨씬 많다.
전반적으로 여성에게서 이 장애가 훨씬 더 많다. YouGov가 2023년 9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89%가 (57% 매우, 32% 다소 중요) 인간관계, 특히 연애 관계에서 경계 설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은 높은 정신 장애 유병률과 청소년의 심각한 정신적 고통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건강한 경계 설정 미비가 이를 더 악화시킨다. 특히 경계성 인격장애로 진단까지는 아니지만 건강하다는 사람에게도 심리 정서적인 경계선이 건강하지 못한 부분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심리.정서적인 경계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을 잘 해결한다면 좀 더 하나님 나라 본질을 이루는 신앙이 될 것을 믿는다. 대인관계도 매우 개선이 된다. 행복과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결정하게 않게 할 수 있어 혼자서도 행복하게 된다. 함께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도 활발하게 회복된다.
건강하지 않은 경계선은 공존 질환을 생기게 한다. 경계선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핵심 특징은 자기 정체성, 즉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이 불안정하다. 이런 관계 패턴은 종종 공동의존(codependency)이나 관계중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다른 문제(공존 질환)들도 함께 겪는다. 집착, 강박, 완전주의, 결백증, 조현병, 충동조절 장애, 분노조절 문제,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스마트폰중독, 게임중독, 물질 중독(술, 약물 등), 성중독, 화병, 종교중독, 관계중독, 관계중독, 일중독, 극단적 사고와 감정을 표출, 감정 기복이 심함,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 자학적 감정과 행동, 신앙 성장이 멈춤,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함, 건강한 대인관계가 어려움 등으로 다른 병도 많이 걸리게 된다.
경계선이 건강하지 못한 예가 우리 주변에 많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성장이 되지 않거나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대부분 건강하지 않은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대인관계가 힘든 분들도 공동체 생활이 힘든 분들도 대부분 건강하지 않은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특히 목회자나 중직, 헌신하는 사람이 좀 더 심하게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다. 심하면 경계선 인격장애가 된다.
우리 안에도 교회 안에도 너무 많고 흔하게 있다. 그렇게 어둡게 많이 덮고 있는 것에 비해 제일 잘 모르고 잘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건강한 경계선을 가지는 노력이다.
연애에서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는 상대방을 처음엔 이상화하다가 조금만 실망하면 “넌 날 버릴 거야!”라며 관계를 단절한다. 또한 너무 쉽게 나쁜 연인에게 빠져든다. 또 쉽게 헤어지고 금새 다른 연인을 만난다. 연애 중이든 연애 없이든 혼자서는 행복하지 않다.
예수님이 하신 건강한 경계선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이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때로는 사람들을 떠나 조용히 기도하러 가셨다(막 1:35). 모든 사람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으셨다. 요 6장에서 떡을 달라는 무리를 떠나신 것이 그것이다. 마리아와 가족의 요구에도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셨다(마 12:46-50). 사람의 요구를 기준으로 살지 않고, 사명과 정체성에 따라 삶을 조율하심으로 경계선을 잘 유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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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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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여름성경학교, 온 교회의 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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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 되면 교회는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로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교회학교마다 그해의 주제에 맞춰서 환경꾸미기를 하고 주제 현수막을 걸고 교사들은 벌써 공식 티셔츠를 입고 분위기를 띄웁니다. 