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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사춘기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려면
    제가 부모들 교육을 할 때 믿는 부모들이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우리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니까 아이들이 이제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사춘기 부모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교회에도 나와야 하니까 “한 달에 한 번만 예배에 나와라.” 이렇게 정리를 했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잘했죠!”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제발 욕심을 버리시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안 믿는 집 애들은 공부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믿는 집 애들은 공부도 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사교육도 받아야 하고 공부도 1등 해야 하고 교회까지 와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애가 어디 있습니까? 슈퍼맨입니까? 못합니다. “안 믿는 부모들은 공부만 시키지, 우리는 공부에 신앙까지 시키니 어떻게 애들이 견디겠습니까? 적어도 하나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 중요하면 이것만 꼭 잡고 나머지 중에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포기를 못하십니다. 학교 공부도, 사교육도, 예체능도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학원을 대여섯 개 보내시면서 교회까지 잘 나오는 그런 자녀로 키우기를 기대하시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자녀들을 밀어 붙입니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들이 그 욕심에 치를 떨면서 교회 나오기를 거부하고 마는 것입니다. 왜 그럽니까? 부모가 자기 자신을 포기 못 한 겁니다. 내 사회적 체면, 내 지위, 내 계획, 내 꿈을 포기 못 하니까 내 자녀에게 나보다 더 많은 삶을 압박하고 강요하는데 그걸 애들이 어떻게 따라옵니까? 다 넘어지지. 그러니까 사춘기가 되면 교회를 안 나오는 겁니다. 결국 누구 때문에 안 나오는 겁니까? 우리 때문에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래 놓고 분홍목사에게 답을 찾고, 분홍목사에게 솔루션을 내놓으라고 그러면 제가 무슨 수로 내놓습니까?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왜 내 아이의 미래를 못 맡깁니까? 왜 우리 아이의 진로를 하나님께 못 맡깁니까? 여기서 우리의 믿음이 결정됩니다. 맡기세요. 우리가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우리 아이의 통치자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수많은 문제들은 여기에 다 걸립니다. 수많은 케이스가 있는 거 같지만 딱 하나에 걸립니다. 누가 왕인가? 하는 겁니다. 누가 왕인가? 하나님인가, 아닌가? 여기에 모든 문제가 다 걸려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하나님의 왕이 아니니까 다 걸리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닌 것이 왕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 아닌 어떤 것이 왕이 됩니까? 당연히 물질, 그리고 나 자신입니다. 물질이라고 말할 때 그게 뭐냐면 이 땅에 썩어질 것을 즐기는 내 습성이 다 묻어나는 게 물질이거든요. 그게 집일 수도 있고, 땅일 수도 있고, 명품일 수도 있고. 이게 다 여기 묻어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은 누구입니까? 내 자녀 때문에 죽고 못 사는 나. 내 명예, 내 인기, 여기에 집착하는 내가 물질이고, 나 자신이고, 결국은 이게 두 개가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집착을 위해 살 때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됩니까?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남과 재고, 그러다가 절망하고 좌절하고 패배하고 마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닌 것이 왕이 될 때 우리 인생의 결론은 패배입니다. 그것도 완전한 패배입니다. 예수 믿고 패배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내가 가진 그 어떤 가치보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서운함보다 하나님이 더욱 크신 분임을 알고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며 살아가는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내가 가진 그 어떤 가치보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서운함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이걸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걸 못 믿으니까 내가 가진 게 커 보이고, 내가 못 가진 게 서운하고 그게 아쉽습니다. “아! 그때 교회를 안 보냈으면 우리 애가 공부를 더 했을까?”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그때 그 수련회 안 보냈으면! 그때 그 성경학교 안 보냈으면! 우리 애 등급이 높아졌을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얻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놓친 그 어떤 것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온전히 찬양하며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참된 승리가 찾아오는 겁니다. 승리는 돈 버는 게 아니고, 승리는 1점 더 받는 게 아니고, 승리는 한 번 더 칭찬받는 게 아닙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자부심이 있습니다. 적어도 성민교회 아이들은 행복 지수가 전교 1등입니다. 성적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는 합니다. 그런데 행복 지수는 전교 1등입니다. 저는 식사하면서 저희 교회 부교역자 사모님께 그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저희 남편은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스트레스 없는 목사! 저는 그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왜 사역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돼요. 하나님이 왕 되시면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보다, 놓친 것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그분만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선택과 집중으로 우리의 사춘기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고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대이어 위대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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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9-08
