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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아이들을 키우는 이 사역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명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여전히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것은 은혜이자 감사”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가족은 이 마음을 확장해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도 교회에서 뛰어놀며 자라게 하자”고 생각, 지난 2024년 9월에 사송우리는교회란 이름으로 교회를 시작하고, 2025년 7월에 사송 예배당을 마련, 지금까지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는데, 여기에 교회가 생긴 것을 보고 찾아왔어요” “교회에서 아이들 활동을 한다고 해서 한번 방문해봤어요” 교회 간판만 걸면 사람들이 몰려오던 1970-80년대는 아니더라도 지역에 ‘교회’(물론 우리뿐 아니라 곳곳에 교회가 있다)가 생기고, 여러 활동들을 한다고 알렸으면 구경이라도 오리라 기대했는데 현재까지 자발적으로, 스스로, 교회 문을 여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주중에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한 달에 한번은 ‘월간 미식회’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그 때마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는 하는데,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물론 한 번 정도 왔지만 지속적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상당한 열풍을 가졌왔던, 그래서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두쫀쿠’ 만들기를 교회에서 했습니다. 한번도 교회에 나온 경험이 없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교회에서 이런거 하는게 너무 신기해요. 엄청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초등학생은 “다음 달에는 뭐 할거에요?”라며 기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참여한 다른 아이들 모두 반응이 비슷했습니다. 교회에서의 이런 활동이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주일에 교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이런 사역들이 지역 사회에 교회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지 전도가 목적이 아니야”라며 안위하기도 했지만, 개척교회에서 씨뿌리는 작업을 계속 한다는 것이 버겁습니다. 이런 느리고 더딘 사역을 10년 20년 30년 해온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교회들 또한 지금의 우리와 같은 시간을 통과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우리는 참고 견디고 버텨야한다는 것 또한 알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이 사역을 해나갈 것입니다. 주중에는 몇몇의 아이들이 학교가 끝난 뒤 교회에 와서 수업을 듣고, 간식을 먹으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종종 체험 활동과 음식 만들기를 통해 교회가 장을 펼쳐주면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시간을 펼치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교회가 이런 곳이라고. 따뜻하고 즐거우며 누구나 와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교회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 사역에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네 명의 우리 자녀들을 넘어 지역 사회의 수많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노력하는 이 다음세대 사역에 여러분들의 기도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후원계좌 : 사송우리는교회 농협은행 351-1364-27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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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6-02-27
  • [다음세대칼럼]새학기, 다음세대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새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묻어난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규칙. 어른들 역시 다르지 않다. 이번 학기는 별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지,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보이지 않는 걱정을 안고 한 해를 시작한다. 성경은 이런 ‘전환의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역대하에 등장하는 남유다의 왕 아사는 혼란의 시대 한가운데서 중요한 선택을 했던 지도자다. 아사는 왕이 되자마자 종교 개혁을 시작했다. 겉으로만 남아 있던 신앙을 정리하고, 우상을 제거하며,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가 만든 우상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았다. 권력과 혈연보다 신앙의 방향을 우선시한 선택이었다. 그 개혁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친다. 구스 사람들,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백만의 군대가 쳐들어온 것이다. 군사력으로 보면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아사는 전쟁터에서 계산보다 기도를 선택한다. “여호와여, 주밖에는 약한 자를 도와 강한 자를 대적할 이가 없나이다.” 이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고백하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기록한다. 전쟁은 유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승리 후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은 아사에게 선지자 아사랴를 보내신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축하가 아니라 경고에 가까웠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요, 너희가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나,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역대하 15장의 중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찾는다’라는 말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차원이 아니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선택, 삶의 기준을 그분께 맞추는 태도, 관계를 회복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뜻한다. 