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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요나 선지자가 교사, 부모들에게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오늘날의 현실과 오버랩되는 장면을 많이 만납니다. 구약의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듣고 거부감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쳤던 장면도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니느웨라면 당시 가장 악한 도시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가장 잔악하고 교만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요나는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느니 차라리 당시 땅 끝으로 여겨지던 다시스로 배를 타고 떠나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요나가 풍랑 속으로 뛰어들게 하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사흘간 그 속에서 요나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 다음 장면이 요나서 3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장면을 만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있다가 살아나온 요나의 복음 선포를 들은 니느웨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베옷을 입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니느웨 왕은 스스로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요나 스스로도 포기했던 니느웨 사람들의 이 놀라운 회개와 변화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니느웨는 어디인가?“ 요나가 그 마음속에서 완전히 배제했던, 혐오했던 지역이 니느웨입니다. 그런데 요나만 그럴까요? 우리도 특정한 지역, 아니면 특정한 부류, 특정한 계층,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안 변해요"라고 하는, "그들은 구제 불능이에요"라고 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거는 하나님이 아니라 누가 해도 안 돼요." 라는 부정적인 감정과 거부감 말입니다. 여러분, 한국말에 참 험한 말이 많습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면서요. 그럼 누굴 거둘 겁니까? 제가 자녀 때 몰랐는데 부모가 돼 보니까 제일 좋은 부모가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속아 주는 부모입니다. 속아 주는 부모가 제일 좋은 부모입니다. 친구는 어떤 친구가 제일 좋은 친구입니까? 참아 주는 친구입니다. 견뎌 주는 친구에요. 단점이 보이죠, 못난 게 보이죠. 그런데 그거 하나하나 지적하는 친구들 아무도 안 남아 있어요. 그런데 참아주고 견뎌 주는 친구들만 옆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부부는 어떤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일까요? 져 주는 사람입니다. 져 주는 남편과 아내가 제일 훌륭한 배우자에요. 이러한 성품은 어디서 올까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포용과 긍휼이 결국 좋은 부모,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만든느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저들은 안 돼", "이런 사람은 안 돼", "이런 부류들은 안 돼"라고 외치며 거부하는 우리만의 ‘니느웨’를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은 그 니느웨를 깨어 버리는 분입니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을 용납하시고 속아 주세요. 성도들끼리는 참아 주세요. 부부는 서로 져 주세요. 우리는 쉽게 "다시는 안 봐! 절대 안 봐!" 하지만 아마 곧 또 보게 될걸요? 모르긴 해도 여러분 평생 보게 될걸요? 가족이니까요. 형제요 이웃이니까요. 그렇다면, 평생 봐야 한다면 우리가 속아주고 참아주고 져 줘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디모데전서 2장 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누가 누구에게 썼나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썼어요.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은 목회자인데 이 목회자의 마음에 너무 많은 미움이 있는 거예요. 목회를 해 보니까 정말 너무 사람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너무 커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마음을 선배 목회자인 바울이 달래주면서 "디모데야, 참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셔. 그리고 그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셔. 그러니까 한 사람도 포기하지 말고, 한 사람도 안 된다고 말하지 말고, 끝까지 감싸 안아. 그게 목회야"라고 말하는 책이 바로 디모데전서입니다. 여러분, 목회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가정생활도 똑같지 않습니까? 부부생활도 똑같지 않습니까? 사회생활 역시 똑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누구까지는 되고 누구부터는 안 돼"라고 말하는 그 순간 우리는 선을 긋는 것이고, 그 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선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교만 아닙니까? 여러분, 그 니느웨는 과연 누가 정한 것입니까? 오늘 니느웨가 뒤집어져 변화되어 하나님을 따르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우리가 판단하고 우리가 정하는 그 니느웨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사람은 여간해서는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천천히 물들어 갑니다. 우리 교사들이 다음세대들을 하나님과 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안아줄 때 그들은 천천히 우리의 사랑에 물들어 갈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한 번 더 자녀들을 기대해 주고 그들에게 가능성을 부여하고 믿어줄 때 우리의 자녀들은 그 신뢰에 복된 열매로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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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6-29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몇 달 전에 읽은 책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다시 꺼내 들었다. ‘다시, 공부 다시, 학교’ 주입형 학습에서 활동형 학습으로 바뀐 교육 현장을 추적하면서 ‘지식 습득 과정’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단순히 현재 교육의 문제점을 의문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대안 및 해법을 밝히고 있다. 