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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칼럼] ‘영향력을 회복하라’
    우리는 영향력이란 단어를 힘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높은 곳에 있고, 우러러보는 곳에 있어야만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I는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편이 아니었다. I의 장래희망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그런 아이였다. 1학년 입학해서 진로상담을 하면서 “목사님 나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대학원에 갈려고 합니다. 꼭 좋은 대학에 가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부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었다. 장로의 아들이고, 성실하고 반듯한 녀석인지라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성실했다. 자습도 빠지지 않고, 수업 시간에 졸지도 않고, 정말 성실하게 공부를 했다. 1년의 시간이 지나고 2학년 5월에 I가 나를 다시 찾았다. 낙심한 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목사님, 속이 상합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목사님은 아시잖아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놀지도 않고 공부했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는데 저는 성적이 안 오릅니다. 공부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데...다른 친구들이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너처럼 하면 하버드간다’고 할 만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항상 4등급입니다. 속도 상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목사님 너무 힘듭니다.” 그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I의 몸부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I야, 네 맘 충분히 알 것 같다. 얼마나 속이 상하겠니.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자. 만약에 네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와서 성적도 1등급 나오고, 네가 가고 싶어 하는 SKY나 H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가서 목사가 되었을 때, 훗날 네가 나 다른 것 할 수 있었는데 목사가 되었어 하며 교만해질 수도 있을 가능성을 하나님이 미리 막아 주셨다고 생각하자. 네 생각대로 노력해도 안되었지만, 하나님이 너에게 최선의 것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고 생각을 하자.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지켜보자. 또 네 성적이 4등급이라 하더라도 너는 여전히 지금처럼 그렇게 공부하면 좋겠다.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 같다.” 그 후로도 I는 이전과 똑같이 공부했다. 박수를 쳐줄 만큼 성실하게 공부했다. 이 정도가 되면 성적이 올랐다가 되어야 ‘하나님이 일하셨다. 믿음의 사람이 잘되었다’ 할 수 있을텐데 I는 여전히 4등급이었다. 나는 안타까웠고 부모님들은 실망하셨다. 하지만 3년의 시간 속에 얻은 것도 많았다. 친구들에게 신뢰를 얻은 것이다.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금 I는 기독교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제 신학대학원을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영향력은 이런 것이다. 앞서 있고, 보여줄 것이 있어야만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본,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것들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늘 이것을 강조한다. 다르게 살아라. 변두리로 가라. 손해봐라. 그리스도인의 대헌장이라고 하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다. 소금과 빛이 의미하는 것은 같다. 세상 속에 스며들어서, 그리고 세상 속에 드러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영향력은 복음적인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향력의 의미 안에서 넓은 의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명령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세상에 웃음을 주는 존재들로 키우고 싶다. 그리고 우리 학교 안에 있는 기독학생들이 기독학생의 선한 영향력을 회복해서 교실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 가운데 주변을 밝게 만드는 등대같은 존재들로 세우고 싶다. 어려운 시간 가운데 성탄이 또 다가온다. 다가오는 성탄에 세상을 밝히는 제자들이 하나 둘씩 더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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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8
  • [신앙교육나침반] 온 가족 성탄 놀이, 이렇게 해보세요
    거센 파도를 마주하지 않고는 풍랑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이므로 죄와 함께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가운데 고통 받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로 몸소 오셨습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죄 가운데 고통 받는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혹시 우리의 자녀들이 성탄절을 흥미로운 축제 정도로만 여기고 있지 않을까요? 