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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故 곽삼찬 목사에 대한 이야기
    故 곽삼찬 목사(예장고신 증경총회장) 마산동광교회를 36년간 시무했던 故 곽삼찬 목사가 하늘나라로 간지 만 1주기가 된다. 유독 곽 목사에 대해서는 연민의 정을 느꼈던 필자로서 그가 남긴 아름다운 정신적 유산을 잊을 수가 없다. 곽삼찬 목사는 과거 경남노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故 송상석 목사에게 고신교단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마다 문제를 풀어나가고 수습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고 필자에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교단에 큰 어려움을 가져 왔던 고신대복음병원 법인이 관선 체제에서 탈피 할 때에 곽 목사가 고신 총회장에 재직했다. 그 때의 일이다. 2014년 여름 고려학원을 팔자고 한 김민남 관선 이사장과 몇몇 교단 인사들이 총회장 동의를 얻기 위해 마산동광교회로 곽 목사를 찾아왔다. 곽 목사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한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한마디로 잘라 돌려보냈다. 그러고 나서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때요? 잘 했지요?”라고 말하던 곽 목사는 고려학원에 법인 이사장으로 있었던 연유도 있었으나 매우 애착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곽 목사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면, 그 어떤 압력이 들어 와도 굽힐 줄 몰랐다. 그런 그의 배짱과 용기는 오랜 영성에서 묻어나온 신앙의 저력 때문일 것이다. 고려신학대학원을 천안으로 이전하고, 교지와 건물 짓는 것도 그의 끈기 있는 믿음의 행동이었다. ‘바르다, 옳다’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는 저돌적으로 밀어 붙이는 행동목회가 그의 장점이며, 교단에 길이 남는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곽 목사와는 반대로 고신의료원 시절 원장을 지낸 박영훈 장로는 정면에 대고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고려신학대학원을 천안으로 옮기기 위해 대지 구입 계약금이 필요할 때마다 박 원장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곽 목사는 이사장으로서 명령을 구두로 내렸다. 행정처장인 김만규 장로에게 “계약금 얼마를 수표로 가져와라, 만일 안 가져 올 때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할 줄 알아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김만규 장로가 박 원장의 허락을 받아 계약금을 가져와 지금의 고려신학대학원이 착공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공업자가 동광교회로 곽 목사를 찾아왔다. 시공업자가 곽 목사에게 돈 뭉치를 건네자 “어디서 함부로 매수하려고 하냐”면서 부실공사를 사전에 막아야겠다고 문전에서 돌려보냈다. 이 일로 신대원이 부실 공사가 되지 않고 잘 지어진 것을 오늘에서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곽 목사는 평소, 자녀들 중에 복음병원 행정처장으로 있는 곽춘호 피택장로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어떻게든지 아들이 잘 되기를 기도했다. 또 괴정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기를 늘 소망한다고 필자에게 자주 말했다. 그렇게 기도를 부탁하던 곽 목사를 보면서 자식에 대한 애착은 누구나 동일하다는 생각을 했다. 곽 처장은 2013년도까지 고신의대 교무과장으로 15년 넘게 있었다. 그러나 김종인 장로가 이사장으로 온 뒤 병원 행정처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필자는 곽삼찬 목사에게 빚을 지고 있다. 2000년도 고신 총회석상에서 본지를 향해 신문 불매 운동을 결의 한 사실이 있다. 기독교보 교단지에서 본지를 향해 소위 황색 신문으로 얼마나 매도하던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보도 했다. 그러나 곽 목사는 언론의 정도와 도의를 알았든지 총회 석상에서 “초교파 신문을 불매 운동하면 더 많이 읽히고 더 유명세를 만들어주게 된다. 그리고 언론과 싸우는 교단이 유치하게 비춰질 수 있으니 이를 해제하자”고 통 큰 발의를 하는 바람에 족쇄가 풀리게 된 사연이 있다. 옳고 그른 것을 분간 할 줄 아는 곽 목사는 동광교회가 둘로 갈라질 때도 중립을 지켰다.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어느 한편을 들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곽 목사는 “제 부덕의 소치”라며 오히려 자신을 겸손한 마음으로 다스려가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곽 목사가 하늘나라로 간 지난 1년 전, 복음병원 영안실에는 수북이 쌓인 조화와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정승이 죽으면 거지들도 오지 않는 옛말이 있지만, 그렇게 많은 조문객들을 보고 평소에 많이 베풀었던 곽 목사의 삶이 증명되는 듯 했다. 은퇴 이후에도 자주 통화하면서 교단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며 필자에게 멘토 역할을 하곤 했다. 과거 역사를 알아야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아름다운 신앙의 선배 이자 큰 어른으로 유산을 남긴 그의 흔적들이 이따금씩 되새겨 진다. 그럴 때 마다 故 곽삼찬 목사가 그립다. 좀 더 가까이 하지 못하고, 식사 한 끼라도 대접 못한 것이 후회된다. 고통과 근심걱정 없는 하늘나라 가서 만나겠지. 신이건 장로가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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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08-05
