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다음세대
실시간 다음세대 기사
-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를 주목하시는 하나님
-
-
하나님께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았지만 거역하고 도망쳤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담은 요나서는 우리에게 참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책입니다. 그중에서도 요나서의 결론에 해당하는 요나서 4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4:11)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이것이 하나님이 아끼시는 대상을 나타내는 말이었어요. 이 표현은 당시에 6세에서 7세 미만의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직 유치부, 미취학 아동인 거에요. 당시에 이 아이들은 아무 쓸모없는 물건처럼 취급을 당했어요. 말도 잘 안 통하고 일을 시킬 수도 없고 자꾸 울고 보채고 먹을 것이나 찾고...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무조건 강자 중심이고 어른중심이 아닙니까? 경제활동을 하니까요. 돈을 벌지 못하면 사람 숫자로 잘 치지 않습니다. 요나서가 기록된 구약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만 숫자로 치던 시절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몇 명인지는 셀 이유도 없고 세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니느웨에 사람 숫자를 헤아리면서 어른 숫자가 아니라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숫자를 계수하십니다.
이건 요나가 아까워하는 대상과는 완전히 다르죠. 요나는 자기한테 유익이 되는 대상, 자기의 머리 위를 가려줄 유능한 박넝쿨을 아까워했어요. 비록 하루아침에 났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박넝쿨이지만 요나는 그런 존재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유익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을 말씀하고 계신 거에요. 왜요? 그들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이 우리가 사는 이유이고 우리의 목적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고 그들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예수님께서 직접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18:10-14)
너무 놀랍지 않으세요? 아이들마다 그들의 천사들이 있는데 그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고 하십니다. 이건 그야말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잃은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잃은 양이 바로 앞에 나온 “이 작은 자중의 하나”인 겁니다. 그럼 이 잃은 양을 어떻게 찾을까요? 그 천사가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기 때문에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이 직접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잃은 양이 14절에는 다시 “이 작은 자중의 하나”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이 작은 자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잘 키워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키워내는 교회가 되자고 할 때 이 말은 다음세대와 기성세대를 나눠서 서로 경쟁하자는 게 아닙니다. 누가 더 소중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음세대가 없으면 교회는 미래가 없어집니다. 아무리 큰 교회도 이제 다 문 닫고 다른 용도로 팔리는 시대가 곧 올 겁니다. 유럽과 미국교회의 사례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곧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다음세대를 사랑하고 살려내는 교회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다음세대를 살려 미래를 열어가는 복된 교회가 되길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
2025-11-21
-
-
[다음세대칼럼]“만남은 사역의 시작이자 은혜의 통로입니다”
-
-
청소년 사역을 하다 보면 매달 백 명이 넘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그중 어떤 아이는 단 하루 스치듯 지나가고, 그중 어떤 아이는 몇 달 혹은 몇 년을 함께하며 마음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날 때, 우리가 전하지 못한 복음이 얼마나 무겁게 마음에 남는지 사역자는 모두 알고 있다. 최근 나는 그런 아픔을 겪었다. 열 달을 함께했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주었던 시간, 함께 밥을 먹으며 웃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 ‘내가 복음을 조금만 더 서둘렀더라면…’ 하는 자책이 길게 남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만나는 아이마다 복음을 미루지 말자.”
■ 청소년 사역은 ‘수많은 만남’ 위에 세워진다. 아이들은 사역자의 마음을 흔든다. 어떤 날은 기쁨으로, 어떤 날은 걱정과 속상함으로, 어떤 날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감사로 마음이 가득해진다. 만남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그 아이의 삶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때로는 그 아이의 ‘가장 힘든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이 사역자일 때도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성경 속 모세의 인생이 문득 청소년 사역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모세의 삶도 만남의 연속이었다. 믿음의 부모와의 만남, 애굽 공주와의 만남, 동족과의 갈등이라는 만남, 광야에서 십보라를 만난 사건까지 모든 만남이 그의 인생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모세의 인생은 ‘사명’이라는 방향을 갖게 된다. 광야에서 보낸 40년은 허무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빚어가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 사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하나님과의 만남’ 우리는 청소년 사역을 하며 아이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종종 맞닥뜨린다. 얼마 전 밤 11시에 한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며칠 동안 꿈에서 목사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어요. 하나님… 정말 계신 것 같아요.” 또 다른 아이는 제주 한길학교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진로, 새로운 꿈,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두 해 만에 교회에 다시 찾아왔다. 이 아이들의 고백은 사역자의 피곤을 단번에 녹여내는 은혜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이미 그 아이들을 향해 일하고 있었다.”