성탄 절기에 온 가족이 마주앉아, 죄인인 우리와 함께하러 오신 예수님, 우리에게 생명 주러 오신 예수님, 우리를 자녀삼아주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 열매 맺게 하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이 기쁜 소식을 감사로 받는 성탄절 되기를 소망합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레인보우 스카프(옷, 양말 등)를 이용하여 온 가족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놀이로 경험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각각의 스카프에 담긴 색깔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연결하여 온가족 성탄 놀이를 즐겁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 스카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 주황색 스카프(노란색과 주황색이 혼합된 색깔)는 ‘우리와 함께하러 오신 예수님’, 노란색 스카프는 ‘자녀 삼아주신 예수님’, 초록색 스카프는 ‘영원한 생명 주러 오신 예수님’, 파란색과 남색 스카프(바다와 하늘을 떠오르게 하는 색깔)는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보라색 스카프(포도열매를 떠오르게 하는 색깔)는 ‘열매 맺게 하신 예수님’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쁜소식 스카프 찬양(*향기나무 유튜브 채널 참고)을 부르면서 색깔과 복음의 기쁜소식 내용을 연결합니다. 이제 스카프를 던지며 “감사!”로 외치며 받기 놀이를 해봅니다. 스카프를 던져 혼자 받기 후 두 사람이 주고받기, 세 명이 릴레이로 진행하면서 기쁜소식 스카프를 감사로 받아봅니다. 또한 기쁜소식 스카프를 허리에 달아 꼬리를 만든 후, 상대편의 기쁜소식 꼬리를 잡는 놀이를 진행합니다. 이때 기쁜소식 스카프의 색깔이 상징하는 주제어를 외쳐야 스카프를 가질 수 있습니다(빨간색: 십자가, 주황색: 함께, 노란색: 자녀, 초록색: 생명, 파랑남색: 하나님, 보라색: 열매). 가정에 있는 다양한 색깔의 옷이나 스카프, 양말 등을 이용해서 이와 같이 기쁜소식 놀이를 진행해보세요. 기쁜소식을 감사로 받고 잡는 놀이를 하면서 온 가족 얼굴에 어느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사의 기쁨의 미소가 가득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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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8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삐에로를 따라가 목사가 된 꼬마
    오래 전 일입니다. 한 아동부 전도사님이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노방전도를 계획하여 부서 교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중 한 사람이 삐에로 복장을 하고 큰 북을 메고 둥둥 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초청하면 온 동네 애들이 좋아하면서 다들 따라올 거라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한 여름이라 무척 덥기도 하고 삐에로 복장이 좀 우스꽝스러워서 누구도 쉽게 나서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 교사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자원을 하고 나섰습니다. 드디어 이 청년교사가 삐에로 복장을 하고 북을 치며 나갔습니다. “오세요, 오세요. 여름성경학교 오세요!” 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온 동네에 아이들이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몰려오기는커녕 다 도망가고 멀리서 숨어서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를 보고 웃는 것 같고 날은 더워 땀은 뻘뻘 나는데 같이 나간 교사들마저도 창피하다며 다른 길로 빙 돌아가는 걸 보고는 이 교사가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가까스로 동네 한 바퀴를 다 돌고 교회에 도착하자 이 청년교사는 북을 내던지고 삐에로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다짐을 합니다. “내가 다신 이런 전도 하나 보자. 전도사님이 하자고 하는 거 절대 안 해. 봐, 아무도 안 오잖아.” 그런데 그때, 교회 예배실 문을 빼꼼히 열며 한 꼬마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와, 삐에로가 옷을 벗으니 그냥 못생긴 아저씨다.” 그럽니다. “나 아저씨 아냐. 형아야, 형아.” 청년 교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여전히 말했습니다. “자기는 형아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냥 아저씨다.” “근데 너 처음 보는 아인데 어느 부서야?” “부서가 뭔데요?” “부서도 몰라? 너 우리 교회 애 아냐?” 그랬더니 “교회가 뭔데요?”라고 어리둥절합니다. “너 교회 처음 온 거야? 그럼 여기 어떻게 왔어?” “아저씨가 오라면서요. 둥둥 여름이 어쩌고 저쩌고 오세요, 오세요. 했잖아요.” “너 정말 나를 따라 온 거야?” “그럼요. 진짜 이상한 아저씨네. 자기가 오래 놓고.” 청년교사는 이 아이를 한참 물끄러미 보더니 말없이 아이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감사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아무도 없다고 아무도 안 올 거라고 불평만 했는데 하나님이 이 어린 생명을 보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를 여름성경학교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1학년 삭개오 반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성경학교를 개근했습니다. 그리고는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중등부 총무가 됐습니다. 고등부에는 고등부 회장이 되더니 고3이 돼서 신학을 하기로 마음먹고 장신대 신학과를 갔습니다. 그리고는 장신대 신대원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전도사님이 되어서 사역을 하다가 목사 안수를 받고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은 부산의 성민교회 담임목사가 되어서 큰 사랑을 받으며 다음세대를 살리는 목회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렇게 잘 알까요? 예,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꼬마입니다. 이때 처음 나간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예수님을 만나 천국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가 되어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삐에로 선생님이 참 고맙습니다. 그 선생님 덕분에 교회를 가서 하나님을 만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세대와 교사들에게 사랑의 빚을 안고 분홍목사가 되었습니다. 분홍목사란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분, 그 분을 전하는 홍목사”의 준말입니다. 이제부터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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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1-12-03
  • [다음세대칼럼] 진리가 무엇인가?
