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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K성도에 출교조처 내린 H교회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교단의 부산 H교회 당회는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지난 16일 주일 1, 2부에 걸쳐 교회와 노회를 소란하게하고 고소고발사태를 야기시킨 K성도에게 가장 엄한 출교조처를 내리고 이를 교인 전체에 공포했다. 교회 당회는 이미 가중처벌로 징계를 하였음으로 상회에 상소할 기회마저 상실하였으므로 사회법정으로 끌고 갈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K성도는 이에 대응할 권리를 찾을 교회, 노회 출구가 막힌 상태에서 사회법정 밖에 다른 길은 없게 되었다. H교회는 K성도로 인해 어느 장로는 치리를 당하고, 지금도 당회장을 상대로 노회에 계류된 내용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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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5-20
  • 부산이 낳은 인물 윤인구 박사 (2)
    ▲위대한 꿈을 펼치다 1953년 서구 대신동 부산대의 판잣집 건물로 잘생긴 벽안의 미군 장성이 들어선다. 윤인구 부산대 초대총장의 초청을 받고 온 위트컴 미군 군수기지 사령관이었다. 반갑게 위트컴을 맞은 윤인구는 집무실에 붙여 놓은 그림 한점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장군, 내 그림을 한 점 사주시오”라고 말하자 “무슨 그림 말이요?”라고 위트컴이 말했다. 윤인구는 “이 땅의 꿈과 교육비전이 담긴 내 그림이오”라고 말하자 “하하, 그거 흥미롭군요. 좋소. 내가 그림을 사겠소”라고 위트컴이 말했다. 폐허가 되다싶이하고 피난민들의 집합지인 부산에 가장 위대하고 기념비적인 ‘예술작품’이 부활되는 순간이었다. 그 그림은 부산대 장전동 캠퍼스 배치도였다. 대학문을 열었으나 캠퍼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윤인구는 위트컴의 통큰 수락에 감격했다. 윤인구가 요구한 캠퍼스 부지는 금정구 장전동의 산지 50만평 일대 임야를 말했다. 어마어마한 면적이었다. 1952년에 준공한 서구 대신동의 부산대 건물 면적이 1566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00배 가량 넓은 땅이었다. 위트컴은 곧바로 정부와 경남도지사를 설득했고 장전캠퍼스 165만㎡(50만평)가 무상 양도되는 꿈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캠퍼스 시설 공사비 25만 달러를 대한미군원조처(AFAK)를 통해 자금을 지원 받게 되었다. 미군 제434공병부대는 온천장~부산대 길이 1.6km의 진입도로를 뚫어주었다. 오늘날 국립 부산대학교는 이렇게 한 크리스천 교육사역자의 꿈에 의해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그것도 개인을 떠난 이 민족의 교육대계를 위해 인재양성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가 된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부산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보잘 것 없는 한 기독 청년의 기도제목이 그림 한장으로 군수기지사령관을 감동시킨 것은 배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으로 믿는다고 훗날 윤인구 목사는 말했다. 위트컴(1894~1982) 사령관도 부산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한 크리스천이고, 그의 묘지는 지금 부산UN묘지에 안장됐다. 미군 32명 중 유일한 장성이다. 그는 한국인 여성(한묘숙 여사, 91세)과 결혼해 윤인구 총장과 함께 부산대 건설을 이뤄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도움으로 청년의 꿈이 실현됐다. 윤인구 박사가 프린스턴신학대학에서 공부한 것도 다 준비된 하나님의 섭리하신 과정이기도 했다. 문제의 그림은 시골에서 흔히 보이는 언덕 위의 교회 종이었다. ‘부산대 동래캠퍼스 평면도’라는 그림을 종 모양의 그림 안에 부산대 캠퍼스가 그려져 있다. “하나님이 천상을 가꾸듯 부산대를 천상화원으로 가꿨다. 집에서 주먹밥을 뭉쳐서 현장에 나오고, 인부들과 함께 국수를 말아먹고 군용침대에서 주무셨다.” 효원교사를 지을 때 함께 일했던 전 부산대 교수 오점량 씨(78세)의 얘기다. 오늘날 남아있는 염원한 웅비의 탑과 교기의 독수리상은 윤인구가 창안한 것이고 부산대 구석구석에 윤인구의 평소 꿈꾸던 그의 꿈의 비전과 정신이 요소요소에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의 제자이자 영적아들이었던 정권섭 장로(소정교회 원로)는 정직과 믿음, 교육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 올 자가 없을 만큼 대단했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부산대에서 15년간 근무했다. 61년 연세대 총장으로 부임해 4년간 근무했다. 80년 중풍으로 눕기까지 부산신학교(지금 부산장신대학교), 영남신학교(지금 영남신학대학교) 교장 등 교직자로 살다가 1986년 1월 25일 하늘나라로 갔다. 훗날 윤인구 박사는 전재산 2억 원을 부산대 후진양성을 위해 장학기금으로 희사하고 인덕기념관이 대학안에 세워져 있다. 그와 그의 부인 이름을 한자씩 딴 인덕기념관. 그는 영원한 이 땅의 교육자이자 (광복교회를 일본인으로부터 인수받아 목회) 목회자이자 애국애족한 민족의 지도자요 부산이 낳은 교계 지도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정도다. (참고문헌: 국제신문 새로 쓰는 인물사 2016.3.7.일자)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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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6-05-20
