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4(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다음세대

실시간 다음세대 기사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유니폼으로 하나 되어 다가가는 교사
    다음세대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목회자와 교사들이 다음세대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아이들에게 먼저 나아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신체적인 성장과 정신적인 성장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아이들은 지금 혼란을 겪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이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교사 유니폼을 맞추는 것입니다. 저는 매주일 분홍색 자켓을 입고 교회에 갑니다. 다음세대들을 만났을 때 그 아이들이 저를 보고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목사님인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제 각오가 좀 되십니까? 담임목사가 이런 복장으로 교회에 간다면 우리도 뭔가 달라져야겠구나!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주일 아침이 되면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입기 좋은, 우리에게 좋은 복장을 입고 갑니다. 내가 옷장을 보면서 “이번 주에 뭐 입고 가지” 이렇게 골라가요. 그러면 나는 좋지만, 애들이 감동할 포인트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분홍 목사가 왜 분홍색으로 매주일 입고 교회에 가겠습니까? 왜 나이 50 넘은 목사가 이러고 다닙니까? 아이들에게 어필하고 싶어서입니다. 그걸 애들이 알아줍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주는 겁니다. 저한테 마음을 열어주는 거예요.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 교사들. 우리 아동부 교사들은 다 정해진 유니폼을 입고 다닙니다. 혹시라도 못 입고 오신 교사들은 부서 교사들에 준비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을 만납니다. 복장부터가 준비된 겁니다. “얘들아, 난 널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너희들과 함께 뒹굴고 함께 뛰놀며 하나님나라를 같이 만들어 갈 거야. 나는 헌신할 거야.”라는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면 그러시거든요. “목사님! 애들은요. 예쁜 선생님, 젊은 선생님만 좋아합니다.” 그러시거든요. 이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정확히 말씀드릴까요? 아이들은 예쁘고 젊은 선생님이 아니라 예뻐 ‘보이고’, 젊어 ‘보이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유니폼은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이걸 다같이 입으면 다같이 젊어 보이고 예뻐 보입니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면 교사들도 애들인지 어른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저희 성민교회에도 아이들 아빠보다 10살 많은 분들이 교사를 합니다. 그런데 같이 놀아요. 왜? 유니폼이 주는 힘이에요. 애들 할머니 뻘 교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교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애들이랑 같이 놀고 같이 예배하고 같이 활동합니다. 어떻게요? 이게 유니폼의 힘이에요. 여러분, 저희 어린이부 활동한 사진을 보면 참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왜 재밌냐면 분홍 목사가 잘 안 보입니다. 이런 사진 흔치 않습니다. 보통은 사진을 찍으면 제가 워낙 튀는 분홍색 옷을 입으니까 저만 보여요. 보통은. 그런데 저희 교회 어린이부 사진에서는 제가 잘 안 보여요. 왜 그럴까요? 다 분홍이니까요. 선생님들이 다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아이들을 만나니까 제가 가려집니다. 제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들이 먼저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들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이게 저희 성민교회 어린이부의 힘이고 저력입니다. 저는 그래서 저희 교회 학교를 사랑합니다. 선생님들 복장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교회 어린이부 교사들의 복장을 보면 다 분홍 목사입니다. 이게 저희 교회의 특징입니다. 분홍 목사님처럼 사랑하고, 분홍 목사님처럼 말씀에 목숨 걸고, 분홍 목사님처럼 애들 끌어안고, 기도하겠다고 마음먹은 교사들이 지금 저렇게 분홍 옷을 입고 준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유치부는 무슨 색을 입을까요? 유치부는 어린이부보다 훨씬 더 진한 색을 입습니다. 보통은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이것 저것 묻히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먹다가도 자꾸 묻히고 물감이나 교구도 쓰다가 막 떨어지고 묻혀서 진한 빨간색을 입습니다. 그렇다면 청소년부 교사들은 무슨 색을 입을까요? 청소년부는 교사들이 유채식 옷을 입으면 청소년들이 도망갑니다. 그래서 무채색으로 입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까만 옷에 까만 모자, 까만 마스크까지 온통 새까맣게 입고 오니까 교사들은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밝은 회색으로 입고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니폼을 입을 때 좋은 점은 또 있습니다. 교사들의 직분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들 똑같은 복장을 하기 때문에 나이도 세대도 직분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 부서 교사들 가운데는 장로님도 계세요.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 다 섞여 있어요. 그런데 유니폼을 입고 부서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다 같은 교사가 되는 겁니다. 저희는 장로님이 평교사를 하시고, 서리 집사가 부장을 합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장로님들은 아이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해 주시고, 아이들 사주시는 일에 적극적이십니다. 그럼 담임교사가 맞습니다. 그리고 서리 집사님은 행정을 잘합니다. 그럼 부장으로 섬기는 겁니다. 직분대로 가지 않습니다. 기능대로 기질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교회가 이렇게 유니폼을 맞춰입고 하나되어 아이들을 만나고 기쁨으로 섬기기를 소원합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6-14