    Y대에 면접을 앞둔 O가 면접 지도를 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O가 준비한 예상 질문으로 3~4시간 도움을 주었다. 이틀 뒤, 면접을 마친 O가 서울에서 전화를 했다. “목사님, 면접 대박입니다. 진짜 대박입니다!” “와 그라노? 준비한 것이 나왔더나?” “아뇨. 하나도 안 나왔습니다. 내가 준비한 것도 안 나오고, 목사님이 예상한 것도 안 나왔습니다.” “시끼야, 그런데 어떻게 면접을 잘 봤단 말이고?” “어쨌든 잘 봤습니다. 그럼 내려가서 뵐게예. 내일 커피 한잔 사 주이소.” 그다음 날 부산대 앞 별다방에서 O와 만났다. “자세히 말해 봐라. 어떻게 된 거고?” “목사님, 면접관이 뜬금없이 ‘자네는 진리가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종교적인 답을 해야 합니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야 합니까?’하니까 면접관이 웃으시면서 ‘두 가지 다 해 봐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냥 제 생각을 이야기 했습니다. ‘먼저 종교적인 답은 기독교라고 배웠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만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돈 벌어서 남 주는 것이고,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더니 면접관이 웃으면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고 물으시기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면접관의 얼굴을 보는데 왠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면접만으로 합격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O는 자신이 장담한 대로 Y대에 합격했다. 면접관의 질문은 무척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진리가 무엇인가?’ 누구나 생각해 볼 만한, 또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우리 학교 강당 입구에는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들은 날마다 이곳을 오가며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무언가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아이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진리와 비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다르다. 수업 시간에는 진리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석해서 아이들과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할 상황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에 대해 가치를 두고 고민하도록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이다. 명절만 되면 먹을거리가 풍성해진다.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간식이 바로 강정이다. 강정은 부드러워 먹기도 좋고, 맛도 달콤하여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그런데 강정을 쪼개어 보면 그 속은 텅텅 비어 있다. 그래서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 없는 사람을 일컬을 때 ‘속 빈 강정 같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속 빈 강정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성형 신드롬, 외모 지상주의, 스펙 열풍 등 사회의 분위기가 온통 외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연약한 청소년들이 그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인절미 같은 존재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속이 텅 빈 강정 같은 인생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인절미처럼, 사회 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진리로 속을 꽉꽉 채워 이 시대를 바꾸는 프론티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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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3
  • [신앙교육나침반] 신앙명가를 세우기 위해 힘쓰는 향상교회 이야기
    오늘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향상교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향상교회(담임: 김석홍 목사)는 대형교회를 지양하고, 겸손히 교회 존재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벌써 두 번의 분립개척을 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흥덕 향상교회를, 2018년에는 드림 향상교회를 분립개척하였습니다. 향상교회는 지금도 계속해서 작은 교회를 꿈꾸며, 우리 안에 그 어떤 문턱과 장벽도 없기를 소망하며 달려가는 중입니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하나됨을 꿈꾸다!코로나 펜데믹 시대, 향상교회는 특별히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의 문턱과 장벽을 허무는 일에 열심을 내는 중입니다. 향상 교육비전 위원회는 그에 대한 해답으로 ‘세대통합 예배’를 첫걸음으로 보며, 이를 위해 1년 가까이 세대통합예배를 함께 공부하고 발제하며 뜨겁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간 신앙교류 단절을 회복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녀세대를 교육부서에 소속된 학생으로만 여겼던 우리의 지난 모습을 반성하며, 자녀세대 역시 향상교회 참 성도로 여기며 함께 영적 교제를 누리기를 꿈꾸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 메시지, 올 제네레이션스(One Message All Generations)과 패밀리타임(Family Time)“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말씀이 말씀 되게!