  • [다음세대칼럼] 작은 기적의 무대, 둥지극단
    이제 제법 배우 느낌이 나는 둥지아이들. 각자 자신의 대사를 읊조리며 곧 있을 둥지극단 정기공연 “엄마의 바다”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 중이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디아코노스 김태연 단장님이 아이들과 7년째 호흡을 맞추어 왔다. 이 공연이 있기까지의 첫 시작은 김태연 단장님이었다. 아이들과 연습한 지 딱 두 번 만에 단장님이 따따이에게 놀라운 제안을 했다. “따따이. 우리 둥지아이들로 연극공연 합시다!” 확실한 의지를 보이는 단장님에게 따따이는 공연이 어려운 몇 가지 이유를 댔다. “우선 아이들이 대사를 외울 수가 없어요. 간단한 것도 암기하지 못하는데 연극대사를 외울 수는 있겠습니까?” “외울 수 있습니다. 그냥 외우는 것과 대사암기는 좀 다릅니다” “그리고 배역을 정해 놓으면 뭐합니까? 언제 이탈할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연극공연이라는 목표가 생기면 이탈 안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어서 정식 공연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압니다. 제가 둥지 아이들과 연습을 해보니깐 이 아이들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끼가 있어요. 다른 고등학교 연극부나 모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게 있다니깐요. 한 번 해 봅시다” 결국 단장님의 설득에 따따이가 이겨낼 수가 없어 연극공연을 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연습 중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음을 여는 시간으로 연극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출발이었다. 그동안 소외된 채 자기 표현을 서툴러하고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무대에서 숨겨진 재능과 끼를 표현하기만 해도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고 연기감각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특히 연극의 스토리가 비행과 범죄로 재판까지 받았던 자신들의 살아온 삶의 상황과 비슷한 내용(가족과 갈등, 가출, 연예인 지망 등)을 담고 있어서 더욱 와닿았다. 제목을 ‘엄마의 바다’라고 정하고 동일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초대하여 회복의 무대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소박하게 하려던 공연이 아이들의 열심에 감동을 받아 더 제대로 된 무대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에 ‘둥지극단’이라 이름을 정하고 정식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은 따따이의 마음이었다. 연극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 비해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함께 생활하는 분위기도 좋아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나 작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의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이탈하거나 무단가출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모습이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인생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이기에 가끔은 대견스럽기도 하다. 따따이는 지인들에게 연극공연에 초대하는 문자를 보내면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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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신앙교육나침반] 알파세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교회교육 핵심전략 3
    최근 세계사의 재미에 푹 빠진 12살 첫째 딸, 예나가 노트북으로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고 있습니다. 스크린 오른쪽에 놓여있는 테블릿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악보가 보입니다. 아이는 테블릿에 띄워놓은 악보와 세계사 영상을 번갈아 보면서, 두 손으로 칼림바(아프리카 악기로,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손가락 하프임)를 연주합니다. 각각의 디바이스에서 제공하는 다른 컨텐츠를 아무렇지 않게 흡수하는 2012년에 태어난 이 아이는 바로, 알파세대입니다. 알파세대는 2010년 이후에 태어났고, 2024년까지 태어날 아이들의 세대를 지칭합니다. ‘알파’(α)라는 이름은 호주의 인구통계학자인 마크 매크린들(Mark McCrindle)이 21세기에 태어난 첫 번째 세대라는 의미로 그리스어 알파(α)를 사용했습니다. 알파세대는 그 이름처럼 지금까지 세대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대입니다. 이들에게 IT기술과 스마트 디바이스는 도구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이며, 이들은 AI쳇봇과 친구처럼 함께 성장하는 세대입니다. 알파세대의 특징을 고려한 교회 현장의 교육 방향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첫째, 지식 전달이 아닌 경험, 티칭(Teaching)이 아닌 코칭(Coaching)! 알파세대는 AI와 공존하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첫 번째 인류가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지식은 스마트기어를 통해서 언제, 어디어사 검색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파세대에게 교사중심의 지식 전달 수업은 그 어떤 흥미와 감동도 줄 수 없습니다. 알파세대는 교사가 이미 만들어서 제공하는 지식이 아닌, 자신들이 탐구하여 지식을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참여하는 수업에 흥미로워합니다. 이들은 누군가가 기획하고 만들어 제공하는 컨텐츠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알파세대는 타인이 제한하여 만들어준 컨텐츠보다는,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기획하여 창조하는 컨텐츠에 특별한 매력과 재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다이소, 마라탕, 버블티에 열광합니다. 