아사와 백성들이 보여 준 태도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들은 혼자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왕 개인의 경건함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몇몇 열심 있는 사람에게 신앙을 맡기지도 않았다. 온 백성이 함께 언약하고, 함께 결단하며, 함께 하나님을 찾았다. 신앙은 개인적이지만 결코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한 사람의 방향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문제를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으로 다루지 않는다. 더 깊이 생각해 볼 지점은 그들이 ‘자기 시대의 하나님’이 아니라 ‘조상들의 하나님’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에서 길을 내셨던 하나님, 다윗과 여호수아의 시대에 역사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기를 바랐던 것이다. 오늘의 다음 세대는 전례 없는 속도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정보는 넘치지만, 기준은 흐려지고, 성공의 언어는 크지만, 신앙의 언어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교회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자극적인 콘텐츠나 더 세련된 방법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다시 하나님을 찾는 일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은 공동체의 결과를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대하15:4).” 이 평안은 문제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졌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설 때 주어지는 깊은 쉼과 안정이다. 새학기를 시작하는 다음 세대에게, 그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어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가? 성적과 결과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하나님을 찾을 때, 그분은 여전히 만나 주시는 분이시다. 새학기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 성공하는 새학기가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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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만약에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다음세대를 보신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돈과 명예, 성공과 성적을 향해서 무한질주를 벌이는 지금의 다음세대들에게 하나님이 꼭 들려주고자하시는 말씀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의 다음세대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사야 60장 1절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60:1) 이 말씀은 매우 유명한 말씀이고 우리에게는 찬양 가사로도 익숙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을 지금 나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 다음세대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별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어느 부모도 내 자녀가 움츠리고 있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녀가 어두움 가운데 다니길 만족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녀가 떨쳐서 일어나길 원하고 그렇게 일어나서 세상 곳곳을 다니면서 빛을 비추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음을 드러내고 전파하길 원할 것입니다. 아마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마음도 똑같지 않을까요?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더 이상 주저앉아 있지 말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현상 유지에 머물지 말고, 떨쳐 일어나서 도전하고 시도하고 싸워내고 마침내 이루고 기뻐하며 감사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빛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구상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이른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선하고 인자하신 능력을 이제 발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소망을 품고 일어나십시오. 빛을 발하십시오. 위대하신 여호와의 영광이 이미 우리 위에 임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받을 때 아마도 어떤 분들은 “아니, 내가 지금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일어납니까?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요”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씀이 선포되던 당시의 상황 역시 똑같았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는 이스라엘이 잘나가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도리어 이스라엘의 최악의 시기, 절망의 시기였습니다. 나라는 바벨론에 의해 망해버렸고, 땅을 잃어버렸으며, 성전은 불타버렸고 성벽은 무너진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현실은 매우 부정적이고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나 상황이 말씀을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말씀으로 상황을 재해석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상황이 말씀을 판단하게 두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받는 모든 부모와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처한 상황을 재해석해내는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예배는 사라졌으나, 이 말씀이 선포되자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자들이 믿음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전 세계를 통치하던 가장 강력한 제국 바벨론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바사 제국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돌아가서 여호와를 찬양하고 성전을 지으며 나라를 재건하십시오”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 역대하와 에스라를 읽으며 그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역대하에서 이스라엘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읽어보세요. 