한국은 현재 여러 교육 선진국의 영향으로 주입형 학습에서 활동형 학습으로 정책을 바꾸었지만, 실행되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 교육 수준의 하향, 교육 불평등 등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 책은 핀란드, 영국 등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할지 공격적으로 제시한다. 교육 불평등을 줄이면서 ‘지식’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강의형 지식 교육(학생들의 피드백 혹은 여러 활동을 포함한)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마지막에 교육의 소명, 교사의 소명을 거론하며 다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과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나는 애쓴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날 우리 아이들의 신앙을 점검해보면 아닌 것 같고, 주일학교를 빠지지 않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복음이 심겨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화를 나눠보면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경우가 있어 항상 고민 속에 있다. 그래도 이 책은 위에 언급한 대안을 소개하며 공교육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교사가 변하면 아이들이 변하고, 결국 다시 학교가 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적용시키면, 주일학교 교사의 변화가 아이들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과 부모가 변하면 자녀는 달라진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국에는 ‘다시, 복음 다시, 교회’이며 더 나아가 ‘다시 부모’이다. 여름의 출발점이다. 여름성경학교 등 교회에서 마련한 여름 신앙 프로그램과 더불어 우리 가정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도 뜨거운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해야겠다. 다시 복음 앞에 마음을 굳게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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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5-06-02
  • [다음세대 칼럼] 청소년들에게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자(2)
    청소년들에게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는 의미와 개요는 지난 호에 썼다. 이어서 실제 예 3가지와 청소년이 실제로 하나님 나라 대안이야기를 만드는 방법과 자료를 말씀 드린다. 부디 자연 이야기에서 하나니 나라 대인이야기로 재해석하고 부활을 드러내고 누리는 삶으로 청소년을 이끌어 가자. 1) 서상복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 서상복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가정사역자, 목사, 상담가로 치유, 회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서상복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참고) 2) 모세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 모세가 왕자의 리더쉽과 지혜를 배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백성을 인도하는 것에 사용되기 위함이다. 광야에서 처가살이 40년을 41-80세까지 한 것은 출애굽의 리더로의 인격과 자질 갖추기이다. 40년 동안 중년과 노년의 시기를 장인의 양을 쳤다. 이것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된다. 하나님이 목자로 이스라엘을 양으로 인도하여 출애굽하고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한이다(출 3:1~12; 4:2~4, 17). 왕자 훈련 받아도 왕이 못된 실패자, 이런 자연 이야기가 아니라 참 왕이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왕의 리더쉽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진정한 지도자로 해석하였다. 3) 다윗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 다윗의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이다. 다윗은 아버지께 차별받아도 참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목표가 되어 골리앗이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할 때는 다윗은 분노하였다. 그 분노로 골리앗을 이겼다(삼상 17장). 이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다윗은 기쁨도 하나님 영광에 집중되었다. 법궤에 돌아올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서 춤을 춘다.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참 왕,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왕이 되기 위한 전문성을 훈련받았다. 어려서부터 양을 쳤기에 백성을 살피고 섬기는 예수님 닮은 왕이 된다. 사랑 전문가로 잃어버린 자들도 잘 거두어 주었다. 양을 지키기 위해 늑대, 사자와 곰에게 생명을 걸고 싸워 이겼다(삼상 17:37). 그런 훈련과 연단으로 인해 물매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맞춘다(삼하 17:40). 사무엘상 30장에 다윗은 잃은 자를 찾는 예수님의 참 마음을 실천한다. 하나님 나라 가치를 보여 준다. 다윗의 도망자 시절, 다윗과 그 600명이 가족과 함께 시글락에 머물었다. 그때 다윗과 함께 한 600명이 시글락에 돌아와 보니 아말렉 족속이 다윗의 처와 600명 군대의 모든 가족을 납치해 갔다. 그래서, 아말렉 군대를 추격했다. 하지만 아말렉이라는 적의 본부도 모르면서 그저 다윗과 그 부대는 절박하게 추격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아말렉이 병들었다고 버린 종(애굽 소년)을 다윗과 그 군대가 멈추어서 하루 종일 치료해 주었다. 결국 이 아이를 통해 시글락 본부를 알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내들과 재물을 모두 찾아온다. 하나님 나라 가치가 드러난다. 아말렉은 약하고 병들었다고 버렸다. 그로 인해 망하게 된다. 다윗의 군대처럼 하나님 나라는 잃은 양 하나에 전체를 집중한다. 이로인해 진정한 승리도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잃은 양으로 찾아와 하나님 나라 주셨다. 이제 우리도 청소년들에게도 그렇게 대하여야 한다. 청소년들도 그렇게 살도록 교육하고 상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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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오늘은 방황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고 말해주세요. 혹시 이 말에 동의가 되십니까? 우리는 보통 헤매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어디를 갈 때면 항상 네비게이션을 켜서 ‘최단 거리’ 길을 찾고, ‘최소 시간’으로 가는 길을 찾지요. 그리고는 정신없이 달립니다. 우리가 결과 지향의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 보고 온 자녀에게 늘 이렇게 묻죠. “몇 점 받았어?” 우리에게는 결과가 중요해요. “그거 얼마 만에 이루었어?” 