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1(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자수첩

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故 송상석 목사, 그는 친일파의 고등계 형사였는가?
    고려파(고신)의 두 물줄기가 있다면 故 한상동 목사와 故 송상석 목사일 것이다. 이들이 고려파 초창기 교단형성의 초석을 다졌다는 것을 교회 역사가들이 말해주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고신 경남노회 100년사를 집필하기 위해 허창수 목사(창원동성교회), 양재한 장로(창원 한빛교회), 강종환 장로(가음정교회)가 본사를 내방했다. 강종환 장로는 “<경남노회 100년사>는 고신교단의 역사이자 교단 역사의 전초기지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고신 경남(법통)노회에서 활동했던 故 송상석 목사(제일문창교회)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故 송상석 목사는 과연 고등계 형사였나? 故 송상석 목사는 1967년부터 1975년까지 고려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의 사위 故 한남석 장로(부산영락교회)가 소유했던 애린유스호스텔(부산 중구 보수동)과 부산남교회 인근 부흥여관(부산 중구 동광동)에 머물면서 이기진 목사(진영교회), 현기택 장로(제일신마산교회), 김해룡 장로(진해시장 역임), 故 박윤섭 장로(교단 장로부총회장 역임) 등 그의 일급참모들과 함께 의논하며 어울렸던 현장을 목격한 바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코람데오닷컴에 K장로가 기술한 글에서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고 애를 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난 故 송상석 목사를 친일파, 고등계형사, 독립 운동가를 투옥시킨 인물로 표현한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다. 송상석 목사는 1938년 신사참배 반대자를 도운 혐의로 이약신 목사와 함께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루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나왔다. 그의 좋은 점은 뒤로하고 나쁜 과거 행적을 나열하면서 매도하는 것은 역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약간 벗어난 사관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1979년 9월 총회 직전, 총회 전망기사를 위해 송상석 목사가 살아생전 자주 갔었던 애린유스호스텔에서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의심과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기자 근성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송 목사님, 어른에 대한 실례를 무릅쓰고 어렵게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라고 운을 떼자 송 목사는 한번 들어볼 테니 말을 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딱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과거 고등계 형사로 계셨습니까?” 그가 대답하기를 “아, 그거. 교회를 다니지 않던 소싯적에 잠시 일본계 형사 시험에 합격해 활동한 적 있었지. 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민족 양심에 가책을 받아 사표를 쓰게 됐다네.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 사립 원량학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이곳 교회 강임영 영수의 전도로 예수를 믿었지”라면서 “그런데 말일세,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인을 괴롭게 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사도 바울을 기억하는가? 그때 형사 신분증을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네. 1946년 만주에서 신학자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오라는 사명을 맡아 바다로, 산으로 무수한 역경을 겪을 때 그 신분증이 필요했다네. 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해 준비하셨던 것 아닌가 싶네. 일본군 검문소를 수없이 통과할 때마다 그 형사신분증으로 죄인(박형룡)을 압송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위기를 모면했었네. 그때는 ‘친일인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속국에서 살아남아 큰일을 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이었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대 기사화하지 말게”라고 오프더레코드를 조건으로 말했다. 통합 측 유호준 증경총회장을 비롯해 부산에 김길창 목사(항서교회), 소설가 이광수 등 친일인사 명부에 올려져있는 교계인사들이 수없이 많았다. 송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제 당시 그들의 마음 한켠에 조국 독립을 위한 염원을 붙들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또 강압에 못 이겨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故 송상석 목사가 남긴 업적은? 