눈물이 앞을 가리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에스라서를 읽으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던 자들이 하나 둘씩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으로 이 상황을 재해석하며 돌아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절망의 끝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 나를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자리에 내가 뛰어들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빛이 없고 힘이 없지만, “일어나 빛을 발하라” 하시니 일어나 보는 것입니다. 내가 빛을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게 임한 그 빛, 하나님의 빛을 일어나 비추면 됩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빛이 나갑니다. 그렇게, 이미 내 안에 임한 여호와의 영광과 하나님의 빛이 드러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빛으로 올 한해 우리의 가정과 학교와 나의 미래를 비추는 다음세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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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6-02-27
  • [다음세대칼럼]은사를 불같이 일으켜 신앙도 일어나게 하자.
    중고등부 수련회나 대학생·청년부 수련회를 자주 섬긴다. 공통점이 있다. 스마트폰 중독, 무기력, 학교 부적응, 교회에 오기 싫어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신의 은사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련회 집회 중에 은사를 많이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사명 선언문까지 만들 때 신앙이 매우 급속도로 성장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점은 부모도, 학교도, 교회도 청소년이나 청년의 강점·재능·은사를 찾아주고 개발하게 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교회 가는 일과 예배드리는 일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청소년의 은사를 불같이 일으켜 신앙도 함께 일어나게 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1장 6–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 1.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안에 은사를 주셨다. 청소년 시기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많은 청소년이 자신을 평범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 안에 이미 ‘은사’를 주셨다. 은사는 특별한 사람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 믿음이 좋아 보이는 사람만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은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은사가 꺼져 있는 것처럼, 혹은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아간다는 데 있다. 2. 은사는 불과 같아서 가만두면 약해진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은사가 불씨처럼 관리와 돌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불은 바람 불지 않으면 꺼지고, 나무를 더 넣지 않으면 약해진다. 더군다나 방치하면 재만 남는다. 청소년의 은사도 마찬가지다. 신앙을 ‘숙제’처럼 여겨도 은사는 점점 식는다. 또한 은사를 제대로 찾지 않고 개발하지 않아서도 은사는 식어 버린다. “교회는 다니는데 재미가 없어요.”, “믿음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것은 믿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꺼져가는 믿음의 불을 다시 살릴 필요가 있는 상태다. 3. 은사가 살아나면 신앙도 같이 일어난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은사와 신앙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은사가 살아나면 예배가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진다. 눈빛이 달라진다. 교회가 ‘남의 곳’이 아니라 ‘내 자리’가 된다. 디모데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환경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붙였기 때문이다. “나는 못해”, “나는 잘하는 것이 없어”라는 생각은 하나님에게서 온 음성이 아니다. 4. 은사를 불같이 일으키는 실제적인 방법 ① 말씀과 기도로 은사에 바람이 일어나게 하라 은사는 말씀 위에서만 건강하게 자란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다시 듣게 된다. 기도로 불을 붙여라. 기도가 짧아도 좋다. “하나님, 제 안에 있는 것을 다시 찾게 해주세요. 은사의 불씨를 살려 주세요. 그래서, 은사가 모두 사용되는 직업과 사명을 잘 찾게 해 주세요.”이 기도가 불씨가 된다. ②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집중하는 것을 분석하여 정리하자 이것이 재능이고 강점이다. 이것을 하나님과 공동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게 될 때 은사가 된다. ③ 지나치게 욕을 듣는 영역도 반대편의 좋은 면을 찾아 개발하자 부정적으로 보이는 성향에도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남을 위해 사용하자. 은사로 개발되면 부정적인 면도 점차 줄어든다. 이를 ‘재명명’이라고 한다. ④ 혼자가 아니라 사명을 나눌 공동체 안에 있으라. 불은 함께 모일 때 더 크게 탄다. 혼자 신앙을 지키려 하면 꺼지기 쉽다. 특히 공동체 앞에서 자주 사명을 선포하고 나누면 불같이 은사가 일어난다. 은사와 개발 계획을 자주 나누라. 놀라운 큰불이 서로 되어준다. ⑤ 작게라도 사용해 보라 은사는 사용할 때 커진다. 완벽하려고 기다리지 말고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라. 홍해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갈라진 것처럼, 작게라도 일단 시작하고 남을 돕기 위해 사용하려 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임해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힌다. ⑥ 전문적인 적성검사를 통해서 도움을 주라. 중학생용 스트롱 진로탐색검사II, 고등생용 스트롱 진로탐색검사II, 대학생과 청년 등 성인용 STRONG™ 직업흥미검사를 하여 전문가에서 해석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 ⑦ 영적 은사, 일반 은사 체크리스트를 통해서 실제로 찾아주라. 