교회학교의 여름행사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교회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보통은 2박 3일, 짧아도 1박 2일을 교회에서 집중적으로 교역자들과 교사들, 아이들과 만나고 함께 생활하면서 정해진 주제와 말씀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공부와 진로문제로 시달리는 걸 생각해 볼 때 일주일을 이루는 168시간 중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공과 공부하는 1시간만으로 훌륭한 신앙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168:1이라는 비율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 168:1의 싸움이 역전되는 자리가 바로 여름성경학교나 여름수련회 등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찬양과 교제 속으로 아이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다음세대 여름행사입니다. 지금의 기성세대 신앙인들도 대부분 어린 시절 교회에서 떠났던 이 여름행사를 통해서 교회생활의 기쁨을 알았고 더운 여름의 물놀이를 하면서 함께함의 즐거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더위 속에서 긴 시간 바닥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목이 터져라 찬양하고 기도했던 그 저녁집회의 기억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다음세대의 여름행사는 그 옛날의 기억들보다 효과가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그만큼 시간을 충분히 내기가 어려워졌고 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여름행사에 자녀들을 챙겨서 보내지 않습니다. 교회 입장에서는 다음세대 숫자가 점점 줄다보니 여름행사에 대한 예산편성도 점점 줄이고 있고 충분한 의미와 재미를 충족시켜줄 여름행사를 해낼 만한 교역자나 교사들의 숫자도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외부 수련회 행사에 회비를 내고 참여하거나 별도의 여름행사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럴 때에 정말 필요한 것은 다음세대 여름행사를 교사들이나 부모들만의 몫으로 넘기지 않고 온 교회가 함께 나서는 자세를 가지고 현실적인 협력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래서 필자가 섬기는 부산 성민교회는 매년 6월 첫째주일부터 셋째주일까지 장년주일예배 시간에 ‘어른성경학교’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어른성경학교’란 어린이들이 그해 여름성경학교에서 배울 주제와 말씀, 주제찬양과 율동, 성서학습 1,2,3과의 공과 내용을 어른들이 주일예배를 통해서 먼저 만나보고 성경학교를 누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 온 교우들이 올해 아동부 여름성경학교의 내용을 먼저 만나보고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할 수 있게 되고 자녀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여름캠프에 참여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올해는 “가스펠탐험대와 함께하는 부흥대작전”이라는 주제로 여름성경학교를 하는데 이에 맞춰서 담임목사가 탐험대장처럼 옷을 입고 탐험대 모자를 쓰고 쌍안경을 들고 지도를 펼치면서 설교단에서 온 교우들을 탐험대원으로 여기고 말씀을 전하며 부흥대작전에 함께 참여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이 때 주제찬양 율동은 저희 교회 어린이부 율동팀이 맡아서 강단에 나와 율동지도를 했는데 이를 보면서 찬양과 율동을 따라하는 온 교우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 넘쳤습니다. 또한 단순히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 사람들과 만나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얼굴에 칼라 스티커를 붙여주는 게임도 했는데 정말 모두가 어린 아이들처럼 기쁘게 게임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얼굴에 14개~15개의 스티커를 붙인 교우들이 1등상품을 받았고 2등과 3등도 12개에서 11개의 스티커를 붙이고 나와 모두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전체 교우들을 분단별로 나눠서 1과, 2과, 3과의 주제를 외치는 활동의 게임도 했는데 정신없이 각 과의 주제를 외치는 가운데 각과의 핵심내용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7월에는 수요기도회의 컨셉을 ‘다.모.여.기도회’로 바꿉니다. ‘다.모.여.기도회’란 ‘다음세대’ ‘모든’ ‘여름행사를 위한 기도회’의 줄임말입니다. 올 여름 다음세대가 치러내는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 단기선교를 위해서 온 교인들이 다같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이 자리는 2019년에 시작되어 6년째 우리 성민교회의 여름 루틴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첫 주에는 교장인 담임목사가 올 여름 전체 교회가 추구하는 여름행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설교를 하고 기도제목을 주어 온 교인들이 이 기도제목을 읽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일에는 유치부가 주관하여 유치부 담당목회자가 올해 유치부 여름행사의 주제와 활동을 소개하고 핵심내용을 설교합니다. 이날은 기도회 안내도 유치부 단체티셔츠를 맞춰입은 유치부 교사들이 하고 특송은 유치부 교사들과 아이들이 함께 나와서 합니다. 기도제목도 유치부 여름행사에 맞춰서 합니다. 세 번째 주일에는 어린이부, 네 번째 주일에는 청소년부, 다섯 번째 주일에는 청년부, 여섯 번째 주일에는 단기선교팀이 주관이 되어서 각기 같은 방법으로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이렇게 하면 온 교회가 다음세대 여름행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기도하게 되어 다음세대 여름행사가 교육부만의 행사가 아니라 온 교회의 축제가 됩니다.