송상석 목사는 서울에서 종로 중앙교회 김창준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김창준 목사의 후원으로 금연, 금주 등 절제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3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고 1934년 제29회에 졸업했다. 1934년 5월에는 조만식 장로가 회장으로 조직된 ‘조선 기독교 절제 운동회’에 총무를 맡았다. 그 후 평양문 밖 대타령교회 청빙을 받아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무렵 경남 진해에서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 목사 등이 주도한 신학 강좌가 개최됨을 알고 거기에 합류하면서 고신교단에 발을 딛게 됐다. 그는 송도 고려신학교 땅을 합동 측과 환원하면서 갈라설 때 배경업 장로(칼빈신학교 서무과장)가 밤새 줄자로 재어 도면을 그리고 법원에 고신교단 것으로 등기하고 또 구포 땅 70만여 평 기독교협력회 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김진경 교수(연변과기대 총장), 김상원 장로로 이어오면서 김상원 장로 개인에게 고스란히 뺏겼던 비하인드도 있다. 오늘날 성도고등학교 자리다. 여러 교단 부동산을 바로 찾아 세우려고 노력한 사람이 송상석 목사지만 그의 업적은 온데간데없이 나쁜 역사의 흔적만 들춰지고 있다. 마산문창교회의 지루한 소송 30년 법정분쟁자로, 1967년 7월 고려학원 재단 공문서위조 책임의 불명예 이사장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역사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도 기자들의 역할 아니겠는가?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5-06-25
  • 부기총, 법인 정관 심의없이 결정한 목사상임회장은 무효
    지난 4일 시온성교회에서 개최된 부기총 제38회기 총회에서 목사상임회장 5인 이하, 장로상임회장 1인을 선출한다는 정관 개정을 논의, 개정안은 통과됐다. 하지만 정관개정위원 7인이 다음 6일날 따로 모여 논의하면서 사단법인 정관은 일반 회칙과 달라 법인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주무관청의 허락을 득한 후에 총회 인준을 받는다는 명분시행규정 때문에 목사상임회장은 수석 상임회장 이외는 모두가 무효로 확정짓고 임시총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결정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6-11
  • 이혼하면 장로 못돼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제109년차 총회를 개최했다. 금번 총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헌법 개정안 처리에서 장로를 세울 때 ‘이혼 사실이 없는 자’ 자격을 추가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예수 믿기 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했지만, 헌법개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교계 내에서는 교회 지도자인 장로가 교인들에게 덕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기성을 필두로 타 교단에도 장로 자격에 대한 헌법 규정이 강화될지 관심이 집중 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6-11
  • 교회세습, 수도권지역이 주도
    최근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한국교회세습실태조사를 위해 2013년 3월 12일부터 2015년 1월 24일까지 제보를 받아 세습한 102개 교회의 명단을 공개했다. 서울(40개 교회), 경기지역(39개 교회)이 전국 세습한 교회의 3/4이 넘었다. 이외 대전/충청은 16개 교회, 대구/경북은 4개 교회, 광주/전라 2개 교회, 부산/경남 1개 교회로 조사됐다. 교단별로는 감리교-합동-통합 순이었고, 대부분 500명 이상의 중형교회가 세습을 단행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교단총회장(14명), 감리교감독(10명), 한기총 회장(4명) 등 일명 교회지도자들이 교회세습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6-11
  • 부평교회 권 목사 조기 은퇴 결심
    고신 부산노회는 지난 10일 부평교회에서 임시노회를 열고, 부평교회 권경호 담임목사 조기은퇴 및 위임 해제와 원로목사로 결의했다. 교회는 지난 4월 마지막 주일 공동의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했다. 따라서 6월 말로 목회 은퇴를 하는 선에서 휴식을 취하고 책 집필을 준비 중에 있다. 교회는 원로목사 예우 차원에서 그가 살던 아파트와 퇴직금 그리고 매월 생활비를 주기로 했다. 연중예산이 1억 원씩 상승할 때마다 2.4% 증액을 해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기로 방침을 세워 시행키로 했다. 후배양성과 교회를 위해 아름다운 조기은퇴바람이 고신 측과 한국교회에 춘풍처럼 불기 시작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6-11
  • 세습 기감, 합동, 통합 순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총 122개 교회가 세습을 단행했는데, 이중 85개가 직계세습을, 37개 교회가 변칙세습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단별로는 총 40개 교회가 세습한 기감이 1위, 예장합동과 통합이 2, 3위를 이었다. 특히 이날 변칙세습이 눈길을 끌었는데, 아들이나 사위를 지교회를 설립하여 담임으로 세우는 ‘지교회 세습’,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세습’, 한양제일교회(기감), 은혜교회(기감) 등에서 시도한 경우와 같이 여러교회가 서로 교차적으로 이루어가는 ‘다자간세습’, 아버지 목사가 자신과 가까운 목사에게 교회를 형식적으로 이양한 다음, 이를 다시 아들에게 물려주는 ‘쿠션세습’, ‘징검다리세습’, ‘분리세습’, ‘통합세습’, ‘동서간세습’ 등이 변칙세습으로 소개됐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교회세습은 교회를 사유화하는 것”이라며 “세습교회는 그 교회가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특정 가족의 혈연으로 맺어진 교회이며, 한 목회자 집안의 교회이고, 그 집안의 사기업이라는 것을 공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6-11