결국 청소년기는 단순한 준비 기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은사를 찾고 적용하며 즐거운 열매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은 “나중에 쓰겠다”가 아니라, 지금 너를 통해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부모도, 한국교회도 다시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많이 찾아주고 개발하게 하여 은사를 불같이 일으키자. 그 불이 살아나면 신앙도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그 불은 세상을 밝히는 하나님의 불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진정한 사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삶, 귀한 신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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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여, 믿음의 스위치를 올려라!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 가면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이 있습니다. 흰색 대리석 건물에 돔 형식으로 아주 잘 지어진 건물인데요, 이 건물은 실은 유지비가 많이 들기로 유명했어요. 대리석 벽면이 계속 부식되어서 수리비가 계속 들어가는 거에요. 그런데 이 건물에 새로 발령을 받은 건물 관리책임자가 여기에 “왜?” 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왜 수리비가 많이 들까? 논의 끝에 비눗물로 너무 자주 대리석 벽을 청소해서 그렇다는 답이 나왔어요.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왜?”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비눗물로 청소를 자주 해야 할까? 그랬더니 비둘기가 많다는 거에요. 그래서 비둘기들이 모여서 새똥을 계속 떨어뜨리니까 그걸 지우느라고 비눗물 청소를 자주 한다는 거죠. 자, 어떻게 하면 떨어지는 새똥을 막을까요? 이제 이 문제는 아주 유명한 문제가 됐어요. 많은 건물들이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거든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미국의 표준이 되는 거죠. 어떤 결과가 났을까요? 비둘기를 다 총으로 잡았을까요? 새똥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한 차양막을 설치했을까요? 엄청난 예산과 수고를 투자하는 대신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왜?”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비둘기가 많이 모일까? 이번엔 조류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돼서 결론을 냈어요. 답은 비둘기가 좋아하는 먹이인 거미가 많아서 그렇다는 거였어요. 자, 됐죠? 그런데 여기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로 “왜?” 질문을 던졌어요. 거미가 왜 많지? 또 연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거미가 좋아하는 먹이인 나방이 많아서 그렇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런데 그는 여기서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질문을 던집니다. “왜?” 왜 나방이 많이 모이지? 곤충 전문가가 투입됐어요. 그리곤 최종적으로 답이 나왔어요. 이 건물의 외부 조명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요. 이 건물은 유명한 관광지라 해가 질 무렵 이 주변 건물들 보다 두 시간 일찍 외부 조명을 켜요. 그러니까 그 불빛을 보고 나방들이 몰려오고, 그 나방을 먹으러 거미가 오고, 그 거미 때문에 비둘기가 모이고, 그 비둘기의 배설물로 건물이 지저분해지고 그걸 닦으러 비눗물 청소를 자주 하다 보니 유지비가 엄청나게 들었던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간단했습니다. 스위치를 내렸어요. 다른 건물 보다 두 시간 일찍 켜던 스위치를 잠시 내렸다가 남들 켤 때 같이 켰더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에요. 돈 한 푼 안 들이고 말이죠. 이 다섯 번의 “왜?” “5 Why”라는 유명한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전해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는 모두 대단해 보입니다. 저도 다음세대나 부모님을 만나보면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구요,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그걸 시간만 되면, 기회만 되면 쏟아 놓는 거에요.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이 되나요? 뾰족한 수는 없고, 그러니까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왠지 기쁘지가 않은 거에요. 내 신앙은 계속 오락 가락이고, 나쁜 습관은 계속 못 끊고, 아이들이 하는 건 마음에 안 들고, 내 믿음은 분명히 서있지 않은 것 같고, 성경말씀은 읽어도 잘 모르겠고, 기도는 한다고 하는데 마음 먹고 앉으면 피곤하고 졸리고... 가끔씩 불쑥 올라오는 분노 때문에 내 자신에게 치를 떨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고, 하나님은 믿지만 정말 날 도우시는 건지, 내 앞날을 책임지시는 건지 영 불안하고 믿어지지가 않고... 도무지 내 믿음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 거에요. 여러분은 혹시 그렇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이 엄청난 문제들이 실은 정말 왜? 왜? 왜? 질문을 던지다보면, 이유를 찾다보면 결국 스위치 하나에 달려 있다는 거에요. 그 스위치는 바로 “믿음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이 스위치를 위로 올리는가, 아래로 내리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생활에 엄청난 비용과 대가가 따르기도 하고 엄청난 은혜와 기쁨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믿음은 내 생각을 관철해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믿음은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잘 될 거라는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인생을 관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바 되어 그 말씀을 내 온 삶으로 붙잡고 내 인생으로 그 말씀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고 그 언약이 언약되게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올 한 해 믿음의 스위치를 올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우리 다음세대들이 다 되시길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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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6-01-30