  • 영남신대 총장선출, 다음 달로 연기
    영남신학대학교(이사장 김수읍 목사)는 지난 20일(월)에 가진 이사회에서 제7대 총장 선출을 다음 달인 8월 14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이날 이사회에서 새 총장을 선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총장인선위원회는 인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사회는 후보로 등록했던 이춘길 교수, 최무열 교수, 최인기 교수에게 동의를 받아 총장초빙 재공고를 내기로 했다. 김수읍 이사장은 “동문회비상대책위와 이사들이 새 총장을 자유롭게 추천, 인사의 폭을 대폭 넓혀 일괄적으로 선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남신대 법인이사회 관계자는 “학내 문제가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 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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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23
  • IYF가 남기고 간 것들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IYF가 지난 7월5일부터 16일까지 한국교회에서 월드문화캠프를 개최했다. 이번 캠프에 참석한 숫자는 세계 50여 개국 4천 명이라고 IYF측에서 발표했다. 특히 첫 일주일은 부산에서 모든 행사를 진행했다. IYF측은 캠프뿐만아니라 지난 5년 동안 세계청소년부 장관들을 초청해 장관포럼을 개최하고, 세계 각국 총장들로 구성된 총장포럼도 개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김재경 의원이 국회에 이들을 초청하고 만찬을 했으며, 서병수 부산시장도 개막식 참석과 이들을 부산시청에 초청해 만찬을 나누기도 했다. 특히 박옥수는 “세계 여러곳을 다녔지만, 부산만큼 좋은 곳이 없다. 서 시장님이 IYF에 마음을 많이 써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부산에 머무를 시간이 많을 것 같다”고 화답했다. 예년에 비해 명사 강의 등이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박옥수의 입지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특히 부산시장과 지역 학계, 재계, 정치권 인사들과 관계를 돈둑히 하는 등 부산에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교계의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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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23
  • 총회 임원회의 이상한 행보
    고려학원 이사장 강영안 장로에 대한 총회 재판이 지난 29일 부산 성산교회에서 열렸다. 총회 임원회가 스스로 결정해 총회재판국에 기소시킨 내용을 다시 해당노회로 환송하라는 것은 오히려 총회 임원회가 ‘직무유기’하는 느낌이 들고 있다. 이미 총회재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사안을 놓고 서류 반납 요청은 앞뒤가 안 맞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총회운영위에서 총회 임원회의 분위기는 강 이사장 편을 들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회장의 설교 내용에서부터 사회보는 것까지.... 이사장에 비판적인 인사의 발언권을 제지하면서, 참석 대상자도 아닌 학교법인 감사에게 발언권까지 주면서 강 이사장 ‘이사장 추인’ 통과에 열을 올렸다. 과정들을 살펴보면 총회 임원회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 여기에 지난 21일 모인 임원회에서는 법인 이사 4인이 행정소송한 건에 대해서도 ‘일단 사실여부를 확인 한 다음에 총회재판국에 보낼 지 판단한다’고 결의한 후 유보한 상태다. 총회 임원회의 노골적인 이사장 감싸기가 이제는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교법인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다루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금까지 총회 임원회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사장 감싸기’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과한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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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23
  • 신원그룹 회장 박성철 장로 이야기
    △노사분규 없는 신원그룹 평소 신원그룹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이 이 회사를 방문하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성가곡이 흘러나오고, 벽면에는 ‘월요예배순서’가 붙어 있다. 사옥에는 예배실과 기도실, 신학연구소와 성가단의 간판까지 볼 수 있다. 교회인지, 회사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굴지의 의류업체인 (주)신원은 자타공인 믿음의 기업이다. 경영이념의 첫 번째가 믿음 중심이고 다음이 고객중심, 미래지향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전 세계의 신원 직원들이 예배를 드린다. 회사 입구에는 ‘주일은 주님과 함께’라는 문구가 크게 붙어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주일에 쉬는 것은 박성철 회장(서울 신길성결교회 원로장로)이 창업부터 지켜온 그의 철칙이다. 박 회장은 신앙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신원통상을 설립했다. 섬유수출과 의류사업으로 승승장구했던 회사는 금융, 레저산업까지 진출하며 국내 16개, 해외 8개 계열사를 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 97년말 외환위기 때 빚을 제때 갚지 못하고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의류와 관련 없는 사업은 모두 접었다. 