  • 야고보지파 건축 작정 헌금이 350억
    신천지 안드레지파 본부이전 문제로 교계가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는 이때, 신천지 야고보지파도 지난 5월 31일 건축작정헌금에 돌입했다. 목표액은 350억 원 규모. 실제 이 금액을 모금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100억원 이상의 건물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야고보지파는 주일 주차장 문제로 주변 민원을 많이 받고 있다. 주차문제에 대한 민원 해소를 할 수 없어, 결국 본부이전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야고보지파 본부를 어디로 이전하는가 여부다. 사하구 신평, 강서구 명지 등이 거론되지만, 항상 이상한 소문을 흘려 교계의 뒷통수를 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지역 교계가 긴장감 속에 예의 주시를 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6-11
  • 부산, 경남을 빛낸 교계 여성지도자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민족의 지도자들 중에는 부산, 경남이 낳은 여성 인물들이 많다. 양한나 선생은 1893년 3월 3일 출생 부산 동래 북천동 출생. 조국광복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대의원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초대회장을 지냈다. 1950년대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 여성노숙자, 고아, 생계형윤락여성, 정신병자 등을 돌보는 ‘자매여숙’을 설립하고 1976년 6월 26일 소천 할 때까지 소외된 여성들을 돌보는데 노력했다. 예수의 사랑을 봉사로 실천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은 희생과 헌신의 공덕으로 용신봉사상과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일신여학교 1회 졸업생이다. 현재 부산YWCA의 전신인 부산진일신여학교 청년회의 총무로서 여자기독교청년회 활동에 참여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밀항으로 상해에 가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상해에서 돌아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고, 1920년대부터 계속 돼 온 부산 지역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호주선교사 에이미 스키너는 양한나와 절친으로 한국에 올 때 양한나와 동행했다.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했던 에이미 선교사는 한국 땅을 밟은 첫 여성이다. 1946년 7월 1일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창립 시 총무도 없이 초대회장이 됐다. 농촌 부녀자들에게 농업, 축산, 원예 등의 기술을 교육하고 1984년 회장직을 안음전 권사에게 물려주고 부산여자기독교 청년회를 떠났다. 부산진교회의 명예권사인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교회 기장묘역에 안장됐다. 자매여숙은 양한나 여사의 뒤를 이어 그녀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부산진교회 장로 故우창웅 장로가 이사장으로, 그의 부인 윤애리나 권사가 2대 원장을 지내면서 평생토록 헌신했다. 우창웅 장로는 부산YMCA 제6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양한나 여사의 동생 양성봉 장로(초량교회)는 1949년부터 환도할 때까지 경남도지사를 지냈고, 환도 후에는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양성봉 장로는 10녀 1남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외동아들이다. 양성봉 장로는 부산진공립보통학교에서 공부한 후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진학, 졸업했다. 이후 부산철도국 서무과에서 일하기도 했고, 울주군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다가 부산으로 돌아와 미국인 선교사 어을빈의 제약회사에서 일했다. 1929년 초량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의 집례로 장로 장립을 받았다. 미군정시절인 1945년 11월 26일 부산시 부시장에 취임한 양성봉 장로는 솔직하고 화통한 성격과 아부하거나 잔꾀를 쓰지 않는 인물로 신뢰를 받아 1946년 1월 24일 제1대 부산시장에 취임하게 됐다. 양한나 여사의 부군은 김우영 변호사이며, 여동생 양봉옥 권사(부산진교회)는 우덕준 장로의 부인으로 부산YWCA 회장을 지냈다. 양한나 여사의 집안은 그야말로 YMCA, YWCA에서 활동한 공로자 집안이다. 그의 후손들은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믿음의 복을 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5-06-11
  • 황교안 총리 후보자, 그는 누구인가?