  • [다음세대칼럼]두 교회, 다음 세대는 어떤 교회를 기억할 것인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로 본 교회의 선택 오늘날 교회는 수적으로 많지만, 다음세대가 체감하는 교회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어떤 교회는 여전히 생명력 있게 성장하며 다음 세대를 품는 반면, 어떤 교회는 존재하지만, 영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는 이러한 교회의 현실을 두 종류의 교회로 분명하게 나눈다. 생산적인 교회와 비생산적인 교회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타국으로 떠나는 주인을 통해 자신의 승천 이후 교회의 시대를 바라보신다. 그리고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맡기신 사명과 기회, 책임을 의미한다. 다음 세대가 떠나는 교회, 비생산적인 교회 비생산적인 교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교회는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는다. 이는 다음세대의 언어로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하고, 시도를 거부하며, 실패를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회다. 첫째, 사명을 멈춘 교회다. 복음 전도와 다음세대 양육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교회는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삶과 동떨어진다. 둘째, 변명으로 가득 찬 교회다. “요즘 애들이 문제다”, “시대가 변했다”라는 말은 결국 교회의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일 수 있다. 셋째, 에너지를 소모하는 교회다. 내부 갈등, 말다툼, 형식적 논쟁에 에너지를 쏟는 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상상력과 투자 여력을 잃는다. 넷째, 불신앙의 교회다. 하나님보다 실패를 더 두려워하는 교회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도전을 시작하지 못한다. 다섯째, 현상 유지에 머무는 교회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으니 그대로 하자”는 태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다음 세대의 삶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교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음 세대에게 매력 없는 공동체, 머물 이유 없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다. 다음 세대를 살리는 교회, 생산적인 교회 반면 예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생산적인 교회는 결과보다 태도, 규모보다 방향을 중시한다. 첫째, 작은 일에 충성하는 교회다. 다음 세대 한 사람, 한 영혼을 향한 꾸준한 관심과 돌봄을 소중히 여긴다. 둘째, 기회를 즉시 붙드는 교회다. 변화의 신호를 위기가 아닌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 보이지 않아도 충성하는 교회다.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사명을 감당한다. 넷째, 보상을 계산하지 않는 교회다. 숫자나 성과가 아닌,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다음 세대 사역을 지속한다. 다섯째,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교회다. 다음 세대 사역은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긴 호흡의 믿음이 필요함을 아는 교회다. 여섯째,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교회다. 이는 교회의 성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기쁨에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초대다. 올해에는 우리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달란트 비유의 결론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교회가 건물이나 프로그램보다 사람을 남기기를 원하신다. 특히 오늘의 교회는 다음세대를 향해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다음 세대는 말보다 삶으로 증명되는 신앙, 형식보다 진짜 관계, 규모보다 진정성 있는 공동체를 기억한다. 생산적인 교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세대를 향한 책임을 감당한다. 마태복음 25장의 메시지는 오늘의 교회에 도전한다. 다음 세대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를 통해 실망하게 할 것인가, 착하고 충성된 교회, 그리고 다음 세대를 살리는 교회가 되어 마침내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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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하나님께 맡기는 2026 자녀교육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늘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을까, 지금 이 선택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부모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항상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맡김(Trust)’입니다. 이 ‘맡김’의 원리가 자녀교육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 자녀 인생의 ‘진짜 주인’이십니다 많은 부모님이 자녀의 인생을 자신이 설계하고 완공해야 할 ‘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경영하려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부모는 경영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잠시 위탁받아 기르는 ‘청지기’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부모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모든 과정 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듯, 우리 아이의 성격, 재능, 심지어 우리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 있습니다. 자녀를 내 소유로 생각하면 불안하지만,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우리 아이 인생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부모는 비로소 아이를 내 기준에 맞추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아이를 통해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관찰자’이자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라는 무거운 짐을 부모의 연약한 어깨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옮겨 드리는 것이 자녀교육의 첫걸음입니다. 