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향상교회는 온 세대가 매주일 하나의 말씀을 담습니다. 영아부부터 청년부에 이르는 모든 부서의 말씀이 담임 목사님의 설교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러하기에 부모님들은 자녀들과 하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은혜 받은 것을 나눕니다. 매 주일 저녁이 되면 향상교회 가정은 패밀리타임을 가집니다. 이 시간에 부모들은 자녀와 마주하여 은혜 받은 것을 나누고, 마음을 나눕니다. 가족과의 나눔을 통해 받은 은혜는 몇 배로 커집니다. 자녀가 받은 은혜가 부모의 은혜가 되고, 부모가 받은 은혜가 자녀의 은혜가 되는 시간입니다. 그러한 은혜 나눔 속에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말씀으로 하나됨을 경험합니다. 또한 이 시간은 믿음이 연약하거나 없는 불신 가족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시간에 한 주간 감사한 일, 위로가 필요한 일, 힘든 일,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나누고 온 가족이 함께 서로를 축복하며 마무리합니다.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놀이터! 온 세대가 말씀으로 함께 놀다!2021년 여름, 향상교회 모든 가정이 우리집 성경놀이터(향기나무 교육개발원)에 참여하여 말씀으로 함께 마주하며 놀았습니다. 영아부터 청소년 자녀를 둔 모든 가정이 마주하여 놀며 "Godly Family"(경건한 가정)을 주제로 한 말씀에 함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자녀와 함께 말씀을 경험하고 은혜 받는 시간에 매우 감격스러워하며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그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수 있어 감사했습니다.”“가정에서 말씀과 활동으로 성경학교를 진행하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쉐마사역의 소중함도 또한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가족이 다같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머리로만 알았던 말씀의 내용을 직접 체험해보니 아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말씀이 주는 즐거움과 부모자녀간의 소통을 통한 대화의 확장의 시간에 감사합니다” 향상교회는 2022년도에는 유치부부터 초등부의 자녀를 둔 모든 가정이 한 달에 한번,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말씀 안에서 마주할 수 있도록 “열두 달 우리집 성경놀이터” 프로그램(향기나무 교육개발원)에 참여합니다. 향상교회는 이를 통하여 “아름다운 신앙 추억의 공유”, “가정의 회복”, “믿음의 성장”을 기대하며 꿈꿉니다. 교회와 가정 안에서 삼위 하나님의 하나 된 연합을 담아내려는 향상교회의 아름다운 꿈과 열정이 한국교회 곳곳에 계속 퍼져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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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3
  • [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 소소한 즐거움
    어제 오후,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급하게 마트에 갔는데 수육용 앞다리살 고기를 싸게 팔고 있었다. 고기 파시는 분께 “수육용이 엄청 싸네요? 지금 행사하는가 봐요”라고 물으니, “김장철이잖아요. 수육 많이 해먹으니까...”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고 날짜를 확인하니 벌써12월 1일이다. ‘벌써 12월이네, 우리도 김장해야 하는데...’매년 11월 말이 되면 12월 초에 있을 김장으로 절인 배추, 고춧가루, 액젓 등을 주문한다고 정신이 없는데 어찌 이번에는 뭔가 허전하게 지난다 싶었다. 우리는 식사 때 김치 빠지는 일이 없어 20-30 포기 정도 김장을 하면 일년동안 그럭저럭 먹는 편이라 겨울에는 꼭 김장을 해야만 하는데 올해는 아직 이러고 있다. 수육을 해서 애들 저녁으로 주니, 역시나 4학년 둘째가 “엄마, 금방 한 김치는없어요” “금방 만든 김치랑 먹으면 더 맛있는데...” 이런다. 수육과 김장김치의 어울림을 아는 것은 소소한 일상의 큰 행복이다. 이 뿐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향이 좋은 드립커피와 갓 데운 빵을 먹는 것, 늦은 밤 책을 보며 맛있는 군고구마와 묵은 김치를 먹는 것도 일상의 즐거움이다. 우리 인생의 행복이 저 어디 우주를 정복하거나, 하늘의 별을 따서 생기는 것도 있겠지만, 지나치기 쉬운 삶의 언저리, 일상에서 얻어지는 행복의 맛이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이 즐거움이 곧 삶의 영양분이 된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더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보면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 당장 내가 아이들에게 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뺏기며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즐거움을 찾으면 나도 아이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연예인들의 육아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교하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니 나도 마음이 편해지고 아이들도 편안해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다. “엄마, 그런데 겨울인데 우리 김치 안해요” 수육을 한창 먹다 둘째가 김치 담그자 한다. 2022년 식탁 반찬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향긋한 굴과 도톰한 수육을 또 먹기 위해 조만간 김장을 해야겠다. 내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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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12-02
  • [교사의힘] 코로나 이후
