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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야기]친환경의 나라(2)
    오늘 환경문제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바로 쓰레기 문제이다. 인류가 매일 매일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은 땅과 바다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그럴듯한 광고에 매료되어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처리하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한 끼의 배를 채우면, 남은 음식쓰레기와 더불어 스티로폼과 비닐, 플라스틱 등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를 처분해야 한다. 가급적 쓰레기로 나올 것을 줄이고, 쓰레기 중에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분리해서, 버리는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친환경적인 삶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전국적으로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였고, 지금 세계에서도 쓰레기분리를 잘 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일은 오래전부터 시작해서 1993년에 내가 갔을 때는 이미 생활화되어 있었다. 동네 곳곳에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것은 빈병수거함이 그 재료의 차이에 따라 흰색, 녹색, 갈색 병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독일의 환경정책은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 것이고, 국민들 역시 그런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가급적 1회용 용기를 줄이기 위해 음료수 용기에 ‘저당’이라는 뜻의 ‘판트’(Pfand) 제도를 도입했다. 가령 음료를 담은 병, 플라스틱, 또는 종이팩의 경우 한번 쓰고 재활용수거함에 버리는 일회용이 있는가하면, 판트용으로 여러 회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 있다. 이런 음료수에는 판트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다 사용한 뒤 가게로 가져가면, 그 판트 비용을 돌려받게 된다. 병은 모르겠는데, 주스를 담은 종이팩을 재사용하는 것이 특이하게 생각되었다. 보통 병은 50회 정도를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고, 플라스틱은 잘 세척하면 25회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병이 무거우므로 차량운반 중 CO2가 더 많이 배출되는 것을 이유로 플라스틱이 더 환경적이라고 계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내가 있을 때에 비해 지금 이 판트제도는 훨씬 더 광범위해지고 일상화가 되어서 이제 마트에서 파는 음료용기 중 일회용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아울러 독일은 벼룩시장이 일상의 문화처럼 되어있다. 지역마다 주간으로 나오는 벼룩신문은 값이 비싼 편인데도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다. 이 안의 정보를 갖고 직접 연락해서 서로 만나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벼룩시장이 온라인상에서 점점 발달해 가고 있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여기서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큰 벼룩시장은 상업화되어 있어 새 물건을 가져다 파는 상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동네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은 주로 동네 사람들이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사고판다. 가끔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애들이 자기가 쓰던 물건을 직접 흥정하는 것을 보곤 했다. 환경과 경제를 교육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렇게 벼룩시장이 발달하다보니 남이 입던 옷을 입고, 쓰던 물건을 쓰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심지어 아이 물건도 새로 사지 않고 남이 쓰던 것을 잘 세척해서 사용한다. 절약이라는 관점 이전에,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아낀다는 점에서 본받을 좋은 문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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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독일이야기]친환경의 나라(1)
