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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레고 L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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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나이키, 페라리, 디즈니 등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는 브랜드는 바로 ‘레고’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장난감 레고(LEGO)는 덴마크어로 '잘 논다'라는 뜻을 가진 'leg godt(틀:IPA-da)'를 줄인 말입니다.
잘 노는 것이 가치 있을까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떠올려 봐도,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달리 매일 잘 노는 베짱이는 한심하게 보일 뿐입니다. 정말 놀이는 무가치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세대들에게 잘 노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놀이는 언어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놀이로 말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서 소통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눈과 눈을 마주보며, 온 몸을 부대끼며 놀이를 하는 것은 자녀에게는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입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몸이 아프게 되듯, 놀이밥을 먹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옵니다. 아이가 ‘나랑 놀아줘’라고 말하는 것은 ‘내 얘기 좀 들어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심심하니까 놀아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청소년이 된 자녀가 ‘제가 고민이 생겼으니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어릴 때부터 자녀의 놀이친구가 되어서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고 소통해준다면, 아이는 인생을 살면서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당연히 부모를 찾게 됩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인생을 살다가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어차피 부모는 신경도 안 쓸 것이라는 불신으로 부모와 소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부모들은 자녀와 ‘잘 노는 것’보다 ‘잘 가르치는 것’을 우위에 둡니다.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고, 운동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성품을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학원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교회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집에서도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소통할 시간은 없지요. 중요한 것을 배워야하기 때문에 놀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소통하는 시간을 모든 업무 중 가장 중요하지 않는 최하위 항목에 넣어두고, 시간이 생기면 하고, 시간이 없으면 하지 않는 일로 여깁니다.
“놀이는 할 일이 없는 부모나 하는 일이에요. 너무 바빠서 놀이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소통의 시간을 단 10분도 마련하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냅니다. 어릴 때부터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어떤 결과가 기다릴까요? ‘단절’입니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부모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게 됩니다. 학교와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고립과 단절을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강조하셨습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하나님은 규율과 관습, 심지어 진리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밖에서 전달된다면 공허한 종교일 뿐임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무나 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나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너희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사랑의 관계 맺으며 소통하는 것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위에 두셨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필사적으로 다음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은 관계맺음을 통하여 전달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관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자녀와 관계를 맺으면서 소통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기독 가정의 부모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기르시는 방법을 따라서, 자녀들에게 반드시 사랑의 관계 테두리 안에서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중요한 사명을 찾게 됩니다. 교회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기독 가정에게 주일만이라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온 몸과 마음을 합하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지치고 아픈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고, 부모들은 자녀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낼 강력한 힘을 얻게 됩니다. 향기나무는 이러한 가치를 알기에, 오늘도 어떻게 하면 이 땅의 기독 가정이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잘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성경놀이를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가정의 소통을 회복시키는 장을 마련하기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도움 드리겠습니다(문의| 향기나무교육개발원 031-30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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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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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교사들이여,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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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선생님 여러분! 남이 나를 몰라 준다고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남이 내가 무슨 수고를 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서운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우셨고,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의 역사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이게 동행이잖아요? 동행하는 게 먼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동역하는 걸 중요하게 보지만 먼저는 동행입니다. 동행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사실 부담스럽잖아요. “주님과 동행?” 그러면 왠지 힘들고 어렵고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동행’이라고 하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이죠?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이잖아요? 보폭을 맞추고 방향을 맞춰서 속도를 맞춰 걷는 건데요. 같이 동행을 할 때 누가 더 힘들까요? 내가 힘들까요, 하나님이 힘들까요? 여러분, 옆에 꼬마가 있는데 옆에 꼬마랑 저랑 둘이 걷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제가 힘들어요, 꼬마가 힘들어요? 제가 힘들죠. 꼬마는 힘들 것이 없죠. 왜? 꼬마는 막 걸으면 되잖아요. 아무 데나 막 걸으면 제가 맞추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힘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훨씬 힘들어요. 우리가 워낙 우리 맘대로 가니까 “야! 너 그렇게 갈 거야? 진짜?” 그리고는 같이 가주시고 “야! 너 그렇게밖에 못해?” 그런데 같이 가주시고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동행이 무엇인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매주 최고의 예배를 못 드리잖아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세요. 나의 예배가 매번 하나님 수준에 맞는 예배입니까?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수준으로 내려와 주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세요. 그것도 매주요. 여러분, 오늘도 예배 가운데 은혜 많이 받으셨죠? 그거 내가 한 거 아니잖아요? 그거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해 주셨어요. 내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은혜를 주셨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여러분,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데 그 예배 가운데서 그다음 힘을 얻으면 뭘로 가요? 바로 동역으로 갑니다.