교회학교 현장은 추상적인 지식을 주입하는 티칭이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말씀이 주는 지혜를 발견하고, 그 지혜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을 코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감탄과 즐거움을 경험하는 하이터치(High Touch)가 있는 교회! 알파세대는 코로나 펜데믹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인생에서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에 사회적 결핍과 공백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불행하게도, 알파세대는 펜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환경으로 인하여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이 매우 편안한 세대입니다. 스마트 기어가 제공하는 단방향 소통에 익숙한 아이들은,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유튜브 시청을 더욱 선호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을 위한 교회교육 현장은 감탄과 즐거움이 가득한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이 되도록 더욱 세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가상공간의 경험은 결코 이 아이들의 영혼을 터치하지 못합니다. 알파세대에게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은 특별하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 현장은 마음이 공허하고 아픈 이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터치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안에서의 ‘나’를 발견하는 교회! 알파세대는 자신의 모든 삶을 sns에 라이프 로깅(lifelogging: 일상을 기록하다)합니다. 아이들은 수시로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트위터 등에 일기처럼 기록합니다. 이아이들은 자신의 게시글에 달린 ‘좋아요’와 ‘공감’ 숫자로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기며, 평가합니다. 온라인의 일상이 아이들의 일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가 없는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스마트 도구를 향방 없이 사용하며 중독되어갑니다.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 안에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교회교육 현장이 필요합니다.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영적 파워를 지닌 ‘나’를 발견하고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파세대가 하나님 안에서의 나를 발견하고, 영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알파세대에게 스마트기어는 더 이상 아이들의 일상을 주도하는 본질이 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비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최고의 도구로 스마트기어를 선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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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작은 승리를 기뻐하는 아이로 키우자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기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은 큰 성공을 거두고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데 우리 아이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아서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단시간에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어려울 때 우리는 작은 승리를 꿈꾸며 그것을 기뻐하는 아이로 우리 자녀를 기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큰 성공, 큰 승리를 꿈꿉니다. ‘그게 아니면 아예 승리도 아니야.’ 라고 지레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까 일상의 승리가 없어졌습니다. 일상의 간증이 없어졌습니다. 너무 큰 것, 대단한 것만 바라보니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한때 서울 수서동에서 유명한 과외 선생이었습니다. 과외 선생 홍 선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그 아파트 한 단지가 다 저의 필드였습니다. 제가 한 달만 쉬겠다고 그랬더니 어머니들이 안 된다고 해서 군대 입대하기 열흘 전까지 과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하고 나서 과외를 다시 하라는 굉장히 많은 유혹을 받았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월 27만원 받는 교육 전도사를 시작해서 목회의 현장으로 들어가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결국 돈보다 목회의 길을 걷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당시에 평균 60점 맞는 아이가 열심히 하겠다고 많이 찾아왔습니다. 홍 선생님 밑에 가면 뭔가 잘 된다니까 애들이 옵니다. 근데 60점 맞는 아이의 다음 시험 목표는 몇 점이어야 됩니까? 저에게 보내는 모든 엄마들의 목표는 100점입니다. 물론 제가 가르치는 클래스에 평균 100점 받는 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원래 99점 받던 아이입니다. 99점 받던 애가 저한테 와서 100점 맞게 되니까 전교 1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홍 선생이 전교 1등을 만들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60점 받는 애를 데려다 놓고 100점 맞으라고 하니 어떻게 될까요? 그 아이는 도저히 100점 맞을 수가 없습니다. 또 실패를 맛볼 뿐입니다. 그 아이는 일단 한 문제부터 더 맞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65점부터 맞고 그 다음이 70점, 그다음 80점, 90점, 이렇게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절차와 계획이 엄마들의 마음에 들지가 않은 겁니다. “돈이 얼만데. 당장 100점을 맞아 와야지. 70점? 야! 다니지 마!” 그리고는 학원 끊어요. 그럼 그런 애들이 다시 60점으로 내려갑니다. 원위치가 되는 겁니다. 한 문제씩 맞춰갈 때 하나씩, 하나씩 배워갈 때, 기본기가 없는 애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배우고, 그다음 루트도 하고 미분, 적분도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100점도 맞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지금 나의 수준보다 딱 한 단계만 더 올라가자, 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적어도 10단계, 20단계, 100단계는 단번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대단한 승리를 거둘 거야! 