다행히 해직된 직원들 대부분 다른 업체에 재취업을 했다. 신원 직원이면 믿을 수 있다는 평판이 큰 힘이 됐다. 박성철 회장은 신원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책임을 지고 보유 지분 전량을 회사에 무상증여, 월급쟁이 회장이 됐다. 박 회장은 방만했던 경영을 스스로 반성하고 재점검하며, 회사 회생을 위해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직원들은 보너스, 영업비를 스스로 반납했고, 주일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야근도 자처했다. 박 회장은 지방으로 내려가 직원들을 설득했다. “주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쉬어야 합니다”면서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이들 영업점들이 주일에 문을 닫으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오히려 15%나 늘었다. 신원은 해고된 직원들에게 명절이면 지갑이나 벨트 등 선물을 보내기도 했는데 ‘저희는 아직도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는 뜻을 이와 같이 성결교 증경총회장 이재완 목사가 위와 같이 담아 글을 올렸다. 전국CBMC 중앙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박성철 장로는 지난 4월 국세청으로부터 조세포탈 협의로 고발당했다. 지난 7월 9일 사기 회생 및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썩은 사과’ 신원 박성철의 추락(이 글은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이 지난 7월 15일자에 실은 칼럼 내용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란 표현을 썼다. 임직원들에게 도를 넘은 연봉과 상여금을 뿌리던 미국 금융회사들이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에 손을 내밀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행태를 비판했다. 탈세 및 사기 혐의 등으로 그제 구속된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을 보면서 경제학자의 질타를 눈여겨 봐야한다. 신원그룹은 1998년 1조 원의 차입금을 안고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해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외환위기 충격으로 수많은 기업이 사라지고 직장인들이 줄줄이 해고된 ‘고통의 시절’에 신원은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부채 상환 유예와 탕감, 추가 융자를 받았다. 특혜에 가까운 혜택이었다. 박 회장은 대주주 지분은 포기했지만 퇴진 약속을 뒤집고 회장 자리를 지켰다. 그는 워크아웃 기간에 재산이 전혀 없는 ‘가난한 전문 경영인’의 이미지를 풍기려고 애썼다. 하지만 2002년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특위가 공개한 자료에서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박 회장 일가는 1998년 이후 11번이나 해외에 나가 귀금속 쇼핑 등에 2711만 원을 썼다. 국내에서도 신용카드로 2억8600만 원을 사용했다. 검찰과 국세청은 워크아웃을 악용해 회사 빚을 떠넘겼던 그가 당시 300억 원의 재산을 숨긴 사실을 최근 밝혀냈다. 박 회장은 가족 명의로 소유한 광고대행사를 통해 신원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으면서 증여세 등 30억 원대의 세금을 포탈했다. 기업 부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한 뒤 ‘말끔한 회사’의 대주주로 당당하게 복귀한 셈이다. 2011년에는 또다시 개인 재산이 한 푼도 없는 것처럼 법원을 속이면서 개인 회생을 신청해 250억 원의 개인 채무를 면제받았다. 100억 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 회장은 ‘썩어도 한참 썩은 사과’다. 틈만 나면 나랏돈을 빼먹으면서 자기 주머니는 몰래 챙긴 행태는 죄질이 특히 나쁜 악성 경제 범죄다. 이런 양심불량 기업인 때문에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떵떵거리며 산다’는 속설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박 회장은 10년 넘게 법의 빈틈을 악용해 이익은 사유화하면서 손실은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했다가 결국 추락했다. △박성철 장로의 ‘야누스의 얼굴’ 긍정과 부정을 엮은 두 편의 글을 읽고 느낀 것은 부끄러움뿐이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랴. 하지만, 호남출신이자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인 박성철 장로는 한국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줬다. 대형사고가 터졌다고 하면 그 중심에 크리스천이 있다는 사실에 한국교회는 휘청거리며 위기를 맞고 있다.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본 것 같은 충격이다. 신이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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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07-23
  • 정정보도
    지난 4월 14일 제180회 통합 부산노회(노회장 이종윤 목사)에서 노회회관 건립 준비위에서 발의한 회관건립은 현 좌천동 소재 부산노회 회관 자리에 조사 용역을 허락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이 논의 과정에서 위원장이 “회관 건립 기금 19억원을 출자한 교회가 나눠 갖지 않으면 위원장직을 사임하겠다”는 내용이 지난 <광야의 소리>란에 보도된 바 있지만 확인결과 사실과 달랐다. 위원장이 한 말이 아니라 지난해 가을노회 때 북부시찰 J 목사가 한 말을 마치 위원장이 한 말인것처럼 한데 대해 부산노회 임원회가 정정을 요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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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09