마가복음 3:14~15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그랬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도하는 힘을 주십니다. 교사 열심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아이를 잘 먹이고 양육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부모님이 감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안 믿는 부모가 우리 교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가 나도 아이를 잘 건사 못하는데 선생님이 너무 안 잘 챙겨요. 매일 매일 기도해 주시고, 매주 전화 오고, 아이 잘 도착했다고, 잘 먹고 있다고, 잘 놀고 있다고, 또 잘 데려다주고, 그러니까 선생님의 사랑에 부모들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온 새 신자가 있는데 아이들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데 선생님이 와서는 “안녕하세요. 그 아이는 저희 부서로 데려가요.” 예배를 마음껏 드리고 났더니 그 아이가 “엄마! 저 오늘 너무 예배 잘 드렸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면은 “야! 우리 교회 또 와야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교사는 교사 열심히 하면 전도하는 겁니다. 교사만 열심히 해도 전도가 된다니까요? 여러분, 찬양대원은 찬양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는 설교로 전도하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리에서 예배하므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해요. 절대 나가서 전도할 생각하지 말고 애들 잘 가리켜라! 그럼 그게 전도다! 애들이 우리 교회 행복하면 가만히 있겠어요? 가만히 있지 않아요. 계속 소문을 내요. 아파트에 소문내고, 학원에 소문내고, “우리 선생님 짱이야! 우리 교회 짱이야!” 그러면 몰려오게 되어 있다니까요! 부모를 감동시키면 그 부모까지 다 얻을 수 있어요.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뭐라고 하세요?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신답니다. 여러분, 교사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귀신을 내쫓는 권능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이라고 말하면 착각을 하는데 너무 헐리웃 영화를 많이 봤어요. 너무 전설의 고향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귀신’ 그러면 어머나 ‘무서운 귀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귀신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 귀신은 어떤 존재일까요? 성경에 쓰여있기를
마태복음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오늘의 말씀을 마태가 적을 때 그냥 귀신이 아니라 더러운 귀신이라고 적습니다. 성경적으로 귀신의 개념은 무서운 귀신이 아닙니다. 더러운 귀신입니다. 왜 더럽습니까? 하나님을 알되 경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해요?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게 맞는 것입니다. 또한 귀신만이 아니라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로서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은 지금 정말 더러운 귀신에 빠져 있어요. 세상을 지배하는 정복의 영, 경쟁의 영, 남을 짓밟고 올라가서라도 내가 잘되어야 한다는 세상 물질의 영, 개인주의 영, 이기주의 영에 지금 아이들이 가득해서 아이들을 지금 괴롭히고 끌어내려고 있어요. 이러한 때에 모든 더러운 것과 모든 악한 것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권능이 내 손에 있음을 믿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군사, 하나님의 화해의 정병으로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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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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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또 하나의 기적- 둥지극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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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 당신의 이름은 왜 로미오인가요?” “어머? 우리 처음 본 사이에요. 제가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이나요?” “난 엄마 딸 자격 없는 년이다. 엄마 왜이래 몸이?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거가? 엄마를 버리고, 엄마 아프게 한 이 못된 년을 속 시원해질 때까지 때리라! 왜 아무 말도 안하는건데 차라리 때리고 욕을 하란 말이다” “점순아 잊지않았지? 넌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딸 점순이다” “엄마~~~~~”
2017년도부터 시작된 둥지극단 “엄마의 바다”는 이번에 여섯 번째로 9월 2일과 3일 이틀간 부산진구청소년센터에서 3번의 공연을 하였습니다. 각종 비행과 범죄로 소년재판을 받고 둥지청소년회복센터에서 생활 중인 아이들과 시작한 ‘둥지극단’이라는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연극의 스토리가 가족과 갈등, 가출 등 아이들의 살아온 삶의 상황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엄마의 바다 2022”에도 3번의 공연에 100여명의 분들이 오셔서 아이들의 작은 몸짓에 큰 격려를 주셨습니다.