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목표는 항상 적어도 두 배 이상, 적어도 10배에서 100배 정도는 돼야 성공이지, 그렇지 않고 약간 늘어나는 건 성공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라톤을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2.195km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걸음을 잘 달려야 합니다. 지금 한 발을 잘 디뎌야 결국에 이 한 발 한 발이 모여서 마라톤 코스를 완주합니다. 그러면 지금 나의 한 발은 승리인가요, 아닌가요? 승리입니다. 지금 나의 한 발은 성공인가요, 아닌가요? 성공입니다. 여러분, 이게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이 뭐냐면 지금 나의 한 걸음이 성공임을 아는 겁니다. 지금 나의 한 걸음이 승리인 걸 아는 겁니다. 한번 도전했습니다. 한번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성공인 것이고 그게 승리입니다. 너무 큰 것을 바라보다가 지금을 놓치는 우를 범치 않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내가 예배하고, 지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성공이고 승리입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가 교회에 나오는 건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그걸로 만족을 못하고, “적어도 중등부 회장은 해야지! 적어도 얘가 예배 인도쯤은 해야지! 찬양 인도쯤은 해야지! 우리 애가 드럼은 좀 쳐야지!”라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교회에 왔으면 대단한 겁니다. 업고 다니고 뽀뽀를 하고 용돈을 줘도 시원치 않은데, 구박합니다. “왜 아침에 나오는데 30분씩 걸리냐? 네 머리 괜찮은데 왜 또 감냐?”고 구박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환대해 주세요. 기쁘게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세요. 교회에 나오는 그 아이들이 너무너무 귀한 아이들입니다.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23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득점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골씩 넣어야 됩니다. 한 골씩. 이게 중요합니다. 축구공 23개를 한꺼번에 들고 와서 한꺼번에 뻥! 차 놓고 나 득점왕 됐다! 이럴 수 없습니다. 23골을 한꺼번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유명한 캘커타의 성녀라고 하는 마더 테레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기아에서 건지고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에 한 명씩 안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축구는 한 골이 중요하고 사랑은 한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적도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거창한 성공보다 작은 승리를 기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길러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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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8-18
  • [다음세대칼럼] 은혜의 집(2)
    만약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인다고 했을 때 누가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 중에 몸이 가장 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정작 은혜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연못은 진짜 은혜가 필요한 병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죽게 된 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단순 감기 환자가 먼저 뛰어 들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만성두통과 복통 환자가 먼저 들어가 버립니다. 다리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야 하는데 운동하다가 다리를 접질린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과 대립으로 가득한 살벌한 현장이 바로 베데스다 연못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각종 환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로 인해 영적 질병에 걸려서 무기력,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 줍니다. 그들은 눈이 멀어 있어서 천국의 아름다움과 지옥의 고통스러움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리를 절고 있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긴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풍병자와 같아서 진리를 향하여 움직이거나 진리 안에서 활동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예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불신자들, 모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모든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도 비슷합니다.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교회와 교회도 형제가 아닌 경쟁자입니다. 교회와 교회끼리 경쟁합니다. 서로 큰 건물 짓기 경쟁을 합니다. 서로 사람 수 늘리기 경쟁을 합니다. 몇 십억, 몇 백억, 몇 천억 단위의 건물을 짓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큰 건물이 많은 사람을 흡수하고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발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왕들을 뽑습니다. 진돗개 전도왕, 양육 전도왕, 파워 전도왕, 능력 전도왕, 웃음 전도왕, 심지어 마사지 전도왕까지 뽑습니다. 그리고 이 전도왕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집회를 통하여 전파하고 다닙니다. 