다가오는 올해의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는 일부 교사들만, 부모들만 수고하여 소수의 아이들만 누리는 여름행사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참여해서 준비하고 기도하여 함께 치러내고 다같이 은혜받고 기뻐하는 행복한 온 교회의 여름잔치가 되길 기대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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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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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그래서, 엄마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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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남자 아이와 한 명의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둘째인 여자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육아의 한 파트가 시작되었다. 중3인 첫째 남자 아이는 사춘기라고 할 것도 없이 약간씩 혼란을 겪더라도 곧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통과하고 있는 반면, 초6인 둘째 여자 아이는 ‘혼란+예민+감정의 기복+괴리’ 등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급격하게 짜증이 늘어날 때, 이런 말들을 자주 했었다.
“은성아, 사춘기는 생각의 변화, 가치관의 정립 등을 하는 시기이지 무작정 엄마한테 짜증내는 시기가 아니야. 물론 호르몬의 변화로 그럴 수 있지만, 무례함이 사춘기의 표현방식은 아니라는 것을 잘 기억해.”
첫째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확실히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가만히 앉아 듣는 척이라도 했는데, 최근에 둘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 반응이 완전 다르다.
“아, 몰라. 그냥 짜증이 난단 말이야. 몰라.”
감정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둘째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무엇보다 자녀의 이런 반응을 처음 겪는 나 또한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안되겠다 싶어,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참 읽었던 ‘감정’에 관한 책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덧붙여 이제는 감정을 담당하는 뇌에 대해서도 공부해야겠다 싶어 뇌과학에 관련된 책들도 구매해서 읽었다. 여러 책을 훑어보는데, 공감이 되고 설득력이 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청소년기에는 편도체가 활발하게 작동하면서 온갖 부정적 정서와 충동성을 유발하는 데 반해 전전두피질은 아직 미성숙해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러한 간극이 가장 크게 벌어지는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쯤이다. 전전두피질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데 편도체만 날뛰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감정적으로는 만취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내면소통]의 일부 / 김주환 지음
우리 아이가 겪고 있는 감정의 변화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락이었다. 뇌속에 편도체가 강하게 활성화되고 있어 감정은 폭발하는데 깊은 사고, 절제할 수 있는 능력,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아직 없기에 본인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아이를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한발 떨어져서 타인이 진단하는 나의 아이의 객관적인 모습을 보니 엄마인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달아졌다.
“그래서, 엄마가 도와줄게!”
아이가 어릴 때는 이 말을 많이 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뭐든 스스로 한다는 아이를 대견하게 바라볼 뿐, 도와준다는 말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이 말을 자주 해주려고 한다.
“엄마가 도와줄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무에 마디가 생기듯 짙은 흔적이 남겨지는 시기가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요즘에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때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아이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도와줄게!”라는 이 마음을 계속 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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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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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문제아”가 아니라 “한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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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1년 전부터 위기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학업중단 위기의 학생들을 학교로 돌려보낸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그만둔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며칠 전, 필자의 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의 말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다. “센터장님, 교회는 제가 오면 싫어해요. 제가 문제아 같아서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던 그 아이의 눈빛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아주 작은 기대가 섞여 있었다. 교회는 과연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고 있는가? 아니, 처음부터 환영했는가?