누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쉽게 그 자리에 올라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결과는 중요하지만 과정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실은 때로는 헤매고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멈춰 있고 때로는 주저앉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우리는 어느덧 그 시간과 그 과정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이제껏 과정은 무시하고 “무조건 결과!”만을 외치면서 살아오지 않았냐는 거에요. 우리가 오늘 말씀 앞에서 이것을 함께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인도네시아의 어느 산속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답지에 군데군데 답을 안 쓰고 낸 녀석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선교사님이 화를 냈습니다. “야! 이놈들아! 몰라도 객관식인데 답을 써야지! 찍기라도 해야지! 이놈들아!”라고 했더니 애들이 눈이 이만큼 커지더래요. 그러면서 선교사님께 얘기하더랍니다. “선교사님! 모르는데 어떻게 써요? 그거 찍었다가 혹시 맞으면 어떻게 해요? 그건 내가 아는 문제가 아닌데 모르는 걸 맞춰놓으면 그것은 실제로 제 점수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것은 안 되는 거잖아요.” 맞을까 봐 못 찍었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서 이 선교사님이 굉장히 놀라면서도 겸연쩍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몰라도 써야 하고, 몰라도 찍어야 하고, 찍어서 맞으면 감사한 거고. 할렐루야죠. 그렇게 살아왔던 우리가 볼 때 그 순박한 아이들. “모르는 데 맞으면 어떡해요?”라고 하는 그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되었던 거죠. 이 아이들은 인생을 돌아가도 바르게 가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한 문제 더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르더라도 못 맞추더라도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 과정에서 자기들은 더 성장해 갈 것이라는 것을 이 아이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보면 참 여러모로 우리는 헤매고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헤매고 살아가는 인생이 헤맨 만큼 손해 본 게 아니고, 헤맨 만큼 남 좋은 일을 시킨 게 아니고 알고 보면 그 헤맨 만큼 우리는 더 넓게 살았고, 더 깊게 살았고, 더 천천히 음미하면서 우리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아! 저 사람들은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좋은 길로만 가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정말 쭉쭉 뻗은 길로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지? 왜 이렇게 나는 헤매고 있지?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남들보다 더 천천히, 남들보다 더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 거지? 이리로 가면 빠른 길인데 왜 저렇게 돌아가는 것 같지?’ 하면서, 우리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그런 마음이 다가올 때, 세상은 “야! 그거 그냥 잊고 살아!”라고 말합니다. “그냥 술을 마시든지, 노래를 크게 부르든지, 하면서 함께 모여 떠들면서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지나가면 돼”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쇼핑을 하기도 해요. 명품을 사서 그것으로 만족을 얻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세상의 목소리가 아니잖아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그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에요. 인생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살아본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 인생을 누가 정확하게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셨고, 모든 인생을 오늘까지 이끌어 오셨고 마침내 우리 인생이 완성되는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헤매고 계십니까? 네, 저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매는 게 억울하지 않습니다. 그 헤매는 자리가 남들보다 더 천천히, 남들보다 더 넓게, 남들보다 더 음미하며 가는 시간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헤맨다고 하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포기했으면 헤맬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헤매는 방황을 통해 우리를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로 자라게 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안에 인내가 싹 트고, 그 인내가 온전해지고, 온전한 기쁨으로 우리를 오늘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 말입니다. 그 은혜가 오늘 우리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는 모든 선생님들과 또 부모님들과 우리 양육자분들, 그리고 우리 모든 독자분들 가운데 온전히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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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6-02
  • [다음세대 칼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즘처럼 위로가 필요했던 시대도 없을 듯하다. 사회 양극화 현상은 너무나도 뚜렷하다. 경제는 모두가 고통스러워할 만큼 힘이 든다. 정치는 언제나처럼 희망을 주지 못한다. 곳곳에서 산불로 고통받거나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도 많다. 남북이 분단되어 불안한 마음은 언제나 똑같다. 국제정세도 만만치 않다. 곳곳에서 전쟁과 재해, 사고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렇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 인생이 고달프다는 말이다. 어떤 분들은 설교라도 자주 위로가 되는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할 정도로 마음의 고난과 버거움이 심각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니 모든 사람이 위로를 구하면서 살지만 실제로 진정한 위로나 강력한 위로는 좀체 찾아내지를 못한다. 가장 흔하게는 ‘잘 될 겁니다. 힘내세요.’ 하는 식의 피상적인 위로가 있다. 잘 안된다고 해서 책임질 것도 아니다. 그냥 하는 말이다. 때로는 임종을 앞두고 있는 환자 앞에서도 ‘곧 다시 일어서실 겁니다.’라는 말들이 다 그렇다. 수험생에게 재수하면 내년에는 잘 될 거야. 이 말도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위로의 대부분은 이런 수준이다. 이 말들이 우리의 마음에 참된 위로를 가져다주겠는가? 병이 낫고 회복되어도 결국은 다 죽는다.