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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도교회 故 오기병 장로의 가문은 미국을 감동시켰다
    몇 주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아홉 목숨을 빼앗은 범인에게 한 유족이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엄마를 안을 수도 엄마와 얘기를 나눌 수도 없지만 당신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를 기도하겠다”고 말이다. 끔찍한 사건 재판 현장이 화합과 치유의 생생한 증언장이 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진한 용서의 힘을 1958년 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보여줬다. 당시 한국인 유학생을 죽인 흑인 청소년들을 용서한 유학생 부모인 부산 영도교회 故 오기병 장로이다. 오 장로는 “용서의 가장 큰 혜택은 용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한 그리스도의 사랑, 그 자체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58년 4월 25일 금요일 밤 9시경 미국 필라델피아주 펜실베니아대학 주변 해밀턴36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당시 26세)가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통으로 가던 중 흑인 청소년 11명이 달려들어 오씨를 에워싸 때리고 유리병을 깨트려 몸을 찔렀다. 정신없이 맞은 오씨는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오씨가 머물던 작은 아버지 오기항 목사의 집을 나선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범인들은 근처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스파티 입장료 3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발생 이틀 만에 범인들은 붙잡혔고 다음날 아침 이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언론들은 대서특필하며 일제히 머리기사로 다뤘다. 사람들은 3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흑인청소년들을 비난했다.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배심원들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11명 중 3명이 살인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필라델피아 시장까지 참여한 오인호 씨의 장례식은 수많은 조문객이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오기병 장로가 보낸 편지 한통이 미국을 울렸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죽은 오인호 씨의 아버지 오기병 장로의 편지였다. 오기병 장로는 부산 영도교회에 출석했으며, 한 때 유명했던 ‘영진보일러’로 돈을 꽤 많이 벌었던 믿음 좋은 시무장로였다. 오기병 장로가 보낸 편지에는 아들을 죽인 범인들에게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과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모금한 돈 500불을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 기독교적 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들 인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고, 큰 충격과 비관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들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구원하고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통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청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희생자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교육적 빈곤이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업교육 및 사회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서 연결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으로 우리의 소망을 밝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 국민들과 특히 우리의 피붙이인 아들을 죽게 한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기병 장로(오인호 아버지)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을 감동의 물결로 덮어 오 장로의 사랑과 용서의 편지는 미국 사회를 다시 한 번 들썩이게 했다. 당시 언론들은 아들을 죽인 원수를 향해 용서와 사랑을 손을 내민 오씨의 부모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 5월 2일자 신문에는 “To Return Good for Evil(악을 선으로 갚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는 “In Ho Oh's parents to give $500 to help his stayers(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500불을 기부한 오씨의 부모님)”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4면에 걸쳐 오씨와 그의 가족에 대해 보도했다. ▲故 오기병 장로의 가문은? 오기병 장로와 그의 부인 한신현 권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통합 영도교회를 창립한 창립멤버이다. 이대운 장로의 부친과 함께 영도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그의 동생 오기항 목사가 미국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 사건 이후 사재를 들여 ‘오인호 기념 코리아센터’를 건립하고 오기병 가족이 보여 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센터 일을 맡아오던 오 목사가 10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오인호기념센터’도 멈춰 있다. 건물은 잠겨있고 센터 공터에 잡초만 무성하다. 오씨가 펜실베니아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다녔던 이스턴대학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씨의 희생과 그의 가족들이 보여 준 기독교적 신앙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금은 오인호장학금을 만들고 도서관에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룸’을 만들어 매년 오씨가 사고를 당한 4월 전후에 추모행사를 가져왔다. 지난 5월 12일에도 도서관에서 추모식이 있었다. 오인호씨는 미국에 유학가기 전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기독학생협동관에 <협조의 벗>에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영도교회 출신 중 서울대에 입학한 오인호와 구영철 목사(서울 브니엘교회 담임), 선교사 이춘모 목사(인도네시아)가 모두 서울대 출신들이다. 오기병 장로의 아들 오덕호 목사(한일장신대학교 총장)도 경남고교를 나와 서울공대를 졸업했다. 오기병 장로는 27세때 최연소 시무장로가 되어 원로로 계시다가 영도교회에서 서울 연동교회로 옮겨 갔다. 오 장로는 한때 연탄을 주 원료로 하는 영진보일러를 발명해 한창 잘 나가던 기업인이었다. ▲1953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교회를 세운 故 오기항 목사의 아들, 최초 한인 시의원 오기병 장로의 동생 오기항 목사의 아들인 데이비드 오(한국명 오승호)는 2011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 시의원이 됐다. 지난해 1월엔 필라델피아 한인의 날(매년 1월 13일)을 제정했다. 오 의원은 아내 정희선 씨와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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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07-09