둥지에서 연극공연을 하게 된 계기는 6년 전 평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연의 관람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극단 디아코노스 김태연 단장이 둥지 아이들과 1주일에 1회 만남으로 연극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출발이었습니다. 이후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고 연기감각도 좋아 연극공연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 이번에 여섯 번째 공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외된 채 자기 표현을 서툴러하고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무대에서 숨겨진 재능과 끼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 둥지 아이들이 공연을 위해 연습하면서 ‘대사를 외울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다 사라진 채 점점 더 진지하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우리끼리 하려던 공연이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더 제대로 된 무대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둥지극단이라 이름을 정하고,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매년 연극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 비해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함께 생활하는 분위기도 좋아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나 작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이탈하거나 무단가출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처음에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별 흥미도 없었고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도 잦았고 우리들 사이에 갈등도 많았습니다.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들은 더욱 뜻 깊은 이야기와 무대를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참 많은 변화를 하였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습관처럼 대사를 외우며 웃고 떠들었고,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별거 아닌 변화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로선 엄청나게 큰 변화를 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아마, 이 공연이 끝나고 나면 더 자랑스럽고 멋진 우리들이 되어 있겠지요? 우리들의 노력이 색색의 화려한 조명에 묻히지 않고 색을 빛내는 별이 되고 싶습니다”
둥지 아이들이 이번 연극의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무대에서도 주인공으로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응원해주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주변의 위기청소년, 비행(非行)청소년들이 이러한 관심과 응원을 통해 이젠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삶의 행복한 비행(飛行)을 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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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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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성경적 성교육, 부모가 지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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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가 위험합니다. 수많은 기독부모들이 하나님 자리를 이탈하여, 하나님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양육의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기독부모들은 다음세대의 교육을 학교와 학원에 전적으로 의탁합니다. 그 결과, 다음세대는 성경적 신본주의 대신 세속적 인본주의로 세뇌되고 있습니다.
세속적 세계관은 과연 무엇일까요? 세계관은 모든 행동과 생각의 이유가 됩니다. 세속적 세계관의 중심에 “I am God!” 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화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간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사상입니다. 인간은 동물이므로, 내가 원하는 것(본성)이 곧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됩니다. 이러한 세계관에 지배를 받는 다음세대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나를 이끈다!” 내 몸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면 결과는 어떠할까요? 낙태, 동성애, 폭력과 살인이 모두 정당화됩니다.
다음세대는 세상으로부터 진화론에 입각한 성교육을 받으면 안 됩니다. 다음세대는 믿음의 부모로부터 가정에서, 성경적인 성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어떻게 성경적인 성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십계명 6계명과 7계명에 근거한 성경적 성교육 설교와 놀이를 개발하여 현재 보급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에게 성경적인 성교육 설교를 할 수 있는 ‘실물자료와 영상자료’를 제공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성경적인 성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집 성경놀이키트’를 제공합니다. 부모들이 어렵지 않고 쉽게, 성경적인 성교육을 전수할 수 있는 양질의 컨텐츠를 만나보시기 추천드립니다.
성경적 성교육에서 강조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를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성경적 성교육은 ‘가정의 창조’부터 이야기해야합니다. 세상은, 신체의 성기관의 구조와 기능에 중점을 두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성경험을 부추기는 방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성교육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가정이 되게 하신 말씀부터 이야기합니다. 세속적 세계관으로 볼 때, 가정은 목적이 없고 인간의 본성을 따라 저절로 생겨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볼 때, 가정은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설계를 따라 탄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세우는 목적으로, 사람에게 생명과 성(性)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필 가정을 만드셨을까요? 아담과 같은 여러 명의 남자를 만들어서 강한 군대를 만드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은 가정을 세우는 것으로 창조의 대미를 장식하셨을까요? 말라기 2장 15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셨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은 경건한 가정을 통해서 믿음이 대대로 전수되기를 열망하십니다.
둘째, 성경적 성교육은 하나님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생명과 성(性)을 선물하셨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생명과 성(性)은 인간이 엄마 뱃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대로 생명과 성(性)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내 마음대로 하나님이 주신 성(性)을 함부로 바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성(性)은 생명과 동일한 가치와 비중이므로, 생명처럼 소중하게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6계명(살인하지 말라!)과 7계명(간음하지 말라!)을 연이어 명령하시며 생명과 성(性)을 보호할 것을 외치셨습니다. “제발 사람의 생명을 살려라! 제발 사람의 성(性)을 지켜라!”