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진짜 딜레마는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실존은 불안과 근심이라는 요소를 피할 수 없이 안고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진짜 위로는 어디 있는가? 싸구려 위로가 아닌 진짜 위로는 무엇인가? 우리 인생의 모든 근심과 불안을 이길 수 있는 진짜 위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성경 전체에서 위로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최고의 말씀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일 것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최고의 본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계 있는 인간이 주는 위로가 아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의 한계와 고통과 근심을 경험하시고 주신 위로이다. ‘근심하지 말라’ 반대말이 무엇인가? ‘주 예수를 믿으라’이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위로의 말씀은 오늘 고민과 걱정거리가 많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주님의 위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라는 것이다. 이 위로는 잠깐의 만족과 감정적 위안이나 고통의 감소를 가져오는 위로가 아니다. 이 위로는 궁극적인 위로이다. 우리 인생이 가진 근본적인 불안과 근심의 문제를 이기게 만드는 위로이다. 병든 자가 건강을 찾는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일 뿐이다. 사업을 다시 일으켜 재물을 많이 모으게 되었다고 해도 잠깐 있다가 다 놓고 가야 하는 길이다. 그 어느 것도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보장을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인간이 주는 위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주님의 위로는 다르다. 어떤 상황, 어떤 근심거리도 이 위로를 빼앗지 못한다. 도리어 이 위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가지는 모든 근심을 다 앗아갈 만큼 강력한 실재이다. 오늘 우리 근심의 대부분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어찌 살까?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할까? 이 사람을 어찌할까? 이런 근심은 땅에 속한 근심들이다. 이런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천국을 잊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근심은 다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을까? 내 삶에서 혹은 내 결정에 있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근심들이다. 여기서 이 위로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과 그 일의 능력을 믿는 자들을 위한 위로이다. 그리스도를 만난 자,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갈망하는 자만을 위한 위로이다. 오늘 이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길 기도한다. 우리 다음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하늘의 위로를 받고 살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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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2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5가지만 기억하세요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이때쯤이면 교회마다 신앙전승을 잇기 위한 여러 가지 특별한 프로그램을 합니다. 하지만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당장 눈앞의 변화만을 위해서 프로그램에 매달린다면 매년 또 다른 갈증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독교교육학자인 존 웨스터호프가 제시한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위한 5가지 지침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 교육, 특히 가정에서의 신앙 형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학자입니다. 그가 제시한 이 다섯 가지 지침은, 신앙이 단순히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함께 경험되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 성서 이야기를 함께 반복하며 이야기해야 한다. 신앙은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다고 웨스터호프는 강조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성경 속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기억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야기를 삶에 연결시키는 반복이 신앙의 뿌리를 깊게 합니다. 이를 위해 매주 저녁 한 번은 ‘성경 이야기 시간’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읽고, "너라면 동물 한 쌍을 데려간다면 어떤 동물을 고를래?" 하고 묻는 것이죠. 이야기를 읽은 후에는 아이가 이해한 것을 직접 말하게 하고,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하면 더 좋습니다. 또 일상 속에서 비가 오는 날 "비가 오니까 노아 이야기 생각나네!" 하며 자연스럽게 다시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2. 신앙과 생활을 즐거워하며 삶 속에서 찬양해야 한다. 신앙은 우리 삶에 기쁨이 되는 모습,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 속 작은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해”라고 말하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을 함께 부르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를테면 아침에 아이를 깨울 때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좋은 하루야~" 하고 노래하듯 말하거나, 차를 타고 가면서 가족이 좋아하는 찬양곡을 크게 틀고 다 함께 신나게 따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또,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하나님이 너를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하고 축복의 말을 던짐을 통해 신앙과 기쁨이 연결되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3. 함께 기도해야 한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것은 공동체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식사 전 짧은 기도, 잠들기 전 함께 드리는 감사기도 등 일상의 순간마다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사 전 "짧은 기도 릴레이"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빠가 "하나님, 오늘 하루 감사합니다" 하고 시작하면, 아이는 "맛있는 음식 주셔서 고마워요" 하고 이어가는 것입니다. 