    요즘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길들을 돌아보고 있다. 그 중에 무엇보다도 아무 생각 없이 자행한 환경파괴적인 삶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인수전염 바이러스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야생동물서식지를 파괴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환경을 도외시한 편의위주의 삶이 결국은 커다란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특별히 최근 일본에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참사 이후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발표함으로, 해양 오염과 그 결과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땅과 하늘과 바다 전방위적에 걸쳐서 진행되는 환경오염이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숙고하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계가 ‘자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물’ 임을 고백하면서, 이 창조세계를 잘 보존해가는 것을 우리의 중요한 신앙적인 책무로 여겨야 한다. 나는 독일인들이 매우 높은 환경의식을 갖고 있고, 환경이슈가 정치, 경제, 교육이나 일상의 삶에서 항상 우선이 되고 있음을 보았다. 지금은 우리도 환경의식이 많이 높아졌지만, 1990년대 당시는 아직 그러지를 못했다. 나 역시 환경의식이 빈약한 가운데 독일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도전과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몇 번에 걸쳐서 독일에서 체험한 환경문제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제일 먼저 2년 전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 부부는 환경탐방 차 남부독일에 있는 프라이부르그라는 도시를 찾아갔다. 독일에서 가장 기후가 좋고 친환경도시로 소문난 이 도시에는 세계적인 환경마을로 알려진 보봉(Vaubong)마을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사흘 동안 보봉과 프라이부르그를 돌아보았다. 보봉은 미래 친환경주거지가 어떠해야하는가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전거도로가 잘 발달되어 자전거가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어있었고, 트램(전차)이 지역 중앙을 관통하여 가장 애용하는 대중교통이었다. 물론 큰 도로에는 차도 많이 다니고 있지만, 주택가로 들어가면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길이 많이 있어 자동차를 억제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봉의 공기가 참 청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아파트나 공공건물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많은 개인 집들도 지붕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하여 많은 자연에너지를 생산해내고 있었고, 새로 건축하는 집은 파시프하우스로 만들고 있었다. 통영 앞바다 연대도의 에코체험관에서도 파시브하우스를 체험할 수 있는데, 첨단단열공법으로 외부 열과 차단하면서 지하에서 공기를 끌어올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서 선선함을 유지하는 저에너지 건물이다. 말로만 들었던 보봉과 프라이부르그를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환경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아름다움 그리고 친환경정책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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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6
  • [독일이야기] “자유교회”
    나는 8년 반 정도 한인교회를 섬긴 뒤 논문 마무리를 위해 교회를 사임했고, 그 이후부터 귀국할 때까지 내가 사는 보쿰의 랑엔드레아라는 지역의 자유교회를 1년 반 정도 다녔다. 이 교회는 자유복음교회교단(FeG)에 속하였고 약 50명 정도가 모여서 예배드리는 작은 공동체였다. 우리 가족은 이 교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와 위로와 사랑을 받았고, 또 독일의 주류교회가 아닌 자유교회(free church)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자유교회 안에는 다양한 교단들이 있는데, 그 중 침례교회와 오순절교회 그리고 경건주의전통을 이어오는 복음주의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다닌 자유교회는 예배 형식이 참 자유로운 등 예전이나 직제는 한국교회와 다르지만, 지향하는 신앙은 유사했다. 교인들도 따뜻하고 가족적이고 사랑이 넘쳤으며 열정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3주 정도를 다닌 뒤 등록을 하려는 뜻을 전달했다. 그러자 장로는 아니 벌써 등록을 하느냐고 놀라면서 먼저 심방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약속한 시간에 방문한 담임목사와 장로는 식사교제 후, 여러 문항이 빼곡히 담긴 등록 양식지를 나와 아내에게 나누어주었다. 목사는 먼저 한국교회와 달리 교회등록 절차가 까다로움에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알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고, 또 예수에 대해서 어떤 신앙고백을 하느냐 라고 했다. 