이런 교회들끼리의 경쟁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감투 경쟁, 기득권 경쟁, 자기중심적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경쟁 원리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넘쳐야 할 교회에 38년 된 병자와 같이 남을 원망하며 남을 탓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현실입니다. 은혜는 사라지고 온갖 원망과 불평과 불신과 판단으로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혹자는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자기중심적인 곳이 교회라고까지 말합니다. 참으로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습니다. 은혜의 집에 은혜가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리에 누워서 예수님을 보고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정말 자비와 은혜의 실체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을 찾고 그를 절대적으로 의지합니까? 주님이 계실 때에야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 되고 맙니다. 주님이 계셔야만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이 계실 때 그곳은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베데스다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살아야 합니다. 베데스다는 오늘날 교회입니다. 은혜와 자비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베데스다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만을 소원해야 합니다. 예수만이 소망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만이 치유자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독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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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3-08-18
  • [신앙교육나침반] 온 세대가 하나 되는 전교인 수양회, 기적을 만들어내다!
    서울 강남일 교회 150여명의 온 세대가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주제로 전교인 수양회를 열었습니다. 미래를 꿈꾸는 3세대와 현재를 열정으로 살아가는 2세대와 과거 역사의 유산과 지혜를 품은 1세대가 3일 동안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강남일 교회 전교인 수양회의 주요 프로그램은 담임 목사님의 저녁 말씀집회와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이 이끄는 온세대 복음놀이터입니다. 지난 5월에 저는 교회의 요청으로 오후예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설교시간에, 이 시대를 살아하는 자녀세대에게 교회와 가정이 하나 된 자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절박한지를 강조하였습니다. 담임목사님과 많은 성도들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함께 복음을 받고, 복음을 놀이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러한 복음 놀이 안에서 온 세대가 하나 될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 하셨습니다. 당시 교회는 올 여름 전교인 수양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를 분리하여 별도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교회는 향기나무에 연락을 주셔서, 온 세대가 함께 복음을 받고, 복음을 놀이하는 시간을 요청해주셨습니다. 드디어 전교인 수양회의 온 세대가 복음놀이터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아부터 노년에 이르는 150여명의 온 세대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온 세대가 ‘가정은 하나님의 보물’ 주제의 복음 말씀과 놀이에 참여하였습니다. 강남일 교회는 특히 1세대 실버 어르신들이 절반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2세대 장년들과 3세대 다음세대들은 바닥에 앉고,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실버어르신들은 관절이 불편하셔서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힘도 없으시고, 표정도 없으셨습니다. 과연 온 세대 복음놀이터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한마디로 ‘미라클’이었습니다. 향기나무의 세대통합 복음말씀이 시작되자, 온 세대가 숨죽여 매력적인 복음에 사로잡혔습니다. 복음은 연령과 성별과 직분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1세대와 2세대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3세대를 품에 안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3세대는 1세대의 2세대의 진심어린 기도와 응원의 미소 앞에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복음 놀이가 시작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2세대와 3세대가 주도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1세대 실버부대의 함성소리가 온 강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왕년에 강남일 교회를 세우셨던 뜨거운 열정이 2023년도에 다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뜨겁게 즐거워하며 복음놀이에 참여하셨습니다. 2세대와 3세대는 1세대의 숨은 열정과 천진난만함을 보며, 실버세대의 새로운 모습에 감격했습니다. 강남일교회의 40년 역사를 품은 1세대와 교회를 열정으로 세워가는 2세대, 그리고 강남일 교회의 미래를 꿈꾸는 3세대의 매듭이 묶여지니, 놀라운 기적이 만들어졌습니다. 온 세대가 함께하는 전교인 수양회는 미라클(miracle: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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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3-08-18