  • 세상 갑질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학교법인 고려학원(이사장 강영안 장로) 징계위원회가 5월 3일 모임을 가졌다. 강 이사장이 지난 3월 22일 이사회에서 병원행정 처장의 임기만료를 결정하고 감사 보고를 이유로 징계에 회부 한 뒤 첫 모임이다. 강 이사장은 교단지에 해명서를 통해 감사보고서가 징계위 구성의 사유서라고 해명했다. 차후에 발생하는 문제에 자신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여질 수 있다. 징계위원회에서 조사하고 사실이 아닐 시에는 오히려 의혹 해소를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니냐고 강조하고 있지만, 징계회부 자체가 개인과 기관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 자체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인지.. 징계의 회부로 얻어지는 일보다 내부적인 위화감 조성과 소신있는 업무를 제한함에서 오는 총체적 행정력 감소가 뚜렷한데도,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사장의 입장은 마치 지배적 지위의 남용, 즉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갑질’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여론이다. 세상에 어느 재판에 검사와 판사가 겸직을 하도록 하고, 직위를 이용해 강행하는 모습은 분명 세상에서 지적하는 갑질과 큰 차이가 없다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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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5-04
  • 기도원 이사장은 전도목사가 될 수 없다
    기도원에 파송하는 전도목사는 원장은 가능하나 이사장이나 운영자는 될 수 없다는 총회 헌법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 나왔다. 이에 T교단 부산N노회에 소속한 모 기도원 이사장은 무임목사로 전락하고 말았던 사실이 이번 4월 노회에서 확인되었다고 한 노회 관계자가 말했다. 무임 3년이면 노회에서 제명이 되고마는 현실은 노회마다 심사숙고해서 정치부가 진단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부산N노회의 경우 특정신학교 출신들을 선동해 특정 인사에게 표 몰아주기, 총대선출 만들기로 유명했다. 노골적인 정치활동의 결과로 결국 무임목사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뜻있는 교계목사는 말했다. 노회 안에서 금권, 출신신학교를 등에 업고 로비하는 귀재가 이번에 제동이 걸렸다고 한다. 바로 장로부노회장이 총대 선출에서 탈락되는 현상은 그 후유증의 일환이라고 한다는데 사실이 맞는지는 아리송하다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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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5-04
  • 준비 많이 한 신천지
    신천지가 지난 4월 29일(금) 전국 CBS 방송국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펼쳤다. 부산에서도 약 2천여 명이 참석해 시위와 시가 행진을 벌였다. 이들의 시위 계획서를 입수한 결과 이들은 행사 전날부터 이날 시위를 준비했다. 복장도 상의 흰옷, 하의 자율, 흰 장갑, 머리띠를 부착하는 등 복장을 통일했다. 또 5가지 피켓 구호를 선정해 “건물이 무너질 듯 큰소리로” 제청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최근 이만희가 부산을 다녀갔다. 이단 전문가들은 야고보나 안드레 지파 본부 건물 이전 장소를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았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정도 사안이 아니라면 이만희가 직접 부산을 다녀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천지가 공격적으로 나옴에 따라, 앞으로 신천지와 교계가 마찰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신천지의 다양한 공격을 교계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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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5-04
  • 또 물타기 시도(?)