셋째, 성경적 성교육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몸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상은 몸을 인격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인격이며, 몸은 동물의 본성을 지닌 물질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몸을 함부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정반대입니다(로마서 12장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몸을 통해 예배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몸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존귀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8주가 된 태아는 강낭콩만한 작은 크기라고 합니다. 세상은 생각과 감정이 없는 조그만 태아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백질 덩어리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8주도 되지 않은 작은 태아를 하나님의 형상자로 보십니다(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이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인구갤럽조사에 따르면 1년에 150만 명의 태아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죽어갑니다. 인구비례로 볼 때, 세계에서 태아를 가장 많이 죽이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부모들은 하루 빨리 믿음의 자녀에게 성경적인 신본주의 세계관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성경적인 성교육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성(性)에 담긴 하나님의 꿈과 열망을 전수해주십시오. 성경적 세계관이 담긴 성경놀이를 통해서 이 땅에 경건한 가정이 아름답게 보존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적 성교육놀이 문의: 향기나무교육개발원 031-30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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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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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교사들이여,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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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가르치기 참 힘드시죠. 그런데 아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왜?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았으니까요. 교사는 교사로서 교사하는 게 아닙니다. 실은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면 아이들이 나를 보고 배워요. 내가 교사니까 가르치는 대로 따라와라! 나에게 배워라! 이러면 애들은 꿈쩍도 안 하는데요, 그런데 내가 먼저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면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목회하면서 기도 안 하고 말씀만 듣고 찬양을 안 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야! 기도해! 말씀 들어! 찬양해!”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제가 먼저 예배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걸 따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잔소리 안 해도 제가 진짜 진심으로 기도하면, 앞에서 기도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눈물로 기도했더니 아이들이 그 기도를 따라오더라고요. 찬양 율동을 저부터 시작하니까 목사님이 찬양을 하는데, 율동을 하는데 어떻게 안 해요? 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그렇구나! 다른 교육은요, 달라요. 수학교육, 영어교육은 영어만 잘하면 됩니다. 수학만 잘하면 됩니다. 영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쳐요. 그런데 기독교 교육은요, 기독교를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기독교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하더라고요. 내가 가르치기 이전에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 아이들이 나를 보고 예수님을 보더라고요. 그리고 나를 보고 예수님을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제자로서의 교사’입니다.
마가복음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산에 오르사’라고 하는 것은 이제 예수님이 산에 올라서 기도하신 후에 부르셨다는 뜻인데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잘해서 부름받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똑똑해서, 경력이 있어서, 자격증이 있어서, 부름을 받은 게 아닙니다. 왜 불렀어요? 하나님이 나를 원하셨어요. 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셨어요. 왜? 여러분들을 통해 예배받기를 기뻐하세요. 여러분들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너무 사랑하세요. 너무 행복해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의 앞날을 누구에게 맡겼나? 천사에게 안 맡기고 하나님은 교사에게, 이 세상 아무리 유명한 석학에게 맡기지 않고 오직 할 줄 아는 건 기도밖에 없는, 오직 할 줄 아는 건 순종밖에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린 영혼을 맡기셨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를 원하셔서! 저는 이것이 최고의 훈장인 것 같아요. 최고의 자격증입니다. 세상이 나를 끌어 내릴 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나를 원하셨다는데요! 나를 부르셨는데요! 교사 여러분!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자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누구예요?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넘볼 수 없고요, 세상이 우리를 깔볼 수 없어요. 하나님의 사람! 바로 원하는 자들입니다.