    코로나를 통하여 새로운 만남의 방법들과 소통의 방법들이 오히려 다음세대 사역을 위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편한 줌과 영상대화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편하고 안전한 관계형성의 기회들이 되고 있습니다. 삶으로 나누어지는 관계는 삶의 방향과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다음세대들에게 귀한 재산이 됩니다. 흔히 “우리 아이는 친구밖에 몰라요”라고 말씀하시지만 다음세대들은 친구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들, 특별히 부모님 그리고 교사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교회는 진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다음세대를 향할 교사를 세우는 일에 가장 힘을 써야 합니다. 장소나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청소년사역은 전도사 한분만 열정이 넘쳐도 살아납니다. 청소년들은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보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교사들과 사역자들입니다. 교회에 실망하고 떠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부재 속에 교회의 기성세대들의 삶이 보고 배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질에서 벗어나면 다음세대들은 가장 먼저 알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공부방을 예쁘게 차려준다고 아이가 공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겨야합니다. 교회는 아이들에게 장소적인 하드웨어 많은 물질을 투자했습니다. 그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음세대를 향한 사역자가 없는 한 사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역자에게 투자하십시오. 교사를 세우시고 훈련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2년에 열매를 보려고 하지 마시고 장기적인 훈련과 시스템을 만들어 다음세대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다음세대가 교회에 비전이라면 본당사용을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본당은 당연히 어른들의 몫이라면 아이들에게 느껴지는 메시지로 약합니다. 물론 가장 많이 모이는 분들이 장년들이고 쉽지 않지만 1년에 몇 번이라도 아이들에게 본당에서 예배드리며 그들이 주도하는 예배를 기획하는 것은 중요한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느끼게 해주십시오. 말로는 이제 그만. 다음세대를 살리는 방법은 그들이 교회가 자신들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가슴으로 듣습니다. 가슴이 열리는 사역이 시작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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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9
  • [다음세대칼럼] 법궤가 아니라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대패했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의 전쟁은 단순히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과 장로들이 모여 ‘우리가 왜 전쟁에서 패했을까?’에 대하여 의논했다. 전략 회의를 한 것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의견이 모아졌다.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패한 것이 틀림없어.” 어디서 들은 풍월인지 그들은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냈다. “언약궤를 가져가서 복수하자!”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셨던 것은 ‘언약궤’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붙드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필요했던 것은 ‘언약궤’가 아니라 ‘회개, 돌이킴’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언약궤’에 집중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지만 그들의 앞에 닥친 것은 더 큰 패배였다. 결국 삼만 명이 전사했고, 언약궤는 빼앗겼으며,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음을 당했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일 뿐, 하나님 그 자체는 아니다. 하나님은 일정한 공간이나 특정한 조건에 제한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수많은 학부모들은 하나님보다는 ‘언약궤’에 관심을 두고 사는 것 같다.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지 않고, ‘언약궤’의 한 부분이라도 잡아 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신앙생활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많다. 교회의 수련회에는 절대로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병든 세상에서 붙들고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무기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은 뒤로 미루어 놓은 채, 영험한 것처럼 보이는 ‘언약궤’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평상시 기도하지 않던 부모들도, 자녀들이 고3만 되면 새벽 기도회에 나타난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면(대학에 합격하면) 몇 년 쉬었다가 취직을 앞둔 시점에 또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또 몇 년 잠잠히 있다가 자녀들이 결혼할 즈음이면 다시 새벽에 얼굴을 보인다. 물론 이렇게라도 기도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는 기복祈福 신앙이며 더 심하게 말하면 부적符籍 신앙이다. 