    부산장신대 A교수의 연구실적물 허위 제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 문제의 화살이 또 권성혁 행정처장을 향하고 있다. 과거 부산장신대는 학내 분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배후 인물로 권 처장을 지목해 왔지만, 어떤 증거나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다. 만약 그 소문들이 사실이었다면, 권 처장은 실형을 받고, 현재 감옥에 있어야 할 상황. 하지만 소문들은 다 추측에 불과했고, 조사결과 사실과 달랐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비화시켜 사건 본질만 흐려왔다는 비난만 받아왔다. 이번에도 사건의 본질보다, 이 문제를 정치화 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부산장신대 모 이사는 “고발(교육부에 진정)한 놈이 더 나쁘지 않느냐”, “배후에 권 처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권 처장과 관계가 좋지 않은 일부 교수들도 교육부 진정을 권 처장이 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권 처장은 “한두 번 겪어 본 일도 아니다. 일일이 대응하기 싫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사장 민영란 목사도 권 처장의 배후 의혹에 대해 “과거 내가 그들(일부 교수들)의 말만 믿고, 권 처장을 (학교에서)쫓아 내려고 최일선에 섰던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내가 법인 이사가 되면 제일 먼저 권 처장의 문제를 조사해 학교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의혹들은 사실과 달랐고, 그들의 거짓말만 드러났다. 그들의 말만 믿고 행동으로 나섰던 내가 부끄러웠다”며 “이제는 그런 정치쇼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절대 물타기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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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04
  • 부산이 낳은 인물 윤인구 박사 (1)
    청년기에는 부흥목사로, 장년기에는 농촌과 농민을 위한 계몽자로 그리고 후진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자로서, 노년에는 신학교 교장직과 사회봉사자로 활동한 윤인구 목사는 1903년 11월 1일 부산 북구 구포에서 태어났다. 부친 윤상은씨는 일제 때 독립군에 자금을 지원한 금융인었으며, 동래 부윤을 지낸 백부 윤필은 독립투사였던 종형 윤현진 등에서 보듯 그의 집안은 꽤 잘 나가는 부유한 유지 집안이었다. ▲기독교와 만남 일찍이 부산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래고보에 다니던 중 3.1운동에 가담했던 윤인구는 중도 퇴학 후 서울YMCA청년회학관에 다녔다. 그의 인생 항로를 정해준 기독교와의 만남은 일본 유학시절, 1920년 메이지학원 중학부에 입학해 성경과 톨스토이, 사회사업가의 체험론 등을 접하면서 기독교교육에 뜻을 두고 청교도적 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로 기독교에 심취했다. 명치학원에서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신앙사상에 잠시 열정했으나 뒷날 그는 내촌 선생의 신앙사상을 사회 진보적인 면에서 머물고 있다고 해서 보수주의의 요람 대학인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학사, 영국 에딘버러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1931년 평생 동지인 동갑내기 방덕수씨와 28세 늦은 나이에 결혼, 첫 전도사로 부임한 곳이 진주 옥봉교회에서 교역자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는 4년간의 목회 생활 끝에 교회는 사회 특히 비참한 농촌을 향해 좀 더 나아가야함을 깨닫고 그는 35년 마산 복음녹업실업전수학교로 부임, 농촌교회 사역자와 농촌 지도자양성을 꾀한 것은 나라가 사는 길은 젊은 인재를 기르고 양성하는 농촌 인재 육성에 기인함을 느낀 나머지 농촌 계몽운동에 젊은 나이로 전개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미 군정하에 경남도 학무과장을 맡았다. 일본인 교사들이 떠나버린 국교, 중학교를 다시 열고 교사양성에 온 힘을 쏟았다. 지금의 교육대학으로 발전한 부산사범학교도 이때 설립했고, 이화여전을 나온 부인이 영어교사를 맡아 수고했다. 이때 학무에 관여한 5년간 그가 길러낸 교사가 무려 15000여명에 달했다. ▲부산대학교 설립에 꿈을 펼치다 한편 1946년 5월 15일 부산대학 설립 기성회를 구성하여 마침내 부산대의 설립인가를 문교부로부터 받아냈다. 마땅한 교사(校舍)가 없어 수산대, 대신동의 청년학술원 등을 전전해야 했다. 그것마저 군에 뺏기고 대신동 운동장 뒤 종묘원을 매입, 천막교사를 짓게 되었다. 이곳에 유엔한국지원단 등과 후원회의 도움으로 목조 교사를 지었다. 그런 중 1953년 4월 종합대학 승격을 받아 낸 윤인구는 이해 11월 초대 부산대 총장에 추대되었다. (…계속)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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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04