  • [다음세대칼럼]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른 시간일 수 있는 아침 7시 전화가 울렸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예요?” 전화기 너머로 알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아침의 고요함을 깨웠습니다. “큰 일 났어. 정은이가 죽었대. 조금 전에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됐다고...” 저는 믿기기 않는 소식을 직접 확인이라도 해야 할 듯이 달려갔습니다. 5개월 전에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소동을 벌였던 정은이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지난 봄 이후 정은이는 둥지에서 기본적인 생활과 학교생활은 무난하게 해왔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가끔 감정의 기복이나 컨디션의 난조로 보이기도 했고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하여 염려를 하기는 했지만 더 자해나 자살충동은 느끼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왔기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퇴소를 열흘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잘 생활하겠다며 다짐했었는데..... 믿기 힘든 소식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전날 정은이는 집 근처 병원치료 후 다음날 등교를 위해 외박을 허락받아 집에서 있는데 밤 11시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잠시 나간 후 소식이 없었습니다. 정은이의 엄마와 오빠가 동네를 다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고 아침에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급하게 현장에 가서 정은이 시신을 확인한 후 둥지로 연락을 했지만 충격으로 제대로 대화가 안되었던 것입니다. 경찰이 아파트 CCTV 등을 조사한 결과 정은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진 가운데 혼자 아파트 출입문에 들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센터장님! 정은이는 17년 동안 힘든 시간을 살았어요. 그래도 마지막을 둥지에서 지내면서 많이 웃고 밝아지고 좋은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찍은 사진도 제일 많구요. 정은이의 마지막 가는 길도 꼭 챙겨주세요” 정은이 어머니는 따따이에게 장례식을 부탁했고, 저는 둥지 아이들과 정은이의 장례를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정은이를 기억하는 많은 친구들과 둥지의 가족들이 정은이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당장이라도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며 정은이가 밝게 인사하면서 저쪽에서 들어올 것만 같은데 마음 아프게 그 곳은 정은이의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충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충격 속에 3일간 장례를 치르고 2019년 7월 7일 오전 7시 정은이의 시신을 화장하고 추모공원에 봉안하였습니다. 17년의 짧은 생애 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간 보내다가 둥지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처음 입소 때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왔었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자살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올해 1월 잠정 집계한 자살 사망자는 13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3% 급증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은 어떨까요. 매년 2600여명 전도의 기독교인들이 자살로 사망한다고 추정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죄로 여겨 교회 안에서 자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지 않고 이 때문에 예방과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살예방교육을 할 수 있도록 부산에서 작은 움직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OECD 국가 42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1위라고 합니다. 더욱이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부산이 1위로 가장 심각한 상황입니다. 특히 청소년자살문제는 계속 높아지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살아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어른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이런 제목으로 생명존중세미나가 6월 19일 수요일 오후4시 동래제일교회(미남역)에서 열립니다. “저 내버려 두세요. 내 맘대로 할거예요”라는 반항은 “저 좀 관심가져주세요”라는 애교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정말 죽고 싶어요”라는 말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사느냐 죽느냐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괜찮니?”라고 물을 수 있는 어른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4-06-14
  • [신앙교육나침반] 한국 교회, 기독 가정, 기독 학교는 지금 복음놀이리부트 열풍!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수많은 기독 가정은 특별히 부모와 자녀의 신앙 전승이 단절되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0세부터 100세까지 경험하는 복음의 파워를 담고 있는 [복음놀이리부트]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기독학교에서 부모를 통해 복음이 강력하게 전수되도록 돕습니다. 복음이 담긴 찬양과 놀이는 부모와 자녀가 자연스럽게 신앙을 공유할 수 있는 생명가득한 시간이 됩니다. 대구에 중학생 이상 성도 1,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3040세대를 지키기위한 3040위원회가 있습니다. 3040위원회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신앙전수 프로그램인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대안으로 찾고, 당회가 결의하여 다섯명의 복음놀이코디네이터를 세웠습니다. 지난 3개월간 한달에 두번,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진행하였고, 드디어 6월 첫째주일에 전반기 마지막 6회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향기나무복음놀이터 대한민국 2호점 대구대일교회입니다. 