■ 아이들과의 모든 만남은 ‘하나님의 퍼즐 조각’이다 청소년 사역이 어렵게 느껴질 때, 나는 다시 이 사실을 붙든다. “우연한 만남은 없다. 사역자에게 주어진 모든 만남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다.” 어떤 만남은 우리를 웃게 하고, 어떤 만남은 마음의 짐처럼 느껴지고, 어떤 만남은 오랫동안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조각이 아이 한 명을 세우고, 사역자를 빚고,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새로운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나는 묵상처럼 이 기도를 드린다. “주님, 이 아이의 인생을 준비하신 당신의 이유를 보게 하소서.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사역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아이들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빚어가고 계신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모든 청소년 사역자와 교회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지혜가 함께하길 바란다.
-
2025-11-21
-
-
[다음세대칼럼]스마트폰 중독에서 청소년을 자유하게 하자
-
-
청소년 집회와 일반 초중고 강의를 가면 무려 스마트폰 중독이 무려 97%가 넘는다. 충격이다. 3% 중독이 아니고 스마트폰 관리를 잘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대안학교를 다녔다. 쉽게 말해 학교규칙과 학교에서 부모에게 요구한 규칙으로 같이 지도해서 폰 중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사의 자녀마저도 대략 90%는 중독이었다.
스마트폰은 연령이 낮아질수록 더 높은 중독 경향성과 더 심한 피해를 준다. 뇌가 덜 성장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청소년은 두개골이 얇고, 뇌 조직의 전기적 성질이 달라 동일한 기기 사용 시 흡수되는 RF 에너지(SAR)가 성인보다 크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력이 더 자라야 할 때 유혹에 노출되어 노예가 되고 만다.
1) 스마트폰의 피해 중에 전자파의 피해를 대부분 모르고 있다. 스마트폰은 주로 수백 MHz ~ 수 GHz 대역의 무선전파(랜·셀룰러 신호: RF-EMF)를 발생한다.
2) 스마트폰 지도에 다음 여섯 가지는 꼭 지키자.
첫째, 청소년이 전자파로 인한 피해를 충분히 이해하여 그에 맞은 협의를 하여 스마트폰의 사용 규칙을 정하자. ① 통화 시 스피커폰/이어폰(유선) 사용으로 귀와 휴대폰 머리 간 거리 늘리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노출이 감소한다. ② 통화 시간과 사용 시간을 줄이기 — 개인pc로 유튜브, 게임, 강의 듣기를 하게 하자. ③ 밤에 기기를 침대에서 멀리 두기- 수면 질 개선 및 불필요한 상시 송수신(백그라운드) 노출을 감소한다. ④ 어린 자녀에게는 스마트폰을 아예 주지 않거나 사용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여야 발달·수면. 중독 문제를 예방한다. ⑤ 기기 보관 방법을: 몸에 붙여 보관(특히 허리·가슴 주머니)하는 것을 피하자. 몸에서 사용하지 않을 때 2m 이상 두자. 이런 권고는 전자파 차단하는 조치도 되지만 노출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WHO와 여러 공중보건기관도 권고하는 내용이다.
둘째, 부모와 교회 지도자도 스마폰 바른 사용을 실천하면서 해야 한다.
셋째, 스마트폰의 중독의 3요소를 잘 이해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도해야 한다.