잠들기 전에는 오늘 하루 있었던 기쁜 일 한 가지와 힘들었던 일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그걸 가지고 함께 기도한다. 예를 들어 "하람이가 친구랑 놀아서 기뻤대요. 친구를 지켜주세요" 이렇게 말이죠. 4. 서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말해야 한다. 신앙의 대화는 일방향이 아니어야 합니다. 아이들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부모는 그것을 진심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이건 맞고 저건 틀려”라고 바로 재단하기보다, 아이의 신앙적 질문이나 고민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소통할 때 아이들은 신앙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만약 아이가 "하나님은 왜 눈에 안 보여?"라고 물을 때, "그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반가워하며 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답을 바로 주기보다는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되묻고, 아이의 생각을 끝까지 경청합니다. 신앙 질문에 대해 무조건 정답을 주려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 신앙을 탐색하게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5. 봉사와 증거의 신앙적인 활동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신앙은 말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체득됩니다. 가족이 함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거나, 교회나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신앙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신앙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이 함께 김장을 하면서 "이 김치는 어려운 이웃들과 나눌 거야"라고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직접 배추 한 포기를 포장하게 하면서, 작은 손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혹은, 동네 청소나 교회 봉사를 가족 프로젝트처럼 함께 진행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 하고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도 좋습니다. 웨스터호프는 전체적으로 "신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 모두 ‘함께’, ‘생활 속에서’, ‘즐거움과 진심으로’가 핵심 키워드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딱딱한 '교육'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 즐거워하기 ➡ 함께 기도하기 ➡ 진심으로 듣고 말하기 ➡ 사랑을 행동으로 보이기 라는 삶 속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오월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행복한 한 달로 보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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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2
  • [다음세대칼럼] 청소년들에게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자
    청소년들에게 폰보다 게임보다 더 즐겁고 좋은 것을 제시하자. 바로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폰 중독의 이유에 70% 가까이 가장 큰 원인인 불안이 제거될 것이다. 폰도 쾌락도 허무도 통제하고 다스리게 된다. 폰에 중독되고 허무와 게으름과 쾌락에 청소년들이 허우적거린다. 이럴 때 폰보다 쾌락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각자의 삶에 하나님과 함께 써가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쓰자. 자연이야기인 자기 본능이나 그냥 떠오르는 자연 해석은 내려두자. 하나님의 나라 관점, 하나님의 시각이라는 두 안경으로 자신의 환경, 불행, 절망, 상처, 은사, 감정, 재능을 의조적으로 재해석하자. 하나님 나라 대안 이야기를 쓰게 하자. 이것은 다른 말로 ‘사명치유’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청소년에게 주는 진정한 부활의 능력이다. 상담 전문가들은 인생이나 사건은 해석을 잘하면 상처가 90%가 상처가 되지 않는다 한다. 실제 아픔은 10%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 상처받아서, 가난해서, 사랑받지 못해서 불행한 것이 진짜 원인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재해석을 바르게 하지 않아서이다. 상처받기로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 해 지면(사명이 분명 해 지면) 상처도 사명이 된다. 상처의 참 의미와 가치와 뜻을 하나님 뜻으로 알게 되면 사명이 된다. 상처가 열등감, 수치, 아픔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도리어 사명으로 더 연단이 된다. 그래서, 탁월성과 예수님과 함께하는 흔적이 된다. 그러니 열심히 사는 것보다 바른 방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생존경쟁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는 교회에서 조차 그저 열심히 사는 것, 성공(?)에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바른 방향을 놓쳤다. 게으름보다 더 비참한 결과가 되었다. 사명은 직업보다 돈보다 크다. 결국 사명을 못 찾으면 직업도 돈도 목적으로 우상이 되어 노예로 전락해서 불안이 많아진다. 진짜 할 것에 집중하지 못하니 열심히 살고도 전도서처럼 헛되고 헛되게 된다. 지금 청소년들에게도 사명 치유가 바른 자존감을 높인다. 내적 치유의 부족한 부분도 보완된다. 베드로의 갈릴리 바닷가 열등감과 패배감도 예수님과 조반 먹는 동행과 “내 양을 네가 치라.”하시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회복되었다(요 4:34; 17:4; 빌 2:13). 이 두 가지가 청소년도 우리도 회복되는 부활절이기 기대한다. ○ 성경적인 이야기 상담 8단계 성경 이야기 상담은‘Biblical Narrative Counseling’이다. 앱스턴(DavidEpston), 화이트(MichaelWhite), 우리나라의 오우성 교수(계명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한국성경적상담학회 이사, 한국기독교심리상담학회 슈퍼바이저, 기독상담연구소 소장), 박민수 교수(계명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기독상담연구소에서 부소장)가 정리했다. 성경 이야기 상담의 8단계의 과정이다. ① 문제를 파악한다. ② 청소년의 호소 문제에 맞는 성경 이야기를 선택한다. ③ 선정된 성경 이야기를 서사적(이야기 속 세계, 사건, 등장인물, 배경, 인물들과 나의 동일시)으로 읽는다. ④ 읽으며 끌려 들어가는 부분 찾는다. ⑤ 인력 탐구한 부분에서 새로운 자료를 찾는다. ‘인력’이란 ‘끌리는 힘’을 말한다. 청소년이 성경 이야기를 읽으면서 특별히 끌리는 부분을 찾자. ⑥ 단편적으로 발견된 조명자료는 강화를 시킨다. 청소년을 몰입하게 하는 그것이 청소년의 삶에서 어떤(What) 의미가 있는지를 찾아내자. 조명자료는 청소년의 삶을 조명하는 자료로서 캄캄한 바다와 등대의 비유로서 설명할 수 있다. 