대구대일교회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교회가 3040세대의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복음놀이리부트50] 이 책을 대안으로 찾으시고, 교회의 온세대 신앙전승 프로그램으로 세우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은혜샘물교회는 5월 셋째주일에 95가정 315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복음놀이리부트50]을 활용한 [가정예배 리부트]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영유아자녀를 둔 가정부터 청소년자녀를 둔 가정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복음을 경험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는 온 세대가 두시간동안 흐트러짐없이 복음에 집중하며 함께 복음을 놀이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버지들에게 복음의 갑옷을 입힌후 함께 기도하는시간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부모님들은 복음의 옷을 입은채 자녀를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부산에 있는 구화학교는 청각장애, 지적장애 유초중 과정이 있는 사립 특수학교입니다. 구화학교는 특별히 기독교세계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며 복음도 함께 전하는 미션 스쿨입니다. 고 이종수 장로님의 헌신으로 세워졌고 올해 개교 58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 향기나무 복음놀이 코디네이터 중급자격의 전문 코디네이터가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곽소정 코디네이터입니다. 구화학교는 올해부터 월1회 <가스펠 데이>를 정해 복음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아이들이 복음을 즐거워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놀이는 그 어떤 장벽도 없이 그대로 흡수됩니다. 기독교 대안학교 다소니 미니스트리의 아동과 청소년 50여명의 친구들은 올 여름 캄보디아에 선교를 하기 전에 [복음놀이리부트] 선교훈련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온 몸으로 복음놀이를 경험한 후에, 이를 캄보디아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가서 복음놀이사역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언어가 다른민족에게 단순히 언어적, 논리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탁월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신앙교육 나침반
    2024-06-1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믿음의 하인리히 법칙
    20세기 초, 인류는 산업의 발전을 경험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큰 사고도 많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업 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1931년도 미국의 보험 설계사였던 윌리엄 하인리히가 찾아낸 ‘하인리히 법칙’이 있습니다. 그는 산업 현장의 사고에 대해서 ‘1:29:300’이라는 비율을 제시합니다. 이 법칙은 ‘중대형 사고 1: 경미한 사고 29: 사고의 징후 300’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사람이 죽고 크게 다치는 정도의 아주 심각한 중대사고 한 건이 벌어질 때, 그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인리히의 연구에 따르면 이미 그 전에 같은 건으로 경상자가 29명 나왔었는데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이 일이 커져서 큰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큰 사고가 나기 전, 가벼운 사고가 29건 일어나는 동안 이미 이 사고의 징후는 이미 300번이나 있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어?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 사고 날 것 같은데!”하는데도 이를 가벼이 여겨 고치지 않고,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특별히 돈이나 시간을 들여서 보수하지 않고 손을 보지 않으니까 그러다보니 “어? 또 사고 났는데!” 하면서 그 자리에서 예상되었던 사고가 생겨났고, 결국 그것이 쌓이다보니 사람이 죽고 회사와 사회에도 큰 손해를 끼치는 중상해 사건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하인리히 법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세상이 뒤흔들리는 커다란 사건은 반드시 그 이전에 수많은 징조와 징후를 통해서 간파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 주변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미리 우리의 위기를 대비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징조와 징후가 산업현장만의 이야기일까요? 이는 우리의 믿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일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의 편에 서게 된 것은 어쩌다 갑자기 한 번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분명히 많은 징후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가볍게 여기는 적어도 29번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돌이켜보면 그 전에 벌써 300여 번의 번성과 돈과 성공에 집착하여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번에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지만, 돈이 귀하게 여겨지고 하나님보다 돈이 좋아질 때 빨리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기는 종교인들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믿음의 위기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간절히 메시야를 사모하며 기도하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채 자신의 입장을 세우기에만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의 제 자리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와 표적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믿음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요? 하인리히의 법칙을 이제는 이것을 믿음의 법칙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온전한 승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도 한 번에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 전에 적어도 29번의 물질과 시간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바른 물질 사용의 회개가 있어야 하고 바른 시간 사용에 회개가 있어야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데, 그걸 위해서 그 전에 많이 필요하고, 매일매일 필요한 건 바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 즉 내 필요와 내 욕심을 조금 더 내려놓고 내 주위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물질에 대해 자유할 수 있고, 시간에 대해 자유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마음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5-17