① 조절실패이다. 스마트폰을 없이 생활하는 것이 안 되는 것이다. ② 현저성이다. 개인 삶에서 폰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집착과 관심이 두드러지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③ 문제적 결과이다. 지나친 폰 사용이나 잘못된 폰 사용으로 인해 신체, 심리, 경제, 대인 관계, 사회, 영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는데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넷째, 부모와 학교 교사 그리고, 교회와 나라가 같이 동참하고 협력해야 한다. 부모 혼자 잘 지도해도 실패하는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다섯째, 청소년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제거하거나 해결하는 능력을 높여야 한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스마트폰 중독과 다른 모든 중독의 원인 전체에 무려 70%이다. 청소년이 불안하지 않는 환경이 되고 실컷 놀고 다양한 체험을 하며 자란다면 스마트폰 중독과 다른 모든 중독에서 자유한다. 지금까지 청소년 상담만 거의 4,000명 정도 진행한 나의 사례에서 청소년 우울증, 청소년 ADHD, 청소년 품행장애, 자기조절력 결핍, 분노조절장애, 학교 부적응, 대인관계 문제에 스마트폰 중독이 없는 청소년은 한 명도 없었다.
여섯째, 스마트폰 중독해결과 예방은 청소년에게 예배 회복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교회가 알고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중독해결이 되지 않고서는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안 된다. 스마트폰 중독 청소년이 설교를 이해하고 듣는 능력이 무려 10%만 알아들었다. 내가 집회와 설교를 하면서 직접 조사한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
2025-10-24
-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아이들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
-
다음세대 교육을 할 때 우리가 부딪히는 많은 부분이 감정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다 다른데, 이 감정들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떤 아이는 기분이 계속 좋아요. 그런데 어떤 아이는 기분이 훅 나빠져요. 왜 그럴까요? 아이들마다 그 부분이 건드려지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그 아이만의 히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아이들은 다 괜찮은데 나만 감정이 상하고 힘들다면, 우리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감정의 이름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우리가 만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단순히 아이들이 말하는 “개 짜증”, “기분 나빠.”가 아니라 그 일이 왜 나에게 기분 나쁘게 다가왔는지를 파악하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려고 합니다.
첫 번째, ‘불안’입니다. “불안하네. 이거 잘 될까? 불안해!” 이 ‘불안’은 사실 뭐냐 하면 우리 삶의 거품을 제거해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싶으면 뭘 해야 하냐면 “이 불안은 왜 찾아오는 걸까?” 돌아봐야 합니다. 흔들리고 불안하다면 이건 정말 필요한 것 이외의 것들을 제거하라는 사인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나, 내 속에 있는 진짜 나를 붙잡고 껍데기를 버리게 하는 과정이 바로 불안인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건드려질까 봐 불안한 거죠. 그렇다면 내가 그것만을 남겨놓고 나머지를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불안한 순간에 우리는 정말 중요한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두려움’입니다. “나 저거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은 뭐냐 하면 사실 우리 용기의 출발점이 됩니다. 두려움이란, 내가 이걸 넘어서서라도 꼭 얻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대학 입학을 놓고 두려워하는 우리 학생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 대학을 가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내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게 없다면 두려움도 없겠지요. 두려움이란 나의 목표를 알려주는 감정입니다.
세 번째, ‘질투’입니다. “질투는 나쁜 거 아니야?” 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아니요. 질투는 나의 욕망을 보여주는 감정입니다. 누가 사랑받는데 보니까 질투가 난다. 내 안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에이!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이렇게 넘어가려고 해요. 그런데 알고 보면 내 안에 그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단 말이죠. 그동안 숨겨왔던 것. 그동안 거부했던 것. “아니에요. 난 안 그래요! 안 그래요!” 했었는데 진짜 내가 누구인지, 진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장치가 뭐냐? 그게 질투라고 하는 거예요.
네 번째, ‘외로움’입니다.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연결에 대한 갈망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 괜찮아! 괜찮아! 나 안 만나도 괜찮아! 나 괜찮아! 나중에 봐!”라고 하지만 괜찮지 않거든요. 여러분은 늘 괜찮으세요? 아니요. 우리 모두 괜찮지 않아요. 외로움이라는 이 감정은 연결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일깨워주는 감정입니다.