내가 바로 옆 도시의 한인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한 목사임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딸은 각자 신앙 간증을 들려주고 몇 가지 신앙고백과 관련된 질문에 대답을 했다. 함께 신앙적인 교제를 나눈 뒤 그들은 우리가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로 교회에 등록할 자격이 있다면서, 이후 교인으로서의 헌금과 봉사 등에 관한 의무조항과 권리를 세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와 아내가 서명하고 그들도 서명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우리가 목사가정이기에 이 정도로 단순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에 장로가 이런 절차에 대해 이해를 구하듯이 “저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같은 신앙으로 섬기는 이들이 함께 하는 교회를 원합니다.” 라는 뼈있는 말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서 우리가족을 멤버로 영접하는 환영식을 성대하게 해주었다. 나중에 연말공동의회에 참석해보니 신기하게도 단 25석만 준비되어 있었고, 빈자리 없이 채워졌다. 50명 정도가 예배드리고 활동하고 교제하고 있었지만, 정식 등록교인은 25명에 불과했고, 그게 누구인지를 비로소 그 자리에서 알게 된 것이다. 이들은 등록하는데 신중했고, 또 등록을 강요하지 않았다. 교회등록은 계약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었고 이것은 대부분의 서구교회가 비슷했다. 등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 가운데 너무 쉽게 등록하고 너무 쉽게 그것을 저버리며, 교회회원이 되었음에도 아무런 책임의식이 없는 교인이 많은 한국교회의 문화가 떠오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또한 이후 이곳에서의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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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독일 이야기] “독일교회의 저력-키르헨탁”
    나는 독일개신교회의 저력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이야기 하려고 한다. 2년 전인 2019년 안식년을 갖게 되었고, 5월 말경에 아내와 함께 독일로 가서 한 달 반 정도를 머물렀다. 그런데 마침 6월19일(수)부터 닷새간 내가 과거에 목회했었던 도르트문트에서 키르헨탁(Kirchentag)이 열렸다. 과거에 독일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이것이 여러 차례 개최되었지만, 다른 도시에서 열리다 보니 한 번도 참여하지를 못했는데, 마침 이번 안식년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키르헨탁은 2년에 한 번씩 독일 내 대도시를 돌아가면서 열리는 개신교 행사이다. 주교회(란데스키르헤)가 중심이 되어 준비하고 개최하지만, 많은 자유교회들도 참여해서 그야말로 독일내의 개신교회들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대한 축제이다. 여기에는 각종 주제에 따른 전시회가 있고, 강연과 토론회가 있으며, 또한 다양한 음악회도 있다. 이번 축제는 부산의 벡스코와 같은 도르트문트의 베스트팔렌홀을 센터로 해서, 이 도시의 여러 교회에서 이러한 것들이 진행되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의 숙소들도 미리 준비되고 대중교통도 연계되는 등 마치 도르트문트도시 전체가 키르헨탁 행사장이 된 것 같았다. 이번에 약 2천여 개의 전시와 프로그램이 있었고, 여기에 4천명의 자원봉사자가 동원되었으며 118,000명이 참가했고, 사용된 비용은 약 270억원에 이르렀다. 이 정도의 규모이다 보니 단순히 개신교회 내의 행사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관심을 갖는 행사가 되어 수상과 정치인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개신교도인 메르켈총리가 참석하여 연설했다. 키르헨탁은 매번 열릴 때마다 그 시대의 이슈를 고려하면서 성구를 중심으로 주제설정을 한다. 이번에는 우리 시대 각 분야에서 신뢰가 위기에 처해있음을 지적하면서 (왕하 18:19)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Was für ein Vertrauen)를 설정하였다. 우리 부부는 베스트팔렌홀을 중심으로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홀 밖의 마당에서는 브라스 밴드팀이 복음송을 계속 연주하고, 중창팀이 찬양을 부르고 있었고, 여기 저기 간이음식점과 카페들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운동장 같이 넓은 홀 안에는 백 개는 족히 넘을 부스들이 주제별로 전시되고 있었다. 그 주제들은 설교와 목양, 차세대 신앙교육, 세계선교, 박해받는 교회실상 등 교회와 관련된 것들 뿐 아니라, 환경, 지구온난화, 탈핵, 전쟁과 평화, 기아와 난민, 인권과 성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침 이 지역의 한인교회들도 한 부스를 만들어 거기에 작은 소녀상을 세우고 이와 관련된 사진들을 전시하면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서명을 받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독일교회의 저력이라 생각했다.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어서 연합할 수 있는 힘, 교회 안이나 밖의 다양한 이슈들을 끌어안아 답을 찾고 제시하려는 힘, 그리고 꾸준히 이런 거대한 행사를 해나갈 수 있는 힘, 이런 힘이 독일통일의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로 나타났고, 또한 지금의 독일사회를 뒷받침하고 이끌어나가는 개신교회의 저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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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9