  • [다음세대칼럼] 주님의 가치를 추구하라
    필자는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위기 청소년 사역이다. 가정 밖 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학교 안 가는 청소년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사역을 한다.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한 건당 얼마를 받는지 물어본다. 필자는 매우 당당하게 말한다. 돈을 받는게 아니라 돈을 지불하면서 그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되묻는다. 그럼 왜 하는지 물어본다. 세상 사람들은 돈에 가치를 두고 살기에 이런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인생의 즐거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은 다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오직 예수님밖에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인생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이유로 이 사역을 한다.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 이것이야말로 정말 예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이다.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빌립보서를 쓴 사도 바울도 보면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던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복음을 전했고, 신약성경 가운데 13권을 썼고, 나중에는 로마에서 순교까지 당했다. 이런 삶의 모습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고, 불쌍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그 역사의 대열 안에 같이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필자는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예수님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징은 주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언제든지 주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죄로 인해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다. 마치 죽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바싹 마른 뼈와 같이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이미 사망 선고가 내려진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었고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그 결과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안에 기쁨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그렇게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0절과 11절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면 바울이 부활을 얼마나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20절 말씀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다시 말하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은 우리도 죽은 다음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가 죽은 다음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 땅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소망이 되는 말씀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서부터 부활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이 죽어야 하듯이, 우리의 옛 성품, 옛 습관, 옛날 욕심들이 다 죽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부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힘쓰고 노력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부활의 삶을 살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땅의 것들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 모두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 모든 것들은 저 하늘나라에까지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언제나 주 안에서 기뻐하고, 날마다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가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의 가치를 따라 기뻐하고, 부활을 소망하며 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4-05-17
  • [신앙교육나침반] 바빠도 힘들어도 자녀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속에서 자녀세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핵심전략을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 6장의 쉐마 명령에 나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5-7)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서의 화려하고 바쁜 정착생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광야는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동, 만나와 메추라기 등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완전히 다릅니다. 정신없이 바쁘고 분주한 삶속에서는 하나님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착생활 속에서도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세워야겠다고 결단하셨습니다. 가나안에 세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모’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힘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전하는 부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충전된 부모는 악한 세상으로부터 자녀를 지키는 든든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됩니다. 