마가복음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열두 제자를 불렀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은 원래 야곱의 아들들로 구성된 12지파였어요. 그런데도 열두 지파가 지금 다 와해되어 버렸어요. 12지파 가운데에서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나뉘어지면서 남유다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똘똘 뭉쳐있는데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다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다가 북이스라엘은 쫄딱 망해서 앗시리아로 다 흩어지면서 지파가 무너져 버렸어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는 이제 지파 개념이 사라지고 유다와 베냐민만 남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 지파,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 두 지파밖에 안 남아요. 다 사라져 버려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열두 제자를 통해서 12지파를 다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함을 열두 제자를 통해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겠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이스라엘.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다시 내가 일으키겠다!”라고 열둘 제자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다음 세대를 구축하는 하나님의 구축병인 줄 믿습니다. 다음 세대를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가? 12명을 세우는 거였어요. 하나님은 우리 교사들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세우시고, 우리 부산의 미래를 만드시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 가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12명을 세우셨다고 했어요. 그들은 원래 혼자 설 수 없는 이들이었어요. 그들은 다 어부, 세리, 열심 당원... 별로 사회적으로 주목받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세우셨어요. 우뚝 세우셔서 이제는 그 12명의 이름을 우리도 알잖아요. 모두가 알잖아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요. 왜요? 그 열두 명이 이제 높이 세워져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부심을 가지고 올 여름 다음세대 사역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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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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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금쪽같은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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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큰 관심사며 화두라 할 수 있다. ‘다음 세대’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고 격려하고자 하지만 저출산과 각종 문제로 막상 그 대상이 없어진지 오래됐다. 특히 교회적으로는 부서 자체가 없어진 교회를 흔히 볼 수 있으며 사회 학교에서도 인원수가 줄어들고 학급이 줄어드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생계를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지나친 방임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지나친 간섭으로 옥죄어서 나타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들마다 상당수의 부모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곤 한다. “저희도 부모가 처음”이라서. 맞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를 이유로 하기엔 더 많은 가정은 지극히 평범하게 화목하게 잘 지낸다. 그건 그들이 결코 부모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하다가 ‘지나친’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말처럼 지나친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된 전형적인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해결점은 결국 ‘믿음’에 있다는 다소 진부한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비행 청소년의 보호처분 기간을 늘리기 위해 재판에 참여(위탁보호위원 자격)하게 됐었다. 재판을 위해 청소년과 그의 보호자도 함께 출석했으며 이내 재판이 진행되었다. 그런 와중에 보호자는 처분 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며 소란을 피우며 막무가내인 행태를 보였다. 결과는 바뀌지 않은 채 재판은 끝이 났고 분이 풀리지 않은 보호자는 학생의 담당 선생님께 온갖 욕설과 협박의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었다.
어떤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보호자된 사람으로서 내리사랑의 아름다움처럼 보이는가? 동시에 이와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하나님께 바쳤던 사건이 떠올랐다. 하나는 다른 사람은 믿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는 아집과 교만의 결과였고, 하나는 자기의 낮음을 인정하며 전적인 신뢰를 보인 결과였다.
만약, 저 보호자가 법원과 센터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었다면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너무 사랑하는 내 자식이지만 너무 안타깝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더욱 신뢰하며 기꺼이 맡기지 않았을까? 이러한 얘기는 사회적으로만 통용되는 것일까? 이러한 맥락을 따라 교회에서 우리 자녀들이 진짜 믿는 믿음이란, 부모들이 진짜 믿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왜 중고등부 사역이 어렵고 왜 중고등부 아이들 전도가 어렵고 주일이면 시험기간이면 학원 가기 바쁘고 심지어 그렇게 떠나기까지 하는 것일까.
교회 선생님들이 사역자들이 못나서 그런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저 사례와 유사하게 가정에서 믿음의 대상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확신한다. 아무리 교회 선생님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쳐도 고작 일주일에 한 번 가르치는 것과 일주일 내내 생의 곁에서 내 혈육인 부모가 학원과 세상을 더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몸소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인다면 과연 어느 것에 힘이 더 실릴까. 그것은 엄청난 은혜와 노력이 아니고서는 후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평일 6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세계관으로 똑같이 살다가 고작 주일 하루 교회에서 설교와 프로그램으로 아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 결국 교만이고 허황된 욕심 아닐까. 그러다 변하지 않으면 교회를 탓하며 저 보호자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을까.
또한 반문할 수 있겠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도 가르친 적도 없냐고. 그러나 또한 명심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교육이란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일부일 뿐, 부모가 사는 모습 그 자체가 곧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금쪽같은 내 새끼는 부모가 제일 잘 알고 부모만이 답이리라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맡길 수 있어야 한다. 학원을 그래서 보내는 것 아닌가. 부모보다 더 잘 가르치리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더욱이 하나님이 유일한 위로자요 부모요 스승이라 믿는다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세상의 것보다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세상에서는 찾을 수도 구할 수도 없는 가치를 교회를 통해서는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자녀에게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부모가 그렇게 살아내는 모습으로 자녀에게 가르쳐 양육해야 할 것이다.
온전한 사랑으로 완전한 믿음이 자녀에게 잘 전해지기를, 그를 통해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더불어 아름다워지고 부흥하는 날을 속히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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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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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온 세대가 십계명 5계명의 진리를 놀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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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처음 부모가 원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진화론의 논리를 따르면, 가정은 우연히 생겨났습니다. 가정은 어떠한 목적도 없이, 동물적 본능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므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지닌 수많은 현대인들은 가정의 붕괴와 소멸을 지지하며, 자연스럽게 최신 문화의 형태인양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정의 붕괴현상은 단순히 사회문제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영적전쟁의 산물입니다. 사탄은 교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가정이 소멸되면, 다음세대는 없습니다. 그러니 사탄은 세상의 오락과 미디어가 가정을 주도하여,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기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사탄의 계획대로, 부모들은 바쁘고 분주한 세상을 좇아가느라 하나님 말씀을 전수할 에너지와 시간이 없습니다. 다음세대들 역시 세상의 교육을 받는 데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세상의 교육에 쏟는 시간이 커지는 만큼, 다음 세대는 가정을 하찮게 여기게 되는 세속적 인본주의로 세뇌되어갑니다.