하나님을 붙들고 산다고 하는 것은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인데, 앞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들이 오히려 길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우리가 ‘언약궤’에 집중하면 기복을 쫓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보게 된다. ‘언약궤’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전심으로 하나님만 섬겨야만 한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몫이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좋은 학원, 좋은 과외 선생을 찾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가 어떻게 하면 병든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믿음을 지키는 리더로 살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있는 가정의 믿음 없음’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는 자녀의 학교다. 그래서 자녀들은 본 대로 한다. 그러니 ‘언약궤’를 붙들지 말자. 하나님만을 붙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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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9
  • [신앙교육 나침반] 코로나 키즈에게 생명보약밥을 먹여라!
    코로나 19사태가 우리의 자녀세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금 당장 눈앞에 드러나지 않지만, 대수롭게 여길 경우 평생에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동안 괴로움의 흔적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지금 코로나 키즈에게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현상이 휴먼 포비아와 철벽증이라고 한다. ‘휴먼 포비아’ 현상은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현상이다. ‘철벽증’은 철벽과 결벽증의 합성어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스스로를 단절시키며, 무질서하고 비위생적인 것에 대하여 극도로 혐오하는 증상이다. 코로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전부터, 우리의 자녀들은 이미 ‘힘들어!’를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터전과 먹을거리는 온통 독성물질과 내분비계, 신경계를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과 중금속이 가득하며, 초미세먼지와 변화무쌍한 기후 위기도 한 몫 하였다. 그러니 우리의 아이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마음껏 숨 쉬지 못하고, 마음껏 먹지 못하는 일상을 살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사람이 사람을 마음껏 만나는 자유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생각한다. ‘세상이란, 철저히 방어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구나!’ 이제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문을 닫고 컴퓨터와 소셜미디어와 게임의 가상공간에서 평온과 안정감을 느낀다. 어느새 아이들은 점점 더 스스로 고립과 단절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삶이라는 것,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다는 것, 소통한다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무뎌지게 될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코로나키즈들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코로나 펜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녀들은 그 누구보다 각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 결코 이러한 상황을 가볍게 여기거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태도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기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행복하며 소중한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소통의 참 행복과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며 가치 있는 것인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놀이’는 코로나키즈에게 마주함의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놀이는 밥이다! 심각한 환경 오염은 우리 아이들의 놀터를 빼앗아갔으며, 과중한 학업은 우리 아이들의 놀틈을 빼앗아갔고, 멈추지 않는 코로나 펜데믹은 우리 아이들의 놀이친구를 빼앗아갔다. 이제 우리는 빼앗은 것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본능이며, 소통을 위한 언어와 같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놀아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놀이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나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나에게 고민이 있어요. 내 마음 좀 봐주세요!”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놀이는 아이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에 없어서는 안 될 밥이다. 그렇기 때문에 놀지 않으면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된다. 아이들이 혼자서라도 인라인과 보드를 타며 노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같다.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는 보약밥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는 그냥 밥이 아니다.