  • [독일이야기] “독일교회의 저력-디아코니”
    독일의 주류가 되는 주교회(란데스키르헤)는 오랜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저녁교회(늙은 교회)로 생각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교회는 아침교회(젊은 교회)로 생각하고 있다. 젊은이의 특징이 무엇인가? 열정이 있고 생동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변화를 좋아하지만, 아직 경험과 안정감이 부족하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경륜이 많아 한 발짝을 내밀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변화에 둔감하고 열정이 부족하나 신중하면서도 균형을 중시하게 된다. 독일교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한마디로 사회와 분리된 교회가 아닌 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발전해왔다. 신앙의 공공성과 사회윤리를 중요시 여기고 올바른 믿음은 곧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주일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얼마나 참여하느냐보다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기독교적인 가치를 어떻게 실천하고 실현해 가는냐를 중시한다. 교인 개개인에게도 이것이 강조되지만, 교회 자체의 사역도 여기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것이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 바로 디아코니(Diakonie)라는 것이다. 섬김을 뜻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에서 나온 말로 19세기 뷔허른(J.H.Wichern)은 이것을 “가난한 자들을 향한 사랑의 돌봄사역”으로 정의했다. 이미 우리 개신교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때부터 성경의 가르침대로 구제사역을 신앙의 핵심으로 여겼지만, 특별히 독일은 18세기 경건주의에서 이 사역이 꽃을 피웠다. 경건주의의 창시자 프랑케는 이웃 섬김 사역을 조직화하는데 앞장섰고, 그 뒤로 영적인 각성과 부흥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국내선교(Innere Mission)라는 기치로 더욱 발전해갔다. 그러던 중 다양한 기관과 사역들이 1957년에 디아코니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독일교회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지금 디아코니에서는 병원이나 장애인기관, 양로원등 기관운영과 노숙자사역, 노인요양, 유치원과 어린이 돌봄 등등 광범위한 사회봉사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전쟁이나 난민, 자연재해 등이 일어날 때마다 가톨릭의 카리타스와 함께 앞장서서 구제금을 모으고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가를 지원하는 일과 그곳 유학생들을 불러서 교육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살았던 보쿰에도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전문학교(Oekumenische Studienwerk)가 있어서 많은 가난한 나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대학갈 수 있도록 교육시켰다. 이 학교에 또한 대학이 인증하는 어학시험을 보는 언어코스가 있어서 많은 외국인들이 저렴한 학비로 어학공부를 했고, 나 역시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고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 각 기관들은 교회재정만이 아니라, 국가재정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독일사회의 복지의 출발과 기초는 개신교의 디아코니 가톨릭의 카리타스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독일에서 교회는 정부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이처럼 이웃을 섬기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독일교회는 우리에게 도전과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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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5
  • [독일이야기] “왜 독일교회가 텅 비게 되었는가?”