믿음의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무너집니다. 그러하기에 사탄은 믿음의 가정을 무너뜨리려고 무시로 사나운 맹수처럼 달려듭니다. 이처럼 사탄의 공격이 거센 세상 속에서 믿음의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이 바로 십계명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수많은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인간 부모를 하나님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말라기 2장 15절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 부모를 세우신 목적을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이 말씀은 가정이 동물의 본성에 의해서 아무 목적 없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 부모를 하나 되게 하셔서 특별한 설계와 목적을 가지고 세우셨음을 보여줍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입니까? 하나님은 인간 부모를 통해서 경건한 자손을 얻기를 꿈꾸십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경건한 자손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강력한 요새는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5-10계명) 중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5계명으로 먼저 설계하셨습니다.
공경(카베드)의 원 뜻은 ‘무겁게 여기다’, ‘중요하게 여기다’입니다. 가벼운 휴지 한 장을 손에 올려놓을 때는 나의 힘과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무거운 테이블을 옮길 때에는 휴지를 집어 들 때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야만 무거운 테이블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선 자리가 본래 하나님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부모를,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로 여기며 마음과 뜻과 힘을 집중해야 합니다. 부모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 즉 공경 받아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5계명의 말씀은 부모에게 거룩한 책임을 부여하는 명령입니다. 부모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임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께 충전해야 합니다. 수많은 부모들은 ‘부모됨’을 존재와 사명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다른 것에서 ‘부모됨’을 찾으면 안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에게서 참된 부모됨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날마다 하나님께 충전하여, 하나님의 자리에서 부모됨의 정체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믿음의 가정이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이 놀라운 5계명의 진리를 부모와 함께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놀이를 통해 교회와 가정에서 성경적인 효를 전수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와 가정에서 이 놀라운 복음놀이가 왕성하게 전수되기를 기대합니다(향기나무교육개발원 문의, 031-30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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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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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위기청소년들의 가족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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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단법인 보물상자를 통해 복지사각지역에 있는 위기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다가 2014년 봄부터 소년보호재판을 받은 여자 아이들을 위한 둥지청소년회복센터를 직접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크고 작은 범죄나 비행을 저질러서 법정에 들어서는 아이들을 만나면 대부분은 어릴 때 가정의 문제로 사랑받지 못해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줘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된 상황을 봅니다. 재판이 열리는 날은 때때로 가슴시린 사연을 가진 아이들로 인해 이른 아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소년법정에서 처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참혹한 현실, 부모들의 무력감, 안타까움, 탄식과 한숨, 흘러내리는 눈물… 꿈도 희망도 사라진 것 같은 아이들… 어떠한 처벌이나 조치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기세의 안타까운 현장 가운데 순간순간 저의 사명을 확인합니다. 지금까지 2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둥지를 거쳐 갔습니다. 반복된 가출과 절도, 폭행, 사기, 성매매 등 각종 비행에 노출된 아이들부터 떠들썩하게 언론에 보도되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의 주인공도 있었습니다. 보호자 없이 보육원에서 성장한 돌아갈 가정이 없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입양가정에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방황한 아이도, 모르는 가운데 탈선하여 입양부모의 애를 태우는 아이도, 둥지에 들어와서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된 아이도 있었습니다. 정신과의 치료를 요할 만큼 분노조절장애, 행동장애, 자해 등의 문제를 가진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직 비행청소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초등학교 6학년부터 21살의 성인이 되어 자립지원을 해야할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상황과 사건으로 재판을 통해 저와 둥지를 만나게 되지만 모두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이었습니다. 