다섯 번째, ‘실망’입니다. 실망은 나쁜 감정이 아닙니다. 실망은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에요. 내가 그 사람에게, 그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입니다. 많이 기대한 만큼 실망하니까요. 추락하는 것은 항상 날개가 있는 것이잖아요. 나한테 별로 관심 없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까 내가 되게 실망했어요. 그 때, 나는 “내가 기대했었구나. 내가 그걸 원했었고, 내가 바라고 있었구나. 내가 그것을 진짜 원했네!”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여섯 번째, ‘초조함’입니다. 초조해요. 손이 떨려요. 초조함은 더 나은 나를 향한 채찍질입니다.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떨지도 않아요. 정말 잘하고 싶으니까 초조한 거예요. 떨리는 거예요.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초조할 일도 없는 거에요. 면접 보기 전에 왜 초조해요? 대학 입시 보기 전에 왜 초조해요? 잘하고 싶으니까요. 그래요. 이 초조함이라는 감정은 잘 하고 싶어서 생기는 참으로 소중한 감정인 겁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분노’입니다. 분노는 나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감정입니다. 내안에 분노가 일어났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화가 났다는 건 적어도 내가 그 사람에게 진심이었다는 거예요. 진심이 아니면 화가 날 일도 없어요. “그놈의 인생! 그렇게 살라고 해!” 지나가 버리면 화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왜 분노하는가? 정말 사랑했으니까! 정말 진심이었으니까! 적어도 그 사람에게 난 뜨거웠으니까! 그 마음이 짓밟히고, 그 마음이 무시당할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 또한 우리 아이들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줄 때 우리는 이 감정을 통해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감정을 바르게 읽어내고 이를 바르게 이끌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2025-10-24
-
-
[다음세대칼럼]씨앗이 자라듯, 다음세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
-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다음 세대의 신앙 계승이다. 교회의 미래는 자라나는 세대 안에서 어떻게 신앙의 씨앗이 뿌려지고, 또 어떤 열매로 맺히는가에 달려 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두 가지 비유, 곧 네 가지 밭의 비유와 씨가 자라는 비유는 다음 세대 사역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말씀 전파가 하나님 나라의 핵심
첫 번째 공통점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 말씀 전파라는 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막 4:26)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땅”은 세상을 가리킨다. 오늘의 다음세대 역시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스마트폰과 미디어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는 경험이다. 교회와 가정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때, 그 씨앗은 반드시 생명력으로 싹트게 될 것이다.
시간 속에서 자라나는 신앙
두 번째 공통점은 하나님 나라가 시간을 두고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자라되”(막 4:27)라고 말한다. 신앙은 단번에 성숙하지 않다. 아브라함이 25년 만에 약속의 아들을 얻은 것처럼, 모세가 80세에 비로소 사명을 감당한 것처럼, 신앙은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늘 “빨리빨리” 문화 속에 조급하다. 교회 안에서도 청소년들이 곧바로 믿음의 거목이 되기를 바라며 서두르곤 한다. 하지만 씨앗이 자라듯, 신앙도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와 교회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청소년들이 실패하고 넘어지는 과정조차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음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와 열매
세 번째 공통점은 신앙의 열매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점이다. 농부는 씨를 뿌리지만, 씨가 자라는 과정은 이해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막 4:28)라는 말씀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임을 강조한다.
다음세대를 향한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열심, 교사의 수고, 교회의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열매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씨앗을 충실히 뿌리고, 성령께서 자라나게 하심을 믿으며 맡기는 것이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열매를 거두신다.
다음세대를 향한 교회의 과제
이 비유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의 본질은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말씀을 뿌리는 일이다. 또한, 그 말씀이 뿌리내리고 자라도록 인내하며 기다리는 공동체의 사랑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교회는 충실히 말씀을 전하는 농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오늘 교회는 위기를 말한다.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간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대든,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금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정과 교회가 힘을 합쳐 다음세대의 마음 밭에 말씀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로 거두실 것이다.
씨앗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 뿌려진 작은 말씀의 씨앗이 우리 다음세대의 가슴 속에서 싹트고 자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교회와 부모, 교사와 성도 모두가 말씀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다음세대를 품을 때, 한국 교회의 미래는 희망으로 채워질 것이다.
“씨가 자라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다.” 이 고백이 다음세대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
2025-09-26
-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 교육의 핵심, 5C를 아십니까?