    독일에는 오래되고 큰 교회당이 많다. 우리 같으면 유적지가 되었을 텐데 오래된 건물이 워낙 많다보니 그 서열에 들지 못하는 교회당들이 많다. 그 옛날에는 주일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큰 예배당 안에 나이 든 사람들 몇십 명만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영 힘이 없어 보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적을 두고 있고 심지어 종교세라는 이름으로 헌금을 기꺼이 내고 있는데, 왜 교회당에는 오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몇 가지를 생각해보면, 먼저 근대 이후에 종교생활 내지 종교의식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어 왔다. 독일에서 교회는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사회 속에서의 교회이다. 우리와 달리 유럽은 과거 기독교 사회였거나 기독교인이 다수였던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 되었다. 그 속에서 교회생활과 일상생활의 불일치에 대한 반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교회 중심의 생활보다는 일상에 스며드는 신앙, 삶의 예배가 강조되었다. 이것이 교회당모임을 소홀히 하게 되는 원인이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독일교회가 국민들 속에서 많은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교회는 1,2차 세계 대전에 적극 찬성했고, 특별히 온갖 만행을 저지른 나치 극우정권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이것이 전쟁 후 교회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키웠고,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이것은 사실 내가 생각지 못한 것으로, 오랫동안 독일교회를 목회하고 은퇴를 앞둔 여목사로부터 들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6~70년대까지 독일교회는 주일예배마다 교인들로 가득 찼다. 전쟁의 폐허와 궁핍함 가운데 사람들의 심령이 가난해졌을 것이다. 교회에 몰려드는 이들을 위해 큰 교회들이 많이 세워졌고, 많은 목회자들이 열심히 사역하였다. 그렇게 잘 모였던 교회에 갑자기 큰 위기가 왔다. 그 위기의 원인은 바로 주 5일제 근무였다.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부흥이 일어나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주 5일제가 시행되고, 이것은 많은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가 가족여행의 붐이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차를 몰고 출발해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여행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자연히 교인들도 한 주 두 주 예배에 빠지더니 어느덧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러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안정되고 풍요로운 사회구조, 삶의 여유를 갖고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교회를 약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전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우리와 동떨어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회적인 변화와 아울러 교회의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교회당 중심의 신앙생활은 많은 도전을 받고 있고, 교회의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쩌면 우리는 독일교회와 같은 위기를 맞이하지 않을지 모른다. 깨어서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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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3
  • [독일이야기] 독일의 개신교회
    우리가 잘 알듯이 독일은 종교개혁의 산실이다. 마틴 루터가 뷔텐베르그 대학교회 정문에 면죄부를 반박하는 95개조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개신교가 탄생했다. 그러므로 독일은 개신교인이든 아니든 루터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고 그러다보니 개신교의 영향력이 큰 나라이다. 독일에서 개신교회는 두 가지 종류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는 주(州)교회라 할 수 있는 란데스키르헤(Landeskirche; 영어로는 state church로 번역된다)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교회라는 뜻의 프라이키르헤(Freikirche)이다. 주교회는 루터의 신학을 이어가는 루터교회와 칼빈의 신학을 이어가는 개혁교회 그리고 둘 사이의 연합을 취하려 했던 연합교회, 이 세 개의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히 루터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내가 살았던 주는 개혁주의가 꽃을 피운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닿아서 그런지 개혁교회도 많이 있었다. 독일교회는 오랜 기독교 역사를 갖다보니 여전히 교회와 사회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스템일 것이다. 만약에 A가 도르트문트로 이사해서 전입신고를 할 때에 종교란에 ‘개신교’라고 쓰면, 그는 자신의 집 가장 가까운데 있는 주교회에 자동적으로 등록이 되어 목사로부터 환영인사와 교회안내가 적힌 서신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한인교회가 예배당을 빌려 썼던 도르트문트 니콜라이교회의 경우 당시 목사님이 세분 있었고 소속된 교인은 약 6천 명 정도 되었다. 물론 주일예배에는 50명 정도 참석했다. 독일 주교회는 특별히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헌금시스템을 갖고 있다. A가 교회에 등록했다면 다음 달부터 직장 월급에서 매월 헌금이 자동적으로 빠져나간다. 그 액수는 A가 내는 세금의 9%(어떤 주는 8%)에 해당되는 데, 이것을 세무서에서 거두어 A가 속해 있는 교회로 보낸다. 그래서 이것을 ‘종교세’(Kirchensteuer)라고 부르는데, 독일교인들은 이런 세금형식으로 헌금을 내고 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교인들이 헌금을 은행계좌로 이체하는데 익숙할 것이다. 