바로 변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주시길 기대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마음 아픈 이야기들은 안 읽고 안 보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아픈 현실이 아니기에 직면하여 그들의 아픔을 보고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둥지의 따따이-아빠로서 아이들을 계속 사랑하며 품어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음껏 꿈을 펼치고 날아올라야 할 아이들이 가정 형편과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날개를 접고 있거나 날개를 다쳐 혼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날개에 다시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더불어 이제는 날기를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도록 둥지를 잃어 방황하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둥지를 제공하고 날개의 힘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정을 제공하고 품을 수 있는 둥지가 되고 큰 꿈을 가지고 비상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습니다. 둥지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함께 비행(⾮⾏)청소년의 아름다운 비행(⾶⾏)을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주변의 마음이 힘들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품어 저와 함께 이 아이들의 큰 아버지, 삼촌, 고모, 이모가 되어 주십시오. 이 사회가 학교가 모든 아파하는 아이들을 품고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되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의 대리 부모가 되어 가정환경을 만들어 보호하며 함께 생활할 분들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부산과 경남지역 법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운영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운영자가 직접 환경을 마련하고 법원교육비와 후원금으로 운영해야 하는 열악하면서도 상처와 비행으로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돌보는 고된 일이지만 가치 있는 현장입니다. 이 땅의 수 많은 교회들이 각 지역의 위기청소년들을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과 실력이 있기를 그리고 신앙과 인경으로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헌신자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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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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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시골 교회도 여름성경학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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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사님, 주일학교 없는 시골교회친구들에게 여름성경학교 해주고 싶어요! 향기나무가 해주세요! “
경남 하동에 위치한 고남교회 담임목사님의 전화한통에 향기나무 대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나님의 분명한 부르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까지는 향기나무 연구원과 내가 시골교회 성경학교를 소박하게 돕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꿈꾸시는 그림은 그것보다 훨씬 큰 그림이었다. 하나님은 하동 고남교회 뿐 아니라, 인근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사천 곤양교회, 남해 성남교회 친구들도 초청하셨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최고로 섬기기 위해 탁월한 은사를 지닌 전문가들을 보내어주셨다. 어린이 전문 찬양팀(UDC), 성경놀이전문가(향기나무팀), 인형극팀(용용이 선생님)까지 총 18명이 시골교회 성경학교를 섬기겠다고 자원하였다.
사는 곳도 다르고, 교회도 다른 20여명의 스텝들은 3주간 온라인 기도회를 열어 함께 기도했다. 기도회를 할 때마다,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60여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자체로, 말로표현하기 힘든 긍휼함과 사랑의 마음을 느끼며 눈물로 기도했다.
고남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성경학교를 며칠 앞두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전도사님, 이렇게 일이 커질줄 몰랐어요. 하나님이 이 아이들에게 이번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귀한 선물을 주고 싶어하심이 느껴집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시골교회 친구들은 그 어느 아이들보다 불행했다. 깨어진 가정과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는 이 아이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이 아이들을 은혜의 자리로 불러, 손잡아 일으켜 세우기 원하셨다.
드디어 2022년 7월 29일과 7월 30일, 약 60여명의 아이들이 모였고, 아이들은 예배와 성경놀이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온 몸으로 경험하여 즐거워하였다. 성경학교의 주제와 모든 프로그램은 향기나무교육개발원에서 개발한 “하나님의 열마디 사랑의 외침, 십계명” 우리집 성경놀이터로 진행되었다. 성경학교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불신 가정에서 홀로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십계명의 말씀은 ”나“라는 존재가 아무 쓸모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 하나님이 너무나도 열렬히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존재임을 경험하게 하였다.
향기나무 성경놀이는 모든 세대 연령을 하나 되게 하는 컨텐츠이다. 이러한 특징은 시골교회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학교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시골교회 특성상 2세 영아부터 13세 초등학생까지 참여하였지만, 모든 성경놀이 프로그램 안에서 어떤 문턱도 느낄 수 없었다. 2세부터 13세까지의 어린이와 20-40대 진행팀, 그리고 50-60대 교사들은 우리집 성경놀이터에서 한 가족이 되어 함께 큰 소리로 웃으며 땀 흘렸다. 함께하는 성경놀이 안에서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가족이 됨을 경험하였다.