-
-
많은 교회가 다음세대로 신앙전승이 잘 이루어질지에 대해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 관심을 가지고 대안 마련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성민교회로도 많은 연락이 옵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미봉책으로 교회학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리더들이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을 이해하고 다음세대를 만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교육학자 하워드 핸드릭스는 그의 저서 '가르치는 것 이상의 가르침(Teaching to Change Lives)'에서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5가지 원칙을 5C로 강조했습니다. 이는 확신(Conviction), 교통(Communication), 대면(Confrontation), 책임(Commitment), 자신감(Confidence)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이 원칙들은 교회 교육에 그대로 적용되는 핵심 개념들입니다.
1. 확신 (Conviction)
확신은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됩니다. 확신을 가진 교사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내용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교회교육은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 실존적인 하나님을 경험한 교사들이 확신 가운데 ‘나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할 때 비로소 생명력과 운동력이 있는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2. 교통 (Communication)
교통은 교사가 학생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학생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핸드릭스는 교통이 '다리'와 같아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신뢰를 쌓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교통은 학생의 필요와 질문에 귀 기울이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질문을 던지시고 그 질문에 다시 질문을 이어가시는 방법으로 제자들과 문답식 교육을 하셨습니다. 교회교육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나눔입니다.
3. 대면 (Confrontation)
대면은 학생이 자신의 삶에 배운 내용을 적용하도록 도전하고 격려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학생의 태도, 행동, 가치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을 너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학생 스스로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핸드릭스는 이 대면을 통해 학생의 성장이 진정으로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믿음이란 내 삶에 다가오는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맞서는 영적 훈련입니다. 죄의 고리를 끊고 신실한 삶을 살겠다는 분명한 다짐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4. 책임 (Commitment)
책임은 학생이 배운 내용을 삶에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학습을 넘어, 배우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겠다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이러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과정을 함께 지지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책임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 삶의 변화를 이루는 데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맡은 바 자리를 지켜내는 책임이 중요합니다. 주신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책임 있는 모습이 주님을 신뢰하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5. 자신감 (Confidence)
자신감은 교사가 학생에게 배우는 내용과 그들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핸드릭스는 교사의 역할이 학생들에게 '너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그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신뢰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학생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새로운 도전에 맞서고, 성장하며, 결국에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이 5C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핸드릭스는 강조했습니다. 그는 교육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가 아니라,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심오한 과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5C를 바탕으로 우리의 교회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입체적인 복음의 진수가 전해지는 교육이 이루어지길 소망해 봅니다.
-
2025-09-26
-
-
[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엄마가 너희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게!”
-
-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초등학교 4학년 딸이 학교에 갔다 와서는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내 친구가 그 일 때문에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벌도 섰대. 진짜 슬펐을 것 같아. 내 친구 너무 불쌍해. 그 엄마 너무 했어.”
“친구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니 은별이 친구도 이런저런 부분에서는 잘못한 것 같은데, 그 엄마도 딸이 그렇게 행동해서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의견도 말하려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이미 100%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않은 나를 향해 불신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도 “그냥 잠잠히 듣기만 할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부분적 공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깨달은 나의 한계 중 하나는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100%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상대가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내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가족은 내게 ‘온전한 공감’ 받기를 원하며 감정을 쏟아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온전히 공감해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부분적 공감’만 하며 대화의 종착지로 가면 갈수록 내 이야기만 하는 어리석음을 수없이 많이 저지른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공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기에 공감하는 척, 마음을 이해하는 척, 100% 경청하는 척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내 것을 아이들에게 주입’ 시켜야한다는 속셈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람의 내면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정서적 지지’이다.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정서를 100% 공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특히 내면이 막 자라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엄마, 아빠로부터 받는 절대적 공감과 수용이 인생을 건강하게 펼쳐갈 평생의 거름이 된다.