  • [양육칼럼] 묻지마 범죄를 보며 양육태도 돌아보기 : 십계명을 되새기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요건을 먼저 선포하신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열 가지 말씀이 나타내는 신앙과 윤리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계명 속에 들어 있는 신앙과 윤리적인 삶을 구분해 본다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관한 규범은 1-4계명으로 4가지이고, 나머지 5-10계명 즉 6가지는 윤리적인 삶에 관한 규범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이 땅에서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매일같이 보도 매체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 사건을 보면 도대체 저 범죄자들은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설명되지 않는 동기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며 일상에 대한 불안도 가중된다. 이미 일어난 범죄에 대한 모방범죄를 예고하는 글도 온라인상에서 폭주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국민 전체가 혹여 피해를 입을까 하는 불안심리도 높다. 묻지마 범죄자들은 일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처지나 실패 등의 원인을 타인이나 사회구조에 전가하여 이에 대한 분노나 스트레스를 블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이들의 범죄 원인은 현실적으로는 실업으로 인한 생활고, 외부와의 단절,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인한 충동성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범죄 원인에 대해 교육학적. 심리학적 접근을 하면 범죄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포함한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충분히 공감 받지 못했으며 소외되거나 거부되는 양육환경에서 자랐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또래들로부터 또는 주변 성인들로부터도 따뜻하게 공감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며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공감 받지 못하며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타인의 입장이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하며 자신의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타인이나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십계명 중 5-10계명을 다시 살펴보면 자녀 양육의 핵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숙고하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은 살인하지 마라. 7계명은 간음하지 마라. 8계명은 도적질하지 마라. 9계명은 거짓 증언을 하지마라. 10계명은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이는 모두 가족과 이웃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되며 탐욕을 부렸어도 안 된다는 규범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탐심을 버리고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명을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부모가 먼저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앞서 칼럼에서도 피력한 바 있지만 아이들은 가르치는 것을 배우기보다 보여주는 것을 더 쉽게, 더 견고하게 배우게 된다. 부모들의 신앙과 윤리적인 삶을 보면서 아이들의 신앙과 윤리적인 삶이 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자신의 탐욕보다 가족과 이웃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려서부터 자기 자신이 존중받고 공감 받으며 실수하고 실패해도 지지하고 격려하는 양육을 받아야 한다. 존중과 공감하는 능력은 존중받고 공감 받을 때 배우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족과 이웃을 존중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감능력이 갖추어진다면 더 이상 묻지마 같은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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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충분히 괜찮은 부모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좋은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경제적인 자본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자본이 필요합니다. 부모에게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 충분히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그건 바로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이해지능입니다. 나의 연약한 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 자녀의 연약한 부분들을 공감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부모는 자녀의 좋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랑 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자녀를 보면 부모는 “야! 같이 놀자고 그래! 왜 말을 못 해?”라고 다그치기보다 그냥 자녀의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면 됩니다. “내 아이 성격이 내성적이구나! 수줍음이 많구나.”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자꾸만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고 닦달하고 다그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바로 부모 본인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내가 소심한 성격인데 그래서 내가 못나 보이고 외톨이 같은데 그게 내 문제다 보니까 그걸 또 바로 그렇다고 인정할 수는 없단 말이죠. 그래서 내가 인정할 수 없는 그 안 좋은 감정을 딸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그걸 바로 심리학 용어로 ‘투사(投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계속 그 문제로 아파하는 아이에게 안 좋은 말이 나옵니다. “너 왜 이렇게 못나게 굴어? 너 바보야?”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자꾸 이런 말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이 나의 문제인데 그것을 나의 문제로 인정할 수 없으니까 그것을 자녀의 문제로 바꾸고 그 자녀를 문제아로 몰아가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는 완벽한데 너는 왜 이래?”라고 하는 염려로 시작되었지만, 이 말이 점차 짜증으로 바뀌고 그것은 날카로운 분노가 되고 마침내 공격하는 말이 돼서 아이를 점점 쓰러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완벽한데 자녀는 왜 이 모양이지?’ 하는 부모들이 특히 교회 안에 많습니다. “나는 너무 멀쩡하고 신앙이 좋은데 자녀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분들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럴 때마다 한 번쯤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행동할 때,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요? 