지금 수많은 우리의 자녀세대의 뇌는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은 몸집의 아이들이 여러 종류의 학원가방을 메고 분주하게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를 풀고, 태권도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릴 여유는 없습니다. 너무 바쁘거든요. 그러한 시간속에서 자녀들의 영혼은 더욱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들의 영혼은 돌처럼 굳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무감각한 자로 성장합니다. 자녀들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더욱 강력한 복음입니다. 잠자는 영혼을 깨울 초강력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구나!’, ‘하나님이 나의 빛이구나!’를 감탄할 수 있는 일상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생각 그 이상의 위대한 영향력이 있는 존재입니다. 부모의 무표정이 지속되면, 자녀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부모의 미소가 지속되면, 자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집니다. 그래서 초강력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는 하나님으로 충전된 부모입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부모를 통해서 자녀에게 복음이 리듬있게 전파되기를 바라며, <복음놀이리부트50>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50가지의 복음과 복음놀이가 담겨 있습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이지만, 등교전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녀에게 복음을 읽어주면 됩니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복음의 내용과 연결된 복음놀이를 간단하게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영혼을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전하는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복음입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속에서 우리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복음을 강력하고 리듬있게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신앙교육 나침반
    2024-05-17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통계로 본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2
    지난 시간에 우리는 기독교 인구 자체가 줄고 있다는 통계자료를 접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교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을까요? 역시 통계를 통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2년 국민일보와 <사귐과 섬김>이라는 단체가 같이 조사한 ‘개신교인의 교회 인식조사’를 보면 내가 바라는 이상적 교회의 모습과 현재 한국교회 모습이 각각 실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교인들이 바라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예배 중심이면 좋겠다는 답이 60%, 기도 중심이면 좋겠다는 답이 31%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조사했더니 권위주의적이라는 답이 57%, 보수적이라는 답변이 46%로 제일 높게 나왔습니다. 전도 중심이라는 답은 26%, 예배 중심이라는 답은 22%에 그쳤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과 지금 우리 교회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마음으로는 예배 열심히 드리고 싶고, 기도하고 싶은데 교회에 와보면 권위주의적이고, 매우 보수적이어서 “이 교회에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셨나요? 해 보지 않으셨다면 이제 마음을 좀 넓히시고 귀를 여셔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통계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현장예배가 얼마나 회복되었는가를 담임목사님들에게 조사했습니다. 자료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전국 만19세 이상 개신교인 남녀 2000명에게 온라인으로 조사한 ‘한국인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입니다. 이 자료로 살펴봤더니 장년 출석이 얼마나 회복되었나, 작년 1월에서 5월 사이에 85%에서 86%가 회복되었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상은 아무리 해도 올라오지 않는 겁니다. 100% 회복은 이제 어렵습니다. 엔데믹이 됐지만 장년 출석은 86%에서 멈춰 섰습니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데 교회학교는 보니까 같은 기간 71%였던 게 79%까지 조금 올랐습니다. 이것은 애들이 그동안 워낙 안 나왔기 때문에 조금 더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실은 목사님들 생각입니다. 담임 목사님들은 “적어도 지금 86%는 나오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교인들은 어떨까요? 정말 그만큼 나오고 있을까요?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트렌드 2024 조사’ 자료에 보면 교인들한테 직접 “지난주일 교회 갔습니까?”물어봤을 때 68%만 출석하는 교회의 현장예배에 갔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10%는 교인인데 교회에 안 갔다고 답했어요. 그러면 교회 간 사람과 안 간 사람을 합하면 78%잖아요? 나머지 22%는 어디로 갔을까요? 이들이 바로 출석도 아니고 불출석도 아닌 중간에 붕 떠 있는 “플로팅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들은 우리 교회 온라인 예배를 드렸던지(12%), 다른 교회의 현장 예배를 드렸던지(3%), 다른 교회의 온라인 예배를 드렸던지(3%), 기독교 방송으로 예배를 드렸던지(2%),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린 겁니다(2%). 이 플로팅 크리스천을 붙잡는 것이 현재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계에서는 이 플로팅 크리스천들의 비중을 전체교인의 약 24% 정도로 보는데 4분의 1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의 4분의 1은 출석도 불출석도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를 온 것도 아니고 안 온 것도 아니에요. 이들은 지금 이곳저곳을 넘나들고 있는 플로팅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이 말이 작년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그때는 비중이 전체 교인의 20% 정도였는데 지금 25%까지 올라왔습니다. 4분의 1이 넘나드는 신앙인들이 많다는 것이죠. 저희 성민교회도 매주 방문객들이 많습니다. 이 방문객들이 대부분 플로팅 크리스천들인데 그런 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의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도 중요하고, 찬양도 중요하지만 과연 성도들이 어떻게 예배하고 있느냐를 그분들은 굉장히 유심히 봅니다. 