그런데, 난 사실 공감과 수용이 쉽지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말처럼 그들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주고 싶은데, 실제 삶 속에서는 나의 정서를 읽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아이들의 마음을 100%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오늘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아이가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 반응하기. 물론 쉽지 않았다.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쉴 새 없이 빼다 끼다를 반복했으며 두부 한 모를 온전히 다 써는데 20분이 걸리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절충점을 찾아 처음보다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는 일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또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루 1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이 많아서 엄마와의 둘만의 대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 보는 것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어서 아이들의 온전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존재,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 편이라는 정체성을 내가 먼저 인식하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가치를 마음 속에 담고 노력할 때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달되리라 기대한다.
-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5-09-05
-
-
[다음세대칼럼]연애하면 안 되는 때는?
-
-
옷을 입을 때 속옷을 먼저 입고 겉옷을 나중에 입는다. 연애와 결혼은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마치 속옷을 입었을 때 겉옷을 입는 것과 같다.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먼저가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숙이다. 기본적인 것이 안 되는데 더 어려운 것을 하면 더 불행해진다.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혼자서도 성숙하고 행복할 때 연애나 결혼하라는 말이다.
자기도 사랑하지 않고 남을 먼저 생각할 성숙 없이 하는 연애와 결혼은 결국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마치 겉옷을 먼저 입고 속옷을 나중에 입은 황당한 일이 된다.
연애 될 수 있으면 다음 3가지 경우에는 하지 말자.
1. 혼자 있는 것이 힘들 때는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마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외로움을 못 견디다 연애하면 지나치게 상대를 의존하면서 불행해진다. 돕는 연애가 아니라 바라는 연애가 되면서 목마름이 훨씬 심하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되지 않거나 성적 욕구가 절제가 안 된다. 그래서, 상대를 수단으로 여기어 갈등이 증폭된다. 자기만의 필요에 집중하고 상대의 필요는 채워주지를 못한다. 결국 혼자 있을 행복하지 않고 자기관리가 힘든 사람은 연애하면 처음 잠깐은 좋지만 연애가 더 외롭고 힘들어진다. 연애와 결혼은 혼자 잘 지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완벽하진 않아도 대체로 행복할 때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하나님의 나라로 풍성하고 자유로워진다.
2. 가족과 교회, 선교단체 중에 한 곳이라도 잘 지내지 못하면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마라.
연애와 결혼은 공동체를 이루는 능력이 있어야 잘하게 된다. 소위 연애 세포, 사랑 세포는 공동체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연애로 연애를 배우지 못한다. 따라서 자기 가정이나 교회, 선교단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면 연애와 결혼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힘들다. 최소 한 개, 권장은 두 가지나 세 가지 공동체에 잘 소속할 때 연애나 결혼을 하자. 마치 집에서 고기 못 먹는 사람이 외식으로 다른 식당에 가도 고기는 못 먹는 것과 같다. 최소한 자기 가정이 너무 좋아서 잘 살아야 한다. 아니면 자기 가정이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와 형제들을 잘 이해하고 살아야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한다. 가정이 어려움이 커서 적응이 힘들다면 교회에서라도 몇 년 이상 잘 적응해야 연애와 결혼을 잘할 준비가 되었다. 물론 가정에서도 잘 지내고 교회에서도, 선교단체에서도 잘 지내면 최고로 좋다. 아울러 자신도 그러한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은 안 되면서 상대는 좋은 사람을 기대하는 것은 망상이다. 실현되지도 않는다.
3. 발전과 성숙이 없는 삶을 살 때는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마라.
자신의 발전과 성숙은 연애나 결혼을 이루어 가는 중요한 힘과 지혜를 준다. 연애와 결혼하기 전에 자신도 물론, 만나는 상대도 발전하고 성숙한 사람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본인은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상대의 공동체 생활정도를 잘 확인하고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한다. 느낌이나 필이 꽂혀서, 그냥 호감과 편안함을 주어서, 그냥 그가 나를 많이 좋아해 주어서 연애하거나 결혼하면 안 된다. 느낌과 필은 미숙하거나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특히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발전적인 삶을 사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이웃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가? 이렇게 본인도 성숙도를 확인해야 한다.
※ 정리하면, 연애와 결혼 이럴 땐 하지 마라
1. 혼자 있는 것이 힘들 때는 연애와 결혼, 하지 마라.
2. 가족과 교회, 선교단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잘 지내지 못할 때는 연애와 결혼, 하지 마라.