2. ‘맡김’은 방관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그럼 부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뜻인가요?”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방관’과 ‘맡김’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맡김은 부모의 책임을 회피하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땀흘려 일하지만 그 결과물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맡기듯, 부모는 아이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따뜻한 밥을 해 먹이며, 기도의 무릎을 꿇는 성실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내 뜻대로 바뀌지 않을 때,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맡김’의 실천입니다. “나는 뿌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불안한 강요는 아이의 영혼을 숨 막히게 하지만, 부모의 신뢰 섞인 기도는 아이의 영혼을 춤추게 합니다. 부모의 성실함과 하나님의 지혜가 만날 때, 자녀의 인생에는 부모의 계산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경영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3.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 안에서 ‘한 팀’이 되게 합니다 세상의 자녀교육은 부모와 자녀를 ‘감독과 선수’ 혹은 ‘관리자와 노동자’의 관계로 만듭니다. 성과를 내야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수직적이고 긴장된 관계입니다. 그러나 자녀의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면, 부모와 자녀는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경영자 아래 있는 ‘동역자’이자 ‘한 팀’이 됩니다. 부모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는 부모의 권위가 아니라 부모 뒤에 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배우게 됩니다. 부모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보며, 자녀 또한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한국 부모의 열정과 자녀의 가능성이 ‘하나님께 맡김’이라는 영적인 원리 안에서 결합될 때,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다그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손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동반자가 됩니다. 이러한 신뢰의 관계 속에서 자녀는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비로소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올 한 해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짜기 전 먼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잠언 16장 3절의 말씀을 소리 내어 선포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아이의 학업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 아이의 성품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 아이의 진로와 만남의 복을 주님께 맡깁니다.”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부모인 우리는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하고 축복하는 일에 집중합시다. 우리가 주님께 맡겨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랍고 완벽한 방법으로 우리 아이의 인생을 경영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부모만이 누릴 수 있는 그 깊은 평안과 행복이 2026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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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6-01-09
  • [다음세대칼럼]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사명으로 살 때이다.
    상담이나 청소년 집회하다 보면 상처나 열등감을 도와 달라는 호소가 많다. 그래서, 돕다 보면 그 치유의 정점은 다른 사람을 잘 섬기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다. 사명의 길을 갈 때 진정한 성숙과 행복이 온다. 깊은 신앙과 상처에서의 회복도 완성된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다시 세우고 돕는 방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상처를 회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상처가 사명이 되게 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이 빠른 해결 방법이다. 그렇게 하려면 가진 은사와 재능을 찾아야 한다. 강점도 발견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쓰이는 곳이 사명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신앙이 좋은 증거도 은사가 불같이 일어서 사명을 감당한다고 고백한다.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모세는 왕자 리더십, 그리고 광야의 인격과 영성이 은사가 되었다. 왕자 리더십과 정치 능력을 40년간 애굽 왕궁에서 한 훈련은 이스라엘 지도자로의 리더십을 준비함이다. 거기다가 출애굽을 위해 미리 애굽 나라를 잘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40년 광야에서 사는 훈련은 출애굽 후 광야로 인도하기 위한 광야 전문가가 되는 훈련이다. 처가댁의 양치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목자로 출애굽을 하여 인도함을 잘 수종을 들고 모세도 그렇게 목자의 심정으로 이스라엘을 이끌며 보호하고 사랑하라고 하는 이유이다. 모세의 처가살이 40년은 하나님 백성들의 까다로운 반항과 불순종을 잘 통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온유함을 가져야 가능하기에 미리 준비하는 여정이다. 유모를 바로의 궁에서 친어머니를 통해서 하도록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킬 자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미리 훈련되기 위해서이다 자기 정체성을 준비시킴이다. 결국 모세야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출 4:2)라고 할 때 “지팡이니이다.”(출 4:2)라고 했다. 결국“그것으로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같이 되어 사역하라.”(출 4:16-17)고 하셨다. 