조명자료는 청소년의 과거와 현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청소년의 삶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조명자료를 통하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자. 조명자료를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메시지를 통해 확대하고 심화시키자. 그래서 청소년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 박게 하는 것이 조명자료 강화이다. 조명자료를 점차로 확대하고 심화시켜서 이것이 청소년의 마음과 영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 주자. 말씀을 마음에 심어(implant) 주는 것과 같다. ⑦ 자기 인생에 대해 다시 쓰게 하자. 강화된 조명자료를 가지고, 청소년의 과거-현재-미래를 새롭게 구성하자. 청소년의 삶 전체를 강화된 조명자료를 가지고 새롭게 바라보는 것을 재저작(재진술)이라고 한다. 청소년이 발견한 조명자료와 강화된 조명자료를 가지고 청소년의 삶을 다시 새롭게 써보는 단계이다. 삶의 이야기는 아주 먼 과거와 먼 과거 그리고 가까운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나간다. 삶이 시간적인 선상에 있는 것처럼 청소년의 삶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하자. 자신의 삶을 새롭게 조망하게 된다. ⑧ 지지적 신앙 소그룹 만들어서 자주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강화를 받고 지지를 받게 하자. 가족이나 교회 공동체 그룹이 가장 좋다. 아니면 임시 동아리 그룹을 만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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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1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에게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
    미국에서 천 명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죽어서 천국 갈 것 같은 유명인 한 명을 꼽는다면 과연 누가 과연 천국에 갔을 것 같습니까, 라고 물었어요. 2위는 인도의 수녀 마더 테레사였습니다. 평생을 헌신하고 청빈하게 살았던 마더 테레사가 79%의 지지로 “아마 천국 갔을 거야.” 2위를 했어요. 3위는 마이클 조던입니다. NBA 농구선수죠. 65%가 마이클 조던이 죽으면 천국 갈 거라고 그랬어요. 4위는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이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60%면 굉장히 많이 나온 거예요. 자, 그런데 이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1등이었어요. 마더 테레사가 79%라면 1위는 몇 퍼센트를 했을까요? 87%가 나왔어요. 누굴까요? 바로 이 87%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딴 사람이야 누구라도 천국 가든 말든 사실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천국 가는 걸 확신하고 있어요. 안 믿는 사람이라도 만약 천국이 있다면 “나 천국 갈 수 있어! 나 천국 갈 거야! 구원받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라는 거죠. 자,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렇게 구원받을 거라는 나의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는 과연 내가 구원받을 거라고 87% 자신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선하고 그렇게 완전합니까? 겉으로 보기엔 다 괜찮아 보여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게 다 가면이라는 걸 알잖아요. 우리는 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친절해도 이것이 내 본심이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아요. 나는 대우 받고 싶고, 높임 받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그래서 하루에도 12번씩 나는 천사가 됐다가, 악마가 됐다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잖아요? 우리의 속마음은 온통 돈과 욕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실은 내 욕심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나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늘 헷갈리는 거예요. “나 천국 갈 수 있어!”라고 자신하지만, 그러나 내 삶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삶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과연 천국 간다는 내 자신감에 걸맞게 살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경쟁입니다. 끝없는 경쟁사회에 나 자신을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살고 있어요. 어떤 이들은 공부로 “내가 공부 열심히 해야지! 보여줘야지! 1등 해야지!”하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열심히 삽니다. 어떤 이들은 돈으로 “내가 돈 자랑, 내가 명품 끌어 모을 거야! 내가 이런 차타는 사람이야! 내가!” 이러면서 으스대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경쟁이란 100번을 이겨도 한번 지면 끝나는 거예요. 매번 이길 수는 없는 거예요. 마치 도박 같습니다. 도박은 처음엔 따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다 잃어버리고 망하는 거에요. 인생이 그렇다는 거예요. 만일 우리가 패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줄 그 힘은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의 생명을 내어 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신 분이 계세요. 바로 그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오늘이에요. 부활절이에요. 그러면 바로 나의 값을 치르기 위해 나의 죄를 치르기 위해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구원자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이것이 교회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세주신데 그분이 무슨 말을 하셨을까요? 두 가지 아주 인상적이고 가장 필요한 두 마디를 하셨습니다. 자,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에요. 다 이루었다. 이게 뭐냐면 너희가 지은 모든 죄의 값을 내가 다 치렀다는 거예요. 계산은 끝났다. “이제 너희의 죄는 해결됐고 천국으로 가면 돼!”라고 하는 그 한마디가 “다 이루었다”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다 이루셨는데, 우리의 죄는 해결됐는데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신경써야 할 일이 많고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 많아요?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제는 더 이상 너희의 죄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아파하지 말고, 버거워하지 말고 이제는 너희가 평강을 누리며 살아!”라고 하는 거예요. 부활절 이전과 이후가 똑같은 가정, 똑같은 학교, 똑같은 친구들인데요 이제는 우리의 삶이 너무 달라요. 부활절 이전까지는 “아이고! 죽으면 어떡하나? 아프면 어떡하나? 문제 생기면 어떡하나?” 이러고 살았는데 부활절 이후로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거예요. 죽으면 어때, 다시 사는데!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까 어떤 일을 해도 기쁨으로 할 수 있고, 감사로 할 수 있고 평강이 넘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부활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값을 다 치르셨어요. 이제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실패는 없습니다. 죽음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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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4-11
