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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K교단 제3의 계파가 형성됐다고?
    K교단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총회임원, 유지이사, 법인이사, 감사후보 선거 공고를 교단지 6월 13일자에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7월 7일 오후 2시 각 노회가 임시노회를 열어 본격적으로 후보자 추천결의에 할 예정이다. 하지만 모 인터넷 신문에서 사설로 쓴 K교단 계파의식이 희석되고 신대원 기수와 서열 중심으로 단일 후보 전망을 게재했다. 그리고 계파가 많이 희미해진 것은 교단 인사들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동안 내려온 계파의식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증경총회장 L목사는 기자에게 “모든 조직체에는 계파가 있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이번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현 검찰총장보다 2년 후배를 봐도 서열과 기수는 정치계나 교단에도 파괴될 수 있고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또한 유일하게 보수 개혁파에서 부산 B목사를 이번 부총회장 후보로 러브콜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단 내 새로운 제3의 계파가 생겨난 것이 인터넷 모 언론이라고 교단 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어느 중진 목사가 본보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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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25
  • K장로 사과함으로 취하
    부산 사하경찰서에 정식 고소한 바 있는 A교단 K장로가 직접 본사를 내방해 잘못을 시인, 사과함으로 고소인이 지난 5월 20일 조건 없이 취하하고 서로 화해했다. 부산사하서(제2015-02344호) 사건 처리 결과통보는 피해자가 피의자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명시적인 표현을 했으므로 불기소(공소권 없음)의견으로 부산지방검찰청에 송치했다고 통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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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25
  • 故 송상석 목사, 그는 친일파의 고등계 형사였는가?
    고려파(고신)의 두 물줄기가 있다면 故 한상동 목사와 故 송상석 목사일 것이다. 이들이 고려파 초창기 교단형성의 초석을 다졌다는 것을 교회 역사가들이 말해주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고신 경남노회 100년사를 집필하기 위해 허창수 목사(창원동성교회), 양재한 장로(창원 한빛교회), 강종환 장로(가음정교회)가 본사를 내방했다. 강종환 장로는 “<경남노회 100년사>는 고신교단의 역사이자 교단 역사의 전초기지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고신 경남(법통)노회에서 활동했던 故 송상석 목사(제일문창교회)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故 송상석 목사는 과연 고등계 형사였나? 故 송상석 목사는 1967년부터 1975년까지 고려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의 사위 故 한남석 장로(부산영락교회)가 소유했던 애린유스호스텔(부산 중구 보수동)과 부산남교회 인근 부흥여관(부산 중구 동광동)에 머물면서 이기진 목사(진영교회), 현기택 장로(제일신마산교회), 김해룡 장로(진해시장 역임), 故 박윤섭 장로(교단 장로부총회장 역임) 등 그의 일급참모들과 함께 의논하며 어울렸던 현장을 목격한 바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코람데오닷컴에 K장로가 기술한 글에서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고 애를 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난 故 송상석 목사를 친일파, 고등계형사, 독립 운동가를 투옥시킨 인물로 표현한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다. 송상석 목사는 1938년 신사참배 반대자를 도운 혐의로 이약신 목사와 함께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루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나왔다. 그의 좋은 점은 뒤로하고 나쁜 과거 행적을 나열하면서 매도하는 것은 역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약간 벗어난 사관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1979년 9월 총회 직전, 총회 전망기사를 위해 송상석 목사가 살아생전 자주 갔었던 애린유스호스텔에서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의심과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기자 근성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송 목사님, 어른에 대한 실례를 무릅쓰고 어렵게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라고 운을 떼자 송 목사는 한번 들어볼 테니 말을 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딱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과거 고등계 형사로 계셨습니까?” 그가 대답하기를 “아, 그거. 교회를 다니지 않던 소싯적에 잠시 일본계 형사 시험에 합격해 활동한 적 있었지. 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민족 양심에 가책을 받아 사표를 쓰게 됐다네.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 사립 원량학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이곳 교회 강임영 영수의 전도로 예수를 믿었지”라면서 “그런데 말일세,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인을 괴롭게 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사도 바울을 기억하는가? 그때 형사 신분증을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네. 1946년 만주에서 신학자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오라는 사명을 맡아 바다로, 산으로 무수한 역경을 겪을 때 그 신분증이 필요했다네. 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해 준비하셨던 것 아닌가 싶네. 