‘위기 청소년’이라는 말은 흔히 비행 청소년과 혼용되곤 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깊고 넓다. 협의적 개념으로는 폭력, 강도, 절도, 음주, 흡연, 가출, 약물 남용, 성비행 등 반복적으로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을 말한다. 그러나 광의적 개념은 더 본질적인 위기를 포함한다. 즉, 사회가 부여한 가치관과 충돌하거나, 청소년 자신이 삶의 존엄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에 있는 이들을 말한다. 오늘날, 위기 청소년의 문제는 더욱 복합적이고 가속화되고 있다. 중독(게임, 도박, 약물), 성 문제, 자해와 우울, 가족 해체, 경제적 빈곤, 정서적 방임, 학교 부적응 등 다양한 위기가 얽혀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은 무너져 있는 청소년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때로는 조용히 ‘사회적 실종’ 상태로 빠져든다.
최근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촉법소년’ 제도 역시 위기 청소년을 둘러싼 오해와 분노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만 10세에서 14세 미만의 소년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고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는데, 사람들은 이를 ‘처벌받지 않는 범죄자’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본질은, 아직 미성숙한 아이에게 형벌보다 교화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문제는, 교화와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사회 시스템이 없다는 데 있다. 부모의 책임은 강화되지 않았고, 가정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며, 재범 방지를 위한 교육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비난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향하고, 아이들은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난다.
이쯤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교회는 지금 위기 청소년 곁에 있는가? 현실은 다소 냉소적이다. 많은 교회는 위기 청소년을 환영보다 ‘관리’하거나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배 시간에 늦게 오고, 예배 중에 떠들거나 휴대폰을 하거나,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문신을 한 청소년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속으로 말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결국, 이들은 조용히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문제아’라는 이름표만 남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 병든 자와 죄인을 먼저 찾아가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니라.” (마가복음 2:17) 예수님의 공동체, 곧 교회는 가장 연약한 자가 가장 먼저 안식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회복해야 할 때다.
위기 청소년 사역은 선택이 아닌 사명이다. 교회는 이들을 상담하고, 격려하고, 믿어주며, 무엇보다 지지해주는 어른들이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실천 가능한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교회 공간을 청소년 쉼터로 열자, 전문 상담가, 지역 연계 멘토링 프로그램을 도입하자, 소그룹, 문화체험, 미술·음악 치유 활동을 운영하자, 그리고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청소년의 지지자가 되는 문화를 만들어가자,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다 알 수 없지만, 그 상처 곁에 함께 있어 줄 수는 있다.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나셨다. 오늘날 교회가 잃고 있는 그 ‘한 마리 양’은 위기 청소년들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손 내밀지 않는다면, 세상도, 학교도, 가정도 그들을 품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가 먼저 손 내밀 때, 세상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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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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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요나 선지자가 교사, 부모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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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오늘날의 현실과 오버랩되는 장면을 많이 만납니다. 구약의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듣고 거부감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쳤던 장면도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니느웨라면 당시 가장 악한 도시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가장 잔악하고 교만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요나는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느니 차라리 당시 땅 끝으로 여겨지던 다시스로 배를 타고 떠나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요나가 풍랑 속으로 뛰어들게 하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사흘간 그 속에서 요나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 다음 장면이 요나서 3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장면을 만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있다가 살아나온 요나의 복음 선포를 들은 니느웨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베옷을 입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니느웨 왕은 스스로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요나 스스로도 포기했던 니느웨 사람들의 이 놀라운 회개와 변화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니느웨는 어디인가?“
요나가 그 마음속에서 완전히 배제했던, 혐오했던 지역이 니느웨입니다. 그런데 요나만 그럴까요? 우리도 특정한 지역, 아니면 특정한 부류, 특정한 계층,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안 변해요"라고 하는, "그들은 구제 불능이에요"라고 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거는 하나님이 아니라 누가 해도 안 돼요." 라는 부정적인 감정과 거부감 말입니다.