그래서 대부분 저희 교회에 등록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설교를 듣고 등록했다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뜻밖의 대답입니다. 대부분의 분들에게 등록을 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면 ‘주차하다가 은혜 받아서’입니다. 주차를 하려고 왔는데 날 언제 봤다고 너무너무 귀하게 대접해 주셔서 내가 민망하고 미안해서 “아! 교회 등록해야겠다!” 했다는 겁니다. 또 어떤 분은 ‘예배드리고 나가다가 붙잡혀서’입니다. 우리 교회 밥 맛있으니까 국밥 오늘 뜨겁게 잘했으니 먹고 가라는 그 한마디에 한 숟가락 먹어봤는데 “이 교회 나와야지!” 이런 마음을 먹었다는 겁니다. 또한 이분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어내는 또 하나는 실시간 예배에 참여를 독려하는 겁니다. 최근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니까 ‘녹화된 영상을 보는 것과, 실시간 영상을 보는 것과 예배에 내가 정말 참여한 것 같이 느끼느냐?’ 라는 말에 반응이 거의 두 배 차이가 납니다. 그만큼 실시간 영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희 교회가 녹화방송 하다가 이제 실시간으로 바꾼 이유가 바로 그런 결론 때문입니다. 지금 약 두 배의 사람들이 실시간 예배송출을 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교회를 가지는 못해도 같은 시간에 참여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새벽 기도, 수요 예배, 주일 예배, 모든 예배와 집회를 지금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교회의 실시간 영상 링크를 잘 간직하시고 전달하시면 여러분 주변에 여러분이 전도의 대상자들 또는 교회에 나오게 하고 싶은 그분들이, 또한 플로팅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접하고 마음이 열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다음 호에서 계속 생각해 보겠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4-19
  • [다음세대칼럼] I am special
    얼마 전 둥지 아이들과 필리핀날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까비떼, 마닐라, 앙헬레스 등의 도시빈민지역을 방문하여 자신들보다 더 열악한 형편에 있지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지원에 익숙해져 있는 둥지 아이들이 스스로 다른 이들을 위한 피딩(급식)과 한글수업, 봉사활동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필리핀 위기청소년 그룹홈 NEST를 방문하여 함께 소통하며 서로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타본 비행기도 해외여행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는지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하면서도 괜히 긴장하고, 요란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짜릿함을 경험했습니다. 무엇보다 둥지 아이들은 이러한 필리핀 시골 오지부족의 문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너희들이 만약에 학교도 없고 놀 것도 없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가난하게 지내다가 지금 아기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어떨 것 같애?”라고 제가 던진 질문에 “난 자살한다” “나도!” “근데 나는 뭔가 그냥 살고 있을 것 같은데. 뭘 알아야 나가든지 비교하지. 그냥 이게 정상이라고 살고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먹을 것도 없고 양치질도 안 하고... 옷도 빨지 않고 그냥 입고 사는데... 난 진짜 잘 먹고 잘 지내는거였네” “나는 여기 변기에 뚜껑 없는게 최악이다. 진짜 싸러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다” “한국에 있는게 다 좋다. 진짜 감사해야 된다” “나만 돈 없고 우리집이 제일 가난하다고 불평했는데. 진짜 부끄럽다” “어제 우리 마을에서 나올 때 계속 따라오던 아줌마 기억해?” “우리가 들고 있던 그 종이 상자 받으려고 따라온 사람 말이죠? 저 진짜 놀랬어요” “선교사님에게 들었는데 자기 집 바닥에 깔려고 달라고 하면서 계속 따라온거래” “와! 대박이다. 그 종이박스가 뭐라고. 참...” “안되겠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왜?” “여기에 학교 짓고 유치원 만들고, 병원 지을려고” “필리핀 정부는 뭐하노? 이게 나라가?” 둥지 아이들은 이제 겨우 일주일을 지내고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일처럼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필리핀을 오기 전 필리핀 아이들을 위해 옷과 학용품, 음식 등을 챙기고 나눠서 박스에 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는 동안 해리는 ‘내가 도대체 지금 뭘 하는거지? 이렇게 고생을 해도 누가 알아줄까’라는 푸념으로 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필리핀 입국심사 때는 서류에 문제가 생겨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죠. 그렇게 힘들고 짜증내면서 필리핀에 와서 덥고 짜증나고 찝찝하기도 하여 왜 온건가 싶기도 했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은 그런 마음을 가졌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특히 교실에 들어가서 한글수업 일일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한글도 가르치면서 재미없어하거나 관심없어 하진 않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들어가서 가르쳐보니까 자음, 모음 하나하나 잘 따라서 말해주고 대답해주면서 박수를 치기도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하고 누구를 가르친다는 걸 처음 느껴보니까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땡볕에서 더운 줄도 모르고 풍선으로 강아지, 꽃, 칼 등을 수없이 만들어 길게 줄 서 있는 아이들에게 전해줄 때 아이들의 미소에 뿌듯하기까지 했구요. 이렇게 한국에서는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학교였는데. 모든 어려움과 고난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따따이. 여기 2~3만원이면 아이들 학교 다닐 수 있다고 했잖아요. 저 어제 피딩센터에서 만난 아이가 있는데요. 제가 그 돈 따따이에게 주면 그 아이가 학교 다닐 수 있는거예요?” “당연하지. 가은아. 니가 만약에 2만원 내면 내가 그만큰 더 내서 여기로 보내줄게” “좋아요. 저 이제 돈 아껴서 여기 후원할거예요” “와~~ 우리 가은이 철 들었네. 고마워. 근데 돈은 있냐?” “이제부터 담배 줄일려고요. 건강도 챙기고 후원도 하고...” “멋지다. 가은이” “저도 후원할래요” “저도요” 둥지 아이들은 피딩센터를 찾은 어린 친구들에게 더욱 정성스레 한 명 한 명에게 소중한 한 끼의 식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도 못하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들을 안고 천천히 먹이면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지난 시간 너무 쉽게 돈을 쓰고 음식을 남기고 불평했던 부끄러운 모습 때문이었을까 배식이 끝난 한참 후까지도 눈물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피딩센터를 뒤돌아서 마을을 다시 돌아보면서도 밥을 먹이던 그 어린 눈망울이 떠올라서인지 계속 울면서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특별해질거야. I am special”을 되새기면서.....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4-04-19