  • 고린도교회로 되어가는 K교회, 안수집사 9명 집단 보직 사임 압박
    부산에 있는 K교회는 임시목사가 3년 당회에서 계속 청원이 거부되자 제직회 핵심멤버인 안수집사 9명이 당회에 항의하는 표시로 지난 4월 17일 주일 집단 보직 사임을 하고 말았다. K교회 Y목사는 이미 이번 4월 노회에 시무종료 사임서를 내어 임지가 없는 상태에서 개척을 하던지 해외에 유학을 가든지 양자 기로에 놓여 있게 되었다. K교회 당회원 9명 가운데 유일하게 2명만이 Y목사 계속 청원에 찬성하고 나머지는 사실상 반대하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임시목사 재청원과 연계하는 L장로의 복직을 전제로 허락하면 재청원에도 동의할 수 있다는 일부 재청원과는 무관한 당회원 내의 세력 갈등이 사태를 악화되게 말들었다고 한다. 이에 반발한 안수집사들이 보직 사임을 촉발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미 K교회는 부산지역에서 65년이란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있는 중형교회로서 30여 년간 목회를 마무리하고 은퇴한 원로B목사의 후임자가 임시목사로 4년전부터 온 이후로 2번째 바뀐 임시목사가 지금의 Y목사이다. 문제의 L장로는 교회 공금유용과 배임 의혹이 불거져 제직들로부터 심한 항의 끝에 이 문제가 L장로 스스로가 장로 3년 휴무에 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자숙 근신하여 재복직을 동료장로가 요구하였다가 반대 장로의 의견에 부딪혀 Y목사 재청빙과 빅딜로 연결되는 모양새로 안수집사 9명의 집단 보직사임을 불러오고 말았다. 안수집사 모씨는 “당회원들의 동료 구하기에 매진한다면 우리도 Y목사 구하기에 뜻을 두고 향방을 결정하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Y목사는 3월 제직회에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3년 만에 100여 명의 교인을 늘게 한 죄 밖에 없습니다”라면서 “내가 왜 그만두어야 합니까?”라고 항의하는 뜻을 밝혔는데 지난 3월 당회에서 4월 10일자로 정기노회에 사임을 밝혀 4월 노회에 정식 사임서를 제출했다. 당회 서기인 장로는 지난 20일 전화로 확인한 내용에서 “이미 Y목사는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유학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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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21
  • 당회 중 성경책을 던지는 장로를 보았는가?
    정식 당회를 하는 과정에서 담임목사가 못마땅한 말을 했다고 해서 모교회 K장로가 담임목사를 향해 성경책을 던진 사건이 교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의 교회 당회라 하지만 기분 언짢은 소리에 시무장로가 성경책을 던지는 행위는 불경죄 뿐아니라 당연히 치리감인데도 당회록에만 삽입해놓고는 그냥 넘어간 사실에 대해 뜻있는 교회 장로들은 ‘창피하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것도 B노회 K교회 당회 사건이 끊이지 않고 골치아픈 일만 있으니 교회 성장은 뒷걸음질하고 잘나가던 교회는 서서히 뒤처지고 있다. 노회 안에서 예산집행 규모로 보았을 때 3, 4위 하던 교회가 지금은 11위로 처져있는 교회가 되어 안타까워 했다. 이 사건은 오래된 사건이긴 하지만 지금도 목하 진행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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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21
  • P노회 춘계노회에서 본 총대선출 이변
    D교단 P노회 춘계노회에서 비춰진 총대투표는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장로 총대에서 늘 서열 1-2위로 섰던 D장로가 10위 꼴찌로 밀려 난 것이 이변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마치 새누리당에서 잘나가던 다선위원인 이인제, 이재오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한 것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금년 가을 노회는 4년 만에 다가오는 장로노회장 세력 판도에 시금석이 아닌가라는 뉘앙스를 표출했다고, 항상 잘나갈 때 겸손해야 하는 것이 교계정치의 미학이다. 향후 K, J장로 2명이 경합으로 결정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총대들의 여론으로 가늠할 수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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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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