여러분, 한국말에 참 험한 말이 많습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면서요. 그럼 누굴 거둘 겁니까? 제가 자녀 때 몰랐는데 부모가 돼 보니까 제일 좋은 부모가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속아 주는 부모입니다. 속아 주는 부모가 제일 좋은 부모입니다. 친구는 어떤 친구가 제일 좋은 친구입니까? 참아 주는 친구입니다. 견뎌 주는 친구에요. 단점이 보이죠, 못난 게 보이죠. 그런데 그거 하나하나 지적하는 친구들 아무도 안 남아 있어요. 그런데 참아주고 견뎌 주는 친구들만 옆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부부는 어떤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일까요? 져 주는 사람입니다. 져 주는 남편과 아내가 제일 훌륭한 배우자에요. 이러한 성품은 어디서 올까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포용과 긍휼이 결국 좋은 부모,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만든느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저들은 안 돼", "이런 사람은 안 돼", "이런 부류들은 안 돼"라고 외치며 거부하는 우리만의 ‘니느웨’를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은 그 니느웨를 깨어 버리는 분입니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을 용납하시고 속아 주세요. 성도들끼리는 참아 주세요. 부부는 서로 져 주세요. 우리는 쉽게 "다시는 안 봐! 절대 안 봐!" 하지만 아마 곧 또 보게 될걸요? 모르긴 해도 여러분 평생 보게 될걸요? 가족이니까요. 형제요 이웃이니까요. 그렇다면, 평생 봐야 한다면 우리가 속아주고 참아주고 져 줘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디모데전서 2장 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누가 누구에게 썼나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썼어요.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은 목회자인데 이 목회자의 마음에 너무 많은 미움이 있는 거예요. 목회를 해 보니까 정말 너무 사람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너무 커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마음을 선배 목회자인 바울이 달래주면서 "디모데야, 참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셔. 그리고 그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셔. 그러니까 한 사람도 포기하지 말고, 한 사람도 안 된다고 말하지 말고, 끝까지 감싸 안아. 그게 목회야"라고 말하는 책이 바로 디모데전서입니다.
여러분, 목회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가정생활도 똑같지 않습니까? 부부생활도 똑같지 않습니까? 사회생활 역시 똑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누구까지는 되고 누구부터는 안 돼"라고 말하는 그 순간 우리는 선을 긋는 것이고, 그 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선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교만 아닙니까? 여러분, 그 니느웨는 과연 누가 정한 것입니까? 오늘 니느웨가 뒤집어져 변화되어 하나님을 따르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우리가 판단하고 우리가 정하는 그 니느웨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사람은 여간해서는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천천히 물들어 갑니다. 우리 교사들이 다음세대들을 하나님과 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안아줄 때 그들은 천천히 우리의 사랑에 물들어 갈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한 번 더 자녀들을 기대해 주고 그들에게 가능성을 부여하고 믿어줄 때 우리의 자녀들은 그 신뢰에 복된 열매로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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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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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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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읽은 책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다시 꺼내 들었다.
‘다시, 공부 다시, 학교’
주입형 학습에서 활동형 학습으로 바뀐 교육 현장을 추적하면서 ‘지식 습득 과정’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단순히 현재 교육의 문제점을 의문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대안 및 해법을 밝히고 있다. 한국은 현재 여러 교육 선진국의 영향으로 주입형 학습에서 활동형 학습으로 정책을 바꾸었지만, 실행되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 교육 수준의 하향, 교육 불평등 등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 책은 핀란드, 영국 등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할지 공격적으로 제시한다. 교육 불평등을 줄이면서 ‘지식’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강의형 지식 교육(학생들의 피드백 혹은 여러 활동을 포함한)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마지막에 교육의 소명, 교사의 소명을 거론하며 다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과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나는 애쓴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날 우리 아이들의 신앙을 점검해보면 아닌 것 같고, 주일학교를 빠지지 않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복음이 심겨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화를 나눠보면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경우가 있어 항상 고민 속에 있다.