  • [다음세대칼럼] 학교생활의 생필품
    우리의 일상생활에 ‘생필품’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생활 필수품을 말한다. 우리에게 물, 전기, 쌀, 소금, 설탕, 기름, 돈 등은 생활 필수품이다. 이것이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 요즘에 와서 이런 것보다 ‘핸드폰’이 얼마나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지, 많은 사람들은 잘 때도 핸드폰을 손에 꼭 붙들고 살아간다. 스마트폰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는 듯이 말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카피처럼 ‘스마트폰은 휴대폰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은 생필품입니다.’ 이렇게 바뀔지 모르겠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핸드폰 없이도 살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많이 편리하게 해주지만, 그것 없다고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핸드폰이 얼마나 중요한지,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이다. 핸드폰은 꼭 필요한 물품은 아니다. 이제 3월이면 학생들이 개학을 한다. 학교 생활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품은 무엇인가?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성경의 서신서에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필수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로마서 12장 9절에서 13절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그러니까 성도들 사이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본문이다. 얼핏 보면 약 12가지 정도의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정리하면 세 가지 정도로 그룹을 나눌 수 있다. 그것은 곧 사랑, 믿음, 그리고 소망이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 직장생활, 학교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필품이 없으면 우리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듯이, 이런 필수적인 삶의 요소가 없으면 우리의 생활은 정상적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먼저, 학교생활의 생필품과 같은 것은 사랑이다. 로마서 12장 9절과 10절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기록한다. 사도 바울은 먼저 사랑할 것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사랑하라’가 아니다. 어떤 사랑을 감당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참된 사랑을 말한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거짓이 없어야 하는 것 곧 위선적이지 않은 것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악을 미워해야 하고, 선에 속하기를 애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에 속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곧 서로 형제 사랑으로 서로에게 헌신하는 일, 서로를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일이다. 우리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야 하는 일은 ‘진실한 사랑’이다. 감추려고 하거나 거짓 사랑은 결국은 드러나게 된다. 그 행 한대로,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바란다. 친형제 사랑하듯 대하고,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듯이 모두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바란다. 두 번째, 학교생활의 생필품은 믿음이다. 로마서 12장 11절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고 기록한다. 방학을 맞이하여 각종 수련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개학을 앞둔 우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도 이 믿음과 은혜를 버리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11절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한다. 믿음은 주를 섬기는 일이다. 주를 섬기는 일에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열정을 다해 온 영을 다해 주님을 섬기라’라는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학교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든든히 서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주님을 믿고 오직 그를 신뢰하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교회 생활의 필수는 소망이다. 바울은 학교생활에서 힘써야 할 것을 ‘소망’에 집중시킨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현재성’이 있는 신앙이다. ‘오늘, 여기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로 승리하는 그런 살아있는 참 종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최종 종착점은 여기가 아니다. 죄 많은 이곳, 멸망 받을 이곳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러면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나? 사도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로마서 12장 12절과 13절 말씀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라고 기록한다. 소망을 가진 자는 환란 중에 참고, 기도에 힘쓰고, 이웃 성도를 공급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소망이 있는 삶인가? 그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보여주시기 바란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손 대접하기를 애쓰시는 모습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3월에 개학하는 모든 다음 세대에게 당부한다. 