    교회 분쟁을 세상법정으로 가져가면 소송을 건 사람이나 소송을 당한 사람이나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 목사가, 장로가 자신의 교회에 속한 성도를 고소한다면 그 자체로 그 목사와 장로에 대한 신뢰는 평가절하 된다. 그래서 교회 분쟁이 종종 발생하고, 거기에 세상 법까지 개입되는 현실에 한 기독 법조인으로서 외면할 수 없어 2012년 <전문가가 말하는 교회분쟁과 화해 :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요단출판사)를 출판했다. 교회분쟁과 화해를 위한 해결책과 대안을 한권의 책으로 제시했다. 저자는 교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출판했다고 말했다. 그 저자가 지금 장안은 물론 대한민국 정치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황교안 전도사(법무부장관, 국무총리 후보자)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이 땅의 주님의 교회들이 분쟁으로 인해 세상의 법정을 드나드는 불미스런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갈망하면서 다음의 성경구절을 자주 인용해 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충고를 했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 6:7) 황 총리 후보자와 필자가 알게 된 것은 2009년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 시절 때였다. 그리고 2011년 부산고검장을 마치고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16개월간 근무했다. 그때 본보에 약 1년간 교회분쟁과 관련 법률칼럼을 게재했는데, 그가 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된 후 칼럼을 끝내게 됐다. 그가 부산에서 재직하던 시절에는 부산해운대 침례교회에 출석했다. 그와는 매주 화요일마다 가지는 조찬모임인 부산기독기관장회에서 종종 만나곤 했다. 그는 기독교교도소 설립을 추진했었다. 양인평 장로(전 부산고등법원장) 등 몇몇의 기독기관장들도 이에 참여했고, 김삼환 목사를 도와 여주 기독교 교도소를 설립하게 했다. 당시 부산에서도 재범을 막고 교화를 목적으로 부산 근교에 제2의 기독교 교도소를 설립하기 위해 장성만 목사를 비롯해 여러 인사들과 의논하고 발기했으나 중단된 사실이 있다.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 부산지역 교회를 순방할 때 그의 사모와 함께 듀엣으로 성가곡을 부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는 경기고, 성균관대를 나왔다. 그가 사법연수원 교수시절, 서울 수도침례신학교를 야간으로 다니면서 신학을 전공해 침례교단에서 전도사로 통했다. 그는 훗날 법조인의 삶을 마치면 일반 목회를 할 계획이라고 그가 한 간증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돕고, 헌신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아마 이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것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나라 민족을 사랑하는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새벽재단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 결실이라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로지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 나라 건설과 그의 의를 위해 세우신 믿음의 용사인 요셉과 다윗과 같은 지도자로 미리 준비하고 예비하신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그는 늘 겸손하다. 그의 청초하고 맑은 목소리 또한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와 닿게 한다. 그는 법조계에서 재직하는 동안 많은 복음의 사역을 행한 인물이었다. 양인평 장로 이후 김 신 대법관, 허진호 변호사 등 수많은 법조인이 부산기독기관장회에서 매주 화요일 조찬모임에 나와 성경말씀을 듣고 서로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이 모임이 하나님께서 귀한 인재를 길러 낼 수 있도록 하신 것 아닐까. 기독인재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이 땅에 복음을 전하라는 주의 명령을 사명으로 살아가는 삶의 영역이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길인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5-05-29
  • 고신대 김성수 전 총장으로부터 전액 환수
    고신대학교(총장 전광식)는 필리핀어학연수원과 관련된 비용 전액을 김성수 전 총장으로부터 환수했다. 전광식 총장은 “이제 학교와 김성수 전 총장과의 모든 문제는 깨끗이 종료되었다”면서 “이에 학교도 (김 전 총장을)기독교교육과 명예교수로 추대하여 학교가 할 수 있는 예우를 했다”고 말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5-05-29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