점점 이 아이는 그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자라게 됩니다. 엄마의 심한 말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 그대로 못난 아이로 자랍니다. 그럼 결국 나의 못난 모습을 아이가 그대로 가진 채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부모의 못남을 물려주는 걸까요? 우리에게도 영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심리적인 자본입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능력 말입니다. ‘나는 이러한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다. 나는 한 가지 모습이 아니다. 이런 약한 면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면도 있어. 내 안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이것이 통합적인 자기 이해입니다. 나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고, 자기를 올바로 바라볼 때 우리는 자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합니다.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내가 있는데 그게 다 나라는 걸 인정한다는 겁니다. 좋아 보이는 나, 약한 나, 반면에 또 부족하고 답답한 나를 다 인정하고 나면, ‘아! 하나님이 그러한 나를 통해 하시는 그 구원과 역사가 너무너무 기이하다’는 것을 내 영혼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께 감사하는 것이고 또한 주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나 자신을 바로 알 수 있고 나를 나답게 지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가져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녀와도 올바른 관계를 맺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에게 부모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의지할 때,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자녀를 알아주게 되고 공감하는 충분히 괜찮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는 맨날 1등만 했는데, 나는 멀쩡했는데, 나는 친구도 많고 난 너무너무 완벽했는데 넌 왜 이러니?”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항상 나의 연약함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충분히 좋은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좋은 부모요, 그거면 족합니다. 여러분, 그런 모습을 가질 때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겁니다. 완벽한 부모가 존경받는 게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 때로는 사과하고, 때로는 고백하고, 때로는 화해를 청하는 부모가 진정 존경받는 부모입니다. 그렇게 충분히 좋은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닮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살리며 믿음으로 견고케 하는 또 한 세대로 굳건하게 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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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7-21
  • [신앙교육나침반] 온가족이 회복되고, 온가족을 구원으로 이끄는 성경학교
    2023년 향기나무 교육개발원이 개발한 “가정은 하나님의 보물” 주제의 여름성경학교 컨텐츠는 기존의 다른 성경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특별함이 있습니다. 향기나무 성경학교는 “가정”이 대상입니다. 찬양과 설교말씀과 성경놀이 등 모든 내용의 대상이 다음세대만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가정입니다. 향기나무 여름성경학교에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함께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 가족이 함께 복음을 받고, 함께 복음을 경험합니다. 온 가족 성경학교가 열리는 자리마다, 놀랍게도 불신 부모님들이 참여하십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이기에, 교회를 나오지 않던 부모님들도 큰 용기를 내어 나아오십니다. 그러니 온가족성경학교는 불신가족을 향한 전도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모두 함께 가정을 향한 복음을 듣고, 복음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지며, 함께 웃고 함께 감동받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향기나무 성경학교에는 강력한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올해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을 통해 주신 "가정은 하나님의 보물"이라는 주제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을 향한 강력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12장 23절 말씀을 주제말씀으로 선포하며 나아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모든 가정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교회로 일어서게 하는 생명과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자리이기에, 주제 찬양과 말씀과 성경놀이가 진행되는 자리에서,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아픈 가정을 치료하시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향기나무 성경학교는 “놀이” 중심입니다. 가정이 모이는 자리에는 여러 세대가 모이게 됩니다. 영아부터 노년에 이르는 여러 세대가 어떻게 복음을 함께 받고, 함께 경험하면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놀이’가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의 자녀세대들에게 놀이는 언어입니다. 그러하기에 놀이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를 이어주는 공통언어가 됩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부모님들의 얼굴이,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환한 얼굴로 바뀝니다. 부모세대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자녀세대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합니다. 