사도 바울이 소개한 생필품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소유하고 승리하는 학교생활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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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1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자녀에게 변화를 가르치려면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굳어버린 우리의 옛모습에서 탈피하여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변화를 가르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들의 자녀에게 변화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새로운 삶으로 그들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해주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야기를 주목해보려 합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세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짐에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게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4:3-8) 여기에는 네 가지 땅이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땅이 나옵니다. 첫 번째 그룹인 길가 밭, 돌짝 밭, 가시떨기 밭. 이 세 밭의 공통점은 결실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길가 밭은 어떻고, 돌짝 밭은 어떻고, 가시밭은 어떻다고 하면서 이것들을 구별하지만 사실 이 세 가지 밭은 밭이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결실이 없습니다. 그럼 왜 없을까요? 이게 중요한 거죠.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이 밭들은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원래부터 있던 본래 모습 그대로 사는 거예요. 길가 밭은 길가 밭 그대로 씨앗을 튕겨내는 밭으로 계속 삽니다. “나 길가 밭이야! 야, 씨앗이 어디 떨어져?” 그러면서 씨앗을 튕겨내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는 거예요. 돌짝 밭은 “나 이 돌 하나도 안 치울 거야. 야! 씨앗 떨어졌어? 살짝 뿌리내리겠지만 너 금방 죽어버릴걸! 아이고, 또 죽었네!” 이러고 계속 사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게 맞는 줄 알고 그렇게 계속 자기 속에 있는 돌들을 하나도 안 치워요. 가시떨기 밭은 그 안에 있는 가시떨기가 떨어지는 씨앗마다 기운을 다 잡아먹어서 다 죽여버려요. 그러는데도 그게 잘못된 줄 몰라요. 그렇게 세 밭 모두 아무런 결실이 없는 삶을 반복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 밭처럼 그냥 가만히 그 어떤 변화도 거부하고 살면 변화가 없습니다. 고통도 아픔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아무 열매가 없습니다. 다 죽고 맙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은 고통 없이 사는 길입니다. 아픔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결국 아무도 못 살리고 끝납니다. 결국 나도 그렇게 살다가 죽고 맙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길도 있습니다. 바로 좋은 땅입니다. 이 좋은 땅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결실이 30배, 60배, 100배로 점점 커집니다. 즉,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내 삶의 열매가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너무너무 풍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지으신 걸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땅이 이렇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갈아엎었기 때문입니다. 길가 밭이었던 땅을 곡괭이로 다 내리찍어서 호미로 갈아엎고 쟁기로 갈아엎어서 흙이 완전히 뒤집어진 땅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뒤집어서 아프고, 눈물 나고, 파헤쳐진 땅은 땅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분 나쁘죠. “나 멀쩡한 땅인데 왜 나를 이렇게 괴롭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왜 나를 이렇게 계속해서 불편하게 만들어?” 그런데 그렇게 갈아엎어졌더니 그 결과로 그 땅에 떨어지는 씨앗마다 열매를 맺는데 30배, 60배, 100배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그냥 아이들 동화 읽듯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라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게 천국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천국은 어떻게 옵니까? 내가 살던 대로 살고, 만나던 사람 만나고, 내가 좋은 대로만 살면 우리는 여전히 길가 밭이고, 돌짝 밭이고, 가시밭일 뿐입니다. 결국은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 다 튕겨내고, 내 주변 사람 다 메마르게 하고, 내 주변 사람 다 힘들게 해서 결국은 다 죽여버리는 길가 밭, 돌짝 밭. 그게 나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면서도 나는 잘 사는 줄 압니다. 그래서 공부 1등 하는 길가 밭 되고 싶어 하고, 사람들에게 인기끄는 유명한 돌짝 밭이 되고 싶어 하고, 남들이 알아주는 존경받는 가시떨기 밭이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돼도 결국에는 다 죽고 다 끝나고 다 망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는 게 우리는 성공인 줄 알고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밭을 갈아엎기를 원하십니다. “얘들아! 얘들아! 이제는 너 혼자 사는 길가 밭으로 성공하는 그거 포기하면 안 되겠니? 너 혼자 큰 돌덩이 상처 끌어안고 살아서 너한테 다가오는 사람마다 그 상처 때문에 메말라 죽는 거 이제 안 하면 안 되겠니? 이제 세상의 근심과 걱정 때문에 너도 죽고, 남도 죽는 그러한 상처받는 삶을 안 살면 안 되겠니?”라고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거 다 갈아엎고 나면 너 한번은 아프겠지만, 너 이거 불편하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갈아엎어진 너의 마음 가운데 내가 보내주는 너의 가정마다 살아나고, 너의 직장 동료마다 살아나고, 교인마다 살아나는 그러한 새로운 밭 옥토 밭 되면 안 되겠니?”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새로워져야 합니다. 내가 새로운 사람, 새로운 밭이 되어야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새 해가 밝아오는 것입니다. 이 변화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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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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