  • 합동과 통합이 군소교단?
    최근 경남 창녕지역에서 고신교단 모 장로가 합동과 통합교단 장로들을 향해 “어디서 군소교단이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치 유머처럼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이를 들은 사람들 모두 웃기만 했다. 또 마산에서는 감리교를 향해 군소교단이라 말했고, 과거 부산에서도 고신 교단 목사가 기하성과 감리교를 향해 군소교단이라 말해 논란이 일어난 적 있다. 부산경남지역에서야 고신이 많지만 전국적으로 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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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09
  • 신천지측 행정소송 돌입
    신천지 안드레지파 본부건축이 연제구청에 의해 거부되자, 신천지 측이 지난 6월20일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신천지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 된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교계가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부산이 이단의 성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천지대책위원회도 교계를 중심으로 20여 만명의 ‘건축반대’서명과 기독인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법률팀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건축반대를 대응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신천지 대책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어서 그나마 양호한 편. 이단 박옥수가 주최하는 IYF 월드문화캠프에 전세계 50여개국 약 4천여 명의 학생들과 20여 개국의 교육부, 청소년부 장차관 및 50여개 대학의 총장과 학장이 벡스코에 모여 행사를 하고 있지만,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있다. 뜻있는 사람들은 “이러다 부산이 이단의 성지가 될 것 같다”며 교계가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농담이 진담이 될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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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09
  • 이사장 직함 빼고 소개
    고신대복음병원 영안실이 리모델링되고 지난 6월 11일 오픈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날 사회를 맡은 법인이사 양재한 장로는 현 이사장 강영안 장로를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빼고 “강영안 장로가 인사하겠습니다”고 소개하는 한편, 축사를 한 김종인 전 이사장을 소개 할 때는 “김종인 전 이사장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라고 말해 장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많은 참석자들은 “양 장로가 강 이사장을 이사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비춘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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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09
  • 영도교회 故 오기병 장로의 가문은 미국을 감동시켰다
    몇 주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아홉 목숨을 빼앗은 범인에게 한 유족이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엄마를 안을 수도 엄마와 얘기를 나눌 수도 없지만 당신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를 기도하겠다”고 말이다. 끔찍한 사건 재판 현장이 화합과 치유의 생생한 증언장이 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진한 용서의 힘을 1958년 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보여줬다. 당시 한국인 유학생을 죽인 흑인 청소년들을 용서한 유학생 부모인 부산 영도교회 故 오기병 장로이다. 오 장로는 “용서의 가장 큰 혜택은 용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한 그리스도의 사랑, 그 자체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58년 4월 25일 금요일 밤 9시경 미국 필라델피아주 펜실베니아대학 주변 해밀턴36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당시 26세)가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통으로 가던 중 흑인 청소년 11명이 달려들어 오씨를 에워싸 때리고 유리병을 깨트려 몸을 찔렀다. 정신없이 맞은 오씨는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오씨가 머물던 작은 아버지 오기항 목사의 집을 나선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범인들은 근처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스파티 입장료 3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발생 이틀 만에 범인들은 붙잡혔고 다음날 아침 이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언론들은 대서특필하며 일제히 머리기사로 다뤘다. 