  • 이사장 직함 빼고 소개
    고신대복음병원 영안실이 리모델링되고 지난 6월 11일 오픈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날 사회를 맡은 법인이사 양재한 장로는 현 이사장 강영안 장로를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빼고 “강영안 장로가 인사하겠습니다”고 소개하는 한편, 축사를 한 김종인 전 이사장을 소개 할 때는 “김종인 전 이사장의 축사가 있겠습니다”라고 말해 장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많은 참석자들은 “양 장로가 강 이사장을 이사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비춘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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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30
  • 임박한 고신대병원장 선거
    7월 20일 고신대복음병원장 선출은 고려학원 재단이사회에서 이사 9명 중 3분의 2 이상, 총 6명의 지지표를 받아야 가능하다. 이번 병원장 선거는 전광식 총장과 이사회가 조율해야만 통과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총장 고유권한인 제청권을 병원장 심사위를 구성해 후보자를 제청하겠다고 총장이 발표하자, 일부 이사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한편, 잘못하면 병원장 대행체제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현 이상욱 병원장의 임기는 8월 20일로, 한달 전에 선정하는 이사회의 행보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배제 못한다는 여론이다. 항간에 현 이상욱 병원장이 재선을 언급했다고 하고 현 부원장이며 고신의대출신 1기생 오경승 교수도 병원장 도전을 할 것이라는 여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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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 통합 제100회 총회 공천위원장 민영란 목사 선임
    통합 측 제100회 총회 핵심 상비부를 공천하는 총회공천위원장에 부산의 민영란 목사(부산장신대 이사장)가 당선됐다. 민 목사는 총회 총대 1500여 명을 공천하는 총책임자가 되었고, 공천부 서기에 최현성 목사, 회계는 홍성언 장로로 총회 공천위 조직이 완료 됐다. 23일 100주년 기념 소강당에서 총회임원 주관으로 전국 65개 노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노회장 김영동 목사와 부산남노회장 민영란 목사가 경합을 벌여 26:37로 민 목사가 당선됐다. 총회 계파 가운데 고시영 대 반고시영 전선으로 개혁을 열망하는 노회장들의 쾌거였다고 민 목사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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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 K교단 제3의 계파가 형성됐다고?
    K교단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총회임원, 유지이사, 법인이사, 감사후보 선거 공고를 교단지 6월 13일자에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7월 7일 오후 2시 각 노회가 임시노회를 열어 본격적으로 후보자 추천결의에 할 예정이다. 하지만 모 인터넷 신문에서 사설로 쓴 K교단 계파의식이 희석되고 신대원 기수와 서열 중심으로 단일 후보 전망을 게재했다. 그리고 계파가 많이 희미해진 것은 교단 인사들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동안 내려온 계파의식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증경총회장 L목사는 기자에게 “모든 조직체에는 계파가 있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이번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현 검찰총장보다 2년 후배를 봐도 서열과 기수는 정치계나 교단에도 파괴될 수 있고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또한 유일하게 보수 개혁파에서 부산 B목사를 이번 부총회장 후보로 러브콜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단 내 새로운 제3의 계파가 생겨난 것이 인터넷 모 언론이라고 교단 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어느 중진 목사가 본보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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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 K장로 사과함으로 취하
    부산 사하경찰서에 정식 고소한 바 있는 A교단 K장로가 직접 본사를 내방해 잘못을 시인, 사과함으로 고소인이 지난 5월 20일 조건 없이 취하하고 서로 화해했다. 부산사하서(제2015-02344호) 사건 처리 결과통보는 피해자가 피의자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명시적인 표현을 했으므로 불기소(공소권 없음)의견으로 부산지방검찰청에 송치했다고 통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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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5
  • 故 송상석 목사, 그는 친일파의 고등계 형사였는가?
    고려파(고신)의 두 물줄기가 있다면 故 한상동 목사와 故 송상석 목사일 것이다. 이들이 고려파 초창기 교단형성의 초석을 다졌다는 것을 교회 역사가들이 말해주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고신 경남노회 100년사를 집필하기 위해 허창수 목사(창원동성교회), 양재한 장로(창원 한빛교회), 강종환 장로(가음정교회)가 본사를 내방했다. 강종환 장로는 “<경남노회 100년사>는 고신교단의 역사이자 교단 역사의 전초기지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고신 경남(법통)노회에서 활동했던 故 송상석 목사(제일문창교회)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故 송상석 목사는 과연 고등계 형사였나? 故 송상석 목사는 1967년부터 1975년까지 고려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의 사위 故 한남석 장로(부산영락교회)가 소유했던 애린유스호스텔(부산 중구 보수동)과 부산남교회 인근 부흥여관(부산 중구 동광동)에 머물면서 이기진 목사(진영교회), 현기택 장로(제일신마산교회), 김해룡 장로(진해시장 역임), 故 박윤섭 장로(교단 장로부총회장 역임) 등 그의 일급참모들과 함께 의논하며 어울렸던 현장을 목격한 바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코람데오닷컴에 K장로가 기술한 글에서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고 애를 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난 故 송상석 목사를 친일파, 고등계형사, 독립 운동가를 투옥시킨 인물로 표현한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다. 송상석 목사는 1938년 신사참배 반대자를 도운 혐의로 이약신 목사와 함께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루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나왔다. 