3. 발전과 성숙이 없는 삶을 살 때는 연애와 결혼하지 마라.
이러다 보니 제가 마치 연애와 결혼을 막는 것 같다. 아니다. 그 반대이다. 연애와 결혼을 더 사모하고 더 잘하게 하기 위함이다. 부디 연애와 결혼은 너무 중요하니 성급하고 함부로 하지 말자. 혼자서도 풍성하고 행복하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자. 연애와 결혼을 하면 행복할 사람이 사정이 있어 혼자 살아야 비로써 행복하다. 그러나 자신이 부족하고 사람을 싫어하고 게으르고 자녀 양육이 그냥 버거워 혼자 살고 싶은 것이라면 혼자 살아도 불행하다. 잠깐의 기간에 혼자 있는 것이 힘들고 외롭다고 너무 급하게 연애와 결혼을 하면 더 외롭고 힘들다.
-
2025-09-05
-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새 학기를 맞이하는 다음세대들에게
-
-
얘들아, 안녕? 무더웠던 2025년 여름방학이 드디어 끝나고, 벌써 9월이 되었네. 오랜만에 학교 갈 생각 하니 설레기도 하고, 아마 개학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 거야. 이 마음은 너희들에겐 아빠뻘인 목사님도 잘 알아. 나도 학창 시절에 여름방학이 끝나면 그렇게 아쉽고, 다시 빡빡한 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게 좀 부담스럽기도 했거든. 그래도 지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에서 큰 은혜 받은 너희들에게는 이번 2학기가 정말 중요한 시간이야. 그날 밤 눈물로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결단했던 믿음의 다짐을 실천할 좋은 기회가 생긴 거니까.
얘들아, 우리가 이제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딱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기억하면 좋겠어. 그건 바로 공부와 친구 관계, 숙제와 시험, 이 모든 학교생활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거야.
성경 말씀 열왕기상 4장 29-30절에 보면 다윗왕의 아들이었던 솔로몬이라는 왕 이야기가 나와. 솔로몬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그래, 맞아. 지혜의 왕.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많이 주셨는데, 얼마나 많이 주셨냐면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라고 했어. 바닷가에 가서 모래를 세어본 사람? 아무도 없지? 그만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지혜를 주셨다는 거야. 그리고 그 지혜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고 했어. 당시는 애굽이 전 세계의 수학과 과학을 이끌어가던 때였어.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MIT나 하버드, 옥스포드 같은 전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보다 솔로몬이 훨씬 더 똑똑했다는 뜻이야.
그런데 말이야, 솔로몬은 이 지혜를 어떻게 얻었을까? 자기가 노력을 많이 해서 얻었을까? 과외를 하고 학원을 가서 남몰래 비결을 배웠을까? 아니었어.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어. 그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물으셨지. 솔로몬은 돈이나 명예, 적을 이길 힘을 구한 게 아니라, 오직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어.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싶어서 지혜를 구한 거야.
얘들아, 학교생활도 똑같아. 우리는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보고, 좋은 성적 받기 위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잖아.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솔로몬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우리가 교횡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고 기도해보는 건 어떨까?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초등학생 친구들아, 하나님이 주신 넓은 마음으로 반 친구들을 아끼고 사랑해주렴. 혹시 혼자 있는 친구가 보이면 먼저 다가가서 손잡아 주고, 솔로몬의 지혜처럼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고 넓은 마음으로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거야.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학교에서 보여줘야 할 모습이야. 목사님은 너희들의 학교생활을 기대하며 기도할게.
그리고 중고등학생 친구들아, 이제 공부의 압박이 더 심해질 거야.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친구 관계도 복잡해질 수 있지. 그럴 때마다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보렴.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지혜를 구하는 거야. 공부는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야. 너희의 노력이 쌓여서 멋진 미래를 만들어줄 거야. 너희의 미래는 분명 멋지고 행복할 거란다.