사람들은 3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흑인청소년들을 비난했다.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배심원들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11명 중 3명이 살인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필라델피아 시장까지 참여한 오인호 씨의 장례식은 수많은 조문객이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오기병 장로가 보낸 편지 한통이 미국을 울렸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죽은 오인호 씨의 아버지 오기병 장로의 편지였다. 오기병 장로는 부산 영도교회에 출석했으며, 한 때 유명했던 ‘영진보일러’로 돈을 꽤 많이 벌었던 믿음 좋은 시무장로였다. 오기병 장로가 보낸 편지에는 아들을 죽인 범인들에게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과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모금한 돈 500불을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 기독교적 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들 인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고, 큰 충격과 비관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들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구원하고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통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청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희생자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교육적 빈곤이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업교육 및 사회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서 연결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으로 우리의 소망을 밝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 국민들과 특히 우리의 피붙이인 아들을 죽게 한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기병 장로(오인호 아버지)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을 감동의 물결로 덮어 오 장로의 사랑과 용서의 편지는 미국 사회를 다시 한 번 들썩이게 했다. 당시 언론들은 아들을 죽인 원수를 향해 용서와 사랑을 손을 내민 오씨의 부모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 5월 2일자 신문에는 “To Return Good for Evil(악을 선으로 갚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는 “In Ho Oh's parents to give $500 to help his stayers(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500불을 기부한 오씨의 부모님)”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4면에 걸쳐 오씨와 그의 가족에 대해 보도했다. ▲故 오기병 장로의 가문은? 오기병 장로와 그의 부인 한신현 권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통합 영도교회를 창립한 창립멤버이다. 이대운 장로의 부친과 함께 영도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그의 동생 오기항 목사가 미국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 사건 이후 사재를 들여 ‘오인호 기념 코리아센터’를 건립하고 오기병 가족이 보여 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센터 일을 맡아오던 오 목사가 10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오인호기념센터’도 멈춰 있다. 건물은 잠겨있고 센터 공터에 잡초만 무성하다. 오씨가 펜실베니아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다녔던 이스턴대학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씨의 희생과 그의 가족들이 보여 준 기독교적 신앙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금은 오인호장학금을 만들고 도서관에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룸’을 만들어 매년 오씨가 사고를 당한 4월 전후에 추모행사를 가져왔다. 지난 5월 12일에도 도서관에서 추모식이 있었다. 오인호씨는 미국에 유학가기 전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기독학생협동관에 <협조의 벗>에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영도교회 출신 중 서울대에 입학한 오인호와 구영철 목사(서울 브니엘교회 담임), 선교사 이춘모 목사(인도네시아)가 모두 서울대 출신들이다. 오기병 장로의 아들 오덕호 목사(한일장신대학교 총장)도 경남고교를 나와 서울공대를 졸업했다. 오기병 장로는 27세때 최연소 시무장로가 되어 원로로 계시다가 영도교회에서 서울 연동교회로 옮겨 갔다. 오 장로는 한때 연탄을 주 원료로 하는 영진보일러를 발명해 한창 잘 나가던 기업인이었다. ▲1953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교회를 세운 故 오기항 목사의 아들, 최초 한인 시의원 오기병 장로의 동생 오기항 목사의 아들인 데이비드 오(한국명 오승호)는 2011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 시의원이 됐다. 지난해 1월엔 필라델피아 한인의 날(매년 1월 13일)을 제정했다. 오 의원은 아내 정희선 씨와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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