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보약밥이 된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이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편안한 가족들과 눈과 눈을 마주보고, 몸과 몸을 맞대며 함께하는 놀이는 세상 그 어떤 놀이보다 큰 사랑과 위로를 경험하는 보약과 같은 시간이 된다. 가족과 함께하는 성경놀이는 생명 보약밥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에 생명의 말씀을 더하여 놀아보라. 이는 단순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차원을 넘어서, 죄에 짓눌려 있는 자녀의 영혼을 숨 쉬게 하는 생명의 시간이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놀이를 통해 온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약함을 강하게 세우고 치료하는 시간이 된다. 날마다 비상상황, 긴급뉴스를 접하여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밥일까? 생명 보약밥이다. 그냥 어쩌다 한 번이 아닌, 치밀한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우리의 자녀들이 트라우마 세대가 되지 않도록 가족이라는 끈끈한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온 몸으로 경험하게 해보라! 자녀의 영혼이 삼아 숨 쉬게 될 것이다. 날마다 생명 보약밥을 먹은 우리의 자녀들은 코로나 펜데믹을 겪은 이 순간을 트라우마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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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9
  • [다음세대 칼럼]다음세대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2002년 강도사 시절부터 외부집회 설교를 시작했다. 당시 청년부를 맡고 있다보니 주로 대학청년부 집회가 주를 이루었다. 2008년 갑작스레 브니엘고 교목으로 부임해서 사역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청소년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외부집회 사역의 변화를 가져왔다. 2008년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청소년 사역자가 되어 있었다. 청소년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집회는 어느정도 유효기간이 지나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특수를 누리고 끝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나는 쉰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가 되었다. 청소년 사역자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다. 청소년 사역자로는 시니어의 선을 넘어선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친구 목사들이 전부 담임목회를 하고 있으니 청소년 사역자의 나이 경계선은 넘어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 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해왔던 집회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과 교사들을 대상을 집회를 한지 15년이 되었다. 2008년 이후 함께 사역했던 이 분야의 다른 동역자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잘 변화되어 왔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후배 사역자들의 등장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는 청소년 사역자라는 전문성만을 가지고 목회를 하기에는 길이 너무 좁고 힘들다는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특화되어버리면 목회 현장에서 다른 길이 열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교회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의 전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시간 같이 호흡하고, 지지해주어야 하는데, 전문가를 키우기보다는 교회의 한 부서만을 맡아서 사역하는 사역자로만 접근을 하니 다음 세대를 연결한 전문가들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내 또래의 사역자들, 그리고 선배들이 여전히 이 분야의 전문 강사로 사역을 하고 있다. 교회들마다 검증된 사람만을 강사로 섭외하니 다른 사람들이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강사를 찾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교회들마다, 아니 교계가 의미있게 보아야 할 사안이다. 나는 이미 우리 학교에서 제자 부모들보다 나이가 더 많아졌다. 나는 15년 전에 내 나이 쉰이 넘으면 사역의 유효기간의 법칙에 따라 청소년들이 아닌 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목회로 전환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십대들과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그 만남은 이어져 가고 있다. 물론 사역은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사역의 현장에서 꽃을 피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뒤를 돌아보면 뒤를 이을 목사들, 그리고 그 뒤를 또 이을 후배 사역자들의 수가 손에 꼽힌다는 것은 교계 전체가 다음세대를 위해서 위기의식을 가지고 사람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기다림 속에서 사역자는 만들어진다. 부서의 양적 늘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 집중하는 교회들이 늘어가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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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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