그래도 이 책은 위에 언급한 대안을 소개하며 공교육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교사가 변하면 아이들이 변하고, 결국 다시 학교가 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적용시키면, 주일학교 교사의 변화가 아이들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과 부모가 변하면 자녀는 달라진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국에는 ‘다시, 복음 다시, 교회’이며 더 나아가 ‘다시 부모’이다. 여름의 출발점이다. 여름성경학교 등 교회에서 마련한 여름 신앙 프로그램과 더불어 우리 가정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도 뜨거운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해야겠다. 다시 복음 앞에 마음을 굳게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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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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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칼럼] 청소년들에게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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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는 의미와 개요는 지난 호에 썼다. 이어서 실제 예 3가지와 청소년이 실제로 하나님 나라 대안이야기를 만드는 방법과 자료를 말씀 드린다. 부디 자연 이야기에서 하나니 나라 대인이야기로 재해석하고 부활을 드러내고 누리는 삶으로 청소년을 이끌어 가자.
1) 서상복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
서상복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가정사역자, 목사, 상담가로 치유, 회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서상복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참고)
2) 모세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
모세가 왕자의 리더쉽과 지혜를 배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백성을 인도하는 것에 사용되기 위함이다. 광야에서 처가살이 40년을 41-80세까지 한 것은 출애굽의 리더로의 인격과 자질 갖추기이다. 40년 동안 중년과 노년의 시기를 장인의 양을 쳤다. 이것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된다. 하나님이 목자로 이스라엘을 양으로 인도하여 출애굽하고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한이다(출 3:1~12; 4:2~4, 17). 왕자 훈련 받아도 왕이 못된 실패자, 이런 자연 이야기가 아니라 참 왕이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왕의 리더쉽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진정한 지도자로 해석하였다.
3) 다윗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
다윗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이다. 다윗은 아버지께 차별받아도 참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목표가 되어 골리앗이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할 때는 다윗은 분노하였다. 그 분노로 골리앗을 이겼다(삼상 17장). 이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다윗은 기쁨도 하나님 영광에 집중되었다. 법궤에 돌아올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서 춤을 춘다.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참 왕,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왕이 되기 위한 전문성을 훈련받았다. 어려서부터 양을 쳤기에 백성을 살피고 섬기는 예수님 닮은 왕이 된다. 사랑 전문가로 잃어버린 자들도 잘 거두어 주었다. 양을 지키기 위해 늑대, 사자와 곰에게 생명을 걸고 싸워 이겼다(삼상 17:37). 그런 훈련과 연단으로 인해 물매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맞춘다(삼하 17:40). 사무엘상 30장에 다윗은 잃은 자를 찾는 예수님의 참 마음을 실천한다. 하나님 나라 가치를 보여 준다. 다윗의 도망자 시절, 다윗과 그 600명이 가족과 함께 시글락에 머물었다. 그때 다윗과 함께 한 600명이 시글락에 돌아와 보니 아말렉 족속이 다윗의 처와 600명 군대의 모든 가족을 납치해 갔다. 그래서, 아말렉 군대를 추격했다. 하지만 아말렉이라는 적의 본부도 모르면서 그저 다윗과 그 부대는 절박하게 추격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아말렉이 병들었다고 버린 종(애굽 소년)을 다윗과 그 군대가 멈추어서 하루 종일 치료해 주었다. 결국 이 아이를 통해 시글락 본부를 알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내들과 재물을 모두 찾아온다. 하나님 나라 가치가 드러난다. 아말렉은 약하고 병들었다고 버렸다. 그로 인해 망하게 된다. 다윗의 군대처럼 하나님 나라는 잃은 양 하나에 전체를 집중한다. 이로인해 진정한 승리도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잃은 양으로 찾아와 하나님 나라 주셨다. 이제 우리도 청소년들에게도 그렇게 대하여야 한다. 청소년들도 그렇게 살도록 교육하고 상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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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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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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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방황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고 말해주세요. 혹시 이 말에 동의가 되십니까? 