복음이 담긴 놀이는 전혀 다른 세대들을 어느새 한 가족이 되게 만듭니다. 서울 세곡교회 영아, 유치부를 맡고 계신 정재연 전도사님은 성경놀이 중심으로 진행되는 향기나무 온가족 성경학교를 처음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걱정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정과 함께하는 성경학교의 결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다음은 전도사님의 온가족성경학교 후기입니다. “15일 16일 이틀간 “가정은 하나님의 보물 ” 주제로 진행하였어요. 할 수 있을까 많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역대 최고의 여름성경학교였다는 평가와 하나님이 하신다는 놀라운 은혜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복음놀이는 은혜와 기쁨을 주는 놀라운 놀이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희는 환경을 나일강가로 만들고 예배실을 집으로 꾸미고 문설주를 만들어 양의 피를 바르는 이벤트를 했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보다 더 집중하였답니다. 너무도 귀한 시간을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며 복음놀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공해주신 향기나무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낌없이 조언해주시고 자료를 제공해 주신 향기나무 박미화전도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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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21
  • [다음세대칼럼] 은혜의 집(1)
    판문점에 가면 평화의 집이 있습니다. 남북간 민간 차원의 평화 회담을 위한 장소입니다. 유엔군 사령부가 관할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1965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1989년 리모델링하였습니다. 평화의 집은 고위급 회담장으로 자주 이용되었습니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의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 국민들도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통일을 기대하면서 감격하였습니다. 평화의 집에서 회담이 이루어지고 실제로 평화통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장소입니다. ‘봄이 찾아온 평화의 집’이라는 기사도 게재가 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두 정상이 만나서 오랜만에 평화의 집이 평화의 집의 구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평화의 집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은혜의 집’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5장 2절에 베데스다 연못의 위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위치는 양문 곁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는데 성벽에 여러 개의 문들이 있었습니다. 여기 양문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될 양들이 들어오는 문이었습니다. 이 문은 성전과 아주 가까이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집’을 의미하는 ‘베이트’와 ‘은혜’를 의미하는 ‘헤세드’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자비의 집’ 혹은 ‘은혜의 집’입니다. 은혜의 집은 베데스다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일어난 일에 대해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평화의 집이 두 정상을 만나서 ‘봄이 찾아온 평화의 집’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과 38년된 병자가 만남으로 베데스다, 은혜의 집이 제구실을 하게 되었습니다. 베데스다, 은혜의 집.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요한복음 5장 2절에서 ‘행각’이란 지붕 달린 정자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환자들이 머물던 장소를 말합니다. 그 행각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많은 병자들이 왜 거기에 와 있는 것입니까? 그들은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중한 병들을 고침 받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베데스다 연못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전설은 요한복음 5장 4절에 나옵니다.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라고 했습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물이 움직인 후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떠한 병에 걸렸든지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 연못의 이름이 베데스다 곧 은혜의 집이라고 불러졌습니다. 이곳에는 항상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들어가서 병 고침을 받고자 하는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이름만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지 정작 은혜나 자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극한 경쟁만 있는 곳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움직일 때 그때 누구든지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만이 낫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는 2등이나 3등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1등만 고침을 받습니다. 이곳의 분위기는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은혜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병자들은 늘 긴장해 있을 것입니다. 배타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을 것입니다. 이곳 이름은 은혜의 집이지만 그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경쟁의 집, 기회의 집 혹은 눈치의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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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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