만약 십일조가 항상 일정해서 매월 자동이체가 되도록 해놨다면, 독일교인이 내는 종교세가 잘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독일교회는 주일 예배에는 적은 수가 참석하지만,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자동적으로 헌금이 들어옴으로 인해 재정적으로는 풍요로운 편이다. 반면에 자유교회는 복음주의교회, 침례교회, 오순절교회등 다양한 교파로 구성되어 있고 시스템도 우리나라의 교회들과 유사하다. 우리처럼 예배시간에 헌금주머니가 돌고, 일부는 은행계좌로 이체하기도 한다. 등록교인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수가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주교회와 달리, 자유교회는 오히려 등록교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주교회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분명한 신앙고백과 아울러 생동감 넘치는 자유교회는, 분명 그 사회의 영적 등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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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야기
    2021-01-20
  • [독일이야기] “독일의 성탄절”
    독일에 가기 전 서울 서초동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어느 크리스마스이브가 생각난다. 주일학교 성탄발표회를 마치고 식사하기 위해 강남역 근처의 음식점을 향했다. 거리에는 캐럴 송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음식점은 사람들로 북적여 홀로 술을 마시는 중년신사와 합석하게 되었고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의 성탄이브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 날을 하일리게 아벤트(거룩한 저녁)이라 부르는데, 오후가 되면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끊기게 된다. 그래서 거리에 사람을 보기가 어려운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 된다. 이 날 독일은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흩어졌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며 성탄선물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기에 홀로 사는 사람들에게 이 날처럼 외로운 날은 없다. 모든 가게나 음식점들이 문을 닫아서 갈 곳도 없다. 그러므로 뜻 있는 사람들은 홀로 있는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나 역시 독일에서 처음 맞이한 성탄절이브를 홀로 보낼 뻔 했는데, 한 학생부부가 미리 초대를 해주었다. 다음 해부터 우리 가족도 성탄이브에는 교회 안의 홀로 있는 학생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왠지 지금도 그 차분한 성탄이브가 그립게 느껴진다. 독일의 성탄분위기는 11월 말부터 뜨겁게 달아오른다. 성탄 4주전에 첫 번 째 대림절(강림절)이 시작되는데, 이 날에는 교회 강대상에 놓인 4개의 초들 중 한 개에 불이 켜지게 된다. 그리고 매 주일마다 불이 하나씩 더 켜져서 모두 4개가 다 켜진 주일 즉 네 번째 강림절이 지나고 성탄절을 맞이하게 된다. 첫 번째 강림절부터 도시마다 시청 앞에 대형 성탄트리를 설치하는데, 우리교회가 있었던 도르트문트에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45m의 성탄트리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크리스마스시장이 열리면서 거의 한달 동안 온 도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된다. 이 크리스마스시장에서의 매출이 1년 매출과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흥겨웠던 분위기는 조용한 성탄 이브를 지난 후 성탄절예배로 마쳐지게 된다. 성탄 이브를 같이 보낸 가족들은 다음 날 오전에 함께 교회당으로 향한다. 독일 교인들 중에는 평소에는 교회를 나오지 않다가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예배에만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그 큰 교회당이 좁다고 느낄 정도로 교인들이 가득차고 활기 있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활기를 반년 뒤 또는 일 년 뒤에나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주일예배에 힘을 잃은 독일교회들이 침체되어 서서히 침몰해 가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한국교회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서구교회의 모습이다. 왜 어떻게 독일교인들이 주일예배를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는 여기서 꼭 한번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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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야기
    2020-12-22
  • [독일이야기] 사회적 신뢰도
    올해는 좀 늦춰졌지만, 매년 11월이 되면 우리나라는 대입수능시험을 치르는데, 거의 국가적인 행사가 된다. 대학입시가 워낙 초미의 관심사다 보니, 시험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생기면 사회적으로 아주 커다란 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출제자들도 은밀한 곳에 머물게 해서 문제 유출을 방지하고, 전국에서 같은 날 철저한 감독 하에 시험을 치르게 된다. 독일의 경우 우리와는 달라 모두가 함께 치르는 수능시험이나 또는 각 대학의 입학시험이 따로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 마지막 학년에 아비투어라는 졸업시험을 치르고 여기에 합격하면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다. 졸업시험이 일종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인 셈이다. 독일대학은 대부분이 국립대학으로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달리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비투어 합격생은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도 의대나 법대 또는 취업이 잘되는 인기학과는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입학정원이 있고 그래서 좋은 성적이 필요하다. 