우리는 보통 헤매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어디를 갈 때면 항상 네비게이션을 켜서 ‘최단 거리’ 길을 찾고, ‘최소 시간’으로 가는 길을 찾지요. 그리고는 정신없이 달립니다. 우리가 결과 지향의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 보고 온 자녀에게 늘 이렇게 묻죠. “몇 점 받았어?” 우리에게는 결과가 중요해요. “그거 얼마 만에 이루었어?” 누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쉽게 그 자리에 올라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결과는 중요하지만 과정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실은 때로는 헤매고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멈춰 있고 때로는 주저앉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우리는 어느덧 그 시간과 그 과정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이제껏 과정은 무시하고 “무조건 결과!”만을 외치면서 살아오지 않았냐는 거에요. 우리가 오늘 말씀 앞에서 이것을 함께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인도네시아의 어느 산속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답지에 군데군데 답을 안 쓰고 낸 녀석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선교사님이 화를 냈습니다. “야! 이놈들아! 몰라도 객관식인데 답을 써야지! 찍기라도 해야지! 이놈들아!”라고 했더니 애들이 눈이 이만큼 커지더래요. 그러면서 선교사님께 얘기하더랍니다. “선교사님! 모르는데 어떻게 써요? 그거 찍었다가 혹시 맞으면 어떻게 해요? 그건 내가 아는 문제가 아닌데 모르는 걸 맞춰놓으면 그것은 실제로 제 점수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것은 안 되는 거잖아요.” 맞을까 봐 못 찍었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서 이 선교사님이 굉장히 놀라면서도 겸연쩍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몰라도 써야 하고, 몰라도 찍어야 하고, 찍어서 맞으면 감사한 거고. 할렐루야죠. 그렇게 살아왔던 우리가 볼 때 그 순박한 아이들. “모르는 데 맞으면 어떡해요?”라고 하는 그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되었던 거죠. 이 아이들은 인생을 돌아가도 바르게 가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한 문제 더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르더라도 못 맞추더라도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 과정에서 자기들은 더 성장해 갈 것이라는 것을 이 아이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보면 참 여러모로 우리는 헤매고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헤매고 살아가는 인생이 헤맨 만큼 손해 본 게 아니고, 헤맨 만큼 남 좋은 일을 시킨 게 아니고 알고 보면 그 헤맨 만큼 우리는 더 넓게 살았고, 더 깊게 살았고, 더 천천히 음미하면서 우리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아! 저 사람들은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좋은 길로만 가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정말 쭉쭉 뻗은 길로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지? 왜 이렇게 나는 헤매고 있지?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남들보다 더 천천히, 남들보다 더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 거지? 이리로 가면 빠른 길인데 왜 저렇게 돌아가는 것 같지?’ 하면서, 우리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그런 마음이 다가올 때, 세상은 “야! 그거 그냥 잊고 살아!”라고 말합니다. “그냥 술을 마시든지, 노래를 크게 부르든지, 하면서 함께 모여 떠들면서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지나가면 돼”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쇼핑을 하기도 해요. 명품을 사서 그것으로 만족을 얻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세상의 목소리가 아니잖아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그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에요. 인생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살아본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 인생을 누가 정확하게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셨고, 모든 인생을 오늘까지 이끌어 오셨고 마침내 우리 인생이 완성되는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헤매고 계십니까? 네, 저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매는 게 억울하지 않습니다. 그 헤매는 자리가 남들보다 더 천천히, 남들보다 더 넓게, 남들보다 더 음미하며 가는 시간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헤맨다고 하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포기했으면 헤맬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헤매는 방황을 통해 우리를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로 자라게 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안에 인내가 싹 트고, 그 인내가 온전해지고, 온전한 기쁨으로 우리를 오늘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 말입니다. 그 은혜가 오늘 우리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는 모든 선생님들과 또 부모님들과 우리 양육자분들, 그리고 우리 모든 독자분들 가운데 온전히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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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