  • [신앙교육나침반] 강원도 정선 여량교회
    강원도 정선 깊고 깊은 산골마을에 여량교회가 있습니다. 작은 산골마을 시골교회이지만, 주일에는 교회앞 마당 주차장에 차가 가득해서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모여 예배드립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보니, 예배당 안에 35-40여명의 성도가 가득 모여 뜨겁게 주일 오전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간 날 새 가족 한분이 참여하여 환영식도 하였고, 성경양육반 수료를 하신 분들을 축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뜨거운 열정과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시골교회 풍경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여량교회 담임목사님이신 박경일 목사님은 시골교회도 할 수 있다는 사명과 열정을 가지고 성경양육반, 성경읽기, 큐티, 토요행복놀이터, 길거리 전도 등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달려가시며, 시골교회의 새로운 목회모델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올해 3월부터 여량교회 오후예배가 달라졌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1시30분이 되자, 주일학생과 성인 성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복음을 놀이하기 시작했습니다. 온세대 주일학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박경일 목사님은 올해 1월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의 복음놀이코디네이터과정에 참여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복음놀이코디네이터과정 대면코칭을 참여하신 후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런 소감을 적어주셨습니다. “무조건 외치는 복음이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나 놀이가 좋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흥미와 관심을 집중시키고 몰입한 가운데 계속 선포되는 복음의 핵심단어를 통해 아이들이, 그리고 부모님과 가정이 복음에 반응하게 할 수 있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의 개념을 알고난 후 복습게임으로 실천해오다가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를 만나니 잘이해가 되고 좋네요.” 여량교회 오후예배 때 온세대 주일학교인 <향기나무 복음놀이터>가 세워졌습니다. 향기나무 복음놀이터는 0-100세까지 온세대를 위한 복음전수 프로그램입니다. 온 세대가 함께 찬양을 하고, 함께 복음을 듣고, 함께 복음을 놀이합니다.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15명 정도로 모이는 주일학교인데, 1세대와 2세대가 함께하자 50여명이 모이는 풍성한 주일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지역에서 주일학생이 많이 모이기로 소문난 교회가 되었습니다. 3월과 4월 두 달동안 매 주일 오후마다 90세를 바라보는 1세대 어르신들과 아동, 청소년으로 구성된 자녀세대가 함께 복음을 놀이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그 무엇보다, 가장 큰 결실은 바로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수많은 자녀세대가 교회에는 가입되어 있으나, 교회공동체를 향한 강력한 소속감이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세대분리 구조속에서 신앙생활을 한 결과, 교회공동체를 향한 특별한 소명과 사랑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교회공동체와 함께한 추억과 경험이 없는 자녀세대는 자연스럽게 교회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떠나게 됩니다. 두 달동안 온 세대가 함께 복음을 듣고, 함께 웃으며 복음을 경험한 결과는 세대간의 친밀감이 증대되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알던 부모세대들은 온세대 주일학교를 통해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훨씬 더 친밀해졌다고 합니다. 온세대가 정기적으로 모여 생명의 복음을 함께 경험한 결과는, 단순히 마음의 연합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한몸됨’을 이루는 은혜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박경일 목사님은 향기나무 복음놀이 코디네이터회의 회장으로 현재 활약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은 온세대 복음놀이터를 준비하거나, 시작하고있는 많은 복음놀이코디네이터들에게 도전을 주고 계시고, 본인이 직접 준비하고 진행하시면서 얻은 노하우와 자료를 공유해주십니다. 5월 13일부터 향기나무복음놀이코디네이터 두 번째 과정 Great Gospel “느헤이먀”가 시작됩니다. 자녀세대와 그들의 부모인 3040세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전략을 찾고계신 분들, 세대통합 사역의 실제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신 분들, 주일학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 분들,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과정안내: 향기나무교육개발원 홈페이지 https://sweet-tree.org/]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신앙교육 나침반
    2024-04-19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통계로 본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