아비투어에서 1점(A학점)을 받은 학생은 그해에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지만, 성적이 안 좋으면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아비투어지만, 그 시험을 자기 학교에서 치른다. 시험문제도 그것을 가르친 과목담당교사가 출제하고 채점도 그 교사가 한다. 문제도 사지선다형이나 단답식이 아니라 논문식으로 출제되며 그러기에 아이들의 실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교사들이 출제하고 채점한 모든 것을 교육부에서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 있는 동안 아비투어 채점에 부정이 있었다거나 학생이나 학부모가 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교사는 철저히 양심적으로 시행하고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믿어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적용하기 쉽지 않은 시스템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믿어주는 것이고 또 서로가 믿을 수 있게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를 믿는 만큼, 불필요한 시간과 재원을 쓸 필요가 없고, 보다 심도 있는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나라도 속이고 사기 치는 사람들, 비윤리적인 기업인이나 정치인도 있어 감옥에 가고 정계에서 퇴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자리에서 양심적으로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서로를 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그러한 정직과 양심은 오랜 기독교신앙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윤리가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 속에 녹아져 들어갔다. 교인들이 어떻게 교회에 잘 모이느냐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오랜 고민과 노력이 그 교회가 속한 사회를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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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야기
    2020-11-20
  • [독일이야기] 액자 마이스터의 자부심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나라 대입 수험생들과 부모들은 초긴장상태에 돌입한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초등학교부터 교육의 첫 번째 목표는 좋은 대학, 좋은 과이다. 이것이 미래의 성공과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행복의 최고 관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문이 좁다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학교공부, 학원, 과외 이렇게 쉼 없이 달려야 한다.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행복이 성적순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나는 오늘 이런 부분에서 우리와 다른 독일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이런 획일적인 가치가 아닌 다양한 가치를 키워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4년제인 초등학교를 마치고 아이의 학력에 따라서 세 종류의 학교로 진급한다. 대학 공부를 할만한 능력이 있는 아이는 김나지움으로, 대학은 가지 않아도 조금 고급직업을 수행할 아이는 레알슐레, 공부에 자질이 없는 아이들은 하우프트슐레 등에 나눠서 보낸다. 이 결정은 담임선생이 하는데, 4년간 같은 아이들을 맡아서 관찰하기에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하고 부모들도 대체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언뜻 하우프트슐레 학생은 루저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공부를 싫어하고 공부 능력이 안 되는 애들이 대학졸업까지 10년 넘게 책과 씨름하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의 기술을 연마하고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므로 일하는 시간도 길어 연금도 많이 받게 된다. 내가 만난 하우프트슐레 출신의 독일인들을 중에 대학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나 자괴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독일은 마이스터(장인)제도가 있다. 대부분의 직종에서 경력과 실력을 쌓고 시험을 통과하면 마이스터가 되는데,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할 뿐 아니라, 사회가 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준다. 가령 미용사도 마이스터가 아니면 자기 미용실을 개업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용실 직원으로 취직하여 일하면서 마이스터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준비한다. 한 독일교회 장로와 친하게 지냈는데, 클래식음악 매니아에다 늘 교양있게 처신해서 나는 그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집을 방문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의 직업은 액자틀 만드는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싫어해서 하우프트슐레를 졸업한 후 이 직업을 갖게 되었고, 이 분야에서 마이스터가 되었다. 그는 공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고, 도리어 마이스터라는 것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독일이라는 사회의 건강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획일적인 가치로 비교당하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적성을 존중받고, 어떤 직업이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이상에 욕심내지 않고 만족하면서 살 줄 아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 오피니언
    • 독일이야기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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