일본군 검문소를 수없이 통과할 때마다 그 형사신분증으로 죄인(박형룡)을 압송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위기를 모면했었네. 그때는 ‘친일인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속국에서 살아남아 큰일을 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이었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대 기사화하지 말게”라고 오프더레코드를 조건으로 말했다. 통합 측 유호준 증경총회장을 비롯해 부산에 김길창 목사(항서교회), 소설가 이광수 등 친일인사 명부에 올려져있는 교계인사들이 수없이 많았다. 송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제 당시 그들의 마음 한켠에 조국 독립을 위한 염원을 붙들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또 강압에 못 이겨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故 송상석 목사가 남긴 업적은? 송상석 목사는 서울에서 종로 중앙교회 김창준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김창준 목사의 후원으로 금연, 금주 등 절제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3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고 1934년 제29회에 졸업했다. 1934년 5월에는 조만식 장로가 회장으로 조직된 ‘조선 기독교 절제 운동회’에 총무를 맡았다. 그 후 평양문 밖 대타령교회 청빙을 받아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무렵 경남 진해에서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 목사 등이 주도한 신학 강좌가 개최됨을 알고 거기에 합류하면서 고신교단에 발을 딛게 됐다. 그는 송도 고려신학교 땅을 합동 측과 환원하면서 갈라설 때 배경업 장로(칼빈신학교 서무과장)가 밤새 줄자로 재어 도면을 그리고 법원에 고신교단 것으로 등기하고 또 구포 땅 70만여 평 기독교협력회 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김진경 교수(연변과기대 총장), 김상원 장로로 이어오면서 김상원 장로 개인에게 고스란히 뺏겼던 비하인드도 있다. 오늘날 성도고등학교 자리다. 여러 교단 부동산을 바로 찾아 세우려고 노력한 사람이 송상석 목사지만 그의 업적은 온데간데없이 나쁜 역사의 흔적만 들춰지고 있다. 마산문창교회의 지루한 소송 30년 법정분쟁자로, 1967년 7월 고려학원 재단 공문서위조 책임의 불명예 이사장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역사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도 기자들의 역할 아니겠는가?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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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06-25
  • 부기총, 법인 정관 심의없이 결정한 목사상임회장은 무효
    지난 4일 시온성교회에서 개최된 부기총 제38회기 총회에서 목사상임회장 5인 이하, 장로상임회장 1인을 선출한다는 정관 개정을 논의, 개정안은 통과됐다. 하지만 정관개정위원 7인이 다음 6일날 따로 모여 논의하면서 사단법인 정관은 일반 회칙과 달라 법인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주무관청의 허락을 득한 후에 총회 인준을 받는다는 명분시행규정 때문에 목사상임회장은 수석 상임회장 이외는 모두가 무효로 확정짓고 임시총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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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11
  • 이혼하면 장로 못돼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제109년차 총회를 개최했다. 금번 총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헌법 개정안 처리에서 장로를 세울 때 ‘이혼 사실이 없는 자’ 자격을 추가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예수 믿기 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했지만, 헌법개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교계 내에서는 교회 지도자인 장로가 교인들에게 덕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기성을 필두로 타 교단에도 장로 자격에 대한 헌법 규정이 강화될지 관심이 집중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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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11
  • 교회세습, 수도권지역이 주도
    최근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한국교회세습실태조사를 위해 2013년 3월 12일부터 2015년 1월 24일까지 제보를 받아 세습한 102개 교회의 명단을 공개했다. 서울(40개 교회), 경기지역(39개 교회)이 전국 세습한 교회의 3/4이 넘었다. 이외 대전/충청은 16개 교회, 대구/경북은 4개 교회, 광주/전라 2개 교회, 부산/경남 1개 교회로 조사됐다. 교단별로는 감리교-합동-통합 순이었고, 대부분 500명 이상의 중형교회가 세습을 단행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교단총회장(14명), 감리교감독(10명), 한기총 회장(4명) 등 일명 교회지도자들이 교회세습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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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11
  • 부평교회 권 목사 조기 은퇴 결심