    다음세대 사역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의 전반적인 건강성입니다. 그래서 다음세대 사역은 항상 한국교회가 지금 얼마나 견고한 상태에 있는가를 먼저 점검한 후에 계획을 짜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부터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건강성을 점검하고 다음세대 사역의 기초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건강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올해 우리의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것인가를 전망할 때 일단 중요한 자료는 우리나라의 종교인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탈종교화가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탈종교화라는 얘기는 전 국민 중에서 종교인의 비중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종교인의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갤럽리포트 ‘한국인의 종교 1984-2021’ 자료에 보면 우리나라의 종교인 비율은 2004년부터 점점 내려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37%밖에 안 됩니다. 한국의 종교인이 이제는 37%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종교인인 불신자가 63%입니다. 이들은 어느 종교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속도는 엄청나서 특히 10대와 20대, 또는 30대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정도,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종교인의 비율을 가지고 지금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그 외 이단들이 다 싸우는 것입니다. 80%의 비종교인은 어느 종교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종교가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주류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교회’ 그러면 사람들이 전이해가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우리가 “교회 가자!” 할 때 이게 뭐 하자는 얘기인지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모른다는 겁니다. “교회가 뭐야?” 80%는 교회를 모릅니다. “예배가 뭐야?” “찬양이 뭐야?” “예수님이 뭐야?” 성탄절은 알아도 교회는 모르는 지금 이 80대 20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지난 10년 사이에 개신교 인구도 매우 큰 규모로 감소했습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발표한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 2023년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2012년에서 2022년, 10년 사이에 한국의 기독교인구는 22%에서 15%로 뚝 떨어졌습니다. 현재 기독교인 수는 700만 명 정도입니다. 전에 1,200만 명까지 우리가 올라갔다고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허수가 많았습니다. 정확한 조사에 의하면 770만 명 정도입니다. 그럼 이게 2032년이 되면, 앞으로 10년 후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 추세대로라면 10.2%로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가나안 성도는 지난 10년 사이 18%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가나안교인은 2032년이 되면 52.4%까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를 믿는 사람 중에서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이 절반을 넘어서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게 지금 통계가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숫자와 교인 수는 어떻게 변화되고 있을까요? 저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경우 지난 10년새에 8,165개 교회에서 9,419개 교회로 전체 교회숫자가 늘었습니다. 통계수치만 보면 15.4%가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교회에 모이는 교인의 숫자와 연계해서 보면 30명 이하의 교회가 82%, 아주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31명부터 50명 사이의 교회도 18.3%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50명보다 작은 교회가 늘어났다는 말은 이보다 큰 교회는 다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큰 교회들이 인원이 줄어들어서 쪼그라들었다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들이 늘어나서, 지금 전체 교회 수는 늘어났지만 이제 교회는 5년 이내 위기를 맞이할 교회가 지금 13% 정도 보는데 그럼 나머지는 10년 안에는 많으면 30%, 15년 안에는 70~80% 교회가 사라질 위기가 있다고 하는 것이 현재 통계가 보여주는 위기감입니다. 그럼 누가 교회를 안 나오고 있을까요? 앞으로 누가 안 나오게 될까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2023년 6월에 발표한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에 실린 통계자료에 따르면 개신교인이 아니었다가 개신교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16.4% 정도 되는데, 개신교에서 다른 종교로 가는 사람들 또는 교회를 안 나오게 되는 사람들이 19.2%로 더 많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밖에서 개신교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빠져 나가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겁니다. 같은 자료에서 살펴보면 여기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 30~40대입니다. 20대보다 더 빠르게 지금 교회를 빠져나가고 있는 30대와 40대,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주요 이슈입니다. 보통 30대와 40대는 우리가 20대만큼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도 이들쯤 되면 믿음이 있겠지! 결혼도 시켰고, 애도 낳았고, 직장생활도 하니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바쁘고, 더 핑계가 많고 더 모이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지금 40대로 구성된 제3남선교회가 제일 위기입니다. 전체 부서 중에 제일 위기는 제3남선교회입니다. 그리고 같은 연령대의 제3여전도회가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부서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설거지를 하는데 매번 설거지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선교회에 모여서 연말에 임원을 세우는 총회가 개최되기 어렵습니다. 서로 임원 맡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세대의 특징입니다. 나이대로 모이는 모임에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성가대를 하던, 교사를 하던, 목적을 가지고는 모이지만 친교를 위해서는 모이지 않는 세대가 된 것입니다. 모여서 다 핸드폰만 하고 있습니다. 서로 얼굴을 보고 할 얘기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된 30~40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도 대안이 나올 수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3-0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