모세의 사명 치유이다. 요셉과 다윗,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 사도 등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가진 은사를 통해 불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특히 상처도 사명의 도구가 되게 하셨다. 나도 어릴 시절 깊은 살골의 삶이 지금 사람들의 깊은 아픔을 살피는 전문 상담가, 전문 가정사가 되게 하셨다. 한센병 할아버지 섬긴 경험이 상처로 굳기보다 사람을 회복하고 살리는 상담과 설교를 하게 되었다. 알코올의존 아버지로부터 복음으로 20여년 자주 맞으며 핍박받은 상처는 도리어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걸며 전하게 되고 복음을 확신 있게 믿게 하는 믿음이 되었다. 이렇게 상처받고 힘들게 산 이야기는 “자연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 강점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명의 삶으로 재해석할 때, 상처보다 큰 삶을 살게 된다. 이를 “자연이야기”에 대응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 사람을 “비전”(Vision)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비전을 성취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인 “사명자”, “비전 성취자”(Visionary)라고 한다. 이제 청소년의 상처를 공감하고 불쌍히만 여기는 자리에서 상처가 사명이 되어 놀라운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자. 그러면 청소년 당사자의 상처는 모두 결국 치료되거나 극복하게 된다. 이렇게“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진다.”한국교회가 부흥하게 되는 일은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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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 [분홍목사의마음세대이야기]레아의 기다림과 성탄절의 신비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외삼촌 라반의 첫딸인 레아는 평생 자기보다 예쁘고 똑똑한 동생 라헬과 비교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시력이 약했다고 말하는데 이 표현은 눈이 나빴다는 말이 아니라 늘 눈동자가 지쳐보였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예쁘지 않았다, 외모가 매력이 없었다고 해석합니다. 또 다른 해석은 늘 눈물로 적셔져 있어서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레아는 늘 슬프고 험한 인생을 산 거죠. 그리고 이름만 봐도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그녀의 이름 뜻은 “들소”였습니다. ‘약함’, ‘지침’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생 라헬은 “암양”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름다움’, ‘고움’의 뜻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빠 라반이 야곱과 동생 라헬이 결혼하는 그 밤에 두 자매에게 너무나 뜻밖의 말을 합니다. 레아에게 신혼방에 들어가라고 한 거에요. 그때는 불도 없고 그러니까 밤이 되면 어두워서 안 보이잖아요. 언니와 동생이 비슷하니까 누군지 모르고 첫 날 밤을 보낸 거죠. 그러자 야곱은 억울해하고 분하게 여겨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사람의 뜻은 예쁘고 매력적인 라헬이 먼저 시집을 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그렇지 않은 레아에게도 공평하게 향한다는 것을 볼 수 있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결국 세상의 방법과는 다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니까요. 자, 이제 두 자매가 야곱과 결혼한 여기부터가 중요합니다. 야곱과 결혼한 레아는 같이 야곱의 부인이 된 동생 라헬과 경쟁하는 삶을 살아요. 그 당시는 아들을 낳는 것이 대를 잇는 것 뿐 아니라 아내의 역할을 다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거든요. 그렇다면 여기서 누가 장자의 어머니가 됐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야곱이 의무감으로 결혼한 레아보다는 사랑해서 결혼한 라헬과 잠자리를 더 많이 했을 테니까 당연히 라헬이 먼저 애를 가지고 낳았을 거 같아요. 그런데 정작 첫 아들을 낳은 아내는 레아였습니다. 첫 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어요. 이름 뜻은 ‘보라 아들이라!’였어요. 누구 보라구요? 동생 라헬 보라구요! 이어서 두 번째 아들을 또 레아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지어요. 뜻은 ‘들으심’이에요.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다는 거에요. 그리고 세 번째 아들도 레아가 낳아서 이름을 ‘레위’ 연합, 하나됨이라고 지어요. 이제 내 남편은 내 동생 라헬과는 완전히 결별을 하고 나와 완전히 연합해서 하나가 될 거라는 자신감이 넘치는 이름이죠. 자, 그러면 이제 이쯤해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어요. 레아의 남편 야곱은 정말 예쁜 라헬만 사랑하고 못 생긴 레아는 외면했는가? 하는 거에요.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랬다면 이렇게 레아가 아들 셋을 연속해서 낳을 수가 없죠. 야곱은 비록 의무감이었을망정 두 아내에게 모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었고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다했던 거였죠. 그렇다면 레아의 인생이 왜 그토록 힘들었을까요?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남편에게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아픔은, 그녀가 자신의 행복을 오직 '남편의 인정'에서만 찾으려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람의 사랑으로 내 빈 마음을 채우려 하니,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늘 목마르고 비참했던 것입니다. 비교하면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질 뿐이니까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 그녀가 네 번째 아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드디어 이전의 방식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동생 들으라고, 약올리는 이름을 짓지 않고 ‘유다’라고 합니다. 뜻은 ‘찬송’이에요. 이렇게 넷째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이제는 더 이상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사랑을 갈구하며 살지 않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주어진 생을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아내겠다는 신앙의 다짐을 담은 이름을 지은 것이죠. 