그의 좋은 점은 뒤로하고 나쁜 과거 행적을 나열하면서 매도하는 것은 역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약간 벗어난 사관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1979년 9월 총회 직전, 총회 전망기사를 위해 송상석 목사가 살아생전 자주 갔었던 애린유스호스텔에서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의심과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기자 근성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송 목사님, 어른에 대한 실례를 무릅쓰고 어렵게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라고 운을 떼자 송 목사는 한번 들어볼 테니 말을 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딱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과거 고등계 형사로 계셨습니까?” 그가 대답하기를 “아, 그거. 교회를 다니지 않던 소싯적에 잠시 일본계 형사 시험에 합격해 활동한 적 있었지. 내 적성에 맞지 않았고, 민족 양심에 가책을 받아 사표를 쓰게 됐다네.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 사립 원량학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이곳 교회 강임영 영수의 전도로 예수를 믿었지”라면서 “그런데 말일세,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인을 괴롭게 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사도 바울을 기억하는가? 그때 형사 신분증을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네. 1946년 만주에서 신학자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오라는 사명을 맡아 바다로, 산으로 무수한 역경을 겪을 때 그 신분증이 필요했다네. 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해 준비하셨던 것 아닌가 싶네. 일본군 검문소를 수없이 통과할 때마다 그 형사신분증으로 죄인(박형룡)을 압송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위기를 모면했었네. 그때는 ‘친일인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속국에서 살아남아 큰일을 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이었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대 기사화하지 말게”라고 오프더레코드를 조건으로 말했다. 통합 측 유호준 증경총회장을 비롯해 부산에 김길창 목사(항서교회), 소설가 이광수 등 친일인사 명부에 올려져있는 교계인사들이 수없이 많았다. 송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제 당시 그들의 마음 한켠에 조국 독립을 위한 염원을 붙들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또 강압에 못 이겨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故 송상석 목사가 남긴 업적은? 송상석 목사는 서울에서 종로 중앙교회 김창준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김창준 목사의 후원으로 금연, 금주 등 절제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3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고 1934년 제29회에 졸업했다. 1934년 5월에는 조만식 장로가 회장으로 조직된 ‘조선 기독교 절제 운동회’에 총무를 맡았다. 그 후 평양문 밖 대타령교회 청빙을 받아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무렵 경남 진해에서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 목사 등이 주도한 신학 강좌가 개최됨을 알고 거기에 합류하면서 고신교단에 발을 딛게 됐다. 그는 송도 고려신학교 땅을 합동 측과 환원하면서 갈라설 때 배경업 장로(칼빈신학교 서무과장)가 밤새 줄자로 재어 도면을 그리고 법원에 고신교단 것으로 등기하고 또 구포 땅 70만여 평 기독교협력회 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김진경 교수(연변과기대 총장), 김상원 장로로 이어오면서 김상원 장로 개인에게 고스란히 뺏겼던 비하인드도 있다. 오늘날 성도고등학교 자리다. 여러 교단 부동산을 바로 찾아 세우려고 노력한 사람이 송상석 목사지만 그의 업적은 온데간데없이 나쁜 역사의 흔적만 들춰지고 있다. 마산문창교회의 지루한 소송 30년 법정분쟁자로, 1967년 7월 고려학원 재단 공문서위조 책임의 불명예 이사장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역사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도 기자들의 역할 아니겠는가?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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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5-06-25
  • 부기총, 법인 정관 심의없이 결정한 목사상임회장은 무효
    지난 4일 시온성교회에서 개최된 부기총 제38회기 총회에서 목사상임회장 5인 이하, 장로상임회장 1인을 선출한다는 정관 개정을 논의, 개정안은 통과됐다. 하지만 정관개정위원 7인이 다음 6일날 따로 모여 논의하면서 사단법인 정관은 일반 회칙과 달라 법인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주무관청의 허락을 득한 후에 총회 인준을 받는다는 명분시행규정 때문에 목사상임회장은 수석 상임회장 이외는 모두가 무효로 확정짓고 임시총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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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11
  • 이혼하면 장로 못돼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제109년차 총회를 개최했다. 금번 총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헌법 개정안 처리에서 장로를 세울 때 ‘이혼 사실이 없는 자’ 자격을 추가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예수 믿기 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했지만, 헌법개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교계 내에서는 교회 지도자인 장로가 교인들에게 덕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기성을 필두로 타 교단에도 장로 자격에 대한 헌법 규정이 강화될지 관심이 집중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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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11
  • 교회세습, 수도권지역이 주도
    최근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한국교회세습실태조사를 위해 2013년 3월 12일부터 2015년 1월 24일까지 제보를 받아 세습한 102개 교회의 명단을 공개했다. 서울(40개 교회), 경기지역(39개 교회)이 전국 세습한 교회의 3/4이 넘었다. 이외 대전/충청은 16개 교회, 대구/경북은 4개 교회, 광주/전라 2개 교회, 부산/경남 1개 교회로 조사됐다. 교단별로는 감리교-합동-통합 순이었고, 대부분 500명 이상의 중형교회가 세습을 단행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교단총회장(14명), 감리교감독(10명), 한기총 회장(4명) 등 일명 교회지도자들이 교회세습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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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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