또한 대학생 친구들, 이제 너희는 캠퍼스의 주인이자, 또 다른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될 거야. 아마 수많은 가치관과 유혹이 밀려올 거야. 이 속에서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를 너희도 구해야 해. 대학 졸업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그곳에 보내신 이유를 발견해야 해. 동아리, 학과 활동, 아르바이트 모든 것이 하나님이 너희를 통해 일하시길 원하시는 사역의 현장이야. 너희의 지혜로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보렴. 아마 너희의 지금의 수고는 미래의 멋진 신앙인이 되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거란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돼. 우리 모두 바닷가의 모래처럼 넓고 깊은 마음, 그리고 지혜를 구하자. 공부와 친구 관계, 모든 학교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너희를 통해 일하실 거야. 솔로몬의 지혜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멋지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다음 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새 학기 파이팅!
-
2025-09-05
-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몸으로 경험하며 가슴으로 느끼는 교육을 꿈꾸며⋯
-
-
<땀을 뻘뻘 흘리고 산을 오른 후 시원한 물 한 잔 벌컥벌컥 마시기, 해가 질 무렵 모래를 밟으며 시원한 바닷가의 공기 느끼기,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엄마를 발견한 후 와락 안기기, 보조바퀴를 뗀 후 신나게 두 발 자전거로 달리기>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육아 프로그램들을 보면 두 가지를 느낀다. 하나는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구나!’이고, 또 하나는 ‘사람을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할텐데…’라는 생각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화려하게 세팅된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닷가 모래를 만질 때 느껴지는 오묘한 촉감과 약간의 지저분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이가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부모가 알아서 제공하면 아이는 무엇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까? 세상은 물질만 있으며 뭐든지 다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줄기차게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 인간되는 가장 기본적인, 예를 들어 사랑, 자존감, 배려, 충만과 같은 마음의 자양분들은 물질 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그 다른 요소 중 하나는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경험이다.
9년 전인 2016년에 1년 동안 제주도에 살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100일 정도 될 무렵이었다(막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외출이 가능한 한 달 후부터 여기저기 함께 다녔다). 그 때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기’였다. 내가 본 제주도는 발을 딛는 모든 곳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환상적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고, 또 차를 타고 10분 정도 더 가면 저기 오름직한 동산이 반기고 있었다. 절물자연휴양림같은 곳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 매일 다른 매력을 뿜어내기에 언제든 가도 새로웠다.
집 안에서 장난감을 갖고는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노는 것을 지겨워하는 아이들이 밖에 풀어 놓으면 한 두시간은 물론이고 한 나절 내도록 놀고 또 노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밖’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밖에 나갔을 때 마음껏 상상하며 어디든 뛸 수 있는 자연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싸한 자연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최적의 교육 장소이다.
최근에 오랜만에 바닷가를 찾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을 보며 “오랜만에 아이들과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자”며 온 가족이 갑자기 바다로 간 것이다. 바닷가에 도착 후 처음에는 그 주변을 산책했다. 새롭게 꾸민 구름다리(?) 같은 것도 건너고, 돌도 몇 개 주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래 위를 걷고 싶다고 해 양말을 벗고 본격적으로 바다 곁에서 맴도는 순간 아이들의 숨은 의도가 드러났다.
“엄마, 바닷물에 발만 살짝 담그면 안될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닷가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은 그 순간 이미 아이들이 바닷물에서 놀고 있으며 결국 옷이 다 젖을 것을 경험적으로 예상해야 한다.
‘그래, 너희들이 여기까지 왔으면서 어찌 그 말이 나오지 않나 싶었다’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아직 날이 추우니 10분 정도, 발만 담그자”라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받아내고 아이들을 물로 보냈다.
“오빠, 진짜 시원하지. 우리 안으로 더 들어가자”부터 시작해 “우리 물이 오면 4명이 동시에 뛰는 거 하자”까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난치고 웃고 떠들며 달이 저 멀리 보이지 않을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그렇게 놀았다.
“엄마,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매일 밖에 나가서 놀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한결같이 밖에서 또 놀고 싶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그 날 아이들의 일기장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또 가고 싶다” “바다가 너무 좋다” 등 기분 좋은 단어들로 가득 차있었다.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밖에서 놀기’. 나는 앞으로도 상황이 되는 한 이 교육 방법을 추구하며 몸으로 경험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