더 이상 남편의 사랑을 구걸하는 약한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거룩한 예배자가 된 것입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보기 전에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레아, 약함, 지침이란 이름을 가졌던 한 여자, 일생을 통해서 비교당하고 언제나 약하고 지쳤던 그녀가 마침내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어머니가 되는 한 여인의 인생을 우리가 봤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사랑받던 라헬이 아니라 사랑도 못 받던 레아가 여섯명이나 되는 아들을 낳게 되었을까요?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29:31) 레아는 약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약했기에 기다렸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약해서 기다리는 자가 누리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같이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약하고 무력해서 다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시대의 레아들에게 주님은 예수님의 탄생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레아의 기다림이 왜 오늘 대림절에 중요할까요? 바로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림 끝에 낳은 네 번째 아들, '유다'의 자손에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받지 못했던 여인, 가장 약했던 여인,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기다려야 했던 그 여인의 몸에서 세상을 구원할 왕이 오셨습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하고 강한 곳이 아니라, 약하고 기다리는 자의 삶에 찾아오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레아처럼 지치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한 것 같고, 약해 보이십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약하니까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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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12-19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를 주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았지만 거역하고 도망쳤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담은 요나서는 우리에게 참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책입니다. 그중에서도 요나서의 결론에 해당하는 요나서 4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4:11)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이것이 하나님이 아끼시는 대상을 나타내는 말이었어요. 이 표현은 당시에 6세에서 7세 미만의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직 유치부, 미취학 아동인 거에요. 당시에 이 아이들은 아무 쓸모없는 물건처럼 취급을 당했어요. 말도 잘 안 통하고 일을 시킬 수도 없고 자꾸 울고 보채고 먹을 것이나 찾고...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무조건 강자 중심이고 어른중심이 아닙니까? 경제활동을 하니까요. 돈을 벌지 못하면 사람 숫자로 잘 치지 않습니다. 요나서가 기록된 구약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만 숫자로 치던 시절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몇 명인지는 셀 이유도 없고 세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니느웨에 사람 숫자를 헤아리면서 어른 숫자가 아니라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숫자를 계수하십니다. 이건 요나가 아까워하는 대상과는 완전히 다르죠. 요나는 자기한테 유익이 되는 대상, 자기의 머리 위를 가려줄 유능한 박넝쿨을 아까워했어요. 비록 하루아침에 났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박넝쿨이지만 요나는 그런 존재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유익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을 말씀하고 계신 거에요. 왜요? 그들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이 우리가 사는 이유이고 우리의 목적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고 그들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예수님께서 직접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18:10-14) 너무 놀랍지 않으세요? 아이들마다 그들의 천사들이 있는데 그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고 하십니다. 이건 그야말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잃은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잃은 양이 바로 앞에 나온 “이 작은 자중의 하나”인 겁니다. 그럼 이 잃은 양을 어떻게 찾을까요? 그 천사가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기 때문에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이 직접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잃은 양이 14절에는 다시 “이 작은 자중의 하나”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이 작은 자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잘 키워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키워내는 교회가 되자고 할 때 이 말은 다음세대와 기성세대를 나눠서 서로 경쟁하자는 게 아닙니다. 누가 더 소중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음세대가 없으면 교회는 미래가 없어집니다. 아무리 큰 교회도 이제 다 문 닫고 다른 용도로 팔리는 시대가 곧 올 겁니다. 유럽과 미국교회의 사례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곧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다음세대를 사랑하고 살려내는 교회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다음세대를 살려 미래를 열어가는 복된 교회가 되길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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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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