    고신 부산노회는 지난 10일 부평교회에서 임시노회를 열고, 부평교회 권경호 담임목사 조기은퇴 및 위임 해제와 원로목사로 결의했다. 교회는 지난 4월 마지막 주일 공동의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했다. 따라서 6월 말로 목회 은퇴를 하는 선에서 휴식을 취하고 책 집필을 준비 중에 있다. 교회는 원로목사 예우 차원에서 그가 살던 아파트와 퇴직금 그리고 매월 생활비를 주기로 했다. 연중예산이 1억 원씩 상승할 때마다 2.4% 증액을 해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기로 방침을 세워 시행키로 했다. 후배양성과 교회를 위해 아름다운 조기은퇴바람이 고신 측과 한국교회에 춘풍처럼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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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 세습 기감, 합동, 통합 순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총 122개 교회가 세습을 단행했는데, 이중 85개가 직계세습을, 37개 교회가 변칙세습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단별로는 총 40개 교회가 세습한 기감이 1위, 예장합동과 통합이 2, 3위를 이었다. 특히 이날 변칙세습이 눈길을 끌었는데, 아들이나 사위를 지교회를 설립하여 담임으로 세우는 ‘지교회 세습’,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세습’, 한양제일교회(기감), 은혜교회(기감) 등에서 시도한 경우와 같이 여러교회가 서로 교차적으로 이루어가는 ‘다자간세습’, 아버지 목사가 자신과 가까운 목사에게 교회를 형식적으로 이양한 다음, 이를 다시 아들에게 물려주는 ‘쿠션세습’, ‘징검다리세습’, ‘분리세습’, ‘통합세습’, ‘동서간세습’ 등이 변칙세습으로 소개됐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교회세습은 교회를 사유화하는 것”이라며 “세습교회는 그 교회가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특정 가족의 혈연으로 맺어진 교회이며, 한 목회자 집안의 교회이고, 그 집안의 사기업이라는 것을 공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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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11
  • 야고보지파 건축 작정 헌금이 350억
    신천지 안드레지파 본부이전 문제로 교계가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는 이때, 신천지 야고보지파도 지난 5월 31일 건축작정헌금에 돌입했다. 목표액은 350억 원 규모. 실제 이 금액을 모금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100억원 이상의 건물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야고보지파는 주일 주차장 문제로 주변 민원을 많이 받고 있다. 주차문제에 대한 민원 해소를 할 수 없어, 결국 본부이전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야고보지파 본부를 어디로 이전하는가 여부다. 사하구 신평, 강서구 명지 등이 거론되지만, 항상 이상한 소문을 흘려 교계의 뒷통수를 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지역 교계가 긴장감 속에 예의 주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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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 부산, 경남을 빛낸 교계 여성지도자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민족의 지도자들 중에는 부산, 경남이 낳은 여성 인물들이 많다. 양한나 선생은 1893년 3월 3일 출생 부산 동래 북천동 출생. 조국광복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대의원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초대회장을 지냈다. 1950년대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 여성노숙자, 고아, 생계형윤락여성, 정신병자 등을 돌보는 ‘자매여숙’을 설립하고 1976년 6월 26일 소천 할 때까지 소외된 여성들을 돌보는데 노력했다. 예수의 사랑을 봉사로 실천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은 희생과 헌신의 공덕으로 용신봉사상과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일신여학교 1회 졸업생이다. 현재 부산YWCA의 전신인 부산진일신여학교 청년회의 총무로서 여자기독교청년회 활동에 참여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밀항으로 상해에 가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상해에서 돌아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고, 1920년대부터 계속 돼 온 부산 지역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호주선교사 에이미 스키너는 양한나와 절친으로 한국에 올 때 양한나와 동행했다.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했던 에이미 선교사는 한국 땅을 밟은 첫 여성이다. 1946년 7월 1일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창립 시 총무도 없이 초대회장이 됐다. 농촌 부녀자들에게 농업, 축산, 원예 등의 기술을 교육하고 1984년 회장직을 안음전 권사에게 물려주고 부산여자기독교 청년회를 떠났다. 부산진교회의 명예권사인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교회 기장묘역에 안장됐다. 자매여숙은 양한나 여사의 뒤를 이어 그녀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부산진교회 장로 故우창웅 장로가 이사장으로, 그의 부인 윤애리나 권사가 2대 원장을 지내면서 평생토록 헌신했다. 우창웅 장로는 부산YMCA 제6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양한나 여사의 동생 양성봉 장로(초량교회)는 1949년부터 환도할 때까지 경남도지사를 지냈고, 환도 후에는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양성봉 장로는 10녀 1남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외동아들이다. 양성봉 장로는 부산진공립보통학교에서 공부한 후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진학, 졸업했다. 이후 부산철도국 서무과에서 일하기도 했고, 울주군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다가 부산으로 돌아와 미국인 선교사 어을빈의 제약회사에서 일했다. 1929년 초량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의 집례로 장로 장립을 받았다. 미군정시절인 1945년 11월 26일 부산시 부시장에 취임한 양성봉 장로는 솔직하고 화통한 성격과 아부하거나 잔꾀를 쓰지 않는 인물로 신뢰를 받아 1946년 1월 24일 제1대 부산시장에 취임하게 됐다. 양한나 여사의 부군은 김우영 변호사이며, 여동생 양봉옥 권사(부산진교회)는 우덕준 장로의 부인으로 부산YWCA 회장을 지냈다. 양한나 여사의 집안은 그야말로 YMCA, YWCA에서 활동한 공로자 집안이다. 그의 후손들은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믿음의 복을 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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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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