길고긴 외로움의 터널을 통과하는 아이들에게, 교회 선생님, 장로님, 권사님, 20-40대 남녀 진행팀과 함께 놀이하는 시간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선물하신 최고의 가족이 여기에 있음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은혜 가득한 예배와 성경놀이와 식탁교제 속에서, 어두웠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정적이 흘렀던 예배당이 어느새 감탄과 웃음소리 가득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들은 진행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미소를 보여주며 장난을 치기 시작하였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이번 사역을 계기로 특별한 소명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주일학교가 없거나 약한 지역에 있는 시골교회 친구들에게 사랑과 생명 가득한 우리집 성경놀이를 선물하고자 한다. 슬픔이 가득한 곳에, 아픔이 가득한 곳에 우리집 성경놀이의 생명보약밥을 꼭 먹이고 싶다. 아이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있다면, 주일학교가 없는 시골교회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위한 성경학교를 할 수 있다! 고남교회와 같이 귀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계획하는 것 그 이상의 놀라운 사역을 펼치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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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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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담임목사가 성경학교 주제강의를 직접 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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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역하는 성민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평북노회에 속해있습니다. 이중 영남시찰에 속한 교회학교 교사들이 매년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성민교회에 모여서 교사강습회를 열어 그해 여름성경학교의 주제부터 공과, 프로그램, 찬양, 환경구성, 컨셉 등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담임목사인 분홍목사가 부임이후로 7년째 매년 직접 주제강의와 기획특강을 직접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 성경학교 강습회에서 담임목회자의 역할은 개회예배 설교나 격려사, 또는 축사나 축도 정도일 때가 대부분인데요, 그런데 왜 분홍목사는 담임목회자이면서 매년 교사강습회의 주제강의를 직접하는 걸까요? 거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담임목사가 이해하는 만큼 여름행사가 준비되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학교에 있어서 여름행사의 중요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흔히들 1년 농사가 걸려있다고 할 정도로 여름행사를 통한 다음세대 교육과 어울려 함께하는 시간들, 은혜 받고 그 은혜를 나누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교회교육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총회교육자원부에서는 매년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1년 전부터 주제를 연구하고 공과학습과 프로그램을 만들 필진을 구성하여 교재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를 위해서 그해의 총회의 주제를 아동부와 청소년부, 유치부 등 각 부서에 맞게 변형하고 구조화하여 다음세대에게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교회학교의 여름행사가 과연 총회에서 준비한 대로, 공과 집필진이 고민하며 제작한대로, 그해 교회학교 현장에 보급되고 전해져야 할 내용대로 각 교회의 현장에 전해지고 그만큼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요?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각 부서의 교역자의 역량에 따라, 또는 부장이나 총무 교사의 경험치에 따라서 여름행사의 주제를 이해하고 교육내용을 소화하는 정도가 너무나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총회에서 아무리 좋은 주제를 내놓는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형식적으로 사용되거나 그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쉽습니다. 여름행사는 그냥 잘 먹이고 잘 놀게 해주면 그만이라는 식의 교육관을 가진 현장 사역자들이나 교사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홍목사는 담임목회자임에도 매년 총회에서 주최하는 여름지도자강습회에 참여해서 올 여름 교회학교가 중점을 두고 있는 주제가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그 주제를 각 부서는 어떻게 소화하고 이해해서 교재에 반영했는지를 배우고 함께 연구하면서 이를 교회 현장에 전해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담임목사의 역할은 교회 전체의 여름행사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그해의 여름행사의 주제를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각 부서의 교역자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고 전체의 의견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에 담임목사는 그해의 교육주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민교회의 강습회 현장은 이미 그해 여름의 환경구성을 모두 마친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이는 담임목사가 직접 나서서 교회 전체를 그해 주제에 맞게 꾸미고 준비하는 일에 선두에 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2. 담임목사가 나서야 온 교인이 나서기 때문입니다.
각 교회의 여름행사가 지향하는 바는 교회에 나오는 다음세대들의 신앙을 복음과 성경 말씀, 찬양과 기도, 하나되는 시간을 통해 향상시키고 그들이 교회공동체의 모든 멤버들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다음세대는 교회에 더욱 애정을 가지고 그 교회의 중심멤버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다음세대 여름행사에 온 교회 교인들이 모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각 교회의 여름행사는 각 부서의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에게는 중요한 행사지만 그 외의 성도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가는 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담임목사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담임목사가 주제 강의를 하면서 관심을 보이고 깊숙이 관여되어 참여할 때 성도들도 이 일을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학교만의 일로 외면하거나 버려두지 않고 각 선교회와 자치단체도 참여해서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협력해서 행사가 잘 진행되도록 돕습니다.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의 한 마디가 갖는 무게감은 참으로 큽니다. 앞으로 모든 교회가 담임목사가 주일예배 시간 사이에 교회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을 만나고 교사들을 축복하는 교회, 담임목사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불러주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교회, 담임목사의 집무실 벽을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가득 채우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가 여름성경학교 주제강의를 하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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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